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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발바닥 통증의 예방과 치료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발바닥에 오랜 시간 하중이 실리게 되면 발바닥 근막 쪽이 붓게 되고 염증이 생긴다. 특히 발뒷꿈치 바닥 쪽에 부하가 많이 실리게 되고 방치하게 되면 골극이 생기기도 한다. 골극이 생기면 영구적으로 그 부위가 압박이 되기 때문에 조금만 무리를 하게 되면 근막이 자극되어 붓고 염증이 생기게 된다. 실제 발바닥 통증으로 내원한 환자 중 일부는 골극이 생긴 환자들도 있다. 발바닥 통증이 생긴다면 골극이 생기기 전에 주변 한의원이나 병원을 찾아 빨리 치료를 하는 것이 좋다. 발바닥 통증은 심해지면 걷는 것이 힘들어지기 때문에 빨리 조치를 취해야 한다. 오랜 시간 서 있는 직업에서 많이 생기는 병인데 마트에서 서서 계산을 하는 직업을 가진 여성이 이 질환에 많이 걸린다. 한 자세로 서 있으면 걷는 것 보다 발뒷꿈치 바닥 쪽으로 몸을 지탱하는 시간이 월등히 길어져 부하가 가중된다. 또 여성들은 남성보다 근육이 작고 약하기 때문에 더 힘들게 일하는 남성들보다 빨리 근육이 피로해지고 염증이 생긴다. 다른 부위는 아프면 사용을 하지 않고 쉬게 둘 수 있으나 발바닥은 그럴 수 없기 때문에 또 잘 낫지 않는다. 이동을 하려면 무조건 걸어야 하고 서있어야 하는데 이런 일상생활 자체가 발바닥에 무리를 준다. 초음파로 아픈 발바닥을 멀쩡한 발바닥과 비교 확인해 보면 아픈 쪽의 발바닥 근막이 뼈에 부착하는 부분은 확연히 부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일부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골극이 보이기도 한다. 근막이 부어 있는 상태에서 걸어다니니 다시 통증이 발생해 붓게 되고 염증이 생기는 악순환이 계속 된다. 일반적인 치료만으로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직접 그 부분을 보면서 약침액을 주입하는 초음파 가이딩 치료를 하는 것이 제일 효과적인 방법이다. 최근 맨발걷기의 유행으로 발바닥이 아파서 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는 뒷꿈치 바닥뿐 만이 아니고 발가락쪽 바닥쪽이 아파서 온다. 보통은 2지나 3지쪽 바닥이 아프고 역시 잘 낫지 않는다. 맨발걷기를 이제 막 시작하는 초보자들은 신발이나 양말을 따로 준비해 발바닥 통증이 좀 심해진다 싶으면 바로 중단을 하는 것이 좋다. 장화같이 발바닥을 보호하는 쿠션이 없는 신발을 신고 일을 해도 발바닥 통증이 잘 발생을 하니 이런 신발을 신고 오래 일을 해야 한다면 휴지를 말아 쿠션역할을 할 수 있게 발바닥에 덧대는 것도 방법이다. 발바닥 통증은 한번 생기면 치료 없인 잘 낫지 않고 또 많이 걸어 다니면 낫지 않는다. 발바닥에 무리가 가는 걷기 관련 운동은 바로 그만두고 치료를 해야 하고 직업적으로 꼭 발바닥을 사용해야 한다면 발바닥에 휴지 같은 걸 넣어서 충격을 흡수하는 쿠션을 만들어 줘야 한다. 집에선 따뜻한 물에 종아리를 푹 담궈 풀어준 다음 종아리와 아킬레스건을 적당한 강도의 마사지로 풀어주고 발바닥도 적당한 강도로 꾹꾹 눌러 지압을 매일 해준다. 완치가 될 때까지 치료와 관리를 해야 한다. 치료와 생활 관리로 좋아졌다고 바로 무리를 하면 금방 재발을 하니 완치까지 신경을 쓰고 운동욕심은 줄여야 한다.

2024-11-06

나의 기울어진 독서벽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노벨상을 받은 한강의 열풍은 침체기의 늪에 빠진 우리 독서계를 순식간에 휘저었다. 서점가엔 그의 소설이 동이 나고 인쇄소에선 밤을 새워 그의 책들을 찍어내는데도 예약 없인 사지 못할 정도라고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광풍 같은 열정은 정말 못말리겠다 싶은 생각도 하면서도 나 역시 그 대열에 끼지 않으면 왠지 애국자가 아닐 것 같았다. 바쁠 거 없어, 이 바람이 어지간히 숙지막하면 사야지 하면서도 괜히 조바심이 났다. 은퇴 후엔 책을 사지 않으리라는 강한 결심을 하고 주로 집 가까운 공공도서관에서 대출카드를 만들어 두고 책을 빌려보던 나였다. 도서관 검색을 해 봤더니 역시나 한강의 책들은 모조리 대출되었다. 예전 ‘채식주의자’를 미국의 지인에게 주고 온 것을 살짝 후회했다. 이정희 교수께서 세 권의 그의 책을 가지고 있다시길래 나중에 빌려보기로 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다. 남편이 종종 가기를 즐기는 경주 라한호텔에 있는 경주산책이라는 서점에 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직원에게 한강의 소설 없죠? 라고 물었다. 있다며 그가 가리키는 곳, 서점 입구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곳에 한강의 작품들이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게 아닌가. 워낙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서점이라 아직도 팔리지 않은 책이 있구나 생각하면서, 혹시나 다른 사람이 눈치챌까 괜스레 좌우를 살폈다.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를 얼른 집어들었다. 나온 지 며칠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새 책이었다. 무려 128쇄, 28쇄나 되었다. 하여튼 책을 들고 집으로 오면서 마침내 나도 애국자(?)가 된 듯 설레며 책 읽을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리기까지 했다. 이 책들은 ‘채식주의자’와 같이 불편해하지 말고 잘 읽어야지 결심을 곱씹었다. 그러나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로 밝힌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규범들을 시적이고 실험적인 문체로” 쓰인 그의 소설은 잘 읽혀지지 않았다. 한 문장 한 문장을 읽어 내려가기가 쉽지 않았다. 서사로 읽는 보통 소설과 달리 술술 읽혀지지 않은데다가 시 감상하듯 읽어도 만만치 않고 하염없이 더뎠다. 책 뒷면의 “읽는 쪽에서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겠다고 각오한 사람조차 휘청거리게 만든다”, “시적 초혼과 산문적 증언을 동시에 감행하는 거의 원망스러울 만큼 정확한 표현으로 읽는 이를 고통스럽게 한다”는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말에 동의하면서 나만 그런 건 아니구나 위안을 받을 정도였다. 그래도 두 권을 머리맡에 두고, 마치 어려운 숙제하듯이 번갈아 읽고 있다. ‘역사적 트라우마’를 소설의 주된 테마로 삼은 소설가로 박완서가 떠올랐다. 박완서는 자전적인 체험을 소설로 쓴 ‘나목’을 비롯한 대부분의 소설이 작가의 인생과 가족사를 바꿀 정도로 가장 강렬한 경험이었던 6·25를 바탕으로 했다. 뿐만 아니라, 분단국가로서의 현실, 가부장적 가정 구도, 전후 한국사회를 지배했던 반공주의, 여성, 중산층 등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의 한국 근현대사의 흐름 아래 있던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정신을 날카롭고 예리하게 관찰한 작품들이 많다. ‘역사적 트라우마’를 배경으로 한 ‘그 남자의 집’을 책장에서 꺼내와서는 단숨에 다 읽었다.

2024-11-06

‘짧지만 긴 여운 …’ 소설가 김강의 엽편소설 같이 가자 해놓고

그러게. 같이 가자, 하지 않았어요? 한 날 한 시에 손 꼭 잡고 눈길 한 번 맞춰보고 고개 한 번 끄덕이고 그러고 가자, 하지 않았어요? 애들 번거롭지 않겠다. 문상객들도 편하겠다.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요? 아니지, 아니지. 나는 무조건 당신 다음에 가야지. 그래야 당신 가는 길에 꽃도 뿌리고 향도 피우고 내 그동안 당신한테 못해준 것, 잘못한 것 다 갚지는 못해도 꽃도 뿌리고 향도 피우고 그거라도 해야지. 그래야지. 난 무조건 당신 다음에 가야지. 그러지 않았어요? 결국은 또 말 뿐이었네요. 당신 귀에 인이 박히도록 했던 말, 내가 수없이 내뱉었던 그 말, 맨날 말만하고 바뀌는 게 없다는 그 말을 내가 또 하고 있어요. 준연은 입을 열어 말하지 못했다. 그저 입안을 맴도는 말 덩이들을 꾸역꾸역 삼키는 중이었다. 허리께를 더듬어 닦을 것을 찾았으나 손에 닿는 것이 없었다. 그저 흐르는 것은 흐르는 대로 둘 수밖에. 하긴 언제 이렇지 않았던 때가 있었나. 애들은 괜찮을 거예요. 해준 것 없이 잘해온 애들이니. 내딛는 걸음마다 걸리는 것 없이, 바로가든 돌아가든 지들 가고 싶은 곳으로 잘 걷는 것 보았잖아요. 첫 걸음을 뗄 때 알아보았어야 하는데 말이에요. 그저 우리 같을까 싶어, 넘어질까 싶어 그저 엉덩이를 받힌다 어깨를 잡는다 호들갑을 떨었지요. 넘어지면 그게 또 뭐 대수라고. 그래도 대견하지 않아요? 당신도 그랬잖아요. 참 대단한 녀석들이라고. 애들은 잘 할 거예요. 걱정하지 말아요. 여긴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해졌어요. 검고 붉은 감나무 잎이 모란 아래 쌓였어요. 당신이 참 좋아했던 모란인데. 십칠 년쯤 되었다고 십칠만 원에 샀었지요. 지금은 오십만 원쯤 되겠네요. 이제는 제법 꽃이 많이 핀답니다. 자주 빛 빌로오드 꽃이 활짝 필 때면 어쩔 줄 몰라 하던 당신이었는데. 라탄 의자에 앉아 모란을 보며 담배를 피던 당신의 모습이 떠올랐어요. 나 당신이 담배 피는 게 그렇게 싫었는데, 그 모습 하나는 조금 좋았어요. 아니 그 순간 당신은 제법 멋졌어요. 모란과 당신과 하얗게 피어오르던 담배 연기와…. 그런 것들로 가득했던 봄. 참, 올해는 유채도 활짝 피었어요. 몇 해 전부터 집 옆 공터에서 보이더니 이번 봄은 장관이었어요. 길 가던 사람들이 사진 찍겠다고 줄을 섰다니까요. 유채를 보며 당신, 아니 우리를 생각했어요. 그 해 봄, 파랑과 노랑 사이에 우리가 있었지요. 화산석 돌담을 사이에 두고 당신은 노란 유채밭을 등지고 있었고, 나는 파란 바다를 배경으로 서 있었어요. 당신과 나 사이 현무암 담장 틈을 오가는 바람이 당신 옷자락을 흔들었어요. 이리 오라, 당신이 손을 뻗어 나를 부르는 것처럼 보였지요. 하지만 난 쉽게 발을 떼지 못했어요. 바다가 항상 자기 자리에 있는 것처럼, 제가 서 있던 자리는 익숙하고 오래된 제 자리였거든요. 봄이 되어야 피어나는 유채꽃,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유채꽃. 당신은 제게 그런 어떤 존재였어요. 알지요? 저는 결혼이란 것을 하고 싶지 않았다는 것을. 당신이 싫어서가 아니었다는 것도. 얘기했지요? 그때의 저는 한 곳에 머물지도, 한 사람에게 책임을 다하고 싶지도 않았다는 걸. 그때 제가 제법 모질었지요. 사랑은 시간이 지나면 잊힐 거라고 지금 서로를 어루만지고 같이 있고 싶어 하는 것은 순간의 감정이라고. 당신에게 그렇게 말했지요. 미안해요. 우리가 다시 마주 한 순간이었어요. 화산석 돌담은 접견실 유리창인 양 놓여있었고, 어색한 눈빛과 말끝을 흐리는 안부인사가 이어졌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아쉬운 거예요. 당신을 그렇게 보내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 마음이 제 속을 채우는 거예요. 유채꽃이 예쁘네. 나, 사진 한 장만 찍어주면 안될까? 사실 당신이 입을 열기를 기다렸어요. 저는 고개를 끄덕였고 담장을 넘어 갔지요. 담장 틈 사이로 바다 내음이 들어왔고 우리는 같이 사진을 찍었어요. 손을 마주 잡았고 그렇게 우리는 평생을 약속했고요. 어제는 조금 덜 익은 감을 몇 개 따다 식탁에 올려두었어요. 좀 두었다 맛이나 보려했지요. 그냥 두었다가는 직박구리들이 다 쪼아 먹을 것 같았거든요. 걱정 말아요. 손이 닿는 곳 위로는 따지 않았으니. 따지도 못해요. 사다리든 무엇이든 밟고 올라서는 일은 이제 못한다는 걸 당신도 알잖아요. 몇 계단 밟고 오르지도 못할 거면서 뭔 애를 그리도 썼을까요? 그때 그 시절 우리 말이에요. 암튼, 작년에는 해갈이를 하는지 감이 별로 열리지 않더니 올해는 제법 많이 달렸어요. 그러니 새들 걱정은 안 해도 되요. 그러니까, 우린 이게 문제였던 거예요. 알아서들 잘 사는데 굳이. 그렇지 않아요? 거긴 어때요? 따듯하고 좋아요? 듣던 대로 즐겁고 기쁜 일만 가득합니까? 뭔 재밌는 일이 있을까, 나는 별로 기대는 안 합니다. 그저 당신 얼굴 한 번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싶기는 해요. 당신이 기다리고 있다면 말이에요. 창을 열어두었나? 준연은 마룻바닥을 타고 오르는 고소한 냄새를 맡으며 집안의 창들을 떠올렸다. 아침에 환기시킨다고 열었던 창 중에 닫지 않은 것이 있는지, 1층부터 2층까지 머릿속으로 한걸음, 한걸음 내디뎠다. 아닌데, 다 닫았는데. 어디서 들어오는 냄새지? 자동차 매연이나 먼지 냄새는 아닌데, 고소한데, 누가 뭘 고나? 아. 장어. 이젠 정말 갈 때가 되었나 봐요. 금방 했던 일인데 돌아서면 잊어버리니. 글쎄 둘째 아이 목소리가 조금 안 좋더라고요.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풀이 좀 죽은 것 같기도 하고. 무슨 일인지 당연히 말하지 않을 것이고, 말한다 해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을 것이고. 그러니 내가 뭘 했을 것 같아요? 알지요? 시장에서 민물장어를 사다 고았지요. 뭐든 해야 했거든요. 아파도 장어, 피곤해 보여도 장어, 슬퍼해도 장어, 만병통치약 같은 장어. 당신이 리듬까지 붙여가며 노래를 불렀잖아요. 장어들이 튀어나올까봐 곰솥 냄비 뚜껑을 손으로 누르고 있는 나를 돕지는 않고 놀리듯 노래만 불렀지요. 아니에요. 가끔 도와줬다는 것도 기억해요. 아무튼 장어를 사다 고았어요. 식혀서 기름덩이를 걷어내려고 뚜껑을 열어두었는데, 그 냄새가 이리 흘러 들어왔네요. 작은 통에 나눠담아야 하는데. 내가 이러고 있네요. 조금은 졸린 것 같기도 하고. 냄비 뚜껑이라도 덮어두어야지. 준연이 바닥을 짚고 일어서려는데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나마 답답했던 가슴은 조금 나아졌다. 아니 답답하지 않았다. 발끝의 저림도, 욱신거리던 종아리의 아림도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졌다. 뻐근하던 허리의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허리가 없어진 것처럼. 냄새도 창도, 빛도 사라졌다. 벌써 밤인가? 내가 언제 일어났더라? 여기가 어디더라? 간다는 게 이런 건가 봐요. 당신도 이런 기분이었을까요? 아니었을 거예요. 당신이 가는 길옆에는 제가 있었으니까. 당신 이마며 눈꺼풀이며 입술이며 내 이 두 손으로 다 한 번씩은 쓰다듬었으니까. 다행이었어요. 조금은 부럽기도 하고. 그래요. 할 말은 해야겠어요. 같이 가자 해놓고. 한 날 한 시에 손 꼭 잡고 눈길 한 번 맞춰보고 고개 한 번 끄덕이고 그러고 가자 해놓고. 무조건 나 다음에 간다 해놓고. 나 가는 길에 꽃도 뿌리고 향도 피우고 나한테 못해준 것, 잘못한 것 다 갚지는 못해도 꽃도 뿌리고 향도 피우고 그거라도 해놓고 간다 해놓고. 그렇게 말해놓고. 그럴 줄 알았어요.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네요. 맨날 말만. 당신 귀에 인이 박히도록 했던 말, 내가 수없이 내뱉었던 그 말, 맨날 말만하고 바뀌는 게 없다는 그 말을 내가 또 하고 있어요. 거기서 기다려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말고. 나 지금 가니까. 가서 또 말할 테니까. 말만 하는 당신이라고. 끝 김강 소설가·내과의 김강(52)은 소설가인 동시에 내과의사고, 포항에서 ‘도서출판 득수’를 운영하는 출판사 대표이기도 하다. 2017년 단편 ‘우리 아빠’로 심훈문학대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단편집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 ‘소비노동조합’을 썼다. 지난해엔 장편 ‘그래스프 리플렉스’를 펴내 문단과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2024-11-05

