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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달력 미신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해마다 연말이 되면 한글박물관과 국학진흥원에서 보내온 달력을 받아본다. 집안 어딘가의 빈 벽에 붙여둔다. 달력으로서의 효용성보다 그림이나 사진에 눈길을 줄 때가 더 많아 달이 바뀌어도 미처 넘기지 못할 때가 많다. 작년 말 거의 비슷한 시기에 청계사의 절 달력과 대구가톨릭대학병원 달력을 얻었다. 유심히 들여다봤더니 발행처별로 달력에 기재돼 있는 날들이 다르기도 하려니와 흥미로워 나란히 걸어두고 비교해 봤다. 절의 달력에서 을사년, 서기 2025년인 올해가 불기로는 2569년, 단기 4358년임을 알 수 있었다. 매일의 날짜 아래 육십갑자가 띠 동물 그림 옆에 쓰여 있다. 제삿날에 제문 쓰기에 좋겠다고 생각했다. ‘부처님성도일’, ‘관음재일’, ‘지장재일’, ‘약사재일’과 같은 날을 연꽃그림으로 표시해 두었는데, 이들 재일은 매월 재를 올리는 날인가 보았다. 불교의 기념일은 가톨릭교의 기념일에 비하면 크게 많지 않은 편이다. 예를 들면 1월 한 달 중에서 6일을 제외하고는 모두 기념일이어서 솔직히 놀랐다. 1일은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2일은 ‘성 대 비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 3일부터 12일까지는 5일의 ‘주님 공현 대축일’ 전후에 치르는 의식의 날인 듯 보였다. 다른 달에도 기념일들이 빼곡했는데 가톨릭 역사의 그 수많은 성인들을 모두 섬기는 듯했다. 그 모든 날을 기억하려면 달력이 없으면 안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여튼 두 달력을 유심히 관찰하고 읽으면 보통 흥미로운 것이 아니다. 종종 오늘은 무슨 날이지? 들여다 보곤 한다. 며칠 전, 휴대폰에서 “달력 구하러 오픈런”이란 기사에 눈길이 가서 읽었다. 은행 달력을 얻으러 은행 앞에서 줄을 서서 번호표를 뽑고, 온라인 중고장터에서 은행 달력을 사겠다는 글이 올라온다는 기사였다. 스마트폰이 달력과 시계의 기능을 다하는 21세기에 웬 레트로 감성인가 했는데 그 내막을 알고 보니 헛웃음이 난다. 달력미신이란다. 은행 달력은 돈을 부르고, 병원이나 약국, 제약사의 달력은 건강하게 한다며, 소방서 달력은 화재를 예방하고 보험사 달력을 걸어 두면 사고가 나지 않는다는 ‘믿거나 말거나’ 속설이 만들어지고 미신이 되어 이와 같은 달력 품귀라는 사회적 현상이 생겼단다. 대전의 유명한 빵집 성심당의 달력을 얻어 걸어두면 행운과 먹을 복이 들어온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고도 했다. 그래? 우리 집에 있는 저 달력은 어떤 복을 줄까? 절의 달력은 부처님의 보살핌이니 좋다. 가톨릭달력은 병원 달력이니 건강은 확보되었다 치고 한글박물관과 국학진흥원의 달력은 공부를 잘하게 한다고 소문내 볼까? 재물복까지 욕심이 났다. 서울에서 하나은행지점장으로 있는 이질녀에게 메시지를 넣었더니 바로 전화가 왔다. 기사 얘기를 했더니 이모 달력 필요해? 얼마든지 드릴 수 있지. 며칠 후 도착했다. 오픈런으로도 못 구한다던 바로 그 은행 달력이었다. 한 장에 3달이 펼쳐진 달력, 절이나 성당의 기념일이 없는 대신 24절기와 음력이 공손하게 새겨진 유난히 희고 깨끗한 달력에 나의 이벤트를 빼곡하게 채워 넣어 우리 집만의 달력을 만들어 볼까 한다. 이질녀 덕에 재물복까지 확보했으니 든든하다.

2025-01-15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균형 잡기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우리 몸의 자율신경계는 생명 활동을 조절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율신경계는 크게 교감신경 과 부교감 신경 두 가지로 나뉜다. 이 두 신경은 마치 시소처럼 상호작용하며 신체의 균형을 유지한다. 그러나 현대인의 바쁜 일상과 스트레스는 이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으며, 이를 바로잡지 않으면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역할과 이들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방법에 대해 자세히 알아본다. 교감신경은 우리 몸이 긴급한 상황에 대처하도록 준비시키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스트레스 상황에선 심박수가 증가하고 호흡이 빨라지며 혈압이 상승하는데, 이러한 반응을‘투쟁-도피(fight-or-flight)’ 반응이라고 한다. 이는 생존에 필요한 순간적인 에너지를 제공한다. 반면 부교감신경은 몸을 안정시키고 회복시키는 데 초점을 둔다. 소화를 촉진하고 심박수를 감소시키며, 신체가 휴식과 재생 모드로 전환하도록 돕는다.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될 때 우리는 마음의 평화를 느끼고 깊은 잠에 들 수 있다. 따라서, 교감신경을 낮추고 부교감신경을 약간 활성화 하는 것이 현대인들에겐 최적의 건강법이 될 수 있다.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은 서로 보완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현대인이 겪는 과도한 교감신경의 활성화는 여러 건강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 잦은 스마트폰 사용, 불규칙한 생활 패턴 등이 교감신경을 지나치게 활성화시킨다. 이로 인해 만성 피로, 불면, 소화 불량, 성인병인 고혈압, 면역력 저하와 같은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반대로 부교감신경의 기능이 지나치게 우세할 경우에는 무기력감이나 우울증과 같은 정신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두 신경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건강관리에 매우 중요하다. 유산소 운동은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균형을 맞추는 데 도움을 준다. 달릴 때는 몸이 힘들어도 정신은 현재의 심란함을 잊어버리게 되며, 달리고 나서 머리가 맑은 것을 경험해 본 사람은 육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적 건강을 위해서도 뛰게 된다. 또한, 요가와 명상은 부교감신경을 활성화시키는 데 효과적이다. 또 깊고 느린 복식 호흡은 즉각적으로 부교감신경을 자극하여 스트레스를 완화시켜 준다. 따라서 적당한 유산소 운동과 명상은 현대인들이 꼭 해야 할 필수 건강 관리법이다. 규칙적인 수면 습관을 유지하는 것은 자율신경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카페인과 당분 섭취를 줄이고, 신선한 채소와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하여 신경계를 안정시키면 수면의 질을 높일 수 있다. 또한 스트레스를 완화할 수 있는 취미 생활이나 사회적 활동을 하는 것이 좋다. 이러한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면 스트레스가 줄고 수면의 질이 향상된다.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균형은 단순히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것을 넘어 전반적인 신체와 정신 건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유산소 운동, 명상, 취미생활 등의 작은 생활 습관의 변화를 통해 이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따라서 건강한 삶을 위해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조화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노력을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2025-01-15

경주박물관이 ‘APEC회의 꽃’으로 낙점

경주 APEC(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 준비위원회가 정상회의 공식 만찬장을 경주박물관(국립)으로 사실상 결정했다. 경주박물관이 APEC 회원국에게 한국의 전통문화와 유산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라고 평가한 것이다. 경북도와 경주시는 다음주 열리는 준비위에서 만찬장이 확정되면, 곧바로 기본계획을 세운 뒤 공사에 들어간다. 경주박물관 야외 공간(6000여㎡) 중 다보탑·석가탑을 조망할 수 있는 2000여㎡가 만찬장 예정부지이며, 10월 전에는 공사가 마무리된다. 공사비 80억원은 모두 국비로 충당한다. 준비위는 그동안 동부사적지(첨성대·대릉원 일원), 우양미술관, 동궁과 월지, 황룡원도 후보지로 검토해왔지만, 매장문화재 출토 가능성이 가장 낮고 주요국 대사들도 선호한 경주박물관을 후보지로 낙점했다. 에밀레종과 신라금관, 각종 석조유물 8만여 점이 보관된 경주박물관은 각국 정상들의 경호에도 용이한 것으로 파악됐다. 회원국 정상이 참석하는 만찬장은 각국 언론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장소다. 이 때문에 ‘정상회의의 꽃’으로 불려지기도 한다. APEC 정상회의 주행사장인 경주화백컨벤션센터(HICO)도 물론 중요하지만, 만찬장에서는 식사뿐만 아니라 각국 정상들 간의 자연스러운 친교활동이 이루어진다. 최근 경주를 방문한 유인촌 문화관광체육부 장관은 “만찬장은 각국 정상이 함께 공연도 관람하며 속을 터놓고 대화를 하는 공간”이라고 했다. 경주 APEC회의가 성공하려면 지난 2005년 부산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를 철저하게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부산 APEC 때는 정상회의가 벡스코(BEXCO)와 ‘누리마루 APEC 하우스’에서 두 차례 열렸다. 당시 해운대 누리마루는 최첨단 회의 시스템과 고품격 서비스, 한국 전통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모두 겸비한 최고의 만찬장이라는 극찬을 받았었다. APEC 준비위는 올가을 경주를 찾을 아태지역 21개국 정상과 기업인, 언론인들이 경주박물관 만찬장을 찾아 깊은 감동을 받을 수 있도록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2025-01-15

다시 시작하는 나라

장규열 고문 지난 2년 반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특기할 만한 시기였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공을 자랑하던 나라가 갑작스럽게 어려움에 처하면서 많은 국민들이 나라의 방향성과 가치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민주주의의 기본 틀이 흔들렸고 사회적 갈등과 양극화가 심화되었고 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진 이 시기는 우리에게 값비싼 교훈을 안겨주었다. 이제는, 대한민국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새롭게 모색해야 할 기회가 아닌가. 대한민국은 지난 60여 년간 놀라운 경제적, 정치적 변화와 성장을 이루었다. 그랬음에도, 지난 두해 반동안 우리는 정치적 리더십의 실패와 사회적 신뢰의 붕괴를 목격했다. 우리 국민뿐 아니라 세계는 이 나라의 파행을 목도하면서 상당한 혼돈을 경험했으며 무엇이 잘못 되었을까 의아하게 여겼다. 지도층의 부패와 무능, 거듭되는 거짓말과 권력남용은 국민들로 하여금 정치권 전반에 대한 회의를 품게 만들었다. 놀랍게도 공정과 정의를 내세웠던 정치인이 이를 배신했을 때 느끼는 상실감과 패배감은 국민의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안겼다. 우리는 흐르는 역사로부터 배워야 한다. 교훈을 건져올려 새로운 출발점을 마련해야 한다. 과거의 영광에 기대어 멈춰 있을 수 없으며 미래세대를 위해 우리 사회의 의식구조와 공적관념을 전면적으로 새롭게 해야 한다. 정치권력의 기본은 국민의 신뢰가 아닌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투명성과 책임성을 회복해야 한다. 법치의 의미와 가치를 다시 세워야 한다. 공정한 사법 시스템과 권력의 견제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 지난 동안 우리는 극단적 대립과 분열로 인해 상처를 입었다. 이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공동체 의식을 복원하고, 사회적 대화를 활성화해야 한다. 소외된 계층과 낙후된 지역을 배려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불평등 해소를 위한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고, 경제 성장의 혜택이 공정하게 분배되도록 해야 한다. 사회적 연대의 소중함을 더욱 강화해야 하고 경제적 양극화를 극복할 방도를 찾아야 한다. 급격한 기술변화와 위협적인 환경위기로 기존의 경제모델은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 지속가능성을 핵심으로 삼아 새로운 성장동력을 모색해야 한다. 재생에너지와 첨단기술 산업에 주목하고 투자하며 청년과 중소기업이 주도하는 경제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국가의 미래는 교육에 달려 있다.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장려하는 교육시스템을 통해 새로운 세대가 국제적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한다.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며 한국의 전통과 현대성을 융합하는 방식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 우리 국민은 위기를 겪을 때마다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었다. 나라가 직면한 문제가 작지 않지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의지와 역량을 가진 국민이 있다는 점에서 안심이 된다.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은 더 이상 과거의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세대와 세계적 흐름을 고려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모두가 공감하는 공정한 원칙 위에서 투명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

2025-01-15

尹 체포… 정치권은 이제 경제위기 수습하라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오전 내란 수괴 등 혐의로 공수처에 체포됐다. 공수처는 곧바로 조사에 들어갔고, 체포 시한인 48시간 이내에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조사가 끝나면 윤 대통령은 서울 구치소에 구금된다. 현직 대통령으로선 초유의 일이다. 윤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 선포 후 무장한 계엄군을 국회에 투입하고, 영장 없이 주요 정치인과 선관위 직원을 체포·구금하려고 하는 등 헌법을 문란케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에대해 윤 대통령 측은 “경고성으로 계엄령을 발령한 것이고, 질서 유지를 위해 소수의 병력만 투입한 것”이라며 혐의를 부인해왔다. 윤 대통령은 진술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체포영장 청구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는 공수처 체포 전 영상메시지를 통해 “안타깝게도 이 나라에는 법이 무너졌다. 헌법과 법체계를 수호하고 유혈사태를 막기 위해 영장집행 절차에 응했다”고 했다. 윤 대통령 측 석동현 변호사도 “대통령이 공수처의 이번 수사나 체포가 명백히 불법인 줄 알면서도 물리적 충돌우려 때문에 불가피하게 결단을 한 것”이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다행스럽게도 2차 영장집행 때는 1차집행 때와는 달리 경호처 직원들의 소극적인 대응으로 물리적인 충돌이 없었다. 경호관들은 관저 내 대기동에 머물거나 휴가를 가는 등 체포영장 집행 저지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현직 대통령 체포로 국격은 크게 상처를 입게 됐다. 지금 우리나라는 정부기능마비로 경제가 ‘퍼펙트 스톰(복합적인 위기)’ 한가운데에 들어서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다음 주 20일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면 ‘관세폭탄’을 비롯한 미국 우선주의 정책이 폭주할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환율 1500원 선마저 붕괴되면 우리경제는 회생불능상태에 빠질 수 있다. 여야는 이제 윤 대통령을 둘러싼 법적 처리는 사법기관에 맡기고, 경제위기를 수습하는 일에 전력을 쏟아야 한다. 정치권이 조기대선을 의식해 계속 정쟁에만 몰두한다면 반드시 민심의 역풍을 맞을 것이다.

