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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늠내

피귀자 수필가 조용한 수런거림이 물처럼 흐르다가 불처럼 타오른다. 설악산 단풍 소식이 날아들었다. 시월 말경이면 새로운 지도가 태어난다. 잠긴 수문을 풀듯 흘러내리며 금빛계절을 알리는 단풍지도. 남쪽을 향하여 달리다가 제주도를 거쳐 무등산까지 이십 여일이면 한반도를 점령해버린다. 단풍의 달리기를 바라보면 생각나는 말이 있다. 뻗어가는 땅이란 뜻의 ‘늠내’라는 단어다. 넓어지는 땅이라면 먼저 어릴 적 학교 운동장에서 땅따먹기를 하던 때가 떠오른다. 공깃돌을 두 번 튕겨서 한 뼘의 기본 땅 속으로 되돌아 들어오면 그 영역은 모두 내 땅이 되던 기억이. 가진 땅이 빠르게 넓어지듯, 안개가 퍼지듯이 단풍은 이제 동네까지 내려왔다. 곱게 물든 나뭇잎들이 제각각 종을 울린다. 길 떠날 준비를 하는 생명들의 두런거림이 세를 불리며 환청처럼 사람들을 밖으로 불러낸다. 바야흐로 단풍놀이가 시작된 것이다. 단풍 중개 소식에 따라 구경꾼은 점점 늘어간다.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라는 톨스토이 단편은 생각하게 하는 바가 크다. 우연한 기회에 땅을 조금 가지게 된 가난한 농사꾼 바흠은 그 후 욕심이 생겨, 어떤 곳에서 땅을 싸게 판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가게 되었다. 그곳의 판매 방법은 독특하였다. 하루 종일 걸어서 해가 지기 전 시작점으로 되돌아오면 그 둘레의 땅을 다 가질 수 있다고 하여 아침 일찍 출발하게 되었다. 그런데, 더 많은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 처음부터 달리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들판을 달렸다. 해가 질 때 겨우 출발했던 지점에 약속대로 돌아왔지만, 욕심이 컸다. 너무 먼 거리를 달렸기 때문에 그만 지쳐서, 쓰러져 죽고 말았던 것이다. 죽은 뒤에 넓은 땅이 무슨 소용이랴. 그 농부가 묻힌 땅은 겨우 사방 70센티미터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작은 구덩이에 묻히면서, 죽어버린 몸이기에 후회도 원망도 하지 못했을 것이 아닌가. 이렇듯, 사람은 한 평생을 달려도 누구나 70센티미터 정도의 땅 속에 묻힐 따름이다.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면 우리는 누가 시키든 안 시키든 달려야 한다. 각자가 원하는 것을 차지하기 위해 힘껏 달린다. 온갖 힘과 지혜를 짜내고 그래도 모자라면 남을 속이고 밀어내며 좀 더 나은 땅, 좀 더 넓은 땅을 차지하려고 달리고 달리는 이들도 있다. 좋은 학교를 가기 위해 애쓰고, 힘을 기르는 이유는 더 좋은 땅을 많이 차지하려는 달리기 내기가 아닐까. 땅따먹기 놀이도 마찬가지였다. 욕심을 내어 공깃돌을 너무 멀리 튕긴 후 좁은 본부로 다시 튕겨 넣으려면 밖으로 튀어나가기 일쑤였다. 그러면 기회는 날아가 버리므로 욕심내지 말라는 뜻이 담긴 놀이가 아닌가 한다.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는 걸 일찍 깨달은 탓일까. 아직도 땅에는 관심이 없으니 말이다. 생존 경쟁, 삶은 전쟁이 아닌가. 싸우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아 있는 한 평화는 쉽지 않은 것이리라. 하지만 나무의 생존경쟁은 다르다. 다른 대상과의 싸움이 아니다. 오직 자신과의 싸움이요. 내려놓기이며 물러서기다. 나무는 제자리에서 세월을 맞으며 맡은 책임을 다하려 모진 풍상을 견뎌내느라 잎은 벌레에 파 먹히고 바람에 쓸리며 피멍으로 에둘러 있다. 그것이 바로 단풍인 것을. 쓰라림 없는 결실이 어디 있으랴만 아픔을 이기며 내려놓기 위해 한 걸음 물러서는 것. 역경 속에서, 죽음과도 같은 절망의 골짜기에서 만나는 것이 희망이라고, 나뭇잎은 내년을 기약하며 한걸음 물러서 미련 없이 내려놓는다. 스스로 한 걸음 물러서는 것은 바로 사유의 급전환이다. 사유의 전환을 거쳐야 비로소 더 높은 곳에 설 수 있고 더 멀리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시간은 색으로 이어지고, 그 색 따라 피고 지고, 지고 피며 사람도 그렇게 늙어갈 것이다. 박수칠 때 떠날 줄 아는 단풍처럼, 내려놓을 때를 아는 나무처럼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사람들. 경쟁하며 넓혀온 땅을 한순간에 내려놓으며 욕심을 버린 사람들이 존경받는 이유다. 내려놓기 위해 세를 넓혀가는 단풍처럼 사람도 물욕이 아닌 인류를 위한, 또는 자기발전을 위한 소양의 늠내는 넓힐수록 좋으리라. 다가오는 새해에도.

2024-12-04

죽도시장 대성막걸리

부엌에 덧댄 쪽마루라도 임금님의 침상이지 그렇게 잠든 어머님의 주름살에 파르르 떨리는 형광등 불빛이 잔설(殘雪)로 내리면 단골이라는 이름으로 등쳐먹은 세월이 벽마다 가득하다 살며시 냉장고에서 막걸리 한 사발 퍼서 탁자 위에 내려놓으면 장아찌 몇 점과 멸치 몇 마리 경계의 벼린 눈빛 스파링 상대처럼 긴장하면서 도열하여 이내 종종걸음으로 입으로 집합할 운명 인생은 싸우는 거야, 상대도 없는 자유로운 술집 주인이 있어도 없어도 시스템 작동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계산은 알아서 바가지에 넣을 것 마신 잔은 조용히 한쪽으로 밀어놓을 것 공화국은 이런 것이라고 민주의 기본은 이런 거라고 생기발랄한 무정부주의자들의 소굴 대성막걸리 팔순 어머니의 내공은 이렇게 정리된다 씨팔놈들아, 니들 꼴리는 대로 해라 돈도 필요 없다, 니 스스로 쪽팔리지 않으면 된다, 그 쫑알거림의 사자후, 그 그물에서 벗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잔술로 속을 달래고 공짜 술도 너무 많이 얻어먹었다. 서울에서 고생한다고, 그 한 잔 못 주겠느냐고, 열심히 살아라, 말씀하셨다. 그 세월을 도저히 갚을 길이 없다. 아쉽게도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지금은 사라졌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4-12-04

비상계엄 후폭풍…거세진 대통령 탄핵바람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선포에 대한 후폭풍으로 국가 전체가 아노미 상태에 빠졌다. 계엄선포 직후 야당 주도로 열린 국회본회의에 국민의힘 소속 친한계 의원까지 참석해 계엄 해제 요구안을 통과시킨 것은, 계엄선포가 그만큼 느닷없고 잘못됐다는 것을 말해준다. 비상계엄은 전시나 사변 발생시 군병력으로 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 선포하는 것이다. 야당은 어제(4일)부터 일제히 “윤석열은 이제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니다”라며 탄핵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민주당은 어제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이날 처리하기로 했던 최재해 감사원장 및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탄핵소추안 표결을 보류하고, 윤 대통령의 퇴진에 당력을 집중하기로 했다. 조국 혁신당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조치는 그 자체로 군사 반란에 해당하므로 즉각 수사가 가능하다”고 했다. 야권 의원 40여 명으로 구성된 ‘윤석열 탄핵 의원연대’도 “대통령은 군을 동원해 사실상 내란죄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질렀다. 한시도 대통령 직책에 둘 수 없다는 게 확인됐기 때문에 급하게 탄핵소추안을 의결하겠다”고 했다. 여당도 책임자 문책에 적극 동조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어제 오전 의원총회를 열고 윤 대통령 탈당과 내각 총사퇴, 김용현 국방부 장관 해임 문제를 논의했다. 이에 앞서 한동훈 대표는 “계엄을 건의한 국방부 장관은 즉각 해임돼야 한다”고 했다. 외신은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가 6시간 만에 해제한 상황을 보도하면서 그 배경과 정치적 파장에 주목하고 있다. 정말 국제적 망신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윤 대통령은 계엄령을 선포했다가 해제했다. 왜?’라는 기사에서 “화요일 밤 윤 대통령의 이례적인 선포는 많은 한국 국민을 분노하게 했다”고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독재정권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켰다”고 했고,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도 충격적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이 계엄 선포 근거로 밝혔듯이, 지금 우리나라는 야당의 입법폭주와 탄핵남발, 감액 예산 강행처리 등으로 국가기능이 사실상 마비상태다. 국정을 책임진 윤 대통령이 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심야에 여당이나 대통령실 참모의 의견도 듣지 않고 느닷없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든 비판받아 마땅하다. 윤 대통령은 이번 계엄선포에 대해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지를 스스로 국민에게 밝혀야 한다. 대통령을 잘못 보좌한 대통령실 실장과 수석비서관들이 어제 일괄 사의를 표명한 것도 당연한 일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정치적 혼란으로 경제·외교 등 전 분야가 위기국면을 맞고 있다. 한국경제는 이미 장기불황으로 벼랑 끝에 서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은 이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 국회는 사회경제적 안정을 위해 하루빨리 혼란 상태를 수습해서 국가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2024-12-04

어른은 누구인가

장규열 고문 ‘어른’은 나이로만 정의되지 않는다. 신체적 성장만이 아닌, 독립적 사고와 자율적 책임감, 그리고 사회적 관계 속에서 적절한 역할수행이 ‘어른됨’의 핵심이다. 현대 사회에서 어른과 아이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심지어 사회에 진출한 이후에도 독립심과 자율성이 결여된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러한 현상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문화적 특성을 반영한다.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대학 교수들이 학부모들로부터 학점에 대한 항의를 받는 일이 흔해졌다고 한다. 학생 본인이 교수와 소통하는 대신 부모가 대신 나서는 것이다. 한편, 기업에서는 신입사원의 부모가 상사에게 연락해 자녀의 부서배치 조정을 요청하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현대 사회에서 흔히 관찰되는 ‘아이어른’ 현상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나이로는 성인에 이르렀지만, 아직도 부모에게 의존하거나 독립적 문제해결 능력을 갖추지 못한 어른들이 증가하고 있는 터이다. ‘아이어른’ 현상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첫째, 과보호적 양육방식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부모들이 자녀를 스스로 성장하도록 돕기보다는 모든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는 문화는 자녀의 독립심을 극도로 약화시킨다. 둘째, 지극히 경쟁적인 사회구조도 영향을 미친다. 취업난과 경제적 불안정 속에서 자녀가 실패를 경험하지 않도록 과도하게 개입하려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 마지막으로, 교육제도 역시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법을 가르치기보다는 주입식 학습에 치중하며 문제해결능력을 길러주지 못한다. 개인과 사회의 상호작용 속에서 성숙하지 못한 어른들이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성숙한 사회를 유지하려면 개인 각자가 독립적 사고와 자율적 행동 역량을 길러야 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독립심을 가지는 데 그치지 않는다. 어른은 사회적 책임을 분명하게 가져야 한다. 책임감을 회피하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못하는 미성숙함은 개인뿐 아니라 정부와 같은 사회적 조직에서도 종종 목격된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정부가 중요한 국정운영 과정에서 보인 미성숙함으로 인해 연속적인 충격을 받았다. 정부는 적절한 대비와 의사소통 없이 ‘비상계엄’이라는 극단적 조치를 취함으로써 국민의 혼란과 불안을 초래했다. 성숙한 어른이라면 당연히 수행해야 할 책임을 방기한 대표적인 사례가 아닌가. 정부가 여러 문제를 사전에 예측하고 기획하며 대비했더라면, 이러한 대혼란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정부는 명확한 대책도 없이 상황을 악화시키는 미성숙한 모습을 보여왔다. 어른다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성찰해야 할 지점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생물학적 나이에만 달린 게 아니라,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과 타인과의 관계에서 책임을 다하는 태도를 포함한다. 개인은 스스로 독립심을 기르고 부모는 자녀를 자율적으로 성장시켜야 하며, 정부와 같은 사회조직 역시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적절하게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개인과 사회 모두 어른다움의 본질을 다시 한 번 새겨야 할 때다.