尹 대통령이 밝힐 ‘국정쇄신 해법’에 주목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를 비롯한 여권에서 국정쇄신 요구가 거세지자 윤석열 대통령이 내일(7일) 정국현안에 대한 입장을 직접 밝히기 위해 기자회견을 연다. 윤 대통령이 김건희 여사 리스크와 명태균씨 관련 의혹에 대해 침묵한 채 시간을 흘려보냈다간, 민심이 회복할 수 없는 수준으로 악화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대통령실은 “일문일답을 통해 국민이 궁금해하는 모든 사안에 대해 소상히 설명드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한 대표가 그저께(4일) 당 최고위 회의에서 제시한 요구사항을 비롯해 야권의 탄핵 공세와 임기 단축 개헌 논의에 대해서도 견해를 밝힐 것으로 예상된다. 윤 대통령과 명씨의 통화녹취가 공개된 후 침묵을 지켜오던 한 대표는 그저께 윤 대통령에게 대통령실 참모진 전면 개편, 과감한 개각, 김건희 여사 대외 활동 중단, 엄정하고 신속한 명씨 수사 등을 요구했다. 한 대표는 이날 “민심이 매섭게 돌아서고 있다. 국정 기조 전환이 반드시 더 늦지 않게 필요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윤 대통령이 야당의 탄핵·임기단축 공세를 막기 위해 선제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한 대표 외에도 최근 여권에서는 윤 대통령에 대한 쇄신 요구가 쏟아졌다. 지난주에는 당 소속 시도지사, 원로뿐만 아니라 친윤계에서도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이 주목하는 것은 윤 대통령이 내일 밝힐 국정 쇄신 해법이다. 여야 정치권의 각종 요구와 압박에 대해 어느 수위까지 응답할 지가 최대 관심사다. 윤 대통령은 현 정국이 매우 엄중한 상황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임기 절반을 남긴 대통령 지지율이 10%대 후반으로 떨어진 것은 매우 심각한 일이다. 이 상태에서 민심을 적극 수용하지 않으면 대통령뿐만 아니라 여권 전체가 공멸할 수 있다. 한 대표가 여권 일각의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윤 대통령에게 고강도 쇄신을 압박한 것은 매우 강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2024-11-05

‘여야의정 협의체’ 곧 가동, 기대 크다

심충택 논설위원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각종 의혹과 논란이 국내외 모든 이슈를 블랙홀처럼 집어삼키고 있다. 지난 2월부터 시작된 의료 공백사태가 9개월째 접어들면서 국가의료시스템이 망가지기 일보직전인데도, 최근에는 관련 기사가 거의 보도되지 않고 있다. 위중한 환자가 없는 가족들은 마치 의료현장이 평온하게 굴러가고 있다는 착각을 할 정도다. 당장 내년에 우리나라에서 신규의사가 거의 배출되지 않는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다. 올해 의사 국가시험을 봐야 했던 의대 본과 4학년(7월 22일 기준 3088명)들이 대부분 휴학하면서 내년에는 의사 공급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의사국가시험은 통상 9∼10월에 실기, 이듬해 1월에 필기시험을 치르는데, 올해 실기시험에는 347명만 응시했다. 예년의 10분의 1 수준이다. 이로인해 4∼5년 후 배출될 전문의도 2000명이상 줄어들게 됐다. 의대생들은 의사 국가시험에 합격한 후 대부분 전공의(인턴 1년, 레지던트 3∼4년)과정을 거치고 전문의 시험을 치른다. 내년에는 인턴 과정을 밟는 전공의가 거의 없으니, 자연적 4~5년 후 배출될 전문의도 극히 소수다. 신규의사가 없으니 군의관과 공중보건의 수급 문제도 큰 과제다. 상급종합병원은 현재 심각한 과부하에 걸려 있다. 응급의료센터 의료진 약 30%가 과로로 인해 사직한 상태다. 서울대 의대 교수협의회 비대위는 최근 “상급종합병원에서의 심장 수술이나 장기이식 수술 등 중증 환자의 진료는 비상사태”라고 했다. 전공의가 병원에 돌아오지 않는 한, 정부라고 해서 별다른 대책이 있을 수 없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그저께(4일) 당 최고위 회의에서 “하루하루 날씨가 추워지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보다 시급한 민생은 없다. 오는 11일 여야의정 협의체를 출범하고자 한다”고 했다. 오는 11일 첫 회의를 열겠다는 것이다. 정부와 의료계 모두 의료위기를 방관한 채 남 탓만 하는 상황에서, 한 대표가 주도적으로 협상테이블을 마련하겠다고 나선 것은 박수를 받을 일이다. 현재 의료단체 중 대한의학회와 의대학장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는 정부가 최근 의대생 휴학을 승인한 후, “협의체에 참여해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복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었다. 다만 의사협회와 전공의협의회는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재검토하지 않는 한 불참하겠다는 뜻을 고수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정작 협의체를 제안한 민주당이 협상테이블에 앉지 않겠다며 발을 빼는 모습이다. 의대생과 전공의 단체가 참여하지 않는 협의체는 의미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한 대표는 “여의정(여당·의료계·정부)만이라도 우선 출발하겠다”고 밝혔다. 의료 문제는 정쟁을 떠나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사안인 만큼, 민주당은 협의체 출범에 대승적으로 동참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의대생, 전공의단체도 정부가 “2026학년도는 증원 ‘0명’부터 논의할 수 있다”고 협상 여지를 내비친 만큼, 이제는 협의체에 참여해서 대화를 통해 꼬일대로 꼬인 실타래를 풀어나가야 한다.

2024-11-05

노후는 각자도생으로

우정구 논설위원 개인주의 사상이 발달하면서 우리 사회에서는 n분의 1 개념의 계산방식이 자주 통용된다. 계산할 때 전체 비용을 사람 수로 나눠 각자가 내는 것을 말한다. 각자가 쓴 것을 각자가 부담하는 더치페이와는 조금의 차이점이 있다. n분의 1은 개인마다 소비 규모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비용만큼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말로 “자기 팔 자기가 흔든다”는 것처럼 세상은 개인주의 경향으로 흐르고 있다. 개인주의란 말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이기주의와 개념적 차이가 있다. 경제적으로 개인 소유권과 경제활동의 자유가 인정되는 사상이자 정치적으로도 국가의 통제와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을 의미하는 개념이다. 공동체에 무게를 두었던 집단주의 성향이 강했던 과거의 우리 사회가 개인주의로 흐르는 것은 시대적 조류여서 막을 수 없고 막아서도 안 될 일이다. 젊은세대 중심으로 이런 개인주의는 더 뚜렷한 경향을 보인다. 최근 경북도가 조사한 경북도 사회지표 조사에서 눈에 띄는 대목 하나가 있다. 부모부양 책임자에 관한 질문이다. 응답자의 65.4%가 “부모님 스스로”라고 대답했다. 20대는 94%, 30대는 88%가 “부모님 스스로”라 해 젊을수록 노후는 부모 스스로가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5년 전 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서도 국민의 부모부양 가치관이 연도별로 급격히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 바 있다. 부모부양 책임이 가족에게 있다는 답변이 2006년 63%에서 2018년에는 27%로 뚝 떨어졌다. 부모부양을 효로 생각했던 가치관이 바뀌면서 노후는 이제 각자도생의 길로 가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11-05

대왕고래 시추 임박… 포항의 남다른 기대감

대왕고래 프로젝트는 포항 앞바다 수심 2km 심해에 140억 배럴이 매장돼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석유·가스전을 찾는 탐사사업이다. 지난 6월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 브리핑을 통해 이를 발표함으로써 국민들은 대한민국도 산유국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특히 매장 규모가 노르웨이, 베네수엘라 등을 능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본격적인 시추 과정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크다. 동해 가스전 개발을 위한 첫 탐사 시추작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고 한다. 개발 주체인 한국석유공사는 첫 시추해역을 사실상 확정했다. 첫 시추해역은 가스·석유가 대량 매장된 것으로 기대되는 7곳의 유망구조 중 대왕고래 유망구조 안에 있는 특정지역이다. 탐사 시추에 핵심 역할을 할 시추선 웨스트 카펠라호도 다음 달 10일쯤 부산항에 도착한다. 곧바로 시추에 들어가면 내년 상반기에는 첫 시추 결과가 나오고, 이때쯤은 대왕고래 프로젝트의 사업성을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이 된다. 대왕고래 프로젝트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그중 포항시민의 마음은 더 특별하다. 국민적 기대를 모으는 석유·가스 시추작업이 바로 포항 앞바다에서 진행된다는 사실 때문이다. 만약 석유·가스전이 이곳에서 발견되면 포항은 석유 생산지로서 또다른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번 시추 작업의 성공을 바라는 마음은 더 간절하다. 지난 7월 가스전 시추 배후항만으로 부산항이 선정된 것에 대한 서운함이 아직 남아 있으나 지금부터라도 시추와 관련한 사업들에 대한 포항의 주도적 참여가 이뤄져야 한다. 이강덕 포항시장도 이와 관련 “영일만항이 지원항만으로 실리를 챙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석유공사가 포항에 상호협력발전센터를 설치하고 포항시와 협의해 상호협력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힌만큼 좀더 적극적인 포항시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 석유탐사가 성공한다는 가정하에서 중장기적 마스터플랜을 마련할 필요도 있다. 시추와 관련한 기자재 보급기지에서 부터 기업유치까지 다각적인 준비가 있어야 한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오는 법이다.

