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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진시황제가 찾아 해맨 최고의 건강식(하)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현미식과 다양한 종류의 야채들을 꼭꼭 씹어 그 안에 있는 영양소를 섭취하는 식단을 짜서 먹게 되는 소식은 아주 큰 부수적인 효과가 있다. 바로 그렇게 원하던 다이어트가 자연스레 된다는 것이다. 살이 빠지고 정신이 맑아지고 피로가 줄어드는 것을 알 수 있다. 소식으로 인해 탄수화물 섭취가 적기 때문에 자연스레 그동안 쌓여있던 지방을 태우면서 내가 필요한 에너지를 만든다. 살이 빠지는 것과 더불어 내 몸에 붙어있던 내장지방과 과잉 지방이 자연스레 연소 된다. 살이 빠지지만 처지는 살이 없이 이쁘게 살이 빠지게 된다. 몸에 쌓인 지방과 내장지방이 사라지면 그동안 나를 괴롭혔던 호르몬 불균형으로 인한 생리통이나 갱년기 등 다양한 증상들이 개선되고 사라진다. 위와 같이 소식은 자연스레 지방을 에너지원으로 써서 필요 없는 지방을 태운다. 일부러 탄수화물을 먹지 않고 지방을 먹는 케톤식이를 하기도 하는데 채식을 하면 그럴 필요가 없다. 일상적인 식사에서 자연스레 케톤식처럼 지방이 탄다. 케톤식은 암 환자들이 많이 하는 식이요법으로 암의 먹이가 되는 포도당을 안 먹거나 적게 먹고 그 대신 에너지원으로 지방을 먹어 암을 굶겨 죽여 괴사시키는 식단인데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 많은 연구가 되었으며 효과는 아주 우수한 것으로 보고 되고 있다. 채식을 하면 자연스레 이 과정이 진행된다. 요즘 유행하는 간헐적 단식이나 1일 1식 등도 위와 같이 지방을 태우는 식단이다. 간헐적 단식은 하루 16시간 정도 공복 상태를 유지하면 인체는 자연스레 지방을 태우게 되고 필요 없는 세포들을 스스로 처리한다는 이론이다. 그 효능이나 내용을 살펴보면 위에서 말한 채식의 장점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1일 1식은 쉽지 않고 폭식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좀 더 쉽고 더 효과적인 채식 식이요법을 하는 것이 좋다. 간헐적 단식을 하는 사람들도 무작정 많이 먹고 또 먹고 싶은 것만을 먹는 것이 아닌 균형 잡힌 영양식단을 만든 다음 하는 것이 좋다. 채식의 장점은 크게 힘들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그동안 먹던 것을 줄여나가고 포기해야 할 부분이 있지만 하루 두, 세끼 정상 식사를 하면 되고 그 식사의 양을 줄이고 질만 바꾸면 되는 것이다. 부족한 단백질은 두부나 콩 단백 등으로 보충하면 된다. 정 힘들면 소량의 생선이나 고기를 먹는 것도 난치병이 아닌 사람들은 충분히 허용된다. 그동안 적게 먹었던 채소를 많이 먹고 현미밥으로 바꾸면 된다. 한국 사람들은 결코 어렵지 않은 식단이다. 가끔 난 이렇게 먹는데 아프다고 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대충 밥에 국 반찬 몇 가지를 먹는 것은 편식이지 제대로 된 식단이 아니다. 잎 줄기 뿌리 등의 다양한 채소와 두부 등의 콩단백 그리고 현미밥. 꼭꼭 씹어서 입에서 죽을 삼킨다. 그리고 중간에 떡이나 주스 빵 국수 등을 절대 먹지 않는다. 견과류와 사과 같은 당지수가 낮은 과일은 간식으로 허용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제대로 된 채식 식단이다. 진시황이 찾아 헤매다가 결국 못찾은 불로초는 바로 내 눈앞에 있다. 이렇게 먹는 내가 바로 세계를 통일한 황제다.

2024-10-16

도서관 앞에서

윤명희 수필가 도서관 유리문을 밀고 나오다 멈췄다. 책 한권 빌려서 나오는 사이에 온 세상이 비에 젖었다. 우산은 차에 있고, 차는 주차장 끄트머리 나무 밑에 있다. 처마 밑에 우두커니 서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떨어지는 빗방울이 굵다. 양철지붕 위를 우다닥 뛰어다니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었던 옛 시간들이 지나간다. 내 나이 열두 살 즈음 우리 집에는 교과서 외에는 책이 없었다. 읽을거리가 있는 만화방 앞을 기웃거리는 날이 많았다. 어쩌다 생기는 용돈으로 1편을 보고, 또 기다려 겨우 2편을 보고나면 그 다음 편이 보고 싶어 갈급증이 났다. 나는 직접 노트에 다음 편 만화를 이어 그리기 시작했다. 수업시간에 만화를 그리다 선생님께 들켰다. 노트도 뺏기고, 손바닥까지 맞았다. 세상 무너진 표정을 한 내게 친구가 자기 집에 가서 같이 숙제하자고 했다. 친구네는 서부정류장 옆에 큰 식당을 했다. 식당은 늘 손님으로 북적여 매일 그 앞을 지나다니면서도 들어가 본 적은 없었다. 같이 공부할 거라는 친구의 말에 그녀의 엄마가 간식을 챙겨 주었다. 간식을 받아들고 방으로 들어가던 나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방의 한 벽면이 소공녀, 홍당무, 빨강머리 앤 등으로 가득했다. 나도 모르게 친구의 두 손을 덥석 잡았다. 다음날 아침 일찍, 친구네로 뛰었다. 숨을 몰아쉬며 식당 문틈 사이로 고개를 밀어 넣었다. “친구야! 학교가자” 한참 후, 잠옷 바람으로 나오는 그녀 뒤로 방에 들어가서 기다리라는 엄마의 말이 따라 나왔다. 나는 벌렁거리는 가슴을 안고, 방에 들어갔다. 그녀가 씻고 밥 먹을 동안 나는 숨 쉬는 것도 잊을 만큼 빠르게 책을 읽어내려 갔다. 학교 가야 할 시간은 여지없이 다가왔다. 미처 다 읽지 못한 빨강머리 앤을 빌려 가방에 넣었다. 방을 나서기 전, 내일 읽을 ‘소공녀’를 눈으로 찜했다. 다음날, 읽은 책을 꽂아두고 어제 찜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야기 속의 주인공과 한 몸이 되어 책 속을 돌아다녔다. 가방을 챙기던 친구가 내게 재밌느냐고 물었다. 나는 한 장이라도 더 읽을 욕심에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매일 매일이 즐거운 나와는 달리 그녀는 갈수록 표정이 어두워져갔다. 그녀가 나 때문에 엄마에게 혼나는 일이 잦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책장에 꽂힌 책을 다 읽을 때까지 모른 척 하려했다. 숙제를 끝내자, 친구가 내일부터는 따로 학교 가자고 했다. 마저 읽지 못한 책들을 돌아보며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야했다. 다시 만화방 앞을 기웃거리다, 만화책을 한 아름 빌려 가는 이웃집 오빠를 보았다. 그는 옆집 아저씨의 먼 친척뻘 되는 조카인데, 초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아저씨를 도와 목재소에서 잡일을 했다. 그가 내게 슬쩍 다가와 저녁밥 먹고 오면 빌려주겠다고 했다. 나는 목재소 쪽문으로 사라지는 만화책을 한참 바라보았다. 나는 식구들 몰래 대문을 나섰다. 목재소 쪽문을 두드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문이 열렸다. 책을 달라고 손을 내밀자, 그가 사무실 옆에 있는 쪽방을 눈짓했다. 책을 다 가져가라는 말에 나는 망설이지 않고 방에 들어가 한 아름 안고 나왔다. 방문을 나서자, 그가 가쁜 숨을 쉬며 다가왔다. 놀란 나는 책을 그의 얼굴을 향해 던지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펄떡거리는 심장이 온 몸에 열을 뿜어냈다. 밤새 앓았다. 열이 내리면서 만화방으로 가던 길이 내겐 없어졌다. 늘 허기졌던 책에 대한 열망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봇물이 터졌다. 방과 후, 나무 바닥이 삐걱거리는 2층 도서관으로 갔다. 책을 코에 대고 냄새를 맡은 후, 마치 조갈증 환자처럼 활자를 마시듯이 읽었다. 데미안을 읽으며 알에서 깨어나는 새로운 세계를 동경했다. 폭풍의 언덕에서 히디클리프의 사랑에 매료되었다. 집에서 학교 가는 길이 전부였던 내 시각이 책 속을 헤매고 다녔다. 시간을 넘고 공간을 넘어 마음껏 활보할 수 있는 자유를 느꼈다. 내 안의 출렁거림을 가라앉히는 것은 나이가 들어가도 언제나 책 속의 길에서 가능했다. 사는 일에 치이는 가운데서도 나는 활자 사이로 난 길을 걷는다. 그 길에서 만난 인연을 따라 걷고 걸어, 지금 도서관 앞에 서 있다.

2024-10-16

오천 장날

상설장이 되었다 해도 오일장은 잊으면 안 돼요 냄새를 확인하고 추억을 상기하고 옛날 떡과 술떡을, 도라지와 냉이를 상업적이지 않게 먹고 살 수 있거든요 라이센스 없는 토박이 장꾼들 습관처럼 출근하는 사람들 구석구석 노인네들 다 모여 콘크리트 담장 아래 쪼그리고 앉아 꼬박꼬박 졸며 봄 햇살 보다 더한 온기를 확인해요 안부 전하면서, 죽지 않으면 보고 또 본다고,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요 제철 봄나물 마중 나오신 거 캐고 뽑아 드리워 주신 거 야박한 가격에도 선뜻 내미는 손 핏줄 빳빳한 마른 손 짓이기 듯 비비는 어설픈 악수 오일장의 자기증명, 그 허술하지만 야무진 목숨들 칼국수 다섯 그릇 시켜 일곱 명 나눠 먹고 동해댁 문덕댁 용산댁 우리 잊지 말아요 멀고 먼 시선 아지랑이에 묻히고 인생, 엄지 검지 모아 팽 하니 푸는 콧물 같은 것 해 지기 전에 버스를 타야지 마지막 버스는 너무 늦기도 하고 우리 운명 같아서 지랄 같아 종일 앉아 있어 시큼한 허리 부축하며 이천원 나물 향기 열댓 봉지 헐렁한 봉지에 담아 집으로 가는 오천 오일장 아쉬워 머물고 싶어도 가슴에만 담아둘 마지막 풍경 더 이상 뜨거운 것은 없어도 더 이상 시들 거 없어도 다음 장날 못 나오면 와병 중이거나 죽은 줄 아시게. 해도동에서 태어났지만 오천에서 오래 살았다. 삶의 언어를 거기서 배웠다. 바탕을 형성하는 인성은 고급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낮은 것은 언제나 은은하다. 금빛이 아니라 은빛이어서 늘 은은하게 빛나고 있다. 흰 머리카락이 더 늘어가고 있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4-10-16

낙하산을 폐지하라

장규열 고문 정부 기관 고위직 인사가 소위 ‘낙하산’ 관행에 따라 이루어지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들린다. 같은 생각을 가진 실력 있는 인사를 기용한다는 생각에 일부 동의한다. 하지만 들리는 소리는 그 정도가 아니다. 업무 관련 전문성이나 업태 관련 적합성과는 무관해 보이는 마구잡이식 낙하산이 내려오는 일은 어찌해야 하는지. 이념의 좌우를 막론하고 우리 사회에서 ‘관행’으로 받아들여지는 인사 관행을 짚어보기로 한다. 첫째, 정부 행정의 전문성을 심대하게 저해한다. 고위공직자들은 국가정책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중차대한 역할을 맡고 있으며, 모두 전문성과 경험을 요구하는 자리여야 한다. 그런 자리가 정치적 보은의 수단으로 전락하여 적합성과 전문성이 결여된 인사가 임명되면, 정책의 연속성이 사라지고 정책진행의 질적 저하를 초래한다. 복잡한 행정 업무와 국제관계를 다루는 자리일수록 이러한 문제는 더 큰 혼란을 불러올 것이다. 둘째, 이러한 인사는 공직사회 내 성실하게 일해 온 구성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린다. 정권에 의해 고위직에 임명된 인사가 자신의 역량과 상관없이 자리만 차지하게 되면, 공직자들은 공정한 평가와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불신을 갖게 되어 성실하게 업무를 수행하던 이들의 의욕을 꺾고 조직 내 불만과 불안정성을 가져올 터이다. 자신의 업무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헌신해 온 공직자들이 전문성과 성과를 인정받지 못하고, 오히려 정치적 인사들에게 자리에서 밀려난다면 그로 인한 좌절감은 무엇으로 보상할 것인가. 장기적으로 공직사회 전반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해악이 된다. 셋째, 정치적 보은 인사는 조직문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공직사회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집단이며 투명하고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운영되어야 한다. 인사과정이 정치적 논리로 휘둘리면, 조직 내 공정성에 대한 신뢰는 무너지고 내부 구성원들 사이에 건강한 경쟁 대신 불신과 갈등이 증폭될 수 밖에 없다. 상급자의 결정이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조직원들은 그 지침에 대한 신뢰를 잃고, 조직 운영 전반에 대해 회의감을 갖게 되지 않을까. 이는 조직 내 협력과 소통을 저해하고, 건강한 업무 환경을 해치는 주요 요인이 되고 말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를 떨어뜨린다. 국민들은 정부의 고위 공직자들이 공익을 위해 일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의 정책을 만들어 낼 것을 기대한다. 인사 과정에서 전문성보다는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선된다면, 국민들은 정부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일하고 있지 않다는 인식을 가지게 될 것이다.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훼손하고, 궁극적으로 정부 운영의 정당성과 안정성을 약화시킨다. 국민적 신뢰가 떨어지면, 정책 추진의 동력이 줄어들고 국가의 발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터이다. 인사가 만사다. 인적 구조가 건강해야 조직이 튼실하게 선다. 윗 자리를 부실하게 채우면 아랫 자리가 제대로 기능할 방법이 없다. 아무나 때우는 자리는 그 자리를 공직으로 인정해야 하는가부터 다시 물어야 한다. 무작정 낙하산을 폐지하고 공정하고 투명한 인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2024-10-16

