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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포항 원법사, 새해 첫날 2026명에게 ‘자비 조청 가래떡 나눔’ 행사 개최

사단법인 대한불교 유식종 포항 원법사(주지 해운 스님)는 새해 첫날인 지난 1일 영일대 해수욕장에서 2026명의 시민들에게 쫄깃쫄깃하고 말랑말랑한 자비의 조청 가래떡과 뜨끈뜨끈한 숭늉·보이차·무차를 나눠주며 새해의 희망과 나눔의 의미를 전했다고 2일 밝혔다. 조청 가래떡은 20~30년 경력의 신도들이 지역 쌀 10가마를 사용해 무쇠 가마솥에 장작불로 정성껏 만들었고, 조청은 50~60년 경력의 노신도들이 지역 쌀과 엿기름으로 무쇠 가마솥에 장작불로 푹 고아 만들었다. 원법사는 2000년부터 매년 동지에 자비의 팥죽을 나눠 왔으며, 지난해 동지에는 원화소복을 발원하며 기관·단체와 시민들에게 4000인분의 자비의 동지 팥죽을 나누기도 했다. 자비의 동지 팥죽을 나누기도 했다. 이번 ‘자비 조청 가래떡 나눔’ 행사는 붉은 말의 해를 맞아 포항의 경제가 활기를 찾길 바라는 마음도 담았다. 해운 주지 스님은 “새해 첫 햇빛을 받으며 시민들에게 따뜻한 음식을 나눌 수 있어 기쁘고, 모든 가정이 건강하고 행복하며 모든 일이 원만히 성취되길 발원한다"며 "포항의 경제도 붉은 말처럼 힘차게 활기를 찾아 시민들의 일상에 활력을 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6-01-02

[신년특집]2026년 병오년 ‘붉은 말의 해’ 띠풀이···영혼과 수호신의 승용동물

“나를 따르라!” 세계사에 있어 위대한 영웅들은 말과 운명을 함께 했다. 알렉산드로스가 동방 원정이라는 미증유의 업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것도 동갑내기 검붉은 말 부케팔라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삼국지’에 나오는 여포의 붉은 적토마, 위기에 처한 나폴레옹을 수차례 구해낸 아라비안 종마 마랭고의 존재도 빼놓을 수 없다. 고구려를 세운 동명성왕 역시 평생을 말과 함께 전장을 누볐다. 2026년은 병오년(丙午年) 붉은 말의 해다. ‘병(丙)’은 불의 기운을 갖고 있으며, ‘오(午)’는 12간지 중 일곱 번째 동물인 말을 나타낸다. 고래로부터 붉은색은 태양을 상징하며, 영원불멸의 힘, 열정 등 생명력과 재앙과 질병을 물리치는 이미지로 각인돼왔다. 말은 현대 사회의 빠른 변화에 발맞춰, 끊임없이 도전하는 상징적 힘의 이미지로 인식된다. 말은 시간으로는 오전 11시에서 오후 1시, 방향으로는 정남(正南), 계절로는 양기(陽氣)가 왕성해지는 여름의 문턱에 해당한다. 말이 지닌 생동감과 박진감, 질주 본능은 단순한 생태적 특징을 넘어 문화적 상징으로 확장돼왔다. △영혼과 수호신의 승용동물 말, 하늘과 인간을 잇는 신성한 존재 고대 문헌과 유물 속에서 말은 신성한 동물로 그려진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는 왕의 탄생, 나라의 흥망을 예시하며, 죽은 자의 혼을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신화 속 신라 시조 박혁거세는 백마가 남기고 간 붉은 알에서 태어난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보듯이 말은 속도전에 없어서는 안 될 전쟁의 무기이자 영혼을 태우고 하늘로 오르는 신성한 매개체였다. 안악3호분, 무용총, 쌍영총 등에 그려진 말은 사자의 혼을 태우고 저세상으로 향하는 ‘천마(天馬)’의 모습이다. 특히 고구려 고분벽화 개마총 벽화의 장식된 말은 ‘묘주가 탄 말’이라는 묵서(墨書)가 남아 있어 말 위에 영혼이 타고 있음을 상징한다. 신라의 마문·마형토기의 특수한 성장마(盛裝馬)는 등자가 달린 안장만 있고 사람은 타지 않아 말의 영매체(靈媒體) 기능을 한층 더 분명하게 나타낸다. 말 앞에 ‘총주착개마지상(塚主着鎧馬之像)’이라는 묵서가 있어 주인공이 말을 타고 있는 그림이라는 뜻이 된다. △무덤 속 말, 저세상으로 가는 탈것 신라와 가야 지역에서 출토된 마각문토기, 마형토기, 기마인물토기는 이런 관념을 더욱 분명히 보여준다. 항아리 어깨에 새겨진 달리는 말, 아예 말 형상으로 빚어진 토기, 사람을 태운 기마 인물 토기까지 표현 방식은 달라도 의미는 하나다. 죽은 이가 말을 타고 저세상으로 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경주 천마총에서 출토된 천마도는 이 상징의 정점이다. 백화나무 껍질에 그려진 하늘을 나는 백마는 왕의 영혼을 태우고 천상으로 오르는 존재로 해석한다. 말은 더 이상 땅의 동물이 아니라, 하늘을 나는 영물로 격상된다. 이러한 사상은 조선시대까지 이어졌다. 왕이나 왕비의 장례에 사용된 ‘죽안마’는 몸체는 대나무로, 다리는 나무로 만들고 안장까지 갖췄다. 순장의 관습이 사라진 뒤에도 영혼을 태우는 말의 관념만은 끝내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생활 속으로 스며든 말의 상징 말은 교통수단이자 군사력, 농경과 생산의 중심 도구였다. 말의 갈기는 관모가 되고, 가죽은 신발과 주머니가 되며, 힘줄은 활을 만드는 재료가 됐다. 말과 관련된 지명만 해도 마장동, 마령재, 마이산, 천마산 등 전국에 740여 개가 넘는다. 대구 달성에는 마비정, 포항 구룡포의 말봉재도 있다. 민속신앙에서 말은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도 등장한다. 전국 각지의 서낭당과 당산에는 목마·석마·철마가 봉안돼 있다. 어떤 곳에서는 호환(虎患)을 막기 위해, 어떤 곳에서는 풍요와 득남을 기원하기 위해 말을 모셨다. 재앙을 막고 복을 불러오는 존재로 여겨졌던 것이다. 속담과 놀이 속에서도 말이 빠지지 않는다. 윷놀이에서 ‘모’가 말에 해당하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판을 바꾸는 힘이 말에 있었기 때문이다. 말과 관련된 사자성어는 50여 가지가 넘는다. 말은 우리 인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까닭이다. △‘말띠는 드세다’는 속설은 오해 말띠를 둘러싼 속설 역시 짚고 넘어갈 대목이다. ‘말띠 여자는 팔자가 세다’는 인식은 우리 고유의 전통이 아니다. 조선 왕실만 보더라도 말띠 왕비는 여럿이다. 정현왕후, 인열왕후, 인선왕후, 명성왕후, 순정효황후가 그들이다. 이 속설은 일제강점기 일본의 민속 인식이 유입되며 굳어진 미신으로 보는 게 학계의 공통된 견해다. 오히려 말띠가 상징하는 것은 강인함과 활력, 이동성과 개척성이다. 역마살 역시 떠돌 운명이 아니라, 새로운 문물에 대한 동경과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으로 읽을 수 있다. △오늘날 말은 어디로 달릴까 말은 힘차게 달릴 때 가장 말다워진다. 고대에는 하늘과 교통하는 영물이었고, 중세에는 제국의 확장을 이끈 동력이었으며, 근대에는 산업과 교통의 상징이었다. 오늘날까지 말이 주는 생동의 이미지는 영원하다. 소통과 확산, 변혁과 도약 등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와 겹친다. 천금준마(千金駿馬)의 가치도 어떻게, 어디로 향하느냐에 달렸다. 영천혼을 태우고 하늘을 달리던 말은 이제 우리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어느 방향으로 달릴 것인지는, 결국 말을 탄 사람의 의지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6-01-01

