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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갈치 뼈 바르는 남자

윤명희 수필가 늦은 가을이 따뜻하다. 단풍 구경하고 오는 길에 작은 식당에 들어갔다. 시골 식당은 평소에는 농사일을 하는 외국인으로 줄을 잇는 경우가 많은데, 그날은 휴일이어서인지 한산했다. 나는 주문한 산채비빔밥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벽에 걸린 TV를 올려다보았다. 그 아래 앉은뱅이 식탁을 사이에 두고 할아버지와 젊은이가 밥을 먹고 있었다. 얼굴색이 까무잡잡한 젊은 남자는 스물 두어 살 쯤 되어 보였고, 자그마한 체구의 할아버지는 등이 굽어 코가 비빔밥 그릇에 빠질 듯 했다. 식당아저씨가 갈치찌개가 담긴 양은냄비를 그들 앞에 놓았다. 젊은 남자가 얼른 가장 굵은 갈치 토막을 골라 제 앞으로 가져갔다. 젓가락으로 능숙하게 뼈를 바르기 시작했다. 나는 갈치에는 관심 없이 비빔밥만 먹고 있는 할아버지와 뼈 바르는 일에 열중하고 있는 그 남자를 번갈아 보았다. 외국노동자와의 인연이 좋지 않았던 나는 그가 가져간 굵은 갈치에 눈이 꽂혔다. 예전, 남편이 공장을 운영할 때였다. 용접한 구조물을 매끈하게 다듬는 일이 힘이 들어 직원들이 오래 견디지 못했다. 채용공고를 내자 베트남 청년이 왔다. 그는 어눌한 말로 숙소를 제공해 주어야 하고 인터넷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오래 함께 하고픈 마음으로 흔쾌히 약속했다. 발음하기 힘든 그의 이름을 꾸웽이라 불렀다. 꾸웽을 사무실 위층에서 거주하게 했다. 그의 요구대로 컴퓨터를 주문해 인터넷을 연결해 주었다. 3층은 넓어 방이 4개 있지만, 하나만 사용하라고 했다. 나는 청소할 빗자루와 밀대를 새로 장만해 건네주었다. 생활비나마 아끼라고 선물로 들어온 물품들을 따로 챙겨주었다.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평소보다 일찍 출근 한 날이었다. 사무실 문을 여는 등 뒤로 3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떠들썩했다.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애들이 몇 명 내려오다 우리를 보고는 멈칫했다. 멋쩍은 인사를 한 그들이 부리나케 공장 밖으로 나갔다. 남편과 나는 모른 척 눈을 감았다. 퇴근시간이 좀 늦은 날은 나이가 많은 남자들까지 대문 밖에서 쭈뼛거리는 게 보였다. 남편이 꾸웽을 불러 외부 사람을 공장으로 불러들이면 안 된다고 몇 번이나 주의를 주었다. 일요일 저녁, 거래처에서 전화가 왔다. 아침 일찍 방문하라는 말에 남편과 나는 서류를 챙기러 공장으로 갔다. 3층 거실의 불빛이 환하게 비쳤다. 창으로 많은 남자와 여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사무실로 가는 입구 문을 열자 음악소리가 계단을 타고 내려왔다. 우리는 3층을 바라보며 한참 서 있었다. 다음날, 남편은 꾸웽을 사무실로 불렀다. 더 이상 같이 일 할 수 없는 이유를 조목조목 이야기하자, 그는 돈부터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없이 가방을 챙겨 공장 문을 나서는 그를 창밖으로 내다보았다. 3층으로 올라갔다. 현관문을 열자, 거실 바닥에 옷가지와 술병이 널려있었다. 싱크대 위에는 미처 치우지 못한 기름 흔적과 음식 쓰레기가 너저분하고, 방마다 이불이 널려있었다. 3층을 대청소하면서 다시는 외국인을 직원으로 채용하지 않을 거라 다짐했다. 생선의 가장 큰 토막을 제 앞으로 챙기는 남자가 꾸웽을 떠올리게 해서 씁쓸했다. 그런데 뼈를 바른 젊은 남자가 갈치 살을 할아버지 밥 위에 올려놓았다. ‘너나 먹어’라는 할아버지의 말이 들렸다. 그 남자는 비빔밥을 퍼 먹으면서도 눈은 할아버지에 있었다. 할아버지가 밥을 떠 입에 넣자, 그는 다시 살을 집어 할아버지 숟가락에 올렸다. 할아버지는 그 갈치 살을 젊은 남자의 밥 위에 올려주고는 어서 먹으라는 손짓을 했다. 순간, 나는 혼란스러웠다. 다문화 가정의 손자인가 생각해봐도 젊은 남자의 피부는 완연한 동남아 태생으로 보였다. 도회지로 떠난 자식들 대신 할아버지를 돌보는 도우미인가? 할아버지는 지금까지 농사를 놓지 못했던 건 아닐까. 농사로 이어진 인연이 갈치 뼈를 발라주고, 할아버지의 컵에 물을 따르는 사이가 되었을까. 할아버지가 손으로 바닥을 짚고 일어서자, 젊은 남자가 호위하듯 바짝 붙는다. 식당 문을 열어주고, 신발까지 챙겨주는 그를 보고 또 보았다. 낡은 화물차에 오른 그들이 식당마당을 나서자, 신작로의 노란 은행잎이 그들 뒤를 따라간다. 나는 그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눈으로 배웅했다.

2024-12-11

경북·대구 행정통합 신의 한 수가 될 수 있을까

권기창안동시장 경북도청 이전은, 구미와 포항을 중심으로 한 양극적 발전 축의 한계를 극복하고 균형, 발전 새로움이 조화되는 경북의 신성장거점도시를 만들어 도청신도시를 중심으로 새로운 발전 축을 형성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또한 정부 주요기관이 세종시로 남하하고, 도청이 안동으로 북상해 한반도 허리 경제권의 황금벨트를 구축, 환태평양시대로 나간다는 비전이었다. 그러나 도청을 옮긴 지 10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 다시 경북도는 균형발전을 위해 대구와 행정통합을 한다고 서두르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경상북도와 대구시의 주장처럼 행정통합이 신의 한 수가 될 수 있을까. 지방소멸과 저출산은 현재 우리나라의 최대 화두이다. 경북도와 대구시는 행정통합을 통해 지방소멸 위기를 극복하고 저출산 문제를 해결해, 수도권 1극 체재에 대응하는 균형발전을 이루겠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거주하는 국가비상사태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의료 등의 시스템을 지방으로 분산시켜야 한다. 저출산은 통합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취업, 주거, 돌봄 등의 복합적인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지방에 살아도 수도권에 사는 것보다 삶의 질이 좋도록 시스템을 개선해야 하는 것이다. 이철우 지사는 대구를 뉴욕처럼 경제 수도로, 경북을 워싱턴처럼 행정 수도로 만들겠다고 한다. 무엇보다 행정 수도가 되려면 통합 청사의 소재지를 현재의 경북도청이 있는 안동으로 명시해야 하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모든 유관기관의 이전이 담보되어야 한다. 또한 성공적인 행정수도가 되기 위해서는 문화, 교육, 의료 등의 인프라 조성과 함께 철도, 도로 등의 교통망 확충으로 주민의 편의성을 도모할 수 있는 정주 여건이 보장돼야 한다. 경북과 대구가 행정통합을 한다고 하니, 각 광역지지체가 통합하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방자치법을 개정해 지방분권과 재정분권을 선제적으로 제시하고, 선입법 후 통합의 절차로 진행돼야 한다. 이렇게 해야 요구하는 특별법안이 중앙정부와 국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우를 범하지 않게 된다. 실질적인 특례 없이 통합하면 빈껍데기만 남는 꼴이 될 수 있다. 중앙집권적 국가 운영의 한계로 지방정부의 저출산과 고령화에 따른 위기 대응 능력이 갈수록 약해진다. 지역의 정체성과 특성이 고려되지 않은 획일적인 국가 중심의 공공서비스로는 지역민의 욕구를 충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의 대대적인 권한이양과 재정자립 조치가 선행돼야 하는 이유다. 지방분권 강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의 사무(권한)이양 확대이다. 특별 행정기관과 국가하천 준설 등 각종 개발계획과 인허가권은 반드시 이양돼야 한다. 경북도는 ‘경북의 힘으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열고자 한다. 대구는 경북에서 1981년 분리되었다. 대구 중심의 통합이 아닌, 경북 중심의 통합이 되어야 마땅하다. 수도권 1극 체재 대응하기 위해 행정통합이 필요하다면, 대구·경북 행정통합 또한 대구 쏠림으로 대구 1극 체재가 생겨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경북의 정체성은 잃지 않으면서 균형발전이라는 목적을 이룰 수 있다. 정말 행정통합이 신의 한 수라면 경북을 중심으로, 22개 시·군이 다 함께 잘살 수 있는 발전전략을 세워 경북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야 한다. “천천히 서둘러라.” ‘천천히’는, 어떤 일을 할 때 깊고, 넓게 사고하여 멀리 내다보라는 것이다. ‘서둘러라’는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것으로 철저한 준비와 실행력이 뒷받침되었을 때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천천히 서두르기, 결코 쉽지 않다. 명확한 방향을 설정하고 체계적인 전략을 수립해 목표를 향해 속도감 있게 매진하는 것, 이것이 “천천히 서둘러라”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이다. 치열하고 꼼꼼하게 준비하면서, 결정적 순간에 온 역량을 집중할 수 있는 자세와 지혜가 경북을 희망으로 만들어가는 힘이 될 것이다.

2024-12-11

‘尹의 거취’ 초읽기…하야냐, 탄핵이냐

심충택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 운명이 풍전등화(風前燈火) 신세다. 비상계엄선포 수사당국이 그를 내란혐의 피의자로 입건하고 출국금지 조치도 했다. 검찰은 법과 원칙에 따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정히 수사할 것이라며 윤 대통령의 긴급체포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혐의가 드러나면 기소되고 내란죄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여야는 ‘자진하야’와 ‘탄핵’으로 그를 압박하고 있다. 가장 빨리 차기 대선을 치르는 경우의 수는 여당안대로 윤 대통령이 조기에 자진하야 하는 것이다. 국회가 윤 대통령의 사직서를 접수하는 즉시 사임이 공식화되고, 그 뒤로 60일 내 대선이 치러지기 때문이다. 여당 일각에선 임기 단축 개헌을 통한 퇴진론도 나오고 있지만, 헌법에서 별도로 명시해 놓은 관련 규정이 없어 실현성이 낮다. 민주당은 그의 대통령직 유지에 “6초도 위험하다”는 강경입장을 고수하고 한다. 범야권 요구대로 윤 대통령이 탄핵당할 경우, 직무는 즉시 정지되지만 헌법재판소가 파면결정을 해야 대통령직에서 물러난다. 대선은 파면된 날부터 60일 이내에 치러진다. 헌재가 탄핵심사를 할 수 있는 법적 기간은 접수한 날로부터 180일 이내다. 헌재가 탄핵안을 기각하게 되면 윤 대통령은 국정에 복귀한다. 국민의힘은 가능한 한 윤 대통령의 퇴진시점을 늦추고 싶을 것이다. 대선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확정 판결 이후에 치러지는 것이 가장 유리한 탓이다. 그러나 탄핵을 요구하는 거센 민심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국민은 어느 지역 할 것 없이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분노하고 있다. 친윤·친한 계파로 쪼개진 국민의힘으로선 탄핵을 요구하는 야당공세를 감당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장외집회’와 ‘검경 수사’가 윤 대통령 운명 결정의 가장 큰 변수가 될 가능성도 있다. 앞으로 탄핵찬성 인파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의 촛불시위 규모로 커지면 민심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여당 내에서 탄핵찬성 쪽으로 의사결정을 바꾸는 의원이 다수 나올 수 있다. 계엄 관련자들에 대한 검찰·경찰의 수사 과정에서 어떤 증거나 증언, 정황이 나올지도 관건이다. 비상계엄 사태 수사당국은 윤 대통령 입건과 함께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에 대해 내란과 직권남용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곽종근 특전사령관을 불러 조사했다. 검찰은 국군방첩사령부를 압수해 계엄당시 관련자료도 확보했다. 만약 수사과정에서 민심을 뒤흔들 내란죄 증거 또는 증언이 나오게 되면 윤 대통령에 대한 긴급체포가 이루어질 수도 있다. 포스트 계엄 후폭풍이 거세지면서 지금 국정은 사실상 마비상태다. 국가적 혼란이 일주일이상 지속되고 있지만 여권은 정국을 수습하지 못하고, 야권은 탄핵공세를 강화하면서 경제·외교·안보위기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북한도발에 대처할 국군통수권이 실제 공백상태고, 금융시장은 연일 휘청거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내년 1월 20일)을 40여 일 앞두고 정상외교도 올스톱됐다. 대한민국이 국정 공백상태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지 걱정이다.