2025-01-15

대통령의 뒷모습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15일 오전 10시 33분. 윤석열 대통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의해 체포됐다. 강제력을 동원한 국가수반의 체포는 이 나라 헌정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용산 관저에서 과천 공수처로 이동한 여러 대의 차량 중 한 대에서 내린 윤 대통령은 포토라인을 만들고 기다린 기자들을 따돌리고 후문을 통해 서둘러 조사실로 향했다. 그 짧은 순간, 언론사의 카메라가 대통령의 뒷모습을 찍었다. 국가 의전서열 1위의 인물이 멀쩡한 정문을 두고 경호원들의 호위 속에 조급하게 ‘뒷문’으로 들어가다 ‘뒷모습’이 찍힌 사진은 세월이 흐른 뒤에도 역사의 기록으로 선명하게 남을 터. 분명 자랑스런 장면은 아닐 듯하다. 비상계엄 선포,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과 탄핵 의결, 탄핵 찬성과 탄핵 반대 집회로 연일 소란스러운 대통령 관저 일대, 최근 시작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심리…. 지난 연말과 올 연초 한국은 그 어느 때보다 뒤숭숭했다. 윤 대통령에 관한 견해를 달리하는 이들은 두 편으로 갈려 현재도 갈등과 반목을 지속 중이다. 화합 속에서 희망과 꿈을 설계해야 할 새해 벽두와는 어울리지 않는 풍경. 서글프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떠올려보면 한국 대통령 중엔 비극적인 말년을 보낸 이들이 적지 않다. 이승만은 하와이 요양원에서 최후를 맞이했고, 박정희는 부하의 총탄에 쓰러졌으며, 노무현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고, 전두환과 노태우, 이명박과 박근혜는 짧지 않은 감옥생활을 했다. 오늘 지켜본 ‘윤석열의 뒷모습’이 또 다른 한국 대통령 한 명의 비극을 예고하는 시그널은 아닐지. 국민들은 답답하고 딱하다.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2025-01-15

경상북도 무형유산이 된 포항흥해농요

(메) “모시야 적삼 반적삼에 분통 같으나 저 젖 보소” (받) “많이야 보면 병이나 되고 담배씨만치만 보고 가소” 이 노래는 포항시 흥해읍 지역에서 전승되는, 이른바 흥해농요 ‘모심는소리’의 한 구절로 초여름 물이 질퍽한 논바닥에서 펼쳐지는 남녀 간의 사랑노래다. 모내기 논에서 일렬로 선 일꾼들이 모를 심을 때 한 쪽에서 선창으로 “모시야 적삼 반적삼에 분통 같으나 저 젖 보소”하고 메기면 다른 한 쪽에서 후창으로 “많이야 보면 병이나 되고 담배씨만치만 보고 가소”하고 받는다. 바로 이 포항흥해농요가 최근 경상북도 무형유산이 됐다. 경상북도는 지난해 12월 19일 포항흥해농요가 경상북도 무형유산으로 지정됐음을 고시(제2024-503호)함으로써 흥해농요는 포항지역 전통민속예술로서는 처음으로 무형유산이 된 것이다. 흥해농요는 무엇이며, 어떤 문화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농요란 농사에 관계되는 노래를 통칭하는 말이다. 그러나 농경시대 농민들이 부르는 민요는 농삿일을 하는 과정에서 부르지는 않더라도 풍년을 기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거나 농한기에 휴식을 위해 놀면서 부르는 경우가 많아서 농민들이 부르는 대부분의 노래가 어떤 식으로든 농사와 연관되어 있다. 포항 흥해는 예로부터 농사가 아주 발달한 곳이다. 2018년 현재 흥해읍의 농경지 면적은 동해안 최대 규모이다. 이 중 벼농사 면적 역시 동해안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곡창지대이다. 저지대가 많고, 곡강천 상류의 대형 저수지에서 공급하는 풍부한 용수가 있기에 농사짓기에 아주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이 점은 농요가 발달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들판에서 일을 할 때 농사꾼들은 힘을 쓰는 과정에서 동작을 맞추기 위해, 또는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그 일에 맞는 노래를 지어 불렀다. 그게 농요인데, 넓은 들을 가진 흥해에는 예부터 다양한 농요가 전승되어 왔다. 하지만 전국 대부분의 농촌이 그렇듯이 1970년대부터 농업의 기계화와 이농현상이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농요는 큰 위기를 맞게 되었다. 농사 현장에서는 더 이상 노래가 불리지 않게 되었고, 가창자들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거나 그들의 고령화와 함께 ‘전승 단절’이라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 흥해농요는 1990년대초 농촌인 북송리와 어촌인 죽천리를 중심으로 학계의 채록이 이루어진 덕분에 다행히 음원이 보존되어 왔으며, 그 일부가 ‘포항지역 구전민요’(박창원, 1999)라는 책을 통해, ‘소리로 듣는 포항의 민요’(박창원, 2015)라는 음반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이들 자료에는 북송리의 소리꾼 김선이·최화식 선생의 노래가 실려 있다. 김선이(여, 1927년생) 선생은 구룡포에서 태어나 17세 때 혼인해 북송리에 정착했다. 노래를 좋아했던 그는 ‘나물캐는소리’, ‘시집살이소리’, ‘치이야칭칭나네’ 같은 여성들이 부르는 민요는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다양한 노래를 부르는 분이다. 목소리가 맑을 뿐만 아니라 정확한 음정과 발음, 감정이입으로 사람들이 사랑을 받아 왔다. 현재 95세로 생존해 있는 흥해농요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흥해농요의 살아 있는 전설 김선이 선생. 흥해농요의 또 다른 가창자는 지난 1995년 작고한 최화식(남, 1923년생) 선생이다. 포항 신광면 출신으로 40대에 북송리에 정착했다. 허스키한 음성과 신명나는 소리로 주변의 사랑을 받았다. 북송리 풍물패 상쇠로서 풍물소리 반주에 맞춰 부른 ‘지신밟는소리’는 최고의 절창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김선이 선생과 남녀 교환창으로 부르는 ‘모심는소리’가 일품이며, ‘물푸는소리’, ‘풀써는소리’ 같은 희귀한 소리도 할 줄 안다. 그러다가 북송리 1세대 소리꾼인 김선이 선생의 지도를 받은 국악인 박현미 씨가 2018년에 흥해읍에 거주하는 지역주민들을 중심으로 사단법인 포항흥해농요보존회를 결성하여 소리의 보존 및 교육에 나서면서 흥해농요는 전승의 계기가 마련됐다. 흥해농요보존회는 발족 이후 전승자료집으로 ‘어절씨구 흥해야! 흥해의 민요’(2019),‘김선이의 흥해농요(CD)’(2020),‘다시 부르는 흥해농요(CD)’(2021),‘맥을 잇다, 박현미의 흥해농요(CD)’(2022)를 제작하고, 보전·전승을 위한 학술심포지엄을 2회(2019, 2021) 개최하였으며, 2022년에 경상북도 무형유산 지정신청서를 제출한 이후 2023년 9월부터 몇 차례 심사를 거쳐 2024년 12월에 최종 지정을 받았다. 현재 흥해농요는 1990년대초 필자가 채록한 음원을 바탕으로 ‘보리타작소리’,‘모찌는소리’, ‘모심는소리’, ‘물푸는소리’, ‘논매는소리’, ‘망깨소리’, ‘지게목발소리’, ‘어사용’, ‘과부신세타령’, ‘치이야칭칭나네’, ‘지신밟는소리’ 등을 재현하는 내용으로 짜여 있다. 박창원 수필가 그 중에서 ‘모찌는소리’나 ‘모심는소리’는 메김과 받음에서 끊김이 없는 연속체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 아주 특별하다. 삶의 애환이 진하게 스며 있는 나머지 노래들에는 풍농 기원의 세시풍속이 나타나 있는 점, 그리고 흥해의 지명과 사투리 등 지역의 문화적 요소를 잘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예술적·민속적·학술적 가치가 인정되고 있다. 흥해농요는 포항흥해농요보존회에서 매주 토요일 오전 흥해읍행정복지센터 강당에서 개최하는 ‘흥해농요교실 무료강좌’를 통해 전승의 맥을 잇고 있다. 앞으로 흥해농요는 흥해 지역뿐만 아니라 포항지역 전체 민요의 채록과 정리, 전승교육, 공연 등을 통해 포항을 대표하는 무형유산으로서의 알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동해안민속문화연구소장

2025-01-14

황금연휴 훈풍이 불까?

우정구 논설위원 정부는 오는 27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면서 내수경기 진작과 관광활성화 등의 긍정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올해 설 명절은 임시공휴일인 27일을 포함하면 6일 연속으로 쉴 수 있다. 직장인이 31일 날 휴가를 낼 수 있다면 무려 9일간 휴가를 즐길 수 있다. 드물게 맞는 황금연휴다. 그러나 정부가 의도한 내수진작의 경제효과에 대해 일부에선 엇갈린 반응을 내놓는다. 평일 영업을 하는 자영업자들은 휴일이 긴만큼 손해라는 주장이다. 현행법상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는 임시공휴일 적용 대상이 아니어서 연휴의 양극화를 우려하는 측도 있다. 지난해 설 연휴기간은 4일(2월 9∼12일)간이다. 그럼에도 연휴기간 인천공항을 통해 빠져나간 여행객 수가 무려 100만명이나 됐다. 고향 대신 해외를 선택한 사람들이 전년의 두 배였다. 여행사에는 관광이나 휴양을 위해 만든 상품들이 불티나게 팔려나간 것이다. 지난해 연휴기간 사람들의 생활 패턴을 보면 올해도 해외로 나가는 사람은 작년 못지않게 많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 일각서는 정부의 전망과는 다르게 “설 연휴가 길어지면 소비자들이 해외로 발길을 돌리고 국내 자영업자들은 내수진작 효과를 얻기 힘들 것”이란 전망도 내놓는다. 특히 계엄사태 후 이어지는 탄핵정국 등으로 소비심리가 위축된 상태여서 설 연휴 경기진작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우리나라도 언제부턴가 휴일 사이에 낀 샌드위치 날을 임시휴일로 지정하는 관행이 생겼다. 내수진작이 목적이다. 정부의 의도한 대로 긴 설연휴가 내수시장을 살리는 훈풍이 되길 바란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1-14

개학 임박… 의대정원 논의 시급하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인구이동이 많은데다 호흡기질환이 유행하는 설연휴를 앞두고 ‘의료공백’에 대한 우려가 크다. 지금도 독감이 유행하면서 사망자가 늘어 장례식장을 구하기 어렵다는 충격적인 뉴스가 보도되고 있다. 의료계에서는 “지금까지 의료시스템이 버티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는 말이 나온다. 정부가 명절 비상응급 대책을 꼼꼼하게 챙기겠다고 발표했지만, 환자를 둔 가족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최근 서울대 보건대학원이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 70%가 의정 갈등 탓에 스트레스나 피로감이 크다고 했다. 겨울철에는 특히 초응급환자(중증외상, 급성기 심근경색, 뇌경색 등 전문의 협진이 필요한 환자)가 많아 응급실이 정상 작동되지 않으면 사망자가 속출할 수 있다. 겨울에는 코와 기관지 점막의 방어 능력이 떨어지고, 폐나 기관지에 염증을 일으키는 세균·바이러스가 살기 좋은 환경이 된다고 한다. 최근 독감환자 사망자가 급증하는 것도 상급의료기관의 비정상적인 응급실 운영이 원인일 수 있다. 곧 새 학기가 시작되고 의료위기가 1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지만, 수련병원과 강의실을 떠난 전공의와 의대생들은 돌아올 기미가 없다. 정부가 지난주 “2026학년도 의대 정원을 제로베이스에서 협의하자”며 손을 내밀었지만, 의료계 반응은 냉랭하다. 정부가 언급한 원점협의는 2026학년도 의대정원(2000명 증원포함 5058명)을 대폭 줄일 수 있다는 여지를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정부는 또 사직한 전공의(1만2187명)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수련 특례’와 ‘입영연기’ 조치도 하겠다고 했다. 정부방침에 대해 전공의와 의대생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2026학년도부터는 의대정원을 기존(3058명)보다 더 줄이거나 아예 신입생을 뽑지 말자는 주장까지 나오는 모양이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충분히 고려해 협의해 나가겠다”고 했지만, 의정갈등 해소의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의료공백 상태가 하루빨리 개선되지 않을 경우, 의료시스템 붕괴는 시간문제다. 지난주 치러진 제89회 의사국시 필기시험에는 모두 285명이 응시했다. 응시자 전원이 합격한다 해도 올해 신규 의사 수가 300명을 넘지 않는다. 지난해 의사국시에는 3천231명이 응시해 3천45명이 합격했다. 현재 전공의들이 떠난 수련병원에서는 전문의들의 사직도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3~10월 전국 수련병원 88곳에서 사직한 전문의는 1729명으로, 전공의 이탈 이전인 2023년 같은 기간 사직한 865명에 비해 약 2배 증가했다. 전공의 사직으로 인한 가중된 진료부담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외래·입원 환자 진료가 대폭 줄어들면서 수련병원의 경영난도 심각하다. 2025학년도 개학이 코앞에 다가온 만큼 의대정원에 대한 논의를 더는 미룰 수 없다. 이 상태로 시간이 지나면 2026학년도에 또 2000명 증원되는 것으로 도장이 찍혀버릴 수 있다. 시급성 등을 고려하면 하루빨리 의료계는 정부와 대화 테이블에 앉아 의정갈등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2025-01-14