“교양은 혈통·학문 아닌 올바른 품성의 고결함”

교양이란 무엇일까. ‘대추 한 알’로 유명한 장석주(70) 시인은 최근 펴낸 에세이 ‘교양의 쓸모’(풍월당)애서 교양을 “본성이나 혈통이 아닌 올바른 품성의 고결함”으로 정의하며, 삶의 경험과 성찰에서 우러나오는 내적 기품이라고 강조한다. 특히 AI와 속도가 지배하는 시대에 교양이 지닌 진정한 가치를 탐구하며, 독자들에게 삶의 밀도를 높이는 방법을 제시한다. 장석주는 교양을 거창한 학문이나 화려한 지식이 아닌 몸으로 익힌 감각으로 규정한다. 그가 말하는 교양은 들길을 걷고, 밥을 짓고, 나이 들어가는 과정에서 마주한 소박하지만 깊이 있는 순간들에서 비롯된다. 그는 “교양은 용기를 전제로 한다”고 말한다. 일상을 기계적으로 소비하는 대신, 삶의 경유지에서 부딪히고 성찰하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마음에 남는다는 점에서다. 이는 삶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교양의 핵심임을 시사한다. 책은 속도전과 파편화된 사회에서 인간적 품위로서의 교양을 역설한다. 장석주는 밥을 ‘생존을 넘어 삶을 대하는 태도’, 노동을 ‘정신을 붙드는 힘’, 꿈을 ‘내일을 향한 불씨’로 해석하며, 이들이 교양의 근간이 됨을 밝힌다. 청년기의 가난과 흔들림조차 교양의 재료가 된다는 그의 고백은 삶의 무게를 정직하게 견뎌낸 자만이 발산하는 빛을 보여준다. 저자는 속도전을 잠시 멈추라고 말한다. 밖으로만 향하는 시선을 안으로 돌리라고 권한다. 주의를 기울이고, 몸의 감각을 세심하게 깨우라고도 한다. “교양의 소멸은 인간다운 주체의 소멸”이라는 경고는 날카롭다. 그는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정신적 빈곤이 심화되는 현실을 지적하며, 밥상머리에서 시작된 인간적 품격이야말로 사회를 지탱하는 마지막 보루라고 주장한다. 현대 사회의 ‘어른 부재’ 현상을 교양 부족으로 진단한 시인은 타인을 배려하는 태도를 참된 어른의 조건으로 꼽는다. 교양이란 “말을 아끼고 귀 기울이며 다정함을 잃지 않으려는 작은 의지”라며 관계가 쉽게 깨지는 시대에 교양이 상처를 막는 보이지 않는 보호막 역할을 한다고 설명한다. ‘어른이란 타인을 쉽게 상처 내지 않는 태도로 완성된다’는 문장은 SNS 시대의 단절된 관계를 돌아보게 한다. 교양은 단순한 예절이 아니라 공감과 사려 깊은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기술인 셈이다. 독서와 사유의 과정을 통해 교양이 내면화됨을 보여주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장석주는 헤세, 카뮈, 월컷 등 문학·철학자들의 문장을 삶의 순간과 연결하며, 읽기가 곧 자신을 다시 쓰는 행위라고 말한다. “문장은 저자를 닮는다”는 말처럼, 평생 쌓아온 독서 경험이 그의 내면을 빚어냈음을 책은 증명한다. 이는 교양이 자기 삶을 투명하게 바라보는 태도에서 비롯됨을 의미한다. 기술이 인간의 지혜를 초월하는 듯한 오늘날, 장석주는 교양을 체험과 성찰의 여정으로 재정의한다. AI가 결과만을 빠르게 산출하는 반면, 교양은 들길 산책, 책 읽기, 노동의 과정에서 얻는 느린 배움의 가치를 강조한다. 그는 “나를 지켜낸 것은 지식이 아니라 삶에 밴 교양이었다”며 지식의 양보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12-30