2024-12-10

정치가 경제의 리스크로

우정구 논설위원 한국전쟁 후 30년 호황을 누리던 일본 경제가 1991년부터 10년간 제로 성장을 했다. 이를 두고 일본의 경제학자로 노벨 경제학상 후보에 올랐던 모리시마 미치오는 ‘정치의 무능’때문이라는 지적을 해 주목을 받았다. 그는 1993년 자민당 55년 체제가 무너지면서 정치권이 권력 다툼에 빠져 경제를 등한시 했던 것이 일본경제 몰락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일본경제의 실패 원인을 경제 구조에서 찾지 않고 정치 구조에서 바라본 특이한 분석이다. 우리나라에서 정치가 경제를 망친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한국사회의 정상화 길을 묻는 질문에 대부분 국민들은 정치쇄신에 있다고 답한다. 작년 11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30개 회원국 국민을 대상으로 국회 신뢰도를 조사한 결과, 한국이 28위를 차지했다. “국회를 신뢰한다”는 응답이 20.5%에 불과했다. 우리 밑에는 체코와 칠레 두 나라 뿐이었다. 시간이 조금 지난 조사지만 한국개발연구원이 우리나라 각 부문의 신뢰도를 조사해 보았더니 국회·정당에 대한 신뢰도가 10점 만점에 2∼3점으로 나왔다. 각 분야별 평균 점수 4.8점에 크게 못미쳤다. 옛말에 “백성이 살기 좋으면 왕이 누구인지 관심이 없다”는 말이 있다. 공자도 잘하는 정치는 백성에게 풍요로운 식량을 제공하는 것이라 했다. 즉 잘 먹고 잘 살게 하는 것이 정치의 기본이라는 뜻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촉발한 계엄 사태로 정국이 대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정치권의 다툼이 우리 경제를 불확실성 지대로 몰아가고 있다. 정치가 경제의 최대 리스크로 등장한 꼴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12-10

신공항 배후도시 건설, 착실한 준비 필요

대구시가 그저께 대구경북 신공항 배후도시인 군위 하늘도시 마스터플랜을 공개했다. 군위 하늘도시는 2030년 TK 신공항 개항에 대비해 주거, 상업, 산업, 교육, 의료 등 핵심 인프라를 갖춘 자족형 신도시로 조성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대구시 발표에 의하면 군위 하늘도시는 2단계로 구분 추진하되 2026년 착수해 2045년까지 단계별로 완성하는 것으로 계획돼 있다. 공항이 개항하는 2030년까지 5000세대의 주거단지를 먼저 조성해 여기에는 공항 종사자, 개발에 따른 이주민 등을 수용해 공항 운영의 안정성을 도모하게 된다고 밝히고 있다. 군위 하늘도시의 파급효과는 생산유발효과 1조7400억원, 고용유발효과 1만2700명 등이다. 대구와 경북의 미래 100년을 내다본 신공항 사업에 따른 후속 조치로서 공항 배후도시 건설은 상당히 중요한 기능을 하게 된다. 홍준표 대구시장의 말대로 세계적인 공항은 그 위상에 걸맞은 배후도시와 유기적인 연계를 통해 국가 발전을 선도하고 있다. 공항 배후도시로서 체제를 갖추려면 많은 투자와 준비가 필요하다. 대구시가 앞으로 20년후 최종 완성을 목표로 한 것도 배후도시 조성사업이 그만큼 공을 많이 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대구시의 계획대로 인구 14만 규모의 도시가 공항을 중심으로 생긴다면 대구경북 신공항 사업은 사실상 성공하는 셈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신공항 개항이 목표 연도까지 진행되려면 시간은 촉박하고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재원 문제만 해도 그렇다. 대구시가 직접 공영개발하기 위해선 공공자금관리기금 활용이 필요한데, 탄핵정국이라는 돌발사태로 중앙부처와 협의가 정상적으로 이뤄질지 걱정이다. 대구시는 정국이 혼란해도 공자기금 융자신청을 위한 절차는 예정대로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그 과정은 지켜봐야 한다. 지금은 국가 비상상태다. 그렇다고 정국이 안정될 때까지 무작정 기다릴 수 없다. 지방정부가 나서 지역현안을 푸는 길을 스스로 열어가야 한다. 비상시국에 맞는 지방정부의 역할을 찾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2024-12-10

사실상 무정부상태, 여당이라도 정신 차려라

12·3 비상계엄 사태 후폭풍이 거세지면서 무정부상태가 현실화하고 있다. 그저께(9일)는 윤석열 대통령이 법무부에 의해 출국금지 조치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수사당국(공수처)의 요청에 의해서다. 같은 날 민주당은 한덕수 국무총리 등 국무위원들에 대해서도 줄줄이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거나, 내란죄에 가담한 혐의가 있다며 고발했다. 계엄을 심의한 국무회의에 참석했으니 불법 행위를 방조했다는 것이다. 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들이 탄핵을 받으면, 현 정권은 말로만 듣던 ‘식물정부’가 된다. 문제는 야당의 공세에 대처하며, 단일대오로 국정을 안정시켜야 할 여당이 균열상태에 있다는 점이다. 그저께 5시간 가까이 진행된 비상 의원총회에서는 계파싸움이 재연됐다. 친윤계는 ‘탄핵 반대론’을 주장했지만, 비윤·친한계에선 “대통령이 물러나는 일정을 이번 주 사이에 구체화해야 한다”며 갑론을박을 벌였다. 국정안정을 위해 총력을 쏟아야 할 시점에 만나기만 하면 갈라져 싸우는 모습이 국민 눈에 어떻게 비칠 것인가. 이 와중에 유권자들을 자극하는 설화도 발생했다. 5선 중진인 윤상현 의원이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 반대해 당시엔 욕 많이 먹었지만, 1년 후면 다 찍어주더라”고 말한 게 화근이 됐다. 사퇴선언을 한 추경호 원내대표 재신임을 두고도 계파간 설전이 치열하게 벌어진 모양이다. 지금 여당의 지지율 하락세가 심상찮다. 리얼미터가 지난 9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보면, 국민의힘 지지율은 일주일 전에 비해 6.1%포인트 내린 26.2%였다. 민주당은 2.4%포인트가 오른 47.6%였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이 비상시국에도 여당내에서 계파싸움이 전개되고 있는 모습이 안타깝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또다시 붕괴의 길을 걷는 그대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정치를 한다고 설치고 있는지 한심하다”고 했다. 친윤·친한계 모두 국민이 보수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있다는 점을 자각하고, 소모적인 싸움을 당장 그만둬야 한다.

2024-12-10

비운의 용두사미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유난히 뒤숭숭해지는 세모(歲暮)이다. 날씨는 점점 추워져 스산함을 더해가는데, 국정은 희대의 비상계엄사태 여파로 난파선이 된 듯 꽁꽁 얼어붙어 진퇴양난의 대혼란과 위기에 빠져 있다. 자선냄비 종소리와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져야 할 길거리가, 성난 민심의 성토와 여야의 극한 공방 대자보가 볼썽사납게 대치하고 있어 차분해져야 할 연말이 흉흉하고 괴괴하기만 하다. 이 무슨 마른 하늘에 날벼락(靑天霹靂)같은 일이던가. 어쩌자고 이러한 지경에 처하게 되었던가. 도무지 납득이 안 가고 이치와 순리에도 안 맞는 처사 앞에 대다수 국민들은 망연자실 한탄하고 격분과 단호함으로 전국 곳곳에 운집하여 탄핵과 처단을 외치고 있다. 그야말로 국정마비와 파탄, 민생불안으로 이어지는 일파만파의 거대한 소용돌이가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나면서 온나라가 요동치고 총체적 난국에 휩싸여 걱정과 조바심으로 신음하는 형국이다. 12·3 계엄 논란 이후 1주일이 지났지만 정국 수습은커녕 정국 주도권을 쥔 야당의 정부와 여당을 향한 전방위 공세로 혼란이 더욱 가중되는 양상이다. 한국의 정치 불안으로 이미 국가신용도는 떨어졌고, 탄핵 정국으로 인한 정치적 마비가 경제에도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외신들은 심각한 위기를 지적하고 있다. 앞으로 이어질 사회적 불안과 정치적 긴장, 불확실성이 높아지면 경기둔화 하방 리스크와 외부 역풍이 커져서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는 상황이라 갈수록 우려스럽기만 하다. 사태수습과 해결의 실마리는 요원한데 당장 들이닥칠 영향과 피해는 추위 마냥 살갗을 파고드니 이 무슨 엄동의 돌변이란 말인가. 정말 아닌 밤 중의 홍두깨 같은 몸서리쳐지는 일련의 사태를 겪으면서 오랜 전에 탐독했었던 명심보감 순명 편이 떠오른다. ‘때가 오면 바람이 왕발(王勃)을 등왕각으로 보내고, 운이 물러가니 벼락이 천복비를 내리친다(時來風送6ED5王閣 運退雷轟薦福碑)’는 구절로, 운이 좋아서 때를 잘 만나면 중국 당대의 문학가 왕발과 같이 이름을 드날릴 수도 있지만, 운이 다하면 가난한 서생과 같이 열심히 노력을 하더라도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세상사 뜻과 같지 않고 운이 따라야 함을 가르치는 교훈이라 할 수 있다. 정치적인 기반이 취약하고 경험조차 전무한데, 순풍이 왕발을 등왕각으로 보내서 ‘등왕각 서’를 지어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것처럼 천운을 타고 대통령이 되었지만, 운수가 쇠퇴하면 하루 밤새 벼락이 떨어져 ‘등왕각 서’ 비석이 부서지듯이 모든 일들이 수포로 돌아가 허사가 돼버린 12·3 내란사태가 아닌가 싶다. 아무리 결연하고 단호한 뜻이라도 절대적으로 시운(時運)을 타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물고기는 물을 타고, 새는 바람을 타며, 인간은 때를 탄다’고 했는지도 모른다. 청룡의 기세로 힘차게 출발했던 갑진년이 끝자락에 2025년 을사년 푸른 뱀의 해에 섣불리 자리를 내줘 용두사미(龍頭蛇尾)로 전락한 듯싶어 씁쓸하고 안타깝기만 하다. 운이 따르면 바람이 불고, 운이 따르지 않으면 벼락이 친다.

2024-12-10

삶의 가치관과 국가경영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삶의 가치관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어떤 기준과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지에 대한 신념체계이다. 삶의 목표, 행복의 기준, 올바른 선택을 결정짓는 기반이 된다. 가치관은 개인의 경험, 교육, 성장의 문화적 배경 등으로 형성되며 삶의 방향을 제시한다. 사람의 인품을 볼 때 보이는 모습만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성장 배경을 보는 이유이다. 삶의 가치관이 바르게 형성되기 위해서는 자기 이해부터 시작된다. 자신의 성격, 능력, 관심사, 한계를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 삶의 궁극적인 목표나 의미를 분명히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고, 타인과 공동체에 대한 배려와 책임감을 바탕으로 한 윤리적 가치가 포함되어야 한다. 일과 인간관계, 건강, 경제적 안정 등 여러 요소의 균형을 추구해야 한다.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도 스스로 발전하고 학습하는 태도가 필요하고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며 가치관에 따라 실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개인 삶의 가치관은 리더십으로 잇는 실 역할이며, 국가경영으로 이어진다. 국가경영이란 국가의 안보와 국민의 복지증진, 경제 발전, 사회 통합 등을 위해 국가의 자원과 정책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운영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국가는 지속 가능하게 발전하고 국민들이 안정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하는 일이다. 국가 지도자가 삶의 가치관이 잘못 형성되면 사회적 변화의 흐름에 인식 오류가 생길 수 있고 판단 오류와 방향 설정이 잘못 되어 나라의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국가경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국가 비전과 이를 실현시킬 리더십, 일관된 소신이 필요하다. 두번째, 법치주의 사상이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법 집행을 통해 국가 시스템이 투명하게 운영되어야 한다. 셋째, 국민 참여이다. 진정성의 소통과 경청하는 자세, 국민 참여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민주적 절차를 통해 국민이 정책 결정에 참여하여야 한다. 넷째, 효율적 행정이다. 공공 자원과 정책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경제, 사회 문화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다섯째, 국가의 주권과 영토를 보호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한다. 여섯째, 지속 가능한 경제 발전과 더불어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분배 정책이 중요하다. 이러한 국가관과 가치관이 뒷받침 될 때 나라 경영은 국민의 신뢰를 얻고 국가 발전을 이루는 기반이 된다. 최근 선진 민주주의와 K-문화로 귀감이 되는 우리 나라가 나라님의 잘못된 인식과 판단으로 상상할 수 없는 혼란 정국을 야기했다. 이것은 나라 경영자의 삶의 가치관, 판단력, 성격과 인품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나라 경영의 성공한 인물들 공통점은 국가 비전이 명확하고 국민이 공감하는 뚜렷한 목표, 청렴하고 소신 있는 태도, 사회에 선한 영향력과 도덕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삶을 이끌어 갔다는 점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을 굳이 하지 않더라도 국가 경영은 올바른 삶의 가치관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2024-12-10