2024-12-04

천국과 지옥 오간 비트코인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확정된 수익률이 보장되지 않은 투자자산을 위험자산이라 부른다. 항시적인 투자 실패의 위험성을 안고 있는만큼 기대 이익은 안전자산에 비해 클 수밖에 없다. 예금이나 적금처럼 안정성 높은 자산과 비교해 하루에도 천국과 지옥을 오갈 정도의 등락폭을 보일 수 있는 비트코인 등의 암호화폐는 위험자산의 영역에 있다. 그 위험자산이 단시간에 얼마나 폭락하고, 다시 어느 정도로 반등될 수 있는지 3일 밤과 4일 새벽 사이에 확인됐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전 약 1억3000만원에 거래되던 비트코인은 계엄령이 내려진 직후 1시간이 지나지 않아 8000만원 중반대로 폭락했다. 일부 가상자산 거래소에선 일시적으로 매수와 매도 주문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형국의 암호화폐 가격과 달리 환율은 짧은 시간에 급격한 속도로 폭등했다. 자정을 전후해선 혼란한 정치적 상황이 경제 파탄으로 이어지는 게 아닌가하는 전문가들의 우려까지 나왔다. 이후 몇 시간이 흘렀다. 계엄령 해제의 시그널이 가시화된 4일 새벽. 언제 그랬냐는듯 비트코인의 가격이 치솟았다. 아침 7시를 넘어서면서 24시간 전보다 소폭 오른 약 1억3500만원으로 거래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위험자산이 갑작스럽게 부자를 만들어낼 수도 있지만, 투자자의 삶을 나락으로 끌고 갈 수도 있다는 사실이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 발표가 이뤄진 6시간 사이에 증명된 것. 암호화폐인 비트코인 등의 위험자산이 위태로운 널뛰기를 할 때 여기에 투자한 사람들도 천국과 지옥을 오갔을 것이 분명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위험자산은 위험하다. 투자에 신중해야 할 이유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12-04

TK통합 법적절차 돌입…완벽한 준비를

대구경북 행정통합안이 대구시의회 상임위를 통과함으로써 본격적인 법적 절차에 돌입한다. 3일 대구시의회 기획행정위원회가‘대구시와 경북도 통합에 관한 의견 제시안건’을 찬성 의결함으로써 법적절차가 개시됐다. 이 내용은 12일 대구시의회 본회의에 상정되는데, 이 역시 무난한 통과가 예상된다. 지난 6월 대구시, 경북도, 행안부, 지방시대위원회 등 4개 기관이 대구경북 통합을 추진키로 합의한 후 6개월만에 법적 절차가 시작된 것이다. 앞으로 경북도의회 통과, 국회 특별법 제정 등의 과정이 남아 있고 이들이 마무리 되면 2026년 7월 대구경북특별시가 출범한다. 법적 절차와 더불어 행·재정적 지원도 충분히 뒤따라야 하기에 TK통합이 완성되기까지는 시간이 충분치않다. 이달초 발표된 대구시 여론조사에서 대구시민 68.5%, 경북도민 62.8%가 찬성 의사를 보임으로써 대구시의회 통과 등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그렇지만 경북 북부지방 등의 반대기류도 만만치 않다. 주민여론 수렴과 설득 등을 통해 법적 절차 진행에 무리가 생기지 않도록 준비를 해야 한다. 특히 TK통합이 시도민의 삶을 근본적으로 향상시킨다는 것을 알리고 대구경북 백년대계를 위한 사업에 조금의 차질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2024-12-04

‘그냥 쉰다’는 청년백수 42만명이라니 걱정

한국은행이 지난 2일 발표한 ‘청년층 쉬었음 인구 증가 배경과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1년 새 일을 쉰 청년층(25~34세)이 25%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충격적이다. 쉬는 청년층은 지난해 3분기 33만6000명에서 올해 3분기 42만2000명으로 늘어났다. 이중 ‘비자발적 쉬었음’이 71.8%나 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비자발적 쉬었음’ 증가 이유는 대기업의 경력직·수시채용 선호현상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지목됐다. 반면 ‘자발적 쉬었음’의 배경은 ‘일자리 미스매치’와 고용의 질(직업 안정성, 근로시간, 실직위험 등) 하락이 주요원인으로 분석됐다. ‘쉬었음’은 비경제활동 인구 중 질병이나 장애는 없지만 단순히 쉬고 싶어 활동하지 않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특별한 이유 없이 교육 훈련도, 구직 활동도 하지 않고 일자리 시장을 회피하는 청년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여사 일이 아니다. 이들의 실업이 장기화하면 노동시장에서 영구 이탈하거나 청년 니트(NEET)족이 될 가능성이 크다. 니트족은 일할 의지가 없는 무직자를 말한다. 한국은행은 “쉬었음 상태가 장기화할수록 근로를 희망하는 비율이 줄고 실제 취업률도 낮아진다”면서 ‘쉬었음’ 청년을 노동시장으로 유인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25~29세 청년층 실업자 비율이 20.3%로 OECD회원국 중 가장 높다. 국내 실업자 5명 중 최소 1명은 청년이란 얘기다. 청년층 일자리가 계속 줄어들고 있는 탓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 후반기 주요 목표로 제시한 양극화 타개도 청년 일자리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 한 성과를 내기가 어렵다. 청년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은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문제다. 청년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진로를 선택해야 하는 시기에 대부분 엄청난 시련을 겪게 되고 방황도 한다. 취업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기가 갈수록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는 쉬는 청년들을 다시 노동시장으로 유인하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2024-12-03

대구서 파격적 제도혁신 주문한 상의회장단

그저께는 전국 56곳의 상공회의소 회장들이 대구에 모여 회장단 회의를 가졌다. 국내 경제를 이끄는 전국 상공회의소 회장단이 대구에서 모임을 가진 것은 15년만이다. 국내외 경제사정이 엄중한 가운데 국내 경제계 수장들이 한자리에 모여 국가와 지역경제 현안을 논의했다는 점에서 경제계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이날 회의에서는 지역경제 위기극복을 위한 방법으로 파격적 제도 혁신을 주문했고, 그 해법으로 메가 샌드박스 제도 도입을 주장했다. 메가 샌드박스는 대구경북권, 강원권, 충청권 등 광역단위 지역에 특화된 미래첨단산업을 선정해 규제를 유예하고 관련한 교육과 인력, 연구개발(RD) 등 인프라와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제도다. 이와 관련해 최태원 대한상의회장은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낡은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개별 문제를 하나씩 풀어가는 것 보다 복합적 과제를 동시에 풀어내는 일석다조식의 해법이 필요하다”고 했다. 기업투자에 금융, 인력, 세제, RD 등 관련정책을 패키지로 제공해야 한다는 뜻이다. 특히 메가 샌드박스 제도가 저출생과 지방소멸, 지역불균형 성장의 해법이 된다는 경제계의 목소리는 경청할만 하다. 주제 발표에 나선 전문가들도 “지역간 성장격차 극복을 위해 메가 샌드박스 구축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면서 “메가 샌드박스는 지역경제 전반에 걸쳐 혁신을 도모하는 새로운 접근법”이라고 설명했다. 지금 우리경제는 국내외적으로 위기상황에 봉착해 있다. 경제연구기관들은 내년도 우리경제 경제 성장율을 1%대로 예상하고, 트럼프발 관세 폭탄으로 수출 전망도 어둡다고 예측한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중앙보다 지방이 더 살기 어렵고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의 어려움이 더 크다. 경제계가 주문하는 파괴적 혁신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 정부마다 그동안 규제 개혁을 내세웠지만 제대로 된 성과는 없었다는 게 경제계의 평가다. 상공단체 대표들이 위기를 느끼고 주문한 기존의 방식을 뛰어넘는 파괴적 혁신에 대한 당국의 결단이 지금쯤은 나와야 경제난 극복의 단초를 찾을 수 있다.

2024-12-03

싸늘해지는 민심, 국정쇄신은 언제 하나

심충택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한 지지율이 다시 하락해 10%대로 내려갔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이번주들어 좀 숙지기는 했지만, 여권이 국정쇄신은 뒤로 한 채 당원게시판 블랙홀에 빠져 이전투구를 벌이자 민심이 이처럼 싸늘해지는 것이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26~28일 실시한 11월 넷째 주 여론조사 결과, 윤 대통령의 직무수행 긍정 평가는 19%에 그쳤다. 대구경북(TK)의 경우 긍정 평가가 40%로 타지역에 비해 높은 편이었지만, 여전히 부정 평가(47%)가 많았다. 보수지지층이 주류인 부산·경남(PK) 지지율은 22%였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한국갤럽은 “대통령과 명태균씨 간 육성 통화 공개 후 대통령 직무 평가가 취임 후 최저 수준이다. 대통령과 당 대표 간 불화가 당내 갈등으로 비화해 여당은 여느 때보다 불안정한 상태로 보인다”고 했다. 공감 가는 분석이다. 윤 대통령에 대한 민심이반이 가속하자 최근 주요언론들은 정부 레임덕 현상을 앞다퉈 보도하고 있다. 중앙부처 공무원들이 이미 차기 정권을 의식하면서 현 정부 주요 프로젝트에 참여하길 꺼린다는 내용이다. 정부가 사실이 아니라고 발끈했지만, 궁색한 변명으로 들린다. 대통령실은 어떻게 하면 국민지지를 다시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 냉정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민심이반 원인은 한국갤럽 조사에 나와 있다. ‘경제·민생·물가’(15%)와 ‘김건희 여사 문제’(12%)가 부정평가 최상위 리스트에 올라와 있고, ‘윤·한 갈등’도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들 현안 모두 용산이나 행정부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여당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야 하고, 야당과도 소통해야 한다. 우선 여당만이라도 우군(友軍)으로 만들려면 최근 소수의 친윤계가 의도적으로 당원게시판 논란을 ‘침소봉대’하는 행위를 중지시켜야 한다. 김민전 최고위원이 지난달 25일 최고위원 회의에서 공개적으로 ‘한동훈 대표와 이름이 같은 8명이 당원 게시판에 윤 대통령 부부 비난 글을 썼다’는 이른바 ‘팔동훈’을 언급하면서 당 대표를 직격한 행위를, 그가 지난 9월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윤 대통령과 만찬을 함께한 점과 연관 짓는 사람들도 많다. 여권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친윤계 정치인이라면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며칠 전 한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김 위원장은 당원게시판 논란과 관련, 지난달 말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흔히들 얘기하는 ‘김옥균 프로젝트’를 실행하려고 하는 상황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한동훈 대표가 63% 지지로 당선된 사람인데 그 사람을 흔들어낸 다음에 여당의 위치가 어떻게 될지는 스스로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지난달 7일 윤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후 여권이 정국 주도권을 잡기는커녕, 현안에 대한 출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여권이 지금 가장 급하게 해야 할 일은 국정쇄신이다. 그러려면 당·정이 원팀이 돼야 하고, 야당과도 대화테이블을 마련해야 한다.