2024-11-05

공공시설을 아름답게 가꾸는 손길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가볍게 불어오는 바람을 가르며 서서히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도심을 가로 지르는 포항철길숲 길가로 줄지어 선 나무들과 눈인사하며 가볍게 저어가니, 붉거나 누런빛을 띈 잎새가 간간이 떨어지며 반기는 듯하다. 한결 선들해진 날씨에 여행을 떠나거나 활동하기에 편한 계절, 아침 일찍 자전거 두 바퀴를 한 시간여 굴려서 당도한 곳은 영일대해수욕장 끝 해안마을 뒷동산에 위치한 환호공원 내 물의공원 입구다. 챙이 넓은 파란 모자를 쓰고 연청색 조끼를 사람들이 삼삼오오 물의공원 벤치에 모여들어 인사와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입구 쪽 도로변에는 삽과 곡괭이, 호미 등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그 옆으로는 관목류의 묘목이 군데군데 자리잡고 있는 걸 봐서는 묘목을 심기 위해 준비해 놓은 것으로 여겨졌다. 얼마간 시간이 흐르자 단장인 듯한 사람이 앞에 나서서 오늘의 작업내용과 일정 등에 대해 안내하고, 초청한 조경전문가가 관목류 식재방법과 요령, 주의점 등에 대해 실습을 곁들인 현장교육을 진행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포스코 포항제철소 공공시설가꾸기봉사단의 ‘제80차 환호공원 가꾸기’ 자원봉사활동의 시작 모습이다. 이어 30여명의 봉사자들은 각각 삽이나 곡괭이, 호미 등을 들고 흩어져 익숙한 듯 재발리 활동에 들어갔다. 오늘 심게 되는 나무는 하얀꽃·분홍꽃 진한 향기가 은은히 피어나는 원예종 ‘꽃댕강나무’이다. 수종이 다소 생소한 것 같지만 ‘평안함’이라는 꽃말로 학교나 공원, 공공건물 등지의 진입로 유도식재로 많이 심게 되는 덤불형 관목이다. 봉사단원들은 3~4개팀으로 나눠서 땅파기와 골 타기, 나무 심기, 흙 북돋우기 등의 과정을 분담해서 손발을 맞춰가며 순조롭게 작업을 이어갔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며 지나가던 많은 관광객들은 봉사자들의 수고로움에 감사와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특히 프랑스에서 왔다는 3명의 여성들은 ‘볼런티어 원더풀(Volunteer Wonderful)’을 연거푸 외치며 함께 사진을 찍기도 해 눈길을 끌었다. 공공시설가꾸기봉사단은, 지난 2021년 11월 포스코에서 사회환원의 취지로 기증한 전국적인 핫플레이스 ‘스페이스워크’ 개장과 함께 출범, 초창기에는 스페이스워크 방문객들의 조형물 이용 안내와 안전유지, 주변 환경정화 등의 활동을 실시했었다. 그러다가 봉사단의 의미와 활동범위를 확장시켜 환호공원 전역과 포항운하 시설물까지 포함하여 곳곳의 미관개선과 편의성 증대를 위한 보행로 주변 화단조성 및 녹지대 명패관리 등 필요한 개소에 맞춤형 활동을 펼침으로써 공공시설물의 가치와 실질적인 유지보수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시민들의 문화와 여가, 휴식을 즐길 수 있는 포항 최대 규모의 공원을 더 깨끗하고 편리하게 가꿔 나가는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아름답기만 하다. 스페이스워크로 가는 길목에 지난 봄날 400여 그루의 형형색색 수국을 심은데 이어, 이번에는 900여 그루의 꽃댕강나무를 심어 봄부터 가을까지 이어지는 꽃향기와 환한 꽃망울로 환호공원을 찾는 이들을 반겨 맞을 것이다. 식재작업을 마치자 마침 기다렸다는 듯이 오후부터 가늘게 내리는 가을비가 포스코의 따스한 지역사랑 마냥 촉촉하고 흡족하게 땅을 적시고 있었다.

2024-11-05

기술연구소 혁신과 방향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기술연구소도 혁신을 하는가’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기업 혁신은 생산, 서비스, 사무 간접 등이 일반적이지만 연구소 실험 프로세스를 혁신하는 곳은 많지 않았다. 필자는 P사 기술연구소 혁신 컨설팅을 2013년부터 작년까지 긴 시간 지원했다. 포항, 광양, 송도 3개 지역에서 600여 명의 공학박사들이 제철소 공정기술 개발과 신 강종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예를 들면, 수소분석기를 통한 녹이 슬지않은 강종 개발이나 자동차 휠을 알루미늄에서 철로 바꾸는 기술이 접목되어 성공하는 사례도 나왔다. 이러한 것들은 가볍고 단단하고 내구성이 강한 비행기 재료 같은 강종을 개발하는 것이다. 세탁기, 냉장고에 들어가는 스테인리스 강도 더 가볍고 디자인성이 좋게 하고 칼라 강판도 개발하여 최종 제품공장으로 공급해 소비자를 만족 할 수 있게 한다. 기술연구소 혁신의 방향과 방법론은 무엇인가. 기술연구소는 철의 강종(고강도, 고인성 강재) 개발을 효율적으로 혁신하기 위해 3가지 방향 설정이 필요하다. 첫째, 고성능화 및 친환경성이다. 기존 강종 대비 강도와 인성을 향상시키고 친환경적인 신소재 개발에서 경량화와 탄소배출 절감을 목표로 해야한다. 둘째, 지속 가능한 생산 프로세스 개발이다. 재료 생산과정에서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고 탄소 배출을 줄이는 방향으로 생산 공정을 최적화 해나가야 한다. 셋째, 스마트 제조기술 도입이다. AI와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 제조 및 품질관리시스템을 구축하여 개발 과정의 불합리를 줄여 효율성을 극대화 해야 한다. 연구소에 혁신 방법으로 6시그마를 도입한다고 했을 때 연구원들의 이견이 있었다. 그것은 연구원의 고유 연구 방식이 있기 때문이다. 혁신 기법은 일의 속성과 설비 특성, 프로세스 특징을 이해하고 맞는 방법을 적용하는 것이 옳은 일이다. 일괄적 동일 방법으로 도입하는 것은 지속되지 못한다. 연구소의 혁신 방법론은 연구소 실험 과정에 맞게 개발하여 모두가 공감하는 것으로 실행 효과가 있어야 한다. 연구 특성에 맞는 RD형 혁신방법론을 개발하고자 설계를 하고 시범 모델 7팀을 꾸렸다. 공정기술 개발, 강종 개발에 물리적 실험, 화학적 실험, 자동차 강판 실험, 강구조 실험 등 팀을 구성하여 1년간 진행했다. 설계 내용대로 실험하며 다양한 변수를 개선하고 실험 정확도, 스피드 향상에 초점을 둔다. 연구 프로세스의 실험 조건을 세분화하여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는 등 혁신 방법론을 최적화 한다. 실험 품질은 실험결과 데이터의 편차가 없고 재현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여러 가지 검증을 거쳐 연구소에서 인증하는 RD형 혁신 방법론을 정립했다. 기술연구소의 실험 정확도와 스피드를 높이기 위해 고급기술 인력의 전문성을 높이는 것과 첨단 분석 장비와 실험 환경의 인프라가 있어야 하고, 신 강종이 실제로 산업현장에서 어떻게 사용될 지, 고객 니즈에 맞는 강종 개발과 정립 된 RD형 혁신 방법론은 지속성 속에 진화 발전하게 된다.

2024-11-05

경산시 문화관광재단에 거는 기대감과 아쉬움

심한식 경북부 경산시가 지역 문화정책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고자 설립하는 비영리 법인 문화관광재단이 경북도의 설립 허가(10월 24일)를 거쳐 마지막 관문인 등기를 진행하고 있다. 경산 문화관광재단은 지역 문화의 양적·질적 성장에 따른 지역 특성에 맞는 문화 콘텐츠 개발과 문화사업을 전문성을 무기로 부흥기를 이끌고 경산이 문화도시로 정착할 좋은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공개적으로 모집한 문화관광재단 대표이사직에 15명이 응모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치단체가 출자해 운영하는 기관들의 대표이사는 사회적으로 알려지거나 일가견이 있는 인물이 맡는 것으로 인식한다. 높은 지명도가 대외적인 활동과 재단의 운영에 도움이 되고 직원 유치 등에 활용되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속 사정을 자세하게 알 수는 없으나 경산 문화관광재단의 대표는 대외적인 지명도 보다는 지역색이 강한 인물이 선정됐다. 물론 자신의 능력을 지금까지 발휘하지 못한 부분도 있겠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이다. 지역의 문화와 관광의 부흥에는 중앙정부와 인맥의 활용성이 필요하다. 특히, 초대 대표이사가 갖는 상징성이 바로 재단의 상징성이 되고 판단의 기준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경산 문화관광재단은 얼마 후 함께 할 직원을 선발할 예정이다. 경산 문화관광재단이 예산이라는 덫에 걸려 대표이사 초빙에 실패한 것처럼 인재를 선발하지 못하는 우를 법하지 않았으면 한다. 전문성과 열의, 창의성을 가진 인재를 선발해 경산 문화관광재단이 추구하는 지역 특성에 맞는 문화 콘텐츠와 관광자원을 개발할 수 있기를 바란다. 새로운 시도에는 항상 시행착오라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 시행착오를 바로 잡아 줄 수 있는 대표이사가 필요하다. 선장의 능력에 따라 배의 항로가 결정되듯이 닻을 올리는 경산 문화관광재단호가 순항을 할 수 있도록 능력을 발휘해 세간의 걱정을 잠재우길 바란다. /심한식기자 shs1127@kbmaeil.com

2024-11-05

전국 산업폐기물의 58%를 처리하는 경북!

피현진경북부 안동시 의일리에 슬러지(오니) 폐기물처리공장이 들어서고 있어서 주민들이 봉기하고 있다. 지난해 풍산읍 신양리에 의료폐기물 소각장이 들어온다고 온 주민들이 죽을 각오로 막고 있는데, 이번엔 또 녹전·도산면 주변에 산업폐기물 처리장이 들어선다는 것이다. 녹전면 도산면 등 농촌지역은 인구감소와 고령화로 죽기 살기로 싸울만한 여력도 부족한 실정이다. 힘없는 농촌지역 노약자들의 생활 터전에 유해성 폐기물이 들어온다는 것은 주민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문제다. 꼭 필요한 것이라면 주민들 모르게 할 이유가 없고 공개적으로 홍보하고 설득해야 마땅한 것이다. 제대로 잘 모르고 있다가 늦어서 할 수 없이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는 상투적 행정은 구태다. 민간사업자들이 온 천지에 돌아다니며 돈벌이 수단으로 세균, 병균, 독성 오염물질이 가득 베인 산업폐기물을 방역 대책도 없이 전국 방방곡곡으로 실어 나르며 이윤추구에 혈안이다. 문제는 이렇게 실어 나른 산업폐기물을 경북이 처리한다는 점이다. 경북의 산업폐기물처리시설은 고령과 포항, 경주, 구미 등 4개 시·군 17곳에 이른다. 역설적이게도 서울은 0곳이다. 이곳에서 한 해 355만t의 폐기물이 처리되고 있다. 전국 처리용량의 58%나 된다. 전국 산업폐기물 절반이 경북지역에서 처리되고 있는 것이다. 산업폐기물처리시설이 경북으로 집중되는 양상을 보이면서 주민 갈등과 환경 오염 우려가 커지고 있는 만큼,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타당해 보일 지경이다. 이들은 10%밖에 안 되는 생활폐기물을 행정기관에서 처리하면서 90%나 되는 산업폐기물을 민간에서 처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한다. 국회도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지난 8월 토론회를 열었다. 농촌지역 환경 오염과 고수익에 따른 변칙 증여까지 악용되고 있는 산업폐기물처리는 광역시·도별로 공공기관에서 책임지고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천문학적인 이윤을 추구해 온 산업폐기물 사업자들에게 더 이상 끌려다녀서는 절대로 안 될 것이다. 나라가 멍들고 국민이 병들고 농촌지역은 소멸하고 있다. 귀농·귀촌을 권유하면서 농촌지역에 폐기물이 들어차면 누가 거기에 호응할까? 행정절차에 준하더라도 국민을 안전하게 지키라는 헌법 1조의 원리와 농촌지역 소멸과 사회적 정의와 균형·복지 차원의 합리·합목적에 따라 거부하거나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산업폐기물처리 기본계획 수립·추진 정책을 시행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phj@kbmaeil.com