대구시 中企자금, 영세기업 경영에 단비되길

대구시가 설 명절을 앞두고 자금난을 겪는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 등을 대상으로 1조2000억원 규모의 중소기업 경영안정자금을 푼다고 밝혔다. 중소기업 경영안정자금은 지역의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이 시중의 은행을 통해 저리로 운전자금을 융자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대출금액과 우대 여부에 따라 대출이자 일부를 1년간 시비로 보존해주는 제도다. 특히 시는 지역의 어려운 경제 사정을 감안하여 올해는 자금을 상반기에 집중 투입할 예정이라고 한다. 내수시장이 살아나지 않고 오랜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어온 대구지역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들에게는 가뭄에 단비와 같은 소식이다. 대구시의 중기 경영안정 자금이 어려움에 처한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 등에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 그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 본업에 전념하는 힘이 되었으면 한다. 그저께 대구상공회의소가 발표한 대구지역 기업의 설 동향조사에 의하면 응답기업(260개)의 80%가 “올 설 체감경기가 작년보다 악화됐다”고 대답했다. 호전됐다고 응답한 기업은 1.9%에 불과했다. 경기 불황의 그늘이 깊게 드리워져 있음을 실감하는 대목이다. 업종별로는 아파트 분양시장 침체로 건설업종이 체감경기 악화를 가장 심하게 느끼고 서비스업과 제조업이 그 뒤를 이었다. “자금사정이 악화됐다”는 대답도 전체의 65%에 달했다.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1%대로 주저앉으면서 지방의 중소 및 소상공인들의 경영사정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시중에는 빈 점포가 즐비하고 자영업자들은 도산 위기에 몰려 안절부절이다. 대구시의 중소기업 경영안정자금이 시의적절하게 나온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경영안정자금이 소상공인에게 실질적인 도움으로 돌아갈 수 있게 섬세하게 시책을 펼쳐야 한다. 다양한 맞춤형 지원을 통해 기업이 체감할 수 있어야 성과가 있다. 시중경기가 나쁘면 재정투입으로 시중 경기에 온기를 불어넣는 게 보통이다. 정부도 올 세출예산의 75%를 상반기에 조기 집행한다고 했다. 지방정부도 경영안정자금 지원과 함께 각종 공사의 조기발주를 통해 지방 기업의 활로를 열어주어야 한다. 지금은 경제에 집중해야 한다.

2025-01-14

“경주APEC 계기, 경북도가 國格을 높인다”

경북도가 올가을 경주에서 열리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 정상회의를 계기로 대한민국을 초일류 국가로 이끄는 지방정부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그저께 열린 새해업무보고 자리에서 “올해는 경북이 선두에서 APEC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대한민국의 과학기술·문화융성을 이루는데 행정력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초일류국가 대한민국 선도’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회의에서는 APEC·과학기술·문화융성 3개 분야별로 새해과제 88개가 제시됐다. 회의에는 외교부 APEC 준비기획단 고위관료도 참석해 정부차원의 준비상황을 공유했다. 새해과제 중 주목되는 부분은 APEC회의에 세계 500대 기업 CEO를 초청해 한류 기술박람회를 열고, 투자유치 설명회를 가지자는 제안이다. APEC 회의는 아시아태평양 연안 21개국의 경제협력을 위해 모인 기구이기 때문에 충분히 설득력 있는 생각이다. APEC회의에 주요국 정상들이 모두 참여할 경우, 빅테크를 포함한 다국적 기업들이 기술박람회에 경쟁적으로 참여할 가능성이 있고, 우리나라 과학기술을 홍보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경주를 배경으로 한식·한복·한글·한옥·한지 ‘5한(韓)’의 아름다움을 조명해 각국 언론에 한국 전통미를 홍보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한류바람에 충분히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행사로 여겨진다. 경북도는 이날 수소에너지 산업 육성과 동해안 해저전력망 구축, 고령 대가야 고도육성, 백두대간 포레스트 정원조성 등 과학기술·문화융성 분야 새해 과제도 발표했다. 경북도는 지난해 ‘저출생과의 전쟁’을 핵심 정책으로 내세워 국가적 관심을 모았다. 지난해 7월 윤석열 대통령도 “경북이 저출생과 전쟁을 선포하고 예산을 1000억원 이상 편성해 온종일 완전 돌봄 등 지역 맞춤형 정책을 잘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새해에는 경북도가 APEC 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해, 정치 불안으로 국가 신인도와 위상이 끝없이 추락한 한국의 국격을 회복시켜 주기를 기대한다.

2025-01-14

미래 경쟁력은 어디서 오는가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기업의 미래 경쟁력은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핵심 역량을 개발하고 유지하는 데 있다. 기술 발전, 고객 요구 변화, 글로벌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트렌드 등 다양한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 특히, 직원들 수준이 기업의 격을 만들고 경쟁력의 근간을 이룬다. 기업은 미래 경쟁력을 구축하기 위한 주요 요건과 핵심은 무엇인가. 미래 경쟁력의 주요 요건은 첫째, 혁신과 기술역량이다. AI, 빅데이터, 클라우드 컴퓨팅 등 최신 기술을 활용해 경쟁 우위를 확보하는 일이다. 연구 개발에 지속적인 투자로 혁신 제품과 서비스를 개선해나가야 한다. 둘째, 유연성과 적응력이다. 시장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조직 구조와 프로세스를 구축하는 것이다. 새로운 트렌드와 고객의 요구에 민첩하게 대응해 나가야 한다. 셋째, 지속 가능성과 ESG 경영이다. 환경 보호와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장기적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다. 투명한 지배구조와 윤리적 경영을 통해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넷째, 인재 확보 및 육성이다. 창의적이고 유능한 인재를 유치하고 학습과 성장을 지원하는 기업 문화 조성이다. 다섯째, 글로벌화 및 네트워크 구축이다. 해외 시장 진출 및 글로벌 협력 강화가 경제적으로 국경이 의미가 사라진 21C에 경쟁력 확보의 지름길이다.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해 글로벌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여 세계 속에서 상장하는 것이다. 여섯째, 고객 중심의 경영이다. 고객이 없는 기업은 존재 할 수가 없다. 고객의 니즈를 실시간 파악하고 제품 기능과 디자인에 반영하여야 한다. 개인화 된 서비스와 데이터를 활용해 차별화 된 가치를 제공하여야 한다. 미래 경쟁력 요건 중 가장 핵심은 인재 육성이다. 기업에서 보면, 생산하는 제품으로 매출과 손익을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의 매출과 손익이 좋다고 기업의 미래가 밝은 것만은 아니다. 과거는 직원이 일하는 대가로 임금을 받아가는 종속의 개념이었다면, 현재는 회사의 비전을 함께 실현해갈 동반자가 되었다. 직원이 회사의 주인이 된 것이다. 좋은 회사는 인재육성 프로그램이 있고, 잘 육성된 인재가 개인 및 회사의 비전을 실현해나가는 것이다. 훌륭한 인재가 조직의 장으로 있으면 회사의 조직과 시스템, 프로세스도 잘 정비되어 간다. 조직과 시스템, 프로세스를 움직이는 것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인재를 육성하지 않고 관리만 하는 조직은 기업 성장이 더디고 비효율적이며, 밝은 미래를 보기 어렵다. 조직은 생명체와 같아 늘 깨어 있어야 하고 역동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신입사원부터 퇴직까지 계층과 레벨에 맞게 지속적으로 교육하고 훈련하는 것이 미래를 만드는 일이다. 신입사원은 하얀 도화지다. 교육 훈련을 통해 어떤 밑그림을 그리느냐에 따라 미래의 그림이 그려지고 완성된다. 생산 현장이 다양한 배움터가 되고 내가 습득한 기술과 속도가 내 가치를 말하는 조직문화가 되면 기술혁신과 인재 양성이 곧 기업 미래의 경쟁력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2025-01-14

겨울 삽화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겨울은 추워야 제맛이다. 북풍한설에 개울과 무논은 하얗게 얼어붙고 한낮에도 처마 끝에 고드름이 자라며 솔숲에 이는 바람소리는 가슴 속까지 파고들며 오싹 시리게 했다. 물기 묻은 손으로 문고리를 잡으면 물기가 순간적으로 얼면서 쇠고리가 손에 쩍쩍 달라붙기도 하는 등 혹독한 추위가 있어야 겨울 맛이 나는 듯했다. 변변찮은 방한장구도 없이 구멍 난 양말에 벙어리장갑을 끼고 언 손을 호호 불어가며 하루 종일 무논의 얼음판에서 노는 것이 뭐가 그리 신나고 즐거웠던지, 지금 되새겨보면 동화 같은 겨울풍경이 아닐 수 없다. 모든 것이 어렵고 빈한하던 시절, 겨울철의 강추위가 찾아오면 먹고 입는 것조차 모자라고 허술할 수밖에 없었다. 날씨가 아무리 추워도 또래들과 곧잘 어울려 얼음을 지치거나 자치기, 팽이치기를 하다가 배고파지면 간식으로 먹는 것이 호주머니에 조금씩 넣어 온 땅콩이나 생고구마가 전부였다. 그마저도 넉넉지 않아 친구들에게 좀 얻어먹거나 즉석에서 닭싸움이나 구슬치기 내기판(?)을 벌여 어쩌다가 이기게 되면 쾌재를 부르며 맛있게 배를 채우곤 했었다. 그러다가 심심해지면 언덕 위에 올라 매운 바람 속에 연날리기를 즐기며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가오리연에 작은 꿈을 실어 보내기도 했었다. 맹추위에 놀이만 즐기는 것이 아니었다. 보일러가 없던 때라 동절기가 되면 땔감을 마련하는 것이 일상의 중요한 일이었다. 소달구지를 끌고 나무하러 가시는 아버지를 따라 나서거나, 또래들과 함께 지게를 지고 마을 주변의 산비탈로 나무하러 숱하게 다니곤 했었다. 키 높이 두배 이상의 검불을 지게에 수북하게 지고 오거나 베어낸 나무 밑동 장작을 한가득 바지게에 지고 오면, 어머니께선 애썼다며 으레 고방의 단지에서 살얼음이 낀 식혜를 한 대접 퍼주시곤 했었는데, 달금 시원하고 쌉싸래한 그 맛은 세상 어디에도 견줄 수가 없을 듯하다. 그렇게 산과 들에서 해온 나무로 쇠죽을 끓이거나 군불을 지핀 온돌방에 밤이면 둘러 모여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거나 윷놀이를 하면서 기나긴 겨울밤의 무료함을 달래기도 했었다. 트랜지스터라디오에서 울리는 ‘전설 따라 삼천리’를 함께 듣거나 등골이 오싹해지는 귀신 이야기며, 어느 마을의 처녀총각 연애담을 시시덕거리며 듣다가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깔깔거리며 짓궂은 장난질을 해대기도 했었다. 그렇게 설설 끓는 온돌방에서 정담과 재미로 한겨울을 보내며 차츰 성장했던 것 같다. ‘문풍지엔 바람 쌩쌩 불고 문고리는 쩍쩍 얼고/아궁이엔 지긋한 장작불/등이 뜨거워 자반처럼 이리저리 몸을 뒤집으며/우리는 노릇노릇 토실토실 익어갔다/그런 온돌방에서 여물게 자란 아이들은/어느 먼 날 장마처럼 젖은 생을 만나도/아침 나팔꽃처럼 금세 활짝 피어나곤 한다’ - 조향미 ‘온돌방’ 중 추위에 떨며 손발을 동동거리면서도 겨울놀이를 즐기던 동네 꼬마들은 혹독한 추위에 맞서며 또래들과 어울려 끈기를 배우고 인내심을 키워왔던 것 같다. 그렇게 찬바람과 혹한 속에 내성(耐性)을 길러 풍파의 세상을 맵차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2025-01-14