그늘진 삶의 슬픔을 품는 성찰과 위로

한국 전통 서정시의 맥을 이으며 시의 지평을 넓혀온 이상국(76) 시인이 열번째 시집 ‘나는 용서도 없이 살았다’(창비)를 펴냈다. ‘시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시 쓰기’의 의미를 묻는 철학적 사유를 담아낸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시력 반세기의 시론과 인생론을 펼쳐 지나온 삶을 조용히 되돌아보며 삶의 비의와 존재의 근원을 탐색한다. 민족예술상, 백석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한 이 시인은 이번 작품에서 단아한 시어와 진솔한 언어로 삶의 그늘진 구석까지 포용하는 서정을 펼친다. “사람이 살려고/ 너무 애쓰는 일을 재앙”(‘핑계’)으로 규정하며, 가난 속에서도 삶의 소박한 가치를 발견하는 시인의 혜안이 이채롭다. “가난하면 사랑하는 자식들이 다툴 일이 없고/ 세상 떠날 때도 소풍 가듯 가벼워서 좋다”는 구절에서 드러나듯, 그는 고단한 현실을 초월한 듯한 여유와 체념 사이의 균형을 동시에 전한다. 또한 ‘저녁의 위로’에서는 “인간이라는 게 죽을힘을 다해 세상에 나와/ 어떤 사람은 평생 고기를 잡고/ 어떤 사람은 벽돌만 쌓다 간다”며 생의 덧없음과 유한함을 담담히 풀어낸다. 특히 “네게 내 인생의 대부분을 쓰고도/ 나는 용서도 없이 살았다”는 고백은 평생 시인으로 살아온 그의 내면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시인은 ‘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나의 시는 늘지 않는다// 인생이 늘지 않는다”(‘나의 시’)라며 시와 삶을 하나의 몸처럼 연결된 것으로 인식한다. 그럼에도 “시를 쓰면서도/ 시 같은 건 대단찮게 여기기도” 했으나, 끝내 “가진 게 시밖에 없”다는 자각에 이른 그의 모습은 예술가의 숙명을 떠올리게 한다. 이번 시집의 화두는 ‘슬픔’과 ‘위로’다. “저녁이다 슬픔들아/ 어둠의 등에 업혀 집으로 가자”(‘저녁의 위로’)라는 구절은 고단한 하루를 보낸 이들에게 전하는 은유적 위안이다. 시인은 “누가 울고 싶어 울겠으며/ 아프고 싶어 아프겠는가”라며 모든 존재의 고통을 공감하면서도, “어쩌다 온 세상에서/ 우리는 어떡해서든 살아야 한다”며 순응적 태도를 권유한다. 이는 “아무리 조그맣게 살아도 산다는 건/ 그 모든 걸 가슴에 묻는 일이고/ 남몰래 꺼내 보는 일”(‘어른은 울지 않는다’)이라는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장석남 시인은 추천사에서 “오래 묵은 흙냄새와 살림살이의 낮은 물결 자국들이 스민 작품”이라고 평하며, “삶이 가벼울 리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기에 가능한 말”이라고 덧붙였다. 유성호 문학평론가는 “시적 우보(牛步)의 고유한 위의(威儀)를 지닌 시집”이라며 “웅숭깊은 서정의 힘으로 작고 소박한 것들이 함께하는 사람살이의 본래면목을 노래한다”고 해석했다. 이상국 시인은 강원도 양양 출생으로 1972년 강원일보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을 하고, 1976년 ‘심상’으로 문단 데뷔했다. 한국 전통 서정시의 맥을 잇는 작품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의 시는 화려함 대신 투박함과 진정성으로 승부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12-30