‘나’를 만들었던 나의 모든 ‘감정’들에 대해서

전편에서 다섯 개의 감정을 캐릭터화했던 ‘인사이드 아웃’은 영화 속 2년의 시간이 흘러 ‘인사이드 아웃2’에서 네 개의 새로운 감정이 등장한다. 정확히 12살까지는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이라는 다섯 개의 감정으로도 아이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아니 성장과정을 그려나가는데 있어서 크게 무리가 없었다. 특정한 감정이 두드러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의 감정들이 뒤섞이며 조율되는 과정 속에서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의 관계화 과정을 보여주었다. 이때까지 아이에게 세상의 중심은 ‘가족’이었다. 자신이 어떻게 가족 구성원이 될 수 있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어떠한 감정으로 상대에게 가닿아야하는지, 스스로를 어떻게 드러내야하는지에 대한 감정의 작용을 보여주었다. ‘인사이드 아웃2’는 이제 막 13살이 된 라일리의 감정에 불안이, 당황, 따분, 부럽이라는 네 가지의 새로운 감정이 추가로 등장한다. 이전의 감정들과는 색깔과 결이 다르고 감정의 표현은 조합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늘어난만큼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지속적이지 않으며, 일관되지 않으며 출렁임과 가라앉음을 반복한다. 바로 사춘기로 접어든 것이다. 학교를 다니고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시작해 조금씩 바깥 세상과의 접촉을 늘려가면서 아이의 세계는 확정해 간다. 확장되어가는 세계 속에서 새로운 관계가 생겨나고, 그 관계 속에서 여러가지 감정들이 뒤섞이면서 가족애와는 다른 사회화 과정이 시작된다. 영화는 이를 자신의 경험에 대한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신념의 섬’이 생겨나고 이를 통해서 ‘자아’라는 나무가 자라난다고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경험의 축적에 의해 거대한 저수지같은 심연의 신념에서 자라나는 자아는 영화 초반부에 푸른빛의 나무 뿌리처럼 하나의 균질한 색깔들로 묘사된다. 새로운 감정의 등장과 함께 ‘불안’이라는 감정이 지배하는 사춘기를 그리고 있는 영화 중반부부터는 주황색의 또 다른 색깔의 신념들이 자라나면서 자아는 그 색깔을 바꾸어 간다. 사춘기는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그 어디쯤이다. 성숙되기 이전, 현재의 내가 아닌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경우의 수들이 지배하는 심리. 그 심리의 기저에 깔린 불안이라는 감정이 왜,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감정의 의인화를 통해서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영화 속에서 독창적이면서도 흥미로웠던 것은 의식과 무의식을 처리하는 작동원리를 시각화하여 보여주고 있었다는 것이다. 살아오면서 겪었던 경험들 속에서 잊어버리고 싶었던 것들, 혹은 잊어버렸던 것들에 대한 기억이 우리의 무의식 속에서 어떻게 처리되어지고 다시 되살아 나는가에 대한 재미난 의인화를 영화가 보여주고 있다. 어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닌 불안정한 상태. 나날이 몸의 변화는 빠르게 진행되어 가지만 그 속도보다 느리게 경험과 지식은 쌓여가면서 그 간격을 ‘불안’이 장악하는 시기. 확장되어지는 세계 속에서 뒤떨어지지 않으려는 안간힘과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발칙하면서도 무모한 시도가 곧잘 실수로 이어지던 시기를 영화는 그리고 있다. ‘인사이드 아웃1’의 주인공이며 중심 감정은 기쁨이고 2편의 중심 감정은 불안이다. 이것은 살아 온 날들보다 살아가야할 날들이 많은 라일리의 입장에서는 이전까지 키워왔던 자아로는 감당하지 못할 그 무엇의 압박으로 작용하고 신념의 섬에서 과거의 자아를 부정하며 피어올리는 또 다른 자아가 자라나는 시기, 질풍노도의 시기 사춘기를 다룬다. 결말은 역시 전편과 같이 모든 감정들은 라일리의 삶을 만들어가는데 꼭 필요한 감정들이라는 것이다. 실수하는 나와 완벽하지 않은 나와 관계 속에서 좌충우돌하는 그 모든 모습, 있는 그대로의 모든 것들이 나를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이 모든 것들이 바로 ‘나’라는 것이다. /(주)Engine42 대표

2024-12-10

포항 연일 대표숲 ‘연일신읍수(延日新邑藪)’ 복원 가능할까?

한반도의 겨울철 날씨는 서북풍이 매우 차갑고 매섭다. 이러한 기후 조건에 대응하기 위해 사람들은 집의 입지나 공간 구조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예를 들어,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지형을 갖춘 곳을 주거지로 선호하거나, 서북쪽에 산이나 나무가 부족한 경우에는 나무를 심어 바람을 막았다. 또한, 산이 없는 경우에는 흙으로 언덕을 만들어 그 위에 나무를 심어 주거지를 조성하기도 했다. 좌향론적 측면에서는 겨울철에 가장 오랜 시간 동안 햇빛을 받을 수 있는 서남향을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또한, 방위에 따라 창과 문의 크기를 조절하거나, 북향인 경우에는 겨울철에 주로 사용하는 남쪽 문을 따로 두기도 했다. 조선시대 영일현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기준으로 보면, 현재의 연일·대송·오천·동해·호미곶 대동배·남구 동 지역·북구 두호동에서 중앙동과 용흥동을 경계로 한 남쪽 지역을 말한다. 조선시대 군현별 지도 및 조선 전도 등을 수록한 ‘여지도(보물 제1593호, 편저 및 간행일자 미상-규장각 보관)’와 조선 후기 전국 군현 지도와 그 지방 형세를 수록한 ‘지승(편저, 간행일자 미상, 규장각 보관)’을 살펴보면, 둘 다 지도의 중앙에 남성리 영일읍성(구남성)이 그려져 있고, 동쪽에 성문이 하나만 보이며, 객사와 동헌은 직각 배치 형태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주로 읍성 안의 땅이 비좁을 때 쓰는 공간구성 방안이다. 지도 우측면에는 형산강과 칠성천 사이 솔숲이 그려져 있고 ‘북송전(北松田)’이라는 글씨가 또렷하게 쓰여져 있다. 인공숲이라는 의미로 밭을 의미하는 田(전) 자를 쓴 것으로 보인다. 또한 조선후기 편찬된 전국 군현 지도집 ‘광여도(1737(영조13)∼1776년(영조52) 간행, 규장각)’와 조선후기 편찬된 경상도 군현 지도집 ‘영남지도(1745∼1767년 제작 추정, 보물 제1585호, 규장각)’에는 둘 다 지도의 중앙에 생지리 영일읍성(고읍성)이 그려져 있는데, 읍치 뒤편 형산강과 바닷가 쪽으로 산이 그려진 것은 바닷바람과 겨울 서북풍을 막는 비보(裨補) 용도의 인공 숲 북송전으로 추정되지만 글씨가 없다. 경북마을지 상권 282쪽(생지리 마을의 역사, 경상북도·경북향토사연구협의회, 1990)에 북송전의 근거가 될 듯한 내용이 있다. “1866년 현감 南順元 때 길이 7리, 너비 5리에 달하는 지역에 나무를 심어 큰 숲을 이루었는데, 지금은 느티나무와 팽나무 7-8그루만이 남아있다. 이곳을 생마루수(藪), 또는 연일신읍수(藪)라고 부른다.” 포항시사 연일읍 생지리 마을유래에는, “넓은 들판에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해 팽나무와 느티나무를 6-8리로 심어 큰 숲을 이루었다. 이 나무들이 형산강 수로 변경과 도시화 과정에서 농지개발 등으로 훼손되었다”고 적고 있다. 광여도와 영남지도에서 영일현청이 연일읍 생지리 고읍성에 있을 때 연일읍 생지리에 ‘북송전’으로 추정되는 인공숲이 그려져 있지만, 여지도와 지승 지도에서 영일현청이 대송면 남성리 구남성에 있을 때, 이미 생지리에 ‘북송전’이 인공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면, ‘경북마을지’와 ‘포항시사’의 내용은 기존의 인공 숲에 추가로 숲 길이를 연장하였거나 죽은 나무를 베어내고 보식(補植)을 했던지, 아니면 대체목(代替木)을 심은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 숲의 길이가 6∼8리라면 2.36km…3.14km 정도의 길이인데, 경북마을지의 폭 5리는 과장된 표현 같고, 길이가 5∼7리로 추정된다.‘포항시사’에서는 폭 언급이 없으나, 1938년 조선총독부에서 조사한‘조선의 임수’에 따르면, 장기 숲 폭이 393m, 흥해 북천수 폭이 150m 인 것을 보면, 북천수 폭에 가깝지 않았을까 유추해 볼 수 있다. 실제 ‘연일신읍수’로 추정되는 연일읍 생지리를 가보니 다행스럽게도 아직 흔적이 남아 있었다. 도시계획 도로를 개설하면서 훼손하고 남은 나무들이 일부 도로변에도 남아있고 자동차학원 부지 안에도 남아 있었는데, 연일읍 농업인 상담소 뒤편 도로(연일로 145번길-생지리496) 부지 북측 3그루, 남측 2그루, 자동차 운전학원(생지리136-5) 내 3그루 등 전체 8그루로 보이는데, 수종은 팽나무 7그루, 왕버들 1그루가 훼손의 아픔을 간직한 채 연일 대표 숲 ‘연일신읍수’의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 2020년 정부는 ‘도시숲 조성법’을 제정했고, 각 지방자치단체는 도시 열섬 완화 숲, 미세먼지 차단 숲 등을 조성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숲을 만드는 일도 중요하지만, 선조들이 기후 환경에 지혜롭게 대응했던 숲을 복원하는 일 역시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조상들의 슬기로 조성된 인공 숲이 국가지정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관광객을 부르고, 시민들의 안식처로 사용되는 사례를 살펴보자. 박상구경주대 대학원 특임교수 통일신라 진성여왕 때 함양태수 최치원이 위천의 범람을 막고자 둑을 쌓고 그 둑을 따라 나무를 심어 숲을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 숲이 상림공원(천연기념물 제154호)이고, 1745년(조선 영조 21) 하동도호부사였던 전천상이 강바람과 강물의 범람을 막기 위해 하동 송림공원(천연기념물 제445호)을 만들었으며, 고려말 안동김씨 김자첨이 안동에서 의성 사촌마을로 이주해 오면서 ‘서쪽이 허하면 인물이 나지 않는다’고 하여 조성한 숲이 사촌마을 가로숲(천연기념물 제405호)이다. 이들 숲의 공통점은 인공 숲이고 후대에 성심성의껏 관리해서 국가지정 천연기념물이 되어 관광객들이 휴식처로 찾는 최고의 공원으로 자리매김하였으며, 지역민들에게는 건강한 허파와도 같은 최고의 선물이 된 것이다. ‘시작이 반이다.’ 연일 대표 숲 ‘연일신읍수’복원의 그림이 해마다 더해져 소나무와 팽나무 그리고 느티나무가 어우러져 형산강과 영일만의 바람에 힘차게 가지를 부딪기를 소망해 본다.

2024-12-10

문제는 경제다

김규인 수필가 경기 둔화 우려에 한국은행은 기준 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하여 3.00%로 조정한다고 발표했다. 금리를 결정하는 한국은행장의 고뇌를 느낀다. 내수 부진과 수출 감소로 몸살을 앓는 한국 경제의 부진을 타개하기 위한 결론이다. 살얼음판을 걷는 경제를 살리려는 노력이 눈물겹다.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이러한 노력은 물거품이 된다. 12월 3일 밤의 비상계엄은 가뜩이나 어려운 한국 경제를 더 힘들게 한다. 관망하다가 이제 막 한국 주식을 사려는 해외 투자가들을 돌아서게 했고 가지고 있던 주식마저 팔았다. 떨어지는 주가에 경제부처의 빠른 대처와 비상계엄의 조기 해제로 낙폭을 줄였다. 환율도 다르지 않다. 크게 하락하다가 정부의 적극적인 대처와 비상계엄의 조기 해제로 1410원대에 머문다. 하지만 여전히 환율은 높다. 원화 가치의 하락은 수출하는 회사에는 유리할 수 있으나 불안한 물가를 더 부추기고 경제 전반에 미치는 악영향이 크다. 이마저도 계속되는 정치의 불안정으로 더 오를 가능성이 높다. 정치가 경제를 뒷받침하는 게 어려운 것일까. 선거철만 되면 국민을 받들겠다던 정치인들은 선거만 끝나면 정권을 잡는 것에 혈안이 되어 국민의 생활은 뒷전이다. 정쟁 중에도 국가 운영을 위하여 필요한 예산을 삭감하면서도 자신들의 임금 인상과 활동에 필요한 예산은 알뜰히 챙긴다. 팽팽할 거라던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민주당의 해리스 후보를 압도적으로 이겼다. 문제는 경제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트럼프가 들어서면 경제가 더 나아질 거라는 판단 때문이다. 미국의 영향으로 여러 나라가 자국의 경제를 위해 각종 정책을 펼치는 데 우리 정치인은 권력을 잡는 데만 관심을 둔다. 권력을 가진 자는 더 가지려 하고 가지지 못한 자는 빼앗으려고 한다. 정치와 경제가 국민을 잘살게 하려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같이 갈 수는 없을까. 다른 부족한 부분에도 불구하고 경제를 내세운 트럼프가 당선되었다. 이를 보고도 이해하지 못하는 정치인들에게 뭐라고 해야 알아들을까. 무지막지한 권력을 손에 쥐고 휘둘러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인지. 자신들의 배를 두둑이 하고도 뭘 더 바라는 것인지. 정작 주위를 둘러볼 시간은 없는 것인지. 거리를 조금만 걸어도 상가는 문이 닫혔고 시장은 손님을 기다리느라 목이 빠진 사람들이 가득하다. 씀씀이를 줄이느라 내수 경기는 바닥을 치는데 정치는 그저 자신들의 일로 바쁘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서민들이 얼마나 힘들어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를 살펴야 한다. 트럼프가 당선으로 높이 쌓아 올릴 무역장벽으로 나빠질 우리 경제 때문에 국민은 밤잠을 설친다. 자국의 이익만 챙기려는 강대국의 힘자랑에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우리가 나라 걱정을 하지 않고 살고 싶은 나라를 만들 수는 없을까. 세 평 정도의 공간에 컴퓨터 3대를 놓고 3명의 국회의원이 같은 공간을 쓰며 내놓는 정책이 국민을 더 편하게 하는 북유럽의 나라를 보면 부럽기만 하다. 정치인이 국민의 삶을 살필 때 경제는 살아난다. 경제가 멈추면 국민의 삶도 정치도 멈춘다. 국민도 정치인도 답은 경제다.