윤석준 대구 동구청장의 휴가, 언제까지 지속돼야 하나

장은희 대구본사 윤석준 대구 동구청장의 불성실한 직무 수행 논란이 1년을 넘어섰다. 그동안 시민단체들이 근무태도와 직무소홀 문제를 지적하며 사퇴를 촉구했지만, 그는 묵묵부답이다. 윤 청장의 근무태도는 이미 여러 차례 논란이 된 바 있다. 지난해 말부터 그가 여러 중요한 회의와 행사에 불참하면서 직무소홀 문제가 확산됐으며, 일각에서는 건강 이상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특히 지난 2일 열린 동구청 시무식에 윤 청장이 불참하고 신년사를 서면으로 대체한 것은 납득하기 힘든 일이다. 그는 신임 부구청장이 취임식을 하는 자리에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윤 청장은 “병가와 연가를 내고 자리를 비웠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 청장이 지난해 연가와 병가를 사용한 일수는 지난 10월 말 기준 66일이다. 연가 21일, 병가는 45일이다. 윤 청장이 쓸 수 있는 휴가는 연가 24일, 병가 60일로 법정 일수를 초과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기초단체장이 뚜렷한 이유없이 이만큼 자리를 비우는 사례는 드물다. 윤 청장은 지난해 11월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직무수행 논란과 관련해 “구청장을 처음 하면서 경험해보지 못한 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해명하면서, “건강이 회복되지 않으면 연말까지 중대 결심을 하겠다”고 했지만, 아직까지 구청장의 공백상태는 계속되고 있다. 동구청이 최근 ‘동구 신천동 현대시티아울렛에서 화재 발생’이라는 어이없는 오발송 문자를 보내 시민들의 불안감을 키운 것도 구청장 공백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윤 청장은 현재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 캠프 회계책임자 A씨와 함께 계좌를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하지 않았고, 미신고 계좌에서 총 7800여만원을 지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선거법 위반혐의 재판이 진행되면서 윤 청장의 정신적 고통이 물론 크겠지만, 그렇다고 재판으로 인해 구정을 소홀히 하는 것은 동구주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시민단체에서 꾸준히 윤 청장 사퇴를 요구하는 것도 단체장 자리가 몇 달 동안 비워도 될 만큼 한가한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구청장이 직무를 소홀히 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동구주민들에게 돌아간다. 하루빨리 대구 동구청이 구청장 공백상태에서 벗어나길 기대한다. /jangeh@kbmaeil.com

2025-01-13

조명가게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조명가게’는 코마 상태 속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인 사람들의 이야기다. 어느 날 시내버스가 다리 아래로 추락하면서 탑승자들은 죽거나 중상을 입는다. 중환자실에 실려 온 생존자들은 의식을 찾지 못한 채 의료기기에 겨우 의존해 목숨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혼수상태에서 그들은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할 수 없는 기묘한 체험을 한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일상이 펼쳐지는 가운데 마주치는 사람들이 어딘지 이상하다. 사람이지만 사람 같지 않은 이질감을 눈치 채는 순간, 바로 그 자신 또한 이상한 세계에 속해 있는 이상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이상한 세계에는 어두운 골목이 있고, 그 골목의 끝에는 조명가게가 있다. 현실에도 존재하고 환상에도 존재하는 이 수상한 가게는 사람의 생사를 관장한다는 북두칠성처럼 환하게 불 켜진 전구들로 가득하다. 전구들은 모두 누군가의 생명 빛이다. 전구가 깨지거나 불이 꺼지면 그 사람은 죽는다. 반대로 죽음의 문턱에서 자기 전구를 찾아 간직하게 되면 삶으로 다시 건너갈 수 있게 된다. 조명가게는 불교의 삼도천이나 가톨릭의 연옥과 비슷한 개념의 장소인 셈이다. 죽어가는 이들을 살리는 건 죽은 자들이다. 조명가게가 있는 골목에서 죽은 자들의 영혼은 장례를 치르고 발인이 마쳐지기까지 사흘 동안 산 사람들의 영혼과 교류할 수 있다. 죽은 자들은 사랑하는 이를 어떻게든 삶 쪽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한다. 스포일러가 될 테니 다 이야기할 순 없겠지만, 가장 인상적인 건 코마 상태의 현민(엄태구)을 살리기 위한 죽은 지영(김설현)의 헌신이다. 살아서는 농아라는 이유로 현민의 부모로부터 외면 받은 지영이 버스 사고로 허리가 끊어진 남자친구를 붙들고 처절한 바느질을 한다. 이때 힘껏 바늘을 꿰는 팔의 운동이 환자의 심박그래프와 겹쳐지는 장면은 뭉클함의 최대치를 느끼게 한다. 내 의지로 살아가지만 삶은 내 의지만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나를 살게 하는 것 같아도 어느 모르는 시공간에서 누군가가 나를 살리고 있는 지도 모른다. 교회에 안 나간 지 오래됐지만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네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라던 복음성가를 지금도 가끔 흥얼거리는 것은 누군가가 나를 살게 한다는 믿음, 또 내가 당신을 살게 하리라는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마주보고 누웠을 때/ 당신의 심장은 아래로 쏟아지고/ 내 심장은 쏟아지는 세상을 받아냈는데/ 내 팔베개에서 자꾸만 강물이 흘러/ 당신 귀는 깊이 잠들지 못했네/ 내 피가 실어 나르는 복숭아 꽃말을/ 다 듣고 있었네 그때 나는/ 벌써 죽은 사람이었고/ 당신은 살아서는 다시 못 꿀/ 꿈처럼 가엾이 아름다웠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몇 년 전에 쓴 ‘몽유도원’이라는 졸시다. ‘조명가게’를 보고 나서 시를 다시 읽어보니 시가 어딘지 달라져 있다. 여러 번 읽어봐도 시는 그대로인데 뭐가 달라진 걸까. 드라마의 내용이 겹쳐지면서 내 시지만 애틋해진 것 같다. 죽은 사람은 사랑하는 이를 살리고 저승으로 간다. 저승으로 가면 이승에서의 모든 기억은 “다시 못 꿀 꿈”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산 사람은 떠난 이와의 기억을 안고 살아간다. 때로는 존재보다 부재가 더 환한 빛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사람을 살리는 건 사람이다. 초자연적인 현상을 다루고 있어 드라마에 전경화되지는 않지만 망자를 대하는 장례지도사들의 품격 있는 태도와 환자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의사와 간호사들의 헌신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려면 안팎에서 동시에 두드리는 줄탁동시(啐啄同時)가 필요한 것처럼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는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힘을 합치는 것은 물론 그 자신의 의지까지 다 동원되어야 한다.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더 쉬운 세상에서 우리는 서로의 전구가 될 수 있다. 얼마 전 조현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시창작 수업 첫날,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한 남자분이 활짝 웃으며 “잘생기셨어요. 키도 크고” 대뜸 두 손을 덥석 잡았다. 내 손이 차다며 나를 이끌고 온풍기 앞으로 가더니 따뜻한 바람에 손을 녹이게 했다. 연말부터 쭉 지치고 어두웠던 마음에 뭉클한 빛이 번졌다. 내가 그들에게, 또 그들이 내게 전구가 되어주는 조명가게의 문이 열렸다.

2025-01-13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아서

운명이라는 게 정해져 있는 것인지, 아니면 반대로 그냥 인간은 주어진 것 없이 바람처럼 떠다니는 건지, 두 가지 중 어떤 것인지 의문이 들 때에 보는 영화. 새로운 해에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포레스트 검프’를 꺼내어 봤다. 극중 주인공 포레스트 검프는 IQ75의 경계선 지능장애로 척추가 굽어 다리에 보조장치를 달고 다니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마을 사람들이 검프를 무례하게 쳐다보아도, 다른 아이들과 달리 지능이 현저히 낮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없다는 교장 선생님의 말에도 그의 어머니는 포레스트는 남들과 다르지 않음을 상기시키고, 늘 좋은 교육을 시키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포레스트는 성인이 되어서까지 또래 친구들에게 무시를 당하고, 그런 포레스트에게 처음 손을 내민 것은 또래 여자아이 ‘제니’뿐이었다. 성인이 돼 제니와 길을 걷던 어느 날, 마을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하는 포레스트. 그 괴롭힘을 피하기 위해 내달렸을 뿐인데 너무 빠르게 달린 나머지 미식 축구 감독 눈에 띄게 된다. 포레스트의 달리기 실력을 보고 감동을 받은 축구 감독은 그를 대학으로 이끌게 되고, 입학 이후에도 달리기 실력 덕분에 엄청난 활약을 하게 된다. 결국 전미 대표팀 선발, 대통령상까지 받으며 학교를 졸업하게 된다. 졸업식에선 우연히 군 입대 팸플릿을 받게 되고, 그 길로 군대에 입대하게 된 포레스트. 그곳에서 친구 버바를 만나게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베트남 전쟁에 참가하게 되고, 정글 속 격투에서 친구 버바를 놓치게 된다. 버바를 구하기 위해 정글을 헤매보지만 다른 전우들을 구출할 뿐, 너무 늦게 버바를 구한 탓인지 그의 목숨은 얼마 지나지 않아 끊어지고 만다. 버바를 잃어 슬픔을 겪는 포레스트지만, 그 와중에 여러 전우의 목숨을 구한 공로로 대통령 명예훈장을 받게 된다. 그 와중 또다시 우연히 탁구를 하게 되는데, 신기하게도 탁구에도 소질이 있던 포레스트는 전국을 돌며 위문공연을 다닌다. 머지않아 미국 탁구 대표팀까지 들어가 실력을 인정받으며, 탁구로 중국에 간 첫 미국인이라는 기록마저 세우게 된다. 우연히 발길 가는 대로 뻗을 뿐인데, 모든 것을 타고난 능력 마냥 뛰어나게 소화하는 포레스트지만 언제나 운이 따라주진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가 아프다는 연락을 받은 포레스트는 급히 고향으로 가지만, 어머니의 병은 매우 심각해졌고 살 날이 많지 않다는 말을 듣고 만다. 포레스트는 예기치 못한 이별을 준비하게 되고, 어머니는 포레스트에게 신이 주신 능력으로 최선을 다할 것을 이야기한다. 포레스트가 신이 준 운명이 무엇이냐고 묻자, 어머니는 그것은 자신이 개척해나가는 것이라며 “인생은 하나의 초콜릿 상자와도 같아, 무엇이 들어있을지 아무것도 알 수 없거든”이란 말을 남기며 죽음에 이른다. 어머니의 죽음, 제니와의 거듭되는 이별로 지친 포레스트는 결국 어느 날 갑자기 무작정 집을 나서 달리기 시작한다. 앨라베마주를 횡단하고 또다른 목적지, 더 나아가 더 멀리 있는 목적지를 향해 뛰며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며 이별의 슬픔을 묵묵히 견딘다. 포레스트의 이유 없는 달리기는 뉴스에 보도되기 시작했고 그의 행동에 영감 받은 추종자들이 늘지만 포레스트는 꿋꿋하게 3년 2개월 간 꾸준히 달린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견딜 수 없는 슬픔의 순간이 조금 물러났을까. 3년이 지나고 나서야 포레스트는 이제 집에 가야겠다며 달리기를 문득 멈춘다. 다시금 고향으로 돌아간 포레스트는 자신을 만나러 오라는 제니의 편지를 받고 제니에게로 향한다. 영화 속 포레스트는 제니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을 보여준다. 제니는 삶을 이리저리 방황하지만 그런 제니 곁을 맴돌며 포레스트는 묵묵히 기다린다. 그 와중에 초콜릿 상자 속 초콜릿을 하나씩 꺼내어 먹듯, 주어진 삶을 착실하게 살아낸다. 어떠한 불만도 없이, 하나의 길을 착실하게 개척해나가며 늘 좋은 성과를 낸다. 물론 성과가 좋다고 해서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는다. 총알이 빗발치는 베트남 전쟁에서 별을 보았던 것. 바다에서 지는 태양, 사막에서 떠오르는 태양 등 그는 외로움과 공허의 시간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사람이었고, 그 아름다움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결국 그가 갖고 싶었던 모든 사랑의 형태는 자신을 떠나갔지만 그럼에도 포레스트는 운명이 주어진 것처럼, 또는 바람처럼 떠다니며 살아간다. 새해가 밝았다. 영화의 엔딩 장면에 화면을 멈추고선 새로운 해의 태양을 맞이해본다. 올해의 내가 바람 같은 일들에서 씩씩히 살아냈으면 좋겠다.

2025-01-13

어떤 눈으로 노인을 보는가

김규인수필가 우리 사회는 나이 든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고령화가 진행되며 세대 간 경제·사회·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갈등이 생긴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노인을 비하하는 표현도 자주 나타난다. 카페에선 ‘노인이 많으면 젊은 사람이 안 온다’며 입구를 막아선다. 노인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은 부정적이다. 나이 들어 회사에서 정년퇴직하면 뒷전으로 밀린다. 재취업을 위해 서류를 내면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 같아 주변의 눈치를 살핀다. 버스 안에서는 젊은이들의 자리를 양보받는 염치없는 사람으로 몰리고, 친구들과 들른 찻집에서는 눈치 없이 큰 소리로 떠든다고 사람들의 눈총을 받는다. 노인들은 눈치 없고 막무가내로 막말만 해대고 젊은이들의 일자리나 빼앗는 몰염치한 사람으로 치부해 버린다. 고령 운전자들의 연이은 사고로 인한 원망의 눈초리까지 노인에게 향한다. 오죽했으면 프란치스코 교황마저 “노인이 ‘젊은이의 미래를 훔친다’는 비난은 요즈음 어디에서나 존재하며, 근거 없는 편견들은 여전히 젊은이와 노인 세대 간 갈등에 계속 불을 지피고 있다”며 걱정을 하였을까. 나이 든 부모를 ‘도움이 안 되는 존재’로 생각한다. 가장 행복해야 할 가정에서 노인 차별과 혐오가 시작된다. 그들을 낳고 길러준 부모에게 이러할진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을 대할 때의 태도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이러한 경향은 사회적으로 차별을 넘어 노인 혐오로 이어진다. ‘65세 이상 파워 컨슈머의 부상: 시니어 소비 트렌드와 기업들의 대응’, ‘고령사회 한국 액티브 시니어: 새로운 소비층의 등장’, ‘소비시장 큰손 액티브 시니어를 잡아라’. 어느 한 곳의 기사가 아니다. 침체한 경기를 살리기 위하여 돈 있는 노인들을 추켜세우며 소비를 부추기는 듯한 기사도 언론사마다 경쟁적으로 등장한다. 우리 사회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수십조 원을 퍼부은 저출생 대책은 아직 큰 진전이 없고, 힘든 일을 기피하며 일자리의 부족을 말하는 젊은 세대, 치열한 수출 경쟁으로 양질의 일자리에 한계를 보이는 산업체와 정부, 사람이 없어 물건을 생산하지 못하는 중소기업체와 구인난에 허덕이는 농어촌, 베이비붐 세대의 점차적인 은퇴로 생산 인력의 감소, 고령화에 따른 젊은 층의 부양 능력의 가중, 이로 인한 연금과 기금의 고갈이라는 문제 해결에 어려움을 겪는다. 문제는 생산 인력의 부족이다. 젊은이들이 힘들다고 피하는 일자리지만 이를 원하는 노인들도 많다. 정부에서는 능력에 따라 일할 수 있게 정년을 연장하는 등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많은 사람이 일함으로써 생산 인력 확보와 연기금의 고갈을 막고 젊은 층의 부담을 덜어주고 정부는 세수 확보로 재정 안정을 기할 수 있다. 국가가 문제를 해결하고자 앞장설 때 가능하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세대 간의 갈등을 조절하며 한 걸음씩 나아갈 때 국민의 동참도 늘어난다. 모든 국민이 함께 일할 때 국가의 부는 저절로 증가하고 국민은 건강해진다. 노인이 기피 대상이 아니라 국가의 중요 인적자원임도 알게 된다. 어떤 눈으로 노인을 보는가가 중요하다.