남북, 군사적 충돌은 없어야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남한 정부와 북한 정부 사이의 긴장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지난해 말.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앞으로 남북은 별개의 국가”라고 선언하며, 향후 평화와 공존을 위한 교류를 단절하겠다고 예고했다. 이후 올 여름 북한은 남북을 오가는 기찻길인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를 틀어막았다. 그즈음 이른바 북한의 ‘오물 풍선’이 남쪽으로 날아왔고, 남한 역시 북쪽을 향해 고성능 스피커를 통한 비방 방송의 강도를 높였다. 그리고, 지난 15일 북한은 경의선·동해선 남북 연결도로 일부 구간을 폭파했다. 모두가 보란듯 환한 대낮에 벌어진 행위였다. 그 과정이 가감 없이 TV 화면으로 남한 사람들에게 전달됐다. 지구 위 거의 유일한 분단국가인 남한과 북한의 정치·군사적 갈등을 지켜보던 해외 언론은 “두 나라 사이의 긴장을 다소나마 완화해주던 상징물이 파괴됐다”고 보도했다. 위기의 현실화를 우려한 것이다. 그보다 며칠 전엔 평양에 무인기가 나타나 김정은 일가를 비난하는 선전물을 살포했다며, 이런 상황이 재발될 시 군사적 대응을 할 수도 있다는 북한의 경고가 있기도 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으로 보자면 말 그대로 일촉즉발(一觸卽發)이다. 남북간 작은 오해가 군사적 충돌이라는 최악의 상황까지 야기할 가능성이 없지 않아 보인다. 일부에선 ‘전쟁 불사’를 이야기하지만, 최근 전쟁으로 인한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의 참상을 볼 때 어떻게든 극단적 무력 충돌은 막아야 한다는 게 남한 국민 다수의 의견. 전쟁은 인류가 오랜 시간 축적한 정신과 물질유산을 파괴하고, 어두운 공멸의 터널 속에 갇히는 일이다. 남한과 북한 지도자 모두가 잊지 말아야 한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10-16

개통 앞둔 대구권 광역철도 만반의 준비를

비수도권 최초로 개통되는 대구권 광역철도(대경선)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2019년 사업비 200여 억원을 들여 시작한 대경선은 오는 12월 14일 정식 개통된다. 개통에 앞서 당초 8개 역으로 정한 철도역에 대구 서부권에 위치한 원대역을 새로 추가하면서 광역철도로서 기능이 앞으로 더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구미와 대구 그리고 경산을 잇는 대경선은 전체 구간은 61.85km이다. 전체 구간의 연결시간은 40분대. 특히 대구와 구미간이 27분 소요되고, 대구에서 경산까지는 15분 정도 소요된다. 전체 구간이 1시간 이내 생활권으로 묶이면서 대구와 인근 도시가 메트로폴리탄화 된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 크게는 최근 본격 논의되는 대구와 경북의 행정통합 논리에도 부합한다. 무엇보다 생활권이 1시간 안에서 이뤄지면서 지역주민들의 왕래가 늘면서 생활인구 이동에 따른 변화도 예상해 볼 수 있다. 경제적으로는 구미지역 산업단지와 대구.경산권 산업단지가 연결됨으로써 대경권 경제에 미치는 시너지 효과도 기대해 볼만하다. 근대 도시의 발달은 교통의 혁명에서 비롯됐다. 대구와 경북이 행정통합을 시도하는 것은 수도권 일극주의에 대응하려는 것이 목적이나 편리한 교통 인프라는 수단으로서 반드시 확보돼야 할 요소다. 대경선은 오전 5시부터 다음날 0시까지 운행하며 출퇴근 시간대는 15분 간격, 평상시는 2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하루 61회 운행된다. 시내버스와 대구도시철도와의 환승할인이 가능해 시민들의 교통비 부담도 준다. 현재 고속도로를 이용해 출퇴근 하던 많은 사람 중 상당수는 대경선 철도로 바꿔 탈 것으로 짐작이 된다. 관계기관에서는 연간 1700만명 정도가 대경선을 이용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철도공단과 대구시는 대경선 개통에 따른 만반의 준비에 소홀하지 말아야 한다. 시민의 교통편의 제고는 물론이요 지역경제에 돌아오는 경제적 이득을 극대화하는 데도 행정과 지혜를 동원해야 한다. 대경선 운행 효과를 봐가면서 추가 역 신설도 검토해 광역철의 실제적 효과를 높이는 것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2024-10-16

포스코의 수소환원제철사업은 ‘국가현안’

오늘(17일) 포항제철소를 방문하는 최상목 경제부총리가 포스코의 수소환원제철 사업에 대한 정부지원과 관련, 어떤 방안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최 부총리 방문에는 강도형 해양수산부 장관, 박성택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도 동행한다. 최 부총리 일행은 포항제철소에서 철강경기 등을 점검한 후, 수소환원제철소가 들어설 부지도 둘러본다. 포스코는 제철소와 접해 있는 영일만 공유 수면을 매립해 135만㎡(41만평) 규모의 수소환원제철소 용지를 확보할 계획이며, 현재 포항시와 경북도, 국토부, 산업부, 해양수산부, 환경부 등 관련 부처와 협의를 계속하고 있다. 올해내로 공유수면 매립허가(해양수산부)에 이어 행정절차의 마지막 단계인 산업단지 계획심의(국토부)까지 끝낸다는 계획이다. 포스코는 그동안 정부가 수소환원제철사업에 적극 나서줄 것을 요청해 왔다. 정부는 현재 수소환원제철사업을 패스트 트랙으로 분류해 두고 있으며, 지난 1월에는 수소환원제철기술(하이렉스)을 국가전략기술로 지정했다. 지금까지 수소환원제철 사업에 대한 정부 지원은 소극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지난달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하이렉스 프로젝트에 들어가는 비용이 2050년까지 약 2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지만, 현재까지 정부가 이 사업에 투자한 예산은 269억원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주요국의 수소환원제철 사업에 대한 투자동향도 거론됐다. 지난해부터 일본은 수소환원제철 기술 연구개발에 2조3706억원, 미국은 저탄소 철강생산프로젝트에 최대 1조3400억원, 독일은 석탄기반 고로 6기를 저탄소 설비로 대체하는데 10조2000억원을 정부가 지원한다. 우리나라의 철강제품 수출량은 지난해 기준 세계 3위이지만, 전 세계적으로 저탄소 철강생산 요구가 증대되면서 서서히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오늘 포항제철소 현장을 방문하는 최 부총리 일행이 수소환원제철 사업에 대한 정부 지원 확대가 왜 시급한지를 꼭 인식하길 바란다.

2024-10-16

포항의 옛 이름은 갯메기

토박이 어르신들은 포항의 옛 이름이 갯메기 또는 갯미기였다고 말씀하신다. 젊은 사람들이 들으면 의아해 하겠지만, 한자와 한글 표현에 포항 사투리가 한몫 한 것이다. 포항에서는 청어의 눈을 꿰어 말렸다 녹히기를 반복한 것을 ‘관목’이라고 불렀다가 ‘관메기’로, 다시 ‘과메기’로 정착된 사례가 있다. 포항 지명도 초기에는 ‘갯목’으로 불리었다고 한다. 문맹인이 많았던 시절에 발음하기 편한대로 옮겨지는 말의 특성상 갯목이 자연스럽게 ‘갯메기’ 또는 ‘갯미기’가 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포항이라는 이름은 한자로 浦(개 포), 項(목 항)이라 쓴다. 포항하면 항구(港口)도시가 각인되어서인지 浦(개 포), 港(항구 항) 이라고 적는 사람들이 주변에 꽤 많다. 수정해 주면 왜 浦項이 됐는지가 궁금하다고들 한다. 浦(개 포), 項(목 항)을 우리말로 풀면 갯목 또는 받침 ㅅ이 탈락되어 개목이 된다. 국어사전에 ‘개’는 강이나 내에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이고, ‘목’은 척추동물의 머리와 몸통을 연결하는 부위라고 설명한다. 고속도로로 진입하거나 빠져나가는 곳을 나들목이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나들목에 대하여 사전에서는 “도로의 교차부가 입체교차로 되어 있어, 직진하는 자동차나 좌우 회전하는 자동차가 뒤얽히는 일이 없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연결하는 시설로서 ‘인터체인지’를 우리말로 순화한 용어이다.”라고 적고 있다. 포항에는 ‘개’자가 들어간 명칭이 몇몇 남아 있다. 호미곶 구만1리의 솥발이개, 우물개, 큰개와 구만2리 까꾸리개, 부느리개 등의 지명이 대표적이다. 포항시사 제3권(제10편 마을유래와 설화 제1장 마을유래 제1절 남구지역 7. 대보면 601쪽)에는 구만리의 지명 ‘개’ 자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구만1리 솥발이개는 보내 북리 갯마을로서 마을지형이 솥 같아 정족(鼎足)으로도 부르고, 우물개는 우물 부근에 형성된 작은 마을로서 웅글개로도 칭하며, 큰개는 우물개 북쪽 해안마을로서 앞 바다에는 암초(暗礁)가 많고 풍랑이 심하여 해난사고가 잦다’라고 명기 해 놓고 있다. 또한 ‘구만2리 까꾸리개는 큰개 서편에 속하는 갯마을로서 이 지역에 풍파가 심하면 고기들, 특히 청어(靑魚)가 뭍으로 밀려나오는 경우가 허다하여 갈구리로 끌었다는 뜻에서 지어진 지명으로 구포(鉤浦)로도 부르고, 부느리개는 서남단 해안 작은 어촌으로서 영일만(迎日灣) 굽이진 바다에 달빛 자욱한 모습이 가관(可觀)이라 분월개(芬月-)로 불렀다 한다. 지금은 마을이 철거되고 방파제만 남아 있으며, 분월포(芬月浦) 로도 부른다’라고 정리해 놨다. 바닷가 모래땅에 살며 풍을 막고 피를 맑게 해 준다는 ‘갯방풍’, 갯가에 자리 잡고 있는 ‘갯마을’등에서의 접두사 ‘갯’도 갯목의 ‘갯’과 같은 의미이다. 포항시사 제1권(제2편 역사 제5장 근대태동기 4. 포항지명 탄생 425쪽)에는 포항지명 탄생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포항의 지명이 공식적으로 처음 등장한 것은 영조7년(1731) 포항창진(浦項倉鎭)을 설치하면서다. 창진이 설치된 마을 이름은 원래 영일현 북면 대흥리였으나 이를 포항리로 개칭하고, 창진의 이름을 포항창진으로 명명하였다’ ‘포항이란 향호(鄕號)는 포항의 대흥산을 배경으로 형성된 형산강의 하류이자 지류로서 선박의 접안이 가능한 칠성강의 중요지점을 나타내는 우리말 지명인 갯메기(갯미기, 표준말은 갯목)의 한자화(개울·개·물가 浦자와 목 項자)로 이루어졌다. 갯목은 구 역전교(1980년대 초에 복개함) 지역이며, ’(이하 생략). 왜 포항을 항구가 있는 지역 즉 포항(浦港)이라 쓰지 않고 포항(浦項)이라고 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경상북도의 무역항 및 연안항으로 지정된 항구를 살펴보면, 무역항인 포항항(浦項港), 연안항인 울릉항(鬱陵港)·후포항(厚浦港)·강구항(江口港)·구룡포항(九龍浦港), 그리고 연안항으로 추진 중인 감포항(甘浦港)이 있다. 포항·후포·구룡포·감포의 지명에서 모두가 같은 개 포(浦) 자를 쓰고 있는 점은 특이하다. 강가 또는 수변지역이라는 뜻에서 각자 포(浦)를 사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박상구경주대 대학원 특임교수 우리나라 다른 곳에서도 포항이나 갯목 또는 개목이라는 지명을 쓰는 곳이 다수 있다. 안동에서는 오랜 세월 시가지를 흐르는 낙동강 물길을 관리하기 위해 제방을 쌓고 증축한 곳을 포항제(浦項堤)라 부르고, 강변 임청각 앞에는 ‘개목나루’또는‘포항나루’라 불리는 장소가 있다. 동해시 구미동에도 북평시장에서 전천과 동해바다가 합류하는 길목에 갯목항이 있다. 홍성군 은하면 장척리에도 포항마을(개목)이 있다. 그 외에도 함경남도 함주군 포항리, 함경남도 신포시 포항동(개목), 함경북도 청진시 포항동 등이 있다. 이러한 장소의 특징은 인근에 물이 있고 또 물이 나가는 길목에 마을이 있다는 특징이 있다. 포항·갯목·개목 등의 지명은 마을 형국이 바다나 개울 목 또는 물 목에 위치하여 붙여진 지명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위 사례가 보여주듯 이들 지역과 경북 제1도시 포항의 지명 유래는 매우 닮아 있다. 입지적 측면과 지명이 갖는 상징성 등 상당 부분에서 동일한 공통점이 발견되는 것이다. 최근 들어 각 지자체들은 옛 지명을 속속 복원하고 있다. 옛 이름이 놀뫼인 논산은 놀뫼 공소, 놀뫼 새마을금고 등과 같은 장소명을 쓰고 있고, 옛 지명이 서라벌인 경주는 서라벌대로, 서라벌 문화회관 등 자랑스럽게 이름을 명명했다. 의성지역에는 삼한시대 초기 조문국이라는 부족국가가 있던 곳이라 조문국 박물관을 개관했고, 김해는 옛 이름은 금관가야 를 되살려 김해가야 테마파크, 김해가야 축제 등 장소명을 부각시켜 나가고 있다. 포항에도 갯목 시티 역사관, 갯목 광장, 갯메기 대로, 갯메기 체육관 등 포항의 정체성이 반영된 장소명이 생기기를 기대해 본다.