2024-12-03

크리스마스 씰

우정구 논설위원 나이가 많이 든 어른들에게는 크리스마스 씰에 관한 추억이 있다. 6·25 전쟁 직후 어려운 경제 상황에 놓인 우리나라에도 결핵이 크게 유행하면서 크리스마스 씰은 결핵퇴치를 위한 자선사업의 한 형태로 범국민적 참여 운동이 벌어졌었다. 원래는 1904년 덴마크 코펜하겐의 한 작은마을 우체국장이 결핵으로 생명을 잃고 있는 유럽 어린이들을 위해 모금방식으로 시작한 것이 시초다. 성탄절 우편물에 작은 금액의 크리스마스 씰을 붙여 시작한 모금운동은 이후 크게 호응을 얻으면서 전 세계로 번져나갔다. 오늘날 크리스마스 씰은 결핵퇴치 운동의 상징이다. 우리나라는 6·25전쟁 직후 대한결핵협회가 결핵퇴치 운동과 함께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결핵은 기원전 7000년 신석기시대 화석에서 흔적이 발견된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생명을 앗아간 전염병으로 전해진다. 1882년 독일의 세균학자 로베르트 코흐가 결핵균을 최초로 발견하고 퇴치에 나서고 있지만 여전히 인류의 목숨을 앗는 위험한 질병이다. 세계보건기구는 작년에 800만명 이상이 결핵 진단을 받았고, 125만명이 결핵으로 사망했다고 보고했다. 또 결핵이 코로나19를 제치고 전염병 사망 원인 1위로 복귀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한국에도 현재 1만6000여 명의 결핵환자가 있다. OECD 회원국 중 결핵 발병률이 1위며 사망률은 3위다. 크리스마스 씰을 통해 모금된 돈은 취약층 결핵환자 발견이나 환자수용시설 지원, 저개발국 결핵사업 등에 지원된다. 이번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씰을 구입해 결핵퇴치 운동에 동참해 보는 것도 보람있는 연말을 보내는 방법이 될 것 같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12-03

조직경영의 리더십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당신이 배를 만들어 주고 싶다면 사람들을 불러 모아 목재를 가져오게 하고 일을 하나하나 지시한 다음 일감을 나눠주는 식으로 하지 말라. 그 대신 그들에게 저 넓고 끝없는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키워주도록 하라’생텍쥐페리의 말이다. 꿈이 있는 조직은 미래가 있고 희망이 있다. 리더는 부하직원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일이다. 리더십의 본질은 비전을 갖는 것이다. 비전은 누구나 공감하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조직경영의 첫번째는 비전 설정이다. 버트 나누스는 비전을 ‘조직의 실제적이고 믿음과 매력적인 미래 조직의 정체성과 지향점을 이해 할 필요가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방향을 안내하기 위해 기술과 재능, 자원을 결합하여 시동을 거는 정략적인 아이디어’라고 묘사했다. 리더라면 비전을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제시하라는 것이다. 조선 건국의 일등공신 정도전은 유배지 생활 9년 동안 나라의 비전과 구체적인 설계도를 그려서 왕을 찾아 옹립하고 건국의 기틀을 만들었다고 한다. IBM을 창시한 톰 왓슨은 회사가 오늘에 이르게 된 데는 첫 사업을 시작 할 때 성공한 미래 모습을 그리고 있어야 한다. 나의 꿈, 나의 비전 등 구체적인 그림이 있어야 하고 미래 모습을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지 상세 계획이 있어야 한다. 실행 모니터링과 부족한 부문에 대한 피드백을 해야 한다. 미래 모습으로 가는 길이 바른지 확인해가는 것이며, 비전은 조직의 현재와 미래를 연결해 준다. 둘째, 비전을 공유하는 것이다. 비전이 훌륭하다 하더라도 일시적인 구호나 유행에 그쳐서는 안 된다. 필자는 광양제철소 혁신 스태프 근무시절 제철소 비전은 ‘자동차 강판 전문 제철소 구현’이고 목표는 3년 내에 일본 자동차 회사에 1톤을 납품하여 세계적으로 품질을 인증 받는 것이었다. 제철소장이 직접 설명회를 하고 전 직원들은 물론 시내 콩나물 파는 할머니도 제철소 비전을 알고 있을 정도로 공유되었고, 모두가 꿈꾸는 비전은 실현 될 수 있었다. 셋째, 조직에 기를 불어 넣는 것이다. 조직에 활력을 주기 위해서는 신뢰를 바탕으로 책임과 권한을 아래로 넘기는 임파워먼트와 스스로 참여하는 동기부여이다. 임파워먼트는 조직의 미션과 목표가 명확하고 의사결정을 실무 팀에서 하게 하여 신속하고 역동적인 조직을 만드는 일이다. 동기부여는 결과에 인정하고 보상하는 시스템이다. 직원을 잘 보살피면 사업은 성공한다는 말이 있다. 구성원을 신뢰하고 인증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시너지를 창출하는 것이다. 넷째, 대화하고 소통하는 것이다. 혼자 생각보다 대화를 하면 두 배, 토론하면 여섯 배의 성과가 나온다고 한다. 비전을 실현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조직에 두려움을 제거하고 긍정과 신뢰의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조직경영은 비전 설정과 공유, 조직의 활력과 소통하는 리더십이에서 성공의 단초가 열린다. 혼자 꿈꾸는 것은 꿈에 불과하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 꿈과 희망을 주는 리더가 진정한 리더이다.

2024-12-03

매듭달의 비애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무던히 앞만 보고 달려온 듯한 올해도 벌써 끄트머리달로 접어 들었다. 늦더위와 늦은 단풍에 애써 자리를 내주지 않을 것 같던 가을도 첫눈을 경계로 여지없이 겨울로 바톤터치하며 낙엽으로 사그라들고 있다.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면서 한 해의 자취를 마무리하는 이른바 ‘매듭달’로 이어져 그 어느때보다 바쁘고 일들이 많아지는 연말이다. 연초부터 이래저래 계획한 일들과 잡다하게 벌려 놓은 일이며 연말까지 정리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보고·정산·결재·마감 등과 다가오는 새해에 대한 설계 등으로 누구라도 동분서주가 무색할 정도로 바빠질 것이다. 그만큼 한 해의 매듭과 새로운 날들에 대한 구상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 해의 마무리와 결산, 모임 등으로 부산해지고 일손이 많아지는 때 새로운 일들이 생겨나거나 예기치 못한 사고라도 터지게 된다면 난감하기만 할 것이다. 그것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피해와 손실을 초래하고 주체하기 힘든 변고에 빠지게 된다면? 거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고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과 비난이 쏟아지고 단체적인 움직임에 시달리게 된다면? 믿기 어렵겠지만 이같은 일들은 현재 포항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안타까운 실제 상황들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철강업체인 포스코 포항제철소의 쇳물 생산공장에서 정상적인 조업 중 원인불명의 설비사고로 대형화재가 발생, SNS와 방송뉴스를 타고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고, 긴급복구 비상조업 중 2차적인 폭발성 화재로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설비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히는 등 복원작업에 난항을 겪고 있다. 이에 바다 건너 불구경(?)을 하던 일부 시민들의 우려 섞인 목소리와 함께 모 단체에서는 불안과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시민을 볼모로 집단소송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런 와중에 포스코노동조합이 임금협상 결렬로 12월 초 포항 본사 앞에서 파업 출정식을 개최하자 창사 56년 만의 첫 파업 위기에 직면한 포스코가 총체적 난국에 휩싸여 지역 경제계와 시민단체들의 우려와 상생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지고 있다. 3년 전 힌남노 태풍으로 인해 천문학적인 피해를 입은 포스코가 글로벌 철강시황 불황으로 최근 포항제철소 공장 두 곳을 폐쇄하고 공장 화재까지 잇따른 악재에, 노조의 쟁의행위권 확보로 파업 출정식까지 강행하는 등 극도의 불안과 심각한 위기가 지역경제 침체로 치명적 타격을 주지 않을까 심히 우려스럽기만 하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듯이(脣亡齒寒)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서로 돕는 것(患難相恤)이 지혜와 상생의 덕목이 아닐까 싶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기 보다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마음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으며, 상호존중과 상생협력으로 원만하게 협상하고 타결하여 난관을 함께 극복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모름지기 매듭을 잘 맺고 풀어야 온전한 마디가 생겨나고, 더 큰 매듭과 마디로 더 큰 성장을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미진하고 부족했던 일들을 아름답게 마무리해 따스한 온기 스미는 갑진년의 값진 매듭짓기를 기대해 본다.

2024-12-03

‘짧지만 긴 여운 …’ 소설가 김강의 엽편소설 이기전(李己傳) <상편>

옆집 아이였다. 청록의 치마를 입은 아이는 빨간 사과 한 알을 들고 서 있었다. 빨간 사과를 내밀었다. 아이의 어깨에 두 손을 얹은 아이의 엄마가 고개를 살짝 숙여 기에게 인사를 했다. -저번 주 금요일 저녁에요. 아저씨께서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하실 때 제가 버튼을 잘못 눌렀어요. 엘리베이터 문이 닫혀버렸어요. 아저씨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하셨고요. 죄송합니다. 기는 사과를 받아들고 아이의 엄마를 쳐다보았다. -그날 일이 마음에 걸렸나 봐요. 사과데이에 꼭 옆집 아저씨께 사과를 드려야 한다고 해서. 아이의 엄마가 이야기했다. 덧붙여 그녀는 주먹을 들어 사과를 한 입 베어 무는 시늉을 했다. -아. 기는 그제야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아차렸다. 아이에게서 받은 사과를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리고는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아이도 환하게 웃었고, 기와 아이의 엄마는 다시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기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기야. 니 희수라고 기억나나? 그 왜 있잖아, 학교 다니다가 전학 갔잖아. 전학 가서 얼마 안 지나서 자살했다고 소문났던 녀석. 위로는 누나만 세 명인 데다가 곱상하게 생겼었는데. 기, 니가 제일 친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우리가 니들 둘이 사귀냐 면서 놀렸지 않았나? 글마가 살아있더라. 한 달 전 고등학교 동기 모임에서 동기 한 녀석이 기의 옆자리를 비집고 들어와 앉으며 말했다. -소주 한 잔 따라봐라. 빈 잔을 기 앞으로 내밀었다. 기가 따라준 소주 한 잔을 입에 털어 넣고는 기에게 이야기했다. -우리 엄마가 용한 스님이 있다는 절을 하나 소개 받았다는 거야. 내가 하는 일이 요즘 조금 잘 안 되거든. 엄마도 애가 탄 거지. 하도 성화를 부리기에 따라나섰어. 별로 멀지도 않아. 국도를 따라가다 보니 금방이더라고. 차로 사십 분 정도 걸렸나. 절 이름이 망원사야. 망원사. 제대로 된 절도 아니야. 법당이라고 하나 있는 것도 그냥 슬레이트 지붕으로 덮어 놓았고, 스님이 지내는 방도 컨테이너를 개조해서 만든 방이었어. 스님이랑 나이든 공양주 한 분이랑, 그렇게 둘만 있더라고. 이런 데가 알고 보면 진짜로 용한 곳이라는 거야. 엄마 말이. 기는 언제쯤 희수가 등장할까 궁금했지만 녀석의 말을 굳이 중간에 끊고 싶지는 않았다. 빈 소주잔을 내려놓지도 않고 이야기하는 녀석의 모습이 제법 진지해보였다. -손주들한테 만 원짜리 한 장 주는 것에도 손을 벌벌 떠는 양반이 글쎄 불전함에 오만 원짜리 두 장을 넣는 거야. 깜짝 놀랐지. 내가 이 할매가 왜 이러나 싶어서 우리 엄마 얼굴을 쳐다보았다니까. 이 정도 넣어야 그 스님을 볼 수 있다 카더라. 내가 쳐다보는 걸 우째 알았는지, 부처님 얼굴만 똑바로 보고 있던 엄마가 돌아보지도 않고 이야기하데. 그제야 이해를 했지. 조금 있으니까 공양주 할머니가 들어오라 하더라고. 컨테이너 방에 들어가서 스님이랑 마주 앉았어. 나는 입도 뻥긋 안 하고 엄마만 스님하고 이야기를 했지. 내가 뭘 하다 망했는지 지금은 뭘 하는지. 우리 엄마가 별 필요도 없는 이야기까지 다 말하는 거야. 쪽팔려서 죽는 줄 알았다. 그런데 스님은 그냥 주구장창 듣기만 하는 거야. 엄마가 지칠 때까지. 아이고, 살아온 이야기를 하다 보니 숨이 다 차네. 이제 스님이 뭐라고 말씀 좀 해 주시오. 엄마가 이렇게 말 하고 나니까 스님이 입을 열더라. 딱 두 가지. 이제부터는 잘될 겁니다. 글 하나 써드릴 테니 머리맡에 두고 틈나는 대로 보십시오. 그러고 나서 화선지 한 장을 펼치고 붓으로 글을 쓰는 거야. 엄마는 아이고 글씨가 너무 이쁘데이, 너무 좋데이 하면서 연신 박수를 쳤지. 글씨는 나름 나쁘지는 않더라. 그런데 내용이 뭔지 아나? 그 왜 있잖아.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우짜고 하는 흔한 그거. 그건 기라. 확 하고 열이 올라오는데, 불전함을 뒤집어가 오만 원짜리 두 장 찾아 들고 나오려다가 참았다. 그래도 기가 찬 거는 기가 차는 거라서 스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지. 그런데 한참 보다 보니까, 낯이 익은 얼굴인거야. 어디서 봤지? 누구더라? 이렇게 고민하다가 엄마가 이제 가자고 해서 내려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생각이 났는데. 그 스님이 희수인거야. 와. 소름 돋데. 기는 녀석의 빈 소주잔에 소주를 부어주며 말했다. -그러면 그 스님이 자기 입으로 내가 희수다 하고 말한 것은 아니네? 녀석은 소주잔을 입에 대어 반쯤 마시다가 내려놓았다. -니, 내 말 못 믿나? 내가 사람 얼굴 하나는 정말 잘 기억하거든. 희수 맞다. 여전히 예쁘데. 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익은 돼지고기 한 점을 젓가락으로 집어 녀석의 접시에 놓아주었다. -믿지. 믿어. 혹시나 하고.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까. 그리고 내 기억에 희수는 교회를 다녔던 것 같아서. 기가 준 돼지고기와 구운 마늘을 상추에 올려놓고 쌈을 만들던 손을 멈추고 녀석이 말했다. -그래? 하긴 기, 니가 제일 잘 알겠지. 그라모 희수가 아닌가? 얼굴은 희수 맞는데. 희수. 고등학교 2학년 때 짝이다. 곱상하게 생겼었다. 눈이 컸다.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었고, 햇빛 보는 것을 싫어했다. 위로 누나가 세 명 있었다. 분홍 필통, 색지로 된 공책을 좋아했고, 여러 가지 색의 펜을 구별해서 쓰는 것을 좋아했다. 옆에서 보다보면 색칠놀이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빨간 색의 보색이 뭔지 아니? 희수의 색칠놀이를 구경하던 기에게 희수가 물었다. 희수 덕분에 기는 보색이라는 게 무언지 처음 알았다. 희수 덕분에 처음 안 것은 보색만이 아니었다. 영어라고는 교과서에 나오는 단어 밖에는 모르는 기와는 달리 희수는 팝송을 좋아했다. 쉬는 시간에 멍하니 앉아 있거나, 점심을 먹고 교실에 엎드려 있으면 희수는 워크맨에 이어폰을 꼽고, 한 쪽 이어폰은 자신의 귀에 다른 한 쪽은 기의 귀에 꽂아주었다. 이거는 보이 조지고, 이거는 신디 로퍼고. 희수는 ‘ㄱ’자로 굽힌 손가락들로 스포츠형 짧은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팝송의 내용과 가수에 얽힌 사연까지 설명해주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제법 오래된 팝 가수들의 음악이지만 당시 기로서는 처음 듣는 멜로디,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기가 집에 돌아와 가방을 정리하다 보면 희수가 쓴 편지가 들어 있기도 했다. 주말에 뭘 했는지, 누나들이랑 본 영화가 어땠는지 등에 대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고 간혹 희수가 쓴 자작시가 들어 있기도 했다. 기는 답장을 쓰지 않았다. 기가 답장을 쓰지 않는다고 희수가 화를 낸다거나 답장을 써 달라고 조르는 일은 없었다. 기가 편지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날이면 희수는 들릴 듯 말듯 이야기했다. 편지는 내가 쓸 게. 너는 읽어주기만 해. 시청각 교육을 위해 단체로 극장에 가는 날이었다. 시내에 있는 극장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보러 갔다. 각자 알아서 정해진 시간까지 극장으로 가야 했다. 희수가 기의 집으로 찾아왔다. 극장까지 가는 동안 버스를 타는 시간을 제외하고 희수는 기의 손을 놓지 않았다. 희수는 기에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줄거리와 여주인공인 ‘비비안 리’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지만 기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가슴이 두근거렸고 현기증이 몰려왔다. 희수의 손을 뿌리치지는 않았다. 어지러운 와중에도 기는 희수의 손이 무척 부드럽고 따듯하다고 느꼈다. 정거장에 내려서 극장이 가까워지고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는 것이 보일 즈음에서야 둘은 손을 놓았다. 희수는 기를 쳐다보며 빙긋이 웃었다. 기는 꺼내어둔 사과를 종이 가방에 챙겨 넣었다. 망원사를 찾아 가볼 생각이었다. 희수가 아니어도 된다. 얼굴을 보고 싶었다. 희수가 아니더라도, 희수를 닮은 얼굴에 사과를 하고 싶었다. -네. 안녕하십니까. 청취자 여러분. 오늘은 시월 이십 사일입니다. 그리고 일요일이지요. 망원사로 향하는 차 안에서 기는 라디오를 켰다. 라디오에서는 디제이가 사과데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또 무슨 날일까요. 그렇지요. 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미 눈치 채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미 주위의 누군가에게 사과를 드렸을 수도 있겠습니다. 예. 맞습니다. 오늘은 사과 데이입니다. 저는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무슨 무슨 데이라 불리는 날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몇몇 기업체나 장사꾼들의 상술 같기도 하고, 그 상술에 덩달아 동조하는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사과 데이에 대해서만은 생각이 다릅니다. 저도 이날만큼은 꼭 챙기고 싶습니다. 다른 나라에도 우리나라의 사과 데이가 알려졌으면 하는 마음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과 데이는 누가 먼저 시작했을까요? 아시는 분도 있으시겠지만 혹시라도 모르고 계신 분들이 있을까봐 제가 직접 찾아보았습니다. 하지만 바로 말씀드릴 수는 없지요. 일단 노래 한 곡 듣고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시월이지요. 시월의 어느 좋은 날에. 들려드립니다. (계속) 김강 소설가·내과의 김강(52)은 소설가인 동시에 내과의사고, 포항에서 ‘도서출판 득수’를 운영하는 출판사 대표이기도 하다. 2017년 단편 ‘우리 아빠’로 심훈문학대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단편집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 ‘소비노동조합’을 썼다. 지난해엔 장편 ‘그래스프 리플렉스’를 펴내 문단과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2024-12-03