2024-12-09

선의의 순환을 위하여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라는 웹소설이 있다. 소설은 환경오염이 심각해진 가까운 미래에 우주 개척마저 한계에 이르자, 거대 자본을 가진 강대국들이 심해를 개척한다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심해기지에 도착한 치과의사 박무현은 부임 후 5일 만에 기지가 물에 잠기는 사태에 직면한다. 심해기지는 빠른 속도로 차오르는 물과 거주 인원보다 턱없이 부족한 탈출 보트 등으로 위기의 순간을 맞고, 사람들은 자기만 살겠다는 생각에 총을 난사하는 등 극단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설은 박무현이 주변 사람들에게 선의를 베풀고 이에 동조하는 사람들과 반발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초점을 둔다. 가령 박무현은 생명이 위태로운 절체절명의 순간에 탈출을 미루고 동물을 구하거나 다른 사람을 돌보는 행위를 한다. 선의를 가진 박무현은 곧 죽음을 맞게 되지만 현실로 회귀하여 반복해서 탈출을 시도한다. 보통의 회귀물 웹소설과 다르게 박무현은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다. 처음부터 박무현의 관심사는 자신의 안전이 아니라 우리의 안전에 있었다. 이런 박무현의 행동을 일부 사람들은 ‘위선’이라고 비판했지만, 박무현은 ‘선의의 순환’을 생각하며, 무엇보다 자신의 행위가 타인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을 위한 행동이라고 강변한다. 지난 12월 3일 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많은 국민이 고통받고 있다. 이전부터 수많은 시국선언이 있었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더 많은 곳에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시국선언과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 정치집단은 사태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정권 연장에 급급한 모습이다. 최소한의 양심도 발견하기 어려운 이들의 뻔뻔함은 분노를 일으키지만, 한편으론 익숙한 것이다. 그렇다고 탄핵을 주장하는 정치집단을 옹호하고 싶지는 않다. 현 대통령의 탄생에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이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주목한 것은 이번 불법적 비상계엄 선포에 동조한 사람이다. 국회의 긴급현안 질의에 참석한 이번 사태의 동조자들은 하나 같이 잔뜩 위축된 표정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 중 일부는 상부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지만 마음 한쪽에서는 따라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아닐까. 막상 내가 그 위치에서 상부의 명령을 용기 있게 거절하기란 쉽지 않다. 누군가를 쉽게 비난할 수 있지만, 자기의 양심을 지키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인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자기의 양심을 지키기 위한 행동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대통령 탄핵이 반복되는 현실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다. 무엇보다 지금 대통령은 바로 우리 손으로 직접 뽑았다는 점에서 나의 죄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당장 생업이 발목을 잡지만 그 누구도 아닌 나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다시 거리로 나서야 한다. 그렇게 선의의 순환이 이루어질 때 조금 더 나은 세상이 올 수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바로 나와 나의 아이들을 위해 다시 거리로 나가야 한다. 다시 때가 되었다.

2024-12-09

김병해 시인, 열악한 언어생태 환경의 파수꾼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김병해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아뜩한 절간’은 튼실한 언어로 축조된 자신의 시 세계를 반딧불이 같은 초롱불빛 등을 우리들에게 내밀고 있다. 문형렬은 “단단하면서도 깊은 서정의 시어를 빚어낸 그는 이번 시집에서는 평이하면서도 울림이 깊은 목소리로 존재의 적적한 모습들을 가만가만 노래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맞춤맞은 시평이다. 시인은 새로운 단어를 낳는 연금술사다. 시인이 아름다운 단어들을 빚어 어떻게 적재적소에 잘 배치할 수 있는가가 시인에게 거는 나의 기대다. 그런 의미에서 김병해는 밀려드는 외래어와 잡종의 혼종어들이 깨끗한 언어를 잡아먹는 열악한 언어생태 환경에서 우리말을 지켜내는 파수꾼이다. ‘외따름히’, ‘별쫑맞은’, ‘바위너설’, ‘휘우듬히’, ‘생떼거리’, ‘북재비’, ‘구부스름’, ‘무젖은’, ‘들큰’, ‘놋갓쟁이’, ‘흔덕이는’, ‘허릿매’와 같은 잘 사용하지 않거나 사전에도 없는 낱말을 곧잘 만들어 내는 기량을 김 시인은 가지고 있다. “좁장한 이랑의 민둥 산비탈 끝녘/숨은 듯 위뜸 봇둑작은 과수밭/껍질에 닫혀 부푸는 과육이 우겨대던/늦가을 이즘 시렁 문턱밖으로/도톰하니 여문 과실 떠나보낸 나무가 편안합니다//들명달명 되풀이들이밀던 바람의 흘레질/물관부 체액으로 테두리 잎맥마다/얼치기 골백번생각만으로 헤아리던/크기와 무게에다 호흡을 쏟은 탄탄한 열정/그 결기 찬찬히 되걷는 저녁 시간입니다//뭉툭 무뎌진 밑동 늦도록 바닥에 끌리면/휘어진 그루, 결별의 그림자는 길어서/가쁜 숨이 잦아들어 심이 될 때까지/수그린 빈 몸으로 저물을 맞서는/참 오래된 사과나무의 시간입니다”(오랜 사과나무의 시간)에서 ‘좁살한’, ‘위뜸’, ‘이즘’, ‘들명달명’, ‘되걷는’, ‘수그린’, ‘저묾’과 같이 새로운 낱말 만들고 간간이 경상도 사투리를 살포시 끼워넣는 재주를 가진 시인이다. ‘안부’는 아예 전편이 경상도 방언이다. “하모 글치/내사 여서 잘 있데이//카마 니는 거 머 하미/어데 우째 지내노//암마 빌일 읎는 기제/공연시리 궁겁네//꽃 지기 전/함 댕기 가그레이”. 경상도 출신 가까운 친구와 전화로 주고받는 대화로 서로 어떻게 지내는가 안부 인사를 주고받는 걸걸한 목소리이다. 이 방언 시의 텍스트를 읽으면 소리가 일어난다. 마치 곁에 경상도 사람들의 일상이 소리와 풍경화로 다가온다. 마지막 연은 누구의 목소리라고 할 것 없이 둘 다 서로에게 또는 스스로에게 당부하는 말이기도 하다. 보고 싶으니 한번 다녀가라는 말이다. 이 대화 시의 주인공은 오랜 친구일 수도 있고 멀리 사는 일가친척일 수도 있다. 그런데 왜 하필 꽃 지기 전일까? 꽃 지기 전이라면 언제일까? 그것은 꽃이 한순간 지고 만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두 사람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짧은 지상의 이 순간이 다하기 전에 서로 한 번 다녀가라고 권하는 절묘함을 표현하고 있다. 꽃이나 나무는 시인의 시적 소재에 매우 중요한 매개인 동시에 시인의 인식과 존재의 옷깃으로 현재화된다. 꽃이 지듯 짧은 시간성은 인간 존재를 빗댄 상징성이다. 김병해 시인은 자연 속 식물에 대한 촉감이 매우 뛰어나다. “살점의 뿌리는 뼈대이고/유년의 뿌리는 기억이다//바다의 뿌리가 강줄기라면/별빛의 뿌리는 어둠이다//세상 모든 뿌리 없는 것들 그러모은/저항의 뿌리는 불길이겠지만//방목한 빈 바람 소리만/내달리는 폐사지//아무 말 않고서도 모든 것을 말하는/뜨겁게 북받치는 모든 것들의 언어//적멸의 뿌리는/여태 숨죽이던 버젓한 비명이다”(‘모든 것들의 뿌리’)에서 그의 인식과 사유의 뿌리가 도달한 곳은 존재라는 나무의 뿌리이고 그 적멸의 뿌리는 언어이며 시라는 비명으로 드러난다고 한다. 김병해 시인은 낱말 만들기에만 능숙하게 아니라 시어의 현상적 의미에 대한 깊이를 철저하게 가늠하는 세련성을 지녔다. ‘뜨다,는 말의 생애’는 11종의 ‘뜨다’라는 낱말이 품고 있는 의미망을 엮어 한 편의 시로 만들어내었다. 시인학교를 빗댄 그의 풍자적인 시 한 구절이 눈에 들어온다. “취한 인구 감소에도 시인은 넘쳐 학급 대폭 증설”, 하하하, 위대한 시인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2024-12-09

일본의 서재, 진보초 헌책방 거리

연구를 위해 도쿄에 머물면서, 제가 연구실 다음으로 많이 방문하는 곳은 아무래도 진보초 헌책방 거리입니다. ‘간다고서점연맹’에 가입된 서점만 127개에 이르는 진보초는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의 헌책방 거리인데요. 이렇게 많은 헌책방이 한 곳에 모이게 된 이유는, 이 곳이 책을 필요로 하는 학생들의 동네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1853년 미국의 페리가 이끄는 함대가 내항한 이후, 막부는 서양학문을 취급하는 기관의 필요성을 절감합니다. 이로 인해 진보초 근처에 1855년 ‘요오가쿠쇼(洋学所)’가 만들어지고, 이것은 이후 ‘요오쇼시라베쇼(洋書調所)’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메이지 정부 출범 이후 도쿄의과대학과 합병하여 도쿄대학이 됩니다. 이후 근방에는 1873년에 도쿄외국어학교가 탄생하고, 뒤이어 메이지대학, 주오대학, 센슈대학, 니혼대학 등의 전신이 되는 학교가 잇달아 개교하였던 겁니다. 학생들의 동네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근처에는 공부를 하기 위해 꼭 필요한 서점이 밀집하게 되었고, 이것이 바로 세계 최대 헌책방 거리인 진보초의 탄생 배경입니다. 진보초에서는 책만 파는 것이 아니라 일년 내내 다양한 문화행사가 펼쳐지는데요. 특히 가을이면 열리는 ‘간다헌책마츠리’는 올해로 64회를 맞이하며, 일본인들의 마음을 설레이게 하는 유명한 축제입니다. 올해는 10월 25일부터 11월 4일까지 열렸는데요. 이 때는 수많은 고서점들이 가판대를 설치하여, 꼭꼭 숨겨두었던 희귀본들을 싼값에 일반에 공개하고는 합니다. 축제 기간 동안 구름 같은 인파가 몰려들어 비장의 책을 찾는 모습은 도쿄의 명물인데요. 저도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며 보물같은 책을 찾고 또 찾았습니다. 올해 제가 건진 최고의 수확은, 1970년대 초에 한국문학을 일본에 소개하던 ‘朝鮮文学の会(조선문학의회)’라는 단체에서 번역하여 출판한 ‘現代朝鮮文学選(현대조선문학선) 1’(創土社, 1973)입니다. 11월 23일부터 24일까지는 이틀에 걸쳐, ‘K-BOOK 페스티벌’이 펼쳐지기도 했는데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11시에 출판그룹빌딩에 도착했을 때는,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빌딩 주위로 길게 줄을 서 있을 정도로 열기는 뜨거웠습니다. 이 행사에서는 한국문학 번역 관련 시상식도 있었고, 한국의 유명 시인 작가들의 대담 행사도 펼쳐졌습니다. 올해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인해 그 열기가 예년보다 더욱 뜨거웠는데요. 행사장의 한 쪽에는 한강 작가의 책들과 한강의 문학세계를 한국문학사의 맥락에서 짚어낸 전시물이 시선을 끌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날의 주인공은 일본에 번역된 한국문학 관련 책들이었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46개 출판사가 참가하여, 한국문학 관련 서적을 판매하고 있었는데요. 어느새 한국문학도 진보초, 나아가 일본 문화의 한복판에 당당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에는 한국에서 온 스무 명의 작가, 시인들과 함께 ‘한·일 작가 교류회’가 열리는 쇼가쿠칸(小學館) 출판사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일본 문학인들과의 교류회가 있었는데요. 이 자리에서 무엇보다 저를 흥분시킨 일은 나카가미 겐지의 딸인 나카가미 노리를 만난 것입니다. 나카가미 노리는 에세이스트이자 소설가로 유명한데요. 나카가미 노리는 소설가 나카가미 겐지의 딸이기도 합니다. 마흔 일곱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나카가미 겐지는 ‘곶’이나 ‘고목탄’으로 유명하지만, 저에게는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의 문학적 동지라는 의미가 더욱 크게 다가오는 작가입니다. 가라타니 고진은 나카가미 겐지가 죽었을 때, 이제 일본근대문학은 끝났다며 본격적인 문학비평을 그만두기도 했으니까요. 가라타니 고진에 의하면, 나카가미 겐지 이후의 일본 소설이란 로맨스에 불과하며, 심지어는 에도시대(1603-1868) 이야기로의 퇴행이라고까지 합니다. 이경재 숭실대 교수 교류회가 끝난 이후에는, 관계자 분들의 안내를 받아 헌책방을 구경했는데요. 지금까지 여러 번 둘러본 헌책방 거리이지만, 이전에는 못 가본 귀한 곳에 가볼 수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에 남는 가게는 1882년에 설립된 ‘오야쇼보오(大屋書房)’였습니다. 현재 창업자의 4대 후손이 운영하는 이곳에서는, 에도 시대와 메이지기의 일본 책, 오래된 지도, 우키요에 판화 등을 전문적으로 취급하고 있었는데요. 강의실에서 말로만 듣던(혹은 하던) 도카이 산시의 ‘가인지기우(佳人之奇遇)’(1885-1897)나 후쿠자와 유키치의 ‘학문의 권장(学問のすすめ)’(1872-1876)과 같은 책의 초판본을 볼 수 있었습니다. 150여 년 전의 이 책들을 직접 보니, 책이라는 물성이 내뿜는 아우라(원본에서 느껴지는 고상하고 독특한 분위기)가 만만치 않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독서대국으로 일컬어지는 일본이지만, 현재는 서점의 수도 최전성기에 비해 3분의 2로 줄었고, 심지어는 일본인의 절반 이상은 1년 동안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고 합니다. 책의 위기는 일본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닌 모양입니다. 그러나 책이 지닌 고유한 힘과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남아 있는 한, 책도 활자문화도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는 않으리라는 생각(기도)을 해봤습니다.