2024-10-15

아름답지만 슬프고, 유쾌한 만큼 우울한

인류는 어쩌면 전쟁이라는 끔찍한 운명으로부터 영영 벗어나지 못할 모양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의 전쟁은 끝날 줄 모르고 장기화하고, 중동에서도 또 새롭게 전쟁 발발의 소식이 들려오는 것을 보면 말이다. 우리는 과연 인류라는 역사 속에서 전쟁이라는 기록을 지워낼 수 있을까. 결국 전쟁으로 비롯된 상처와 트라우마 속에서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됨의 숙명이 아닐까 하는 절망적인 인식만 생기게 된다. 인간의 역사는 본래 아무 것도 없었던 시간의 한 축에 시작점을 두고, 그곳으로부터 시간을 한 방향으로 누적시켜가며 어딘가로 나아가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지금은 그 시작의 지점으로부터 무려 2024년이나 지나 있는 것이다. 수천 년이나 되는 인류의 역사는 그렇게 차츰 발전해가면서 어떤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인류의 역사가 진보나, 발전의 관점으로 쓰일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이 같은 누적된 시간이라는 개념의 탓도 있으리라. 사실 꼭 시간이 그런 형태를 취해야 할 이유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한 쪽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것은 단지 우리의 인식일 뿐으로, 시계의 추가 좌우로 흔들리는 것처럼, 인간의 시간도 세대를 거치며 발전하기도 하고 퇴보하기도 하니 말이다. 그래도 몇천 년의 인류의 역사라고 하면, 왠지 인류의 한 사람으로서 어딘가의 방향을 향해 발전해나가는 것에 책임감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된다. 문득 여전히 일어나는 전쟁 소식에 가슴을 쥐어뜯게 되는 것은 나 역시 인류로서 그러한 책임감을 공유하고 있는 까닭이리라. 우리는 지난 수천 년의 역사로부터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 것일까. 전쟁의 상처에 대해 쓰고 그렸던 문학과 미술로 인류를 뒤덮은 전쟁의 소용돌이를 막는 것은 역부족이었던 것일까. 인류의 역사가 어딘가의 방향으로 흘러간다거나 심지어 ‘진화’해간다고 할 때, 우리는 과연 그 방향이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인가. 문학예술이 하등 쓸모가 없거나 심지어 인류의 ‘퇴화’를 조장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보여주는 것 자체를 무시하지 말아야 하는 까닭은 인류가 한 번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면, 그것을 돌리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인간은 같은 잘못을 반복하고, 전쟁은 일어나기 마련이겠지만. 지금까지 수많은 작가들이 전쟁의 상처에 대해 문학 작품으로 다뤘지만, 커트 보니것(Kurt Vonnegut, Jr.·1922~2007)만큼 개인적인 전쟁의 경험을 글쓰기 속에 투영했던 작가는 또 없을 것이다. 그의 ‘제5도살장’은 독자로 하여금, 그가 겪은 전쟁의 트라우마 한 가운데로 이끌어 그 공황에 가까운 기억을 공유하도록 만든다. 이 소설은 제2차 세계대전에 미국 병사로 참전했다가 포로가 된 빌리 필그림이 포로로 잡혀 독일 작센 지역의 드레스덴 근방의 도살장에 수용되었다가, 연합군의 드레스덴 폭격에 휘말렸다가 살아돌아온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렇게 줄거리를 소개하면, 마치 일반적인 소설 같지만, 이 소설은 전쟁의 상처를 겪은 빌리의 파탄난 기억을 바탕으로 하는 만큼, 그가 겪은 시간들을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두서 없는 서술로 이어져있다. 전쟁 이후의, 일종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라고 해도 좋을 공황은 그를 환각과 실제, 기억과 진술 사이를 오가면서 완결된 서사를 만들어내지 못하게 만든다. 두서 없는 시간의 서사 구성, 그 사이에서 다만 번뜩이고 있는 위트가 바로 커트 보니것의 전쟁의 트라우마이자, 전쟁에 대해 비판하는 소설의 기술 그 자체이다. 그래서 그의 문장은 아름다운 만큼 슬프고, 번뜩이는 위트만큼이나 우울하다. 마치 일어나지 말아야 할 비극에 휘말려갈 수밖에 없는 무력한 자신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럴 때 우리는 빌리가 그렇듯, 참담하게 “뭐 그런 거지”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홍익대 교수

2024-10-15

결혼·출산의향 높아진다지만 성과는 ‘글쎄’

20대와 30대 청년들의 결혼·출산 의향이 높아지는 추세라니 무엇보다 반갑다. 지난 7월 출생아수가 12년만에 최대증가폭을 기록했다는 통계청 발표를 고려해 보면, 그동안 ‘백약이 무효’라던 저출산 대책이 효과를 내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출산위)가 지난 8월 31일∼9월 7일 25∼49세 남녀 259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저출생 대책 인식 조사’ 결과, 미혼인 응답자의 65.4%가 ‘결혼을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있거나 언젠가 결혼하고 싶다’고 답했다. 지난 3월 조사 때(61.0%)보다 4.4%포인트 높아진 수치이다. 특히 30대 여성은 3월보다 11.6%포인트 높아진 60.0%가 결혼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출산에 대한 인식도 전체 응답자의 68.2%가 ‘자녀가 필요하다’고 답할 정도로 긍정적이다. 지난 3월(61.1%)보다 7.1%포인트 높아진 수치다. 응답자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자녀수는 평균 1.8명이었다. 우리나라의 올해 1분기 합계출산율은 0.76명까지 추락한 상태다. 이번에 드러난 청년들의 혼인과 출산에 대한 긍정적인 사고는 반드시 결혼·출산율 제고로 이어져야 한다. 그러려면 국가가 결혼과 출산, 육아에 따른 부담을 줄여나가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쳐야 한다. 이번 조사에서도 절반에 육박하는 응답자가 출산계획을 세우지 못하는 이유로 ‘자녀 양육비용 부담(46.1%)’을 꼽았다. 특히 열 명 중 여섯 명은 ‘자녀 출산 후 최소 1년 이상의 가정 내 돌봄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저출산위가 반드시 정책으로 지원해야 할 부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저출산에는 특효약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자녀양육에 대한 부담을 줄이려면 안정적인 일자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금처럼 청년백수가 넘쳐나는 상황에서는 지속적인 출산율 반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저출산위는 청년들이 스스로 ‘결혼해서 자녀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 있도록 사회전반의 구조개혁을 포함한 종합적인 대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2024-10-15

지역 실정에 맞는 시니어 기술창업 유도해야

대한상의가 2016년부터 2023년까지 국내 창업활동 추이를 분석한 결과가 이채롭다. 대한상의가 발표한 ‘베이비부머의 지역 내 고부가가치 창업 활성화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40대와 50대, 60대 이상의 기술창업 비중이 급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5년동안 40대는 3.0% 포인트, 50대는 3.8% 포인트, 60대는 2.5% 포인트가 각각 증가했다는 것이다. 이는 같은 기간 20대 기술창업 0.9% 증가와 증감 폭이 없는 30대와 비교하면 40대 이상의 기술창업이 매우 활성화되고 있는 결과로 분석이 된다. 상의 관계자는 학력수준과 전문성이 높은 2차 베이비부머 세대(1964∼1974년생)가 업계에서 쌓아온 기술과 네트워크를 활용해 부가가치가 높은 신산업 분야에 뛰어든 영향으로 풀이했다. 이의 영향으로 국내 기술창업이 매년 증가세에 있어 40대 이상 인력의 기술창업을 적극 유도해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지역산업 생태계의 고부가가치화를 도모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시니어의 기술창업 붐이 수도권 중심으로 집중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상의 조사에 의하면 수도권의 기술창업은 같은 기간 22.5%가 증가한 반면 비수도권은 7.4% 늘어나는 데 그쳤다. 특히 대구와 경북은 0.7% 포인트와 0.5% 포인트가 각각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경제의 수도권 집중이 시니어의 기술창업에도 그대로 반영된 결과로 분석이 된다. 그러나 시니어의 기술창업이 수도권 중심으로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음이 확인됨에 따라 지방정부 차원에서도 이를 정책에 반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청년층 중심의 창업정책과 함께 시니어에 대한 새로운 창업정책 개발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상의 관계자가 “창업에 나서는 시니어층이 겪는 신용제약을 완화하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협력해 창업 마중물 역할을 하는 정책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인구감소와 노령화가 우리시대 과제라면 시니어 인력을 산업화하는데 투자를 늘리는 것이 마땅하다.

2024-10-15

‘차등 전기요금제’, 공정·투명성이 생명

심충택 논설위원 지난주(8일) 대구에서 열린 ‘영남권 미래발전협의회’에서 박형준 부산시장은 “정부가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 적용 기준을 3분할(수도권·비수도권·제주)하는데 무게를 두고 있다”면서 “원전이 집중된 남부권이 연대해서 지역별로 세분화된 전기요금 차등제 도입을 중앙정부에 건의하자”고 제안했다. 박 시장이 언급한 ‘차등 전기요금제’는 2026년 시행되며, 발전소가 밀집한 지역의 전기요금을 낮춰주는 대신 발전소에서 멀어질수록 전기요금이 높아지는 제도다. 지난해 5월 ‘분산요금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경북도처럼 발전소가 몰려 있는 지역은 전기요금이 싸지고, 수도권 전기요금은 상대적으로 비싸진다. 박 시장이 우려한 것처럼, 정부가 국토를 3분할해서 차등요금제를 시행할 경우 발전소가 있는 지역도 비수도권 내 ‘N분의 1’ 지역이 돼 차등요금제가 무색해 질 수 있다. 대전을 예로들면, 전력 자급률이 2.9%로 전국 17개 시·도 중 가장 낮은데도 비수도권에 포함돼 낮은 요금 혜택을 받게 된다. 지난해 기준 발전소가 있는 지역의 전력자급률은 경북도를 포함해 부산, 충남, 인천은 200%를 넘는다. 정부는 차등 전기요금제와 관련해 아직 결정된 게 아무것도 없다고 밝혔지만, 전력당국은 올들어 두 차례 가격결정 워킹그룹(실무협의체) 회의를 열어 전국을 수도권과 비수도권, 제주로 3분할 해 전기요금을 차등 부과하는 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전력자급률이 높은 지방정부들은 수도권, 영남권, 강원권, 충청권, 호남권 등 광역자치단체 단위로 차등요금제를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차등요금제 시행에 부정적인 수도권 정치권력의 이기주의다. 22대 국회 의석수는 254개 전국 지역구 중 서울 48석, 경기 60석, 인천 14석으로 수도권이 122석을 차지하고 있다. 벌써 경기지역 언론들은 차등요금제가 도입되면 반도체 산업 육성 프로젝트 동력까지 약화시킬 수 있다며 정치권을 자극하고 있다. 특히 2026년은 지방선거가 실시되는 해이자, 대통령 선거를 1년 앞둔 시기다. 이처럼 민감한 시기에 정부가 과연 수도권 주민들을 상대로 전기요금을 더 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박형준 시장이 영남권 미래발전협의회에서 남부권 지방정부가 연대해서 차등 전기요금제 결정에 대처하자고 제의한 것도, 이러한 정치적 함수관계 때문이다. 영남권과 호남권 등 남부정치권이 한목소리를 낼 경우, 정부도 수도권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결정을 내리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 것이다. 사실 수도권에 집중된 기업을 지방으로 분산시키는 데는 차등 전기요금제만큼 실효성이 있는 제도가 드물다. 지역별 전기료가 대폭 차이가 나게 되면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반도체나 이차전지, 데이터센터 관련 기업들이 이전을 검토할 수 있는 동인(動因)이 생긴다. 정부는 국토균형발전 차원에서라도 발전소를 많이 보유한 지방정부와 긴밀하게 협의해서 차등 전기요금제 적용기준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결정하길 바란다.

