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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보다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도쿄 변두리의 허름한 이층집. 이른 새벽 노인의 빗질 소리에 깬 주인공은 어슴프레 푸른 창문을 보고 벌떡 일어난다. 이부자리를 개고 양치와 면도를 한 뒤 보랏빛 조명의 테라스에서 키우는 분재에 정성스레 물을 준다. 의식처럼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현관 입구에 가지런히 둔 자동차 열쇠와 카메라를 챙기고, 동전을 몇 개 집어 문을 나서면서 바로 쳐다보는 하늘에 엷은 미소를 짓는다. 집 앞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하나 사서 자동차에 올라 카세트에 올드팝 테이프를 넣고 출근길에 오른다. 중년의 남자, 그는 도쿄 공중화장실 청소부다. 과묵한 성격의 주인공은 화장실 청소부란 직분에 더없이 충실하다. 수많은 화장실을 돌아다니며 정성껏 청소하고 점심땐 공원이나 신사의 벤치에서 샌드위치와 우유로 점심을 때우면서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카메라로 촬영한다. 퇴근 후에는 자전거를 타고 목욕탕에서 하루의 피로를 빡빡 씻고, 단골 식당에서 술 한 잔을 곁들여 저녁을 먹고 돌아와 책을 읽다 잠든다. 일주일에 하루는 코인세탁소에서 청소복을 빨고, 헌책방에 들러 책을 사거나, 사진관에 가서 필름을 맡기고, 인화된 사진을 찾고, 또 하나의 필름을 사서 카메라에 넣는다. 철없는 동료청소부와 그의 애인, 화장실에서 만난 아이나 외국인 여성이나 취객, 단골식당 주인이나 또 다른 단골술집의 여사장, 단골 헌책방 여주인, 점심때 공원의 옆 벤치에 앉아 역시 샌드위치를 먹는 여성은 모두 그의 일상의 오브제이며, 그의 하루 루틴은 완벽하다 못해 단단하다. 영화는 그의 이런 일상을 연속적으로 보여준다. 어느날 퇴근하니 외삼촌을 찾아온 조카가 계단에 앉아있다. 이제 무슨 사건이 나나보다. 드디어 그의 일상에 균열이 생기고 변화가 생기나 보다 기대했지만 아니었다. 조카에게 침실을 내주고 좁은 창고방에서 자는 것 외엔 바뀌는 게 없다. 오히려 조카가 그의 일상에 스며든다. 함께 화장실 청소에 나선 조카는 그와 같이 공원 벤치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고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목욕탕에도 같이 가고, 삼촌의 책을 읽으며 잠든다. 여동생이 조카를 데려가자 끝. 사춘기 소녀 조카의 가출도 그의 일상을 흔들지 못했다. 단 하루 동료청소부가 일을 관두자 두 배 늘어난 일로 피곤한 하루, 컵라면으로 저녁을 때우지만 신입이 오자 그의 루틴은 다시 탄성을 찾는다. 이정희 교수가 꼭 보라고 추천한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그저 사건 하나 없이 반복되는 주인공의 일상을 보여준다. 다큐멘터리보다 더 심심한 스토리지만 오히려 울림이 크다. 무겁고 험하고 슬픈 사건들로 넘쳐나는 뉴스를 외면한 지 달포가 다 돼간다. TV에서 뉴스를 피하려니 자연 영화를 찾게 되었고, 지난여름부터 별렀던 영화를 하필 지금 봤다. 주인공의 심심하고 충실한 나날은 그가 정성껏 닦아놓은 화장실의 거울만큼 빛나고 변기만큼 정갈하다. 그의 흑백 사진 속 나뭇잎 같은 무채색의 일상이 얼마나 귀하고 값진가를 깨닫게 된다. 비행기 추락 속보가 일요일 아침을 삼켜버린 후 TV에는 슬픔이 넘치니 새해 복 많이 받으란 인사가 송구하다. 소소하되 행복하고 충만하되 무탈한 일상은 영화 속에서만 가능한 것인가.

2025-01-01

정쟁 중단하고 ‘무안참사’ 수습에 총력을

극심한 정치적 혼란 속에서 지난 29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제주항공 여객기가 추락해 179명이 숨지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조류충돌(버드 스트라이크)에 따른 기체고장 가능성이 크지만, 사고 원인을 두고 다양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새와 충돌했는데 왜 랜딩기어가 고장이 났는지, 수동으로도 내릴 수 있는 착륙바퀴는 왜 내릴 수 없었는지, 인근 바다에 착륙할 수도 있었는데 왜 무리하게 활주로 동체착륙을 시도했는지 등등의 말들이 나온다. 사고기가 기령 15년으로 노후항공기로는 분류되지 않지만, 사고 직전 쉴새없는 비행을 한 것도 도마 위에 올랐다. 유족들의 황망함과 슬픔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면 사고 원인에 대한 철저한 규명이 필요하다. 참사 원인의 하나로 ‘짧은 활주로 길이’가 언급되면서 대구공항 저가항공기를 이용하는 대구·경북 시도민의 불안감도 크다. 대구공항 활주로 길이는 2755m로 무안공항(2800m)보다도 짧다. 다행인 것은 2030년 개항 목표인 대구경북 신공항의 활주로는 3500m로 건설돼 안전성이 높다. 현 대구공항이나 대구경북신공항 모두 겨울철 철새 도래지와 거리가 먼 내륙에 있어 버드 스트라이크 발생가능성은 작은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는 그저께 무안군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피해수습에 총력을 쏟고 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재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서 “29일부터 다음달 4일까지 7일간을 국가 애도기간으로 정한다”고 밝혔다. 재난사고를 총괄해 본적이 없는 최 대행이 앞으로 대통령, 국무총리뿐만 아니라 중대본부장 역할까지 수행해야 해, 국가재난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작동될 수 있을지 우려된다. 특히 야당의 국무위원 줄탄핵 예고로 비상상황에 대한 대응체계가 흔들릴 가능성도 다분하다. 다행스러운 것은 정치권이 미리 국가애도기간동안 정쟁을 멈추기로 한 것이다. 정치권은 사고가 수습될 때까지만이라도 모든 정쟁을 중단하고 중대본 활동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2024-12-30

성찰의 정치로 희망의 새해를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한 해를 돌아보는 마지막 날이다. 성찰과 반성은 발전의 원천이다. 맹자(孟子)는 정치의 기본을 ‘자반(自反)’, 즉 ‘스스로를 성찰하는 것’이라 했고,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는 ‘성찰만이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하면서 ‘성찰이 곧 희망’이라고 했다. ‘절망의 정치’를 ‘희망의 정치’로 바꾸려면 반드시 ‘비판적 자기성찰’이 있어야하는 까닭이다. 정치인들은 무엇을 성찰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인의 소명을 망각하고 권력에 혈안이 된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다. ‘권력이라는 마약’에 중독되면 초심을 잃고 괴물이 된다. 작은 권력보다는 큰 권력, 초선의원보다는 다선의원이 ‘권력의 노예’로 전락할 위험성이 훨씬 더 크다. 정치인들의 자가당착·표리부동·내로남불 행태는 권력욕 때문에 이성을 잃고 괴물이 되었다는 반증이다. 먼저 여당의 정치행태를 보자. “비상계엄은 중대한 잘못”이라고 지적한 권성동 원내대표가 탄핵에는 ‘부결이 당론’이라고 했다. 자가당착이다. ‘친윤 좌장’이라는 사적 관계가 공적 판단을 그르친 것이다. 게다가 친윤 의원들이 공격하는 ‘배신자’는 누구인가? 민의에 역행하여 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인가, 아니면 그것을 막은 국회의원들인가? 국민 70%가 요구하는 탄핵에 반대한 의원이 배신자인가, 아니면 찬성한 의원이 배신자인가? 누가 누구를 배신했다는 말인가? 동료를 배신자로 낙인찍기 전에 먼저 자신이 진짜 배신자가 아닌지 성찰해야 한다. ‘권력만 쫓는 불나방’은 결국 불에 타서 죽지만, 민의를 받드는 정치인은 결코 죽지 않는다. 야당의 정치행태는 또한 어떤가? 계엄과 탄핵의 책임은 물론 대통령에게 있지만, 그 원인을 제공한 것은 야당의 입법권력 폭주였다. 이재명 사건의 담당 판·검사들을 겁박·탄핵하고, 대통령 권한대행인 한덕수 총리 탄핵까지 서슴지 않으니 민주당의 정치적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법원과 헌재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교활한 ‘법꾸라지(법+미꾸라지)’행태는 또 어떤가? 이재명에 대한 재판은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지연시키면서 윤석열 탄핵심판은 온갖 정치적 압력으로 판결을 독촉하고 있다. 이러한 이중적 정치행태는 전형적 내로남불이자 자기모순이 아닌가? 지금 민주당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공정과 정의에 대한 자기성찰이다. 이처럼 독선과 아집의 ‘극단적 양극화 정치’는 민주주의를 죽이는 망국의 길이다. 성찰을 모르는 정치인들이 대권을 잡는다고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사람만 바뀔 뿐, 정치는 전혀 바뀌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멸의 정치’에서는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른 권모술수가 지배하지만, 성찰을 통한 ‘상생의 정치’에서는 모두가 함께하는 공동체적 노력이 이루어질 수 있다. ‘성찰 없는 권력은 괴물’이기 때문에 정치인은 권력을 탐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 권력만 쫓아다니는 ‘불나방 정치’는 저물어가는 저 석양에 묻어버리고, 새해에는 ‘성찰의 정치’로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2024-12-30

슬프지 않은 죽음이야 없겠지만…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살 부비고 살며 일생 눈물과 웃음을 함께해 온 식구는 부정할 수 없는 공동의 운명체다. 식구 가운데 하나가 영원히 사라진다는 건 인간에게 뼈가 저리는 고통과 상실감을 준다. 그래서다. 부모형제가 죽은 상가(喪家)에 가보면 여자들은 호곡하고, 남자들은 소리 없이 운다. 동서와 고금이 다를 바 없다. 비록 그 죽음이 예견되고 준비된 것이라 할지라도 아버지와 어머니, 형과 누이를 잃는다는 건 견디기 힘든 아픔이다. 그런데, 식구의 죽음이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난데없이 닥친다면 그걸 받아들여야 하는 남아있는 자들의 슬픔은 얼마나 클까? 지난 29일 제주항공 비행기가 무안공항에서 추락했다. 탑승자 중 생존한 사람은 겨우 2명. 179명의 아까운 목숨이 충돌에 의한 충격과 화마(火魔)에 휩싸여 사라졌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불의의 사고였다. 현장은 참혹했다. 참사가 발생한 무안공항에 모여든 탑승자의 식구들은 차가운 시신으로 변한 어머니와 딸, 아버지와 아들, 손자와 손녀, 사위와 며느리를 마주해야 했을 터. 유족들의 놀라움과 서러움은 통곡과 혼절로 이어졌다. 희생자 중엔 겨우 세 살배기 아기와 대학입시를 끝낸 10대 후반 학생들도 있었다. 아들과 며느리, 손자까지를 한꺼번에 잃은 한 여성은 끝내 넋을 잃었다고 한다. 자식을 앞세운 참척(慘慽)의 아픔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위로할 수 있을까. 평생 트라우마에 시달릴 유족들 앞에선 어떤 말도 하기가 어렵다. 그저 이번 사고로 숨진 이들의 명복을 빌고, 유사한 상황이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한 사후 조치가 있기를 바랄 뿐.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12-30

경북도 에너지펀드 조성… 산유국 꿈 살리길

경북도가 자체 예산과 에너지 투자펀드 조성 등을 통해 대왕고래 프로젝트 사업 지원에 적극 나설 뜻임을 밝혔다. 대왕고래 프로젝트가 포항 앞바다에서 진행되고 있고, 사업의 성공에 따라 경북과 포항이 가장 큰 경제적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따른 대응전략으로 분석이 된다. 이와 관련해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중앙정치 혼란으로 산유국으로 가는 대왕고래 프로젝트가 차질을 빚지 않도록 지방정부가 나서 돕겠다”고 말했다. 또 “1차 사추에서 유의미한 결과가 나오면 국회 차원에서 추경을 해 지원해야 하며 만약 추가 시추를 위한 예산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경북도 차원에서 추가 예산을 세우는 것도 검토”할 뜻임을 밝혔다. . 내년도 정부 예산심의 과정에서 대왕고래 프로젝트는 사업비 479억원이 윤석열 대통령 대표사업이란 이유로 전액 삭감된 상태여서 사업 추진이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대왕고래 프로젝트는 동해 앞바다 40km 지점에 최소 35억 배럴 규모 이상 가스·석유가 매장됐을 것으로 보고 이에 대한 시추 발굴을 시작하는 사업이다. 대한석유공사가 사업을 맡아 지난 20일 시추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여기에 소요될 5000억원(5개 공구) 이상의 사업비는 현재로선 사실상 조달이 어려워 보인다. 경북도는 대왕고래 프로젝트에 대한 지역민의 관심이 많고 시추 성공에 따라 지역경제에 미치는 효과가 크다는 점에서 주목을 하고 있다. 경북도의회가 경북도가 대왕고래 프로젝트를 주도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고, 포항시 의회가 관련 예산 반영을 결의한 바도 있다. 특히 시추에 성공하면 영일만 일원에 LNG 터미널과 같은 천연가스 처리 및 수송시설 등 수십조원의 막대한 민간투자가 예상되는 사업이다. 포항으로서는 지역경제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절체절명의 기회가 될 지도 모른다. 시추 작업의 성공률이 20%로 관련사업의 성공률로선 낮지도 않다고 한다. 리스크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것으로 산유국의 꿈을 포기하기는 성급하다. 경북도의 에너지펀드를 통한 지원이 대왕 프로젝트 성공의 단초가 되길 바란다.