‘모든 것들의 민영화’ ··· 미국의 공공과 민주주의 조명

‘공공재를 잃는 순간, 우리의 삶은 비싸지고 불안해진다. 민영화가 일상을 바꾸고 시민의 손에서 통제권을 빼앗을 때, 민주주의는 어떤 모습으로 후퇴하는가?’ 최근 출간된 책 ‘모든 것들의 민영화’(북인어박스)는 1950~60년대 번영의 기반이었던 미국의 공공재가 1980년 레이건 정부 이후 민영화되면서 민주주의 구조가 어떻게 무너졌는지 날카롭게 조명한다. 상수도부터 교육, 보건, 사법 시스템까지 공공부문이 민간으로 넘어가며 시민의 통제권이 약화되고 불평등이 심화된 과정을 분석한 이 책은, “민영화는 시장 효율성 실험이 아닌 권력 재편의 정치적 과정”이라고 지적한다. 한국 사회에서도 의료·교육·교통 등에서 민영화 흐름이 확산되는 가운데, 이 책은 공공성 회복이 민주주의의 핵심 과제임을 경고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2015년 가뭄으로 물 사용 제한 정책을 시행했을 때, 공영화된 지역에선 사용량 감소에 따라 요금이 인하됐다. 그러나 민영화된 지역에서는 오히려 요금이 인상됐다. 민간 기업은 수익 하락을 메우기 위해 단위당 가격을 올린 것이다. 수도 요금 결정권이 시장에서 기업 이익 논리에 종속되면서, 공공의 감시 체계는 무력화됐고 주민들은 더 비싼 비용을 치르며 더 적은 서비스를 받게 됐다. 미국 사법 시스템의 민영화는 더욱 충격적이다. 지오 그룹(GEO Group)과 같은 민간 교도소 기업은 수감자 증가와 장기 복역을 통해 이익을 추구한다. 이들은 보호관찰 비용, 마약 검사 수수료 등을 추가해 원래 벌금보다 더 큰 부담을 개인에게 전가한다. 특히 의무적 최소형량제와 같은 법안은 사기업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설계돼, 교화와 재사회화라는 사법제도의 본질을 훼손한다. 민영화된 교정시설은 인권 침해와 불평등의 온상이 되고 있다. 19개 주에서 민간 통신사의 이해관계를 보호하기 위해 지방정부가 자체 공공망을 구축하는 것을 금지하면서, 소외 지역은 기술 발전에서 배제됐다. 이는 결국 기술 혁신이 아닌 시장 논리가 지역 발전을 좌우하는 역설을 낳았다. 차터 스쿨(독립형 공립학교)과 영리 대학의 확산은 교육의 계층화를 가속화했다. 차터 스쿨은 저소득층 학생을 배제하고, 공립학교에 남은 학생들은 자원 부족에 시달린다. 영리 대학은 ‘정원 판매’로 수익을 올려 학생들에게 막대한 학자금 빚을 안겨준다. 이로 인해 교육이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아닌 족쇄로 변질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민영화된 의료 시스템은 보험료 부담으로 저소득층 접근을 차단해 건강 격차를 심화시킨다. 학교 선택제는 인종 분리 정책을 부활시키는 도구로 악용되며, 통합 교육 시스템의 기반을 약화시킨다. 공공도서관은 예산 삭감으로 서비스가 축소돼 지역사회의 지식 공유 플랫폼이 사라지고 있다. 대학의 상업화는 지식 생산의 공공성을 훼손한다. 저자들은 민영화의 대안으로 시민의 적극적 참여와 공적 통제권의 회복을 제시한다. 공공재는 시장의 실험이 아닌 민주주의의 핵심 기능이므로, 시민이 정책 결정 과정에 직접 개입해 공공성을 재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국의 민영화와 공공서비스 해체 문제를 다루는 정책연구자이자 사회운동가인 도널드 코언과 작가인 앨런 미케일리언 두 저자는 “공공재는 시민의 권리이자 민주주의의 기반”이라며 “시민의 참여와 감시가 없다면 공공성은 시장 논리에 잠식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12-30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자료 20만건 추가 공개

국가유산청은 30일부터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를 전면 개편해 기존 48만 건에 20만 건의 데이터를 추가 개방하며, 총 68만 건의 국가유산 디지털 데이터를 무료로 제공한다. 이와 함께 고고학 분야 최초 인공지능(AI) 챗봇 서비스 ‘한국고고학 사전’을 선보인다. 이번 개편은 △UI/UX(사용자 인터페이스/경험) 개선 및 검색 기능 강화 △자연유산 3D·영상 및 3D 에셋 2종 등 신규 콘텐츠 확대 △AI 시범 서비스 도입 등을 통해 사용자 편의성과 접근성을 높였다. 추가 개방된 주요 데이터는 △국가유산 복원·보존 등을 위한 ‘국가유산 3D 정밀데이터’ △디지털 콘텐츠 산업 활용용 ‘국가유산 3D 에셋’ △학술·연구 지원용 이미지·도면·보고서 등이다. 신규 메뉴로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남한산성’의 세부시설 탐방, 한·일 교류의 상징인 조선통신사선과 충남 태안 일대에서 찾은 해양유산 전시, 지난 3월 대형 산불로 피해를 입은 경북 의성 고운사의 연수전과 청송 사남고택의 원형을 살펴볼 수 있는 3차원(3D) 자료, 명승·천연기념물 VR 체험 등이 포함된다. ‘한국고고학 사전’은 국립문화유산연구원과 협업해 개발한 서비스로, 검색증강생성(RAG)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구석기·청동기 시대 정보를 요약·정리하고 질의응답 기능을 제공해 연구·교육 현장의 실용성을 극대화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12-30