2024-10-15

슈퍼문과 낭만감

우정구 논설위원 보름달은 완전함, 풍요로움 그리고 목표의 완성을 나타내는 성취의 상징으로 표현된다. 17일은 올해 가장 큰 보름달이 뜨는 슈퍼문을 볼 수 있는 날이다. 슈퍼문은 지구에서 가장 가까이 뜨는 달로 지구에서 가장 멀리 보이는 미니문 때보다 14% 정도 더 커 보인다고 한다. 달은 동서양을 불문하고 많은 설화를 안고 있다. 중국의 달 탐사선 ‘창어’는 중국 설화에 나오는 선녀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토끼가 계수나무 아래서 방아를 찧는 옥토끼 설화가 전해져 온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달에 대한 동경심과 신비로움이 나라마다 낭만이 있는 설화로 탄생한 것으로 짐작이 된다. 달은 지구를 도는 유일한 위성이다. 지구와의 거리는 38만km. 크기는 지구의 약 4분의 1 정도다. 인류의 달 탐사가 일찍 시작된 것도 지구와의 근접성 때문이다. 현재 달착륙에 성공한 나라는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 일본 등 5개국이다. 우리나라는 6∼7번째 달착륙 국가를 희망한다. 우리나라는 2022년 12월 다누리호를 달 상공 100km 지점으로 쏘아 올려 현재는 달 주변의 변화를 관찰하는 수준에 있다. 정부는 2030년초 달 착륙을 목표로 프로젝트를 주진 중이다. 약 6000억원의 예산이 든다고 한다. 달 착륙 등 달에 대한 과학적 탐사의 진행으로 일반 시민들 사이 달을 바라보며 소원을 비는 낭만적 정취가 많이 반감된 분위기다. 이번 17일에도 과학원 등은 슈퍼문이 뜨는 영상을 유튜브를 통해 송출한다고 한다. 과학적 관찰이 달의 신비로움을 벗겨 내면서 문화적 관습으로 이어져 오던 달과 함께 느꼈던 낭만감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10-15

소통은 최고의 경영 ‘스킬’이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사람은 혈액이 막히면 생명을 유지하기 어렵다. 조직도 소통 흐름이 막혀 동맥경화 현상이 발생하면 기업 생명력은 약해진다. 소통은 상호 신뢰 선상에서 형성되고 신뢰는 사람관계에서 만들어진다. 직장생활을 오랫동안 한 사람도 사람 관계는 쉽지 않다. 특히, 주제를 놓고 대화 할 때 본의와 다르게 전달되거나 공감대 형성이 낮은 경우가 많다. 조직과 사회의 어떤 위치가 되든 그 역할을 잘 하는 사람의 비기(秘器)는 소통이 근간이 된다. 한 사람의 리더십과 소통은 태도와 대화 방법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소통은 개인이나 집단 간의 의사나 정보를 주고 받는 것을 의미한다. 언어, 제스처, 표정, 문화적 요소 등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으며, 상호간의 이해와 의사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소통은 정보를 전달하고 이해하는 데 필수 요소이다. 이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 소통은 개인간의 신뢰와 이해를 바탕으로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조직 내에서 원활한 소통은 협력과 협업을 촉진하며, 혁신과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발상을 돕는다. 리더의 성공적인 소통을 위해서는 첫째, 미래를 제시하고 동기부여 할 수 있도록 한다. 구성원의 성장과 함께 하는 소통은 맛이 난다. 둘째, 일이 잘 되게 하는 긍정의 대화다. 상대를 읽고 강점은 살려주고 부족한 것은 채워주는 배려가 필요하다. 셋째, 일을 해결하는 통찰의 대화법이다. 목표를 주고 달성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지식과 경험을 뛰어넘는 새로운 시각으로 상황을 읽는 관찰력과 문제해결 통찰력의 대화가 중요하다. 넷째, 명확하고 일관된 말이다. 리더의 말은 구성원이 이해 못하거나 목표와 배경, 일의 가치 등 일관성 있게 해야한다. 다섯째, 신뢰와 솔선이다. 상대방의 의견에 경청하고 진정성의 대화와 난해한 일들은 직접 풀어주는 것이다. 필자가 여러 중소기업을 컨설팅 할 때 CEO와 본부장 등 경영층과 직책 간부나 일반 직원 간에 의외로 소통이 잘 안 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CEO가 생산 현장을 방문할 때 담배 꽁초가 보이면 잔소리를 한다. 그러면 직원들은 CEO가 다가오면 피하게 된다. 조직의 수장과 중간 간부, 직원 간 기본적인 소통이 안 되면 아교가 생기고 신뢰는 무너져 시너지 창출은 불가능하다. 소통과 대화 그리고 코칭 방법을 제대로 하도록 시간과 공을 들인다. 평소 익숙한 습관에 변화를 주는 것이기에 쉽지 않은 경우도 많다. 경영층의 현장 방문 시 ‘대화의 장, 소통의 장, 코칭의 장’을 잘 해내지 못하면 동맥경화 현상이 생겨 기업 심장은 멈추게 되는 것이다. 21세기 관리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관계의 시대이다. 기업에서 직원 간 신뢰를 얻고 소통을 원활히 하기 위해 사람과의 관계가 우선이고 소통의 시작이다. 사람은 관계 속에 삶을 살아가는 속성이 있고 그 관계 속에 신뢰가 형성된다. 신뢰가 형성되면 참된 소통은 시작되며, 건강한 조직, 시너지를 창출하는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성장한다.

2024-10-15

서예 꿈나무들의 육성과 희망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하늘 높푸르고 흰구름 둥실 떠가니 억새가 손짓하며 반긴다. 정갈한 햇살에 마음의 습기마저 말려지는 듯한 10월, 과연 문화의 달 답게 시월은 연일 행사가 한창이다. 체육대회는 물론이고 전시·공연·음악회·백일장·기념·체험·버스킹·축제 등의 온갖 행사가 줄을 잇고 있다. 눈길 닿고 발길 머무는 곳마다 음악이나 함성소리가 들리고 문화시설마다 온갖 행사로 광고나 홍보물이 빼곡하다. 그만큼 날씨도 좋고 사람들이 북적대니 밝고 활기차 보인다. 그 중에서 특히 눈길이 가는 곳은 묵향이 피어나는 학생들의 서예작품이다. 삐뚤삐뚤 서툴고 미숙한 듯 투박하지만, 그래서 더 소박하고 순수하며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점획들이 정겹기만 하다. 마치 누구나 성장과정을 거쳐왔듯이 자신들이 아득한 학생시절로 되돌아가 티없는 순박함으로 무작정 붓 가는 데로 쓰고 그린 붓질처럼 여겨져 한결 친근하게 느껴진다. 철없던 시절의 흔적이랄까, 시간의 단면 같은 아득함이랄까, 박제된 그리움마냥 순진무구한 학생들의 작품에서 묻어나는 먹내음이 진하고 무던하기만 하다. 이러한 전시회는 최근 포항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충효학생서예대전’의 입상 작품전이다. 포항서예가협회가 주최·주관한 충효학생서예대전은 포항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타 시도에서는 보기 드물게 서예 꿈나무들의 발굴과 육성, 장려를 위해 지난 1992년부터 한번도 거른 적 없이 매년 개최해온 학생 서예 공모전이다. 갈수록 응모작품과 참가학생이 줄어드는 아쉬움이 있지만, 서예학원과 학교 출강 지도강사들의 꾸준한 노력으로 올해 33회째 명맥을 이으며 성황리에 열렸다. 스마트폰과 컴퓨터가 일상화되는 첨단기기의 정보화 사회에서 옛 선인들의 정신과 기예를 되살려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올바른 교육문화 형성에 보탬을 주는 서예 꿈나무 발굴·육성은 참으로 바람직하며 의미 있는 일로 여겨진다. 현대를 살아갈수록 자칫 소홀해지기 쉽고 등한시돼 버릴 수 있는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예술이, 이와 같은 서예대회를 통해 명맥을 잇고 충효사상을 고취하는 계기가 된다면 전통의 가치제고와 정신문화 고양에도 큰 자양분이 될 것이다. 그리고 전통문화 계승과 예술적 감성을 북돋우는 학생서예대회는, 미래사회를 이끌어갈 학생들의 글로벌 정신과 다양한 콘텐츠 창작품을 예술작품으로 만들어가는 비전을 제시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할 것이다. 동양 특유의 은은한 멋과 선비정신이 우러나는 서예를 평소 갈고 닦음으로써 정직한 마음과 바른 행실을 습관화할 수 있음은 물론, 청소년들의 정서순화와 건전한 인격형성에도 적잖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부족한 예산과 출품 수 감소 등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매년 열리고 있는 충효학생서예대전은, 지역 서예계 꿈나무들의 발표 기회와 희망의 좋은 본보기가 되고, 후진양성과 서예인구의 저변확대에 큰 몫을 차지할 것으로 보여진다. 이러한 측면에서 학교 공부와 학원 수업에 쫓기면서도 틈틈이 갈고 닦으며 서예솜씨를 마음껏 발휘해 입상한 학생들에게 아낌없는 격려와 찬사를 보낸다. 갈수록 인구와 학생수가 감소하지만, 학생들에게 전통문화의 계승을 일깨우고 예술적 탐색을 통한 미래 인재 양성에 힘써 나가는 충효학생서예대회가 학부모들의 많은 관심과 지자체의 육성·지원으로 활성화되고 지속되기를 기대해본다.

2024-10-15

다시 마약 청정국이 되기를

김규인 수필가 검찰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였는데 마약 복용자는 더 늘어난다. 예산도 늘리고 단속도 열심히 하는데도 그렇다. 마약은 수시로 형태를 바꾸며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마약의 유통 경로는 다양해지고 구석구석 스며든다. 누구나 원하면 인터넷에서 몇 번의 클릭만으로 마약을 살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유흥 업소를 중심으로 집단 투약이 늘어나고 이를 단속해야 할 경찰관마저 마약과 연류되어 사망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젊은이들은 물론이고 가정주부에서 어린 학생들까지 마약을 투약한다. 학생들은 단순한 호기심에서 일회성으로 투약하기도 하지만, 심지어 같은 또래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마약을 유통하는 일까지 빈번하게 발생했다. 마약은 젊은 층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확산한다. 공원이나 주택가, 지하철역에 이르기까지 어디에나 소비자를 기다리는 마약은 숨겨져 있다. 이제 마약은 보통 사람들의 일상이 된 느낌마저 든다. 마약으로 인한 사고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마약을 한 상태에서 자동차를 몰다가 사고를 내거나 시내에서 비틀거리며 걷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지금 우리 사회가 마약으로 휘청거리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서 마약을 뿌리 뽑을 수는 없는 것인가. 한때 마약 청정국이라 불리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꿈같은 이야기다. 어디서 잘못된 것일까. 왜 안 좋은 방향으로 흐르는 걸까. 시민들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자꾸만 모두가 걱정하는 방향으로 흐른다. 우리가 이것을 막을 수 없을까. 인터넷과 통신의 발달은 더 이상 지구가 여러 나라로 나누어진 게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소비국처럼 되었다. 온라인의 활성화로 시간마저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 선진국이요 부유한 한국은 모든 산물이 모여드는 장소이기도 하다. 마약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마약 소비가 급속히 늘어난다. 마약의 유통은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 세관의 눈을 피해 들어온다. 각종 과자나 음식의 모양을 한 마약은 손쉽게 소비자의 손에 들어간다. 공산품에 숨겨 들여오거나 배를 통한 밀수도 예외는 아니다. 수입하는 모든 물품을 조사하기는 힘이 들지만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늘어난 경제 규모로 시간이 걸리더라도 해야 한다.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정부는 마약에 대해 외국과의 공조와 수입하는 물품에 대한 효율적인 검사와 마약 유통 정보 수집에 인력을 늘려야 한다. 마약 생산지에 대한 조사와 마약 유통조직의 흐름을 파악하고 국내 유통을 근절해야 한다. 아울러 마약 공급자와 투약자에 대한 엄한 처벌과 일원화된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 가족 구성원 중 한 사람이 마약을 할 때 가족은 무너진다. 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회의 구성원들이 이러한 고통에서 벗어날 때 나라의 미래도 이야기할 수 있다. 법을 다시 정비하고 단속을 강화하며 정보교류를 활성화하여 다시 마약 청정국의 지위를 회복하자. 건전한 정신이 우리 사회에 흘러넘쳐야 한다. 젊은이들은 내일을 개척하기에도 바쁘다. 우리는 마약에서 벗어나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