2024-12-30

방언이 유용하게 활용되기를 바란다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詩와 方言 이야기’를 통해서 1920년대와 1940년대 그리고 현대의 시와 소설이 담아내는 언어들이 생물의 종 다양성이 중요하듯이 한국어라는 언어를 구성하는 다양한 지역 방언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는 기회였기를 희망해왔다. 문학과 언어에 대한 본질이 지니고 있던 기본적인 시각이 사대에 따라 바뀔 수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근본적으로 세상과 불화할 목적으로 문학 창작을 하는 작가들은 없겠지만 극한적 위기의 시대를 만나면 평범했던 얼굴을 했던 악인들이 나타나고 거칠고 앙칼진 목소리도 나타난다. 좀 더 관대해지고 싶지만 그렇지 못한 토착의 목소리를 동원하듯 민낯의 얼굴을 한 살아 있는 방언이 현실적 소통 세계로 더 활발하게 걸어 나온다면 우리들의 모국어는 훨씬 다양해지고 풍족해질 수 있을 것이다. 자연환경과 긴밀하게 접촉하면서 발전해 온 토착 언어 속에는 그 지역의 자연환경에 대한 상세한 지식 정보가 담겨 있다. 이 토착 지식정보가 어떤 식으로든 우리 모두가 의존하는 자원을 관리하는데 유용한 통찰력을 줄 수 있다. 생약 의약품의 4분의 1이 세계의 열대 우림에서 생산된다. 태평양 연안의 주목 나무껍질을 이용하여 난소암 치료제인 택솔을 생산할 수 있다. 과학 발전을 위한 다음 단계의 정보가 오지의 삼림 속에 있는 어느 이름 없는 토착 언어에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북극 이누이트족은 얼음과 눈을 세상에서 가장 다양한 이름으로 불러오고 있다. 에반 티 프리처드가 쓰고 강자모가 옮긴‘시계가 없는 나라(No Word for Time)’(2006)에 따르면 미국 원주민 언어인 미크맥어에는 가을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 소리로 나무의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해양 생물학자 R. E. 요하네스가 1894년 만난 팔라우 어부는 컴퓨터와 관련된 어휘는 단 하나도 알지 못하지만 3백 가지 이상의 물고기의 이름은 기억하고 있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는 독특한 문화적 요소들이 언어의 절멸과 함께 사라질 수 있다. 언어 다양성과 생물 다양성이 상실되는 과정 간에는 비슷한 점이 매우 많다. 과거에는 생물 다양성의 상실은 인간의 개입 없이 진행되었으나 최근에는 인간이 환경을 바꾸어 놓은 탓에 유례없는 대규모의 멸종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소멸해가는 토착 언어 속에도 새롭게 찾아내어 유용하게 활용할 자원이 엄청나게 숨어 있다는 말이다. 언어의 붕괴 현상도 전 세계적 생태계의 붕괴 현상의 일부로 이해할 수 있다. 인위적인 언어 정책이 언어의 절멸을 더욱 가속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15세기 유럽의 해외 진출, 18세기 산업혁명, 19세기 도시화된 국가, 20세기 과학 혁명과 같은 인류 역사의 대변혁이 환경 변화와 함께 인간의 삶의 방식을 획일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언어 절멸의 문제가 중요한 주제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유는 언어가 많이 있으면 의사소통뿐만 아니라 경제 발전이나 현대화에 장애가 된다는 잘못된 생각 때문이다. 인도가 다중 언어로 인해 분열되었고 영어권은 단일 언어여서 단합을 이루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공통 언어를 사용하고 있어도 정치적 단합이나 통합을 이루지 못한 북아일랜드나 소말리아, 구소련 공화국의 사례도 있지 않은가. 예루살렘의 거리 표지판은 다중 언어로 되어 있는데 정치적 상황에 따라 영어, 아랍어, 히브리어가 위아래의 순서가 달리 배치되는 매우 흥미로운 현상을 보인다. 1919년부터 1948년 사이 팔레스타인이 영국 통치 하에 있을 때에는‘영어-아랍어-히브리어’의 순서였지만 요르단 사람이 예루살렘을 점령했을 때에는‘아랍어-영어-히브리어’의 순으로, 1967년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탈환했을 때에는‘히브리어-영어-아랍어’의 순위로 재배열되었다. 이처럼 언어는 전 세계에 걸쳐 정치적 투쟁의 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다. 언어와 방언 역시 정치나 문화적 힘에 따라 우열의 순위가 바뀔 수도 있다. 문학에 나타나는 방언의 중요성에 대한 칼럼 연재를 이제 마무리하려고 한다. 언어의 변종은 생태적 경쟁의 상태에서 때로는 충돌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예루살렘의 거리 표지판처럼 상생적인 힘을 갖기도 한다. 문학 언어로서의 방언의 소중함에 대한 성찰을 통해 방언 사용이 지역 문화와 관광에 효율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확장되기를 바란다. 방언을 지역사회의 각종 안내간판으로 적극 활용할 수 있는 지역사회의 인식이 확대되기를 바란다.

2024-12-30

발칸반도 민족주의 ① 우리(We)와 그들(They)

유발 하라리는 그의 역작 ‘사피엔스’에서 호모 사피엔스가‘우리’와 ‘그들’로 나누는 것은 본능이라고 하였다. 지극히 맞는 말이다. 그러나 나와 너로 구분하는 민족, 즉 네이션(nation)이란 19세기 이전에는 없던 말(단어)이다. 어느 나라 사람이며, 어디 국민인가라는 의식이 지금처럼 개인의 정체성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필자가 말하는 ‘민족(民族)’이란 단어도 일본에서 군국주의 망령이 기승을 부릴 때 nation을 ‘민족’으로 번역하면서부터다. 민족이란 말은 라틴어 ‘이방인 집단(Natio)’에서 기원한다. 단순하게 ‘무리’에서 사람간의 계급이 생기면서 ‘평민(Pleb)’이라는 단어로 연결되고, 16세기에 들어와서 영국에서 대중들을 뜻하게 되었다. 나중에 ‘그들’이 추가되면서 나와 너, 우리와 그들의 이분법이 생기고 배타적 개념으로 변했다. 18세기의 유럽은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격동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었다. 더구나 미국의 독립전쟁이 일어나면서 세계는 지각변동을 예고했다. 연이어 프랑스혁명이 촉발되며 자유와 평등, 우애(박애)의 이념을 표방한 시민계급을 중심으로 봉건적 구체제와 절대왕정에 대항하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혁명이 일어났다. 어쨌거나 이로 인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탄생이라는 터전을 닦은 셈이다. 급격한 산업의 발달로 중산층이 확산되고, 금권(金權)이라는 경제권을 쥔 새로운 계급층이 형성되면서 봉건제 속 타고난 운명을 깨트릴 수 있다는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 기존의 사회질서와 정치체제에 도전의식이 심어지면서 대중은 지배계급에 반등의 기회를 찾았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수백 년 동안 제국 압제 속에 주변인으로 받아낸 박해와 국경이랄 것도 없는 힘없는 부족으로 살아온 사람들 최후의 선택이었다. 외세의 지배에서 받은 고통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소산일지도 모른다. 이들의 속성을 간파한 자칭 민족주의자 등장은 우리끼리라는 닫힌 민족주의로 역사를 되살려 스토리텔링을 가미했다. 즉 대중에서 탄생된 지도자 의도에 따라 변질되거나 타락적 속성인 민족주의도 등장하기 시작한다. 과거 피지배계급을 향한 강압적인 명령과 수직계통에서, 자발적이며 능동적인 충성스러움이 저절로 우러나오게끔 하는 데에는 우리라는, 우리끼리 공유라는 민족적 동질성을 강조하는 민족주의만큼 좋은 소재가 없었다. 이때 발칸반도에는 이질적 민족주의가 등장하면서 미래 폭력의 판이 짜이고 있었다. 발칸반도는 예부터 다양한 역사와 문화가 접목되면서 이것이 역발효 과정을 겪으면서 피와 살육으로 변해버린 아픔의 땅이다. 에게문명을 필두로, 그리스 민주주의, 그리고 알렉산드로스로 인한 헬레니즘, 로마 지배하의 기독교권, 동방정교와 로마가톨릭 분열을 거친 후 오스만 이슬람에 이어 두 차례 세계대전 중심에 서는 등 인류 긴긴 폭력의 역사와 그 맥을 함께 한다. 그리고 마지막 과정인 제국주의에 발버둥 치면서 탄생한 것이 저항민의 승리이자, 질긴 민족주의다. 발칸반도 각 나라들은 미국 독립선언과 18세기 말 프랑스혁명을 시작으로 촉발된 이래 1923년 오스만터키제국이 붕괴되고 19세기를 지나면서 그 정체가 드러났다.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종족을 중심으로 뭉치기 시작하면서 민족주의는 비온 뒤에 땅이 굳는 것처럼 더욱 탄탄하게 다져졌다. 거슬러 오르면 오스트리아와 러시아는 발칸반도를 술탄의 무슬림 지배에서 기독교를 앞세운 자신들 전제왕조의 발아래 놓으려는 야심찬 계획은 유럽 각국 반발을 불러왔고, 크림전쟁을 비롯해, 끊임없이 계속되는 터키와 러시아가 치고 박는 것을 구경하면서 영국, 프랑스는 물론이고, 서유럽 나라들 계산머릿속은 빠르게 돌아갔다. 그러는 사이 고만고만한 여러 부족과 민족이 통일국가로 거듭났다. 그리스도 이때를 놓치지 않았으며, 남아메리카의 대부분 나라도 줄줄이 독립에 동참하며 새로운 민족국가로 탄생하면서 국제질서에 새로운 판이 짜이고 있었다. 광대한 영토를 거느리고 있는 전제군주국에 대한 해체작업의 일환으로 서구 강대국에 의한 펌프질도 있었다. 즉 오스만터키제국과 오스트리아제국 치하에 있던 나라, 여러 부족에게 독립이라는 새싹위에 희망의 물줄기를 뿌려대는 서유럽국가들 노력이었다. 긴박한 국제정세는 말보다 발길질이 빠르다. 서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스트리아가 헝가리를 시작으로 발칸반도의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에 이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까지 기습적으로 점령해버렸다. 이때 대세르비아주의가 급부상하면서 기다렸다는 듯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 그리고 파괴와 죽음, 살육 등 발칸반도에 상처만 남긴 채 끝났다. 승자의 막강한 끗발을 이용한 서유럽 강대국은 그동안 오스만터키와 오스트리아의 영토에 들어 있던 발칸반도와 중부유럽은 물론 중동까지 도토리 같은 나라 탄생에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형에게 말 잘 듣는 고만고만한 아우들이 필요했던 것이다. (계속)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4-12-30