연말에 듣는 음악, 새해를 맞는 클래식

연말은 한 해의 끝에 대한 아쉬움과 새해에 대한 기대감이 교차하는 시기다. 크리스마스 캐럴의 흥겨움 뒤에 찾아오는 고요함 속에서 자신과 마주하는 음악을 듣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때 음악은 단순한 배경이 아닌 마음을 정리하고 새 출발을 준비하는 위로가 된다. 연말에 어울리는 음악으로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사계’ 중 ‘겨울’을 떠올릴 수 있다. 황량한 자연 속에서 서로 의지하며 신의 인도를 갈구하는 모습은 노동과 성장을 넘어 성찰과 기다림의 단계로 향하는 인간의 모습을 상징한다. 자연의 리듬 안에서 한 해를 차분히 돌아보기에 적합한 음악이다. 슈베르트의 '교향곡 제8번 b단조 미완성' 또한 연말에 추천하는 작품이다. 이 곡은 교향곡이 당연히 도달해야 할 4악장의 완결을 향해 나아가지 않는다. 하지만 두 악장에서 멈춘 이 음악은 ‘끝내지 못함’을 결핍이나 실패로 규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표현해야 할 감정과 음악적 이야기를 다 했기 때문에 2악장으로 마무리했다는 평이 있다. 이 작품은 연말에 우리가 느끼는 아쉬움, 즉 ‘아직 다 끝나지 않은 삶’에게 ‘끝내지 못한 것이 실패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피아노 음악으로는 슈만의 ‘어린이 정경’ 중 ‘트로이메라이’를 추천하고 싶다. 제목은 ‘어린이의 꿈’이지만, 실제로는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가 잃어버린 감정을 돌아보게 하는 곡이다. 연말에 듣는 ‘트로이메라이’는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앞으로도 지켜가야 할 마음의 방향을 조용히 일러준다. 그렇다면 새해 첫날, 1월 1일의 첫 곡은 어떤 음악을 들으면 좋을까. 새해의 음악은 결심을 강요하기보다, 새로운 시작을 잔잔히 열어주는 역할이면 충분하다. 이 역할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은 베토벤 교향곡 제6번 ‘전원’ 1악장이다. 자연을 묘사한 이 음악은 거창한 승리나 극적인 전환 대신, 평온한 걸음으로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게 한다. 새해의 아침, 창밖의 빛과 함께 이 음악을 듣는 순간, 우리는 다시 삶으로 걸어 들어갈 용기를 얻게 된다. 또 다른 선택으로는 클래식 현대음악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의 'Spiegel im Spiegel'을 들고 싶다. 이 곡은 거의 변화하지 않는다. 그러나 테마의 반복 속에서 미세한 음악의 차이를 감지하게 된다. 새해 역시 그렇다.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은 없지만, 다시 시작된 시간 안에서 우리는 조금씩 변해간다. 여기에 비발디의 ‘사계’ 중 ‘봄’을 더한다면, 새해의 의미는 더욱 분명해진다. 비발디는 봄을 새의 노래와 얼음의 해빙, 생명의 귀환으로 묘사했다. 이는 단순한 계절 표현이 아니라, 다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는 시간에 대한 음악적 선언이다. 그래서 이 곡은 새해 첫날, 오전에 듣기에 적합하다. 새해의 시작을 ‘결심’이 아니라 생명력의 회복으로 이해하게 만든다. 최근에는 많은 사람들이 SNS를 통해 자신이 선택한 “새해 첫 곡”을 공유한다. 긴 설명 대신 한 곡의 제목만으로도 자신의 정서를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연말과 새해를 잇는 음악의 역할은 분명하다. 과거를 정리하고, 미래를 다짐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이해하도록 돕는 것. 음악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우리가 잠시 멈춰 귀를 기울이기만 하면, 시간의 끝과 시작을 가장 깊이 연결해준다. /박정은 객원기자

