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에 덧댄 쪽마루라도
임금님의 침상이지
그렇게 잠든 어머님의 주름살에
파르르 떨리는 형광등 불빛이 잔설(殘雪)로 내리면
단골이라는 이름으로 등쳐먹은 세월이
벽마다 가득하다
살며시 냉장고에서 막걸리 한 사발 퍼서
탁자 위에 내려놓으면
장아찌 몇 점과 멸치 몇 마리 경계의 벼린 눈빛
스파링 상대처럼 긴장하면서 도열하여
이내 종종걸음으로 입으로 집합할 운명
인생은 싸우는 거야, 상대도 없는
자유로운 술집
주인이 있어도 없어도 시스템 작동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계산은 알아서 바가지에 넣을 것
마신 잔은 조용히 한쪽으로 밀어놓을 것
공화국은 이런 것이라고
민주의 기본은 이런 거라고
생기발랄한 무정부주의자들의 소굴
대성막걸리 팔순 어머니의 내공은 이렇게 정리된다
씨팔놈들아, 니들 꼴리는 대로 해라
돈도 필요 없다, 니 스스로 쪽팔리지 않으면 된다,
그 쫑알거림의 사자후,
그 그물에서 벗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잔술로 속을 달래고 공짜 술도 너무 많이 얻어먹었다. 서울에서 고생한다고, 그 한 잔 못 주겠느냐고, 열심히 살아라, 말씀하셨다. 그 세월을 도저히 갚을 길이 없다. 아쉽게도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지금은 사라졌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