트럼프의 귀환과 한미동맹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미국 우선주의’와 ‘힘에 의한 평화’를 역설한 트럼프가 돌아왔다. 그의 귀환이 한미동맹에 불러올 파장은 만만치 않다. 미국의 외교전략이 ‘바이든의 진보적 이상주의’에서 ‘트럼프의 보수적 현실주의’로, ‘이념을 중시한 가치외교’에서 ‘국익을 우선하는 거래외교’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미국의 뉴노멀(new normal)이 될 ‘트럼피즘(Trumpism)’에 대비해야하는 까닭이다. 한미동맹에도 ‘트럼프 리스크’가 우려된다. 이미 합의한 방위비분담금협정의 재협상 요구, 주한미군의 철수, 감축 또는 역할조정, 북미협상과정에서 ‘한국 패싱’ 우려, 미국의 핵 확장억제력 약화 등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 동맹도 하나의 이익공동체로 인식하는 ‘거래주의자 트럼프’는 한국을 ‘머니 머신(money machine)’으로 간주, 엄청난 안보 비용을 요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북한 및 중국과의 협상과정에서 한국의 이익을 경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념·가치외교’에서 ‘국익·실용외교’로 전환하는 것이다. 트럼프가 지명한 국무장관 루비오, 국방장관 헤그세스, 안보보좌관 왈츠 등은 모두 ‘힘을 강조하는 미국 우선주의자들’이다. 이들은 미국의 힘을 이용하여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시키고자 하며, ‘동맹의 가치’보다는 ‘동맹의 비용’에 주목하여 미국의 부담을 최소화하려한다. 그들에게는 미중경쟁·북미협상·한미동맹 등이 모두 거래의 대상으로 인식될 뿐이다. 따라서 정부는 기존의 가치외교를 전면 재검토하여 실용외교로 전환해야 한다. 이념과 가치를 중시했던 이분법적 세계관과 흑백논리를 버리고, 국익과 거래가 작동하는 새로운 외교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시급하다. 바이든과 맞춘 코드를 앞으로는 트럼프와 맞춰야 하는데, 그의 거래외교를 바꿀 수 없다면 우리의 가치외교를 수정해야 한다. 한미동맹에 이견이 없어야 북미협상에서 우리가 소외되지 않는다. 북미협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 공간은 ‘경직된 흑백외교’가 아니라 ‘유연한 회색외교’에서 확보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의 국방력을 획기적으로 증강해야 한다. 갑을(甲乙)관계에 있는 한미동맹에서 ‘갑(미국)’의 정책변화에 따른 ‘을(한국)’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우리의 방위력이 제고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미국의 입장에서도 한미동맹 유지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트럼프 정부에서 다시 방위비협상을 하게 된다면 자체방위력 강화는 물론, 적어도 일본 수준의 잠재적 핵능력을 확보할 수 있는 협상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이러한 국가안보전략의 성공은 분열된 국론의 통일을 전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여야 정치인들은 거세게 불어오는 ‘트럼피즘’을 외면한 채, 한미동맹까지도 권력투쟁의 도구로 삼아서 정쟁을 벌이고 있다. ‘내부의 분열은 외부의 침략을 부른다.’는 것이 역사의 가르침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2024-12-02

연말연시 음주운전 생각지도 말아야

술자리가 많아지는 연말연시다. 매년 되풀이되는 음주 운전자에 대한 단속에도 음주운전이 좀처럼 근절되지 않는다. 올해도 경찰은 11월부터 내년 1월까지 연말연시 음주운전 단속에 나선다. 2018년 9월 휴가 나온 육군병사 윤창호군이 음주운전 사고로 목숨을 잃자 그의 친구와 가족들이 음주 운전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사회운동을 벌이면서 이른바 윤창호법이 만들어졌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선 음주운전이 사라지지 않는다. 지난달 28일 대구지역 10개 경찰서의 합동 음주운전 단속에서도 6건의 음주 운전자가 적발됐다. 음주운전은 휴가철과 연말연시에 가장 많이 발생한다. 그 중 12월은 음주운전사고 우려가 가장 높은 달이다. 송년회 등으로 술자리가 많기 때문인데 음주운전에 대한 운전자의 경각심이 유독 강조되는 시기다. 술자리 모임이 있다면 아예 차를 놔두고 가는 것이 음주운전을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숙취 운전도 삼가하는 것이 옳다. 음주운전은 사고가 나면 피해자에게 치명상을 입히거나 심지어 생명을 앗아가 가족에게 영원히 지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된다. 음주운전이 범죄행위로 간주되는 것은 이처럼 불특정 다수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안겨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경찰의 지속적인 단속과 음주문화에 대한 계몽운동 노력으로 음주사고가 조금씩 줄고는 있다. 그러나 음주운전 자체가 근절되지 않으면 우리사회에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인한 불행한 일은 또다시 일어날 수 있다. 올들어 11월까지 대구에서는 음주운전으로 단속된 사례는 모두 4977건. 작년 같은 기간보다 600건 가량이 감소했으나 여전히 적지 않은 음주운전이 발생한다. 음주 교통사고도 300여 건이 된다. 전국적으로 보면 한해 10만건이 넘는 음주운전자가 적발된다. 이를 잠재적 살인행위로 본다면 끔찍한 일이다. 재수없어 음주운전에 걸렸다고 생각하는 안이한 인식은 버려야 한다. 음주운전은 위험천만한 범죄행위라는 자각이 필요하다. 경찰도 강력한 단속을 통해 음주운전 없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연말연시 음주운전은 아예 생각도 말아야 한다.

2024-12-02

TK현안 청취한 이재명, 어떤 결과 내놓을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2일 대구경북(TK)을 찾았다. 어제는 대구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했고, 그저께는 이철우 경북도지사를 만났다. 포항 죽도시장에서는 상인들과 간담회도 했다. 사법리스크에 대한 여유가 생긴데다, 여권 내분이 심화하는 타이밍을 틈타, 보수지역 외연을 확장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굵직한 현안이 쌓인 TK지역으로선 이 대표의 이번 방문이 좋은 기회였다. 행정통합이나 신공항 특별법 모두 국회에서 민주당이 제동을 걸면 한발도 나갈 수 없기 때문에, 이에 대한 이 대표의 생각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우선 이 지사가 TK행정통합 특별법 국회통과를 요청하자 “장기적으로는 광역화해야 한다고 본다”며 즉답을 피했다. 통합을 서두르는 PK(부산 경남 울산), 대전·충남 민심을 고려한 반응으로 짐작된다. 이 지사는 경주 APEC정상회의 예산 증액문제도 언급했다. 민주당이 예결특위에서 단독으로 증액 없이 감액만 반영한 내년도 예산안을 통과시키는 바람에 APEC 예산 증액이 현재로선 무산될 위기에 있다. 이 대표는 “정부 요청이 들어오면 적극 반영하겠다”고 했다. TK신공항 건설도 특별법이 국회 문턱을 넘어야 가능하다. 특별법에는 11조5000억원에 달하는 신공항 건설 사업비를 중앙정부가 빌려주도록 명시하고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어제 대구에서 열린 전국상의회장 회의에서 TK신공항 ‘규제프리존’에 적극 투자해 달라고 당부한 것도 특별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특별법에는 규제프리존에 입주한 기업에 대해 관세면제, 상속제 공제, 재산세감면 등 혁신적인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대표는 그동안 TK지역을 방문해선 “영남이 역차별 당한다”고 하고, 호남에선 “전라도가 소외된다”며 이중적인 발언을 해왔다. 정치인이 유권자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지만, 차기 대선을 준비하는 이 대표가 취할 태도는 아니다.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 이 대표가 이번 방문길에 청취한 TK지역 현안을 국회에서 꼼꼼하게 챙겨주길 기대한다.