2025-12-29

경북여성정책개발원, ‘K보듬 6000’ 서비스 질적 고도화 방안 발표

경북도의 지역사회 통합 모델인 ‘K보듬 6000’이 돌봄 사각지대 해소에 높은 성과를 거두면서 전국의 주목을 받고 있다. 저출산 극복을 위한 대표적 아동돌봄 사업인 ‘K보듬 6000’ 사업은 2026년 도내 22개 시군으로 확대된다. 경북도 산하 여성정책 연구 기관인 경북여성정책개발원은 최근 실태조사와 전문가 검토를 통해 도출된 서비스 질적 고도화 방안을 발표, “수요자 중심의 맞춤형 지원 강화로 ‘육아천국 경북’ 구현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24시간 완전 돌봄’ K보듬 6000, 돌봄 사각지대 해소의 열쇠 K보듬 6000은 기존 산재된 돌봄 서비스의 연계성 부족과 긴급 돌봄 수요 미충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북도가 도입한 지역사회 맞춤형 통합돌봄 특화사업이다. 맞벌이·한부모 가정, 자영업자 등의 육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아파트 등 지역 공동체를 중심으로 영유아부터 초등 1~6학년까지 무료로 돌보는 전국 유일의 24시간 완전 돌봄 모델이다. 2024년 시범 시행 이후 현재 경북 12개 시군 71개 시설에서 운영 중이며, 내년에는 22개 시군 97개 시설로 확대될 예정이다. 사업의 명칭에는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다. ‘K’는 경북 모델의 전국(Korea) 확산 의지를, ‘보듬’은 포용적 돌봄 정신을, ‘6000’은 1년 365일 24시간 아동을 보호하겠다는 뜻을 담았다. 산재된 돌봄 서비스의 연계성 부족과 긴급 돌봄 수요 미충족 문제 해결을 목표로 한다. △실태조사로 확인된 성과와 과제 지난 9월 실시된 실태조사에서 이용자 만족도는 무려 97.4%(매우 만족 81%, 만족 13.2%, 보통 3.2)로 나타났다. 특히 ‘양육 부담 경감’(4.72점), ‘아동의 정서적 긍정 변화’(4.61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반면 시설 관계자들은 ‘인적자원 관리 미흡’, ‘프로그램 다양화 필요’ 등을 한계로 지적하기도 해 숙제를 남기고 있다. △K보듬 6000 이용 현황 (2025년 1~7월) 2025년 1월부터 7월까지 K보듬 6000의 이용 현황을 분석한 결과, 0~2세 아동은 총 4387명이 서비스를 이용했으며, 이 중 평일 주간에는 681명, 평일 저녁에는 1279명, 주말 및 공휴일에는 2286명이 각각 시스템을 활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3세부터 취학 전 아동은 총 8031명이 이용했고, 세부적으로는 평일 주간 1530명, 평일 저녁 2706명, 주말 및 공휴일 3543명으로 집계됐다. 초등학생의 경우 가장 많은 인원인 4만692명이 서비스를 이용했으며, 평일 주간 1만8773명, 평일 저녁 1만3352명, 주말 및 공휴일 8606명으로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중학생은 총 1만7836명이 참여했고, 평일 주간 6420명, 평일 저녁 7853명, 주말 및 공휴일 3509명으로 확인됐다. 전체적으로 평일 저녁과 주말 및 공휴일 시간대에 이용률이 높게 나타나며, 특히 초등학생과 중학생의 경우 평일 주간보다 저녁 시간대 이용이 더 활발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맞벌이 가정이나 돌봄 공백이 발생하는 시간대에 서비스가 집중적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양적 확산 넘어 질적 도약”···3대 핵심 전략 경북여성정책개발원은 대상별 맞춤 돌봄 강화, 지속가능성 확보, 지역 기반 통합 모델 정립을 골자로 한 3가지 개선안(전략)을 제시했다. 김혜경 선임연구위원은 “단순 확장이 아닌 서비스 질 향상이 관건”이라며 “전국적 확산 모델로 발전시킬 계획”이라 강조했다. 대상별 맞춤 돌봄 고도화 방안으로는 장애아동 특화반의 단계적 도입으로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정서 지원 프로그램 신설 및 부모 참여형 체험 프로그램 확대, 방학 중 형제자매 통합반 운영으로 보호자 부담 경감을 제시했다.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한 운영 안정화 방안으로는 돌봄 교사 전문성 강화 및 온라인 예약 시스템 활성화, 인력 소진 예방을 위한 심리적 지원 프로그램 도입을 내놓았다. 지역 자원 연계로 완성하는 통합 모델로는 대학, 어르신 등 지역 자원을 활용한 공동체 돌봄 시스템 구축와 아동돌봄통합지원센터를 컨트롤타워로 삼아 민관 협력 강화 방안을 제안했다. △향후 전망과 기대 효과 경북여성정책개발원은 K보듬 6000을 전국적 확산 모델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이다. 김혜경 연구위원은 “경북의 성공 사례를 타 지역에 맞게 적용해 보편적 돌봄 체계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내년부터는 데이터 기반 돌봄 자원 연계 시스템을 도입하고, 아동 발달 단계별 맞춤형 프로그램을 강화할 예정이다. 한편, 시설 관계자들은 ‘차별화된 프로그램 개발’과 ‘보호자 대상 교육 확대’를 추가로 요청하며, 사업의 지속 운영을 촉구했다. K보듬 6000은 단순한 돌봄 제공을 넘어, 지역사회 전체가 참여하는 아동의 권리 보장 모델로 진화하고 있다. 이번 개선안이 현장에 안착한다면, 경북은 물론 전국의 돌봄 정책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울 것으로 기대된다. 하금숙 경북여성정책개발원장은 “K보듬 6000은 경북도가 앞장서 만든 새로운 돌봄 패러다임으로서, 지역의 모든 아이가 안전하고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목표”라며 “앞으로도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과학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정책 지원으로 ‘아이 키우기 좋은 경북’을 실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12-28

'수성아트피아 송년음악회-환희의 송가’ 31일 개최

대구 수성문화재단 수성아트피아가 오는 31일 오후 7시 30분 대극장에서 '수성아트피아 송년음악회-환희의 송가’를 개최한다. 지휘자 지중배가 이끄는 경북도립교향악단은 베토벤의 ‘에그몬트 서곡 Op.84’로 공연을 시작해 긴장감 넘치는 서사로 한 해를 마무리한다. 이어 생상스의 ‘첼로 협주곡 제1번 Op.33’에서는 국내 최정상급 첼리스트 김호정(경북대 교수)의 열정적인 연주가 펼쳐진다. 공연의 피날레는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 합창’으로 장식된다. 장엄한 서두로 시작해 서정과 격정이 교차하는 전체 4악장의 이 대곡은 마지막 악장 ‘환희의 송가’에서 인간의 자유, 평화, 연대의 메시지를 웅장하게 전달한다. 특히 ‘환희의 송가’ 4악장에서는 소프라노 이윤경, 메조소프라노 양송미, 테너 손지훈, 베이스 전태현이 구미시립합창단과 대구오페라콰이어와 함께 협연해 화려한 하모니를 선사한다. 지휘자 지중배는 섬세한 해석과 카리스마 넘치는 지휘로 오케스트라와 성악가들을 유기적으로 조화시켜 클라이맥스의 감동을 극대화할 계획이다. 수백 명의 연주자와 성악가가 빚어내는 장대한 사운드는 2025년의 마지막 밤, 관객에게 벅찬 감동을 안겨줄 것으로 기대된다. 박동용 수성아트피아 관장은 “베토벤의 음악이 전하는 사랑과 연대의 메시지로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맞이하는 뜻깊은 시간이 되길 바란다”며 “관객들이 음악 속에서 새해 소망을 품는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12-27