2024-11-04

생활권 공원녹지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산림청은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하는 참나무류, 단풍나무류, 은행나무의 단풍시기를 담은 ‘2024 산림단풍 예측지도’를 지난 9월 23일 발표하였다. 수종별 단풍절정 시기가 지역별로 차이는 있으나 기후변화로 인한 늦더위가 지속되어 예년에 비해 단풍이 다소 늦어질 것으로 예상하였다. 팔공산과 대구수목원의 단풍나무류 절정 시기는 각각 10월 26일과 11월 6일로 예측하였다. 올해도 10월 말부터 11월 초에는 팔공산과 대구수목원 등에는 단풍을 즐기는 인파로 가득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시간 여유가 많은 사람들은 단풍명소를 찾아 먼 곳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 나설 듯 한데, 한국관광공사는 전국 단풍명소 27곳을 소개하는 ‘가을 단풍여행지도’를 만들었다. 카카오내비 데이터를 바탕으로 전국 9개 권역에서 작년 단풍 시기에 전월 대비 방문자 수가 대폭 증가한 여행지를 각 3곳씩 선정해 ‘가을 단풍 여행지도’에 담았다. 경기 광주 화담숲, 충북 단양 보발재 전망대, 전북 무주 적상산, 경북 경주 경북천년숲정원 등이 포함됐다. 대구경북에는 경북천년숲정원 외에도 팔공산 케이블카와 주왕산도 포함되었다. 이렇게 단풍시기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단풍이 물든 숲과 나무를 찾게 되지만, 평소에는 도시민들이 일상 생활권 내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원과 녹지 공간 즉, ‘생활권 공원녹지’를 기반으로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 ‘생활권 공원녹지’는 주민들이 가까운 거리에서 자연을 접하고 휴식하며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주거지나 상업지 근처에 조성된다. 지난 2023년에 발표된 ‘2040 서울시 공원녹지 기본계획’을 보면 3가지 목표 중 하나로 ‘맞춤형 녹색이용’을 목표로 제시하고 세부전략인 녹색여가 증진을 위해 공원 명소화와 반려동물 놀이터 확대사업을 제시했다. 아울러 정신건강 지원을 위해 정서지원 및 공동체 형성공간 제공 사업을 제시했다. ‘도시의 작은 틈에도 녹색채움’을 목표로 입체도시공원 시범사업, 교통 및 환경 기초시설 상부공원화사업, 중점녹화지구 활성화 사업 등을 제시했다. ‘지속가능한 녹색회복’을 목표로 탄소중립 대응(공원녹지의 탄소 흡수 기능 강화 등), 방재기능 강화(집중호우, 화재, 산사태 등 적응기능 도입 등), 미세먼지 저감(바람길 조성 및 그린인프라 시설 도입 등), 생물다양성 증진(야생동물서식지 확보 및 지속가능한 보호 플랫폼 구축 등) 등을 전략으로 제시했다. 이렇게 서울시는 공원녹지를 양적으로 확대하고 질적으로 개선하면서 광역권 그린웨이와 연결한 생활권 그린웨이 조성사업을 ‘생활권 공원녹지계획’을 통해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어 대구경북지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통계청에서 관리하는 국민 삶의 질 지표에 ‘1인당 도시공원 면적’이 핵심지표로 관리되는데, 2022년 기준 전국평균은 12.3, 대구와 경북은 각각 8.4와 16.1, 계획된 신도시인 세종시는 58.1㎡/인이다. 대구 시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생활권 공원녹지’ 확충사업이 필요함을 지표는 명확히 알리고 있다.

2024-11-04

아침산책

유복혜 전 청도전례원장·영남대 사회교육원 강사 새벽 여섯 시가 조금 넘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니 아직도 어둡다. 내가 일어나는 시간은 늘 같은데, 가을도 깊어지니 해 뜨는 시간은 자꾸 늦춰진다. 한기가 훅 끼쳐 절로 손을 모아 가슴을 껴안게 된다. 신에 발을 꿰며 하늘을 올려다보니 별 하나 멀리서 차갑게 떨고있다. 달은 벌써 기울었는지 보이지 않는다. 어두워 발 딛기가 다소 두렵긴 하다. 작년 봄 산책 중 집 앞 둠벙을 뛰다가 넘어져 크게 다쳤다. 1년 이상 온갖 신고(辛苦)를 한 탓인지 익숙한 길인데도 이젠 어둠조차 몹시 두렵다. 그래도 발길을 조심조심 옮겨본다. 걷다보면 차차 밝아 오겠지. 어둑한 길을 건너는데 흰 물체가 눈앞을 휙 스친다. 깜짝 놀라 가슴에 절로 손이 얹힌다. 종종 고라니가 나타나 껑충거리며 지나는 길이다. 걷던 발을 멈춘 채 가만히 뚫어지게 본다. 눈을 가늘게 뜨고 자세히 살폈다. 희붐한 어둠 속에서 보니 흰 개다. 들갠가 보다. 저도 놀랐는지 날 쳐다보고 있다. 잠시 후 조심스레 발을 떼고 몇 걸음 걷다 뒤돌아본다. 그대로 날 쳐다본 채 서 있다. 또 몇 발자국 걷다 뒤돌아보니 세상에나…. 꼬리를 흔들고 있다. 저도 안심하였나 보다.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걷던 길을 재촉해본다. 내일 다시 또 만나면 반가워하려나. 어둠이 가시자 하늘의 별은 어느새 빛을 잃었는지 숨었고 대신 구름이 보인다. 코끝에 닿는 찬 공기가 맛있다. 크게 숨 쉬어 뱃속 깊이 들이마셔 본다. 입술을 내밀어 천천히 큰 숨을 내뱉으며 또 쳐다보게 되는 하늘에서 크고 흰 두루미 한 쌍이 들판으로 내려앉는다. 시선이 저절로 따라 내린다. 끼루룩 소리를 내며 열심히 뭔가를 쫀다. 내가 지나가는데도 날아가지 않고 저희들의 일에 몰두하고 있다. 방해하지 않으려 발길을 멈추고 한참을 바라본다. 일찍 일어난 새가 아침을 먹는구나. 논둑 사잇길로 들어섰다. 나락 향이 훅 끼친다. 숨을 깊게 들이쉬며 가슴 가득 구수한 향에 취한다. 모질고 유난했던 무더위를 견뎌내더니 제법 알곡이 맺혀 누르스름한 색을 띈다. 아침저녁 서늘한 바람과 낮의 뜨거운 햇살을 맞아 알은 더 여물어지고 단단해지면 이 황금빛 너른 논도 추수로 비어지겠지. 부지런한 농부는 작은 땅도 허투루 두지 않는다. 논둑 따라 좁은 길가에도 한 줄씩 뭔가가 심겨져 있다. 지난 여름 이름도 모르는 푸성귀 사이를 비집고 고개 내민 아기 주먹만 한 자그마한 애호박이 어느새 굵어져 누렇게 둥근 호박으로 뒹군다. 나도 모르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게 된다. 입가에 미소가 절로 밴다. 이 이른 아침부터 벌써 밭에서 땀 흘리는 농부를 만난다. 며칠째 흙을 뒤집고 부수기를 하더니 샛노란 흙이 부드러운 속살을 보인다. 양파씨를 뿌린단다. 내년 봄에 수확할 양파를 위해 늦여름부터 가을까지 수고로움을 감수하는구나. 더없이 고맙다. 그냥 고맙다. 진심을 담아 수고하신다는 말을 건넨다. 땀범벅이 된 채 집에 돌아오면 꼬리 흔들며 반겨주는 강아지 두 마리. 영감도 그새 일어났는지 이제 제법 우글거리며 자란 무와 배추밭에 엎드려 풀을 뽑고 있다. 한 시간 남짓의 아침 산책은 내 시골살이 행복의 일 순위다.

2024-11-04

융합예술, ‘제6의섬’을 둘러보고

김일광 동화작가 포항문화재단은 지난달 25일부터 2024 포항융합예술주간 ‘제6의섬 ’을 개최하고 있다. ‘제6의섬’은 포항시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다섯 섬과 호수 셋을 역사적, 지리적 바탕으로 융합예술을 선보이는 기획으로 내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나는 5도 중 하나인 상도동에서 태어나 송도에서 살고 있다. 그야말로 평생을 5도의 햇살과 바람을 입고 산 셈이다. 어쩌면 나 자신이 융합 예술의 한 요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연출되는 현장을 찾았다. 가까이 있는 송도 바다를 먼저 찾았다. 평화의 여상과 다이빙대는 설치된 연한으로 따진다면 포항의 상징물로 대접 받기 충분하다. 그러나 추억의 장치쯤으로 치부되어 왔다. 그런데 이번에 포항해상공원과 함께 시선에서 밀려나 있던 평화의 여상과 워터폴리를 무대 안으로 끌어들인 것은 참으로 신선한 발상이었다. 송도 평화의 여상에 연출된 ‘Song도포tal’ 빛과 소리로 공간을 꾸몄다. 송도 바다 위에 거대한 달을 만들어 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밖에서 바라보았을 때 가운데 설치된 빛의 공간으로 토끼가 등장할 것만 같았다. 안으로 들어가서 편안한 자리에 앉아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음악에 몸을 맡겨도 좋지만 혼자만의 상상에 빠져 들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30분 이상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비가 내린다면 어떤 느낌일까. 수평선에서 달이 떠오르면 또 어떨까. 춤추는 포스코의 야경이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하였다. 마침 선배 두 분과 일부러 동빈문화창고까지 걸어갔다. 시간이 고인 옛 골목이 기지개를 켰다. 9섹션으로 구성된 작품들은 당혹스러울 정도로 기대 이상이었다. ‘르 썽띠넬 2024’ 막을 걷고 들어갔을 때 자글자글 로봇이 돌아다니며 만들어내는 소리에 압도되었다. 무대에 나타나는 우리 삶과 관련된 낱말들, 신발을 벗고 들어가서 로봇과 맞서보라는 안내에는 차마 따를 수가 없었다. 상호작용이 가능한 로봇과 아직은 융합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메탈 레이브’ 형산강 오염도가 주는 소리는 신기함을 넘어 안타까움이었다. 형산강의 신음으로 들렸기 때문이었다. 망둥어, 어린숭어와 어우러지던 생명의 강이었다. 신음 같은 그 소리를 오래 듣고 있을 수 없었다. ‘우는 쇠; ’떠는 쇠‘도 진동이 주는 새삼스러움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였다. ‘미상의 푸른 돌멩이’ 슬래그의 예술적 변신과정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흔히 쇠똥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탐색과 기술의 과정을 거쳐서 예술이라는 장르로 연결되었다. 문득 이 과정이 낯설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조상들은 그림을 그리거나 염료를 식물과 광물에서 구해 왔다. 그렇게 본다면 기술과 예술의 융합이 갑자기 만들어 진 게 아니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철이 오늘날까지 인류와 함께 하는 것은 다른 금속과 융합이 용이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기술이 예술을 재해석하고, 인간 삶에 들어와 미학을 새롭게 구축할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가지게 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삶이 있고, 또 미래를 꿈꾸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포항과 시민들은 어떤 삶을 또 미래를 꿈꾸며 살아갈까? 예술을 품은 기술, 기술로 재해석해 보는 예술, 융합예술이 실현되는 포항 제6의 섬, 꿈꾸는 포항이 자랑스럽다.

2024-11-04

침묵의 소리 안에서

무미건조한 삶의 불안에게서 도망치는... /언스플래쉬 삶이라는 거대한 미션 속에서 너무 도망치고 싶거나 의기소침한 마음이 들 때쯤 영화 ‘졸업’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영화 ‘졸업’에선 상류층 가정에서 부모님 뜻대로 착실히 살아온 스무살 초반의 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대학 수석 졸업을 마치고 집으로 금의환향한 벤은 부모님이 마련한 성대한 파티에 참석한다. 그는 상류층 집안에서 부모님의 뜻에 따라 착실히 순종적으로 지낸 아들이면서, 명문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명석한 두뇌의 엄친아이기도 하다. 겉으로 보기엔 누구나 부러워할 법한 그의 스펙이지만 실은 벤은 계속해서 물에 잠겨 있거나 넓은 바다 위를 홀로 외롭게 부유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어쩐지 떨어뜨릴 수 없다. 무언가 단단히 길을 잃어버린 것만 같아 극도의 불안을 느끼는 벤. 하지만 그런 착잡한 마음을 아무도 알아주지 못해 시간이 흐를수록 거듭 외로워질 뿐이었다. 그러한 불안의 상황속에서 갑작스레 벤 앞에 나타난 로빈슨 부인. 그녀는 의도적으로 벤과 부적절한 관계를 취하고 벤 또한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그녀의 손아귀에 이끌려 다니게 된다. 부적절한 관계 속에서 공허하고 혼란스러워하던 벤이었지만 자신의 아버지의 소개로 로빈슨 부인의 딸 일레인과 만나게 되고, 일레인과의 데이트 도중 그녀에게 사랑에 빠지고 만다. 점차 자신의 감정이 깊어져 가던 도중 일레인에게 벤자민 부인과의 있었던 일을 솔직하게 털어놓게 되지만 일레인은 자신의 어머니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벤을 용서하지 못하고 자신이 다니던 대학으로 멀리 떠나게 된다. 벤은 자신의 눈앞에서 사라진 일레인의 부재를 견디지 못하고 그녀의 대학까지 쫓아가 일레인을 다시금 붙잡아 보지만 일레인의 마음은 이미 혼란스러운 상태. 벤은 처음으로 자신의 삶에서 일레인이라는 주체적인 선택을 하고, 일레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 부던히도 노력한다. 하지만 일레인은 결국 벤을 떠나 은신하며 다른 남자와의 결혼을 선택하게 되고 이를 알아챈 벤은 소식 없이 사라진 일레인의 뒤를 쫓아 결혼식장까지 난입하게 되는데, 여기서 그 유명한 장면인 웨딩드레스를 입은 일레인과 손을 잡고 도망가는 장면이 등장한다. 결국 도망치는 데에 성공한 벤과 일레인은 버스를 잡아 타고선 서로를 향해 활짝 웃어보이는데 영화의 막바지에 다다를수록 둘은 애매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착잡과 두려움, 혼란과 절망이 모두 담긴 표정이 클로즈업 되며 영화는 생뚱맞게 막을 내린다. 그 장면 속에 삽입된 폴 사이먼의 The Sound Of Silence의 곡 또한 “반갑네, 내 오랜 친구 어둠이여. 다시 한 번 말을 나누려 왔다네”, “현자의 말이란 오직 지하철 역사의 벽이나 노숙 시설의 벽 따위에 적혀 있도다. 그렇게 속삭였네, 침묵의 소리로”라는 가사가 등장하며 인생의 공허와 불확실성을 내포한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과 어우러지며 삶의 불안은 언제나 누구나 겪는 것이며, 삶의 불안에게선 절대 도망칠 수 없고 외면할 수 없단 메시지가 드러난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벤과 일레인, 그들은 여전히 미래로부터 불안하고 현재라는 삶의 불확실함 한가운데에 서 있다. 이 메시지를 전달한 영화 ‘졸업’은 1967년 개봉작이며, 개봉 당시 60년대 미국은 기성세대 간의 갈등이 심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때문에 벤은 자신의 부모님인 기성세대의 뜻에 반하여 자신의 커리어와 재력을 모두 버린 채 오직 일레인만을 선택한다는 행동이 더욱 강조되기도 했다. 또한 60년대 말은 베트남 전쟁으로 혼란스러웠던 시기로 꿈과 희망을 담은 영화의 주제를 전달하기 보단 혼란스럽던 시대 그대로를 고스란히 담은 영화가 흥행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 때 열풍이 불었던 아메리카 뉴웨이브 시네마는 당시 미국 사회 현실을 냉철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결국 해피엔딩만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굵직한 주제의 영화가 주로 등장했으며, ‘졸업’도 그 중 하나의 대표작이라 볼 수 있다. 무미건조한 삶의 불안에게서 벤과 일레인처럼 마냥 도망칠 수만은 없을 터. 그렇다고 슈퍼히어로처럼 막대한 힘으로 이길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지며, 또는 언젠가는 두 눈을 부릅뜨며 유연하게 나아가는 수밖엔 없지 않을까. 가수 아이유의 아이와 나의 바다라는 곡의 마지막 가사처럼. ‘그럼에도 여전히 가끔은 삶에게 지는 날들도 있겠지만’, ‘또다시 헤매일지라도 돌아오는 길을 알고 있다면’ 말이다.