2024-12-02

못 말리는 헬리콥터 부모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최근 중앙일보에 실린 과보호 부모에 관한 기사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등장하는 사례들은 ‘정말로 그런 일이 있을까?’라는 의구심과 함께 허탈감까지 부른다. 증권회사 부서장에게 신입사원의 어머니가 전화를 걸어온다. “내 자식이 고객 응대와 실적 목표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니 부서를 옮겨 달라”는 부탁을 했단다. 유통기업의 인사팀장은 직원의 아버지로부터 장문의 편지를 받는다. 핵심 내용을 요약하면 “회사를 그만두고 유학을 가겠다는 아들을 막아달라. 혹시, 회사가 힘들게 해서 아들이 퇴사를 고민하는 것 아니냐”라는 것. 지난 세기엔 사용되지 않던 단어 중 21세기 들어 새롭게 만들어진 조어(造語) 중 하나가 ‘헬리콥터 부모’다. 아이들을 키울 때 양육과 교육 모두에서 극성스러울 정도로 지나친 관심을 쏟는 부모를 지칭하며 사용된다. 회전하는 날개를 단 헬리콥터처럼 항상 아들과 딸의 머리 위를 끝없이 맴돈다는 의미. 몸이 아파 조퇴하는 아이를 대신해 담임교사에게 전화를 해주고, 대학생 자녀가 성적에 만족하지 못할 때 교수에게 연락해 점수를 높여달라고 떼를 쓰는 부모가 있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왔다. 그런데, 20대 중반을 훌쩍 넘겨 직장인이 됐음에도 다 큰 아들·딸의 연봉 협상과 부서 배치 과정에 개입하며, 성인 자녀를 서너 살 아이처럼 싸고도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다는 건 놀랍고 더 나아가 측은하다. 세월의 변화에 따라 대부분의 부모가 한두 명의 자녀만을 가진 사회가 됐다. ‘금쪽같은 내 새끼’로 키우는 것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무엇이든 과하면 낭패를 만난다. 자식 문제도 예외가 될 수 없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12-02

인생이 게임과 같다면

삶이 게임과 같다면 어떨까? 최근 one hour one life라는 PC 게임을 즐겁게 플레이했다. 게임 내용은 신생아부터 시작해서 노인이 될 때까지 병에 걸리거나 굶어 죽지 않고 60살까지 무사히 살아남아야 한다. 게임 세계관 중 독특한 점은 현실 세계에서의 1분이 게임 시간 상 1년으로 계산된다는 것이고, 실제 게임을 플레이하는 한 시간 동안 게임 속 한 사람의 인생을 무사히 살아내는 것이 최종 목표이다. 게임을 처음 접속하면 나는 갓 태어나게 되고, 나의 엄마를 마주하게 된다. 엄마는 나의 이름을 지어주고 지어준 이름대로 한 가문의 계보에 등록된다. 3세까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신생아 상태이기 때문에 엄마의 돌봄이 전적으로 필요하다. 엄마 품에 안겨 옷도 입고 따뜻한 불 옆에서 체온을 올리다보면 어느새 시간이 흐르고 현실 세계에서의 3분, 게임에서 3살이 되면 나는 스스로 걸을 수 있게 된다. 3살이 되면 영문 채팅도 3글자 이상으로 칠 수 있게 되어 엄마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가정 내부의 일을 배울 수 있게 된다. 이를테면 흙을 나누는 법, 땅을 고르게 펴는 법, 베리 씨앗을 심는 등을 배우게 되고 한 가족의 일원으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리 잡아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이 게임의 재미있는 점은 바로 계보를 잇는다는 것인데 엄마 외에도 이모, 할머니, 사촌 등 다른 플레이 유저들이 집 내부에 존재해서 여러 어른의 도움을 받아 성장할 수 있다. 생각보다 게임은 꽤나 디테일해서 제때 끼니를 챙겨 먹어야 하고, 밥을 먹기 위해선 여러 종류의 농작물을 심고, 동물을 기르고, 요리를 하며 집 안 내부를 청소하고 정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연대가 중요하기에 유저끼리 부족한 영어 실력으로 소통을 하며 각자의 구역에서 성실히 임무를 다해야만 한다. 그렇게 부지런히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나는 성인 여성이 되어 있고, 문득 밭을 갈다 아이가 태어났다는 메시지 창이 뜨며 품에 신생아가 안긴다. 이제 막 게임에 접속한 사람이 나의 자식이 된 것이다. 그 시점부터 또 다른 미션이 주어진다. 새로운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새로운 옷을 지어 입히고, 불가에 다가가 아이의 체온을 높여주고 굶어 죽지 않도록 신경 써서 음식을 먹여 주어야 한다. 그렇게 3분, 게임상 아이가 3살이 되면 내가 처음 엄마에게 배웠던 것처럼 아이에게 거름을 만드는 법,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리는 법, 밭에 당근을 심어 자라게 하는 법, 꽃을 기르는 법 등을 알려준다. 잠깐 아이에게 생존법과 생의 노하우를 가르쳐 줄 뿐인데 나의 머리는 빠지고 등은 구부러지고 얼굴 주름이 눈에 띄게 깊어져 간다. 벌써 게임을 플레이한 지 한 시간이 다 되었다는 뜻이다. 스무 명이 넘어가는 가족 구성원들에게 나의 죽음을 알리는 동안 결국 게임오버 창이 뜨고, 한 사람의 인생을 살아 냈다는 엔딩을 마침내 보게 된다. 게임은 참 쉽고 단순하다. 그저 게임 나이로 60살이 될 때까지 시간을 보내다보면 어쨌든 엔딩을 보게 된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요리를 먹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무사히 게임의 엔딩을 볼 수 있지만 그것은 목적이나 방향성이 없어 꽤나 심심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 게임은 접속 유저들과 가족을 이루고 구조를 만들며 그 안에서 생존의 의미와 성장의 기쁨을 찾는 편이 훨씬 재미있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검은 엔딩 화면 아래에 있는 다시 태어나기 버튼을 누르면 다시 게임에 처음 접속했을 때처럼 누군가의 신생아로 태어나게 된다. 이렇게 계속해서 한 사람의 인생을 살아가며 한 가문의 계보를 잇는 게임으로, 플레이마다 달라지는 가문과 인종, 부모 등에 따라 살아가는 삶의 결이 조금씩은 달라지게 된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생활을 유지하는 방법을 배운다는 것이고, 배운 것을 또 후손들에게 가르치며 게임 플레이에 더욱 능숙해진다는 것이다. 동시에 내 캐릭터의 삶은 단순해진다. 처음이라 어색하고 허둥댔던 것들이 이제는 익숙하게 전보다 더 잘해낼 수 있게 되고, 가진 생의 노하우로 더 나은 선택지의 길을 낼 수 있게 된다. 그렇담 삶도 게임과 같지 않을까. 나는 요즘 가보지 않은 길이 두렵다. 아직 오지 않은 먼 미래와 나이를 생각하다 보면 자꾸만 주저하게 된다. 하지만 막연히 망설이기보단 현재 생의 노하우를 업그레이드 하고 있단 생각으로 내게 주어진 제한된 시간을 충실하게, 동시에 즐겁게 여기다 보면 어느새 능숙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2024-12-02

로제와 윤수일의 예상 표절

프랑스의 문학비평가 피에르 바야르는 ‘예상 표절’이라는 개념을 주장한다. 일반적으로 표절은 후대의 작품이 선대의 작품을 모방하는 것인데 비해 예상 표절은 앞선 시대의 작품이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의 작품을 모방하는 것이다. 이게 무슨 황당한 소리인가. 예지적인 직관을 가진 작가가 시간의 질서를 초월해 미래를 엿보기라도 한다는 걸까? 꿈에서 훗날의 일을 미리 보는 데자뷰 현상을 말하는 건 아닐까? 헛소리도 자꾸 듣다보면 묘하게 설득되듯 과거가 미래를 훔친다는 이 황당한 주장에도 그럴듯한 근거는 있다. 피에르 바야르가 제시하는 예상 표절의 첫 번째 원리는 ‘불일치’다. 문학과 문학의 영향관계에서 예상 표절을 의심해볼 수 있는 상황은 두 작품이 공유하고 있는 특징이 앞선 작품에서는 불완전하게 나타나는 반면 후대의 작품에는 풍부한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다. 앞선 작품에서는 그것이 작품의 나머지 전체와 심히 어울리지 않거나 그 작가의 다른 작품들, 나아가 당시의 시대상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희소한 장면인데 비해 후대의 작품에서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적 특징이자 작가를 대표하는 독자적 개성으로 완성된다면, 과거의 작품이 미래의 작품을 예상 표절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예로 든 것이 모파상과 프루스트다. 어떤 것이 더 중요한 텍스트이고 부차적인 텍스트인지를 먼저 살펴야 하는데, 모파상의 잘 알려지지 않은 소설인 ‘죽음처럼 강한’에는 여인의 옷자락에 희미하게 묻은 향수 냄새로부터 과거의 기억들이 한꺼번에 되살아나는 기억 작용이 파편적이고 미숙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것은 모파상의 다른 작품들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인데 비해 30년 뒤 등장해 20세기 최고의 소설이 되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는 아주 능숙하고 풍부하게 나타나면서 이른바 ‘마들렌 효과’ 혹은 ‘프루스트 현상’으로 불리게 된다. 두 번째 원리는 ‘소급성’이다. 독자들은 프루스트의 대표작에서 모파상을 감각할 수 없지만 모파상의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에서 프루스트의 울림은 들을 수 있다. 프루스트를 읽으면서 “이건 모파상 같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어도 모파상을 읽으며 “이건 프루스트 같은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다. 여기에는 한 가지 전제가 있다. 프루스트가 이미 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훗날 프루스트가 등장한 이후 프루스트를 읽은 독자들의 독서 경험에 의해 모파상은 비로소 프루스트의 예상 표절자가 될 수 있다. 우리가 프루스트를 읽고 난 뒤 모파상의 텍스트는 프루스트적으로 변화한다. 뜬금없이 예상 표절이라는 개념이 생각난 건 요즘 전 세계를 흥겨운 난리판으로 만든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아파트(APT.)’ 때문이다. 사람들은 로제의 아파트를 신축으로, 윤수일의 아파트를 구축으로 부르는데 피에르 바야르의 논리를 단순 적용하자면 윤수일이 로제를 예상 표절했다고 할 수 있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로제의 아파트를 듣고 난 뒤 변화한 윤수일의 ‘아파트’를 생각해보라.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라는 첫 소절 다음에 “으쌰라 으쌰 으쌰라 으쌰”라는 추임새를 넣는 게 윤수일의 아파트를 즐기는 대중적 향유방식인데, 로제의 아파트를 듣고 나서부터는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다음에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가 입에서 자동으로 발사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수험생도 아닌데 수능금지곡처럼 귀에 맴돌아 큰일 났다. 프랑스 문학비평가의 기묘한 이론까지 떠오르게 할 만큼 노래의 인기가 대단하다. 물론 로제와 윤수일의 사례는 예상 표절이 아니다. 예상 표절의 중요한 두 원리인 불일치와 소급성 중에서 소급성만 해당되기 때문이다. 윤수일이 로제를 예상 표절했다는 가설이 근거를 얻으려면 윤수일의 ‘아파트’가 그의 다른 음악들과 불일치해야 한다. 하지만 ‘아파트’는 윤수일의 음악적 정체성인 록 사운드와 도시적 감수성을 풍부하게 반영하고 있으니 불일치라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어느 것이 중요한 노래이고 어느 것이 부차적인 노래인지를 따져 봐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로제의 시대지만 로제의 등장 전까지 ‘아파트’는 오직 윤수일이었다. 어느 아파트가 더 중요한 아파트인지 가늠할 수가 없다. 나에게는 하늘이 두 쪽 나도 아파트는 무조건 윤수일이다. 노래방에서 로제는 43681번이고 윤수일은 340번이다.