2024-12-09

깨진 유리창 앞에서

산산조각 난 유리창 앞에 서 있는 기분을 아는가. 나는 아주 잘 알고 있다. 대학교 일 학년 때의 일이다. 한 남학생과 싸움이 붙었다. 시작은 사소했으나 과격한 말다툼이 이어졌다. 순간 그의 주먹이 내 얼굴 쪽으로 날아왔다. 나는 꼼짝없이 저 커다란 주먹에 맞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머릿속에는 별생각이 다 들었다. 아, 남자애의 주먹이란 정말 단단하고 크구나. 저기에 볼이 닿으면 만화에서 보았던 것처럼 우스꽝스럽게 뭉개질지도 몰라. 오래된 시멘트벽처럼 후드둑 부스러질 수도 있고. 맞은 후에는 곧장 경찰에게 신고해야겠지. 그러면 저 아이는 감옥에 가게 되는 걸까. 그나저나 나 괜찮은 거야? 숨 쉬지 못할 정도로 아플 거야. 차라리 정신을 잃었으면 좋겠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남학생의 주먹은 내 얼굴을 피해 창문으로 가 닿았다. 유리창은 그야말로 산산조각이 났다. 남학생의 주먹에서 피가 뚝뚝 흘렀다. 수업을 듣던 선배들이 뛰쳐나왔다. 너희 미쳤느냐고, 제 정신이냐고 불같이 화를 냈다. 남학생은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널브러진 유리 파편, 바닥에 묻은 핏자국과 그것을 수습하려는 사람들. 주변이 바쁘게 돌아가는 가운데 나는 현실감각을 잃은 사람처럼 깨진 유리창 앞에 서 있었다. 그 일은 한동안 나와 친구들의 안줏거리였다. 우리는 그날의 사건이 정말 별것 아니었던 것처럼 웃어넘겼다. 내가 얼마나 무력했는지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하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날을 정밀하게 들여다보는 행위는 너무나 괴로운 일이었으니까. 학과 복도를 오갈 때마다 깨진 상태로 봉합되지 못한 유리창이 보였다. 새로운 유리창으로 고쳐지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나는 시도 때도 없이 그의 주먹을 상기해야만 했다. 그때 나는 폭력이란 아주 복잡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손을 대지 않고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도 알았다. 결론적으로 그 아이는 팔이 부러졌고 나는 상처 하나 나지 않았다. 다친 사람은 그 아이 하나였다. 누군가는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너는 입으로 남자애의 팔을 부러뜨렸네. 나는 정말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던가? 그날을 떠올리면 가슴이 조일 듯하고 숨이 막혀 온다. 두꺼운 손이 내 눈 앞을 스쳐 지나가던 그날의 공포. 폭력은 필연적으로 흔적을 남긴다.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매우 선명하게 일상을 맴돈다. 어느 식사 자리에서 가족이 모여 유년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오빠와 자라면서 크고 작은 싸움이 잦았는데, 부모님은 그때의 일을 대수롭지 않게 꺼냈다. 그때 말이지, 얘가 얼마나 유난이었느냐면, 오빠가 아주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세상이 떠나갈 듯 울었던 거야. 그러면 얘 오빠는 얼마나 억울해. 조금 건드렸다는 이유만으로 맨날 혼나는 거지. 모두가 동시에 웃는 식탁 위로 나는 들고 있던 유리컵을 깨뜨리는 상상을 했다. 유리컵이 깨지고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며 일어나는 가족들. 유리컵 하나 깨뜨렸을 뿐인데 왜 세상이 떠나갈 듯 소리를 질러요? 그 앞에서 와하하 웃는 내 모습을 그렸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당신들의 말이 나를 아프게 하고 있다는 말을 꺼내는 순간, 또 다른 생채기를 내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폭력은 폭력을 낳기 마련이다. 뾰족한 마음을 억지로 삼키며 식사를 재개했다. 식도가 따끔했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지난 3일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이후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의 절박함에서 비롯된 것”이라 했다. 내 귓가에서 무언가가 쨍그랑 깨지는 소리가 났고 그간 겪어온 폭력의 기억이 몰려왔다. 네가 다친 곳이 어디 있다고 그래… 살짝 건드렸다고 울었어… 그와 비슷한 말이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이들의 입을 통해 들려온다. 그 말은 오묘한 형식으로 재생산된다. 한밤의 해프닝으로 일축한다. 심정은 이해하지만,이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그래요. 그것은 분명히 잘못된 행동이 맞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과거와는 다릅니다… 그래서 누가 다쳤습니까? 온몸이 따끔하다. 이 고통은, 이 상실감은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내가 겪어온 폭력의 경험, 선배들에게 무수히 들어왔던 과거의 역사, 그간 읽고 보았던 처절한 기록이 내 안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주먹은 날아왔고 등 뒤의 유리창은 깨졌다. 우리는 깨진 유리창 앞에 서서 외친다. 어서 빨리 이것을 복구하라고. 틈 사이로 닥쳐오는 찬바람이 얼마나 매서운 것인지, 상흔을 가진 이들에게 그것이 얼마나 쓰라리게 다가오는지 느끼라고. 이 일에 손실을 따지며 계산기를 두드리는 이들을 본다. 이제 나는 거대한 벽에 가로막힌 기분 또한 알 것 같다. 겨울이 끝나기엔 멀었다는 실감이 난다.

2024-12-09

가야 할 때를 알고 가는 것

나는 서울 마포구의 홍대 앞을 중심으로 음악활동을 시작한 인디뮤지션이다. 처음 기타를 등에 짊어지고 홍대 앞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던 때가 스무 살이었고 이제 곧 서른아홉 살이 되니 거의 스무 해 가까이 그 동네의 골목골목을 누빈 셈이다. 저 모퉁이를 돌면 무슨 가게가 나오고 거기는 뭐가 맛있고 하는 정보들을 꿰고 있었고, 어딜 가든 아는 얼굴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하곤 했다. 그 거리가 다 내 영토 같았고 나는 그곳을 지배하는 왕이라도 된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나는 별로 변하지 않은 것 같은데 거리가 참 많이 변했다. 사랑했던 공연장들, 단골집들이 하나하나 문을 닫고 그 자리에 낯선 간판들이 내걸렸다. 여전히 북적북적한 메인 거리에는 언제부턴가 가기가 부담스럽다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좀 더 바깥쪽으로, 좀 더 후미진 곳으로 밀려나 살아남은 몇몇 익숙한 공간들만이 나의 마지막 남은 피난처가 되었다. 내가 거느리던 그 영토에서는 그때의 나를 닮은 젊은 친구들이 취하고, 싸우고, 소리치고, 사랑하고 있다. 그것이 문득 파도처럼 내 마음을 덮친 밤 나는 노래 한 곡을 썼다. 지난주에 발매된 새 싱글 ‘퇴위’는 그렇게 만들어진 곡이다. 이제는 그 흥성거리는 거리를, 그리고 그곳을 누비던 한 시절을 떠날 때가 되었다는 걸 인정한다는 고백을 담았다. “난 이제 물려준다. 정들은 내 영토를. 새로운 인류에게로. 난 이제 떠나간다. 세월의 뒤안길로. 아무런 흔적도 없이.” 내가 사랑했던 공간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고 이제는 새로운 공간과 시절을 향해 새로운 여정을 떠나겠다고 노래해보았다. 한 시절이 저무는 것에 대해 아쉬움이야 왜 없겠는가. 그러나 이제는 인생의 새로운 계절을 맞이해야 할 시기임이 분명하다. 그 공간과 그곳을 채우는 모든 사람들이 더 이상 나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제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문장들 중에 아름다운 것을 꼽으라면 참 곤란한 일이 되겠지만 그래도 나는 이형기 시인의 ‘낙화’라는 시의 첫 문장만큼은 반드시 그 안에 포함시킬 것이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적절한 시기에 지키던 무언가를 내려놓고 떠나간다는 것은 분명 아름다운 일이지만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나 역시 언제나 그 시기를 놓치곤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학교 앞 거리를 망령처럼 떠돌았고, 오히려 청소년기를 보냈던 오래된 동네는 나이를 먹을수록 그립기만 하다. 그러나 이제는 알고 있다. 가야할 때를 알고 아름답게 떠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구차하게 추한 모습으로 내가 머물고 있는 공간과 시절에 들러붙어있지는 말아한다는 것을. 그렇다면 가야할 때는 언제 오는가. 여러 가지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단지 나이를 먹었다는 이유만으로 떠나야 하는 공간도 있다. 학교가 그렇고 정년을 맞았을 경우 회사가 그럴 수 있다. 이렇게 남들이 정해준 시기에 떠나는 일은 어려운 것이 아니지만, 떠나야 할 시기를 스스로 정해야 하는 경우들이 늘 어려운 것이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때로는 더 소중한 가치가 내가 머무는 곳 바깥에 생겼을 때 떠나야 할 시기가 찾아오곤 한다. 이십대 청춘의 흔적이 남아있는 그 번화가를 떠난다는 선언이 그곳에 다시는 발길을 향하지 않겠다는 다짐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곳이 이제 내 삶의 중심을 둘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행위임은 분명하다. 나는 이제 그곳 바깥에 가정이 있고 책임져야 할 자식이 있는 사람이기에 이제는 미련 없이 떠나겠다는 노래를 만들게 된 것이다. 살다보면 더 이상 내가 자리를 감당할 수 없을 시간이 간혹 생긴다. 그때는 물러나야 할 순간이다. 내가 변했거나 내가 감당해야할 것이 커졌거나 예상치 못한 사정으로 인한 것이지만 어쩔 수가 없다.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물러선다면 그 시기 또한 중요하다. 우리는 그것을 눈치라고 부른다. 눈치가 보이기 전에 눈치를 채는 것이 모두를 위하는 길일 수 있다. 어렵게 거머쥔 것이어서 내려놓는다는 것이 슬프기도 하겠지만 인정해버리면 속 시원해질 수도 있다.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떠나야 하는 때가 오면 스스로 떠나는 것이 옳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말단 직원부터 기업대표나 국가 최고의 기관장을 비롯한 육해공군 장성이나, 심지어 국가 의전서열 1위 같은 그 어떠한 자리라고 할지라도…. 신곡 ‘퇴위’가 참 공교로운 때에 나왔다. 그런데 가만 보면 세상에 공교로운 일들에도 어떠한 의미가 담겨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2024-12-09