왼발과 오른발의 마음으로

초조함과 불안에게서 쫓기고 있다면 주로 가장 먼저 택하는 행위는 명상이다. 하지만 유독 초조함이 많이 발현되는 날엔 명상에 빠져드는 것조차 어려워지고, 그럴 때 내가 가장 택하는 방법은 산책하며 걷기다. 산책은 왼발과 오른발을 번갈아 천천히 내딛으며 숨을 천천히 고른다. 딛는 발의 뿌리가 지구의 땅 속 깊이 존재하는 내핵까지 뻗는다는 생각으로 느릿하게 나아간다. 왼발 다음은 오른발 그리고 또다시 왼발, 그렇게 천천히 내딛다보면 나는 어느새 내가 지정해둔 산책로까지 무사히 다다르게 된다. 그리고 놀랍도록 머릿속에서 내내 괴롭히던 무수한 잡념들이 조금은 잠잠해진 채로 얌전해져 있는 걸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도착지의 방향이나 걷는 시간, 도착을 해야 한다는 어떠한 목적 보다는 그저 발을 내딛는 방향 그리고 그에 따른 자연스러운 호흡이다. 내 몸이 어딘가 한 곳에 긴장이 집중되어 있는 건 아닌지, 혹시 불필요하게 고인 몸의 불편함을 호흡과 의지를 통해 풀어볼 수 있는지 생각하며 나아가는 것이다. 매번 밖에 나가 움직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럴 땐 방 한가운데서 좁은 보폭으로 조금씩 발을 떼어 걷는 방법도 있고, 이마저도 어려운 컨디션이라면 앉은 상태에서 발을 지면에서 올렸다 내렸다하며 명상에 빠지는 방법도 있다. 가만히 정좌로 ‘무’에 다다르는 명상에 빠지는 것이 어렵다면 이렇게 걷는 행위를 통해 발의 감각을 느끼고 집중하며 현재에 머무르는 방법을 추천한다.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다잡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누군가 도와주고 해결해줄 수 없는 부분이니 스스로 나아가야 한다. 걷는 행위를 통해 기분을 환기시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도착지까지 무사히 걸어온 작은 성취감마저 느끼면서 조금씩 늪을 벗어나 다음으로 펼쳐질 꽃밭으로 향한다. 며칠 전 받은 심리 상담에서는 인생은 늘 꽃밭만 펼쳐질 수는 없는 것이라며, 삶은 늪과 꽃밭으로 번갈아 이루어져 있다고 설명 들었다. 잡념과 불안에서 발버둥 칠수록 늪에 점점 스스로를 고립시키지만 머지않아 펼쳐질 꽃밭이 있음을 기억하고 힘을 뺀다면 늪에서 빠져나올 만한 힘을 얻게 된다. 그렇게 조금씩 차분히 몸을 움직이다보면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되고 선물처럼 꽃밭이 펼쳐진다. 삶은 당연히 그런 것이라고, 늪이 또 등장하여 허무하게 속수무책으로 빠져든다 한들 삶이 내어주는 꽃밭을 그려야 하는 것이라고. 한 해의 마지막에 서서 올 해 나는 어떻게 살아온 것인지 다시금 돌아보니, 좋았던 순간과 좋지 않았던 순간들이 정확히 반반씩 이루어져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평온하게 펼쳐진 꽃밭보다 더 눈에 들어오는 건 어떻게든 늪에서 빠져 나오려는 온갖 안간힘의 흔적이었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부당한 것에 대한 혼란스러움, 선택지 앞에서의 주저함, 포기라는 선택, 잠을 오랫동안 자고, 다시금 일어서려는 도약, 마음을 열고 나를 다시금 살펴본 용기 등.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나를 방치시키지 않으려는 발버둥을 볼 수 있었고 그 흔적들이 짙고 거친 흔적으로 여기저기 남아 있음을, 그리고 그 장면은 꽤나 묵직하고 뭉클하게 다가왔다. 한 해를 살아온 나를 돌아보는 것은 실은 그리 유쾌한 것은 아니고 은근히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지만 그래도 내가 지나온 늪과 꽃밭의 행적을 바라볼수록 나는 앞으로 더 늪을 헤쳐 나올 수 있는 힘을, 그리고 꽃밭을 마주했을 때 기쁨과 환희를 더욱 잘 누리며 더욱 잘 살아갈 수 있음을 믿는다. 왼발과 오른발을 번갈아 가며 골고루 내딛는 마음, 삶의 행운과 불운을 잘 맞이하기 위해 다가오는 2025년에도 균형을 잘 잡아본다. 생각해보니 정말 다행인 점은 늪지가 곧장 시작되거나 기약 없이 계속 된다한들 나는 계속해서 나아갈 힘이 조금 생겼다는 것이다. 인간은 그렇게 성장하는 것이 아닐까. 온 몸의 힘을 빼고 천천히 왼발과 오른발의 마음을 살피는 것, 내년 내가 가장 잘 해내고 싶은 마음가짐이다.

2024-12-30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어린 시절 필자 남매와 함께 한 할머니. 집에 아픈 사람이 있는 건 괴로운 일이다. 즐거운 순간에도 온전히 즐거울 수 없고, 여행을 가더라도 갑작스런 복귀를 늘 생각해야 한다. “할머니 안 좋아” 엄마의 전화를 받고, 삶도 죽음도 아닌 시간에 걸쳐 있는 사람을 사랑한 내 12월은 춥고 어두웠다. 윤석열의 계엄으로 보름 동안 피곤했는데 나머지 보름마저 고통스러웠다. 폐렴 합병증으로 승압제를 쓰고 호흡기를 댔다. 보기에 오늘 내일 하는지라 장례식장을 알아봤다. 삼일장 대신 가족장 이틀만 치르자, 영정사진은 준비해뒀으니 다행이다, 호국원에 전화해 할아버지 옆에 봉안하는 절차를 물어봐야지… 산 사람을 두고 죽음의 형식을 생각하려니 내키지가 않는다. 살 만큼 사셨지만 살아도 산 게 아니니 나는 내 할머니가 마냥 불쌍하다. 어려서 일본군 비행장 가까이 살아 청력을 거의 상실하고 자라서는 시력을 또 거의 잃었다. 근대 교육의 세례를 받지 못한 채 평생 장애인으로 살았다. 그래도 장남이 모시고는 살았다. 환갑잔치도 해주고, 손주들 재롱도 보게 하고. 그때 베란다에서 할머니를 도와 톱질하고 망치질 해 닭장을 만들던 일은 참 재밌었다. 유년의 기억이 생생한 나는 아침빛에 눈이 부셔 얼굴을 찡그릴 때면 찡그린 내 얼굴과 겹쳐지는 할머니 얼굴을 감각한다. 안 보이고 안 들려서 늘 일그러져 있는 그 얼굴을. 내가 처음 노래를 배울 때에도, 개가 새끼를 낳는 경이로운 순간을 목격할 때에도, 참외의 단맛을 처음 알 때에도 할머니와 있었기에 그저께도 노래를 부르면 ‘고향의 봄’을 흥얼거리는 할머니가, 어제도 공원을 산책하는 개들을 보면 분홍색 플라스틱 화분받침에 개밥을 담던 할머니가, 저번에 과일가게를 지나면 참외를 깎던 할머니가 자꾸 보인다. 잠깐 좋은 시절도 있었지만 IMF때 집안이 망하면서 박스 주웠다. 잘 듣지도 보지도 못하면서 리어카를 끌고 고철과 폐지를 주워 내게 교복을 사 입히고 용돈을 줬다. 그래 나는 한 때 신을 사랑했으나 지금은 원망한다. 신이 주어야 할 사랑을 인간의 몸으로 내게 준 할머니에게서 신은 처음엔 귀를, 다음엔 눈을 앗아갔다. 보청기는 무용지물이고 완전실명한지 10여년 됐다. 그러더니 고관절을 부러뜨려 다리를 빼앗아갔다. 듣지도 보지도 걷지도 못하는 이에게서 빼앗을 게 더 있는지 입으로 못 먹게 했다. 장에 연결된 호스로 물과 죽을 받는 식물로 만들었다. 요양병원에서 조금 큰 병원으로, 거기서 다시 요양병원으로 전원과 퇴원과 입원을 반복할 때마다 벌써 몇 번 연명치료중단 동의서에 엄마와 함께 서명을 한다. 요양병원에 8년째 누워 있는 할머니를 며느리인 엄마가 수발하는 집안 내력이 수치스럽다. 아버지와 그 형제들이 밉지만 나는 아버지가 되지 않으려 애써 미워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엄마인 할머니를 보면서, 저 고통스런 육체로부터 할머니의 해방을 위해, 그리고 엄마의 자유를 위해 이제 돌아가셨으면 하다가도 마른 흙을 움켜쥔 앙상한 나무뿌리처럼 오그라든 저 손이 자꾸 살고 싶다고 꿈틀대는 것 같아서, 살 수 있을 때까진 사시길 다시 바란다. 식물처럼 누워서도 생각을 하고 꿈을 꿀 수도 있잖아, 아니야 저렇게 숨만 붙어 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래도 사셔야지. 일부러 불온한 생각을 했다. 신은 간절할 때 배신하니까, 기도하면 거꾸로 들어주니까. ‘온라인 부고장에 가족들 각자 계좌번호를 넣는다더라’, ‘이미 잡힌 연말 약속은 어떻게 취소하지’… 그러면 신이 어디 네 생각대로 되나 보자며 할머니를 좀 낫게 해줄까봐서. 그게 통했는지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 그러자 이번엔 제대로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날 밤에는 십여 년 만에 무릎 꿇고 기도했다. 좀 더 살게 해달라고. 너무 불쌍하지 않느냐고. 엄마랑 매달 의료기기점에서 기저귀와 패드를 사 병원에 갖다 주는 걸 나도 8년 했다. 돌아가시면 슬프겠지만 그 슬픔마저 건천이 되도록 사람을 쥐어짜서는 무덤덤해졌을 때에,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말하게 될 때에 사랑하는 이를 데려가는 신은 잔인하다. 아니 어쩌면 감정을 탈진시키는 게 배려인지도 모르지. 할머니는 아직 살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내가 뭘 할 수 있나. 그저 일상을 살다가 이별의 순간 무섭지 않게, 외롭지 않게 손이나 꼭 잡아주는 것밖에는. 고작 그것만으로 전해지는 사랑이 있을까. 내가 받은 사랑은 온 세상인데…

2024-12-30

대구경북 공간환경전략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대구와 경북은 지역적 특성과 경제적 여건의 차이로 인해 각기 다른 환경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대구는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로 인한 생활과 산업 쓰레기 증가, 악취 문제, 과도한 에너지 소비에서 비롯된 탄소 배출량이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반면 경북은 특히 농촌 지역에서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환경 관리 기능을 약화시켜, 농경지와 유휴지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생태계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균형 발전과 지속 가능한 미래를 도모하기 위해서는 공간환경전략이 필요하다. 공간환경전략이란 환경, 경제, 사회적 요구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도시와 지역 공간을 계획하고 관리하는 전략이다. 이는 자원의 효율적 이용, 환경 보호, 사회적 통합, 탄소중립 실현 등을 목표로 하며, 대구와 경북의 현안을 해결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할 수 있다. 덴마크 코펜하겐은 자전거 중심의 도시 설계를 통해 시민의 자전거 이용률을 62%로 끌어올리며 연간 약 3만 톤의 탄소 배출을 줄였다. 싱가포르는 수직 정원과 물 순환 시스템을 활용해 자원 낭비를 최소화하고, 자연과 공존하는 도시를 구축했다. 네덜란드는 스마트팜 기술을 도입해 물과 에너지를 절감하면서도 농업 생산성을 극대화하며 탄소 배출을 줄였다. 이러한 사례들은 대구와 경북의 통합이라는 큰 흐름 속에서 대구와 경북 각각의 지역 특성에 맞는 공간환경전략을 수립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제5차 국가환경종합계획(2020~2040)은 국토와 환경의 통합적 관리를 목표로 지역 특성을 고려한 지속 가능한 발전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대구경북도 지역 맞춤형 공간환경전략을 설계해야 한다. 대구는 스마트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IoT기반의 에너지 효율 관리시스템을 도입하고, 자율주행 대중교통을 활성화해 에너지 소비를 줄이며, 교통 혼잡을 해소할 수 있다. 또한, 도시 내 녹지를 확충하고, 생활권 공원을 조성해 열섬현상 완화 등 주민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경북은 농촌 지역의 환경 관리 역량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 신재생에너지 단지를 조성하고, 유휴 농경지를 생태공원으로 전환하며, 스마트팜의 도입과 함께 지역 사회의 청년층 유입을 유도할 수 있는 주거 및 문화 기반 시설을 확충해야 한다. 이러한 전략은 농촌 지역의 인구 감소 문제를 완화하고, 지역 소멸 위기를 극복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대구와 경북은 이제 새로운 변화를 시작해야 할 때이다. 대구는 스마트 기술을 기반으로 탄소중립 녹색도시로 나아가야 하며, 경북은 스마트팜 도입 등 농촌의 지속 가능성을 강화하여 균형 발전의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공간환경전략은 단순히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 지역경제와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고, 대구·경북을 글로벌 환경 모범 지역으로 도약시키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새해에는 대구경북 주민 모두가 함께 만드는 지속 가능한 미래, 그 중심에 ‘대구경북 공간환경전략’이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2024-12-30

시국미사 유감

강길수 수필가 올 12월 15일 자 ‘가톨릭 신문’ 제1면은 전체가 12·3 비상계엄에 따른 ‘시국미사’를 다룬 기사였다. 이례적이다. ‘시국미사’란 말을 신문에서 처음 보는 순간, ‘갈릴레이 갈릴레오’사건이 떠올랐다. 17세기에 로마의 가톨릭 이단 신문소가 갈릴레이 갈릴레오의 과학 업적이 신앙을 해친다고 2차에 걸쳐 재판한 사건이다. 당시 일을 지금 따지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가톨릭은 어떤 사안에 대해 신중하다는 전통을 자부심 삼아 성당에 다닌 나는, 시국미사 보도 사진을 보고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다. ‘이번 시국미사 봉헌 결정에 경솔한 판단은 없었는가.’하는 의문이 이어서 들었다. 고교 때부터 성당에 다닌 나는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활동을 본 사람들이, ‘천주교는 좌파다!’라고 할 때마다 부아가 올랐었다. 반백 년 넘게 가진 신앙이 금가는 느낌도 들었다. 사람들이 ‘좌파’라 말할 때는, 그 안에 종북과 공산주의가 포함된 말로 듣기 때문이다. 나는 매번, ‘하느님을 믿는 가톨릭은 절대 무신론 공산주의와 관련될 수 없다!’라며 항변하지만, 그들의 생각을 바꿀 수는 없었다. 시국미사 기사를 보며, 미사 드리는 이들 안에 정말 좌파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행진하는 사제들 손에 “위헌 위법 계엄 반란 윤석열을 처벌하라!”는 플래카드가 들려있기 때문이다. ‘저분들은 대통령의 담화를 듣고도 왜 저런 행동을 할까.’ 편향된 언론 보도는 믿고, 자국 대통령 말은 못 믿는다는 걸까. 비상계엄의 제1 목적이 자유민주주의를 깨부수는 ‘부정선거 세력의 발본색원과 척결’에 있다는데, 어찌 저런 독단적 시국미사를 정의의 하느님께 바칠 수 있다는 말인가. 하여, 시국미사 사제들에게 ‘부정선거 주장’의 진위를 알아보았는지 묻는다. 부정선거척결운동 하는 이들은, 선관위가 발표한 2017 대선 이후 모든 선거의 개표 결과 수치들을 통계적으로 분석한 자료를 공개했다. 한국같이 전자통신기술이 앞선 나라에서 부정선거는 당치 않다고 생각했던 나도, 2020 총선 분석 데이터를 보고 부정선거가 확실함을 바로 알았다. 수치들이 통계학 대수의 법칙을 위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국미사 사제들은 선관위가 부정선거를 해도 된다는 것인가. 지난 4·10 총선에서 뽑힌 22대 지역구 1야당 국회의원 중, 53명이 부정선거로 당선된 가짜란 근거를 선거 데이터 연구자 G 박사는 제시한다. M 전 의원, 과학자, 전산학자들도 거의 같은 주장을 한다. 법적 증거물이 나오면, 나라가 경천동지할 사안이다. 정치인, 언론 등이 근거 없이 ‘부정선거 음모론’, ‘내란’이라 치부, 선동, 보도하더라도 보편 가톨릭교회는 부화뇌동하면 안 된다. 성 요한바오로 2세 교황은 2000년 사순절에 교회의 과거 잘못을 참회, 사과한 바 있다. 예수님은 복음에서,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라고 가르친다. 부디 앞으론, 가톨릭교회가 갈릴레오 갈릴레이 재판 같은 ‘성급한 판단의 오류’를 범하지 않기를 신자로서 간절히 바란다.