2025-01-13

대구형 산불관리 모델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25년 새해 초, 미국 LA를 덮친 대형 산불은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극심한 가뭄과 강풍 속에서 발생한 산불은 막대한 재산 피해를 입혔고, 특히 물 부족으로 인해 진압에 어려움을 겪으며 피해 규모가 더욱 커졌다. 기후변화는 대형 산불 발생의 주요 원인이며, 대구 또한 안전지대가 아니다. 겨울철 건조한 날씨와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대구의 산불 위험도 증가하고 있어, 대형 산불 발생 시 막대한 피해가 우려된다. 대구는 태풍, 홍수 등 자연재해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가 적은 지역이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시민들의 안전 의식이 저하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실제로 2024년 조사 결과, 대구 시민의 안전 체감도는 전국 평균보다 낮게 나타났다. 이를 인식하고 시민들의 안전 의식을 높이는 동시에 효과적인 산불 예방 및 대응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대구형 산불관리 모델’이 필요하다. ‘대구형 산불관리 모델’은 예방, 대비, 대응, 복구 단계로 나누어진다. 각 단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예방 단계에서는 산림 인근 주민들에게 산불 예방 교육을 실시하고, 주민들이 참여하는 ‘자율 방재팀’을 조직하여 산림 내 위험 요소를 제거한다. 농민들은 불쏘시개가 될 수 있는 잡초를 제거하고, 등산객과 시민들에게는 산불 예방 교육과 대피 경로 및 행동 요령을 안내한다. 청소년들은 산불 예방 캠페인이나 체험형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산불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예방 습관을 실천한다. 대비 단계에서는 지역별 특성에 맞는 재난 대비 훈련을 통해 실제 산불 발생 시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훈련한다. 산불 발생 시 신속한 대응을 위해 대피 훈련과 초기 화재 진압 훈련을 정례화하고, 앞서 조직된 자율 방재팀의 역할을 강화하고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훈련에 참여하도록 한다. 대응 단계에서는 열화상 드론과 지능형 CCTV의 감시 데이터를 주민과 공유하여 산불 조짐을 사전에 경고하고, 주민들이 주도적으로 방재 활동에 참여하도록 유도한다. 산불 발생 시 초기 진압을 위해 드론을 활용한 소형 방수 시스템과 같은 기술적 대안을 적극적으로 도입한다. 복구 단계에서는 산불 발생 후 생태계를 복원하는 데 필요한 재정을 마련하고,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산불 예방 및 복구 방안을 개선한다. 호주의 ‘Community Fireguard Program’과 미국의 ‘Firewise Communities’ 프로그램은 주민 참여를 핵심 전략으로 활용한 성공적인 산불 관리 사례이다. 이 프로그램들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산불 예방 활동, 대피 계획 수립, 정기적인 훈련에 참여하도록 지원한다. ‘대구형 산불관리 모델’은 앞서 언급한 해외 우수 사례와 대구시의 선진적인 산불 감시 시스템을 기반으로 기술적 감시 체계와 주민 주도의 활동을 유기적으로 결합한 통합적 접근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 시민 참여, 첨단 기술, 물 관리 시스템의 유기적인 결합을 통해 대구는 기후변화 시대의 산불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2025-01-13

도돌이표

도돌이표. 새해가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풍경이 있다. 다이어리의 첫 페이지에 적힌 결심, 체중계 앞에서의 고요한 다짐, 그리고 다이어트를 시작하기 전 마지막이라고 외치며 먹는 피자 한 조각, 나의 다이어트는 매년 새해의 단골 레퍼토리다. 이 다짐은 마치 악보 위의 도돌이표처럼 늘 같은 지점으로 돌아간다. 시작과 끝이 반복되는 이 리듬 속에서 나는 올해도 다시 한 번 다이어트를 새해 목표로 삼아 본다. 스스로에게 체면을 건다. 다이어트는 단순히 체중을 줄이는 행위가 아니라 내 몸과 마음을 새롭게 정돈하는 과정이고 불필요한 일정 부분을 줄여 건강을 되찾는 일이니까 성공할 수 있다라고 자신에게 체면을 건다. 그러나 매번 도돌이표를 찍는 음악처럼 같은 지점으로 돌아간다. 처음엔 열정적으로 식단을 관리하고 운동도 빠지지 않고 하지만 어느새 “오늘 하루쯤은 괜찮겠지”라는 나른한 핑계가 나를 휘감는다. 결국 또다시 목표에서 멀어진 나를 발견하며 자책하곤 한다. 음악에서의 도돌이표는 단순히 끝없는 반복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처음으로 돌아가 더 풍성한 연주를 이어가는 기회를 준다. 새해 다짐한 다이어트도 좀 더 성숙한 방식으로 이전보다 조금 더 꾸준한 노력으로 나를 다듬어 가고 나의 건강과 더불어 일상이 더 풍부해지길 바란다. 새해 목표를 세우며 나의 작은 변화를 떠올린다. 화려한 계획 대신 나만의 소소한 도돌이표를 그려 나가는 것이다. 매일 조금 더 걷고, 꾸준히 물도 마시고,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기보다는 계단을 이용하고, 공복 시간을 더 늘려가며 소소한 습관이 도돌이표처럼 돌아가는 나만의 악보들을 그려가는 것이다. 어쩌면 도돌이표 같은 다이어트 결심은 실패가 아니라 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나침반일지도 모른다. 올해도 나는 체중계 위에서 숫자에 연연하기보다는 매일의 작은 성취를 기록하며 내 몸과 마음을 이해해 가는 여행을 떠나려 한다. 도돌이표를 찍는 음악이 결국 아름다운 멜로디를 완성하듯, 나의 반복되는 다짐도 올해는 나만의 리듬을 완성해 가리라. 완벽한 그림을 그리며 시작해 보지만 늘 익숙한 현실의 무게에 눌려 흐지부지되기 일쑤다. 시작은 화려하지만 결국 한 해의 끝자락에선 같은 자리로 돌아와‘다시 시작해야지’라는 다짐으로 반복한다. 하지만 실패라는 프레임을 씌우기보다는 인간의 본능적인 리듬이 또 처음으로 돌아가려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도돌이표가 반복을 의미하듯 저마다의 다짐은 우리 삶의 연습곡 같은 것이다.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며 또다시 지난날을 되돌아보고 성장하다 보면 우리 삶은 한 편의 소나타가 완성되어 가지 않을까. 김경아 작가 비단 다이어트뿐일까. 우리의 삶도 도돌이표가 반복되는 악보같다. 한 번 지나온 구간을 다시 돌아가야 할 때도 있고 같은 멜로디가 끊임없이 이어질 때도 있는 것을.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연주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돌이표가 가리키는 곳으로 돌아갈지라도 그 안에서 다시 호흡하고 숨을 불어 넣고 새로운 마디를 찾아가는 것은 나의 몫이다. 멜로디가 익숙하다고 누가 시시하다고 말할 것인가. 되풀이된다고 누가 그 가치를 폄하할 것인가. 도돌이표는 끝이 아니라 연주의 일부분이다. 다시 도돌이표로 돌아가 결심한다. 멈추지 않고 나의 다이어트를 이어갈 것이다. 내 삶의 연주를 이어갈 것이다. 결국 그 열심이 모여 나만의 인생곡이 완성해 가기 때문이리라. 운동화 끈을 다시 묶는다. 느슨해지거나 다시 풀려도 괜찮다. 돌아가더라도 또 다시 매듭을 묶고 한 걸음 더 내딛으면 된다. 도돌이표가 있는 삶, 완벽하지는 않을지라도 무한 반복 속에서 또 다음 마디를 연주할 준비를 한다. 내 삶의 선율은 그렇게 완성되어 가는 현재진행형이다. /김경아 작가

2025-01-13

발칸반도 민족주의 ② 우리(We)와 그들(They)

1919년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각 민족의 가슴을 요동치게 하는 일이 일어났다. 전후 처리를 위해 파리 강화회의에서 미국 대통령이었던 우드로 윌슨이 주창한 ‘민족자결주의民族自決主義’가 그것이다. 한 민족이 그들 국가의 독립 문제를 스스로 결정짓게 한다는 이 말은 소수민족, 그리고 압제에 시달리는 약소민족에게 독립의 열정과 불가능은 없다는 희망을 안겨주었다. 우리나라 3·1운동에도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민족이라면 어느 누구로부터도 간섭을 받지 않고 정치적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권리를 실현한다’는 외침이 억압에 길들여진 약소민족 가슴을 막무가내로 울려댔다. 우리나라는 물론 독립투사들이 민족주의자로 불리게 된 때도 이때부터다. 민족주의에 대한 성공은 평등에 대한 열망으로부터 시작되었지만 말이다. 우리민족 역시 실체에 대한 믿음은 일제강점기 식민시대 속 저항을 통해서 생겼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발칸반도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새롭게 생긴 패러다임, 즉 민족 방어를 위해 배타적 민족주의의 네이셜리즘(Nationalism)과 언어, 종교 등 문화적 요소에 따라 구분 짓는 문화적민족주의(Cultural Nationalism)가 본격적으로 기세를 울리며 불씨로 자라났다. 민족과 국가를 동일선상에 놓는 서유럽 민족주의는 경제 범위와 영토가 대부분 일치하면서 국적을 따지는 ‘정치적 민족주의’로 정의한다. 이는 민족보다 국가를 우선시하며 충성을 요구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발칸반도는 달랐다. 혈통이 중요시 되면서 언어는 물론이고, 역사와 체험의 공유, 더불어 종교 역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문화적 민족주의’였다. 민족과 국가는 별개이며 국가에 충성하기보다 민족이 우선이었다. 그런 까닭에 신화가 떠받들어지고, 우리 민족끼리 독립이라는 희망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꿈으로 연결된다. 발칸반도는 혼란한 역사를 거치면서 거듭된 이합집산을 경험했다. 여러 민족이 뒤섞여 있었으며, 민족의 경계와 영토란 희미하기 짝이 없었다. 따라서 발칸반도 민족주의는 폭력을 품고 태어난 ‘이질적 민족주의’라고 부르기도 한다. 발칸반도를 비롯한 동유럽 나라들은 제국의 그늘에서 막 벗어나면서 민족주의자들의 주도하에 이뤄졌다. 그들의 민족주의는 민족결집에 의미가 궁색했던 까닭에 미래를 과거에서 찾았다. 과거를 이 잡듯이 뒤져 가느다란 실마리라도 발견하면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민족영웅으로 스토리텔링했다. 신화는 물론, 역사적으로 가장 화려했던 시기만을 잘라 민족정기를 일반화 하면서 능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민족 우상화 작업으로 민족 태생적 우월주의를 심어주었다. 그리고 집권세력은 민중을 길들이고자 이를 교묘하게 정치에 적용하면서 폭력마저 정당화하기에 이른다. 민족내부의 이질적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발칸반도 모든 나라가 독립투쟁과 저항의 역사 속에서 탄생하지 않았다. 물론 우리네 독립운동사에서 보듯 발칸반도 나라 역시 의기에 혈기까지, 풍찬노숙을 당연하게 여기며 독립투쟁에 매진했던 투사들도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큰 그림을 놓고 보았을 때 아쉽게도 스스로 힘으로 광복을 쟁취한 것이 아니라 강대국 힘의 논리에 의해 독립을 이룬 나라가 대부분이다. 주권은 있되 자주는 없는 이상한 체질, 강대국 품을 벗어나면 금방이라도 뇌정지에 빠질 허약한 나라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민족은 자신의 나라를 가질 권리가 국제사회에 공식적으로 공인되었으니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이었을까. 그러나 그 이면에는 강대국의 섬세하고도 고도의 계산이 깔려 있었다. 승전국끼리 패전국을 조각조각 갈라놓아야 했다. 후발 제국 도이칠란트로부터 벌어진 전쟁의 뼈아픈 경험을 잊지 않았다. 승전국은 작은 나라와 소수민족을 부추겨 착하고 말잘 듣는, 사람과 땅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갈등을 부추기고 조장하면서, 서로에게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게 새판을 짰다. 그 중심에는 영웅놀이에 재미가 든 지도자를 뽑고 가슴이 요동치는 장엄함을 맛보면서 정신까지 발기해버리는 자칭 민족지도자가 있었다. 서구유럽 입장에서 보면 말잘 듣는 지도자이자, 고매한 인품을 지닌 인간이었다. 발칸반도의 무기력은 마치 우리 해방정국과 흡사했다. 보릿고개 넘기기조차 힘에 겨웠건만, 친일청산은커녕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정당과 자칭 애국지사 등장, 반공이라는 구호로 무지한 백성의 부추김, 그리고 연이어 터진 한국전쟁은 기사불능 상태로 몰아갔다. 그러나 극동 아시아에 공산정권의 마지막 저지선으로 강대국의 지원과 태생적 부지런한 배달민족 희생 속, 선 성장 후 분배의 기치에 묵묵히 순응하면서(분배의 정의가 혼탁해지긴 했지만) 기적과도 같이 세계 속 대한민국이 우뚝 설 수 있었다. (계속)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5-01-13