여권은 납득할 수 있는 ‘尹 퇴진 일정’ 제시를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 방식과 일정을 놓고 여야 대격돌이 일어나고 있다. 국민의힘은 ‘질서 있는 조기 퇴진’을 언급하며 ‘자진하야’에 무게를 두고 있고, 야당은 즉각적인 탄핵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어제(9일) 최고위원회의와 의원총회를 잇달아 열고 윤 대통령 조기 퇴진을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 등 정국 수습 방안을 논의했다.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보다는 ‘질서 있는 조기 퇴진’이 국정안정에 유리하다는 입장이다. 한동훈 대표는 탄핵반대 이유에 대해 “가결되더라도 헌법재판소에서 어떤 결정이 나올지 불확실성이 상당 기간 진행되고 그 과정에서 극심한 혼란이 예상된다”고 했다. 지금 국회 추천 몫 헌법재판관 3명이 공석인 상태고, 헌재가 탄핵 심판을 하는 과정에서 국민도 탄핵 찬성·반대로 나뉘어 극심한 국론분열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여당내에서도 조기퇴진에 대한 의견은 엇갈리고 있다. 친윤계는 ‘임기 단축 개헌’에, 친한계에선 ‘조기 하야’에 무게를 두는 듯하다. 반면, 야권의 일관된 정국수습책은 윤 대통령의 즉각적인 퇴진과 조기 대선이다. 야권은 국가 위기를 차기 대권의 발판으로 삼으려 한다며 한 대표를 의심하고 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오는 14일 국민의 이름으로 반드시 윤 대통령을 탄핵하겠다”고 했다. 민주당은 어제 윤 대통령 등의 내란 혐의를 규명할 상설특검법을 법사위에서 심사했으며, 내란 혐의를 수사할 일반 특검법도 발의했다. 상설특검법은 일반 특검법과 달리 대통령이 재의요구권을 행사할 수 없다. 민주당은 현재 한덕수 국무총리와 한동훈 대표를 ‘내란 세력’으로 규정해둔 상태다. 여야의 극심한 정쟁이 지속되면서 지금 국정은 마비상태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국가미래가 걱정이다. 여권은 탄핵만은 피하고 싶다면 윤 대통령 퇴진 시점의 모호성을 불식시켜야 한다. 질서 있는 퇴진의 구체적인 시간표를 하루빨리 제시해야 한다. 민주당도 수권정당이 되려면 극단적인 정쟁을 자제하고, 여당과 협상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2024-12-09

연말, 음주운전은 안 돼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기뻐서 한잔, 슬퍼서 한잔, 화나서 한잔, 나쁜 기억을 잊으려고 한잔…. 12월은 피할 수 없는 모임이 많아지는 한 해의 마지막 달이다. 한국인의 생활 패턴을 감안할 때 회식 등에서 술이 빠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아무래도 술 마실 자리가 많아지는 시기가 온 것이다. 경찰의 음주운전 단속은 연말이면 ‘집중’ 또는 ‘특별’이란 이름을 앞에 붙여 더 자주 이뤄지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술을 마시고 운전석에 오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건 심각한 문제다. 음주운전에 관한 처벌 규정은 갈수록 강화되고 있는 추세다. 지난 2020년 개정된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에 의하면 음주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냈을 경우 운전자는 매우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 피해자에게 지급된 보상금을 음주운전자가 도로 토해놓아야 하는 것. 이른바 ‘구상권 청구’다. 술을 마신 상태에서의 차량 사고는 보험 혜택도 받기 힘들다. 이렇듯 경제적 손해와 위험성이 큰 음주운전임에도 어째서 눈에 띄게 줄어들지 않는 걸까? 사실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 규정은 외국이 더 강력하다. 튀르키예는 음주운전을 3회 이상 반복한 운전자에겐 정신과 치료를 받게 하고, 핀란드는 1개월치 월급을 국가가 몰수한다. 수입이 많은 사람은 수억 원이 벌금으로 나간다. 이탈리아 역시 만취 상태 운전자에겐 최대 900만원의 벌금과 징역 1년을 선고할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싱가포르는 3회 이상 음주운전을 한 사람에게 24대의 태형을 명령한다. 비단 처벌이 무서워서가 아니다. 자신은 물론 타인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음주운전의 악습은 이제 끊어야 할 때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12-09

이 광기의 바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그가 바다 한가운데 버티고 섰다. 맹렬히 끓어오르고 있었다, 성난 바다는. 미친 바람이 사정없이 몰려들었다. 바다는 저도 모르게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허기에 사로잡힌 바다였다. 무엇이라도, 통째로, 송두리째 집어삼키지 않으면 안되는 것 같았다. 괴물 같은 바다가 몸부림을 칠 때마다 미물 같은 생명들은 안쓰럽게 휘둘렸다. 바다는 눈이 없었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바다는 오로지 제 사나운 갈퀴를 들어 무엇이라도 찍어버리려 했다. 산더미 같은 파도 갈퀴들이 버티고 선 그를 덮쳐 버리려 했다. 미친 바다 날카로운 거품, 갈퀴 파도가 그를 향해 쇄도해 들었다. 어디를 어떻게 긁혔는지, 빨간 핏물이 버티고 선 그의 두 뺨을 타고 흘렀다. 그것은 핏물 아닌 눈물, 피눈물이었다. 그때 성난 포말의 군중들이 사방에서 그를 물어뜯으려 몰려들었다. 하이에나 떼라도 된 것 같은 그들은 미친 문자의 바닷속에서 자기야말로 진짜 갈퀴를 가졌노라, 아우성을 쳤다. 하마 누구한테 뒤질세라, 더 맹렬하게 끓어올라야 하리라, 거품들은 거품처럼 거품답게 부풀어 올랐다. 한없이 부풀어올라 곧 금방이라도 허무하게 터져버릴 것 같았다. 미친 바다 한가운데서 그는 고독했다. 고립되어 있었다. 처절한 싸움의 한가운데 있었다. 사방에 덧없는 거품들, 헛소리들, 휘어진, 찢어진, 너덜너덜한 깃발들, 빛을 잃은 구호, 급조된 발작 버튼, 진실의 표면 위를 핥아대는 혓바닥, 시간에 쫓겨 초를 다투며 초조하게 날뛰는 몸부림들, 가짜 용기들, 가짜 소식들, 오염된 주인들, 가짜들, 어리석음들…. 이 더러운 끓어오르는 바다 한가운데서 그는 산더미같은 고독에 휩싸여 있었다. 과연 그는 헤쳐나갈 수 있을까. 살아남을 수 있을까. 몸부림치는 적들을 잠재울 수 있을까. 진실을, 정의를, 평화를 얻을 수 있을까. 회복할 수 있을까. 이 현대판 리바이어던, 사나운 미친 포말의 괴물들, 거짓으로 빚은 공포의, 전체주의의, 괴물의 바다에서 그는 살아남아 목적을 이룰 수 있을까? 벗들아, 그대들은 아는가? 그대들이 본 것은 진리가 아니었음을 사막의 신기루, 씻겨버릴 오물, 녹아버릴 3월의 눈, 말라붙은 쥐오줌, 썩어가는 분뇨더미, 악취 나는 노숙자 발바닥 같은 것들을 아는가? 우리가 우리를 속여왔음을 아는가? 스스로 최면을 걸고, 주박에 걸려, 앞뒤 모르고, 좌우도 모르고 날뛰고 있음을 아는가? 하늘 높이 우리의 부끄러움이 효수가 되어 걸려 있는 것을 아는가? 시간은 아무도 이길 수 없는 법, 어떤 것도 시간 속에서 녹슬지 않는 것 없고, 병들지 않는 것 없고, 찌들지 않는 것 없고, 정확히 원래 품었던 염원의 정반대 것으로 전화되어 버리는 것을 아는가? 벗들아, 그대들이 눈이 없는 걸 아는가? 냄새도 맡지 못하는 색맹인 것을 아는가? 그대들의 깃발에 갈고리 문양이 그려진 것을 아는가? 그대들이 포말처럼 솟구쳐 올랐다 꺼져버릴 때, 그가! 우리들 상상 속 피투성이 ‘프로 혼’처럼, 그가 최후의 승리를 거머쥘 것을 아는가? 모래 시계 속에서 핏덩이 같은 모래알갱이들이 무심하게, 냉정하게 흘러내리고 있다. 시간이 흐르고 있다. 그대들, 허위의 목소리들, 문자들의 시간이 흩어지고 있다.

2024-12-09

탄핵정국으로 산유국의 꿈 흔들려선 안 돼

영일만 앞바다 심해 가스전 유전 개발사업인 대왕고래 프로젝트가 탄핵정국에 휘말려 동력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표적인 국정과제로 추진되던 대왕고래 프로젝트는 내년도 예산 준비과정에서 야당에 의해 예산이 전액 삭감된 가운데 탄핵정국까지 겹치자 사실상 추진 동력을 잃은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더불어 민주당은 예산결산특위에서 내년도 예산안을 편성하면서 대왕고래 첫 시추 예산 497억원을 단독으로 삭감 처리했다. 야당은 삭감 이유에 대해 1인 기업이나 다름없는 액트지오의 자문을 핵심 근거로 출발해 사업의 불확실성이 높기 때문이라 했다. 정부는 정치 상황과 관계없이 이달부터 탐사작업에 들어간다고 밝혔지만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사업의 지속적인 추진은 사실상 어렵다. 대왕고래 시추작업은 유전이 매장됐을 가능성이 많은 유망구조 5군데에 대한 시추를 벌여야 하는데, 시추비용만 수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이 된다. 정부 관계자는 “예산이 삭감되면 자본잠식 상태로 재무여건이 열악한 석유공사가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해 전액 비용을 부담할 수 밖에 없다”고 밝히고 “여러 난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이달초 시추계획에 따라 시추선인 웨스트 카펠라호는 9일 부산항에 입항해 시추작업에 들어간다. 대왕고래 프로젝트는 동해 심해에 140억 배럴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석유가스 탐사작업이다. 우리도 산유국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바 있다. 이 사업을 정쟁의 대상으로 삼고 옳다 그르다 판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탄핵정국에 앞서 야당은 이미 시추작업에 소요되는 비용을 삭감해 정쟁의 소재로 삼았다. 탐사시추의 특성상 실패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그러나 국익과 관련한 경제 문제를 다룰 때는 실체적인 진실에 관해 논쟁을 벌여야 한다. 전문가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이 옳은 길이다. 윤 대통령의 계엄사태가 빌미가 돼 시추가 중단되어서도 안 된다. 시도하지 않으면 기회도 없다는 말이 이런 때 적합한 말이다.

2024-12-09

닉슨을 따라가라

김진국 고문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가 무산됐다. 7일 국회 본회의에서 투표에 부쳤으나,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이 대부분 퇴장해 ‘투표 불성립’으로 처리됐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의 조속한 직무 집행 정지가 필요하다”라고 말하면서 한때 탄핵안이 통과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안철수 의원을 제외하면 일단 탄핵을 저지하는데 힘을 모았다. 그렇다고 국민의힘 의원들이 모두 비상계엄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 정권이 민주당에 넘어갈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낀 결과다. 윤 대통령이 탄핵당하면 대통령 선거가 촉박하게 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재판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통령 선거를 치러야 한다. 선거법 위반 사건은 앞으로 5개월 정도면 확정판결이 나온다. 벌금 100만원 이상 형만 확정되면 대통령 선거에 나서지 못한다.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피선거권이 박탈될 가능성이 크다. 다른 재판도 줄줄이 걸려 있다. 윤 대통령이 탄핵당하면 보수정당 출신 대통령이 연이어 탄핵당하는 기록을 남긴다.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표를 달라고 손을 내밀 염치가 없다. 표를 달라고 해봐야 이런 분위기에서는 백전백패다. 국민의힘 계산으로는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야 하는 처지다. 그렇지만 버텨서 해결될 일인가. 정치는 명분이다. 명분은 정치인의 당리당략에 있지 않다. 국민의 이익, 국민의 눈높이에 있다. 국민의힘이 아닌 국민의 손익으로 따져보면 윤 대통령의 명분이 너무 밀린다. 북한 위협이라느니, 야당의 폭주라느니 하는 건, 국회를 봉쇄할 핑계가 되지 못한다. 헌법이 그렇게 막아 놨다.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한. 무엇보다 윤 대통령의 심리 상태가 불안하다. ‘비상계엄’은 너무 즉흥적이다. 허술하기 짝이 없다. 비밀 유지를 해온 탓만은 아닌 것 같다. ‘격노’, ‘폭음’이라는 단어를 너무 자주 듣는다. 정신적 불안만이 아니다. 비상계엄이란 어마어마한 사고를 치면서 일을 도모하는 수준은 유치하기 짝이 없다. ‘위험’하면서 ‘무능’하기까지 하다. 군 통수권자의 심리적 불안은 정말 위험하다. 순간적인 판단 실수는 나라를 파멸로 몰아갈 수 있다. 늘 북한의 위협을 받고 있다. 미국 학계에서는 윤 대통령이 권력 유지를 위해 북한과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과거 독재자들이 내부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잘 써먹던 수단이다. 윤 대통령은 국제적 신뢰를 잃었다. 미국 정부와 의회는 윤 대통령이 미국에 사전 통보도 없이 계엄을 발동한 데 불쾌해하고 있다. 한·미 동맹이 흔들린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내년 1월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방한하려던 계획을 취소했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윤 대통령 국정 지지도가 최저치인 16%가 나왔다. 그중에서도 계엄 발령 뒤 조사한 표본은 지지도가 13%에 불과했다. 국내외에서 대통령으로서의 통치력과 신뢰를 잃어버렸다. 의회를 총으로 무력화하려는 시도는 후진국 독재자에게나 있는 행태다. 민주주의 진영의 지도자로서는 자폭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의 협조는 언감생심이다. 가뜩이나 민주당은 법과 예산을 틀어쥐고, 발목을 잡아 왔다. 이제 민주당의 그런 무리수가 국민의 박수를 받는 기가 막힌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처지다. 나라를 이런 꼴로 2년 5개월 방치해야 하나. 국민의힘이 정권을 빼앗기는 것을 막기 위해 나라를 망쳐야하나. 무슨 낯으로 다음 정권을 달라고 호소할 것인가. 멍청한 사람은 남 탓만 한다. 집무실 책상 위에 ‘The buck stops here(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라는 명패를 놓아두었다. 야당이 반대해도 설득해 국정을 이끌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설득 노력 한번 하지 않고, 남 탓만 하는 건 핑계다. 잠시 탄핵을 피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대통령직을 계속 유지할건가. 왜, 무엇을 위해. 나라를 생각한다면 이 혼란을 끝내야 한다. 탄핵에 앞서 스스로 진퇴를 결정한 닉슨의 길도 있다. 그렇게 해서 사면받았다. 국가와 국민에 대한 마지막 충성이다. 국회도 함께 조기 수습할 길을 찾아야 한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12-08