2024-12-30

“모두의 작은 손길이 모여 큰 희망을 만들어 가길”

참으로 다사다난한 한 해였습니다. 힘든 12월의 끝자락에서 올 한 해를 돌아봅니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가 더욱 건강하고 행복한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저는 대한적십자사 경북지사 회장으로서 우리 사회의 가장 어려운 이웃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매일 같이 느끼고 있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어려운 때에 그러한 마음을 담는 대한적십자사의 적십자회비 모금 캠페인에 동참해 주실 것을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전후 시골에서 태어난 저는 우리나라가 참 힘들었던 시절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강냉이죽을 원조 받아 기근을 면하던 나라가 이제 가난한 나라에 원조를 하는 세게 유일한 나라 세계 10대 부국이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러한 기적에도 불구하고 적십자 일을 맡기 전까지 우리 사회에 늘 한 가지 걱정을 갖고 있었습니다. 나라는 남북으로 갈라져 있고 정치적으로 지역적으로. 계층적으로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분열과 개인주의로 차라리 못 살던 그때의 앞집, 옆집 정을 나누던 희망과 공동체 의식이 살아 있던 그 시절이 생각나곤 했습니다. 참 많은 사람들이 헌재의 상황을 포함해서 늘 나라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분열되어 무한 경쟁으로 다투는 그 이면에 팽배한 자기 이익과 개인주의가 우리 모두를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적십자와 함께하며 이런 문제 속에서도 우리 사회가 버텨나가는 힘을 발견하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삭막한 겨울 들판의 메마른 풀숲 속에서도 파릇파릇 새싹이 숨어 새봄을 준비하는 것처럼 곳곳에 십시일반 자기 돈을 내어 봉사회를 결성하고 “언니야, 동생아” 하며 서로를 응원하며 소외된 이웃 재난의 헌장을 찾는 적십자 봉사원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회장을 맡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영주에 산불이 크게 났습니다. 4월의 이른 새벽은 추웠는데 잔뜩 긴장한 마음으로 도착한 재난의 현장에는 밤새 산불 진화 작업을 마치고 교대하기 위해 내려오는 땀범벅이 된 소방관들, 상황을 파악하고 대책을 의논하는 소방과 경찰 본부, 도와 시의 관계자들로 북적이는 긴박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와는 달리 한편에서는 노란 조끼를 입은 수십 명의 봉사자들이 식당을 차리고 무럭무럭 김이 나는 음식을 분주히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고생했지요~ 많이 잡수세요!” 만연의 미소를 띠며 척척 일해내는 봉사원들을 보며 ‘여긴 전쟁이 나도 힐링이 되겠구나’ 하는 큰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후 수해로 뒤범벅이 된 현장과 화재로 만신창이가 된 재난의 현장 곳곳에 나타나 구슬땀을 흘리는 봉사원들을 만나며 ‘이들이 없었다면 과연 누가 이 상황을 수습할 것일까? 인력을 구한들 손발이 맞지도 않거니와 봉사의 마음으로 나선 사람과 같기나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해의 현장에서 내 집안일같이 땀 흘리는 이들을 만나며 우리 사회안전망을 지키는 이들, 적십자의 중요성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사회를 지키는 것은 남의 일이 아니고 우리 모두가 주인이 된 십시일반의 정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어렵던 시절 우리 조상들은 ‘우리 동포를 구제할 자는 우리 동포 뿐이외다. 조석에 쌀 한술을 더시면 한 사람 동포의 생명을 구할 것이요, 두 술을 더시면 두 사람 동포의 생명을 구할 것이외다’라는 적십자 청연서, 호소문을 돌리며 쌀 한술 모으기를 하던 그 정신이 더더욱 절실한 오늘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대한적십자는 국가가 정한 재난구호 주무 기관으로서 세계에서도 모범적인 적십자인도주의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모두가 어려운 이때 나의 마음과 형편이 허락하시는 대로 우리 사회를 우리 손으로 지키자는 십시일반의 마음으로 적십자회비 납부에 동참해 주실 것을 겸손한 마음으로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노란 조끼의 봉사원들과 여러분의 따뜻한 손길이 우리 사회를 지키고 구하리라 생각합니다. 모두의 작은 손길이 모여 큰 희망을 만들어 가길 바라며 도민 여러분들의 많은 동참을 부탁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2024-12-30

해 넘기는 지역현안… 새해는 흔들림 없이 가자

계엄사태 후 이어지고 있는 탄핵정국으로 대구경북 주요 현안들이 주춤하고 있다. 특히 지역의 미래를 걸고 추진하는 대구경북 신공항과 대구경북 행정통합 추진이 이를 뒷받침할 중앙정부의 컨트롤 타워가 무너지면서 사실상 난관에 봉착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신공항과 행정통합은 대구경북 지역의 백년대계를 내다본 대개조 사업이다. 시도민 다수가 두 사업이 계획대로 진행돼 지역의 미래를 밝혔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지방소멸과 인구감소, 노령화, 청년이탈 등 지방이 처한 취약한 문제들이 두 사업을 통해 해소되면서 희망의 길이 열리길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역을 대개조할 두 사업만큼은 어떤 난관에도 헤쳐 나가야 지역의 미래를 열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홍준표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지난주 각각 송년 기자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서 지역 최고 단체장으로서 두 사람은 최근 정국과 관련한 지역현안에 대해 공통적으로 정국이 혼란하더라도 흔들림없이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단체장으로 책임있는 행정을 지속 추진하겠다는 뜻이어서 그나마 시도민에게는 위안이다. TK 신공항과 관련해 홍 시장은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어 공적인 개발에 장애가 사실상 없다”며 “탄핵정국에 따른 불확실성에도 모든 경우의 수를 열어두고 준비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지사는 “신공항 사업은 늦을수록 지역이 손해보는 사업”이라며 “내년에는 반드시 특수목적 법인을 만들 것”임을 밝혔다. 또 TK 행정통합에 대해선 홍 시장은 “대구시는 시의회 통과로 이미 완료했다”며 경북도의 협조를 요청했다. 이 지사는 “행정통합 특별법이 내년 6월까지 국회 통과가 정상이지만 정국 사정으로 내년 연말까지 통과해도 2026년 특별시 출범에 문제가 없다”며 차질없이 진행할 것임을 밝혔다. 신공항과 행정통합은 갈수록 심해지는 수도권 집중과 지방소멸에 맞서는 우리 지역의 필생 숙원이다. 지역 단체장과 정치권이 힘을 모아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 두 단체장의 흔들림없는 추진에 시도민의 기대가 걸려있다.

2024-12-29

민주당의 ‘정부 무력화’,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국회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탄핵소추했다. 야당은 두번째 권한대행을 맡은 최상목 경제 부총리도 헌법재판관 3명의 임명을 수용하지 않으면 또 탄핵소추를 추진하겠다고 예고했다. 탄핵혐의는 ‘내란 동조자’다. 최 대행은 헌법재판관 임명에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행이 앞서 “재판관 임명은 대통령의 중대한 고유 권한”이라며 거부 의사를 밝힌 상황에서, 자신이 ‘대행의 대행’ 자격으로 권한 행사를 하기에는 부담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내에서는 ‘국무위원 무더기 탄핵’ 얘기까지 나오는 모양이다. 지금 남아있는 국무위원 일부를 한꺼번에 탄핵소추하면 국무회의는 의결정족수가 부족해 열리지 못하게 되고, 행정부 기능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 강경파 의원의 생각이라고 하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현 국무위원 19명 중 국방부·행정안전부·여성가족부 장관은 공석이고, 박성재 법무부 장관은 탄핵소추 당해 직무가 정지된 상태다. 나머지 국무위원 15명 중 5명만 탄핵소추하면 국무회의 심의 최소 의사정족수인 11명을 충족하지 못한다. 행정부가 국무회의를 열 수 없는 식물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의석 170석을 가진 민주당이 입법권을 무기로 국정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지금 우리 경제는 정치적 혼란이 심화하면서 파국으로 가고 있다. 원화가치는 15년 9개월만에 최저치로 급락했다. 조만간 환율이 1500원을 넘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대부분 주요자원을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기업들은 늘어나는 이자부담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다음달 출범하는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무역전쟁을 시작하면, ‘조타수’ 없는 우리 경제는 더 압박을 받게 된다. 위험한 것은 경제뿐이 아니다. 탄핵소추안 연쇄가결로 외교와 안보도 공백상태에 있다. 이 모든 게 윤 대통령의 느닷없는 계엄선포로 촉발되긴 했다. 그러나 우리 헌정사상 듣도 보도 못한 국무위원 줄탄핵으로 나라가 망가질 경우, 국민은 이를 주도한 민주당에도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이다.

2024-12-29

계엄군

▲ 김규종경북대 교수·인문대학 12월 3일 비상계엄 당시 국회에 진입한 707특임대 소속 사병들이 뇌리(腦裏)에 오래도록 남아있다. 707특임대는 대한민국 최정예 특수부대로 대테러 작전, 인질 구출, 특수작전처럼 국가적으로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주요한 임무다. 707특임대는 테러 위협에서 우리 조국 대한민국을 지키는 최후의 방패로 불리며, 뛰어난 전투 능력과 고도의 훈련을 자랑한다. 그런데 707특임대 사병들이 12월 3일 밤에 보여준 모습은 아주 특이한 것이었다. 국회 유리창을 느릿느릿한 속도로 힘겹게 부수는 장면, 화분을 조심스럽게 옮기고 난 다음에 국회 사무실 유리창을 넘는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소화기를 뿌리며 저항하는 국회의원 보좌관에게 대단히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장면 또한 신선하게 다가왔다. 서로 약속이나 한 것처럼 전혀 서둘지 않고, 뒤로 물러나면서 폭력행사 자체는 아예 생각하지도 않는 그들의 모습은 참으로 경이로운 것이었다. 소화기를 핑계 삼아 이리저리 서성이는 장면에서 나는 707특임대 사병들의 생각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었다. ‘우리 부대는 잘못된 시각에 잘못된 장소에 투입되어 잘못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러니 태업(怠業)해야 한다.’ 나처럼 나이 먹은 세대에게 ‘계엄군’은 곧바로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무한폭력을 행사하여 학살 만행을 자행한 잔인무도(殘忍無道)한 사병과 장교들을 의미한다. 한강이 ‘소년이 온다’에서 그려낸 것처럼 눈 하나 깜짝이지 않고 어린 학생들을 죽여버리는 잔혹성이 그 당시 비상계엄을 겪은 2-30대 청춘들에게 각인된 계엄군의 모습이다. 1948년 10월 여순사건을 빌미로 이승만은 첫 번째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곧바로 11월에 제주 4·3사건을 빌미로 2차 비상계엄을 발동한다.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이승만은 비상계엄을 발판으로 ‘보도연맹’ 사건을 일으켜 2∼30만에 이르는 국민을 처참하게 학살(虐殺)한다. 학살극에 동원된 경찰과 군인들이 훗날 장교로 베트남에 파병되었다가 광주로 투입된 것이다. 한국 사회의 피비린내 진동하는 폭력의 변주(變奏)는 이승만에서 시작되어 박정희를 거쳐 전두환에게 이어진 것이다. 문화와 예술, 여성의 시대인 21세기 대명천지 문화강국 대한민국에 참담한 비상계엄이 발동되었다. 그런데 이번 12월 3일 비상계엄에 동원된 계엄군은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과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상부 지시대로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폭행하고 살해했던 광기(狂氣)의 계엄군이 완벽하게 사라지고 전혀 새로운 21세기 계엄군이 출현한 것이다. 그들은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교양인이자 따뜻한 가정에서 사랑을 받고 자란 신세대 사병이었다. 그들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 이미 가슴으로 알고 있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후배 민주 시민이었다. 한강은 “과거가 현재를, 죽은 자가 산자를 구할 수 있는가?” 하고 묻는다. 나는 신세대 계엄군을 보면서 죽은 자는 산자를 구했고, 과거는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까지 구원했다고 생각한다. 젊은 계엄군들의 놀라운 자제력과 정확한 판단 능력, 뛰어난 도덕성에 큰 박수를 보낸다.