2024-10-14

읽고 쓰는 즐거움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고등학교 재학시절, 나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공부는 성실히 했지만, 특별히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는 중상위권의 학생이었다. 아직 체벌이 있던 시대에 특별히 선생님께 매 맞을 일을 하지는 않았지만, 선을 넘는 선생님의 폭력에 속으로만 분노하던 경험도 있다. 그 시절 소위 노는 아이 몇 명을 제외하고 인문계 고등학교 대부분 학생은 대학입시를 위한 반복되는 일상을 살았다. 돌이켜보면 많은 학생이 입시를 위한 폭력적인 학교 교육을 묵묵히 견디며, 그 속에서 각자 즐거움을 찾으며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아직도 기억이 선명한 고등학교 시절의 위기는 2학년이 되자 찾아왔다. 그럭저럭 고등학교 1년이 지나고 2학년이 되면서 똑같은 교과서로 정답 찾기만 강요하는 학교의 분위기를 견디기 어려웠던 까닭이다. 내가 닭장 속의 닭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차, 앞자리에 앉은 친구의 책상에 놓여 있는 두꺼운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그 책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었다. 그 친구와 책과 학교 이야기를 하며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친구는 나에게 똑같은 책으로 공부하며 똑같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일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다른 독서가 다른 생각을 만든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휩쓸고 간 이후 대학생의 문해력 문제가 언론을 통해 꾸준히 보도되고 있다. 주로 ‘심심한 사과’‘사흘’ 등과 같은 한자어를 알지 못하는 대학생의 어휘력에 대한 비판이다. 또한 스마트 폰에 익숙한 학생들이 책 한 권을 제대로 읽기 어려운 경우를 자주 목격하게 된다. 하지만 초등학교 시절부터 스마트 폰과 함께 살아온 대학생의 문해력 저하가 학생들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현재는 ‘챗 GPT’가 상징하는 AI의 시대가 아닌가! AI는 긴 문서의 요약 정리나 독후감 쓰기 등의 일을 해준다. 아직 정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지만 성능은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것이다. 문제는 AI가 대학 교육에 본격적으로 도입되며 긴 글을 읽고 요약하는 고전적인 교육 방법의 무용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AI를 사용하지 말자는 말이 아니라, AI를 적절히 쓰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은 무엇을 읽고 어떻게 다른 생각을 할지를 고민하는 과정이다. 다른 삶이 가능하다는 인식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삶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삶을 상상하고 일상으로 가져오는 과정을 쉽게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이를 훈련하기 위한 좋은 방법이 읽고 쓰는 행위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가령 ‘심심한 사과’의 뜻을 몰라도 당장 내 일상이 불편하지는 않지만, ‘심심(深深)’이란 어휘를 알면 그만큼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다. 다른 세상을 알고 나의 삶을 변화할지 아니면 익숙한 세계에 남아 있을 것인지,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AI가 만들 미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의 모습에 흥분과 걱정이 교차한다. 그렇지만 다른 삶은 테크놀로지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읽고 쓰는 즐거움을 이해하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2024-10-14

한강이 내게 보내준 선물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10일 밤에 멀리 스웨덴에서 들려온 소식은 한국문학의 의미를 단번에 바꾸어 버렸다. 한강의 수상 소식은 그 한 사람 작가의 영예가 아니었다. 그것이 한국문학 전체의 밝은 빛임을 누구나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다. 첫날, 다음날에 사람들은 오로지 기쁨뿐이었다고 생각된다. 이틀째 되는 날 ‘조선일보’1면은 “‘한강 신드롬’ 대한민국이 종일 웃었다”였다. 한강의 노벨문학상이 한국문학만의 기쁨이 아니었다는 인식을 아주 명징하게 표현한 것이었다. 언론사의 기자분들, 그리고 문학인들과 전화로, 문자로,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하룻새 달라진 한국문학의 색조를 실감할 수 있었다. 나부터 벌써 다음 날 있었던 ‘한국현대문학사’ 수업을, 한강의 ‘채식주의자’와 노벨문학상으로 ‘긴급 편성’을 해야 했다. 출생률 저하로 한국어 인구가 바싹 줄어들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에 짓눌려온 한국문학을 앞으로 계속해서 공부해도 좋다는 푸른 신호를 받아든 것 같았다. 어두운 복도에 형광등이 일제히 켜진 것 같은 느낌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반가운 소식을 받아들고, 그러나 동시에 나는 어떤 착잡한 심경에도 사로잡힌 것이었다. 기쁘지 않아서가 아니요, 너무나 기쁜 가운데 심중에 스며드는 한 가닥 세차지도 않은 쓸쓸한 바람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었을까? 과연 나의 문학은 어떻게 되고 있는 것일까?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결코 부러워 해서도, 시샘해서도 아닌, 부드러운 회색빛의 마음의 어스름은 나 자신이 걸어온 문학의 길을 찬찬히 한번 되돌아보라고 주문하고 있었다. 명함을 가진 사람의 ‘논평’이 필요한 라디오나 티비에서 나를 부르기도 했고, 즐거운 마음으로 의미 부여하기도 했다. 해남에서는 카프카와 관련해서도 한강 이야기를 했고, 불광동에서도 작가 이호철 선생의 행로를 말하며 다시 노벨문학상 이야기를 했다. 김유정문학촌의 발표를 앞두고도 한강의 ‘채식주의’는 김유정과 크로포트킨의 ‘사랑의 투쟁’과도 비교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한강 문학의 앞뒤 사정을 생각해 보고, 그것이 한국현대문학의 큰 나무의 소산일 수 있음을 명료하게 인식하면서도, 나는 계속해서, 나의 문학은?, 하고 자문하고 있었다. 문학인들은 한강으로 인해 자신의 길이, 선택이 나쁜 것은 아니었음을 다시 한번, 새삼스럽게 납득할 수 있었다. 나 자신이 바로 그러했다. 하지만 그러면서 나는 나 자신에게 계속해서 물었다. 잘은 보이지 않은 한 줄기 희미한 생각의 빛을 쫓아 시선을 먼 앞으로 던져 보고 있었다. 한강이 내게 준 선물은 바로 이 질문 그것에 있었다. 나는 짧은 며칠 사이에 지난 십 년 동안 생각해 본 것보다 더 많이 나 자신의 문학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내게 있어 시는 무엇이었나? 소설은 무엇이었나? 어떤 궁극의 질문을 가지고 있었나? 얼마나 좋은 일인가? 급한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서서 생각해 볼 수 있음은. 걸어온 길과 남은 길을 ‘측량’할 수 있음은. 사위가 고요하고도 기쁜 날들이다.

2024-10-14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인간적 태도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1964년. 스웨덴 한림원은 그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소설가인 장 폴 사르트르(1905∼1980)를 지목한다. 노벨문학상이 가지는 위상이 지금보다 높을 때였다. 수상이 개인은 물론 국가의 영광으로까지 여겨지던 시절. 헌데, 흥미로운 일이 발생한다. 사르트르가 스웨덴 한림원으로 편지를 보낸 것이다. 이런 내용이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나를 이해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조그만 섬에서 살아왔을 뿐이다. 그게 상을 받을 일은 아니며, 노벨문학상 수상 여부가 문학의 가치를 판정하는 것 또한 아니다.’ 60년 전 사르트르의 태도는 소설가와 시인을 포함한 전 세계 작가 모두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상을 받으려고 작품을 쓰는 소설가와 시인은 세상에 없다. 문학은 그 자체로 이미 하나의 우주이고, 숭고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므로. 만약 상에 욕심내는 작가가 있다면 그는 재론의 여지없는 삼류인간일 터. “노벨문학상 수상 여부가 문학의 가치를 판정하는 건 아니다”라는 언술은 수학 문제처럼 명료한 답이 없는 문학에 몸을 던진 이들의 현재를 위로하고, 미래를 추동한다. 사실 소설은 노벨문학상이 생기기 전부터 있었고, 노벨문학상이 사라진다 해도 존재할 것이 자명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작가에게 중요한 건 ‘상’이 아니라 지향해온 문학이다.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한강은 “전쟁으로 인해 사람들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수상 축하잔치를 벌이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한강은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된 이들을 문학적으로 위무하며 주목받은 작가다. 그가 보여주는 ‘인간적 태도’가 노벨문학상 수상보다 더 귀해 보인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10-14

TK 행정통합, 정부 중재로 급물살 탄다

대구경북(TK) 행정통합 논의가 정부(행정안전부, 지방시대위원회) 중재로 다시 불씨를 살렸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주(11일) 열린 시의회 본회의에서 “정부 중재안이 오늘 나왔다. 잘 되면 다음 주 중 조정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일부 언론보도에 의하면 홍 시장은 이미 중재안에 대한 수용 의사를 정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중재안과 관련, 이철우 경북도지사도 이날 “새로운 조정 중재안을 매우 의미 깊게 생각한다”고 밝혀, 향후 행정통합 논의가 급물살을 타게 됐다. 이 지사는 지난달 시·도 행정통합 논의가 교착상태에 빠지자 대통령실과 행안부, 지방시대위원회 등에 적극적인 중재를 요청했었다. 홍 시장은 시의회에서 “경북에서 요구하는 시·군 권한 보장이 중재안에 포함될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시의원들의 질의에 즉답을 피하면서 “협상 전략을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여지를 남겼다. 행정통합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에 대해서는 “대의 기관인 의회가 동의하면 끝나는 것”이라며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정부가 제시한 중재안이 공개되진 않았지만, 통합을 둘러싼 핵심 쟁점들이 대부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특별법 합의안 마련의 걸림돌이 돼 온 통합지자체 법적 지위와 시·군 권한, 청사소재지 문제 등에 대한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이 처음으로 밝혀진 것이다. 통합지자체 법적 지위와 관련해서는 홍 시장이 요구해온 대로 중재안에 ‘서울특별시에 준하는 위상으로 한다’고 명시된 것으로 전해졌다. 홍 시장은 그동안 “대구경북은 그대로 두면 소멸되지만, 광역개발 권한과 균형발전 권한을 갖는 특별시가 되면 달라진다”고 말해왔다. 예를 들어 소멸위기에 처한 경북 북부지역도 통합단체장이 직접 개발을 주도할 경우 상황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정부의 중재안 제시로 행정통합 논의가 재개된 것은 무엇보다 다행이다. 앞으로 정부가 행정통합을 적극 지원하기로 한 만큼, 대구시와 경북도도 쟁점에 대한 활발한 협의를 통해 행정통합에 속도를 내기를 기대한다.

2024-10-14

포항 타보소 택시, 시민 호응해야 성공한다

공공앱은 민간 플랫폼 기업의 과도한 시장 점유로 인한 수수료 횡포 등에 맞서기 위해 출발한 공공형 모바일 서비스다. 식당 점주와 직접 연계된 민간 플랫폼 기업인 배달의 민족은 최근 지나친 수수료 문제로 비판대에 오른 대표적 사례다. 정부도 최근 민간 플랫폼 기업의 과도한 수수료 문제가 말썽이 되자 공공앱 육성 등을 통해 시장에 적극 개입할 뜻을 밝힌 바 있다. 택시업계도 민간 플랫폼인 카카오 택시가 독점적 지위를 누리면서 과도한 수수료 문제가 논란을 빚은 지 오래됐다. 이에 따라 전국 많은 지역에서 지자체가 나서 공공앱 택시를 출시하며 이용자와 택시기사의 권익보호에 나서고 있다. 대구시가 출시한 대구로 택시는 시민의 호응 속에 최근에는 대리운전 서비스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포항시가 모바일 앱으로 택시를 호출할 수 있는 타보소 택시를 지난달 출시했다. 그러나 출시한 달이 지났음에도 이용시민과 택시기사가 불편을 호소하는 일이 잦다고 한다. 본사 취재팀에 의하면 경쟁앱인 카카오 택시는 5분 이내에 호출이 잡히는데 반해 타보소 택시는 10분을 기다려도 배차를 받을 수 없고, 예상 도착시간 보다 실제로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려 도착하는 사례도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서비스의 문제점은 타보소 택시 이용 현황에서 더 잘 드러난다. 지난 3일 기준으로 총 호출건수 약 240건 가운데 주행 완료된 건수는 약 130건에 그쳤다. 나머지는 호출이 취소되거나 호출 오류 등이 원인이라고 한다. 전국에서 각종 공공앱이 지역민을 위한 목적으로 출시됐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성공률이 높지 않은 게 사실이다. 공공앱의 홍보가 부족한 것도 원인이겠지만 공공앱 서비스가 주민에게 만족감을 제대로 주지못한 데 이유가 있다. 이제 막 시작한 포항 타보소 택시가 시민의 호응을 얻으려면 서비스 질적 향상을 위한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이용자와 택시기사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가고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되는 공공앱 서비스에 시민이 외면한다면 공공앱 서비스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2024-10-14