2024-12-02

질문하고 확인하며

김규인 수필가 불황의 골은 깊고 정치가 양극단을 달린다. 우리가 어떻게 할지 모를 때는 문제의 핵심을 파고드는 질문이 중요하다. 질문이 중요한 건 누구나 잘 알지만 실생활에서 질문하는 건 드물다. 질문하는 건 눈치가 없거나 분위기를 방해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남을 의식하며 남의 말을 듣기만 한다. 심지어 학교 교실에서도 마찬가지다. 교사와 학생의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이 오가는 가운데 진정한 교육이 이루어지는데 이제까지 우리 교육은 주입식으로 학생이 일방적으로 듣기만 했다. 질문하는 학생이 있기는 하지만 그 수가 적다. 그나마 최근에는 체험학습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소통이 늘어나도 그러한 분위기는 여전하다. 물음에 많은 자료를 바탕으로 답을 주는 인공지능의 발달로 질문의 중요성은 더 커진다. 빠른 변화와 불확실한 미래에 갈 길을 잃은 사람들은 끊임없이 질문하고 자신에 맞는 답을 찾아야 한다. 얼마나 정리되고 정제된 질문을 하는가에 따라 자신이 받는 답도 달라진다. 인공지능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많은 책을 읽거나 지식을 갖추어 질문의 질을 높여야 한다. 인공지능에 대해 어떻게 질문하고 얻어진 답을 자신에 맞게 해석하는 것은 자신이 할 일이다. 좋은 질문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 문제에 대해 깊이 이해하는 사람이다. 깊이 이해하기에 문제의 핵심을 간추려 인공지능에 핵심을 말할 수 있다. 그냥 피상적인 이해만으로는 질문하기는 어렵다. 간혹 피상적인 질문으로 답을 얻었다면 그 답 또한 문제의 핵심을 건드리지도 못하는 답일 수밖에 없다. 질문하고 답하는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에게 인공지능은 그동안의 부진을 만회할 기회이다. 수업 시간에 대화도 없이 선생님이 설명한 내용을 주로 듣기만 하는 학생들이 충분한 이해를 하는 건 어렵다. 학교와 가정에서 인공지능을 사용할 수 있다면 호기심 많은 아이의 궁금했던 것을 많이 물어볼 것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정보의 수집과 정리를 인공지능이 대신해 주어도 이를 최종적으로 옳은 자료인지 판단하고 활용하는 것은 사람이다. 인공지능을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그 내용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이러한 판단력을 기르고 좋은 질문을 위해서라고 독서는 필요하다. 인공지능을 잘 활용하여 제대로 된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도 독서는 무엇보다 필요하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는가. 세계적인 불황과 미국 우선주의를 주장하는 트럼프가 차기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이스라엘과 주변국과의 전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는 혜안을 얻기 위해서라도 인공지능과 가까이 지내며 힘든 시기를 이겨내었으면 한다. 본인이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자 할 때 그 길은 반드시 열린다. 때마침 불어온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은 독서 인구의 확대를 가져온다. 또한 청년들 사이에서 일어난 텍스트 핏은 책을 읽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든다. 길이 없을 것 같은 어둠 속에서도 우리는 스스로 찾아내야만 한다. 인공지능에 질문하고 책을 통해 확인한다면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내면 한류의 꽃은 계속 피어날 것이다.

2024-12-02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우리 삶에서 전기는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이다. 냉장고, 에어컨, 스마트폰까지 모두 전기로 작동한다. 그런데 같은 전기를 쓰는데도 대구와 경상북도가 똑같은 요금을 내는 게 과연 공정할까? 최근 논의되고 있는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는 바로 이런 문제에서 시작되었다. 먼저, 전력 자립률이 무엇인지부터 알아보자. 쉽게 말해, 한 지역에서 사용하는 전기를 얼마나 자급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이다. 경상북도는 원자력, 태양광, 풍력 등 다양한 발전 시설이 있어 지난해 기준으로 자립률이 216%에 달한다. 경북에서 생산된 전기가 지역 내 소비를 넘어 다른 지역으로 보내지고 있다는 뜻이다. 반면, 대구광역시는 발전소가 거의 없어 자립률이 13% 수준에 불과하다. 대구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전기는 경북 같은 다른 지역에서 끌어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송전 비용이 발생하지만, 현재는 이런 차이가 전기요금에 반영되지 않고 모든 지역이 똑같은 요금을 내고 있다.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는 이런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지역에 따라 다른 요금을 적용하겠다는 정책이다. 경상북도처럼 전력 자급률이 높은 지역은 요금이 낮아지고, 대구처럼 자급률이 낮은 지역은 요금이 다소 오를 가능성이 있다. 물론 대구 시민들 입장에서는 요금 인상에 대한 우려가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는 에너지 소비를 효율적으로 조정하고, 전력망 부담을 줄이기 위한 공정한 변화이다. 경북 주민 입장에서도, 지금처럼 다른 지역의 송전 비용까지 부담하지 않아도 되는 점에서 합리적인 제도라고 볼 수 있다. 영국은 이미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를 도입해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영국은 전력을 많이 사용하는 런던 같은 남부 지역의 요금을 높게 책정하고, 전력을 생산하는 스코틀랜드 북부 지역은 요금을 낮게 설정했다. 이로 인해 송전망 부담이 줄어들고, 지역 간 전력 소비의 균형이 맞춰지고 있다. 이 제도는 단순히 전기요금을 조정하는 것이 아니다. 탄소중립 실현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북처럼 재생에너지 발전이 활발한 지역은 전기요금 인하로 재생에너지 투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대구 같은 전력 자립률이 낮은 지역은 에너지 절약을 유도받게 되어 전체적인 탄소 배출량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대구 주민들이 느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정부는 에너지 효율화 지원 정책과 취약계층을 위한 보조금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지역 간 전력 격차를 줄이기 위해 ‘스마트 그리드’ 같은 기술을 도입하는 것도 중요하다.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는 단순히 요금을 나누는 문제를 넘어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에너지 사용을 고민하는 기회이다. 경상북도 주민은 재생에너지 확대의 선두주자로, 대구광역시 주민은 에너지 효율화의 선구자로 변화를 이끌어야 할 때이다. 전기요금이 달라지더라도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변화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함께 만드는 공정한 에너지 사용이 탄소중립이라는 거대한 목표를 이루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2024-12-02

전남 강진 김영랑 시인의 기다림의 미학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첫눈이 대지를 온통 하얗게 뒤덮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첫눈이 폭설이라고 했다. 여기 경상도에서 누릴 수 없는 겨울 정경이다. 무덥던 한여름 태양의 열기와 꽃비에 젖은 봄이 있었던가 아득해진다. 전남 강진 출신 김영랑(본명 김윤식) 시인이 봄 그리워하는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이 불현듯 떠오른다. 1935년 무렵 김영랑은 우리 고유의 운율로 미묘한 심상을 그려낸 뛰어난 시인이었다. 그는 전라도의 토착적인 방언이 지닌 음악성을 살려내기 위해 방언의 소리와 리듬을 효과적으로 사용한 시인이었다. 그의 시 ‘언덕에 바로누어’는 본래 제목이 ‘어덕에 바로누어였다. ‘어덕’은 경남과 충남 일부에도 쓰이지만 주로 전라남도 쪽에서 많이 사용되는 방언이다. 그의 초창기 시의 특색은 토착의 소리를 그대로 살려낸 음악성에 치중했고, 부드러운 가락에 영롱한 심상을 곁들인 거였다. 따라서 표준어로만으로 쓰면 그 의미 구조가 너무 투명해져 버려 재미가 반감된다. 여기서 김영랑이 의도적으로 방언을 쓴 까닭이 드러난다. 김영랑의 대표시라고 할 수 있는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전문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즉 나의봄을 기둘리고 잇슬테요/모란이 뚝뚝 떠러져버린날/나는 비로소 봄을여흰 서름에 잠길테요/五月어느날 그하로 무덥든날/떠러져누은 꼿닙마져 시드러버리고는/천지에 모란은 자최도 업서지고/뻐쳐오르던 내보람 서운케 문허졋느니/모란이 지고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말아/三百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즉 기둘리고 잇슬테요 찰란한슬픔의 봄을”(‘영랑시집’, 시문학사, 1935) 시간의 흐름 속 소멸의 미학을 노래한 김영랑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읽을 때마다 이 시의 절절하고 유정한 시적미학에 나는 깊이 빠진다. 봄을 기다리는 시점은 아마도 지금과 같은 첫눈이 내린 겨울이 아닐까? 찬란히 핀 모란꽃이 낙화하는 꽃처럼 지고 난 시간에 대한 절절한 안타까움은 시인 이형기가 노래한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분분한 낙화….”라는 시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이 시는 시적 대상으로서의 ‘모란’과 시적 주제로서의 ‘나’ 사이에 일어나는 인연의 애달픈 별리라는 상실을 노래한 시이다. 화려한 봄을 잃어버리는 순간은 그냥 별리가 결코 아니길래 더욱 애달프다. 우리 인생에서도 가장 화려했던 봄날은 늘 과거에 묻혀 있다. 잊어버렸던 지난날의 추억이 소멸되는 순간에 느끼는 비애를 시의 아름다움으로 승화시켰다. 이 시에서 시적 의미를 고양시키는 중심은 바로 ‘기둘리고 잇슬테요’라는 전라도 강진 방언이다. 봄은 해마다 다시 회귀하지만 다시 찾아올 수 없는 사람의 봄과는 너무나 다른 것이다. 그래서 아쉽고 슬픈 것이다. 그러나 다시 찾아오는 봄을 기다리는 이유는 바로 모란이 피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모란이 피어 있는 순간이 매우 짧듯이 화려한 인생의 봄 역시 결코 길지 않다. 그래서 이 시의 주체인 ‘나’를 서술하는 ‘기둘리다’. ‘(서름에) 잠기다’, ‘울다’ 가운데에서 열 번째 시행에 나오는 ‘우옵내다(울다)’를 주목해야 한다. 객체존대의 ‘-오-’는 주체존대의 ‘-시-’와 겹치는 ‘나’와 함께 ‘모란’도 울어 안타까움을 최고의 정점으로 끌어올린 셈이다. 시적 주체인 ‘나’와 시적 대상인 ‘모란’이 일체를 이루게 되는 것을 보여준다. ‘나’는 떨어지는 모란을 보고 그 모란과 함께 다시 모란이 피어날 때까지 울면서 봄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三百 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에서 ‘하냥’이 지닌 뜻의 절묘함을 지적하지 아니할 수 없다. 이 단어가 들어갈 자리에 표준어 ‘늘’, ‘항상’과 같은 부사로 대치해 보라. 전라도에서 사용되는 방언 ‘하냥’은 ‘함께’, ‘같이’라는 의미가 섞여있는 단순한 ‘늘’의 뜻이 아닌 주체인 ‘나’와 대상인 ‘모란’이 함께 같이 다시 꽃이 필 날을 가다린다는 시적 의미를 나타낸다. 시인 오세영은 “사투리 ‘하냥’은 그 뜻에 비추어 보거나 언어 음악성이라는 관점에서 ‘항상’, ‘언제나’ 혹은 ‘마냥’보다 훨씬 깊은 뜻으로 사용되었으며 소리 그 자체에 아름다운 미학적 요소가 담겨 있다고 평했다. 이 시는 ‘하냥’ 덕분에 주체와 객체가 물아일체가 되어 상실의 봄을 기다리는 아픔을 노래하는 방언시의 절창이 될 수 있었다.