[EBS 세계의 명화]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EBS ‘세계의 명화’는 27일(토) 밤 10시 45분, 영화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방영한다. 스웨덴을 대표하는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백세 노인의 기상천외한 탈출과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유머와 풍자로 풀어낸 코미디 영화다. 펠릭스 헤른그렌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로베르트 구스타프손이 주인공 알란 칼손 역을 맡아 청년기부터 노년기까지의 삶을 능청스럽게 그려낸다. 이바르 비클란데르, 다비드 비베리, 미아 스케링에르 등이 출연해 알란의 여정에 활기를 더한다. 영화는 100세 생일을 맞은 알란이 양로원 창문을 넘어 세상으로 도망치면서 시작된다. 평생 폭탄 제조를 즐기며 의도치 않게 세계사를 관통해온 그는, 축하 파티보다 자유를 택한다. 터미널에서 우연히 들고 나온 여행 가방 하나가 갱단의 돈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며, 알란의 인생은 또 한 번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굴러간다. 가방을 둘러싼 소동 속에서 새 친구 율리우스를 만나고, 실수와 우연이 겹치며 새로운 모험이 이어진다. 이 영화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복잡하지 않게 사는 법’을 제시하는 태도에 있다. 알란은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격랑 한복판에서도 과도한 의미 부여를 경계하고,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며 앞으로 나아간다. 스탈린, 트루먼, 레이건 등 현대사의 인물들과 엮이는 장면들조차 과장된 비극 대신 담담한 웃음으로 풀어낸다. 그 유유자적함은 정신없이 살아가는 오늘의 우리에게 위안을 건넨다. 감상 포인트도 분명하다. 역사적 사실과 픽션을 절묘하게 엮어낸 원작의 장점을 영화가 충실히 살려냈고, 실제 인물들을 연기한 배우들의 재현도 보는 재미를 더한다. 특히 한 배우가 알란의 전 생애를 연기하며 캐릭터의 일관성을 유지한 점은 작품의 완성도를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00세의 나이에 창을 넘어 세상으로 나서는 알란의 선택은, 나이나 조건에 갇혀 주저앉아 있는 이들에게 조용한 용기를 전한다. 너무 심각해지지 않아도, 삶은 충분히 굴러간다. 웃음 속에 담긴 이 단순한 진실이야말로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2025-12-27

인간은 파멸로부터 구원받을까

우리는 왜 인류 역사상 가장 똑똑한 시대에 살면서도, 가장 어리석은 선택을 반복할까?’ 옥스퍼드대 인류학과 교수 하비 화이트하우스가 신간 ‘인간 본성의 역습’(위즈덤하우스)에서 던지는 질문이다. 과학적 사실을 외면한 채 음모론에 휘둘리며 사회적 갈등은 깊어만 간다. 기후 위기의 심각성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플라스틱 사용을 멈추지 않고 불필요한 소비를 계속한다. 그는 현대 문명의 위기를 ‘인류 본성과 현대 사회의 괴리’에서 찾으며, 선사시대부터 이어진 세 가지 인간 본성-순응주의, 종교성, 부족주의-을 해부한다. 저자는 이 모든 위기의 뿌리를 ‘오늘날 세계가 망가진 이유는 인류 본성과 현대 문명 간의 격차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현대 문명이 순응주의(집단을 따라가는 성향), 종교성(초월적 존재를 믿고 공동의 가치를 추구하는 성향), 부족주의(집단에 충성하는 성향)라는 세 가지 본성에 기대어 성장했다고 분석한다. 집단 학습과 모방은 수렵채집 시대 생존의 열쇠였지만, 오늘날에는 ‘모두가 알면서도 행동하지 않는 집단적 태만’으로 이어진다. 기후 위기를 인지하면서도 실천하지 않는 현대인의 모순이 대표적이다. 초월적 존재를 향한 믿음은 농경사회에서 제도화된 종교로 진화했으나, 이제는 민족·국가라는 ‘상상의 공동체’와 결합해 내부 결속과 외부 배척을 동시에 강화한다. 소집단 간 충돌과 정복 전쟁은 고대 문명의 확장을 이끌었지만, 현대에는 정치적 양극화와 극단주의로 나타나 사회 분열을 심화시킨다. “과거에는 생존의 도구였던 본성이 현대에는 위기의 근원이 됐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책은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시간 순으로 전개된다. 1부에서는 세 가지 인간 본성을 개념적으로 정리하고, 2부에서는 각 본성이 인류 문명을 어떻게 확장시켰는지 알아보고, 3부에서는 본성이 오늘날 어떤 모습으로 변천됐는지 설명한다. 특히 3장(사회적 접착제)과 6장(부족과 전쟁)에서는 부족주의의 기원과 문명 팽창 과정이 다큐멘터리처럼 생생하게 묘사된다. 선사시대 작은 집단에서 시작된 ‘우리 vs 적’의 본능은 문명의 성장을 이끌었지만, 현대에는 민족, 국가, 정당으로 재편되며 분열을 촉발한다. 저자는 문제의 해법으로 제도 설계를 통한 본성 활용을 제안한다. 예컨대 ‘마이어스(MyEarth)’ 앱은 사용자의 탄소 발자국을 추적해 집단 규범에 민감한 순응주의적 본성을 자극함으로써 환경 보호 행동을 유도한다. 저자는 이러한 방식이 무한히 확장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제도 설계를 통해 본성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도하는 방법들을 하나씩 짚어낸다. 인간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이미 갖고 있는 본성을 활용해 ‘더 협력적인 미래’로 이끄는 길을 제시하는 것이다. 하비 화이트하우스는 ‘세계 최대의 인류 역사 데이터뱅크’ ‘세샤트(Seshat)’의 공동 설립자로, 전 세계 방대한 역사 자료를 계량적으로 분석하는 새로운 연구 분야를 개척한 인류학자다. 40년에 걸친 그의 학문적 업적을 바탕으로 한 저자의 첫 대중서가 바로 이 책 ‘인간 본성의 역습’이다. 이 책은 화이트하우스 자신의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결정판이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인류의 가장 위대한 성공과 실패를 통찰력 있고 흥미진진하게 설명한다”라는 유발 하라리의 찬사와 “수십 년간 쌓아온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을 담은 야심 찬 역작”이라는 ‘가디언’의 평은 이 책이 가진 학문적 깊이와 대중적 설득력을 동시에 보여준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12-25