2024-11-04

아우라와 지속적인 체험

길버트 카플란(1941~2016)은 스물세 살 평범한 경영대학원생이었다. 1965년 그는 뉴욕 카네기홀에서 열린 아메리칸 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회에 갔다가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2번 ‘부활’을 듣고 엄청난 충격과 감동에 휩싸인다. 그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번개가 나를 꿰뚫고 가는 듯한” 전율을 체험한 것이다. 그날 이후 그는 엉뚱한 꿈을 품는다. 단 한 번도 정규 음악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음알못’이지만 언젠가는 꼭 말러 교향곡 2번을 지휘하는 지휘자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대학원 졸업 후 금융전문잡지를 창간해 큰 성공을 거둔 그는 백만장자가 됐는데, 젊은 날의 꿈을 잊지 않았다. 개인 교사를 고용해 하루에 몇 시간씩 화성학, 대위법, 지휘법 등을 배우기 시작한다.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아우라(Aura)’를 “예술작품의 여기와 지금으로서, 곧 예술작품이 있는 시간과 장소에서 그것이 뿜어내는 재현 불가능한 단 한 번의 영적 광휘”라고 정의한다. 사진술과 영상술, 레코딩 기술이 발명되면서 이 아우라는 위기를 맞는다. 사진으로 복제된 이미지와 음반은 언제 어디서든 내가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예술작품을 무한대로 반복해서 감상할 수 있게 해주고, 그러면서 예술작품은 그 신비의 베일이 벗겨져 감상자는 이제 숭배가 아닌 비평을 하게 된다. 이는 대중문화의 시대를 여는 중요한 변화가 되었다. 하지만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실시간으로 현장에서 감상하는 예술작품의 감동, 아우라까지는 재현할 수 없다. 벤야민은 아우라의 붕괴를 긍정적인 변화로 여기면서도 인간에게서 ‘지속적인 체험의 기회’를 앗아간 것을 안타까워했다. ‘모나리자’를 본다는 것은 그냥 그림 한 장 보는 게 아니라 파리의 공기와 분위기, 루브르 박물관 외벽에 드리워진 햇살, 그림이 걸린 벽면의 명암과 조명, 그림 앞에 선 사람들의 경탄 어린 표정까지를 모두 포함하는 체험인 것이다. 무언가를 알기 위해, 보기 위해, 사랑하기 위해 우리는 그것이 있는 시간과 장소로 나아가야 하고, 그 나아감 가운데 다채롭고 우연한 아름다움들과 마주하게 된다. 스마트폰 검색을 통한 예술 감상에는 이러한 지속적 체험이 없다. 수년의 노력 끝에 길버트 카플란은 말러 교향곡 2번을 지휘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른다. 처음 말러를 듣고 전율한 지 18년만인 1981년, 카플란은 자비로 카네기홀을 빌리고 아메리칸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섭외했다. 세상은 백만장자의 과시욕이나 엉터리 괴짜의 기행쯤으로 여겼지만 그의 손에 들린 금빛 지휘봉이 공중에 우아한 선을 그으며 1시간 20분짜리 대곡의 마지막 5악장을 마치는 순간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후 그는 말러 교향곡 2번만을 지휘하는 전문 지휘자가 되어 세계를 돌며 공연했다. 누군가는 카플란이 지휘하는 ‘부활’을 들으면서 과거의 그가 그랬던 것처럼 번개 맞은 듯한 감동을 느꼈을 것이다. 아우라를 체험한 사람은 아우라의 생산자가 된다. 내 시를 읽으면서 어떤 숭고한 광휘를 느낀 독자가 과연 있을까마는 내가 지금껏 문학가로 살 수 있던 것은 문학과 음악과 미술을 통해 감각한 아우라 덕분이다. 아우라가 있는 시간과 장소에 도달하기까지 체험한 세계의 다채로움 덕분이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은 스물두 살 여름, 크레타에 무작정 가고 싶어 아르바이트로 여행 경비를 마련해 그리스 땅을 밟았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보고는 영화 속 북유럽 풍경에 매료돼 통장을 탈탈 털어 노르웨이로 가는 항공권을 끊기도 했다. 스페인 문학에 등장하는 새끼돼지 통구이 ‘코치니요 아사도(Cochinillo Asado)’를 꼭 한번 먹고 싶어 바르셀로나 외곽을 헤매거나 티브이에서 녹화 중계해준 베를린 필하모닉 공연의 감동을 직접 느끼고자 독일에 가는 동안 대출금은 늘어나고, 여행 후 삶이 고달파졌다. 하지만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이 가을, 예술작품이 있는 시간과 장소로 직접 나아가보라. 가는 길의 햇살과 단풍과 낙엽을, 설렘으로 부푸는 가슴의 떨림과 친구의 웃음소리와 호수에 비친 산그림자를 모두 몸과 마음에 담으면서. 이런 지속적 체험을 통해 우리는 보편적 타인과 구별되는 개성을 갖게 되며, 영원히 아름다운 예술작품처럼 찬란한 아우라를 발산하는 고유한 개인이 될 수 있다.

2024-11-04

‘이분법 정치’를 넘어서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이분법 정치’가 나라를 망치고 있다. 사회갈등을 조정하고 통합해야 할 정치인들이 “우리는 천사, 저들은 악마”라는 편 가르기와 흑백논리로 갈등을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 여야가 상대를 ‘대화와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 ‘제거해야 할 적’으로 인식하는 한 ‘정치는 전쟁’이 될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정치원로 유인태 전 의원이 “우리정치는 진영논리가 극심해서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4년 뒤에는 다 몹쓸 사람이 된다.”고 했겠는가. 그렇다면 정치인들은 왜 이분법 정치에 빠져있는가? 그것은 잘못된 정치의식과 권력욕 때문이다. 이분법은 권력을 획득·유지·강화하기 위하여 모든 현상을 극화한 ‘정치마케팅 전략’일 뿐, 객관적 사실(fact)과는 거리가 멀다. 이분법은 정치현상 이해의 편리함과 명확성을 제공하지만, 흑백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회색을 외면하는 ‘아메바(amoeba)적 사고방식’이다. 정치철학자 아렌트(H. Arendt)가 “악(惡)의 동의어는 무사유(無思惟)이며, 그것은 곧 정신의 죽음”이라고 지적했듯이, 정치적 신념이 ‘다른 것’을 악과 연계하여 ‘틀린 것’이라고 주장하는 정치인들의 ‘무지와 오만’이 이분법 정치의 주범이다. 정치란 흑백의 양자택일이 아니라 다양한 회색의 스팩트럼(spectrum) 가운데 하나를 대화와 타협으로 결정해나가는 과정임에도 정치인들의 사유능력 부족과 잘못된 권력욕이 정치를 실종시킨 것이다. 이분법 정치에서는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없다. 민주주의는 ‘전부 또는 전무(all or nothing)’가 아니라 ‘좀 더 많거나 적은 것(more or less)’을 두고 타협하는 열린사회의 정치사상이다. 반면에 절대주의는 인간의 한계와 상대성을 부정하는 닫힌사회의 흑백론이다. 독재정치에서는 관점의 다양성이 허용되지 않으며, 오직 독재자의 판단만이 선이요 정의라고 강요될 뿐이다. 그럼에도 여야 정치인들이 모두 민주주의를 역설하면서도 이분법 정치를 고집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민주주의 원칙인 ‘대화와 타협에 필요한 사고의 유연성’은 없고 상대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이 강하게 작용하는 반면, 자신의 한계와 문제점에 대한 성찰에는 인색하다. ‘양비론(兩非論)’을 혐오하고, 중도층을 ‘회색분자’ 또는 ‘기회주의자’로 매도하는 이분법 정치는 사회갈등을 더욱 악화시킬 뿐만 아니라, 다원화·복잡화·세계화된 오늘날에는 시대착오다. 민주주의는 ‘갈등과 대결을 부추기는 흑백논리’가 아니라 ‘조정과 타협으로 균형점을 찾아가는 회색논리’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분법 정치를 넘어서야 나라의 미래가 있다. ‘법’은 선악을 구분하는 ‘흑백논리’이지만, ‘정치’는 이해갈등을 조정·타협하는 ‘회색논리’이다. 때문에 법조인 출신 대통령과 여야의 당 대표들은 ‘법’과 ‘정치’를 혼동하여 선악의 이분법에 빠져서는 안 된다. 정치지도자들이 열린 마음으로 역지사지(易地思之)하고 타협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경직된 이념의 정치’는 ‘유연한 실용의 정치’로 전환될 수 있다.

2024-11-04

‘특화단지 3관왕’ 성과낸 포항, 미래가 밝다

포항시의 경제인프라가 미래산업 중심으로 급속하게 바뀌고 있다. 그만큼 신산업 생태계가 조성될 수 있는 연구개발 자원이 풍부하다는 의미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일 포항시를 수소특화단지로 지정했다. 포항 블루밸리 국가산업단지 내 부지(28만240㎡ 규모) 일부를 특화단지로 지정해 수소연료전지 생산·수출 거점으로 육성하겠다는 구상이다. 포항시는 2028년까지 블루밸리 국가산단에 수소연료전지 클러스터를 구축한 후 국내외 수소연료전지 분야 기업을 유치해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포항시의 구상은, 10년 후인 2035년까지 앵커기업을 비롯한 수소 기업 70개사를 유치해서 연료전지 부품·소재의 국산화율을 100%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포항시는 지난 6월에는 바이오 특화단지, 그리고 지난해 7월에는 이차전지 특화단지로 지정됐었다. 관련산업 인프라와 시 공무원들의 지역발전에 대한 열정 없이는 불가능한 성과다. 바이오 특화단지를 지원하는 인프라는 포스텍, 포항테크노파크, 바이오융합소재센터가 있다. 이곳에서는 바이오 스타트업 육성과 함께 신약 개발, 세포 치료제 연구 등 핵심원천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이미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이차전지 특화단지에는 포스코퓨처엠과 같은 주요 기업들이 입주해 양극재·음극재 생산을 주도하고 있다. 에너지융합기술연구소(ECTI)를 보유하고 있는 한동대가 수소학과와 수소특화전공, 배터리 학과를 개설해 인재를 양성할 준비를 하는 것도 포항시로서는 든든한 일이다. 정부가 특화단지를 지정해 집중적인 지원을 하는 것은 국가 성장동력을 확보하려는 조치다. 포항시 입장에선, 국가로부터 관련기업 유치 활동에 대한 보증수표를 받은 것과 다름없다. 정부는 특화단지에 수도권 기업이 입주하면 보조금과 함께, 각종 규제면제나 수의계약 등의 혜택을 준다. 이제 포항시가 가야 할 ‘신산업육성 방향’은 정해진 것 같다.‘제1의 철강도시’라는 명성처럼 수소와 이차전지, 바이오 분야에서도 선두를 달리는 도시가 되길 바란다.