2024-12-29

올드 랭 사인

우정구 논설위원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은 수백년 동안 스코틀랜드에서 전해져 오는 민요다. 작곡가는 미상이나 1788년 스코틀랜드 시인 로버트 번스가 지은 시로 가사를 입혔다. 스코트어로 ‘오랜 옛날부터’라는 뜻이다. 영어로는 ‘아주 오래 된’ 의미의 Old Long Since로 쓰인다. 우리나라에서는 작별이나 석별의 정이란 뜻으로 해석되고 있다. 1929년 캐나다 태생의 지휘자인 가이 롬바르도의 밴드가 뉴욕의 한 송년파티에서 이 곡을 연주해 유명해졌다고 전해진다. 1997년 영국의 속령이었던 홍콩을 중국으로 돌려주는 반환식 때도 영국군 의장대가 마지막으로 행진하며 연주한 곡이다. 팝, 컨트리, 디스코 등으로 편곡돼 지금까지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곡으로 유명하다.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에 있을 때 안익태 선생이 곡을 붙이기 전까지 애국가 멜로디로 사용된 곡이다. 특히 졸업식이나 송년회 등 석별의 정을 나누는 장소에는 반드시 등장하는 곡이다. ‘우리 오래된 인연을 어찌 잊겠느냐’로 시작하는 노랫 가사는‘우리 한잔의 다정함으로 좋았던 옛날을 위해 축배를 들자’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다사다난했던 한해가 저문다. 올해만큼 정치가 국민을 실의와 낙담의 경지로 몰아낸 적이 있을까. 교수들이 뽑은 올해 사자성어 도량발호(跳梁跋扈)가 바로 지금과 같은 경우다. 국민과 정부는 안중에 없다. 오로지 권력을 가진 정치만이 세상을 마음대로 휘둘러대는 모습이 꼴불견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올 연말에도 어김없이 ‘올드 랭 사인’은 울려 퍼진다. 희망찬 새해를 기약하기 때문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12-29

전문화 분업화 시대 의미

김종찬 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우리나라에서 전문화 분업화된 결과는 비교적 짧은 시기에 사회 문화와 기업의 본질에 있어 많은 영향을 미쳤다. 70년대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 형님 동생 온 가족이 농사에 매달려 사계절을 쉴 틈 없이 일을 하는데도 늘 배고픔에 서러웠다. 모내기철이 되면 초등학생도 논에서 못줄 대기를 해야 했고, 가을이 되면 탈곡기에 낱알을 털어내고 남은 볏짚을 날라야 했다. 모내기 같은 농번기에 노동력이 집중됐기에 지금의 유연 생산체제인 소인화 개념의 품앗이를 통해 일시적 노동력 부족을 해결하였으나 고단함은 나아지지 않았고 수확량의 변화도 더디기만 했다. 이제는 전 국민의 5%만 농사를 짓는데도 쌀이 남아돌아서 오히려 골칫거리인 아이러니한 시대에 살고 있다. 온 가족이 농사에 매달리지 않아도 배곯을 일이 없으며, 여가를 어떻게 보낼까 하는 워라밸을 더 중요시하며 풍요의 열매를 누리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혹자는 이런 풍요를 한강의 기적이란 말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우리 민족의 저력을 이야기하지만 이러한 결과는 분업화 전문화를 통한 생산성의 획기적 변화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기적이 아닌 경영의 성과인 것이다. 이앙기는 모내기에서 초등학생의 노동력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으면서도 효율은 높고 생산 비용은 획기적으로 절감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제는 이앙기도 필요 없이 드론을 이용하여 볍씨를 직접 파종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농사에도 고전적 개념의 농부가 필요 없는 시대가 머지않았다는 뜻이다. 우리가 인식 못 하는 사이 사회는 ‘전문화’와 ‘분업화’로 빠르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전문화와 분업화는 인풋 대비 아웃풋을 극대화하여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경쟁력이 약한 고리를 위협하고 있다. 우리 사회와 기업도 변화하는 전문화, 분업화에 대비하지 못한다면 더 큰 위협은 이제부터 시작일 수 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이 뉴스를 타고 있다. 드론이 적군 지역을 정찰하여 탐지된 군인의 항복을 받아내고, 프로그램된 시퀀스에 따라 명령을 아주 건조하게 수행하는 모습이 현실에 구현되고 있다. 앞으로 전문화는 군에서 변화가 더욱더 속도감 있게 전개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견하고 있다. 이제는 백만 대군, 십만 대군이니 하는 숫자는 의미가 없어질 것이다. 미래 군대는 ‘사람 한 명과, 개 한 마리, 컴퓨터 한 대만 있으면 된다’는 말이 있다. ‘사람이 하는 일은 개를 먹이는 것이며, 개는 인간이 컴퓨터를 못 만지게 하는 것이다’ 철저하게 아웃풋을 내기 위한 전문화 분업화된 첨단 시대를 풍자하는 유머 속에 담긴 통찰이다. 불의 발견은 인류 최초의 발견이고 인류 문명의 출발이었다. 불을 자연에서 어렵게 얻었던 시대를 지나 불을 쉽게 다루게 되면서 인류는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그 중요한 불을 손쉽게 얻을 수 있는 도구를 인류가 발명한 것은 불과 150여 년 전이었다. 인간은 무려 5만 년 동안 불씨 보관 방법을 두고 전전긍긍했던 것이다. 이런 누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2024-12-29

무속이란 무엇인가

유영희 작가 OO보살이니 OO법사니 하는 무속인의 이름이 뉴스에 오르내린 지 오래되었다. 언젠가부터 무속인이라고 부르지만 원래 명칭은 무당이다. 그러나 보살은 열반에 들었다가 중생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어 세상에 다시 온 사람을 이르는 말이고, 법사는 출가는 하지 않았지만 승려 못지않게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는 지도자다. 반면 무속은 미신과 동의어처럼 쓰인다. 인기 드라마 ‘더 글로리’에도 무당을 맹신하다가 딸까지 나락으로 보내는 인물이 나온다. 무당을 무속인이라고 바꿔 부르게 된 것도, 이들이 불교 용어를 차용해서 쓰는 것도 모두 무당에 대한 인식이 안 좋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무당을 가까이에서 몇 번 본 적이 있다. 초등학교 때 이웃집 마당에서 내림굿하는 무당이 작두 타는 것을 본 적이 있고, 엄마의 병환이 2∼3년간 병원 치료에도 차도가 없을 때 이모의 권유로 동네 무당에게 굿을 부탁한 적도 있다. 엄마는 무속을 믿는 분이 아니었는데도 너무 답답하다 보니 이모의 권유를 수용하셨다. 방에서 하는 작은 기도 수준이었고 큰 기대는 하지 않았기에 차도가 없어도 실망하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파킨슨병인데, 그동안 오진으로 치료를 잘못했던 것이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무당은 대학 강의실에서 만난 만신 김금화였다. 내가 대학원 재학 당시 김용옥 교수가 학부 강의 시간에 초청했던 것인데, 문과대학에서 가장 큰 강의실이었는데도 서 있을 자리도 없이 꽉 찼던 기억이 난다. 그때 김금화 선생은 무당이란 개인의 길흉화복을 점치고 예방해주는 기능에 더해서 공동체를 위해 기도한다고 했던 것이 기억에 또렷하다. 2017년에 나온 김금화 선생 인터뷰 기사를 보니, 당시 87세에도 나라가 편안하고 평화통일을 이루고 전쟁 없는 나라가 되게 해달라 기도드리고 있다고 한다. 학술적으로 무속과 관련하여 큰 업적은 남긴 유동식 교수는 ‘한국 무교의 역사와 구조’에서 단군을 비롯한 주몽이나 혁거세와 같은 건국 인물이 모두 무당이라면서 하느님의 강림과 인간의 성화를 이룬 사람이라고 분석했다. 무당이 원래는 사회 공동체의 안녕을 도모했다는 뜻이다. 많은 무당이 신당에 모시는 인물은 바리공주다. 바리공주는 오구대왕에게 버림받았지만 불치병에 걸린 부모를 위해 서천에 가서 약수를 가져와서 부모를 살린 것으로 유명한데, 그 이후가 더 중요하다. 바리공주가 서천에 다녀오는 과정에서 지옥에서 고통받는 수많은 영혼을 보고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저승으로 가기 때문이다. 지옥에 간 사람들은 이승에 있을 때 벼슬아치의 착취를 못 이겨 도둑질 같은 죄를 지은 사람들이었다. 바리공주는 이승의 안락을 마다하고 사회적 약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저승으로 간 것이다. 공동체와 사회적 약자를 위하던 무속이 지금은 국민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권력자들이 무속에 기대어 국사를 결정한다는 소문이 무성한데, 비상계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노상원 집앞에 막걸리와 초들이 쌓인 사진까지 보니 참담하다. 홍익인간을 외치던 단군은 아니지만 김금화 같은 무당을 바라는 것도 무리일까?

2024-12-29

예천군, 도전과 혁신으로 지역발전 가속화

김학동 예천군수 2024년 예천군은 사회적 혼란과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도전과 혁신의 길을 걸으며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예천의 발전은 곧 경북의 발전이자 대한민국의 성장’이라는 구호 아래, 예천군은 군민의 삶의 질 향상과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행정력을 집중했다. 군은 2023년 수해의 아픔을 딛고 역점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한 결과, 2024년 현재까지 40여 개 이상의 대외 기관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특히 대한민국 자치발전 대상, 대한민국 국토대전, 환경부 그린시티 선정 등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예천군은 교육발전특구 시범지역 지정, 평생학습도시 지정, 농어촌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조사업 등 공모사업에서 830억원 이상의 사업비를 확보하며, 경북의 중심도시로서의 위상을 강화하고 있다. 주민 활력, 농업과 경제의 선순환 구축으로 지역발전지수(RDI) 평가에서 주민 활력 분야 순위가 153위에서 59위로 급상승하며, 민관 협력 네트워크와 주민 역량 강화 프로그램이 주요한 성과로 인정받았다. 지역 전문가 그룹인 ‘신활력플러스추진단’을 구축하고, ‘예천희망아카데미’를 통해 주민들의 자립적 발전을 지원한 결과, 예천군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또 농업분야에서는 디지털 혁신 농업타운 내 지역특화 임대형 스마트팜, 곤충·양잠산업 거점단지 등을 통해 농업의 첨단화와 소득 증대에 앞장서고 있다. 예천군은 신도시와 원도심의 균형발전을 위해 다양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신도시에는 패밀리파크와 미세먼지 차단 숲을 조성하고, 송평천을 수변공원으로 변환하여 주민들이 가족과 함께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다. 원도심에는 새뜰마을 사업과 전선지중화 사업을 통해 쾌적한 주거환경을 만들고, 간판 개선과 도시 경관 개선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또 ‘희망키움센터’와 같은 주민 역량강화 중심지로 원도심에 활력을 불어넣고, 청년 창업 지원을 통해 주민주도의 지역 재생을 꾀하고 있다. 앞으로 예천읍에는 남산공원 명소화 사업을 통해 남산공원, 예누리길 맨발걷기공원, 개심사지역사공원을 연결해 새로운 관광허브로 조성하고 신도시에는 도시첨단산업단지를 조성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경제 발전을 도모할 방침이다. 김 군수는 기후 변화와 환경문제 해결을 위해 주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맞춤형 환경 정책을 추진하며, 각종 대외 평가에서 우수한 성과를 거두었다. 환경부 그린시티 선정, 에너지효율 및 친환경 대상 환경부 장관상 수상 등 지속 가능한 환경 관리로 인정받았다. 특히 ‘쓰담달리기’와 ‘클린예천 보물마차’와 같은 주민 참여형 환경 운동을 통해 군민들이 일상에서 환경 보호에 적극 동참하도록 유도하며, 재활용과 자원 순환을 촉진하고 있다. 군은 앞으로도 주민 참여를 기반으로 일상과 밀접하게 연결된 쉽고 특색있는 환경 정책을 추진해 더욱 살기좋은 환경을 조성해 나갈 계획이다. 특히 미래 지향적인 교육 및 복지 정책으로 아이와 부모가 함께 행복한 명품 교육도시를 목표로 다양한 교육 사업도 큰 성과를 나타냈다. 공공산후조리원 건립과 아이돌봄센터, 복합커뮤니티센터 운영을 통해 보육 부담을 줄이고, 미래 교육지구 사업과 교육발전특구 사업을 통해 초·중학생들의 교육 환경을 개선하고 있다. 또한, 청소년을 위한 대입 진학 지원과 다양한 교육 사업을 통해 예천군은 교육과 복지 분야에서 모범적인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예천군은 2025년 새해에도 ‘군민 모두가 행복한 평생 행복도시 예천’을 목표로 끊임없는 도전과 적극행정을 이어나간다. 온종일 돌봄사업을 통해 아이들을 위한 양질의 돌봄체계를 구축하고, 명품교육도시 사업과 함께 운영해 육아와 교육비 부담을 대폭 줄여나갈 방침이다. 또 예천에서 성장한 청년들이 지역에서 창업을 하고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청년도약 프로젝트 사업도 추진해 나간다. 예천경찰서 부지에는 새롭게 예천군 종합복지관을 건립하고, 시니어클럽, 노인 일자리, 어르신 교육지원 사업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어르신들이 지역에서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한다. 또한 농업과 관광을 융합한 지속 가능한 발전 모델을 통해 지역 경제를 더욱 활성화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도전과 혁신을 지속적으로 펼쳐 나갈 계획이다.