‘국민의힘’이 가야 할 혁신의 길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국민의힘이 또다시 벼랑 끝에 섰다. 2016년 박근혜는 ‘국정농단’으로, 그리고 2024년 윤석열은 ‘비상계엄’으로 보수의 위기를 자초했다. 비상이 걸린 국민의힘은 탄핵 찬반, 친윤과 친한, 극우보수와 합리보수 등으로 사분오열(四分五裂)이다. 생사의 기로에 선 보수의 진지한 성찰과 반성이 요구되는 까닭이다. 보수는 왜 길을 잃고 헤매는가? 보수의 회생은 정확한 진단과 치료에 달려 있다. 보수의 핵심가치는 법치·책임·관용·품격·실용 등이다. 이 기준에서 보면 현재의 국민의힘은 진정한 보수라고 평가받기 어렵다. 정부여당을 조롱하는 표현들, 즉 수구세력, 꼴통보수, 시대착오, 표리부동, 내로남불, 무책임, 불통과 독선 등은 ‘보수의 위선’을 말해주고 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이 ‘가짜보수’가 ‘진짜보수’를 죽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최선의 치료법은 ‘보수의 혁신’이다. 혁신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보수의 정체성을 새로이 정립하는 것이다. 보수는 수구(守舊)가 아니다. 산업화시대의 사고로 AI시대를 살아가려는 것은 시대착오다. ‘수구보수’와 ‘극우보수’의 경직성·극단성은 변화와 소통을 가로막는다. 불통은 독선을 낳고, 독선은 민심과 충돌하여 총선에서 참패했다. 보수의 대부인 영국 정치가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는 “유연한 대처와 변화가 보수의 생명력”이라고 했다. 시대변화에 둔감하고 혁신을 거부하는 보수는 존재가치가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혁신을 누가 주도할 것인가에 있다. ‘공천이 곧 당선’인 ‘양남(영남+강남)’지역 의원들은 혁신을 주도할 수 없다. 이들은 대통령 탄핵 여부와 관계없이 금배지가 보장되는 지역구이다. 보수의 부활보다 공천과 금배지에 혈안이 된 ‘권력 불나방들’이 어떻게 혁신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혁신은 보수의 핵심가치를 중시하고 민심을 정확히 읽을 수 있는 수도권 개혁파가 주도해야하며, 특히 비대위원장을 비롯한 당 지도부는 강력한 혁신의지를 가지고 변화와 쇄신으로 위기를 정면 돌파해야 한다. 나아가 보수의 혁신을 위한 세대교체와 지도자육성도 시급하다. 지금 보수에게는 이승만·박정희를 넘어서 21세기 서사(敍事)가 필요하다. 오늘의 위기는 대선을 위해 급조된 외부용병을 영입했으나 결국 ‘정치초보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유능한 보수는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과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정치가 무엇인지, 그리고 보수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고 정치할 수 있는 인재가 절실하다. 이처럼 보수위기의 원인은 ‘밖이 아니라 안’에 있기 때문에 남 탓하지 말고 스스로 환골탈태해야 한다. ‘수구·극우·가짜보수’가 죽어야 ‘혁신·합리·진짜보수’가 산다. 미치광이에 대처하는 방법은 똑같이 미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정신을 잃지 않는 것이다. 국민의힘이 혁신을 통해 ‘진정한 보수’로 거듭날 수 있을 때 비로소 떠난 민심이 돌아오게 될 것이다.

2025-01-13

“카톡보고 내란선전죄 고발”… 이게 공포정치

민주당 국민소통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전용기 의원이 “일반인도 카카오톡을 통해 가짜뉴스를 퍼나르면 내란 선전으로 고발하겠다”고 밝힌 것과 관련, 정치권에서 ‘카톡 검열’ 논란이 핫이슈로 등장했다. 전 의원은 지난 10일 유튜브 채널 운영자 6명을 내란선전죄 혐의로 고발하면서 “커뮤니티에서 댓글 그리고 가짜뉴스를 단순히 퍼나르거나, 카카오톡을 통해서도 내란선전과 관련된 가짜뉴스를 퍼나르는 것은 충분히 내란선전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단순히 퍼나르는 일반인이라 할지라도 단호하게 내란선동으로 고발하겠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 공직자에 대해 탄핵과 고소·고발을 남발하고 있는 민주당이 이제 일반시민에게까지 전선을 확대해 고발하겠다고 나선 것은 충격적이다.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법률자문위원장)은 12일 이와 관련해 “전 의원을 형사고발하겠다”고 했다. 그의 발언이 일반 국민을 상대로 한 강요죄와 협박죄 등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대구경북(TK) 정치권도 발끈했다. 정희용(성주·고령·칠곡) 의원은 “일반 국민의 댓글이나 카카오톡 사용을 들여다보겠다는 것은 명백한 대국민 검열 행위”라고 했고, 이상휘(포항남·울릉) 의원은 “카톡 검열 행위는 혹세무인”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이 “카톡 검열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가짜뉴스나 여론조작에 대해 단호한 대응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사실상 공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민주당이 일반국민을 내란선동죄로 고발할 수도 있다고 한 발언은 여사도 들리지 않는다. 듣기에 따라서는 민주당이 이제 시민의 일상적인 소통수단인 카톡까지 검열하겠다는 취지로 인식된다. 제1야당의 이런 행태는 정국 수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수권정당 자격’ 논란으로까지 비화할 수 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추락했던 국민의힘 지지율이 최근 상승추세에 있는 것은 민주당의 자업자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계엄정국에서 민주당 지지로 돌아섰던 중도보수층이 민주당의 ‘공포정치’를 우려하며 돌아서는 것이다.

2025-01-13

회갑 앞둔 축구선수의 투혼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시인 고은은 말했다. “그저 나이를 많이 먹었다고 노인이 되는 건 아니다. 아무리 젊어도 뒷방에 앉아 폼 잡고 헛기침이나 하고 있다면 그는 벌써 노인이다.” 노인과 청년을 가르는 건 마음가짐과 태도다. 거기에 더해 삶과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의 유무가 청년과 노인을 구분하는 잣대가 돼야 마땅하지 않을까?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맹렬한 의지가 없다면 나이와 무관하게 노인 대접을 받게 된다. 최근 회갑이 목전인 58세의 축구선수가 40년째 프로리그에서 뛰게 됐다는 보도가 나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전 일본 축구 국가대표였던 1967년생 미우라 카즈요시가 바로 그 화제의 인물. 미우라는 일본 축구가 ‘한국 공포증’에서 벗어났던 1990년대 일본 국가대표팀의 주요 공격수였기에 한국 축구팬에게도 익숙한 선수다. 최근 미우라의 원 소속팀인 요코하마FC는 일본 풋볼리그 소속 아틀레티코 스즈카에 지난해 임대한 미우라의 이적 기간을 내년 1월까지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미우라는 아들 또래의 선수들과 그라운드를 누비게 됐다. 축구는 체력 소모가 엄청난 운동이다. 그러니 58세 현역은 물론, 40대 이상의 현역 선수도 보기가 어려운 게 현실. 그럼에도 미우라는 “1분 1초라도 더 그라운드에서 뛰며, 한 골이라도 더 많이 넣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뜨거운 각오를 밝혔다. 청년의 태도와 축구에 대한 열정이 없었다면 나올 수 없는 말이다. 2000년까지 일본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A매치에서 55골을 넣은 25년 전 미우라의 투혼이 올해도 축구장에서 발휘되길 기대하는 팬들이 적지 않을 듯하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1-13

설 앞두고 독감 대유행… 철저한 대응을

대구와 경북 등 전국에 인플루엔자(독감)와 코로나19 등 각종 호흡기 감염병이 대유행하고 있다. 특히 인플루엔자와 호흡기 세포융합바이러스(RSV), 사람메타뉴모바이러스(HMPV)와 코로나19까지 여러 종류의 호흡기 감염병이 동시에 유행하는 이상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작년 12월 20일 질병관리청이 전국에 독감 유행주의보를 발령했으나 올들어서도 환자가 줄지 않는 등 호흡기 감염병 확산세가 여전하다. 그 중에도 어린이와 청소년 등의 감염 증가가 두드러져 병원마다 청소년 환자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각 가정의 각별한 주의가 요망되는 상황이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독감의 경우 1월 1주차 동안 표본 감시의료기관(300개소)을 찾은 외래환자 1000명당 독감 증상을 보인 환자 수는 99.8명을 기록했다. 이는 전주 73.9명보다 약 1.4배 증가한 것으로 2016년 이후 최고 수치다. 대구는 같은 기간 전국 평균보다 높은 108.9명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이같은 현상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어 호흡기 감염병 예방에 따른 안전수칙 준수와 관계 당국의 선제적 대응이 필수다. 특히 전국에서 대이동이 시작되는 설 연휴를 앞두고 있어 예방접종과 보건당국의 연휴철에 대비한 안전조치 등이 미리 준비돼야 한다. 호흡기 감염병이 유행하는 것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개인적 위생관리가 느슨해진 탓이 크다. 코로나가 유행할 때는 거리두기로 혼잡을 막았고 개인적으로는 마스크 착용, 손씻기 등의 위생관리를 잘했다. 또 코로나 시기 몇 년간 독감이 건너뛰었기 때문에 면역력이 약화된 것도 원인으로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호흡기 감염증이 다음 주 절정을 이루고 3월까지는 유행이 이어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독감 예방접종을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대응 방법이다. 특히 노인층과 어린이, 만성질환자 등은 예방접종을 통해 각자의 건강을 지켜야 한다. 의정갈등 속에 탄핵정국까지 겹쳐 나라가 어수선해 국민의 마음도 불안하다. 지방자치단체가 앞장서 빈틈없는 보건관리로 지역민의 건강과 안전을 지켜야 할 것이다.

2025-01-13

한 번쯤 뒤집어 생각하고 판단하라

김진국 고문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과격한 용어를 쓰지 않으면서도 가슴에 파고드는 표현을 잘했다. 그는 여러 유행어를 남겼다. 가장 유명한 게 ‘내로남불’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다. 그 이전 ‘로맨스와 스캔들’이라는 비유가 있었다. 이문열의 ‘구로아리랑’(1987)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하기사 지가 하믄 로맨스고 남이 하믄 스캔달이라 카기도 하고…” 문재인 정부는 ‘내로남불’ 정부라 불렸다. 검찰총장이 갑자기 대통령이 된 것은 그 덕분이다. 사람들은 자기 눈으로만 본다. 성경에도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라고 적혀 있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해야 한다. 비상계엄과 탄핵 사태도 마찬가지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생각해 보자. 아슬아슬한 차이로 당선됐다. 국민의힘은 국회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했다. 야당의 입법 독주로 이재명 정부가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화가 난 이재명 대통령이 비상계엄으로 야당 정치인들을 잡아 가두고, 독재하려고 한다. 운이 좋게도 국회가 비상계엄을 해제해, 이재명 대통령은 탄핵소추되고, 수사받게 됐다. 당신은 어떤 느낌인가. 국민의힘 지지자라면, 비상계엄이 성공했기를 바랄 건가. 그래야 나라가 잘 됐을까. 그게 민주주의인가. 나훈아 식으로 “니는 잘했나”라고 빈정댈 건가. 물론 이 기회에 잇속을 챙기려는 민주당 태도도 문제가 있다. 이재명 대표 재판과 속도 경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건 비상계엄의 심각성을 외면하고, 정략 차원의 문제로 만들어버리는 꼴이다. 선거 국면에서는 수사가 어려워진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임기 말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 야당 총재에 대한 비자금 수사를 중단시켰다. 미국의 트럼프 당선인에 대한 검찰 수사도 당선 이후 모두 취소됐다. 그러니 오히려 ‘이재명 포비아(공포증)’라는 말이 나오게 된다. 보수 세력도 비상계엄이 잘못이라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이재명 대표가 대통령이 되는 상상을 하니 그건 막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해 대한민국의 역사를 40~50년 뒤로 돌렸는데도, 이대표 지지율이 30%대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생각이 윤석열에서 이재명으로 옮겨가면서 여론이 뒤집힌다. 보수 세력은 민주당이 탄핵을 서두는 이유가 선거를 앞당기기 위해서라고 의심한다. 진보 세력은 윤 대통령이 시간을 끌면서 탄핵과 수사망을 빠져나가려 한다고 의심한다. 이재명 지지자들은 선거를 앞당기는 게 목표겠지만, 야당 지지자가 모두 그런 건 아니다. 특히 중도층은 비상계엄을 정당화하고,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 길이 열릴까 봐 두려워한다. 헌법재판소 심리 정족수는 7명이다. 한때 국회 몫 3명을 임명해 주지 않아 헌법재판관이 6명밖에 없었지만, 헌재 스스로 헌법 효력을 정지시키면서까지 심리를 이어왔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중대한 문제도 6명으로 결정할 수 있을까. 다행히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여야 추천 2명을 추가로 임명했다. 9명 중 8명을 채웠다. 그런데 4월 18일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대행과 이미선 재판관이 퇴임한다. 두 사람은 대통령 추천 몫이다. 대통령이 직무가 정지돼 후임 임명이 어렵다. 헌법재판관 6명이 남는다. 다시 심리 정족수 문제가 제기된다. 더구나 2명이 퇴임하면 남은 6명이 모두 찬성해야 탄핵이 인용된다.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기각된다. 최근 국민의힘이 추천한 재판관까지 찬성해야 한다. 대통령 추천 2명과 국회 추천 몫 1명은 공석이다. 국회 몫 한 명을 둘러싸고 여야가 한 치도 양보하지 않는 이유다. 역지사지해 보자. 탄핵을, 수사를, 무리하게 서두르지는 말자. 대통령 직무정지 상태를 오래 끄는 건 국정에 큰 타격이다. 그렇더라도 논란의 소지는 없어야 한다. 그렇지만 ‘이재명 포비아’ 때문에 탄핵 심판과 수사 자체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한, 정권은 수시로 교대한다. 그때 민주당 대통령이 비상계엄으로 국회를 마비시켰을 때를 생각하라. 역사는 반복된다. ‘내로남불’을 생각하라.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1-12