2024-11-04

중소기업에 적합한 ESG경영 장려책 필요

환경, 사회, 지배구조를 의미하는 ESG가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도 피할 수 없는 글로벌 트렌드로 부상했다. 정부도 2050년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기업들에게 ESG 경영을 적극 권장하고 있어 ESG는 이젠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에게도 중요한 경영전략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많은 중소기업이 경제적 여력 등을 이유로 아직도 ESG 경영을 못하는 곳이 많다. 대구상공회의소가 최근 지역 내 443개 업체를 대상으로 ESG 경영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서도 이런 내용이 드러났다. 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73.3%가 ESG 경영을 도입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고, 반면에 ESG 경영을 도입한 기업은 10군데 중 2∼3곳에 불과했다. ESG는 글로벌 트렌드가 되면서 기업성장의 필수 조건이 됐다. 글로벌 표준으로 부상해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경우는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다. 그럼에도 이번 조사에서 응답 중소기업의 절반이 넘는 업체가 인적, 물적자원 부족으로 ESG 경영을 도입하지 못한다고 대답했다. 또 ESG 경영을 도입할 계획에 대해서는 54%가 계획이 없다고 대답해 중소기업에겐 ESG가 아직은 적지 않은 부담임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기업관계자는 “고객사의 요청으로 ESG를 하고 있지만 전담 조직과 인력 부재, 복잡한 절차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ESG는 당장의 재무적 가치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고 기업의 중장기적 가치에 영향을 주는 비재무적 지표란 점에서 영세기업은 화급을 다툴 일로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ESG 경영에 중소기업의 동참을 유도하기 위해선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이 필요하다. 대구상의 관계자는 “많은 중소기업이 인력부족과 비용부담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만큼 ESG경영을 실천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세제 혜택, 정책금융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기후위기와 탄소중립 정책 등으로 기업경영 패러다임도 달라지고 있다. 중소기업 ESG 역량 증대를 위해 좀 더 세밀한 정부 지원책이 나와야 한다.

2024-11-04

중국의 쥐꼬리 출산장려금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중국 인구는 인도에 이어 세계에서 2번째로 많다. 14억2000만 명에 육박하니까. 북적거리는 도시와 높은 인구밀집도가 문제가 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모양. 한국과 마찬가지로 중국 또한 급전직하하는 출산율 탓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한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세대를 이어가는 당연한 순리가 아닌 ‘자신을 포기하고, 경력을 단절시키며, 큰돈이 사용되는 어려운 일’로 인식되는 세태가 여러 국가로 확산되는 상황이다. 국가마다 이른바 ‘출산지원정책’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지만, 그것조차 약발이 안 먹힌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 한국과 중국이 다를 바 없다. 인식의 변화 없이는 백약이 무효인 형국으로 가고 있는 듯하다. 얼마 전 중국의 한 지자체는 내년부터 35세 이하 여성이 처음으로 혼인 등록을 할 경우 부부에게 30만원을 준다는 지원책을 내놨다. 이후 첫째 아이를 낳는다면 40만원을 더 주고, 둘째 출산 때는 100만원을 추가로 지급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정책이 발표되자마자 중국 네티즌들의 조롱 댓글이 줄을 이었다. “겨우 그 돈을 가지고 아이를 낳으라고?”라는 힐난부터, “참으로 오랜 고민 끝에 나온 빼어난 정책이네” 등 비꼬는 견해까지 넘쳐났다. 그 가운데는 “한국의 어떤 기업은 1억원을 준다는데…”라는 의견도 있었다. 지난해 중국에서 태어난 아이는 900만명 안팎이다. 1949년 통계를 내기 시작한 이후로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2022년 1.09명이었던 중국의 출산율은 현재 1명 이하로 떨어졌다는 추정이 나온다. 출산지원금 규모를 용머리 수준으로 올려도 쉽게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는 게 더 심각하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11-04

‘문장강화’에서 이태준의 방언 인식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우리의 근대는 대한제국에서 일제 강점기로 이어지는 도상에 있었다. 한문 소통의 세상에서 한글 소통으로의 변화는 한국사에서 매우 중요하고 적절한 선택지 가운데 하나였다. 그로부터 80년 한글 글쓰기는 노벨문학상 수상과 함께 세계적으로 공인되었으며 한글세계화전략에 맞춰 전 세계로 날개를 달고 뻗어나갔다. 그 결과 한국의 K-문화는 전 세계 문화 트렌드를 이끄는 선두에 서게 되었다. ‘표준어’와 ‘방언’은 때로는 상하 관계, 때로는 우열 관계로 인식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글쓰기의 교본 ‘문장강화’를 펴낸 이태준이 방언을 언급하였다. 이태준은 글쓰기를 “언어의 기록 또는 언어를 문자로 표현한 것”이라고 전제하면서, 표준어가 한반도에서 지배적인 언어의 힘을 가지는 것으로 보았다. 대신 “방언이란 한 지방에만 쓰는 특색 있는(말소리로나 말투로나) 말을 가리킨다”고 하면서 방언의 역기능을 문제로 삼았다. 한문 소통 시대에서 한글 소통시대로 진입하면서 표준어란 잘 다듬어진 언어이고 방언은 소통범위가 제약된 다듬어지지 않는 언어로 인식한 것이다. 그러니까 누구나 쉽게 이해, 수용할 수 있는 표준어가 당연 우월하다는 인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특히 문학 작품은 널리 읽혀져야 한다. 그러니까 표준어가 사용되어야 하고 방언은 부차적인 의미밖에 못 갖는다는 판단을 하고 있었다. 또한 표준어는 방언과 달리 품위를 지닌다는 가치의 문제로 인식함으로써 한동안 방언은 잘못된 말로 오해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태준은 완강하게 “시인, 작가는 모름지기 ‘언문의 통일’을 위해 일조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 표준어 중심 글쓰기를 권장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30년~1940년대, 방언에 대한 속깊은 인식을 기대하기도 어려웠던 시절이었지만 많은 시인들과 소설가들은 향토적인 상황에 등장하는 화자들의 언어를 방언으로 구사하였다. 문학에서 방언이 필요한 때도 있다고 보았다. 본래 작품은 그 제재나 배경, 등장인물을 생동감 있게 그려내야 한다. 그를 위해 등장인물의 대화 같은 것에는 방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동인의 ‘감자’의 한 부분을 들었다. 그에 대한 해석을 다음과 같이 했다. “여기서 만일 복녀 부처의 대화를 표준어로 써보라. 칠성문이 나오고, 기자묘가 나오는 평양 배경의 인물들로 얼마나 현실감이 없어질 것인가? 작자 자신이 쓰는 말, 즉 지문은 절대로 표준어일 것이나 표현하는 방법으로 인용하는 것은 어느 지방의 사투리든 상관할 바가 아니다.”라고 하여 문학에서 방언의 사용을 전적으로 제한하지는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어느 지방에서나 방언이 존재하는 한 또 그 지방 인물이나 풍정을 기록하는 한 의음의 효과로서 문장은 방언을 묘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하는 이태준의 선구적 발언에는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얼마간의 한계 같은 것도 포함되어 있다. 우선 여기서는 방언의 효용, 기능이 지방색을 살리는 쪽으로만 파악되어 있다. 이것은 방언의 지역적 측면만을 생각한 결과다. 그러나 이미 지적된 바와 같이 방언에는 사회적 시각에서 이야기되어야 할 것이 있다. 실제 이태준은 ‘문장강화’의 다른 자리에서 이런 단면에 대해서 언급했다. 그것이 홍명희의 ‘임꺽정’에서 서림과 뱃사공이 주고받는 말을 끌어들여 생활 속어라는 말로 계급적인 언어 사용을 인정하였다. 방언은 지리적인 차이에 의한 방언과 계급적 차이 곧 반상과 중인 하인들의 언어가 약간의 차이를 보여준다. 전자를 지리방언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사회방언이라고 말한다. 아마도 이태준은 그 당시 이러한 두 가지 방언의 차이를 인식하고 지리적 방언을 ‘방언’, 사회적 방언을 ‘생활 속어’라고 하여 이어(俚語)의 개념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이와 비슷한 시기에 우리 문단에서 활약한 시인들 곧 이상화, 김소월, 김영랑. 백석, 이용악 등의 작품 가운데 어떤 것은 방언과 분리시켜 그 작품의 우수성이나 가치를 더 논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방언 시를 발표하였다. 근대화의 과정에서 보면 방언이란 언어의 하위 개념이다. 한 민족의 언어가 형성된 경우 방언의 문제는 부수적으로 제기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이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형성된 역사는 얼마 되지 않는다. 특히 방언이 우리 한국어의 총량 가운데 일부로 언어 정보자료로서 가치를 주장하게 된 것은 2000년대 들어서였다. 본격적으로 방언문학을 논의하게 된 단계에 이르러서 그 가치에 대한 결실이 맺어졌다.

2024-11-04

실크로드(Silk Road), 동서양을 잇는 장대한 길

이상은 꿈꾸는 자의 몫이다. 인류 이래 인간의 꿈은 단 한 번도 고여 있지 않았다. 이상은 도전을 낳는다. 도전은 새로운 꿈으로 탄생해 너머의 세상에 대한 동경이 인류 문화와 역사를 창조해 왔다. 인류의 역사는 길에서 만들어졌다. 그 길은 역사 속에 묻혀버린 단절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꿈의 길이며, 역사와 문화, 겨레와 겨레, 이웃과 이웃을 연결하는 화합의 메신저다. 실크로드란, 인류문명의 교류가 진행된 통로다. 문명이란 자생적 혹은 모방적인 탄생과 동시에 이동하며 전파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실크로드는 인류 문명의 선구자적 자취가 담긴 길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세상을 넓혀 나에서 우리로 확장해 민족이라는 뿌리를 내리게 한 길이다. 동방의 불빛을 따라, 혹은 서방의 이상을 갈망하며 허기를 채웠다. 더 넓은 세상에 대한 동경은 그 무엇도 막을 수 없었다. 메마른 사막을 지나 황량한 벌판을 내달려 지옥의 산맥을 넘을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구도자가 묵묵히 법(法)을 구하기 위해 걸었던 길이며, 혹은 새로운 시장 개척을 위해, 때론 정복이라는 명목으로, 제국주의의 촉수 선교란 핑계로, 값싼 원료를 구하고자 식민지 개척이란 욕망으로, 개화란 미명으로 파괴와 폭력에 이용되기도 했다. 어찌 되었건 문명의 전파를 동반한 인류 역사와 문화의 연결 단초를 제공하는 쾌거로 이루어진 결과다. 실크로드란 말은 대략 140여 년 전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트호펜(Richthofen, 1833~1905)이 1869년에서 1872년까지 중국 각지를 답사하고, 1877년부터 ‘중국’(China)이란 책 5권을 저술하게 된다. 서북인도로 수출되는 주요 물품이 비단(silk)이라는 사실을 감안하여 이 교역로를 독일어로 ‘자이덴 슈트라센’(Seiden Strassen : Seiden 비단, Strassen 길을 영어로 Silk Road)이라고 명명한 것이 오늘에 이른다. 차츰 그 개념이 확대되면서 하나의 상징적인 명칭으로 변했다. 사실상 초원로나 해로(海路)는 물론, 오아시스로(사막)도 그 길을 따라 비단이 교류품의 주종으로 오고 간 것은 역사상 짧은 기간이었을 뿐, 여러 가지 교역품이나 문물이 오랫동안 교류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크로드란 이름이 존속되어 온 것은 상징성 때문이다. 문명의 탄생은 교통의 발달과 불가분 관계에 있다. 교통의 후진은 문명의 후진성을 초래한다. 고대 오리엔트문명, 황허문명, 인더스문명, 그리스·로마, 스키타이, 불교, 페르시아, 이슬람 등 동서고금을 망라한 전 문명이 모두 실크로드를 동맥으로 하여 싹트기 시작했으며, 이 길에서 꽃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무엇보다 실크로드는 한민족의 위상을 드높인 길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최초의 세계인이라 불리는 계림(신라 경주) 출신의 혜초(慧超·704~787)도 빼놓을 수 없다. 신라 승려 혜초는 구법자(求法者)의 길을 걸었다. 죽음의 사막도, 험준한 산맥도 막지 못했다. 동양에서 혜초에 앞서 아시아 대륙의 중심부를 해로와 육로로 일주한 사람은 일찍이 없었다. 해로와 오아시스로를 거쳐 인도와 페르시아까지 다녀와 현지 견문록인 ‘왕오천축국전’을 남겼다. 이 명저는 마르코 폴로(Marco Polo)의 ‘동방견문록’보다 약 550년 앞서 저술된 세계적 여행기로서 인류 공동의 위대한 문화유산이다. 고구려의 후예인 당나라 장수 고선지高仙芝란 인물도 있다. 동양의 한니발로 불리는 그가 ‘세계의 지붕’ 파미르고원을 넘나들면서 11년간(740~751년) 5차례나 단행한 서정(西征)은 세계 전쟁사에 전례 없는 기적으로 기록되었다. 그의 원정에 의한 제지술의 세계적 전파와 중앙아시아 보물의 유입은 중세 문명교류사에 불후의 업적이다. 그렇다면 실크로드가 과연 이스탄불, 혹은 로마에서 시작되어 중국 시안(西安)이 종착지라는 통념은 정설일까. 한반도에서 발견된 여러 가지 서역이나 북방계의 유물들, 그리고 내외의 관련 문헌 기록들은 일찍부터 한반도가 외부 세계와 문물을 교류하고 인적 왕래가 있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여러 가지 유물과 기록에 의해 실크로드 3대 간선인 초원로와 오아시스로, 해로의 동단(東段)은 각각 중국에서 멎은 것이 아니라 한반도로까지 이어졌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고대에는 우리나라를 무지개가 뜨는 아름다운 나라, 풍족하고 이상적인 나라로 생각했다. 그들이 동경하는 이상세계 동방의 불빛을 따라 벌판과 사막을 지나 한반도 신라(경주)까지 찾아왔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에만 안주하지 않았다. 풍부한 물산과 앞선 문화의 바탕 위에 서방의 문화를 수용해 우리 민족 특유의 부드러움과 아름다움으로 승화시켜 새롭게 서방세계에 전했다. 이렇게 보면 K-pop, K-드라마, 영화, 게임 등 한류문화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되, 우리 것으로 새롭게 창조해 세계로 전파하면서 지구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한류의 위대함은 오랜 시간 축적된 한민족 문화적 동력이다.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4-11-04

“오빠, 대통령 자격 있는 거야?”