2024-12-29

“아름다운 아이였잖니….”

이희정 시인 아무것도 꽃과 풀 속의 영광된 시간을 되돌려 놓을 순 없지만우리는 슬퍼하지 않으며,오히려 그 속에 담겨있고,언제나 있어 왔던 원초의 조화 속에 담겨있고,죽어서도 지킬 진실된 마음속에 담겨있는,주의 권능 속에서 발견하노라.우리를 살아 있게 하는 심장으로 인해,그 심장의 따뜻함과 기쁨과 두려움으로바람에 흩날리는 가장 연약한꽃 한 송이조차,너무 깊어서 눈물로도 표출할 수 없는사색을 믿게 하누나.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어린시절 회상을 통한 영원불멸의 노래(Ode: Intimations of Immortality from Recollections of Early Childhood’, 182~190행 / 204~208행) 시가 무엇을 볼 수 있다는 믿음, 워즈워스의 시는 그렇게 재현된다. 스크린 속 강물처럼, 혹은 스크린 밖 불멸의 노래처럼. 우리가 사랑하는 영화, 로버트 레드포드 감독(Robert Redford)의 ‘흐르는 강물처럼’(A River Runs Through It)을 기억하는 이라면 알아차릴 것이다. 영상이 펼쳐내는 슬프고도 은유적인 정경에 잠기고 감정에 몰두하다가도 어느새 저만큼 훌쩍 흘러가고 있는 강물의 순간들을 말이다. 이제 우리가 영화 속에서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1770~1850)가 노래한 어린 시절 회상을 불러내면 어떤가. 이때 다시 마주하는 영상 혹은 시는 사뭇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영화의 공간적 주요 배경은 노먼의 전기를 다룬 고향인 몬테나주의 울창한 숲과 빅 블랙풋 강(Big Blackfoot River)이다. 매 순간 사로잡혔던 영상을 되짚으며 시와 교접하는 지점을 반추하며 마음에 번지는 의미를 사색해 보는 것이다. 멈추지 않고 흐르는 것은 아름답다. 아버지와 두 아들이 강에서 제물낚시(Fly fishing)를 하는 장면은 사실상 아들과 동생을 잃은 가족의 고통스러운 밑그림이다. 그러니 영화에서 목회자인 아버지와 아들이 낭송한 이 시구는 불멸의 영혼을 믿겠다는 의지이며 애도이다. 한 줄기 상실의 강이 아프게 흐르는 가운데 화자는 결국 영화에서 가족처럼 결국‘남겨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워즈워스의 수많은 시편이 마음의 궤적과 파장을 깊게 담아낸다. 문학가 엄용희는 “자연에 관한 사색과 찬미, 프랑스 혁명 초기를 배경으로 한 인본주의적 열정, 삶을 채워가는 고통의 면면들에 대한 숙고, 지나간 일의 새로운 이해와 감정의 고양 등 워즈워스의 시를 읽을 통로는 다양하다며 워즈워스는 시를 배우기 좋은 시인”이라고 했다. 워즈워스의 시에 자주 드러나는 죽음의 극복이라는 지향성은 영혼의 불멸을 이루려는 방편으로서의 언어로 볼 수 있다. 여기서 시인의 ‘불멸성’은 ‘죽음’을 읽는 다른 방식이 된다. 끝내 죽음으로 내던져진 아들 폴의 알코올 중독과 도박장 사건은 추악한 인간사의 표면일지 모른다. 그러나 시종일관 아름다운 숲과 흐르는 강의 풍광의 전망으로 인도하며 인간사의 내밀한 고통을 어린 날의 회상 장면으로 몰입시키는 것에 시는 구조적으로 배치되었다. 잔잔히 흐르는 강물에 드리워진 기다란 곡선의 낚싯줄과 물결을 투과하는 빛의 환희가 한없이 고요한 워즈워스의 시를 내장함으로써 그 기품은 고조된다. 어린 시절의 회상은 타자에 관하여 신실하고도 식지 않은 심장을 가진 아들 폴의 아름다운 내면을 응축하고 있기에. 영화 속 아버지의 마지막 대사는 간접화법으로 흐른다. 마치 강물처럼, 시처럼 멈추지 않고. “아름다운 아이였잖니….”

2024-12-29

국민의 행복증진이 정치의 목적

복잡다단한 세상에서 지혜가 필요할 때 의외로 답은 고전에 숨어 있습니다. 선조들의 빛나는 통찰과 지혜는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정곡을 찌릅니다. 세상살아가는 이치는 어찌보면 동일한 것이기 때문일까요? 오랫동안 인문학 스타강사로 활동했던 신동기 박사의 고전으로 알아보는 세상이야기를 풀어봅니다. 생각의 높이가 커져야 사회가 발전합니다. 세상을 향한 깊은 통찰을 담은 고전에서 삶의 실마리를 푸는 단초를 발견하기를 기대합니다. 고전은 우리에게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자세를 요구합니다. ‘옛것을 익혀 거기에서 새로운 지식을 얻는다’, 바로 공자의 그 온고이지신입니다. 정치론은 윤리 수준에 머물 뿐만 아니라 그 내용도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같은 사서에 속하는 ‘맹자’에서는 정치를 현실적·논리적으로 다루고, 공자 역시 ‘논어’에서 정치를 다루고 있습니다. 먼저, ‘민주주의 원리’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맹자는 ‘맹자’ 〈진심장구하〉 편에서 말합니다.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社稷)이 그다음이고, 임금이 마지막이다.” 나라의 주인은 결국 백성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맹자는 백성들의 뜻을 좇는 것이 정치라 말하고 있습니다. “걸·주 임금이 천하를 잃은 것은 백성을 잃었기 때문이며, 백성을 잃은 것은 바로 백성들의 마음을 잃었다는 것이다. 천하를 얻는 방법이 있으니, 바로 백성을 얻으면 천하를 얻은 것이다. 백성을 얻는 방법이 있으니, 백성들의 마음을 얻으면 곧 백성을 얻은 것이다. 백성들의 마음을 얻는 방법이 있으니, 백성이 바라는 것을 백성과 함께 행하고 백성이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다.” 공자 맹자 당시는 신분제 왕정 사회였습니다. 그러나 신분제 사회라 할지라도 양심 있는 지식인이라면 시대·상황 불구하고 ‘사실’과 ‘논리’를 외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모든 인간 안에 스며있는 올바른 이성’에 근거하는 자연법 사상에서 처럼, ‘정치’를 ‘그 땅에 몸을 붙이고 사는 백성이 주인이다’라는 오늘날의 ‘민주주의’와 통하는 개념으로 결론지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두 번째는 공직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맹자’〈만장장구하〉 편에서 이런 말이 나옵니다. “벼슬은 가난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 아니지만 때로는 가난 때문이기도 하며, 결혼은 부모를 봉양하기 위한 것이 아니지만 때로는 봉양 때문이기도 하다. 가난을 해결하기 위해 벼슬을 하는 자는 높은 자리를 사양하고 낮은 자리에 머물 것이며, 높은 급여를 사양하고 낮은 급여에 머물러야 한다. 높은 자리를 사양하고 낮은 자리에 머물고 높은 급여를 사양하고 낮은 급여에 머무르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바로 문지기나 야경꾼과 같은 직책을 맡는 것이다.” 공직을 맡는 것은 기본적으로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고 자신의 뜻을 펼치기 위한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원칙적으로 이 말은 오늘날과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이나 장차관·지방자치단체장 등과 같은 고위직, 검·판사 등의 판관, 국회의원·광역 혹은 기초의회 의원과 같은 공직에는 맞는 말입니다. 국가 살림을 맡으면서 수많은 이들의 삶을 돌보고, 법과 정의라는 이름으로 신의 위치에서 인간의 선악을 재단하고, 한 사회의 대원칙을 정하는 것과 같은 일은 숭고하면서도 사람들 중 극히 일부만이 갖는 매우 특별한 명예입니다. 돈을 벌 욕심이면 마땅히 자기 사업에 나서야 할 일이고, 먹고 살기 위해 공직을 선택했다면 그냥 낮은 자리에 만족해야 합니다. 고위직의 재량권이나 판관직의 재량 및 판결권을 선물로 거래하거나 전관예우로 장사하고, 나라의 규칙을 정하고 예산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이익을 개재하는 것과 같은 행위는 국가 시스템을 교란하고 국가자산 횡령, 국민복지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입니다. ‘국가로부터 주어진 지위를 팔아 사익을 취한다’는 측면에서 근본적으로 나라를 파는 반국가적 행위와 다르지 않습니다. 《대학》〈전문10장〉에서 맹헌자라는 인물이 말합니다. “수레를 타는 대부는 닭이나 돼지 키우는 데 관심을 두지 아니하고, 한여름 대사 때 얼음을 쓸 수 있는 경대부는 소나 양을 키우는 데 관심을 두지 아니한다.” (畜馬乘 不察於雞豚 伐冰之家 不畜牛羊) 높은 공직을 맡는 것은 비즈니스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높은 뜻을 펴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세 번째, 국민의 단결에 대해서입니다. 정치인들은 국가 위기 시 흔히 국민의 일치단결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국민의 일치단결은 요구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알아서 저절로 되든지 안되든지 하는 것입니다. 맹자가 ‘맹자’ 〈양혜왕장구상〉에서 양혜왕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시경에서 말하기를 ‘영대를 만들 계획을 세워 일에 착수하니 백성들이 모여들어 하루가 안되어 영대가 완성되었구나. 계획할 때 너무 서둘지 말라 하였거늘 백성들이 나서서 하루 만에 일을 마쳤도다’ 하였습니다. ·중략 ·문왕이 백성들의 노고로 누대를 세우고 연못을 만들었는데 백성들이 오히려 그것을 기뻐하여 누대를 영대라 하고 연못을 영소라 부르며, 왕이 사슴·물고기·자라 키우는 것을 즐겁게 여겼으니, 옛사람은 백성과 함께 즐겼습니다. 그래서 진실로 즐길 수 있었습니다.” ‘일치단결’은 그 일이 ‘옳고’, 기본적으로 ‘서로의 이해관계가 일치’할 때 나옵니다. 주왕조의 기틀을 다진 문왕은 자기 혼자만이 아니라 백성들과 함께 즐기기 위해 누각을 세우고 연못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누각과 연못을 서둘러 만들었고 그 규모가 작다고들 했습니다. 자기 것을 자기가 만드는 데 그 누가 기쁜 마음으로 나서지 않고, 그 누가 만들기를서둘지 않겠습니까? 네 번째, 일을 잘하는 방법에 대해서입니다. 증자가 《중용》 〈제20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일은 미리 대비하면 제대로 이루어지고 대비하지 않으면 실패하기 마련이다. 말할 것을 미리 정해 놓으면 차질이 없고, 일할 것을 미리 정해 놓으면 곤란할 일이 없고, 움직일 것을 미리 정해 놓으면 골치 아플 일이 없고, 방법을 미리 정해 놓으면 궁지에 몰릴 일이 없다.” 사람이 일반 동물과 다른 가장 큰 차이는 ‘이성’을 지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성’의 핵심은 ‘논리와 사실’에 입각한 ‘추리’ 능력입니다. 자연은 인과관계가 선명합니다. 사회는 어느정도 인과관계적입니다. 신이 아닌 인간이 예언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인과관계를 이용해 자연과 사회의 변화를 합리적으로 예측해 볼 수는 있습니다. 공자는 ‘논어’ 〈위령공〉 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멀리까지 생각하지 않으면, 가까운 날에 반드시 근심할 일이 생긴다.” 합리적인 예측을 통해 미리 대비하는 것이 일을 잘 하기 위한 상책입니다. 물론 합리적인 예측 이전에 먼저 그렇게 예측하려고 평소 신경을 쓰고 노력하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필자 신동기는…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산업리스(주) 및 동사 일본 현지법인인 KDB Lease (Japan) Co., Ltd.에서 리스금융, 국제금융을 담당하였다. 팀장 퇴직 후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 석사, 단국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한국학중앙연구원 청계서당 연수과정(2년)을 수료하였다. 우리나라 최초로 인문학 범주화(15가지 주제)를 시도해 기업·정부기관·대학·방송 등에서 강의해 왔다. 2008-16년 신구대학교 글로벌경영과 겸임교수, 2019-20년 건국대학교 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로 〈신동기의 인문학 15개 주제〉를 강의하였다.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2023 독서경영 우수직장 인증 사업』 기획위원 및 심사위원을 지냈다. 저서로는 《부모의 인성 공부》《아주 낯익은 지식들로 시작하는 인문학 공부》《오늘, 행복에 한 걸음 더 다가갑니다》(공저)《울림》《SNS인문학》(공저)《이 정도는 알아야 할 정치의 상식》《오래된 책들의 생각》《생각여행》《네 글자의 힘》《독서의 이유》《해피노믹스》《인문경영으로 리드하라》《회사에 대한 오해와 착각을 깨는 인문학적 생각들》《인문학으로 스펙하라》《미래사회 리더의 경영 키워드》《직장인이여 나 자신에게 열광하라》가 있다. 그 외 다수의 오디오북과 《진순신의 삼국지 이야기》《나는 사람에게 투자한다》 등 18종의 번역서가 있다.

