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은 객원기자의 ‘클래식 노트’
폴란드의 관문인 바르샤바 국제공항은 ‘프레데릭 쇼팽 공항’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그만큼 폴란드는 곳곳에서 쇼팽을 기린다. 특히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는 오로지 그의 피아노 작품만으로 실력을 겨루는 세계 최고 권위의 경연으로, 우리나라의 조성진이 우승하며 더욱 대중에게 알려졌다.
프란츠 쇼팽(1810~1849)은 폴란드 바르샤바 출신의 낭만주의 시대 대표 작곡가로, ‘피아노의 시인’이라 불리며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 활약했다. 고국의 정서를 음악에 담아내며 민족 정신을 고취한 독립운동가적 면모도 보였으며, 프란츠 리스트와 함께 낭만주의 피아노 음악의 새 장을 열었다. 동시대 음악가인 로베르트 슈만 등에게 깊은 존경을 받았고, 현재 폴란드에서는 마리 퀴리,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함께 국가적 위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폴란드인들이 쇼팽을 더욱 각별하게 여기는 이유는, 나라가 분열되어 민족적 아픔을 겪던 시기 그의 음악이 무너진 국민정신을 다시 일깨웠기 때문이다. 폴란드의 전통 리듬과 민속 정서를 담은 선율은 식민 지배 속에서도 민족 정체성과 자긍심을 지켜 주었다. 비록 그는 프랑스인 아버지와 폴란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나, 스스로 무엇보다 폴란드인임을 자처했다.
쇼팽은 생애 대부분을 피아노를 위한 작품에 바쳤으며, 곡 판매와 피아노 레슨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루빈스타인은 “쇼팽은 그의 모든 인생을 피아노에 바쳤고, 우리는 그를 피아노의 절대 신으로 생각합니다”라고 말할 정도이다. 초기에는 대담한 전조와 불협화음, 독창적 기교로 아마추어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으나, 오늘날 그는 낭만주의 피아노 음악의 아이콘으로 자리했다.
그의 피아노 작품 중 ‘스케르초’는 낭만주의 레퍼토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농담’을 뜻하지만 실제로는 거칠고 극적인 성격을 띠며, 네 곡 모두 단악장 형식이다. 빠른 4분의 3박자로 구성된 세도막(A-B-A) 형식이며, 화려한 기교와 강렬한 대비가 특징이다. 스케르초 형식을 본격적으로 성장시킨 베토벤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쇼팽은 이를 더욱 웅장하고 서정적으로 확장했다. 특히 1837년 발표된 스케르초 2번(내림 나 단조)은 깊은 비탄과 서정성이 공존하는 작품으로 가장 널리 사랑받는다.
네 곡의 스케르초는 조국을 향한 갈망과 내면의 격정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낸 작품으로 평가된다. 시대를 넘어 사랑받는 이유는, 그 속에 담긴 감정의 진폭이 우리의 마음을 강하게 두드리기 때문이다.
쇼팽은 성년이 되어 비엔나를 거쳐 파리에서 활동했으며, 끝내 고국에 돌아가지 못한 채 3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그는 임종 직전 “내 심장만은 폴란드로 보내 달라”는 말을 남겼다. 나라를 잃은 시대를 살며 평생 조국을 그리워했던 그는 21개의 녹턴, 58개의 마주르카(폴란드 전통춤곡), 26개의 전주곡 등 195곡에 이르는 피아노 독주 작품을 남긴 불멸의 천재 작곡가였다.
오늘날에도 쇼팽의 음악은 탄생한 지 200년이 지났음에도 우리에게 위로와 영감을 건네며 살아 숨 쉬고 있다. 피아노 음악사 속에서 그의 이름은 앞으로도 영원히 빛나며, ‘피아노의 시인’이라는 칭호를 넘어서 시대를 위로하는 예술가로 기억될 것이다.
/박정은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