지방정부의 국제외교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올가을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철우 경북도지사의 외교역량이 돋보인다. APEC 회의는 아시아태평양 연안 21개국의 경제협력을 위해 모인 기구이기 때문에, 이번 경주회의에서 두드러진 성과가 나오게 되면 경북도의 글로벌 경제적 위상도 격상된다. 특히 ‘12·3 비상계엄’ 이후 계속되는 국정 공백상태에서 지방정부 단체장의 외교역량은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는데 중대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이 지사의 외교력은 지난해 11월 14일부터 7일간 페루 수도 리마에서 열린 ‘2024 리마 APEC 정상회의’에서 선보였다. 당시 광역단체장으로선 처음으로 대통령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리마 회의에 참석한 이 지사가 외신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인터뷰하는 모습은 경북도가 국제외교 무대의 중심에 서 있다는 느낌이 들게 했다. APEC 회의는 다음달 24일부터 3월 9일까지 경주에서 열리는 첫 고위관리회의(SOM 1)가 개막하면 실질적으로 카운트다운된다. 외교부는 지난 연말 이미 SOM에 참석할 각국 외교부 고위관리들을 초청해 둔 상태다. SOM은 ‘APEC 장관회의’와 함께 정상회의 주요 의제에 관한 협의와 결정을 이끄는 핵심협의체다. 참석인원도 2000여명에 이르며, 정상회의 예행연습 성격을 띤다. 현재 경북도는 외교부 지원을 받아 SOM 첫 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해 분주하다. 최근 고위관리회의 주요멤버들의 입출국과 수송, 관광 지원을 맡을 자원봉사자 신청을 마감한 상태다. 경북도는 APEC 회원국에서 유학하는 학생들도 일정 인원 선발해, 한국과 회원국 간 가교역할을 맡길 계획이다. 지난 9일에는 APEC 회원국과의 소통채널을 담당할 외교 특별정책위원을 위촉했다. 이태식 전 주미대사(영국·이스라엘 대사, 외교부 차관 역임)와 신봉길 한국외교협회 회장(인도·요르단 대사 역임), 함성득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원장(국제학·국제관계 전문가), 임종령 서울외국어대학원 교수(정부기관 제1호 동시통역사), 김종걸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가 위원이다. 위원들은 APEC 회원국과 다국적 기업인과의 소통창구가 있기 때문에, 상시적으로 이 지사에게 외교자문을 할 수 있다. 경북도는 처음으로 경주를 방문하는 SOM 참석자들이 신라 천년의 역사를 둘러볼 수 있는 다양한 투어를 준비하고 있다. 이 지사는 지난주 SNS를 통해 APEC 회원국에 ‘여야정 공동사절단’과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경주APEC CEO서밋의장)을 파견하자고 제안했다. 정치적 혼란에 대한 각국의 의구심을 불식시키자는 취지다. 이에 대해 아직 여야와 정부측 응답이 없는 상태다. 대통령 탄핵정국으로 인한 국정 공백상태에서 APEC 회의를 준비하는 엔진동력이 중앙정부가 아니라 경북도가 된 느낌이 든다. 사실 지방정부 외교는 국가외교보다 더 구체적이고 실질적일 수 있다. 특히 지방에서 개최되는 국가행사는 해당 지역 단체장이 정부관료보다 더 완벽하게 준비할 수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경북도를 APEC 회의 준비의 대등한 파트너로 인식하고, 경북도가 요구하는 다양한 현안에 대해 타이밍을 놓치지 말고 수용할 필요가 있다.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5-01-12

맹자는 틀렸을까?

유영희 작가 지난 토요일 아침 대학 동창 단톡방에 한 친구가 나와 뜻이 다른 정치 견해를 올렸기에 발끈하여 한마디 했다. 지금 사태는 네가 지지하는 당에 100% 책임이 있다고, 우리는 서로 설득될 단계는 아닌 것 같다고. 단톡방에서 이런 일이 생긴 것은 요즘 정국 대치 상황과 맞물려 있다. 여당과 야당이 서로 상대를 제2의 내란 주범이라고 주장하며 정국의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한쪽에서는 12·3 비상계엄은 위헌이고 내란이라 하고 한쪽에서는 탄핵을 이재명 방탄용이라 하며 맞받아친다. 같은 사실을 두고 이렇게 생각이 다르고 감정이 다를 수 있는지 매일 놀라는 중이다. 분명히 고대 중국의 사상가 맹자는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고 했고, 그의 사상은 2300년이 지난 한국의 윤리 교과서에 빠지지 않는, 인간에 대한 통찰력 있는 견해로 자리매김해왔다. 인간이라면, 아기가 우물 쪽으로 기어가면 깜짝 놀라 구하러 가는 측은지심을 비롯해서 자기의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수오지심, 남에게 양보하는 사양지심, 옳고 그름은 직관적으로 판별할 수 있다는 시비지심을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맹자의 이 논리에 의하면, 인간에게는 이타적이고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력이 있으며 공공의 이익에 대한 감수성이 있다. 그러나 연일 쏟아지는 뉴스를 보면, 많이 배운 정치인들의 행동에 과연 이런 사단의 마음이 있는지 의심스럽기 짝이 없다. 일부 정치인들은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하고도 사과는커녕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공공의 이익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근시안적인 당리당략에 몰두하며 당당하게 궤변을 늘어놓는다. 이런 뉴스를 보고 있자면 아무리 맹자가 위대한 사상가라고 해도 당신은 틀렸다라는 말을 참기 어렵다. 인간은 악하다 못해 사악한 존재인 것만 같다. 이런 상황에서 로버트 그린의 ‘인간 본성의 법칙’을 보자니, 답답한 가슴이 조금은 풀리는 듯하다. 로버트 그린은 기본적으로 인간은 동물이라면서, 나와 생각이 같은 집단을 찾아 내 편의 의견만 증폭시키며 나와 다른 사람을 악마화한다고 일갈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진실을 찾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나의 긴장을 이완시켜주거나 자존심을 세워주거나 우월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들만 고집한다. ‘사고 과정의 쾌락 원칙’은 우리가 가진 모든 정신적 편향의 근원이다. 그러나 더 깊이 들어가면 인간의 본성은 선하거나 악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중층적이고 다면적이다. 로버트 그린도 인간은 한 가지 본성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면서 동시에 증오할 수 있고, 존경심과 시기심을 동시에 느낄 수도 있다고 한다. 인간이 동물에서 인간으로 업그레이드 되기 위해서는 이런 모순된 감정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한다. 자신이 한 것은 모두 옳고 상대는 악마라고 비난하는 사람은 동물로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단톡방에서 내 말을 들은 그 동창은 말을 안 하면 외골수가 될까 봐 올렸다고 한다. 아, 이런, 나도 인간이 덜 되었구나 싶었다. 지금은 동물이어도 인간이 될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으니, 맹자는 반은 틀렸지만 반은 맞았다.

2025-01-12

이색 기차여행

강길수 수필가 생각지도 못한 이색(異色) 기차여행을 했다. 특별하고 경제적이며 효율적인 여행이랄까. 우연한 호기심으로 시작된 1시간 52분짜리 여행이다. 포털사이트 검색을 하다가 지난달 초순, 한울 원자력 발전소에 업무차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날 발전소 안에 시험 장비를 설치해 두고, 점심 먹으러 밖에 나왔다가 시간이 남아 남쪽 도로로 향했다. 얼마 안 갔는데, 오른쪽에 기차역이 보였다. ‘흥부역’이었다. ‘놀부가 아니고 흥부네!’하고 멋진 이름이라 여기면서 지났다. 그 때문인지, 바로 이름 기억이 되살아났다. 마침, 2025년 1월 1일 개통된 동해선 철도의 유튜브 동영상 게시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혹시 싶어 ‘포항-흥부 기차’라고 검색창에 입력했다. ‘이게 웬 행운이람!’하는 속말이 절로 나왔다. 이심전심인지 포항역에서 해 뜰 녘에 출발하는 기차의 동영상이 있었다. 첫차이겠지. 동영상을 찍은 방향도 객실에서 동쪽 즉, 바다 측이어서 일출 장면도 보겠다 싶어 환성을 질렀다. 동영상 이름도 “동해선 개통 첫날 첫차 타고 포항에서 놀부? 흥부역까지 주행 영상”이라고 게시자가 재미있게 정했다. 얼른 새해 첫날 포항발 첫 해맞이 이색 기차여행을 시작했다. 비록 열흘 뒤에 하는 이색여행이지만 마음은 새해 첫날, 첫 기차를 타고 가는 설레는 기분이다. ‘내 책상, 내 의자에 앉아 설날 새 동해선의 기차여행을 다 하는구나….’ 꿈만 같다는 기분을 이렇게도 느낄 수 있다니, 참 좋은 세상이다. 마우스 왼쪽 버튼을 클릭했다. 기차는 부드럽게 출발한다. 객실 내에 소곤거리는 승객들 목소리와 함께 “우리 열차 출발합니다!”하는 승무원의 소리가 들린다. 기차가 속도를 내자 레일 위를 차량 바퀴가 구르는 소리 주기도 빨라진다. 신항만으로 가는 지선을 지나고 흥해 들판의 고가 철로를 갈 때, 멀리 나지막한 산 능선 위로 새해 첫 해가 찬란하게 떠올랐다. 아마 남송리 어떤 산인 것 같다. 바다 일출을 만났다면 더 좋았겠지만, 산에서 평야로 비치는 일출도 장관이다. 열차는 쉼 없이 잘도 달린다. 동해선 포항지역의 두 번째 역 월포까지 11분이 걸렸다. 차를 몰고 오면 반 시간 정도 걸렸었는데, 참 빠르다. 이어서 장사, 강구, 영덕, 영해, 고래불의 영덕군 5개 역도 정차했다. 울진군의 후포, 평해, 기성, 매화, 울진, 죽변, 흥부역까지 7개 역을 정차한 뒤 동영상은 끝났다. 그러니까 13개 역을 정차한 것이다. 중간에 2, 3개 역에서 하행 교행 열차도 보냈는데, 타임 스케줄이 잘 되어 승객들이 별로 기다리지 않았다. 포항에서 차를 몰고 흥부역까지 오려면 빨라야 2시간 반 정도 걸릴 텐데, 40분 이상 단축된 것으로 보인다. 소감은 해안가를 달리는 구간이 짧고, 터널 길이 얼추 절반은 돼 보이는 것, 바다를 볼 수 있는 노선이 더 많았으면 하는 아쉬움이다. 하지만, 따사한 봄날 손자들을 데리고 오고 싶은 흥부의 마음이 꿀떡같이 들었다. 한울 원자력 홍보관을 구경하며 깔깔대는 손자들의 소리가 미리 들리는, 새해 첫날 첫 동해선 이색 기차여행이다.