축제의 성공은 인원수가 아닌 진정성

심한식 경북부 지난 10일부터 12일까지 청도야외공연장 일원에서 개최된 2024 청도반시축제 청도 세계 코미디 아트 페스티벌이 지방 축제가 나갈 방향의 길잡이 역할을 했다. 모든 지역에서 축제의 성공을 방문객의 수로 판단하고 있지만, 축제의 진정한 성공은 준비과정과 현장의 분위기, 지역의 참여도 등이 고려되어야 한다고 본다. 축제 참가 방문객의 수는 누구도 정확하게 알 수 없고 대부분 부풀린 숫자가 발표되는 관례를 생각하면 숫자보다는 축제를 맞이하는 진정성을 우선하는 것이 타당성이 있을 것이다. 많은 축제에서 대부분 방문객이 자치단체장이 참석하는 개막식과 가수들이 출연하는 음악회에 집중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진정한 축제의 성공은 지속으로 사람들로 붐벼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축제의 특색을 살리며 지루하지 않게 이어지는 프로그램들이 꼭 필요하다. 청도반시축제와 청도 세계 코미디 아트 페스티벌은 다양하게, 끊임없이 연결된 프로그램으로 시간을 따지지 않고 방문객으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여기에다 준비과정과 지역의 참여도, 방문객을 위한 배려 등 모든 면에서 지방 축제가 모범으로 삼아야 할 사례들이 넘쳤다. 방문객들이 손에 잡을 수 있는 리후렛은 축제를 자세하게 안내하고 곳곳에 안내도를 설치해 방문객의 동선을 분리하는 등 세심한 배려가 다가왔다. 물론 제11회 경상북도 평생학습 박람회가 함께 진행돼 더 많은 방문객이 찾았다 해도 축제장의 곳곳에는 가족 단위의 방문객이 즐기고 입을 만족하게 할 먹거리가 넘치며 어린아이들의 웃음소리로 축제의 성공을 알려주었다. 많은 축제장이 어른 위주의 즐길 거리와 음악회 중심, 특히 축제의 주제를 벗어나는 프로그램으로 시간을 보내는 경우와 비교해 확실한 차별성을 보였다. 청도군은 군민운동장을 주차장으로 변모시키고 주변의 곳곳을 주차장으로 활용해 축제를 찾는 방문객을 배려하고 지역의 많은 기관이 봉사자로 나서 손님들을 맞았다. 특히 민의의 대의기관이라는 청도군의회도 축제장에 자리를 마련해 적극적으로 동참하며 지역민의 목소리를 경청하기도 하는 등 협동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였다. 지역의 축제에는 많은 예산이 투입된다. 그러함에도 지역민이 즐기지 못하고 때가 돼 개최하는 행사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청도반시축제와 같이 축제의 주제를 잘 살리며 지역민과 외지의 방문객에게 다가서는 축제를 주변에서 자주 보기를 기대한다. /shs1127@kbmaeil.com

2024-10-14

‘애비’ 말은 안 듣고, ‘내비’ 말만 듣는 시대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추석날 가족 나들이 나서면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던진 말이다. 점심 무렵 “다양하고 맛있는 뷔페는, 아이리스 뷔페”에서 베란다 ‘섀시’가 ‘샷시’로 ‘바이닐봉투’가 ‘비닐봉투’로 ‘프로페인가스’가 ‘프로판가스’로 ‘뷰테인가스’가 ‘부탄가스’로 표기된다. 뭐가 맞는지 도무지 헷갈린다. 생활 속에 침범해 들어온 외국어들이 넘쳐난다. 외국어, 외래어의 남용, 신조어와 축약어의 범람, 두문자만 이어 쓰는 등 올바른 소통의 장애는 셀 수 없이 많다. 우리말이 있는데도 외국어음차표기나 외래어를 사용하는 분위기는 이미 우리사회에 만연되어 있다. “파티, 톱, 라이프, 라인, 바캉스, 스팀, 레스토랑, 블라우스”는 일상화된 사례다. 우리말과 외국어음차표기가 마구 뒤섞인 “게임광, 깜짝쇼, 디지털화, 치킨집, 레게 음악, 휴대폰, 광케이블, 비피더스 유산균, 빵나라”도 있다. 외래어처럼 표기한 “예그리나, 타미나, 더존 전자 믹스, 조아 약국, 비치나, 유니나, 푸르미, 예스런, 맛나니, 새우깡, 조아라, 푸르지오” 등은 국적 불명의 언어로 변질된 예이다. 전문용어로 사용되는 경제, 패션, 컴퓨터, 공학, 과학 계열의 언어들은 일반 국민이 충분히 소통될 수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 한자어처럼 계급과 지식의 범주에 따른 언어 차등화가 심각한 수준이다. 필자가 방언을 강조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 모국어의 조어능력을 확장시켜 새로운 문물을 우리말로 잘 다듬어내어 소통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는 방언들을 조금 더 미화시킨 문학용어로서 장려하기 위한 것이었다. 언어의 다양성을 위한 전략이었다. 나의 방언에 대한 인식은 방언을 단순히 표준어화하자는 것이 아니다. 방언과 표준어의 경계를 다소 느슨하게 하여 순수한 모국어의 운용의 폭을 넓혀줌으로서 고유어 조어능력을 키워내자는 의도이다. 표준어 한가지로만 소통하라면서 강제하던 국가어문정책이 쏟아져 나온 외국어, 외래어, 약어, 두문자 쓰기 등 공공언어의 소통 체계가 몰락하는 지경은 왜 방관하고 있는가? 경북 성주 출신의 고 문인수 시인의 “옛집은 사투리다”라는 시를 보자. “엉퍼드기 엉퍼드키 울어뿔고 싶다./웅굴을 뻐져나온 동캉맨치로 그래/아부지예, 어무이예, 부르미/배껕마당부터 우신에 모지리 적수고 싶다//우묵하이 짓은 풀대 풀 떼 새로 똥근 것들, 장꼬방이 비고/통시 여불데기 담우락엔 헌 수굼포 한 잘리 서 있다.//먼 산 산날망에 먹구름 걸려서/올라카나 말라카나 우쨀라카노 비,/매불대 씹은 매분 가심 묽쿠고 싶다.” 시인은 방언을 오래된 집, 곧 오래된 사유와 지식으로 지어진 집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비를 기다리는 농민의 심정으로 오래 묵은 방언으로 지은 한 채의 존재의 집이다. ‘엉퍼드기(웅덩이 물을 푸듯)’, ‘모지리(모조리)’, ‘수굼포(삽)’, ‘산날망(산꼭대기)’, ‘매불 때(여뀟대)’, ‘매분(매운)’ 등 경상도 방언을 하나하나 예술적 심성으로 담아내고 있다. 그러한 국어정책의 일환으로 국립국어원에서 한국시인협회에 지원하여 토박이말 시집 “니 언제 시건들래?”라는 시집이 만들어졌다. 이 시집에 실린 안동 출신 송종규 시인의 ‘고등어’라는 작품에 보석처럼 박혀 있는 방언들을 살펴보자. “다무 한 번의 태무심에 허를 찔렸니더 다무 한 번의 신뢰가 결국 지 모가지 줄을 잡아 땡겼니더 뭐 별꺼 있니껴? 이녁의 손가락 끄티에서 맛있는 밥풀떼기와 향기로운 불빛이 번들거리던 그맘때, 하마 게임은 끝났니더, 지는 젔니데이,//오늘 내 삶의 소용돌이와 먼 길의 고저장단 전부를/식탁 위에 올려놓는다 솟구치는,/흰 글씨들/어디론가 나도 솟구쳤다//내가 나를 기록할 수 없는 순간이 첫눈처럼, 닥쳐왔다/저녁의 불빛이 등을 구불이고 태연하게/입을 닦는다”. 그냥 슬쩍 읽고 넘어갈 작품이 아니다. 시골 안동 가람의 진한 말투는 깊은 심해에 유유히 헤엄치는 싱싱한 한 마리의 고등어, 그 고등어는 과거 안동의 처녀 송종규였다. 이녁(당신, 안동방언에서 2인칭 대명사)이 놓은 불빛 낚시에 코가 매였을 때 이미 잔치는 끝이 났다. 게임은 끝난 것이다. 현실의 밥상을 차리고 그 차린 밥상은 내 삶의 소용돌이와 고저장단으로 차린 흰 글씨들 고등어가 낚시에 낚여 올라갔듯이 “어디론가 나도 솟구쳤다”. 이 무렵 시인 송종규의 삶은 내가 나를 기록할 수 없는 순간의 첫눈처럼 은빛 반짝이는 생선 고등어였을 뿐이다. 고등어를 소재로 열여덟 살 안동 소녀의 꿈과 무너진 스토리는 문인수 시인의 “옛집은 사투리다”와 다를 바 없는 오래된 추억을 자아올리고 있다. 방언은 변두리의 무력한 언어가 아니라 이토록 가열찬 언어의 찬가이다.

2024-10-14

당신이 나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 전에

지난 번에는 관동대진재에 대해 이야기했는데요. 며칠 전 학교 구내서점에서 시선을 사로잡는 특이한 제목의 책을 발견했습니다. 이용덕(李龍德)이 쓴 ‘당신이 나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 전에’(あなたが私を竹槍で突き殺す前に, 河出書房新社, 2020)라는 장편소설이 바로 그 주인공인데요. 근대에 들어 죽창으로 사람을 찔러 죽이는 일은 매우 드문 일입니다. 일본의 경우에는 관동대진재 당시 죽창으로 많은 사람을 찔러 죽인 것으로 유명하죠. 당시 유언비어에 들려 있던 자경단원들은 칼, 창, 곤봉, 도끼, 심지어는 피스톨까지 동원해 조선인을 학살했습니다. 이때 가장 많이 사용한 무기 중의 하나가 바로 죽창이었던 겁니다. 실제로 재일 한인 3세인 이용덕은 다른 글에서 ‘당신이 나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 전에’라는 제목이 1923년 관동대진재 당시 이웃에서 함께 생활하던 재일 조선인을 학살한 역사적 사실에 바탕한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더군요. 관동대진재가 재일 한인의 비극적 과거를 보여준다면, 이 작품은 재일 한인의 비극적 미래를 보여줍니다. ‘당신이 나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 전에’는 배외주의자들이 꿈꾸던 재일 한인에 대한 차별이 완전하게 실현된 가상의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디스토피아를 살아나가는 다양한 재일 한인들의 분투기가 이 작품의 기본 서사라 할 수 있는데요. 거대한 반격을 준비하는 가시와기 다이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한국으로 가는 박이화(야마다 리카), 냉소적인 자세로 일관하는 양선명(스기야마 노리아키), 한국행 페리에서 몸을 던지는 마수미, 완력으로 차별에 맞짱을 뜨는 다우치 마코토(윤신), 배외주의자들에게 강간당하고 살해당한 김마야, 동생의 죽음으로부터 새로운 각성에 이르는 김태수(기무라 야스모리) 등이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400페이지에 이르는 이 소설에는 으스러진 뼈와 온몸을 철철 흐르는 피, 그리고 그보다도 훨씬 무서운 증오와 모멸의 헤이트 스피치가 빼곡한데요. 그러나 저에게 가장 끔찍하게 다가온 차별과 폭력은 마수미의 아버지가 체험한 것입니다. 마수미의 아버지는 우수한 엔지니어로 일본에 스카우트된 한국인이지만, 끝내 일본에서 견디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혹시 차별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과 공포가 지긋지긋했기 때문인데요. 그가 느낀 의심과 공포는 지극히 사소한, 그렇기에 일상에 편재한 것이었습니다. ‘병원 대기실에서 나보다 뒤에 온 사람이 먼저 진료실에 들어간 것은 혹시 차별 때문은 아닐까?’, ‘구청 직원의 냉정한 태도는 일본인에게도 똑같은 것일까?’, ‘한국식 이름을 밝힌 후 콜센터 직원의 태도가 변했다고 느끼는 것은 나의 착각일까?’, ‘재일 한인끼리 간 식당의 음식은 과연 깨끗할까?’와 같은 의심과 불안은 너무나도 일상적이고 사소한 것이기에, 떨쳐낼 수 없는 끈적함과 생생함을 동반하여 더욱 공포스럽게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일상의 모든 것을 의식하고 살아야 하는 이 상황이야말로, 그 어떤 폭력적인 장면보다도 저에게는 더욱 아찔하게 느껴지더군요. 작품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다이치도 “제노사이드나 강제수용소의 반복만이 디스토피아가 아니야. 디스토피아는 지금이지”라며, “독가스 대신 단지 증오를 발산해서 공기를 더럽히고, 마이너리티를 숨막히게 하는 이 방법이야말로 새로운 학살법이야”라고 강변하기도 합니다. 이용덕의 ‘당신이 나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 전에’ 표지. 과거라는 점과 미래라는 점을 연결하여 선을 그을 때, 그 중간쯤에 위치한 것이 현재라고 한다면, 관동대진재와 ‘당신이 나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 전에’가 그려 보인 디스토피아의 중간쯤에 놓인 것이 아마도 재일 한인이 처한 현재의 상황일 겁니다. 그렇다면 그 현재는 결코 행복하다고만은 할 수 없을 텐데요. 이용덕은 몇몇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 소설의 진정한 작가는 “시대(時代)”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가 말한 ‘시대’란 도쿄 신오쿠보 등에서 헤이트 스피치가 울려 퍼지던 2010년대 초반을 말합니다. 이러한 극우단체의 데모도 2016년 시행된 ‘헤이트 스피치 금지법’과 인종차별에 맞선 카운터 데모에 의해 현재는 극적으로 줄어든 상황입니다. 그러나 사이버 공간 등에서는 재일 한인을 향한 차별적 발언이 유통되고 있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죠. 작품은 뜻밖의 상황으로 끝나며,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줍니다. 다이치의 계획대로 양선명, 김태수, 윤신 등이 목숨을 잃은 후에, 그 죽음과는 무관하게 갑자기 한일 해빙 무드가 연출되며 재일 한인에 대한 차별이 사라지는 겁니다. 그것은 한일 공동의 적이 탄생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데요. 서아프리카에 파견된 자위대가 습격을 받는 일이 발생하고, 이때 한국군이 자위대를 원조합니다. 이를 계기로 한일정상회담이 열리고, 대표적인 코리아타운인 오사카의 츠루하시에는 일본인 관광객들이 넘쳐나고 교류 이벤트가 성황을 이룰 정도로 화기애애한 상황이 펼쳐지는군요. 이제 헤이트 스피치는 재일 한인이 아닌 이슬람교도들을 향하게 됩니다. 거리에서는 이슬람교도에 대한 배외주의 운동이 펼쳐지고, 그 군중 속에는 태극기를 들고 있는 자와 일장기를 들고 있는 자가 공존합니다. 심지어는 한국인과 일본인이 어깨동무를 하기도 하는군요. 한국인과 일본인이 어깨동무를 하기 위해서 필요했던 것은, 바로 제 3의 적이었던 겁니다. 어쩌면 이용덕이 ‘당신이 죽창으로 나를 찔러 죽이기 전에’를 통해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늘 적을 필요로 하는 인간의 슬픈 본성에 대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사진=이경재(숭실대 교수)