2024-12-29

새마음 새 각오로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아기 예수가 태어나 이 세상에 밝은 빛을 내려준 성탄절도 지나고 이제 더 밝은 세상이 오기를 기대하며 뱀띠의 해 을사년(乙巳年)을 맞는다. 국내외적으로 모두 어수선한 가운데 31일 자정에는 서울 보신각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묵은해의 액운을 떨치고 새해를 기원하는 타종식이 열린다. 경북도는 영덕 강구 삼사해상공원에서 ‘2025 도민화합 새해맞이 타종식’을 하며 경북대종을 33번 두드린다. 이에 앞서 송년음악회와 함께 ‘청사(靑巳)조형물에 소원지 붙이기’도 하고 광장에서는 먹거리 부스도 열어서 심야의 추위를 녹여주며, 고래불과 대진해수욕장에서는 해돋이 손님맞이 행사가 준비되어 있다. 경주는 신라 대종과 봉황대 일원에서 가수와 성악가의 식전공연과 함께 타종식을 계획하고 있다. 한편 포항시는 호미곶 한민족해맞이 축전을 준비하여 ‘너와 나의 빛, 상생의 2025’를 슬로건으로 5년 만에 해넘이 행사도 하고 미니 불꽃 쇼와 함께 자정에 카운트다운을 하며 해돋이 축제가 계속된다. 버스킹 페스티벌, 월월이청청 등으로 젊은 세대의 참여를 유도하고 화합과 도약의 마당을 즐기게 한다는 계획이다. 이들 행사 모두 추운 겨울밤 야외에서 하며 포항과 영덕은 해풍도 예상되어 방한복은 물론 모자 장갑 등을 챙겨야 하고 가능한 대중교통을 이용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이제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또 상생의 손 뒤로 솟아오르는 새해 첫 일출을 보며 거대한 가마솥에서 끓여내는 떡국을 먹으며 국가의 안위와 가족의 건강과 평온을 빌어보자. 일출시간은 오전 7시 32분, 날씨는 맑음이다. 새해는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맺어진 지 120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미국과 영국을 꼬드겨 양보를 받아 강제로 체결한 불평등조약이다. 그 뒤 36년간 식민통치를 당한 쓰라린 역사가 있는데, 현재와 같은 미·중·러의 국제관계 속에 북한까지 거들고 있는바, 그때의 늑약(勒約)이 스멀스멀 뇌리에 스치는 것도 국내 정치계가 염려되는 마음 탓일까? 대통령 탄핵과 미국 트럼프 2기 정부의 출범에 따른 국격 하락의 위험성과 경제 불확실성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공격을 받은 지도 벌써 3년이 되어가고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공격도 2년째, 지금도 가자 지구에는 폭격이 끊이지 않아서 이번 성탄절의 베들레헴은 2년째 크리스마스트리가 없고 순례객과 여행객들이 한산하다고 한다. 이렇듯 불행한 사태가 계속되는 가운데 교황청은 25년마다 시행되는 희년(禧年·jubilee)을 맞아 성베드로 성당문을 열고 옛날 유대인들의 노예를 해방했듯이 희망과 용기로 극복하자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을사년에 나라를 잃고 일제의 억압을 받아 나라의 분위기가 흉흉하고 스산하다고 ‘을씨년스럽다’는 말이 생겼다지만, 뱀은 지혜롭고 야망이 있어 새로운 시작과 변화를 이끌어 사태에 굴하지 않고 해결해 나가는 능력을 지녔다고 여기고 있으니, 이번 을사년에는 그 역사를 거울삼아 국민 모두 새마음 새 각오로 이 나라를 반듯한 모습으로 세계 속에 서게 해야 할 것이다.

2024-12-26

광화문 연가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국가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국토와 국민, 그리고 주권이 갖춰져야 한다. 1945년 8월 미국에 의해 해방이 되었지만, 38도선 이남은 미군이 북쪽은 소련군이 점령하고 있어서 일제에 빼앗긴 주권을 회복하지는 못한 상태였다. 1948년 5월 10일 유엔의 감시 하에 남한 지역에서 총선거가 시행되어 198명의 국회의원이 선출되고, 동년 7월 17일 제헌헌법이 제정·공포되었으며, 7월 20일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이로서 대한민국은 국토, 국민, 주권은 물론 국회와 헌법과 정부를 두루 갖춘 국가가 되었다. 대한민국의 정부수립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초기 해방공간에서 조직적이고 적극적으로 활동을 전개한 좌익운동가들과 동조하는 세력의 강한 반발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한민국의 건국은 이승만이란 인물의 투철한 반공정신과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의지로 관철시킨 대업이었다. 하지만 얼마 못 가서 북녘을 장악한 김일성 일당의 남침으로 동족상잔의 전쟁에 휘말리고 말았다. 미국을 위시한 유엔군의 신속한 개입이 아니었으면 대한민국은 그때 없어졌을 것이다. 무슨 이유에서건 미국이 우리나라를 위해서 수만 명의 꽃다운 목숨들을 희생한 것은 크나큰 빚이 아닐 수 없다. 6·25전쟁 후로도 김일성 일족은 적화야욕을 버리지 않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며 끊임없이 도발과 공작을 자행해왔다. 더구나 남한에도 김일성 일족을 추종·동조하는 무리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을 견제하는 것이 곧 국가의 정체성과 안위를 유지하는 길이었고, 그런 정신을 바탕으로 건국 70여 년 만에 세계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는 기적을 이룬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으로 이어지는 좌파정권이 들어서면서 자유민주주의국가의 정체성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급기야는 체제전복의 위협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반공교육을 받지 않은 세대들, 좌파 정권하에서 좌경화 된 세대들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주도하고 있다. 그들은 종북 좌파들에 대한 경각심이 전혀 없는 것 같다. 종북 주사파가 이끄는 좌파집단은 다른 나라의 좌파정당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모른다. 북한의 사주를 받는 간첩들이 곳곳에 침투하여 대한민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암약하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반공교육을 받은 세대들이 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나가는지 알 턱이 없는 것이다.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태극기를 들고 광화문에 운집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종교인들도 있지만 대개가 노년 세대다. 그들은 헐벗고 굶주리며 보릿고개를 넘어온 세대이고, 독일의 광산이나 열사의 중동, 베트남 전쟁터에서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려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룬 세대이다. 그래서 마침내 풍족한 세상이 되었으니 더 바랄 게 뭐겠는가. 다만 이런 나라를 전복하려는 세력들로부터 대한민국을 수호하여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마지막 소망이고 역할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오늘도 태극기를 들고 광화문에 나가 목청껏 충정가를 부른다.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 아아 이슬처럼 기꺼이 죽으리라.”

2024-12-26

사라진 연말특수… 내수 진작에 올인해야

비상계엄 이후 정치 상황에 대한 불안감으로 연말연시 특수가 최악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 지난 24일 20개 전국의 은행장들은 내수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돕는 지원책을 발표했다. 은행들은 매년 7000억원, 3년간 2조1000억원 규모의 금융 지원을 통해 그들의 어려움을 돕기로 했다. 대출금을 갚기 어렵거나 폐업에 처한 소상공인 20만명의 이자 부담을 연간 5000억원 정도 낮춰주고, 재기 의지가 있는 사업자 5만명에게는 1조7000억원의 추가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 등에게는 은행권의 금융지원이 제대로 이행된다면 큰 힘이 될 것으로 예상이 된다. 지금 우리 경제는 국내외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12월 소비자 동향조사에 따르면 이번 달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88.4로 전달보다 12.3포인트가 떨어졌다. 코로나 팬데믹이 발생했던 2020년 3월 이후 최대 하락 폭이다. 경제상황 전반에 대한 소비자 심리를 나타내는 CCSI는 100보다 높으면 낙관적, 낮으면 비관적인 것으로 판단하는 수치다. 비상계엄과 탄핵사태로 이어진 정국 불안정이 시중의 소비심리를 급속히 냉각시킨 때문으로 분석이 된다. 소비심리 냉각으로 직격탄을 맞는 계층은 바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다. 내수시장의 실핏줄과 같은 소상공인 등은 우리 경제를 버티는 기본단위다. 이들이 무너지면 국내경제가 크게 흔들리는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정부 당국과 지방자치단체 등이 나서 송년회 등 연말 소비를 재촉하는 것도 침체된 내수시장을 활성화 시키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내수시장은 생각만큼 되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걱정이다.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시장 심리를 안정 시킬 수 있도록 대응해 나가겠다”고 밝혔지만 범 국민적 대응 노력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특히 지방자치단체는 지역상품권 발행과 같은 지역실정에 맞는 온갖 대응책을 다 내놓아야 한다. 지금은 소비가 애국이라는 말이 나올만큼 내수시장 진작이 절실하다. 내수 활성화에 올인해야 한다.

2024-12-26

동장군이 온다

우정구 논설위원 동장군(冬將軍)은 혹독한 추위를 용맹하고 무서운 장군의 모습으로 빗대 쓰는 표현이다. 기온이 많이 내려간 겨울철이 되면 “동장군이 기승을 부린다”는 말을 보통 잘 쓴다. 반대로 무더운 여름 더위를 빗대 하장군(夏將軍)이란 말을 쓰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아마 더위보다 추위가 사람들에게 견디기가 더 어려운 탓인지도 모른다. 이 말은 1812년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60만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에 쳐들어갔다가 혹독한 추위 때문에 후퇴한 사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곳곳에서 전승을 올리던 나폴레옹도 추위 앞에 완전히 굴복한 것이다. 당시 영국 언론은 나폴레옹의 원정 실패를 ‘General frost’라고 썼다. 일본이 그것을 동장군으로 번역한 것이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48년 서울의 한 일간지가 동장군이란 말을 신문에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나폴레옹은 러시아 전쟁에서 패퇴하면서 결국 몰락의 길로 가게 된다. 러시아는 나폴레옹 전쟁뿐 아니라 북방전쟁,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소전쟁 등에서도 동장군의 도움으로 승리하는 행운을 얻는다. 매서운 추위는 전쟁에 출전하는 장병들에게는 최악의 장애물이다. 맹추위는 장병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영하의 날씨에 계속 노출되면 손발이 어는 동상 환자가 속출할 수 있다. 전쟁은 커녕 제 몸 가누기조차 힘들게 된다. 식량도 얼어 제때 밥을 못먹게 돼 군의 사기는 땅바닥으로 떨어진다. 지구 온난화로 올겨울은 겨울답지 않게 따스했다. 그러나 이번 주 들면서 전국에 강추위가 예보되고 있다. 한번은 지나갈 동장군 소식이다. 단단히 맞을 준비를 해야겠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12-26

한덕수 대행도 탄핵, 야당은 정부붕괴 원하나

국회가 어제(26일) 야당 단독으로 본회의를 열어 국회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 3인의 임명동의안을 처리했다. 민주당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이들에 대한 즉각적인 임명을 거부하자, 오늘 본회의에서 한 대행 탄핵안 절차를 밟겠다고 했다. 한 대행은 “여·야·정 협의체 등에서 합의가 이뤄지면 이를 따르겠다”고 밝혔지만, 협의체는 여야간 견해차로 첫발도 내딛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24일 “한 대행이 국회 선출 헌법재판관 후보자 3인 임명을 하지 않으면 탄핵소추 절차에 들어가겠다”고 예고했었다. 한 대행 탄핵소추안은 오늘 본회의에서 처리될 가능성이 크다. 한 대행이 탄핵소추를 당해 직무가 정지되면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후임을 맡게 된다. 민주당은 이미 최 부총리에게도 “서둘러 헌법재판관을 임명하고 특검을 공포해야 한다”고 압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 부총리가 대행을 수용하게 되면,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국무총리·장관’ 3역을 겸임하게 돼, 경제는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 민주당이 국무위원에 대한 ‘줄탄핵’을 추진하면서 국민불안은 커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에 이어 한 대행마저 직무가 정지되면 우리나라의 대외신인도는 직격탄을 맞게 된다. 한 대행체제는 현재 계엄 사태 후 중단되다시피 한 주요국 외교활동을 정상화시키는 중이다. 미주대사를 역임한 한 대행이 외교역량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한 대행체제는 그동안 연기됐던 한미·한중 외교를 재개하고, 경제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 해외 기업인들과의 접촉도 강화하고 있다. 내년 1월 출범하는 트럼프 미 행정부와 긴밀히 접촉하고 있고, 중국 왕이 외교부장과는 최근 “내년 경주 APEC 정상회의에서 양국이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해 나가자”는 메시지를 주고받기도 했다. 혼란한 국정을 바로잡아가는 과정에서 한 대행마저 탄핵을 당하면,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무정부상태가 된다. 국회를 장악한 민주당이 정부를 붕괴시켜 얻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질문해 봐야 한다.