2025-01-12

고전으로 세상읽기 ③ 세상의 이치 어떻게 잘 알 수 있을까

서양 고전 경험론의 창시자 F. 베이컨(1561-1626)은 “인간은 자연을 관찰하고 그 법칙을 사색하는 한에서만 그것의 상당 부분을 이해할 수 있으며 또 뭔가를 할 수 있다.” 모든 지식은 경험인 ‘격물’로부터 시작됩니다. 물론 그 격물에는 ‘직접적 격물’뿐만 아니라 ‘간접적 격물’도 포함됩니다. ‘직접적 격물’은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이고, ‘간접적 격물’은 다른 이가 경험을 통해 남긴 기록을 접하는 간접적 경험 방식입니다. 문명이 발달하고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복잡해질수록 사람들이 알아야 할 지식은 폭발적으로 늘어납니다. 동시에, 동시대 사회구성원 각자의 경험 및 사고 활동을 통한 사회적 지식 축적 역시 같은 속도로 늘어납니다. 사람들은 하루 24시간의 시간적 한계로, ‘자신이 실제로 해 보거나 겪어 보는’ 직접적 경험 또는 직접적 격물 방식으로 모든 지식을 다 추구할 수 없고 또 그렇게 할 필요도 없습니다. 필요한 지식을 독서나 강의 등 간접적 격물 방식을 통해 얻으면 되고 또 대부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직접적인 경험을 통하지 않고서는 얻을수 없는 지식들이 있습니다. 바로 ‘암묵지(Tacit knowledge)’에 속한 것들입니다. 지식은 그 내용을 문자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형식지(Explicit knowledge)’와 ‘암묵지(Tacit knowledge)’로 나뉩니다. 《장자(외편)》 〈천도〉 편에서 윤편이라는 목수가 제나라 환공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수레바퀴를 깎을 때 바퀴통이 헐거우면 단단하지 못하고, 반대로 빡빡하면 들어가지 않는다. 헐겁지도 빡빡하지도 않게 하는 것은 손으로 터득하고 느낌으로 알뿐,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정확히 ‘암묵지(Tacit knowledge)’ 개념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손기술, 운동, 예능처럼 ‘몸(오감) 기억’을 필요로 하는 지식은 기본적으로 암묵지일 수밖에 없습니다. 설령 문자나 언어로 표현하고 또 의식으로 그것들을 기억하더라도 몸 감각이 그것들을 기억해내지 못하면 문자, 언어 그리고 의식은 별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수영은 직접 물속에서 헤엄을 치는 것이 지식이고, 바이올린 연주는 직접 활로 현을 켜 소리를 내는 것이 지식이지, 헤엄치는 방법 그리고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방법에 대한 머릿속 암기는 그것들에 대한 지식의 본령이 아닙니다. ◇부처가 꽃을 들자, 가섭이 말없이 미소 짓다 불교 선 수행법의 연원은 부처의 영산 설법입니다. 부처가 영산에서 설법할 때 ‘연꽃을 손에 들고 제자들에게 보여주자(拈華示衆염화시중)’ 제자 중 가섭이 ‘부처님 손안의 꽃을 보고 말없이 미소 짓습니다(拈華微笑염화미소)’. 그 순간 말이 아닌 ‘마음에서 마음으로 가르침이 전해져(以心傳心이심전심)’, 가섭이 ‘자신의 마음속 불성을 본 순간 바로 깨달음을 얻습니다(見性成佛견성성불)’. 깊은 깨달음과 같은 ‘심오한 의식작용’이나 극한의 슬픔, 주체할 수 없는 기쁨과 같은 ‘극한적인 감성 작용’은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불교의 깨달음과 같은 ‘심오한 의식작용’은 화두, 참선과 같은 특별한 수단을 통해 수행자 스스로 그것을 파악하는 방식으로 지혜가 전달됩니다. 또 ‘극한적인 감성 작용’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쁨’이라든지 ‘형언할 수 없는 슬픔’과 같은 표현처럼, 말이나 글로 나타낼 수 없는 ‘암묵지’라는 것을 직접 드러내는 방식으로 극한의 상태를 묘사하기도 합니다. 같은 부류는 대체로 서로 닮으니, 어찌 유독 사람에만 그렇지 아니하겠는가? 인류 역사 내내 수많은 사람들의 경험과 사고 활동에 의해 축적된 지식인 형식지를 통한 간접적 경험은 ‘거인의 어깨 위에서 시작하는’ 격물입니다. 간접적 경험의 대표적인 방식은 독서와 강의 청취입니다. 독서는 적은 비용으로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지식 습득 방식입니다. 아울러 그런 효율적인 수단인 만큼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접근이 필요한 것이 또 독서입니다. 강의 청취는 가장 손쉽게 해당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방식입니다. 반면 손쉽게 습득되는 만큼 비판적 수용과 자기 생각이 배제되기 쉽습니다. 듣는 데 집중하다 보면 따져볼 여유 없이 강사의 말 따라가기에 급급하게 되고 또, 그 주장에 끌려가기 쉽습니다. 직접적 경험을 통한 지식은 생생하고 그리고 오랫동안 기억이 유지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반면, 시간과 수고 그리고 비용이 많이 듭니다. 지식을 습득하는 데 있어 관건은 사실 지식 습득의 방법보다 지식을 습득하는 사람의 태도입니다. 개인 간 보유 지식에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대체로 지식 습득의 방법이 아닌, 지식을 습득하는 개인의 태도 차이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지식 습득에 다양한 방법이 있다는 것을 모두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자 주어진 상황에 따라 현실에서 자신에게 적절한 지식 습득 방법을 선택할 여지도 가지고 있습니다. 지식을 습득하는 태도에 있어 첫 번째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개인 간 자질 차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에 대해서입니다. 맹자는 《맹자》〈고자장구상〉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대체로 같은 부류의 것들은 모두 서로 닮으니 어찌 유독 사람에 있어서만 그렇지 아니하겠는가? 마땅히 성인聖人도 보통 사람과 다를 것이 없다.” 고대 로마의 정치가이자 철학자인 키케로(BC106-BC43)는 《법률론》 〈제1권〉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성이라는 그 하나로 우리가 짐승보다 훌륭하고, 그 이성으로 우리는 추정을 하고 논증을 하고 반박을 하고 토론을 하고 무엇인가 작성하고 결론에 이르는데, 바로 그 이성이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으로 있다는 말일세. 비록 지식이 다르다 할지라도 배우는 능력만큼은 동등하다는 말일세.” 동서양 두 현자의 주장 모두 사람의 이성 능력에 개인 간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지식 부족에 대해 ‘나는 원래 머리가 나빠’, ‘그 친구는 타고 났잖아’와 같이 말한다면 그것은 자기 합리화, 자기 핑계에 불과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신동기 작가(경영학 박사) 신동기인문경영연구소 대표 지식 습득 태도에 있어 두 번째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노력하는 자세에 대해서입니다. 《중용》 〈제20장〉에 실린 내용입니다. “처음부터 배우지 않을지언정 일단 무엇인가를 배우기 시작했다면 능숙해질 때까지 그만두지 않아야 할 것이며, 처음부터 묻지 않을지언정 일단 묻기 시작했다면 충분히 이해가 될 때까지 묻기를 멈추지 않아야 할 것이며,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을지언정 일단 생각하기 시작했다면 확실하게 파악될 때까지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아야 할 것이며, 처음부터 따지지 않을지언정 일단 따지기 시작했다면 명료해질 때까지 따지기를 그만두지 않아야 할 것이며, 처음부터 행동에 나서지 않을지언정 일단 행동에 나섰다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며, 재능 있는 이들이 한 번에 해낸다면 자신은 열 번을 하고 재능 있는 이들이 열 번에 해낸다면 자신은 천 번을 해야 한다. 이렇게 하다 보면 어리석은 자라 할지라도 반드시 현명해질 것이며, 유약한 자라 할지라도 반드시 강해질 것이다.” 지식을 습득하는 데 특별한 왕도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꾸준한 노력만이 결과를 만들어 내고, 스스로 재능이 떨어진다고 생각되면 그것 또한 노력을 배가하는 것 외 달리 방법이 없다는 가르침입니다. ◇ 자기 밭은 팽개쳐두고 남의 밭의 김을 매는 이들 세 번째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에 대해서입니다. 맹자는 《맹자》 〈진심장구하〉 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의 병통은 자기 밭은 팽개쳐두고 남의 밭의 김을 매는 것이니, 남의 일에 끼어드는 것은 중하게 여기면서 자신의 일은 가볍게 여기기 때문이다. 인생에 주어진 시간과 에너지를 하나뿐인 자신의 삶을 돌보는 데 쓰지 않고 다른 이들의 삶을 참견하는 데 허투루 사용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것도 부정적으로 관심을 갖는 일에. 그렇게 되면 정작 자신을 위해 써야 할 시간과 에너지에는 결핍을 느끼게 됩니다. 아니, 결핍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말해 결핍을 주장합니다. ‘시간이 없어’, ‘난 너무 바빠’와 같은 언어습관으로. 자기 밭의 잡초는 팽개치고 남의 밭에만 관심을 두는 것은 자기 삶에 정면으로 맞닥트리기를 두려워해서입니다. 자신의 인생을 전적으로 책임지려는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는 거죠. A. 스미스는 《도덕감정론》 〈제2장 칭찬받는 것과 칭찬받을 만한 사람이 되는 것을 좋아함〉 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가슴 속에 있는 반신반인(demigod)은 시인들이 말하는 반신반인들과 마찬가지로 부분적으로는 신의 혈통이지만 부분적으로는 인간의 혈통인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반신반인의 판단이 칭찬할 가치가 있는 것과 비난받아 마땅한 것을 구별하는 정확한 감각에 의해 확고부동하게 방향이 지워질 때에는, 그는 자기의 신의 혈통에 맞게 행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은 ‘불완전한 이성’을 지니고 이 세상에 왔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누구나 ‘완전한 이성’을 향해 달려나가야 할 자발적 의무를 갖습니다. 창조론이든 진화론이든 다 그렇습니다. 조물주가 있어, 불완전한 이성적 존재를 만들었다면 그것은 피조물 스스로의 의지로 완전한 이성인 조물주를 향하라는 의도이지 비이성적 존재인 미물로 전락하라는 의도일 수 없고, 인류 역사 전체를 두고 볼 때도 그것은 이성 완성을 향한 진화의 장도長途였지 그 반대는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불완전한 이성’으로서의 인간은 마땅히 그 무엇보다 먼저 스스로의 이성 향상에 매진해야 합니다.

2025-01-12

흐린 강물이 흐른다면,

이희정 시인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에 흐린 강물이 흐른다면 흐린 강물이 되어 건너야 하리 디딤돌을 놓고 건너려거든 뒤를 돌아보지 말 일이다 디딤돌은 온데간데없고 바라볼수록 강폭은 넓어진다 우리가 우리의 땅을 벗어날 수 없고 흐린 강물이 될 수 없다면 우리가 만난 사람은 사람이 아니고 사람이 아니고 디딤돌이다 -신대철, ‘강물이 될 때까지’전문, (‘무인도를 위하여’ 문학과지성사, 초판 1쇄 1977) 시인은 기어이 강물이 되려는가 보다. 이 시가 수록된 신대철(1945~) 시인의 시집‘무인도를 위하여’는 ‘문학과 지성사’ 시인선 일곱 번째 시집으로 1977년 초판 이후 2022년 재판 9쇄를 거듭하며 멈추지 않고 흐르고 있으니 말이다. 최근 이 출판사의 시선집이 600번대 임을 보더라도, 아득하고도 유장하게 흐르는 시인의 강물을 가늠할 수 있으리라. 1968년에 등단한 신대철 시인은 ROTC 출신 GP장으로 비무장지대에서 근무하며 북파 공작원들을 송환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이때의 군대 체험은 개인의식과 사회의식의 충돌을 일으키게 하는 경험이기도 했지만, ‘식민지와 분단’이라는 한 시대를 통과해 오면서 자신이 처한 세계에서 한발 물러서서 숲과 나무, 자연의 사물들과의 교감을 통해 시간을 통과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신대철 시인에게 작품의 진실은 이념을 뛰어넘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김현의 말대로 그것이 ‘인간과 인간 사이의 교섭의 한 수단’이며 자신의 감정을 타인에게 감염시키는 활동이라고 했다. 해서, 도입부 “흐린 강물이 흐른다면”“흐린 강물이 되어 건너야 하리”는 화자의 지향점이 어디에 있는지 고스란히 드러내며 시작한다. 시인이 건너는 강물에서 맞닥뜨린 상황은 시공간적 조건이 아니라 존재의 상태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시는 사람에 대한, 흐린 물, 세상에 대한 어떤 복선도 담지 않았다. 건널 듯 말 듯 머뭇대고 두리번거리며 뒤돌아보게 하며 마침표를 찍는 순간을 미루는 듯한 이 시의‘강물’은 이상하게 먹먹하다. 흐린 길 앞에 주저하는 사람을 닮아서, 인생의 흐린 길을 닮았기에.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에 만난 “흐린 강물”은 “바라볼수록 강폭은 넓어진다”는 진술처럼 화자의 내면에는“뒤들 돌아보지” 않아야 할 불안이 내연한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타인의 생존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흔하디흔한 인생관이지만 결국 대독할 수 있는 화자의 자격은 ‘사람’이 아닌 ‘디딤돌’이라는 익명성에서 온다. 그러니 시 속에서 시종 교차 되는 디딤돌’과 ‘사람’의 관계처럼 서로에게 빛과 그림자 같은 존재인 건 아닐까. 서로가 서로를 구해주는 이 언술은 결국 살아야 할 이유를 스스로 전력을 다해 깨우쳐가야 하는 절박함 일 테니 말이다. “우리가 우리의 땅을 벗어날 수 없고 // 흐린 강물이 될 수 없다면” 그 모든 상처에도 불구하고 끝내 사람이 아닌, 디딤돌로 고쳐 살아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시인은 자신이 만들어낸 화자 뒤에서 관조하고 있지 않은 듯하다. 마치 그치지 않는 한 인생의 고난을 감싸고 있는 것만 같다. 흐린 강물 앞에 마침표를 찍는 대신 어쨌든 또박또박 걸어가는 모습으로 기어이 강물이 되려는 것이다. “사람이 아니고, 사람이 아니고, 강물이 될 때까지”

2025-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