월장(越墻)의 추억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요즘 청년 세대는 ‘월장’이란 어휘가 낯설 것이다. 사전적인 의미로는 담장을 뛰어넘는 것을 가리킨다. 어떤 이는 ‘월담’이란 말을 쓰기도 하는데, 그것은 한자어 ‘월(越)’과 담벼락을 뜻하는 한글 ‘담’자를 합성한 다소 괴이쩍은 조합이다. 그러므로 한자어 그대로 ‘월장’이라고 쓰는 것이 어법상 옳다고 생각한다. 기초적인 한자어는 읽을 줄 알아야 우리말이 더욱 풍성해진다는 자명한 이치를 한글 전용론자들이 수용할 때도 되지 않았나, 한다. 학부 시절, 날마다 지구 자전축이 심하게 흔들림을 느껴야 했던 시절 이야기다. ‘흔들릴 때마다 한 잔’이란 제목의 주간지 소설에 마음을 주었던 때 일이다. 야간통행금지가 일상화되었던 시절, 제주도와 충청북도를 제외한 대한민국 전역은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 시민들의 통행이 엄격히 금지돼 있었다. 어기면 경찰서 보호실로 직행해야 했던 암울했던 시절. 그날도 어김없이 몹시 흔들렸던 나는 새벽 4시가 넘어서야 대문 앞에 이르렀다. 너무 이른 시각이어서 초인종을 누를 수 없었기로 높지 않은 담장을 뛰어넘기로 한다. 이윽고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마당으로 내려앉았다. 그런데, 아뿔싸! 이른 시각 화장실 가시던 아버지와 딱, 마주쳤다. 엉거주춤 인사드리자 아버지 말씀, “이제 오냐?!” 그 말씀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런 월장의 추억이 있던 내게 아주 낯선 장면이 휴대전화 화면에 잡힌다. 국회의장이 대한민국 국회의 담장을 뛰어넘는 기상천외한 장면이 눈길을 끌었다. 뭐지, 이것은?! 국회 의사당 출입구를 봉쇄한 대한민국 경찰 저지선을 뚫지 못한 60대 후반의 국회의장이 담장을 뛰어넘는 장면이었다. 어, 이거 우리나라야?! 합성사진이 아니라, 진짜 일어난 일이야?! 있을 법하지 않은, 아주 오래된 기억 속의 ‘비상계엄’이 선포된 그 기이한 밤, 나는 ‘한강의 문학 세계와 우리의 삶’이란 제목의 대중강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작업에 몰두하다 보니 저녁 먹는 것도 잊어버렸다. 어설픈 파워포인트 작업을 하다가 느닷없이 울려대는 카톡 신호음에 눈길이 간다. ‘이거, 정말이야?!’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30분 무렵 풍경이다. 아주 많은 대한민국 시민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새벽 4시 무렵이나 되었을 때 자리에 누웠다. 근근이 자료준비를 마쳤으나, 잠이 올 리 없잖은가! 3시간도 채 되지 않아 눈이 절로 떠진다. 창밖으로 보이는 시퍼런 하늘빛이 참으로 고왔다. 마당에 내려앉은 흰 서리와 조화를 이룬 그날 아침 세상은 형언하기 어려울 만큼 아름다운 것이었다. 심호흡하고 묵상에 잠긴다. 1980년 5월 28일 새벽 비상계엄 아래 놓여있던 전남도청 시민들이 보았던 하늘도 이렇게 고왔을까, 생각한다. 전날 밤 80만 발의 실탄을 지급받은 공수부대원들도 그 하늘을 보았을까, 생각한다. 그들이 전남도청에 난입하여 여린 목숨들을 학살할 때, 그들 내부에는 어떤 느낌이 찾아왔을까, 생각한다. 만일 어젯밤 심각한 사태가 발생하여 비상계엄이 관철되었다면, 오늘 아침 하늘이 이토록 아름답게 다가왔을까, 생각한다. 월장을 감행한 국회의장 사진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2024-12-08

조선간장의 세계화

우정구 논설위원 옛말에 “간장 맛이 변하면 집안에 우환이 생긴다”는 말이 있다. 간장이든 된장이든 고추장이든 장을 담글 때는 집안의 나이 많은 어르신이 일을 직접 해야 맛을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장 자체의 맛이 그 집안의 전통으로 내려오기 때문이다. 요즘은 간장, 된장, 고추장을 모두 사 먹지만 옛날에는 집집마다 장을 직접 담가 먹었다. 그중 간장은 한국의 맛을 내는 핵심 조미료다. 국이나 찌개, 나물무침 등 어느 하나 간장이 들어가지 않은 음식은 없다. 조선간장이라는 것은 우리나라 전통적 방식으로 만든 간장을 이르는 말이다.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일본식 간장에 상대되는 표현이다. 유네스코가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음식으로서는 김장문화에 이어 두 번째며 우리나라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는 23번째다. 우리나라는 2001년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을 시작으로 판소리, 강강술래, 탈춤까지 다양한 무형문화재가 유네스코 유산으로 등재됐다. 장 담그기 문화의 등재는 김장문화에 이어 K-푸드의 세계화를 알리는 신호란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유네스코 유산위원회가 한국의 장 담그기를 세계유산으로 지정하면서 콩을 사용해 만든 장의 효능만 아니라 재료를 직접 준비해서 장을 만드는 전 과정을 인류문화 유산 가치로 보았다는 것은 의미있는 평가다. 특히 장 담그기 문화가 “가족의 정체성을 반영하며 가족 구성원간의 연대를 촉진한다”고 밝힌 것은 한국만의 독특한 장 문화를 인정한 것이어서 한국 음식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만하다. 이제 조선간장의 세계화를 기대해 보자. /우정구(논설위원)

2024-12-08

아무리 정치가 혼란해도 민생 방치는 안 된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 사태로 정국이 대혼란에 빠졌다. 이 바람에 내수 부진과 저성장에 허덕이던 국내 경제의 불확실성도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정국이 극도의 혼란에 빠지면 기업의 투자는 줄고 소비자들도 소비를 움츠리게 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시기에 이미 경험한 바 있다. 소비심리 위축은 내수경제를 돌지 않게 하고 결국은 영세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 등 우리 사회의 취약한 사회적 약자에게 그 피해가 돌아오기 마련이다. 최근 윤 대통령이 내수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를 돕겠다는 민생지원 약속을 밝혔지만 현 상황에선 없던 일이 됐다. 한국은행은 내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2.1%에서 1.9%로 낮춘 바 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 정부 출발을 앞두고 관세 인상 등 수출 악재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계엄선포 사태 후폭풍으로 증시에 자금이 이탈하고 환율도 치솟아 국내 경제 전반에 불안감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야당의 주도로 시작한 탄핵정국이 계속된다면 경제는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 수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와 여당 대표가 만나 민생경제를 위해 긴밀 협력기로 밝혔으니 하루빨리 정국안정 수습책을 내놓아야 한다.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인 민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야당도 정치 이슈와는 별개로 민생문제를 살피는 정치를 해야 한다. 국민이 못먹고 살면 정치는 무의미하다. 노동계도 정치적 파업을 자제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국가적 경제 위기 때는 노동계도 단일대오에 서 위기 극복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 특히 정책을 준비하고 펼치는 중앙부처 공직자들의 일치단결된 애국심이 필요하다. 정치적 혼란기란 이유로 복지부동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중앙정부가 못하는 일이 있다면 지방정부가 나서 직접 챙겨야 한다. 연말연시 어려운 이웃들이 국가적 위기 대혼란을 틈타 소외되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한다. 국가적 위기에는 지방정부 스스로가 민생과 관련한 일들을 찾고 살피고 대응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국가적 위기에 지방정부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지방정부 스스로가 모범적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2024-12-08

한동훈 리더십 주목…정국수습에 속도내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과 김건희 여사 특검법이 지난 7일 모두 무산되면서 ‘포스트 계엄’ 정국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탄핵안은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에 부쳐졌지만, 의결 정족수 미달로 폐기됐다. 국민의힘이 단합해서 윤 대통령 탄핵 위기를 넘긴 것은 ‘박근혜 탄핵 트라우마’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짐작된다. 지난 2016년 12월 10일 박 전 대통령 탄핵 때 여당 비박계 의원들이 대거 탄핵에 동조하면서 보수정권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됐다. 만약 이번에도 탄핵이 가결됐다면 국민의힘은 유력 대권주자인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정권을 내주고, 재기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었다. 윤 대통령은 이제 ‘2선 후퇴’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대통령 퇴진 시까지 대통령은 사실상 직무 배제될 것이고 국무총리가 당과 협의해 국정 운영을 차질 없이 챙길 것”이라고 말했다. 여권에서는 이미 거국 중립 내각 구성, 책임총리제 전환 등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이양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한 대표는 어제(8일)도 한덕수 국무총리를 만나 대통령의 임기 단축을 위한 로드맵을 논의했다. 여권의 최대현안은 악화한 민심을 수습하는 것이다. 조기 대선을 통해 집권을 노리던 민주당이 들끓는 여론을 등에 업고 총공세를 펴고 있는데다, 윤 대통령에 대한 당국의 수사도 본격화하고 있다. 수사 과정에서 윤 대통령의 위헌·위법 정황 등이 구체화 되면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민심이 한층 거세질 수 있다. 야권은 앞으로 임시회 회기를 일주일 단위로 끊어 탄핵안 재발의와 표결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이제 국정 운영의 키는 국민의힘이 쥐게 됐다. 한 대표의 리더십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것이다. 사실 이번 탄핵 정국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한 대표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당원게시판 논란’ 때처럼 또다시 당내 친윤계가 한 대표 통솔력에 시비를 걸면 여당은 난파선이 된다. 여권은 한 대표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민심을 수습할 수 있는 정국안정 방안을 상황에 따라 제시해야 한다.

2024-12-08

세상을 변화시키는 지혜 : 피그말리온 효과

신일철 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피그말리온 효과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하였다. 이 신화에 따르면 키프로스의 왕 피그말리온은 자신이 상아로 만든 조각품의 주인공 갈라테아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는 조각상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고 이를 지켜본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그의 소원을 들어주어 인간으로 만들었다. 무언가에 대한 강한 믿음과 간절한 기대, 그리고 예측이 실제 일어날 수 있고 당면한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대가 대상으로 전이되어 실제 행동의 변화와 실질적인 성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1968년 로버트 로젠탈과 레노어 제이콥슨이 캘리포니아의 한 초등학교에서 실험을 실시했다. 이 실험에서는 전교생을 대상으로 지능 검사를 실시한 후, 무작위로 20%의 학생들을 뽑아 교사들에게 “이 학생들은 곧 지적으로 급성장할 것”이라고 알렸다. 8개월 후, 이 학생들의 IQ가 평균적으로 12.22점 상승했으며 특히 1학년과 2학년 학생들은 평균 27.4점으로 두배 이상 상승하는 놀라운 성과를 보였다. 어떤 컨설팅 회사에서 실시한 또다른 사례를 살펴보자. 새로 입사한 직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의 관리자들에게만 “이 팀원들은 특별히 선발된 인재들”이라고 반복적으로 이야기하였다. 1년 후 이 그룹의 생산성은 19% 더 높았고, 고객 만족도와 이직률에서도 긍정적인 결과가 나타났다. 단순한 심리학적 이론을 넘어서 조직의 경영과 일상생활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피그말리온 효과는 구성원에 대한 신뢰와 긍정적인 기대가 동기부여와 인정이 자기효능감을 상승시켜 조직 전체의 생산성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 오늘날 우리는 인간의 일이 인공지능과 지능형 로봇으로 빠른 속도로 대체되는 현실 속에 살고 있다. 그리고 인간과 인간이 구성하고 있는 조직의 존재에 대하여 많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인간에 대한 서로의 믿음과 기대가 더욱 필요한 시기라고 판단한다. 전 세계 인공지능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인공지능이 모든 일자리를 대체하는데 120년이 걸릴 것으로 나타났고 45년 내 현재 인간의 일자리 중 50%가 인공지능으로 대체된다는 예측을 내놓았다. 특히 반복적이고 예측 가능한 작업, 단순 서비스, 고위험 수작업 등에서 인간의 업무가 대체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창의성과 감성, 그리고 인간 간의 상호작용이 필요한 영역은 대체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인간의 일과 기계(인공지능)의 일을 구별하고 인간은 특유의 감성과 상호작용으로 시너지를 만들 때 인간과 기계는 조화될 수 있다. 이는 사회 전반에 상호작용을 일으키며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인공지능에 의한 인간 대체와 함께 세계경제 상황의 장기적 침체는 인간에게 새로운 지혜를 요구하고 있다. 더욱 긍정적이고 창의적인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촉발하고, 개인의 성장과 조직의 발전, 그리고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미래지향적 자세와 긍정적인 마인드로 인간과 인간, 인간과 기계의 상호 작용을 촉진하면 그 피그말리온 효과는 새로운 힘을 발휘할 것이다.