2024-12-02

종교개혁과 부르주아-인쇄술이 일궈낸 격변

“회개하고 회개하라! 누구나 회개하고자 기부금만 내면 모든 죄를 사할 수 있도다. 이곳 상자 속에 돈이 들어가는 순간에 들리는 ‘짤랑!’ 이 소리는 지옥의 불길에서 영혼이 솟아나게 하는 힘이도다!” 교황 레오 10세가 산피에트로대성당을 건축하는 데 든 빚을 갚지 못하자 면죄부를 팔면서 부르짖는 소리다. 당시 사제들은 오랜 종교 권력에 취해 하느님의 중재자로서, 내세관의 선도자로 자처하면서 기득권에 정신이 팔려 세태를 바로 읽지 못했다. 때마침 인쇄술의 발달과 동방으로부터 제지술이 이입되면서 성서가 인쇄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성경의 교리를 독점하던 성직자의 엇나가고 왜곡된 해석은, 일반인에게도 읽히면서 편견과 오류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세상이 발전하면 민심도 눈을 뜨게 된다. 이때 세계사에 짠! 하고 등장한 인물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다. 루터는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성(城) 교회 정문에 라틴어로 된 ‘95개조 의견서’를 내걸었다. 일종의 대자보인 이 글은 상상 이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글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다가 마침내 인쇄가 되어 15일 만에 독일 전역에 퍼졌고, 16세기 구텐베르크의 혁신적 인쇄기술이 뒷받침되면서 유럽 전체로 불길처럼 번져갔다. 그는 하느님과 시민 사이에 어느 누구의 간섭도 배제되고, 단지 기도와 믿음으로써 구원을 받는다는 혁신적인 종교 교리가 사람들 마음을 움직였다. 루터가 기존 성직자들을 향해 도덕적 타락이라는 아킬레스건을 건드렸던 것이다. ‘교회는 지상의 질서와 하느님 사이에 있고, 사제는 하느님의 뜻을 수행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는 기존 가톨릭 성직자의 입장을 정면으로 거부했다. 반면 루터는 만인사제설(萬人司祭說), 즉 그리스도인이라면 모두가 사제란 뜻으로 하나님의 말씀만을 의지할 때 구원의 가능성이 커진다고 주장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면서 인간과 하느님 사이에 쳐졌던 장막이 거둬졌다는 뜻이다. 누구든지 사제나, 신부, 목사가 되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으며 지금까지 독점했던 성직자의 행태를 지적하고 나섰다. 당시 루터의 종교개혁을 비약하자면 또 하나의 인간 해방이었다. 종교개혁 불길은 독일지역 제후들의 바람과도 맞아떨어졌다. 로마교회의 영향 아래 세금을 바치는 데 대한 불만이 팽배했던 이들은 독자적인 권력을 추구하고자 했다. 루터는 기세를 몰아 ‘독일의 귀족들에게 고함’이라는 서간문을 발간한다. 게르만의 귀족과 왕권 보호를 확립고자 하는 세력들이 적극적으로 옹호하면서 종교개혁의 성공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루터의 종교개혁이 성공한 것은 그가 혁명적인 교리를 주장한 것이 아니다. 기독교의 핵심 사상을 당대의 역사적 사회사적 상황에 맞추어 새롭게 재해석했기 때문이다. 종교에 관한한 개개인의 독립성을 부여하면서, 동시에 개인의 자유가 존중되는 근대주의의 영향이었다. 마르틴 루터와 더불어 종교개혁에 앞장선 장 칼뱅(Jean Calvin, 1509~1564)의 노력도 있었다. 그는 내세보다 현세의 실생활 존재에 대한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아담의 원죄를 대신해 울며 흐느끼는 것이 다가 아닌, 프로테스탄티즘, 대중적인 복음주의의 가치를 강조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뒤 지하세계를 약탈해 하와와 아담을 구해온 것으로 원죄에서 벗어났다는, 현실 세계에서의 삶에서 하느님을 위한 성찰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이러한 칼뱅주의는 전통적인 가톨릭 사상과는 확연히 다른 것으로서,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는 근대 자본주의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칼뱅이 주장했던 ‘예정설’은 하느님 나라에 갈 사람은 이미 예정되어 있다는 뜻이다. 부(富)는 성실한 삶에서 자연히 따라오는 후속적인 것, 자신을 위해 부를 사용하기보다, 사회와 교회를 위해 축적한다. 신이 내린 재능을 증명하기 위해 돈을 번다. 부가 쌓여갈수록 하느님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증명서가 되고, 자신의 가치를 하늘에 드러내는 일종의 종교의식에 의한 사업추진이었다. ‘국부론’을 쓴 애덤 스미스가 부와 도덕 간의 대립을 부정하면서 부자들에게 천국의 문을 열어준 것과도 통한다. 이웃의 것을 빼앗아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파이를 늘려 골고루 이익이 돌아가야 한다. 따라서 부자가 사회에 가장 쓸모 있고 인정 많은 사람이란 의미다. 이러한 종교적 생활관은 이윤추구 자본주의 사회에 활력을 제공했다. 기업이 비대해지고, 중산층 권력의 부르주아가 나타났다. 시간이 흐르면서 초심이 사라지고 부의 권력화 세습화, 남에게 군림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지만, 초기 자본주의는 이렇게 생겨났다.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4-12-02

정치권의 치킨 게임, 책임은 안 지나

김진국 고문 미친 짓이다. 여의도에 정치는 없다. 상대를 죽이려는 전쟁만 있다. ‘치킨게임’이 있다. 자동차가 전속력으로 마주 달린다. 그대로 달리면 두 자동차 운전자가 모두 죽는다. 공포를 이기지 못한 운전자가 옆으로 피하면 ‘치킨’(겁쟁이라는 뜻)이 된다. 둘 다 버티면 목숨을 잃게 된다. 이런 미친 게임은 없어졌다. 학술용어로나 쓰인다. 그런 치킨게임이 여의도에서는 벌어진다. 정치는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기술이다. 타협과 양보가 미덕이다. 여의도는 완전히 거꾸로다. 공멸뿐이다. 문제는 국민이 피해자라는 사실이다. 치킨게임은 미친 짓을 한 사람이 책임진다. 정치인들의 치킨게임에서는 본인들이 멀쩡하다. 마주 달리는 건 정치인들인데, 피를 흘리는 건 국민이다. 무슨 나라 꼴이 이 모양인가. 솔로몬의 재판에서는 자기 욕심보다 아이의 안전을 걱정하는 사람이 진짜 부모다. 여의도와 용산에서 국민을 더 걱정하는 사람이 있는지 의문이다. ‘법대로’가 문제다. 상앙과 이사가 한국 정치를 장악했다. 대통령도, 야당 대표도, 여당 대표도 모두 법률가다. 법은 정치를 풀어가는 마지막 수단이다. 정치로 풀 것을 법에 넘기면 직무 유기다. 조금도 양보하지 않겠다는 오기다. 양보하느니 함께 죽겠다는 무모함이다. 법은 최소한이 규칙이다. 법으로 다 풀 수 없다. 정치가 필요하다. 그런데 서로 ‘내 권한’만 내세운다. 대통령은 국회 인사청문회가 청문 보고서를 채택하건 말건, 후보가 부적격이라고 하건 말건, 임명장을 준다. 대통령이 귓등으로도 안 들으니 절대다수 야당도 아무 고민 없이 무조건 부적격 판정을 내린다. 민주당은 국민의힘 의견을 들어보려고도 않는다. 법안을 결정하고, 청문회를 결정하고, 증인을 소환하는 일은 혼자서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야당을 설득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 거부권을 행사하면 된다는 배짱이다. 미국 대통령은 배짱이 없어 야당 의원에게 전화하고, 백악관으로 초청해 밥을 먹나. 자신의 정책을 뒷받침할 법률과 예산도 통과하지 못한다. 애먼 국민만 피해다. 대통령의 공천 개입이 논란이다. 언제는 대통령이 당무에서 손을 뗐었나. 민주당 정부라고 달랐나. 어림도 없는 소리다. 여론도 무시한다. 지지율이 바닥을 쳐도 모르쇠다. 야당은커녕 국민에게 사과도 해명도 거부한다. 탄핵하려면 해보라는 배짱이다. 국민의힘 대표들을 줄줄이 쫓아냈다. 권위주의 시절 당총재를 능가한다. 민주당은 한술 더 뜬다. 이재명 대표 관련 사건을 수사한 검사들을 무더기로 탄핵 소추하더니, 이제 감사원장까지 탄핵한다고 한다. 입에 올리는 것도 조심하던 탄핵이 감초 다루듯 한다. 21대 국회에서 13건, 22대 국회 들어 11건을 소추했다. 탄핵은 헌법재판소가 결정한다. 그렇지만 국회가 소추만 해도 직무가 정지된다. 엄연한 사법 방해다. 감사원이 지난 정부가 벌인 일들을 감사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경제통계 조작, 사드 배치 지연, 북한 GP 철수 부실 검증, 탈원전정책…. 감사원의 국정 바로잡기에 제동을 걸려고 또 탄핵이다. 김건희 여사 문제는 핑계다. 방송통신위원장은 일을 하기도 전에 임명하자마자 바로 탄핵을 추진했다. 이제 직무대행까지 탄핵한다고 한다. 2인 방통위가 불법이라고 주장하면서 국회몫 방통위원은 추천하지 않는다. 방통위를 마비시키려는 의도다. MBC 등 공영 방송의 운영체계를 민주당에 유리하게 유지하겠다는 욕심이다. 내년 예산안에서 대통령비서실·검찰·경찰·감사원 특활비를 모두 삭감했다. 정부 예비비도 절반인 2조 4천억 원을 깎았다. “헌법이 보장한 대로” 심사했다고 한다. 지난 정부가 임명한 공공기관의 임원들이 윤석열 정부 임기가 절반이 지나도 버티고 있다. 대통령이 오른쪽으로 가는데, 공공기관은 왼쪽으로 간다. 정부가 마비되면 대통령 책임이다. 법대로만 하면 책임이 없나. 민주당이 소추한 탄핵안이 줄줄이 헌재에서 기각됐다. 정부 기능이 마비된다. 치킨게임은 미친 짓이다. 그래도 그들은 자기 목숨을 건다. 국민을 걸고 치킨게임을 벌이는 정치인은 비겁하다. 무모한 탄핵이 기각돼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12-01

‘産油國의 꿈’에 브레이크 거는 야당

국회 예결특위가 포항 영일만 앞바다 석유·가스 개발사업인 ‘대왕고래 프로젝트’ 예산 505억원중 497억원을 삭감하고 8억원만 남겨뒀다. 이 재원으로 프로젝트가 실행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민주당은 지난달 29일 예결특위에서 ‘대왕고래 프로젝트’를 비롯해 감액만 반영한 내년도 예산안을 강행처리했다. 예결위에서 새해 예산안이 야당 단독으로 처리된 것은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이날 처리된 예산안은 677조4000억원 규모의 정부 원안에서 4조1000억원이 삭감됐다. 대통령비서실·국가안보실의 특수활동비, 검찰 특정업무경비와 특활비, 감사원 특경비와 특활비, 경찰 특활비는 전액 삭감됐다. 여당에서는 “이재명 대표를 수사했거나 민주당과 마찰을 빚었던 정부기관들의 손발을 모두 묶겠다는 의도로 보인다”고 했다. 예산 감액은 정부 동의가 필요하지 않아 민주당이 단독으로 처리할 수 있다. ‘대왕고래 프로젝트’는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발표에 나섰을 정도로 정부가 심혈을 기울이는 역점사업이다. 최근 정부는 ‘동해심해 가스전’ 최초 시추 위치와 시기를 최종 확정했으며, 이달 중순쯤 시추작업에 들어간다. 관건은 탐사 시추와 가스전 구축에 필요한 재원조달 문제다. ‘동해심해 가스전’은 워낙 깊은 곳에 있어 1회당 시추 비용이 1000억원 이상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삭감된 예산이 복원되지 않을 경우 한국석유공사 자체 재원으로 비용을 마련해야 하는데, 현재 석유공사도 자본잠식 상태여서 직접 조달 여력이 없는 상태다. 올해 석유공사가 배정받은 석유·가스 등 시추를 위한 유전개발출자사업 예산은 390억원에 불과하다. 정부는 2차 시추부터는 해외 투자 등을 통해 재원을 마련할 계획이었다. 지금 많은 국민이 ‘대왕고래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우리나라도 산유국이 된다며 꿈에 부풀어 있다. 시추 전문가들도 프로젝트 성공확률이 20% 정도로 비교적 양호한 수준이라고 하니, 민주당은 이 프로젝트가 원만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삭감한 예산을 복원하길 바란다.