2024-10-14

기후위기로부터 우리를 지켜낼 노래들

의미 있는 앨범 하나를 내게 되었다.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는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세 곡의 노래가 담겨있는 디지털 EP 앨범 ‘기후 레시피’다. 기후위기와 관련된 세 곡이 수록된 이 앨범은 오는 10월 15일 정오에 모든 음원사이트에서 만나볼 수 있다. 기후위기라는 문제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작년, 한 예술 사업을 만나면서부터이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은 ‘예술로’라는 이름의 예술인 파견 사업을 꾸려나가고 있는데, 이는 사업에 지원한 각종 기관과 예술인들을 매칭하여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활동을 하도록 지원하는 내용의 사업이다. 나는 작년부터 이 사업에 참여하게 되었고 여러 예술인들과 더불어 서울에 있는 마을 카페인 ‘즐거운 반딧불이’와 매칭이 되었다. 즐거운 반딧불이가 예술인들과 함께 해 나가려고 했던 일은 기후위기에 예술활동으로 한 번 맞서보고자 하는 것이었다. 나를 비롯한 참여 예술인들은 자주 모여 이 문제들에 대하여 공부를 하고 세미나를 갖기도 하며 우리가 직면한 상황의 심각성에 대해 배울 수 있었고, 우리가 가진 능력을 활용해 어떠한 방식으로 대응해 나가면 좋을지에 대해 함께 고민하기도 하였다. 우리가 내어 놓은 결과물은 몇 가지가 있었지만 내가 중심을 잡고 이끌었던 것은 일명 ‘기후송’이라 부르기로 한 캠페인 송을 제작하고 이를 디지털 싱글로 발매하는 프로젝트였다. 작년 10월에 발매된 ‘땅으로부터’가 그렇게 만들어진 노래이다. 당장 그 파급력이 발현되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수 있는 뜻 깊은 노래를 만들어 배포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팀원들과 기관, 재단 관계자들까지 모두 공감해주었다. 대중들에게 널리 보다 즉각적인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하는 숙제를 남긴 채 첫 해의 사업은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2년차, 즐거운 반딧불이와의 논의 끝에 기후송 제작에 조금 더 무게를 싣는 방향으로 사업을 진행하기로 결정했고 이에 따라 여섯 명의 예술인으로 이루어진 현재의 모습으로 예술인 집단을 재구성했다. 리더인 싱어송라이터 강헌구 님을 필두로 나(싱어송라이터 강백수)와 싱어송라이터 이매진 님이 각각 한 곡 씩을 만들어 세 곡으로 이루어진 앨범을 제작하기로 결정했다. 싱어송라이터 각자가 하나씩 기후 캠페인을 진행하여 이를 통해 곡의 내용을 확보하기로 하였다. 이 캠페인 전체를 지원하고 활동 전반의 컨트롤 타워 역할은 베테랑 연극인 권기대 님이 맡게 되었고, 영상예술인인 정훈 님과 최휘찬 님이 이 모든 과정을 기록하여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게 되었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첫 번째 곡인 ‘나의 작은 기후 선언’은 내가 만들고 부른 곡이다. 즐거운 반딧불이를 찾아주신 손님에게 기후위기를 막아내기 위해 직접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일들 한 가지씩을 적어달라고 부탁드렸다. 수십 분의 손님들이 사소하지만 중요한 실천거리들을 적어주셨고 이를 바탕으로 노랫말을 완성했다. 나는 이 노래를 통해 많은 이들이 자신이 행할 수 있는 작은 실천에 대해 고민해보길 바란다. 작고 사소한 걸음일지언정 모두가 함께 내딛는다면 그것은 그 어떤 도약보다 위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곡은 강헌구 님의 ‘기후 레시피’. 강헌구 님이 즐거운 반딧불이에서 운영하는 ‘탄생화(탄소 중립 생활화)’ 모임과 함께 친환경 세제 만들기 활동에 참여하며 만들게 된 노래다. 지구를 해치지 않고 청결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친환경 세제 레시피를 아주 깜찍하고 발랄한 멜로디에 담아 누구라도 한 번 쯤 만들어보고 싶게 만드는 중독성 있는 노래다. 세 번째 곡은 타이틀곡으로, 이매진 님의 ‘나는 나무잖아’. 이매진 님은 이번 활동 기간 중에 가로수의 생태에 관심을 갖자는 취지의 ‘트리허그’ 캠페인을 진행하였다. 수많은 시민들이 가로수를 힘껏 끌어안으며 감사와 애정의 마음을 일깨우게 된 의미 있는 행사였다. 이매진 님은 노래 속에서 직접 한 그루의 가로수가 되어 도시의 한켠을 지켜내는 외롭고도 고단한 마음을 서정적으로 노래했다. 우리는 이 노래들이 반드시 히트곡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누군가의 귀에 닿고 마음에 닿아 그들의 삶의 궤적을 미세하게나마 이 행성의 생태계를 지켜내는 방향으로 틀어볼 수 있다면 대성공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당장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고 비건채식주의자가 될 수는 없다. 다만 노래 몇 곡 들어보며 나와 이 아름다운 행성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을 잠시 가져볼 수는 있으리라 생각한다.

2024-10-14

은밀하게 선 넘기

사람들 안의 선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언스플래쉬 아, 정말 어렵네. 요즘 책상 앞에 앉아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이나 손끝에서 나오는 문장이 모조리 틀린 것만 같다. 이것은 글쓰기가 제대로 풀리고 있지 않다는 투정만은 아니다. 내 안의 무언가가 조금씩 변하고 있는데 내가 가진 언어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숙련되지 못한 까닭이다. 답답하다. 그러다 보니 자꾸만 편한 방식으로 문장을 쓰게 된다. 좋지 않다. 같은 자리를 계속해서 돌고 있는 기분이다. 이런 고민에 빠진 것이 나뿐만은 아닌 것 같다. 친구들을 만나면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삼십 대가 되고 비로소 안정을 찾았다는 안도감은 허상이었던 걸까. 애인과 만난 지 육 년이 넘어가는데 결혼으로 나아가기엔 용기가 없다는 친구부터 십 년 넘게 다닌 직장을 그만두고 싶지만 먹고 사는 일이 걱정된다는 친구까지.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을 느끼지만, 단 한 발을 내딛고 있지 못하다는 자각이 든다는 것이다. 어려운 일이지. 그들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친다. 내 이야기도 얹고 싶으나 그럴 수 없다. 그들에 비해 내 고민의 규모는 민망스러울 정도로 작기 때문이다. 비슷한 하루의 연속이다. 일을 하고 글을 쓴다.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을 반복하고 마감일을 지켜야 한다. 다이어리에 빼곡하게 차 있는 일정에 하나씩 줄을 그으며 하루를 살아내는 중이다. 책임의 무게가 착실히 늘어나고 있다. 분명 나는 한 뼘 더 자랐다. 사회가 말하는 사회적 인간에 조금 더 가까워졌다. 이십 대에는 거침없이 국경을 넘어 다녔다. 커다란 배낭 하나 메고서. 단지 한 발 더 갔을 뿐인데 사용하는 언어가 바뀌고 풍경이 새로워졌다. 무엇 때문일까. 보이지 않는 선이 세계를 구분하고 있다. 선. 그것은 항상 내 눈앞에 놓여 있었다. 지금도 나는 어떤 선 안에 놓여 있는 것 같다. 사실 이것은 내가 최선을 다해 그어놓은 것이다. 망망한 백지만큼 막연한 건 또 없으니까. 최대한 반듯하게, 예쁘게. 그리하여 이 안의 내가 안온함을 느낄 수 있도록. 이것을 만들기 위해 나는 아주 많은 공을 들였다. 선을 넘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 요즘의 나는 그런 것이 궁금하다. 내가 열심히 만들어 놓은 것을 자꾸만 밟고, 지우고, 넘고 싶어지는 것이다. 맘껏 엉망으로 만들어놓고 시치미 떼고 싶다. 금기된 영역으로 나아가는, 사회의 선을 거침없이 밟는 사람을 보면 해방감을 느낀다. 나 역시 그러려고 해봐도 도무지 되질 않는다. 강한 힘이 나를 자꾸만 주저앉힌다. 이상한 일이다. 나를 보호한다고 믿었던 견고함이 내 목을 옥죄고 있다는 기분으로 바뀌다니. 과감하게 선을 넘는 것이 어렵다면, 은밀하게 스리슬쩍 넘어볼까 싶었다. 처음에는 아주 사소한 것으로 시작했다. 평소라면 먹지 않았을 음식 먹기. 혹은 만나지 않을 사람들을 만나기. 나는 점점 더 과감해졌다. 속에 꾹꾹 누르며 하지 않았을 말을 해보기도 했다. 분위기를 깨지 않기 위해 억지로 미소 짓는 것도 관둔다. 상대의 말에 습관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도 멈춰 본다. 이것은 나 혼자만이 느끼는 아주 미세한 변화. 물론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이것은 글을 쓸 때도 적용할 수 있다. 너무 무거워서 평소엔 쓰지 않을 것 같은 단어를 사용해 본다. 문장 사이사이에 조금씩 장난을 쳐 본다. 꼭 필요하다고 믿었던 것을 완전히 삭제해 보기도 한다. 더하고 덜어내고 어쩐지 이상해 보이는 것들을 그대로 둔다. 언어라는 건 참 이상해서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멀어지는 것만 같다. 안으로 가두려고 할수록 손에서 벗어난다. 그러니 놓아본다. 마음껏 선을 넘도록. 세상에, 이런 것이 재미있다니. 어린 시절 운동장에서 땅따먹기하던 것이 떠오른다. 너 선 밟았어, 나가! 그 외침이 정말이지 싫었다. 맥이 풀려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노라면 저 멀리서 즐거워하는 친구들이 보였다. 나도 저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여전히 나는 그런 것을 바라는 것일까. 선 밖은 외롭다. 그러나 자유롭다.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알고 있다. 내 안의 선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걸. 이 또한 삶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든 수정될 수 있다. 언제고 넘나들 수 있어야 한다. 좀 더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선을 조금씩 옮겨 긋다 보면 내가 예상하지 못한 모양이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어떤 것일까. 이런 기대를 가지고 오늘도 책상 앞에 앉는다.