2024-12-08

합법성과 정당성

유영희 작가 지난 화요일 밤 10시 30분, 두 눈과 귀를 의심할 만한 일이 일어났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이다. 처음에는 많은 사람이 딥 페이크라고 의심하기도 했고, 실제로 당시 생방송을 하던 유튜버들도 믿지 못하겠다는 영상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비상계엄 선포 2시간 30분만에 국회의 해제 결의로 일단락되었고, 6시간이 지나 대통령은 공식 해제를 선언한 것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2차 비상계엄의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으니 많은 국민이 불안에 떨고 있다. 그런데 계엄법 제2조 2항에 “비상계엄은 대통령이 전시ㆍ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시 적과 교전(交戰)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攪亂)되어 행정 및 사법(司法) 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에 군사상 필요에 따르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선포한다.”고 되어있다. 3항에 나오는 경비계엄도 “대통령이 전시ㆍ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시 사회질서가 교란되어 일반 행정기관만으로는 치안을 확보할 수 없는 경우에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선포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전시 또는 전시에 준하는 극도의 교란 상태가 아니다. 국방위원회에서 국방부차관과 육군참모총장 역시, 김민석 국회의원이 현재 우리 상황이 시 또는 준전시 상황이냐는 질문에 아니라고 답변했다. 비상계엄 포고령 1호는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고 되어 있다. 이 역시 삼권 분립의 원칙에 어긋난다. 이미 대통령의 의회해산권은 헌법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런데도 비상계엄을 했다면, 그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 명분이 있어야 한다. 이상민 행안부장관은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고도의 통치 행위’라고 한다. 그러나 야당에서는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대통령 탄핵소추권을 발의한 상태다. 독일의 유명한 법학자 칼 슈미트는 그의 저서 ‘합법성과 정당성’에서 이 두 가지가 일치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합법적이라고 해서 반드시 정당성이 있는 것은 아니며, 정당성은 구성원의 결단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칼 슈미트의 이런 논리가 나치에 정당성을 부여했기에 부당한 통치행위를 옹호하는 극우 논리라고 치부되기도 하지만, 그렇게만 보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칼 슈미트는 합법성을 넘어서 정당성을 획득 여부는 국민의 기본권을 얼마나 보장하느냐로 결정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합법성을 정당성으로 보는 법치주의에 한계는 많지만 합법보다 더 중요한 정당성을 주장하려면 합법에서 놓치는 기본권을 확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초법 연구자 양천수 영남대 교수에 의하면, 칼 슈미트는 정당성을 한법규범이나 단체가 정할 수 없고 도덕적 올바름이나 모든 구성원의 동의나 승인을 담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합법성을 넘어선 정당성을 주장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조건이다. 이번 비상계엄이 모든 구성원의 동의나 승인을 담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2024-12-08

평생학습이 미래를 결정한다

김하수청도군수 사회는 끊임없이 변화하며 새로운 문물에 대한 취사선택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원시 수렵사회에서 농경사회로, 산업혁명을 통해 근대화가 시작되었고 현재에는 인공지능을 빼놓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 생각에만 머물러 있었던 현상들이 실현되는 사회에서 그 속도를 따라잡는 피나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사회현상에 따라 일정 기간 공부에만 매달리면 원하는 것을 얻고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었지만, 평생 배워야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것으로 흐름이 변하며 지자체들은 평생학습을 우선순위에 놓고 여러 가지 방안을 마련해 지역 주민들을 삶의 질을 높이고 평생교육 욕구를 만족하게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청도군은 군민과 지역이 행복한 명품 평생학습 도시로 발돋움하고자 지역민의 학습 요구에 맞는 다양한 평생학습 프로그램 활성화에 적극적으로 나서 지난 2013년 교육부의 평생학습 도시로 지정되었다. 특히 민선 8기 청도군은 지방소멸의 위기 극복을 위해 3대 미래 비전을 추진하며 평생학습 행복 도시를 3대 비전의 첫머리에 올릴 만큼 평생학습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청도군의 평생학습은 ‘행복한 라이프케어 희망공동체 평생학습 행복 도시 청도’를 비전으로 평생학습 환경조성과 평생학습 네트워크 강화, 평생학습 문화 확산, 평생학습 프로그램 개발과 제공을 전략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청도 평생학습은 인생 100세 시대를 맞이해 지역 특성과 군민의 요구에 맞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속으로 개발하고 보급해 급변하는 사회변화에 신속하고 대응하며 전역을 평생교육의 장으로 활용해 꿈과 희망이 넘치는 평생학습 도시로 만들어 가고 있다. 이를 위해 평생학습행복관을 지난 3월 개관해 행복아카데미와 힐링 청도프로그램, 마을 평생교육지도자 과정, 검정고시 합격자클래스 등 다양한 자격증 취득 프로그램과 청도형 아카데미로 새로운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또 마을 경로당에서도 요가와 노래, 원예, 미술 등 다양한 마을 평생학습 강좌를 운영해 모두가 수준 높은 평생학습을 접할 수 있다. 청도 평생학습 과정 중에는 청도인적자원개발학과와 화상 영어 프로그램이 눈길을 끌고 있다. 대구한의대학교 미래라이프융합대학에 전국 최초의 지역 전문학과인 청도인적자원개발학과는 지역 맞춤형 전문 인재를 양성하는 것으로 4년 학사과정을 이수하면 학위와 평생교육사와 사회복지사 등 다양한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 또 화상 영어 프로그램은 해외 현지에 있는 원어민 강사와 화상을 통해 수준별 맞춤학습과 동시에 스스로 자기 학습도 가능하도록 구성된 획기적인 양질의 영어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처럼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는 청도군은 지난 10월 개최한 제11회 경상북도 평생학습박람회에서 역대 박람회보다 다채로운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해 수십만 명의 관람객이 참여하기도 했다. 청도의 평생학습은 지역 여성을 위해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 여성의 사회적 참여를 확대하며 지역특화 여성 취업 교육으로 취업과 연계시키고 있다. 지역의 17개에서 스포츠 영어체험학습으로 외국인 강사와 스포츠를 배우며 자연스럽게 영어의 어려움을 해결해 미래 성장동력인 학생들의 역량도 강화하고 있다. 청도군은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2025년에도 군민을 위한 다채로운 맞춤형 사업을 시행하며 평생교육 사각지대에 있는 군민을 위해서는 배달강좌로 누구나 어디서나 누릴 수 있는 평생학습 행복공동체를 형성하고 이를 통해 누구나 살고 싶고 이주하고 싶은 청도, 배우고 싶은 프로그램이 존재하는 청도로 미래를 준비해 나갈 것이다. 전 생애주기별 평생학습의 기회를 제공해 군민 개개인의 성장 사다리를 놓아 군민 한명 한명의 꿈과 희망을 실현하는 터전이 될 수 있도록 전 행정력을 집중해 평생학습 행복 도시로 완전하게 자리매김해 인구소멸지역이 아닌 자긍심을 군민 모두가 가질 수 있는 지역이 될 것이다.

2024-12-08

씬짜오, 언니

오빠와 나는 9살 차이가 난다. 내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돌잔치를 하고, 아장아장 걸을 때에도 오빠는 결혼을 하지 못했다. 수십 번, 수백 번의 맞선을 보았지만 오빠 나이 마흔이 넘도록 성사 되지 못했다. 부모님은 나이 들어가는데 오빠는 손자는커녕 결혼을 하지 못했다. 결혼 하는 걸 못 보고 돌아가실까 봐 엄마는 자나 깨나 걱정이 많았다.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 가는 것도 괜히 눈치가 보여 발길이 뜸해졌다. 특히 명절이 되면 오빠의 친구들은 본가며, 처가며 가는데 늘 방안에 혼자 있는 오빠를 보는 것이 마음의 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빠는 다른 나라에서 아가씨를 한 명 데리고 왔다. 오빠가 장가가는 것이 최고의 과제였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피부색과 다른 언어, 다른 문화의 올케언니를 맞이하는 것은 낯선 일이었다. “씬짜오” 이 한 마디로 겨우 인사를 나누었지만 받아들이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한국의 문화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피부색이 다른 아이가 태어났을 때 어떻게 학교생활을 적응해 나갈지, 혹이나 왕따 같은 것은 당하지 않을지, 부부모임에서 어떻게 오빠를 내조할지, 부모님은 어떻게 모시고, 자녀 교육은 어떻게, 한국 음식은 어떻게 등등의 걱정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줄을 이어갔다. 오빠는 나보다 10살이나 어리고 얼굴색이 다른 사람과 결혼식을 올렸다. 걱정이 앞섰던 가족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하지만 걱정은 봄날 아지랑이처럼 사라졌다. 결혼을 한 후 올케 언니는 부지런히 적응해 갔다. 다문화인들을 위한 프로그램들이 많이 생겨 무료로 한글을 가르쳐 주었다. 올케 언니는 오자마자 한글을 금방 익혔다. 열심히 공부를 하더니 운전면허 시험에 합격을 하였다. 부모님을 모시고 병원도 가고 가까운 식당에 가서 맛있는 것도 사 드리고 살뜰히 챙겼다. 바쁘다는 핑계로 늘 잘하지 못했던 딸들을 대신해 올케 언니는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 애를 썼다. 부모님의 생신 때는 손수 생일상을 차려 주었다. 한국 전통 음식인 갈비찜, 잡채. 나물도 금방 익혀 한가득 차려냈다. 언니가 한 음식에는 엄마의 맛이 났다. 엄마에게서 배운 음식이라 맛이 있었다. 부모님의 시름은 조금씩 사라져 갔다. 올케 언니는 아들을 둘 낳았다. 부모님이 가장 기뻐한 일이었다. 아이들은 아빠를 닮았다. 제 엄마와 아빠가 하는 모습들을 보며 아이들은 할머니의 무거운 짐도 잘 들어주고 재롱을 피우며 잘 자라주었다. 학교생활도 너무나 밝게 잘 적응해 갔다. 김경아 작가 엄마가 침대에서 떨어져 고관절이 부러졌다. 한 달 가까이 병원에 있었다. 거동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누군가는 늘 옆에 있어야 했다. 우리는 힘드니까 간병인을 쓰자고 했지만 올케 언니는 ‘엄마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싶지 않다’며 손수 엄마의 간호를 맡았다. 페트병에 물을 떠와서 침대에 누워 있는 엄마의 머리를 감겼고 엄마의 대소변을 받아냈다. 주위에서 많은 분들이 엄마를 부러워했고 엄마는 고마워했고 뿌듯해했다. 지금 언니는 한국 국적을 취득하였다. 한국 여성들에게 학교 방과 후 베트남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당당하게 자기의 꿈을 펼쳐 나가고 있다. 작년에는 베트남 부모님이 한국에 오셔서 한 달 동안 한국에 머물렀다. 올케 언니의 부모님에게 엄마는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눈빛으로도 충분히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올케 언니가 생긴 후 오빠는 밝아졌다. 이젠 명절이 되면 오빠는 혼자가 아니라서 좋다. 우리도 마음이 가벼워졌다. 자신의 부모님을 대신해 우리 부모님을 잘 모셔주어 너무나 감사하다. 언니를 볼 때마다 나도 미소가 생기지만 고마운 마음을 말로 전하는 게 참 쉽지 않았다. 문자라도 한 번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다. 겪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인 것 같다. 소통은 말이 아니고, 문화가 아니고, 사랑하는 마음이 만들어 감을 알게 되었다. 괜한 걱정에 자신을 묶어 두기 보다는 희망으로, 기대로, 마음으로 서로를 들여다보는 눈이 깊어져야할 것이다.

2024-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