김진국 고문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10%대로 추락했다. 지난 1일 문화일보가 발표한 창간 기념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 국정 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는 17%였다. 반면 부정 평가는 78%였다. 같은날 발표된 한국갤럽 조사에서도 윤 대통령의 직무수행 긍정 평가는 19%, 부정 평가는 72%였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 두 여론조사는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 공천에 개입한 의혹을 담은 녹음 파일이 공개되기 직전 실시됐다. 조사가 끝난 직후 “‘김영선이를 좀 해줘라’ 그랬는데, 말이 많네, 당에서…”라고 말하는 윤 대통령 육성이 처음 공개됐다. 김건희 여사는 “오빠, 이거 오빠 대통령 자격 있는 거야?”라며 김영선 전 의원 공천 요구를 빨리 들어주라고 재촉했다는 명태균 씨의 목소리 녹음도 공개됐다. 지지율 10%대는 심리적 탄핵상태라고 한다. 설마 하던 일이 벌어졌다. 놀랍지도 않다. 앞으로 녹음 내용에 실망한 여론이 어디까지 더 떨어질지 모르겠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 직전 보인 현상과 비슷하다. 당시 한국갤럽 조사를 보면 박 전 대통령은 2016년 9월까지 30%대 지지율을 지키다, 10월 들어 20%대로 떨어졌다. 그러다 10월 셋째 주 25%에서 넷째 주 17%로 떨어지더니, 11월 곧바로 5%로 추락하면서 탄핵당했다. 당시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의 일탈에 대한 폭로가 이어지면서 계속 여론을 자극했다. 마지막 방아쇠를 당긴 건 대구·경북(TK) 여론이다. 폭로로 의혹이 부풀어 오르면서 최후의 보루인 TK마저 지지를 거둬들였다. ‘콘크리트 지지층’이 무너지자, 지지율이 10%대로 급전직하했다. 지난주 한국갤럽 조사를 보면 TK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긍정 평가가 18%였다. 직전 조사의 26%에서 8%나 빠지면서 10%대로 곤두박질했다. 부정 평가는 69%였다. 보수 세력의 지지기반인 60대 이상에서도 부정 평가가 높았다. 60대는 긍정 평가가 24%, 부정 평가 66%, 70대 이상은 긍정 평가 41%, 부정 평가 47%였다. 국민의힘 지지자도 긍정 평가(44%)와 부정평가(44%)가 같다. 정당 지지율이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32%로 같은 점을 고려하면 지지층도 윤 대통령에게 실망한 것이다. 선거 때는 별별 사람이 다 달려든다. 후보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진다. 더구나 윤 대통령은 정치 초보다. 화술 좋은 사람이 그럴듯하게 해설하면 빠져들 수 있다. ‘윤핵관’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일도 명태균 씨가 풀어냈다고 한다. 편법이건, 불법이건, 정치입문자의 눈에는 능력자로 보였을 법하다. 그런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선거 때는 작은 힘이라도 보탠다. 잘못이 있었다면 처음부터 사실대로 털어놓고 국민의 용서를 구했어야 했다. 그런데 왜 대통령 내외는 명 씨를 잘 모르는 사람 취급했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는 더 심각한 문제가 있는 건가. 어떤 경우든 양파나 살라미처럼 야금야금 비리가 드러나는 것만큼 나쁜 방법은 없다. 거짓말을 하게 된다. 하나씩 터져 나올 때마다 변명과 거짓말로 일을 키운다. 윤 대통령을 무너뜨리려는 사람이라면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 대응이다. 이제라도 단칼에 잘라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런 아내를…”처럼 다시는 그 말이 안 나올 선까지 뒤집어야 한다. 선거 때는 후보 주변 사람이 당연히 총동원된다. 배우자는 가장 훌륭한 참모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아무리 큰 역할을 했어도, 당선된 사람은 후보 한 사람이다. 선거가 끝난 즉시 뒤로 물러났어야 했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많은 일이 있었을 수 있다. 지금이라도 모두 던져 사죄하고, 스스로 위리안치하는 것이 본인도 살고, 대통령도 사는 길이다. 대통령 주변은 아직도 법률을 따진다. 불법이 아니라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법률만 따지면 불법의 꼬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 거짓말을 반복한다. 살라미의 덫에 걸린 이유다. 무서운 건 신뢰 상실이다. 재판이 아닌 정치로 풀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스스로 그 질문을 할 때다. “오빠, 대통령 자격 있는 거야?”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11-03

이익을 따지지 않는 사랑을 지켜나갈 때

조현일 경산시장 우리는 멋있는 삶, 행복한 삶을 살길 원한다. 남에게 베풀고, 용서의 용기를 실천해 칭찬받고 기억되는 삶이 되길 기대하며 남이 먼저 나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길 바란다. 결단코 쉽지 않은 이러한 삶의 바탕에는 ‘이익을 따지지 않는 사랑’이 존재한다. 먼저 손을 내밀 수 있는 용기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세상은 사랑을 크게 3가지로 분류했다. 남녀 간의 사랑인 ‘에로스’와 부모가 자녀에게 혹은 자녀가 부모에게 느끼는 가족의 사랑, 형제애 등을 지칭하는 ‘스토로게’, 무조건으로 베푸는, 종교적인 색채가 짙은 ‘아가페’ 등으로 구분하며 아가페 사랑을 최고의 사랑으로 손꼽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나 달리진 현상을 보여주고 있어 이러한 사랑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시대착오적인 현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상하게 하거나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일들이 곳곳에서 일어나는 세상을 우린 살고 있다. 이성 간의 사랑도 물질이 앞서는 변질한 모습으로 변했고 헌신적인 아가페 사랑은 기대하기 어려워졌고 국제적으로는 이익을 위해 전쟁을 불사하고 남의 인권은 안중에도 없다. 그러함에도 우리는 머리에 떠오르고 가슴이 느끼는 사랑의 모습을 지켜가야 한다. 나와 너뿐만 아닌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를 지켜내고 후손에게 선한 영향력을 전해 미풍양속(美風良俗)이라도 존재할 수 있도록 자치단체들이 사랑과 나눔에 앞장서야 한다. 경산시는 지난 2016년부터 ‘기부데이 및 사랑 나눔 한마당 축제’를 진행해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지난 26일에도 2024년도 꽃피다 기부데이 한마당 축제를 개최해 착한 경산인을 표창하고 경산시청 착한 일터 모금액 5000만 원 전달, 기부타임, 문화공연 등으로 나눔과 기부 문화확산을 위한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2022년 기부데이에서는 6027만 원, 2023년 기부데이는 8819만 원의 모금하는 등 해마다 모금액이 늘어나는 지역 사랑에 앞장서고 있다. 기부금은 위기가정 생계비와 의료비 지원, 소규모 복지기관 지원사업, 월동난방비, 명절 위문금으로 기부되고 아동·청소년, 장애인, 노인, 여성·다문화 가정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 경산시는 사랑의 열매 희망 나눔 캠페인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2023년 11억3000만 원 목표에 13억1527만 원을 모금해 116도의 사랑의 온도를, 2024년 12억2000만 원 목표에 14억6450만 원을 모금해 사랑의 온도 120도를 기록해 2025년도 사랑 온도도 기대하게 하고 있다. 안전지원과 회복지원, 돌봄 지원으로 안전한 일상 회복을 위해 사랑의 열매가 추진한 ‘일상 회복 착!착!착!’나눔 캠페인에서도 경북 1위를 기록하는 열정을 보였다. 경산시의 또 다른 사랑의 실천은 착한 나눔에서 찾을 수 있다. 시의 착한 나눔은 2009년 착한 가게 1호가 탄생한 이후 지역 경기의 부침에도 나눔을 실천하는 손길이 끊이지 않아 현재는 착한 가게 325곳, 착한 일터 32곳이 사랑의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특히 1억 이상 고액기부의 아너소사이어티도 13명을 배출하는 등 착한 나눔 도시로 점점 진행되고 있다. 착한 가게는 중소규모의 자영업에 종사하며 매출액의 일정부분을 정기적으로 기부에 동참하고 착한 일터는 직장인의 나눔 프로그램이다. 경산시가 착한 나눔 도시로 뿌듯하게 생각하는 것은 고사리손에서 나온 동전을 모은 저금통으로 우리의 걱정과 달리 이웃의 아픔을 새로운 새싹들이 생각하며 실천하는 것을 보면서 희망을 품는다. 또 정기적인 기부활동뿐만 아니라 시시때때로 도움의 손길을 펴는 천사들이 많다. 이처럼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시민과 기업, 단체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준 소중한 사랑이 주변의 소외된 이웃들이 힘찬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희망이 되도록 뒷받침하고 행정적으로 도울 방법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한 번쯤이라도 이익을 따지지 않는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면 우리의 내일은 행복할 것이다.

2024-11-03

닳아 가는 것들의 에필로그

이희정시인 가을이 닳고 있다, 바스락 바스락 몸살을 앓으며 시간이 닳고 있다 또 한 번 나이테 더하는 내 목숨도 닳고 있다 주변의 모든 것들이 나를 위해 닳아간다 신발이며 옷이며 책상이며 자동차까지 모두가 닳아 가면서 말이 없다 생색내지 않는다 자신만을 위해 닳아온 시끄러운 나의 소리 깎을 새 없이 닳아 있던 엄마의 손톱처럼 이 가을, 누군가를 위해 말없이 닳아지기를 ― 김귀현, ‘닳아 간다는 것’ 전문 (‘너라는 화두’, 좋은생각) 기꺼이 닳아 가며 누군가를 ‘위해’ 살아보겠다는 마음을 무조건적 사랑(agape)이라고 한다면 이 시가 그렇다. 시인은 “주변의 모든 것들이 나를 위해 닳아간다”고 했다. “가을이”“몸살을 앓으며”“닳고 있”는 “바스락”거리는 시간은 아낌없이 헌신적이다. 우리는 사소한 것에도 길들어 간다. 자주 사용하는 물건들, “신발이며 옷이며 책상이며 자동차까지” 일상의 모든 것들이 사막의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한 말처럼 사랑도 길들어져 익숙해지는 것인지 모르겠다. “깎을 새 없이 닳아 있던 엄마의 손톱”처럼 말이다. 화자는 닳아 가는 가을 속에 슬그머니 “엄마의 손톱”을 부려놓고 “자신만을 위해 닳아온 시끄러운 나의 소리”를 해찰하고 있다. 시나몬 향 그윽한 가을이다. 렌즈에 담는다면 무엇을 담을 것인가. 아니 어떻게 담을 것인가. 첫 행엔 가을의 바스러지는 낙엽의 외양을 비추지만, 이후 이런 풍경들은 나이테를 더하며 닳고 있는 장엄한 목숨으로 점차 바뀌어 간다. 그 모든 슬프고 번잡한 일상으로부터 갑자기 뚝 떨어진 듯 초연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결국 이렇게 내밀하게 들여다본 가을 풍경은 곡진하게 아름답다고 일러주고 싶어 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담은 것처럼 보인다. 시간 속에 담긴 풍경이란 어떤가. 자신만을 위해 닳아온 시끄러운 나의 소리는 혼잡하고 시끄러운 현대의 우리들 삶 전체를 상징하는 부분처럼 느껴진다. 그러니까 삶의 모든 시절에는 그 시절만의 치열한 문제가 있다. 세월이 흐른다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문제가 달라 보이기도 한다. 오직 ‘나를 위해’라는 고유성은 결국 세월 속에서 ‘누군가’라는 익명성 속으로 녹아 들어가고 마는 것. 그것이 시간이 가진 위무일까. 그렇게 줌인으로 시작된 시인의 가을은 서서히 줌아웃 되면서 화자가 바라보는 주관적 시점에서의 묘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말하자면 화자는 바스러지는 낙엽의 시간 바깥에서 자신과 어머니의 헌신적 삶을 그대로 겹치면서 이 쓸쓸한 이야기는 온기 있는 이미지가 된다. 김귀현 시인이 걸어온 삶의 깊이만큼 진폭의 울림이 크다. 시인의 사유는 현역에서부터 지금까지 소외된 사람들을 보살펴 온 개인적 이력과도 무관하지 않겠지만 그보다 사회적인 인간으로서의 이타적인 세포가 생래적으로 내장되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간 시인이 걸어온 시간이 욕망과 체념이 뒤섞인 풍경이었다면 닳아 가는 것들은 궁극의 화자가 닿으려고 한 시간 그 자체이다. 유채색 사유들이 무채색으로 등뼈 깊이 새겨진 나이테는 빛과 어둠이 그려내는 삶의 진경이 아닐까. 그 길을 향해 여기까지 온 것이다. 사람의 생의 끝이 처음처럼 아름다울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시의 전체적 조망은 단풍 든 나무를 현상으로 인식하고 스산한 늦가을의 허전한 정취에 화자의 모습이 겹쳐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칫 단풍이 발색으로 보이지만 기실은 탈색이다. 색이 빠지면서 비로소 안 보이던 제 색이 나오는 것이다. 생색내지 않고 닳아 가는 것들의 탈색이 아름다운 마침표를 찍고 있는 풍광, 이 또한 자연의 반복된 여정일테니까. “이 가을, 누군가를 위해 말없이 닳아지기를”