2024-12-01

내수경제 살려야

우정구 논설위원 내수경제(內需經濟)를 줄여 내수라 부른다. 국가와 민간에서 시행하는 소비와 투자 등을 총칭하는 경제 용어다. 한 국가 내에서 판매나 소비를 목적으로 만들어 낸 상품을 우리는 내수상품이라 부른다. 내수가 큰 국가들은 수출이 잘되지 않아도 국내시장만으로 국내기업의 생산제품을 소비해 낼 수 있다. 산업구조와 국가의 경제체력이 튼튼한 나라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세계적 불황이 오더라도 내수가 경제를 뒷받침 해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민간내수 규모가 작년기준 8437억달러다. 세계 15위 정도로 비교적 규모가 큰 편이다. 그러나 GDP 대비 내수시장 규모는 OECD 국가 중 낮은 편이다. 수출주도형 성장을 한 탓이다. 우리의 주요 수출국인 미국이나 중국 등의 경기가 나빠지면 우리나라 경제가 바로 직격탄을 맞는 이유다. 한국은행이 예상을 깨고 기준금리를 또다시 인하했다. 금융통화위원회는 금리 인하 배경에 대해 “성장의 하방압력이 증대되고 있어 기준금리를 인하해 경기 하방 리스크를 완화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국내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 금리를 내려 시중에 돈이 돌게 하고 소비와 투자를 살려 보겠다는 뜻이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3분기 가계동향에 따르면 실질소득은 전분기보다 2.3% 늘었으나 소비지출은 1.4% 증가에 그쳤다. 경기침체 불안감으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지 않는다는 의미다. 내수 부진속에 트럼프발 관세 폭탄으로 수출전망도 밝지 않다. 내수경제를 살리기 위한 당국의 똑똑한 대책이 절실한 상황이다. 내수침체로 가장 고통받을 사람은 서민층이기 때문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12-01

대구회생법원 설치, 사법서비스 개선 계기로

서울과 부산, 수원에 이어 대구에도 회생법원이 2026년 3월에 문을 연다. 국회는 28일 본회의에서 대구회생법원 설치의 근거가 되는 각급 법원의 설치와 관할구역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지역 법조계와 지역 경제계가 간절히 바라던 회생법원의 대구 설치가 드디어 성사되게 됐다. 한해 1만건 가량 발생하는 대구·경북의 도산사건을 맡게 될 회생법원이 개원되면 지역의 개인 및 법인의 채무관계가 지금보다 신속한 판단과 처분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가 된다. 알다시피 그동안 회생법원이 없는 곳에서는 지방법원 내 파산부에서 도산사건을 처리해 왔다. 일부 전담판사는 민사사건과 겸임하는 사례도 있어 도산사건이 후순위로 밀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또 기업회생 사건의 경우 기업을 살리는 구조조정 문제를 두고 화급을 다퉈야 하나 사건처리가 늦어져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자주 제기됐다. 통계에 의하면 회생법원이 있는 서울 경우 개인파산 신청사건이 결정되기까지 걸린 시일(2018-2021년)이 2.6개월에 불과했으나 대구지법은 7.1개월로 나타났다고 한다. 동종의 사건을 두고 서울과 지방간의 시간적 격차가 크게 벌어짐에 따라 화급을 다투는 일부 채무자는 서울로 주거지를 옮겨 사건을 진행하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회생법원의 설치는 경제활동의 증가로 급증하는 도산사건을 신속하고 전문적으로 처리하자는 데 목적이 있다. 특히 회생법원은 특정한 사건을 담당하는 특수법원으로서 민사재판이나 형사재판과 같은 소송사건과 달리 법관의 재량이 크게 허용되고, 지역별 특성을 반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대구지법 경우 지난해 개인 회생사건 건수가 8000여 건에 달하고 개인회생위원 1인당 평균 배당 건수도 730건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 회생위원 1인당 관할 인구도 타지역보다 많아 회생법원의 설치가 꼭 필요한 지역으로 손꼽혔다. 만시지탄은 있으나 대구회생법원 설치가 성사된 것은 공평한 사법 서비스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회생법원 출범을 계기로 지역 차별없는 사법 서비스가 이뤄지길 기대한다.

2024-12-01

착한 사람 증후군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며칠 전 대구의 어떤 도서관에서 ‘영화로 가족 갈등 풀기’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고해(苦海)의 세상에서 우리에게 심각한 정신적 갈등을 경험하게 하는 대표적인 인간관계는 가족이다. 가장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원초적인 분노와 불만, 짜증 같은 파괴적인 감정을 가족 구성원에게 노골적(露骨的)으로 표출하기 때문이다. 가족 갈등을 다룬 영화 ‘스트레이트 스토리’(1999),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2014), ‘혼자 사는 사람들’ (2021) 세 편을 골랐다. 영화의 주인공들이 각자의 갈등과 상처, 충돌과 대결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살핌으로써 우리의 삶과 연결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강연 말미(末尾)에 마련한 질문 시간에 60대로 보이는 여성의 물음이 인상적이었다. 요약하자면, 그분은 남에게도 자신에게도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로 괴로워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타자의 고충이나 곤경을 외면할 수 없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뒤로 한 채 열일 젖혀두고 남을 돕느라 진이 빠져버린 사람들이 적잖다는 얘기다. 중년 여성들 가운데 이런 사람이 많이 포진해 있다. 친정이든 시댁이든 혹은 친구든 이런 증상을 가진 사람은 여리고 착한 심성 때문에 ‘안 돼요, 못하겠어요, 나도 힘들어요, 시간 없어요’라는 말을 감히 꺼내지 못한다. 그들 심성 깊은 곳에는 이른바 ‘착한 사람 증후군’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의 말이나 부탁을 잘 들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콘크리트처럼 굳어져 버린 경우를 ‘착한 사람 증후군’이라 한다. ‘착한 사람 증후군’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형제자매가 아프거나, 집안 형편이 어려운 경우, 강압적이며 도덕적인 행동을 강요한 부모 아래서 성장한 이들이 많다고 알려져 있다. 이들은 어릴 때부터 부모 말씀 잘 듣는 착한 어린이로 자라다가 성장한 다음에도 타자의 육체적 고통이나 물질적 괴로움을 외면하지 못해 ‘타의적(他意的)’으로 끌려 들어가게 된다. 이들은 자신의 불만이나 불편을 꾹꾹 눌러 참으며,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쉽게 상처받으며 한번 받은 상처도 오래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남을 위해 자신의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참아가며 베풀어야 한다는 생각이 습관처럼 그들 몸에 배어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지금까지 늘 그래 왔는데, 갑자기 바꿀 수는 없지, 하며 자신의 괴로움을 뒤로 한 채 남들의 요구와 부탁에 하루-한 달-한해를 탕진해온 것이다. 나는 그분에게 세상의 중심에 당신을 세우시라고 말했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만 의미 있는 존재지만, 관계의 핵심에 있는 사람은 남이 아닌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내가 사라진 세상은 아무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하늘에 빛나는 해와 달과 별도 우리가 그들을 보지 않는 한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사람은 남들에게 전연 무관심하다. 부모 자식, 형제자매, 친구도 그렇다. 나를 중시하고, 나를 사랑하며, 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착한 사람 증후군’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이다.

2024-12-01

ISO 인증의 지름길, VM 활동

장광일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우리나라 속담에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는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필자가 기업 컨설팅 시 현장진단 후 그 결과를 최고 경영층에 보고할 때 이 말에 대해 공감한 적이 많다. 설비 문제점에 대해 말로 논리 있게 설명할 때는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던 사장은 설명 없이 문제가 적나라한 사진 한 장을 보여 주면 바로 반응하여 어떻게 하면 사진 속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물어보는 사례를 종종 보았다. 이처럼 사진 한 장의 위력은 대단했다. 문헌에 따르면 ‘귀로 들은 것은 사흘 뒤 10%만 남지만, 눈으로 본 것은 60%가 남는다고 한다’. 인류의 역사는 ‘눈에 보이는’ 만큼 발전해 왔다. 인간은 시력을 보완하기 위해 렌즈를 발명하였고, 시야를 확장하기 위해 끊임없이 개발하여 멀리 있는 사물을 볼 수 있는 망원경을, 아주 작은 것을 볼 수 있는 현미경을 발명하였다. 이런 도구는 비약적인 인류문명의 발전을 가져왔다. 이제는 현실을 넘어 가상의 세계로 눈의 영역을 확장하기 시작하였다. 동물들도 마찬가지이다. 각각의 환경에 적응하며 독특한 시각 능력을 발전시켜 왔다. ‘360도 시야로 위험을 빠르게 감지하는 메추라기’, ‘독립된 눈의 움직임으로 포식자를 피하고 먹이를 찾는 카멜레온’, ‘인간보다 8배의 시력으로 멀리 떨어진 작은 먹이를 쉽게 찾는 매’, ‘어두운 밤에 사냥하는 뛰어난 야간 시력을 가진 올빼미’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필자는 최근 ISO 9001 인증 심사원 자격 취득을 위해 학습을 하면서 ISO(국제 표준화 기구·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Standardization)의 모든 제반 사항이 필자가 기업에서 컨설팅하고 있는 ‘바람직한 VM( Vi sual management) 현장 만들기’ 활동과 일치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눈으로 보는 관리란, 회사에 근무하는 모든 사람이 눈으로 업무의 추진 상황이나 현장의 설비가 정상인지, 이상이 있는지를 즉시 판단하여 이 상에 대해 그 대책을 세우는 것이다. ISO 인증을 통해 중소기업이 글로벌 강자로 부상할 수 있지만, 필자는 인증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그 표준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현장에 적용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고, ISO 그 핵심을 지키기 위해서는 VM활동 기본의 실천이다. ISO는 제품, 서비스 및 시스템의 품질, 안정성 및 효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중요한 위치에 있으며, 다른 시각에서 보면 세계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는 투명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ISO는 기업이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회사를 투명하게 경영하기 위해서는 기업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현장을 잘 볼 수 있는, 즉 눈으로 보는 관리가 실현된 현장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사람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이다’라는 속담이 있다. 그만큼 눈이라고 하는 감각기관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눈으로 보는 관리(VM활동)를 도입, 추진하여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도약하길 기대해 본다.

2024-12-01

포괄적 협약과 강력한 협약을 넘어서

유영희 작가 플라스틱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다. 걸레 대신 손쉽게 뽑아 쓰는 물휴지도 플라스틱이고,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일회용 컵과 빨대도 모두 플라스틱이다. 포장재 원료도 모두 플라스틱이다. 플라스틱은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하지만 후유증도 크게 남긴다. 플라스틱 빨대가 바다로 흘러 들어가 입에 걸려 고통스러워하는 거북이 사진을 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1회용 플라스틱 용기만 따져봤을 때 충남대 장용철 교수팀이 그린피스와 공동연구한 결과를 보면, 2020년 1회용 플라스틱 용기 생산량은 87만 톤이었는데 이런 추세로 가면 2030년에는 647만 톤이 될 것이라고 한다. 2022년 발표한 환경부와 한국환경공단의 자료에 의하면, 2021년 한국의 플라스틱 총생산량은 대략 1천2백만 톤이다. 노현석 부산환경운동연합 활동가의 기자회견을 보니, 세계적으로 매년 4억 톤 이상의 플라스틱 제품을 생산하는데, 이중 약 9%만 재활용될 뿐이고, 1200만 톤 이상이 바다로 흘러간다고 한다. 플라스틱의 문제가 이렇게 심각하다 보니, 플라스틱 생산을 줄이자는 국제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2022년 유엔 소속 국가들이 모여 ‘국제 플라스틱 협약’을 결성했다. 작년까지 모두 4회에 걸쳐 플라스틱 생산량 줄이기 협약을 논의했고, 그 마지막 다섯 번째 회의가 11월 25일부터 12월 1일까지 부산 벡스코에서 열리고 있다. 이 회의에는 유엔 소속 170여 개국의 정부 대표단과 시민사회 단체들, 그리고 산업계가 참석하는데, 우리나라는 환경부, 외교부, 산업부, 해양수산부 등 다양한 부처에서 대표단을 구성했다. 문제는 지금까지 회의 성과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플라스틱 문제 해결을 둘러싸고는 크게 대립하는 쟁점은 플라스틱의 원료가 되는 ‘폴리머’의 생산을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플라스틱 국제 협약 우호국 연합’(HAC)에 속한 유럽과 한국은 폴리머 감축에 찬성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이 중심인 ‘플라스틱 지속가능성을 위한 국제연합’(GCPS)은 생산규제보다는 재활용과 폐기물 관리를 주장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한국의 입장에 일관성이 없다는 것이다. 플라스틱 감축을 주장하는 우호국에 속하면서도 사실은 산유국의 입장과 비슷하다. 김완섭 환경부 장관은 지난달 25일 부산 벡스코에서 기자간담회를 통해 “획일적인 플라스틱 감축보다는 단계별 접근이나 다양한 방식으로 추진하는 것이 좋겠다”면서 포괄적 방식으로 협의하자고 한 것이다. 그러나 환경단체는 강력한 협약을 주장한다. 플라스틱 감축을 구체적인 수치로 설정하고, 플라스틱 재사용을 체계화하며, 관련 산업 종사자와 지역사회가 피해 보지 않게 공정한 변화를 보장하라는 것이다. 플라스틱 생산을 줄이면서 관련 산업 종사자가 피해를 보지 않으려면 지혜가 필요하다. 아무래도 포괄적 협약에서 주장하듯이 단계적, 다각적 접근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강력한 협약에서 주장하듯 구체적인 단계도 수치로 설정하고 재사용도 강제해야 한다. 애매한 표현으로는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2024-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