2024-12-26

“처음부터 끝까지 울어라”

신광조​​​​​​​ 사실과 과학 시민네트워크 공동대표 “역사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때, 일으켜 세우는 자가 있다. 그런 창조적 소수자가 있을 때 역사는 희망을 가진다.” 역사학자 토인비의 말이다. 창조적 소수자는 역사 앞에 겸허하다. 공동체가 가야 할 시대정신과 소명의식으로 무장한다. 열정과 몰두가 가져다주는 상상력이 뛰어나다. 감수성이 빚어내는 눈물도 많다. 민주주의는 다수가 지배하는 사회이지만, 창조적 소수자가 세상과 사회발전의 조타수 역할을 한다. 개혁적이고 창조적인 자가 사회를 이끄는 에너지를 선사하면, 공동체는 이륙(離陸)하여 날게 된다. 창조적 소수자는 지위도 학벌도 부(富)도 명예도 변변찮은 경우가 많다. 전형적인 창조적 소수자인 전남 함평 출신 시인 박노해는 선린상고 까까머리 시절 “내가 희망을 갖고 사는 한, 내 자신이 희망이다. 길을 찾는 사람은 그 자신이 새 길이다”라고 일기장에 썼다. 한평생 희망이 되고 새 길이 되는 삶을 살았다. 공동체 발전의 불씨는 창조적 소수자에 의해 던져진다. 이 불씨를 공동체 구성원들이 잘 지펴 큰 불꽃으로 만들기만 하면 지역사회는 발전의 길을 가게 된다. 19세기 캘리포니아는 골드러시로 ‘기회의 땅’이 되었다. 당시 미국 동부의 콧대 높은 사람들은 캘리포니아를 돈과 섹스만 난무하는 곳으로 폄하하며 여행을 꺼렸다. 그러나 캘리포니아가 변방에서 벗어나 낙원의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은 LA 시청의 새내기 공무원이 제안한 ‘겨울 장미 퍼레이드 축제’ 아이디어 덕분이었다. 한겨울 차가운 지역인 동북부의 많은 이들이 따뜻한 캘리포니아에서 벌어지는 장미의 향연을 질투하였고, 캘리포니아는 꿈으로 가득 찬 무지개가 되었다. “파리만 첨단인가?”라는 도전적인 제목의 프랑스 남서 해안 지방 신문 편집국장 칼럼은 조용하기만 했던 칸과 니스 해변에 예술과 첨단 과학기술을 융합시켜,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과학기술 혁신 도시 ‘소피아 앙티폴리스’를 탄생시켰다. ‘레 미제라블’을 보면, 빅토르 위고가 말한다. “오늘의 문제는 싸우는 것이다. 내일의 문제는 이기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문제는 제값을 다하고 죽는 것이다.” 주인공 장발장은 내내 본분을 다하자고 생각했다. 이 글을 쓰면서, 행여 내 글을 읽어주신 분들이 “시간만 낭비하고 손해만 봤다”라는 기분이 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쓴다. 타인의 희망을 위해 흘린 땀과 눈물만이 시간 속에 남고, 모든 것은 다 가뭇없이 사라진다. 결국 추운 겨울날 연탄 한 장처럼 타올라 세상을 따뜻하게 하고 싶은 ‘사랑’만이 희망이다. 5년 전 ‘판도라’라는 영화 한 편을 보고 결정한 망국의 탈원전 정책으로 울진 원자력 마이스터고 학생들이 취업이 막혀 희망을 잃어버렸다. 탈원전 시위를 벌이다 만난 학생들을 껴안고 울었다. 학생들은 첫 월급을 타서 겨울 바다에 고기를 잡으러 새벽길을 나서는 아버지에게 내의 한 벌 사드리는 것이 희망이었는데 좌절되었다고 눈물을 흘렸다. 그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혹독한 겨울을 이겨낸 나무들이 더욱 푸르름을 낸다. 북풍한설을 이겨내고 서로 자축하는 날이 분명 올 것이다. 우리는 어제 뿌린 씨앗으로 오늘을 살고, 오늘 심은 나무로 내일의 열매를 거둘 것이다. 맨 처음 울기만 해서는 안 된다. 외롭고 힘들더라도 끝까지 울어야 한다.”

2024-12-26

나답게 살자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나이 들면 무엇보다도 외롭고 쓸쓸함이 가장 무섭다고들 했다. 고독력도 힘이라지만 그건 정신력이 강한 자의 얘기일 뿐 평범한 사람에겐 외로움이 가장 힘들 거라고 했다. 반드시 정기적인 만남으로 누구라도 만나 인간관계를 두텁게 해야 즐거운 노후가 될 것이라는 충고들이 많았다. 난 절대로 외로운 노인이 되고 싶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작은 모임을 만들고자 애썼고 마음 통하는 분들을 만날 수 있는 복을 누리게 되었다. 손주들 영어학원에서 매일 만나 정든 ‘할매’들과 매월 둘째 화요일-그래서 모임 이름도 ‘이화회’다-마다 만난 지 벌써 햇수로 3년째다. 점심 먹고 차 한 잔 나누며 시간가는 줄 모르는 수다는 늘 즐겁고 유쾌하다. ‘도보문화산책’은 처음 경주산책에서 시작했다. 몇 년 넘자, 공간은 경주를 넘어 전국으로 확대되고 문화적 범위와 관심사도 미술, 카페 등으로 확장되었다. 전공이 다양한 5명의 구성원들로 대화의 주제는 크고 넓고 수준은 높다. 내방가사를 중심에 두고 만나는 모임도 몇 있다. 안동의 ‘내방가사전승보존회’는 출입한 지 벌써 30년이 가깝고, 많은 분들이 돌아가셨지만 한결같이 예절바른 어르신들의 손은 잡을 때마다 애틋하고 정답다. 역시 내방가사를 인연으로 만나 서로가 서로의 스승이며 제자 관계로 얽힌 세 명의 ‘흰머리소녀’도 햇수로 거의 20년이 다 되어간다. 검은 머리의 40~50대에 만나 모두 흰머리의 60대를 훌쩍 넘었다. ‘내방가사 세자매’는 내방가사가 주된 관심사였고 서예에서 가사에서 논문까지 오직 내방가사에 대한 얘기지만 그 사이 자매애까지 생겼다. ‘선덕여왕경모회’는 경주의 내로라하는 여성 리더들이 선덕여왕을 중심으로 모인 제법 큰 여성단체인데, 격월의 정기모임은 품격이 높다. 매월 셋째 주 일요일, 사촌언니를 따라 ‘108기도순례’에 참가한 지도 반년이 넘었다. 이 정도면 성공적 노후 준비 아닌가. 벌써 한해가 저문다. 이 나이쯤 되면 그날이 그날이고, 그 달이 그달 같고, 그해가 그해 같다. 별 큰 일 없이 그저 그런 평화롭고 고요한 일상이 고맙고, 나날이 맞는 새 날이 행복할 따름이긴 하다. 그럼에도 그저 그런 날에다 방점을 찍고 싶고, 별난 이벤트로 새롭고 특별한 날을 만들기를 즐기는 나였다. 그러니 이즈음을 그냥 슴슴하게 지내는 건, 가고 오는 해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마침 모임마다 송년회를 하자는 뜻을 비치니 얼마나 반가운지. 지난 달 중순부터 슬슬 송년모임을 하나씩 치렀다. 평소와는 좀 멋진 식당에서 특별한 음식을 먹고 따뜻한 이벤트도 하면서 작은 선물이라도 교환했다. 지난 주 있었던 ‘선덕여왕경모회’송년모임에서였다. 한 회원이 고맙게도 나무트레이를 만드는 체험프로그램을 준비해 주셨다. 작은 종이를 나누어주면서 각자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고 읽으라 했다. 모두들 자신을 사랑한다고, 덕분에 행복했다며 자신을 격려하였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적고 읽었다. ‘여전히 나답게 살자.’ 그리고 화들짝 놀랐다. ‘나다움이 뭐지? 자신감? 격려? 긍정?’ 이제 생각해 보니 이는 내가 나에게 던진 커다란 화두 같다. 내년엔 이 숙제 같은 화두 ‘나다운 나’에 집중해 보아야겠다.

2024-12-25

손 저림의 예방과 치료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목뼈에서 나오는 신경들은 합쳐졌다 나눠지면서 팔로 내려온다. 대표적인 신경으로는 요골신경, 정중신경, 척골신경이 있다. 이 신경들은 쇄골 안쪽을 지나 각자의 주행 경로를 따라 위팔과 아래팔, 손가락까지 내려간다. 중간중간 신경의 분지를 내어 근육에 영양 공급을 하며, 손목 쪽에서 여러 가닥으로 나누어져 손가락으로 내려간다. 팔을 과도하게 사용 하거나 잠을 잘못 자서 이들 신경이 눌리면 팔이나 손이 저리기도 하고 힘이 들어가지 않아 물건을 들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 중에서 가장 많은 문제가 생기는 신경은 정중 신경이다. 대부분은 손목의 횡인대에서 신경이 눌려 발생한다. 신경이 눌리면 손가락이 저리고 전기가 통하는 느낌이 든다. 오랫동안 치료하지 않으면 신경의 손상이 생겨 손에 조금만 힘을 줘도 아프고 저려 손의 사용이 불가능한 경우도 생긴다. 손목터널 증후군 환자의 정중 신경을 초음파로 스캔해 보면 신경의 단면적이 갑자기 두 배 정도로 커지는 경우가 있다. 이는 신경이 많이 눌린 상태로 병이 오래되었고 신경 자체의 손상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초음파로 실시간으로 보면서 약침으로 신경 주변을 압박하는 인대와 주변 손가락 힘줄들을 분리해 줄 수 있다. 현재는 이렇게 하는 치료법이 가장 효과적이다. 심하지 않은 경우에는 몇 회 치료로 많이 개선되지만 오래되고 심하게 눌린 경우에는 10회 이상 반복적으로 치료해야 한다. 이때 심부 혈액 순환을 돕는 한약 처방을 함께하기도 한다. 모든 신경은 목에서부터 내려오므로 잘 낫지 않는다면 경추 쪽 신경 뿌리나 신경들이 얼기설기 모여 있는 상완 신경총을 함께 치료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 추나요법을 병행하면 목과 팔까지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어 보통 같이 치료한다. 초음파로 확인했을 때 가끔 신경 밑이나 손가락 힘줄 부근에 물혹이 생겨 압박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직접 그 부분에 약침액을 주사해 빵빵하게 부풀린 후 터뜨리는 방법을 사용한다. 원인이 제거되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터널 증후군보다 빨리 좋아진다. 이렇게 초음파로 직접 보기 전까진 사실 정중신경 상태가 어떤지 물혹이 누르는지 손가락 힘줄이 부어 누르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어떤 상태인지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손 저림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손을 사용하는 것을 최대한 자제하고, 불가피하게 손을 사용해야 한다면 손목 보호대를 착용하여 손목을 보호해야 한다. 일이 없을 때는 손목 보호대를 풀어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해주고, 사용 후에는 신경이 지나가는 경로의 팔뚝을 꾹꾹 눌러 뭉친 곳을 풀어주어야 한다. 바로 누운 뒤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한 상태에서 다른 사람이 아래팔의 이두근부터 아래팔 근육을 눌러 풀어주는 것이 좋다. 자세는 항상 바른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허리를 펴고 가슴을 편 뒤 턱을 당겨 둥근 어깨와 일자목을 예방하고 개선해야 한다. 자세가 바르지 않으면 목이 앞으로 빠지면서 목과 팔까지의 신경이 고무줄이 늘어진 것처럼 당기는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꼭 자세를 바로 해야 한다.

2024-12-25

붕어빵과 호빵으로 6000억원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겨울이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군입거리가 붕어빵과 호빵이다. 과거 붕어빵은 붕어 모양 틀에 밀가루 반죽과 팥소를 넣어 만들었다. 호빵 역시 반죽된 밀가루 속에 팥을 넣어 뜨거운 증기에 쪄서 먹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사람들의 입맛도 바뀌었다. 붕어빵 속에 팥이 아닌 슈크림이나 치즈 등을 넣기 시작하더니, 요즘엔 견과류까지 더해 “맛과 영양 2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고 호언하는 장사꾼까지 등장했다. 호빵 역시 마찬가지. 천편일률 팥이 아닌 만두소나 피자소스를 재료로 사용한 독특한 호빵이 MZ세대의 입맛을 유혹하고 있다. 한국 붕어빵과 호빵은 외국인도 좋아한단다. 최근 관세청이 “올해 1부터 11월까지 베이커리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8.3% 증가한 4억400만 달러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붕어빵, 호빵 등 세칭 ‘K-베이커리’의 수출액이 사상 최대를 기록한 것이다. 한국 대중문화의 인기에 힘입어 붕어빵과 호빵이 수출 효자상품으로 등극했다는 소식. 뒤이어 연상 작용으로 한국 대중가수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붕어빵을 먹는 독일이나 미국 청소년들이 떠오른다. 10~20년 전엔 상상하지 못했던 광경이다. 붕어빵과 호빵을 포함한 K-베이커리는 세계 120개 나라로 수출되고 있고, 한 해 판매량이 앞서 언급한 것처럼 6000억원을 넘나든다고 한다. 지난 시절. 불어오는 차가운 겨울바람 앞에서 언 손으로 ‘호호 불며’ 한국의 코흘리개들이 먹던 붕어빵과 호빵이 바다 건너에서도 칙사로 대접받고 있다니 격세지감이다. 오늘 퇴근길엔 오랜만에 붕어빵 한 봉지 사야겠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