2024-11-03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기보다는

유영희 작가 10월 7일 시작한 국정 감사가 11월 1일 끝났다. 정기국회의 꽃이라 불리는 국정 감사는 보통 9월부터 12월 사이에 열리는 정기국회 중간에 이루어진다. 국회의 17개 상임위원회는 해당 담당 기관의 예산이나 정책 등을 감시하고 평가한 후 시정 조치를 요구한다. 국정 감사는 1948년에 시작되었는데 유신독재가 시작된 1972년에 중단되었다가 1987년 9차 개헌 후 다시 시작되어 오늘에 이른다. 입법기관인 국회가 행정기관을 점검하는 일은 민주주의 실현에 꼭 필요한 일이다. 감사 대상이 되는 사건을 선택하는 것 못지않게 선택한 사건을 어떻게 감사할 것인가 하는 방법의 문제도 중요하다. 감사를 잘하기 위해서는 질문을 잘해야 한다. 주관적인 견해를 묻는 것처럼 질문하거나 열린 질문 방식은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하기 어렵다. 정동영 의원이 조혜진 KBS노조수석본부장을 증인으로 불러서 폐지된 여러 프로그램을 거론하며 ‘KBS의 제작 자율성 파괴 상황을 어떻게 보십니까?’라고 질문했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아쉬움이 있다. 하나는 KBS 제작 자율성이 파괴되고 있다고 자기가 미리 결론을 냈다는 점이다. 박민 사장이 제작 자율성이 파괴되지 않았다고 답변해버리면 더 이상 사실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박민 사장은 자율성 침해 아니라고 답했다. ‘어떻게 보십니까?’라고 질문하면 답변도 주관적인 견해처럼 보일 수 있다. 실제로 박민 사장이 프로그램 폐지를 지시한 적이 없다고 답변하자 조혜진 피디는 지시하지 않았어도 책임은 있다고 답한다. 이러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 대신 구체적으로 하나를 선택하여 질문하는 것이 좋다. 시청자가 가장 좋아한 프로그램으로 꼽혔던 ‘더 라이브’가 폐지된 이유를 단계적으로 질문하면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박민 사장은 정동영 의원이 거론한 여러 가지 프로그램에 대해 자기가 답변하기 좋은 것만 골라서 답하고 더 라이브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에 비해 최민희 과방위 위원장은 시작부터 단답형으로 하겠다고 선언하고 ‘그런 사실이 있습니까?’, ‘왜 안 했습니까?’라는 단답을 유도하는 질문만으로 증인의 위증 사실을 밝혔다. 류희림 방통위 위원장이 구글 부사장 마컴 에릭슨을 만나 유튜브의 불법 유해 콘텐츠를 신속하게 삭제하고 차단하겠다는 협조를 약속받았다고 발표했다가 MBC에서 그런 사실 없다고 보도한 것에 대해 최민희 위원장은 그 보도가 거짓이라면 ‘항의를 했느냐?’, ‘왜 한 번만 했느냐?’를 묻고 담당자가 답변을 못하자 그 이유를 증명하는 증거를 보여주는 식이다. 그 증거란, 마컴 에릭슨이 그런 확약을 한 적이 없다고 보내온 메일이다. 이렇게 하면 방송을 보는 국민은 방통위의 위증도 알게 되고 확약 자체도 거짓이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국정 감사 영상 몇 개만 봐도 거짓말하는 증인이 너무 많았다. 이런 위증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미리 결론을 내고 질문하기보다는 팩트 체크로 국민의 눈앞에 진실을 보여주어야 한다. 좋은 질문으로 국정 감사가 제 기능을 해주기 바란다.

2024-11-03

세상을 변화시키는 지혜 : 도도새의 법칙

신일철 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아프리카 동쪽 인도양에 모리셔스라는 아름다운 섬이 있다. 17세기 포르투갈 선원들이 이 섬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도망도 못 가고 멍청히 쳐다만 보고 있는 새가 있었다. 도도새는 칠면조보다 크고 몸무게는 23㎏ 정도이며 부리는 23㎝ 정도이며 작고 쓸모 없는 날개를 가졌다. 그래서 선원들은 ‘바보, 멍청이’라는 뜻으로 이름을 ‘도도’라고 붙였다. 이 새의 날개는 기능이 퇴화되어 인간에게 쉽게 사냥을 당해 결국 멸종하고 말았다. 오랫동안 천적이 살지 않는 서식지의 환경으로 새는 생존 수단인 날개까지 포기해버린 것이다. 모리셔스 섬에 인간이 발을 들여 놓은 지 100년 만에 한때 많은 개체를 자랑하던 도도새가 희귀종이 되어버렸으며, 1681년에 마지막 새가 죽임을 당했다. 도도새의 법칙은 주어진 환경에서 변화나 도전 없이 편안하게 살려는 사람이나 조직은 결국 도태되고, 외부의 자극이 없으면 발전도 생존도 없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개인의 성장 뿐만 아니라 조직의 발전에도 적용될 수 있는 중요한 교훈이다. 도도새의 멸종은 변화하는 환경에 민감하게 적응하는 것이 조직과 기업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기업들의 사례를 살펴보자. 노키아는 1990년대 최대의 휴대폰 제조사였지만 애플의 아이폰과 삼성의 갤럭시폰에 밀려 시장에서 퇴출되었다. 결국 스마트 폰의 트렌드를 읽지 못한 전략적 실패이다. 또한 전세계 카메라 필름 시장을 석권한 코닥은 디지털 카메라 기술을 개발하였지만 기존 필름 사업에 지속적으로 의지하는 바람에 디지털 사업 전환에 실패하고 파산신청에 이르게 되었다. 미국 제조업의 대명사 GE 또한 그룹의 뿌리이자 생존 수단인 제조업을 등한시 하면서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제조업과 제조 현장은 하나의 생명체이다. 매일 조금씩 변화하고 있고 그 변화에 도전과 응전이 계속되는 것이 살아있는 모습이다. 이것을 “바람직한 제조 현장의 지속적인 개선”이라고 부른다. 변화하는 사람과 설비를 대상으로 지속적 인재육성과 예방적 설비 관리가 진행되어야 한다. 도도새의 교훈으로부터 세 가지 인식변화를 강조하고자 한다. 첫째, 환경변화를 올바르고 민감하게 인지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시장의 변화와 소비자 트렌드 등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적기에 대응해야 한다. 둘째, 변화에 대한 지속적인 응전과 혁신이 필요하다. 과거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을 도입하여 경쟁력을 유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위기 상황에서도 빠르게 대응하는 유연한 조직 구조와 리더십이 중요하다. 조직은 단기적 성과에만 집중하지 않고 지속성장 가능성을 고려한 경영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특히 기업의 일하는 방식은 기업문화에 강하게 연결되어 있어 그 가치와 철학은 유지하되 시장의 변화와 고객의 트렌드에 맞추어 나가야한다. 천적없이 풍요로운 먹거리와 외적 변화가 거의 없는 평안함 속에 멸종된 도도새는 도전·시련이 없으면 발전도 없다는 교훈과 더불어 우리의 안일한 모습을 일깨워주고 있다. 꾸준한 변화와 개선으로 지속 가능한 기업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불확실한 미래의 유일한 생존해답이다.

2024-11-03

위기맞은 여권… 尹이 선제적으로 풀어라

윤석열 정권이 임기 반환점(11월 10일)을 앞두고 위기에 처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1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 직무수행 지지율이 19%로 추락했다. 취임 이후 10%대를 기록한 것은 처음이다. 특히 보수정권 최대지지기반인 대구경북(TK) 지지율은 전국 평균보다 낮은 18%를 기록했다. 직전 주(26%)와 비교하면, 한 주 사이에 8%포인트나 하락(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했다. ‘한동훈의 수모’라는 말이 나온 ‘10·21 용산면담’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윤 대통령이 TK에서조차 10%대 지지율을 기록한 것은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한국갤럽은 “(윤 대통령과 명태균씨) 음성 녹음파일 공개 반향은 차후 드러날 것”이라고 했다. 지지율이 더 추락할 수도 있다는 예측이다. 여권내에서도 “추세로 봤을 땐 한자릿수 지지율도 각오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야권은 지난주말 물 만난 고기처럼 총공세를 폈다. 민주당은 2일 서울역 앞에서 대규모 장외집회를 열었다. 명목상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촉구하는 집회였지만, 지도부 입에서 윤 대통령 탄핵 발언이 쏟아졌다. 오는 15일 이재명 대표 1심 선고기일이 다가올수록 민주당 공세수위는 점점 올라갈 것이다. 조국 혁신당 대표도 이날 대구에서 ‘탄핵다방 1호점’ 행사를 열고 “윤 정권은 조기종식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대표는 대구를 시작으로 목포, 서울, 전주, 광주, 경남 등에서 릴레이 탄핵행사를 개최한다. 여권의 고민은 야당 공세에 적극 대응하기가 난처하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과 명씨의 추가 녹음파일이 언제 다시 공개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제는 상황이 더 악화하기 전에 윤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 선제적으로 김 여사 문제를 푸는 데서 지지율 회복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이와함께 대통령실과 내각의 전면적인 인사와 국정기조 쇄신도 필요하다. 지금은 나라가 안팎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하루빨리 윤 대통령이 리더십을 되찾아 임기후반부 국정동력을 리드해 나가길 바란다.

2024-11-03

김장 담그기

우정구 논설위원 김장은 한국인의 오래된 전통문화이자 대표 음식이다. 2013년 유네스코가 한국의 김장문화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했는데, 이는 김치보다는 지역사회가 공동으로 김장을 담고 이웃간에 정을 나누는 공동체 정신을 더 높게 평가한 결과라 하겠다. 신라시대부터 채소를 발효시켜 먹었다는 역사기록으로 보아 김치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됐다. 그러나 고추가 도입된 조선시대에 들어와 매운 김치가 만들어지면서 김치는 민중의 김치로 대중화 길을 걸어왔다. 특히 겨울철을 앞두고 이웃 공동체가 모여 품앗이 하듯 김치를 담그는 행사는 음식을 떠나 한국인의 생활에 깊게 뿌리를 내린 문화가 됐다. 1970년대 초반만 해도 이웃끼리 모여 김치를 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김장은 평균 기온이 4도 이하가 유지될 때 하는 것이 가장 좋다. 예로부터 입동(11월 2일)부터 소서(11월 22일) 사이를 적기로 보았다. 김장의 재료인 채소가 얼기 전에 담가야 하고 날씨가 너무 따뜻하면 쉽게 시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장김치는 소금에 절인 배추를 고춧가루, 파 등의 양념에 버무려 옹기에 담아 땅속 깊이 묻어두는 발효음식이다. 배추가 생산되지 않는 겨울동안 먹기 위해 담아두는 것이지만 발효식품이기 때문에 소화가 잘되고 건강에도 좋다, 우리 조상들은 겨울철에 부족하기 쉬운 비타민을 김장김치로 보충했다. 올해는 늦더위가 이어지면서 배추값이 폭등하자 김장 담그는 가정이 확 줄 것 같다는 소식이다. 가뜩이나 식문화 변화로 김장을 담는 가정이 줄고 있는 마당에 배추값 때문에 김장을 포기하는 가정이 는다니 한국인 고유의 김장문화가 퇴색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11-03

결혼·출산 늘어난 대구, 꿈과 희망의 도시로

지난 7월 통계청의 자료에 의하면 대구는 혼인과 출생아 수가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 5월말 기준 혼인 건수는 전국 평균 증가율(8.7%)의 두배 수준인 19.6%를 기록했고, 출생아 수는 전국이 감소세(-2.9%)임에도 대구는 2%가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대해 대구시는 결혼 적령기 연령(30∼34세) 인구가 2022년부터 꾸준히 증가한 것이 혼인율 등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한 바 있다. 최근 대구정책연구원이 대구 출생아 수 및 혼인 건수 증가 요인을 분석한 자료에도 대구시는 혼인 건수와 출생아 수는 여전히 증가세다. 또 결혼 적령기 청년도 늘어나고 있다. 결혼 적령기 청년은 2020년 13만4656명에서 지난해는 14만6165명으로 2.7%가 증가했다. 수도권으로 발길을 옮기는 청년이 대구로 유입된다는 통계는 그 자체로 매우 유의미한 결과다.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이 공통으로 인구감소로 인한 지방소멸을 걱정한다. 이런 마당에 대구는 청년 유입이 늘고 결혼·출생아 수가 늘어난다는 사실에 지역민이면 반가워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 그 이유에 대해 연구원은 3가지 요인을 손꼽았다. 일자리요인과 주거요인, 정책요인이다. 연구원 관계자는 “양질의 일자리를 찾아 대구에 유입된 청년이 직장 소득을 고려해 주택을 구하고 이 과정에서 대구의 출산·보육정책 등이 맞아 떨어져 출생과 혼인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했다. 홍준표 시장 취임 후 대구시는 대구산업 구조개편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미래 5대 신산업으로 ABB, 로봇, 반도체, UAM, 헬스케어 등을 육성하고 2년간 8조원이 넘는 기업투자도 이끌었다. 청년이 선호하는 신산업 분야의 일자리 창출은 청년 유입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특히 수도권에 비해 저렴한 주거비용은 청년이 대구에 머물 수 있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대구는 육아 지원정책과 더불어 전국적으로 우수한 교육 환경을 가진 곳이다. 일자리와 좋은 복지가 있는 도시라면 청년이 찾아오지 않을 이유가 없다. 청년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도시를 위해 대구시의 더 많은 분발이 필요하다.

2024-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