2024-10-14

김건희, 윤석열, 혹은 보수정권

김진국 고문 하지도 않은 일을 사과하라고 하면 복장이 터질 법도 하다. 논란이 되고 있는 명태균 씨 문제에 대한 대통령실 언급을 들어 보면 억울하다는 심정이 진하게 묻어난다. 명 씨가 김영선 전 의원 공천을 위해 뛰었다는 것 이외에 아직 확인된 사실은 없다. 명 씨가 김 전 의원 공천을 위해 뛴 것은 그 자체로 잘못은 아니다. 그런데 대통령실은 왜 점점 더 꼬이게 만드는 걸까. 명 씨를 잘 모르는 필자로서는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 말이 그럴듯하게 들린다. 이 의원은 명 씨가 “기본적으로 시나리오를 잘 짜는 사람”이고, “아이디어가 많다”라고 한다. 또 “자기가 능동적으로 움직여 일을 한 다음 성과를 주장하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이 의원은 “정치하는 사람 입장에서 이런저런 가능성이나 아이디어를 만드는 사람들은 나쁘지 않은 대화 상대”라고 말했다. 명 씨가 많은 정치인들을 만난 이유가 설명되는 부분이다. 더구나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는 정치를 해본 적이 없다. 윤 대통령은 학생 시절 이후 검사로서 수사밖에 해보지 못했다. 김 여사는 미술 기획 일을 해 인맥이 넓다고 하지만 정치인들을 만난 건 아니다. 명 씨의 조언이 얼마나 적절했는지 모르지만, 이준석 의원이 저렇게 평가할 정도로 솔깃한 이야기였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 윤 대통령이 정치를 시작하는 건 쉬운 결단이 아니었다. 정치인들에게는 다 자기 잇속을 챙기는 계산이 있다. 자신의 운명을 그런 사람에게 완전히 맡길 수 없는 형편이었다. 이럴 때 알려지지 않은, 감추어진 비밀 무기로 명 씨가 적임자였을 수 있다. 이준석 의원은 “윤 대통령 당선을 위해 이리저리 뛰었던 명 씨를 졸(卒)로 쓰고 버리려고 하니까 이런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도 좋게 생각하면 잘한 일이라고 칭찬받을 수도 있는 대목이다. 선거 때 도와줬다고 자리를 챙겨주고, 공천 지분을 나눠주면 나라 꼴이 어떻게 되겠나. 필요한 사람과 국정을 운영할 때 필요한 사람은 다르다. 그런데 선거 공신들이 전리품 잔치를 벌인다느니, 낙하산 공천을 한다느니 하는 비판이 나온다. 그러니 칭찬만 받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쉽게 넘어갈 일이 커지는 것은 정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혹은 영부인이, ‘저런 허접해 보이는 사람’의 훈수를 들었다는 게 창피한 건가. 왜 금방 드러날 거짓말을 해 의심을 사는지 모르겠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2021년 정치에 입문하는 과정에서 명 씨가 국민의힘 고위 당직자, 정치인과 자택을 찾아와 두 번 만난 게 전부라고 해명했다. 그런데 하루도 지나지 않아 사실이 아니라는 게 확인됐다. 하지 않으니만 못한 해명이 됐다. 의혹은 의혹을 불러 눈덩이처럼 커졌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명 씨와 김 여사가 문자를 주고받은 건 사실이다. 김영선 전 의원 공천 얘기를 나눈 것도 확인됐다. 대통령실 해명이 하루도 안 지나 논박당하니 이런 망신이 없다. 사실은 인정했어야 한다. 잘못이 있으면 사과하면 된다. 감추고, 도망치면,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하게 된다. 주변에서 사과를 말리는 사람들이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때도 그랬다. 그들은 박 전 대통령이 “사과해서 망했다”고 주장한다. 정말 사과하지 않았으면 온전했을까. 문제는 사과가 때를 놓쳤고, 번번이 기대에 못미치는 뒷북이었기 때문이다. 해명이 하루 만에 뒤집히는 대통령의 권위를 누가 지키나. 외과 의사가 수술할 때는 암세포보다 더 넓게 잘라내야 한다. 생살이 아깝다고 환부에 바투 자르면 전이를 막지 못한다. 종국에는 환자를 죽이는 길이다. 그런 건의를 하는 사람은 환자를 보호하는 게 아니라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아첨꾼이다. 윤 대통령은 ‘사랑꾼’으로 소문나 있다. 김 여사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 못하게 한다고 한다. 그러나 입을 다문다고 해결될 단계는 지났다. 민심이 점점 더 흉흉하다. 서투른 해명으로 덧나게 할 이유가 뭔가. 김 여사에서 끝낼 건가, 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상처를 입을 건가. 그도 아니면 정권을 내주더라도, 김 여사만은 털끝 하나 못 건드리게 기필코 지킬 건가. 결국은 게도 구럭도 다 잃겠지만.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10-13

쓰기의 기술, 삶의 기술

유영희 작가 시를 전공한 선생님에게서 글쓰기를 배운 지 한 달이 되어간다. 시 쓰기를 배우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시를 많이 접하게 되는데, 그동안 몰랐던 시적 표현의 압축미와 비유에 새 세상이 열리는 것 같다. 아무래도 철학이 전공이다 보니, 논리를 강조하는 글을 써왔고 글쓰기 강의에서도 주로 대상에 대한 객관적 관찰과 묘사로 정확한 의미 전달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시적 표현과는 거리가 멀었다. 예를 들면, “엄마는 햇빛을 가리기 위해 머리에 수건을 쓰고 세탁대에서 빨래를 했다. 허리에 앞치마를 두르고 오랫동안 손을 물에 담가 비누 거품을 많이 낸 다음 옷의 물기를 짜 줄에 널었다. 그러고는 집게로 고정했다. 무슨 옷이나 그렇게 차례대로 빨았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파울랴베르 박사댁의 빨래를 맡아 했던 것이다.” 같은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는 글쓰기를 강조했다. 반면, “글이 어려운 만큼 글을 사랑하게 된다. 춤이 힘든 만큼 춤을 사랑하게 된다. 피아노가 두려운 만큼 피아노를 사랑하게 된다. 나는 피아노를 사랑하기 때문에 피아노가 두려운 것이다.”와 같은 글을 모범으로 삼기는 어려웠다. 이렇게 감성을 표현하는 글쓰기를 부정적으로 본 이유는 이런 방식이 개인을 닫힌 존재로 남게 하고 의사소통에도 방해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어교육 전공자들 사이에서도 이 의사소통을 위한 글쓰기와 표현주의적 글쓰기를 두고 논란이 있다. 그러나 시적인 표현의 글쓰기가 의사소통에 효과적인 경우도 많다. 이수명 시인이 쓴 산문집 머리에 이런 말이 있다. “글이 움직이다가 형체를 이루거나 시처럼 이미지가 형성되려고 하면, 돌아나와 느슨한 호흡을 유지하고자 했다.…. 그래서인지 시간이 지나면서 이 글쓰기가 좀 다른 느낌을 주었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은 맞는데, 몇 마디의 언어, 몇 줄의 글에 내가, 하루가 의탁한다는 것이다.” 이런 글을 보면, 작가와 깊게 맞닿는 느낌이 든다. 지난 10일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한국의 작가 한강이 선정되었다는 소식이 한국을 흔들었다. 스웨덴 한림원은 한강을 “시적이고 실험적인 스타일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되었다”고 평했다. 그러자 바로 한강 작품에 실린 시적 표현들이 기사로 올라왔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소년이 온다’)나 “길었던 하루가 끝나면 침묵할 시간이 필요하다. 난롯불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하듯, 침묵의 미미한 온기를 향해 굳은 손을 뻗어 펼칠 시간이.”(‘흰’) 같은 문장이 보인다. 이런 표현은 곱씹어야 하기 때문에 읽기가 불편하고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시간은 걸리지만, 이런 글은 삶에 대한 작가의 태도를 더 감동적으로 전달해준다. 이런 시적 표현은 평소 작가의 깊은 문제의식과 절실함에서 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거친 말, 거친 글은 물론이고, 평평하고 밋밋한 글쓰기도 결국은 삶에 대한 얄팍한 태도에서 나온다. 그런 글쓰기로는 깊은 소통을 할 수 없다. 쓰기와 살기는 하나다.

2024-10-13

氣살리기 활동

김종찬 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가을이 되면서 들판은 황금빛으로 일렁이고 풍요로움이 가득하여 저마다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한 이른바 수확의 계절이다. 지금의 결과는 이른 봄부터 씨앗을 파종하고 잡초를 제거하거나 적당한 거름을 하였던 수고로움의 결과일 것이다. 현재의 결과만 보고 미래를 대비하지 않으면 더 이상의 발전은 요원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보이는 결과는 과거에 행한 노력의 그림자일 뿐이다. 그러기에 과정이 관리돼야 결과를 제어할 수 있다. 2022년 9월 11호 태풍 ‘힌남노’로 인한 기록적인 폭우로 포항시 남구에 위치한 ‘냉천’이 포항제철소로 범람하여 제품 생산라인의 지하가 완전히 침수되어 조업이 중단되는 초유의 일이 일어났었다. 포스코 창사 이래 처음으로 전 공장 가동 중단을 겪은 포항제철소의 매출 피해는 약 2조400억 원, 피해 복구를 위해 임직원과 협력사 등 연인원 140만여 명이 복구 작업에 나섰고, 제철공정의 핵심인 2열연공장을 재가동하는 등 4개월여 만에 모든 공정이 정상 가동되었다. 135일 만에 완전 복구를 선언하고 정상조업을 이어갔지만 복구 과정에 발생된 불 필요품과 필요품이 섞여 있어 언제 문제를 일으킬지 아슬아슬한 상태로 조업을 하는 실정이었다. 이때 압연 부소장이 “냉천 범람 복구의 범 사회적 지원으로 큰 틀은 정상화되었으나 경영활동의 근간인 기본 조건의 정상 수준에는 의문이 있다”라는 지시를 계기로 정상 조건 갖추기를 위한 방법론을 고민했다. 압연 군 전체의 환경 쇄신을 통하여 쾌적한 작업환경 복원으로 직원들의 氣가 살아야 한다는 목표 아래 ‘氣살리기 활동’ 4단계를 제언하고 실행하였다. 1단계, ‘들어내氣’로 현장이나 사무실의 자그마한 문제라도 들어내는 단계이며, 대상은 현장의 통로 상에 일체의 불필요한 물품이 없이 안전이 확보되도록 하는 것이다. 전 공장이 Layout에 물건을 두는 장소를 표시하고 그 외 모두 들어내어 필요품을 표준화하였다. 2단계, ‘자리잡氣’로 필요한 위치를 쓰는 사람이 직접 정하여 꺼내기 쉽고, 사용 후 되돌리기 쉽도록 자리를 확정하여 운영하는 것이다. 대상은 안전, 환경. 설비 및 프로세스에 알맞은 복원작업과 지그(Jig)와 공구에 대한 정위치를 명확히 하여 재고품을 없애고 수량을 통제하여 자원을 효율화하였다. 3단계, ‘표시하氣’로 물건이나 자재류, 지그류, 각종 유틸리티 배관 및 게이지류에 대한 VM(Visual management)을 적용하여 수량 및 형적 관리를 통해 정상과 이상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였다. 마지막으로 4단계, ‘유지하氣’로 앞의 3단계가 지속 관리될 수 있도록 습관화 시키는 것으로, 주기적인 진단, Check 및 Audit, Survey 추진으로 Rule이 살아있는 현장 만들기 완성을 추진하였다. 본 활용 완료 후 압연 부소장이 현장을 방문하여 미비점에 대한 완성도를 높이도록 지원하고 격려하여 실질적으로 침수 피해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본 활동 컨설팅을 하면서 느낀 점은 ‘기억은 기록을 넘어서지 못하고, 기록은 실행을 이기지 못한다’이다. 성공이나 실패는 실행의 다른 이름이다.

2024-10-13

어떤 충고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얼마 전 나의 누옥(陋屋)에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 찾아왔다. 상당히 격조(隔阻)했던 터라 이야기가 여러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러다 지난 2월 20일 청도에서 시작한 나의 인문 강연으로 화제가 옮아갔다. ‘문명과 인간’을 주제로 한 강연이 거의 30회에 이르고 있는데, 두 차례 강연을 마치고 나면 ‘논어’함께 읽기로 방향을 전환할 요량이다. 강연이나 강의할 때 내가 취하는 태도가 이내 도마 위에 오른다. 나는 정해진 시각에 강의를 시작하여, 예정된 시각에 어김없이 강의를 마치는 습관을 오래도록 지켜왔다. 사적(私的)인 얘기는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함구한다. 한 시간 강의나 강연을 위해서 나는 곱하기 3의 법칙을 준수하고자 애쓴다. 1시간 강연을 위해 최소 3시간 이상 준비한다는 얘기다. 언젠가 ‘가락 스튜디오’에서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명민한 청중에게 따끔한 충고를 듣게 되었다. 너무 많은 정보를 너무 빠른 속도로 듣는 사람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서 쏟아내는 나의 강의 방식에는 낭비되는 측면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다. 듣는 사람이 생각을 정리하고, 나름의 호흡으로 정보를 소화할 시간 여유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 비판의 골자였다. 나의 강의 방식은 이른바 ‘최대 강령 주의’에 기초하는 것이다. 반대로 대중의 반응을 살피고, 그들의 지적-정신적 수준에 맞춰서 최소한의 정보나 지식을 전달하는 방식도 있는데, 그것을 일컬어 ‘최소 강령 주의’라 한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최대 강령 주의에 기반하여 강의를 진행한다. 그것이야말로 대중을 향한 가장 기본적인 예의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강연에서 강연자가 제공해야 하는 최대한의 정보와 지식을 전달하지 않은 채 어정쩡한 상태로 대중과 작별한다는 것은 직무유기라 생각한다. 귀중한 시간과 정성, 따뜻한 관심을 가지고 강연에 참석한 대중의 교양과 지식을 고양하지 않을라치면 무엇 때문에 강단에 선다는 말인가?! 강연자의 농담과 헛헛한 개인사 혹은 허언(虛言)이 무슨 쓸모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내게 충고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청중의 심사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정신적-정서적-지적인 용량을 충분히 고려하면서 강연에 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편으로는 지당하다는 생각도 든다. ‘쇠귀에 경 읽기식’의 강연이 된다면, 그 또한 난감한 일 아니겠는가?! 쉽고 재미있게 강연을 인도하는 것 역시 강연자의 기초적인 소양(素養)이므로! 그러하되 내 생각은 결이 아주 다르다. 강연에 참여하는 청중의 수준은 천차만별이다. 그들 하나하나의 눈과 마음을 통찰하여 강연의 난도(難度)와 속도를 조절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요구에 가깝다. 따라서 단 한 사람의 청중이 나의 강연에 몰입하여 무엇인가 깨우침이 있다면, 그것으로 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이를 만족시킬 방도는 없기 때문이다. 만일 나의 강연으로 자신의 부족한 지식과 교양의 보완이 매우 절실하다는 사실을 각성하는 청중이 하나라도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 이미 충분하다고 믿는다. 적정 수준에서 만족하는 강연자와 청중의 어설픈 공존은 오히려 인문 강연의 심각한 질적 저하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2024-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