아이가 넘어질 권리를 주다···성공 부르는 ‘가족문화의 힘’

가족은 단순한 혈연 공동체가 아니다. 한 개인의 사고방식, 꿈, 성취까지 좌우하는 보이지 않는 힘의 원천이다. 신간 ‘성공하는 가족의 저녁 식탁’(어크로스)은 퓰리처상 수상 저널리스트이자 예일대 교수인 수전 도미너스가 10년간 6개 가문의 삶을 추적하며 밝혀낸 ‘가족문화의 힘’을 집약한 책이다. 이 책은 의사 집안에서 의사가, 예술가 집안에서 예술가가 나오는 이유부터 형제자매의 경쟁이 재능을 꽃피우는 메커니즘까지, 성공의 유전자를 정리한다. 책은 미국 법조계·정치계를 이끈 무르기아 가족,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융합) 분야에서 이름을 남긴 워치츠키 가족, 올림픽 선수와 소설가를 키운 그로프 가족 등 6가족의 사례를 통해 ‘성공의 패턴’을 분석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녀의 실패를 허용하고,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유전적 잠재력을 깨우는 ‘문화적 토양’을 가꾼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들 가정에선 몇몇 공통점이 발견됐는데, 그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건 “대담함의 문화”다. 이들 가족은 “자신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거나, 위대한 예술작품을 만들어내거나, 세계 기록을 깰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워치츠키 가족의 어머니 에스터는 딸의 과제 리포트에 “다시 써라”는 말 대신 “B를 받을 수 있겠다”는 피드백으로 스스로 개선하도록 유도했다. 세라 그로프가 14km 호수를 수영으로 건널 때 아버지는 안전을 걱정하기보다 보트로 동행하며 도전을 지지했다. 이들은 아이가 넘어질 권리를 빼앗지 않았다. 발달심리학 연구는 부모의 과도한 개입이 아이의 동기를 떨어뜨린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반면, 아이들은 부모의 열정과 성장을 보며 자신만의 목표를 세운다. 워튼스쿨 조나 버거 교수는 “형제자매 중 동생이 운동에 몰두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손위 형제를 뛰어넘기 위한 전략”이라며 경쟁이 재능 개발로 이어진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미국 여자축구 대표팀의 75%가 동생이었으며, 맏이가 명문대에 진학하면 동생도 같은 길을 따르는 경향이 나타났다.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실험은 유전자가 환경에 따라 발현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유전적으로 동일한 쥐라도 자극에 따라 학습 능력이 변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재능도 유전적 소질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저자가 인터뷰한 부모들은 자녀의 유전적 특성을 억압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경험을 허용했다. 예를 들어, 무르기아 형제는 서로의 성취를 발판 삼아 동반 성장했다. 형은 동생의 보호자였고, 동생은 형의 기대에 부응하며 학생회장까지 올랐다. 그러나 성공은 공짜가 아니다. 책의 마지막 장은 “위대함에는 희생이 따른다”고 경고한다. 뛰어난 성취를 이룬 가족들은 마음의 평화, 사랑, 여유, 혹은 가족 간의 온전한 시간 같은 것을 포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아이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살 것인가”를 고민하게 했다. 단순히 직업적 성공을 넘어,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도록 이끈 것이다. ‘성공하는 가족의 저녁 식탁’은 자녀 교육의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아이가 자신의 가능성을 최대로 펼치도록 환경을 조성하라”고 조언한다. 부모가 해야 할 일은 아이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하고, 유전적 잠재력이 현실 속에서 빛을 발하도록 돕는 것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12-25

미시마 유키오의 다면적 내면세계·시대적 맥락 동시 조망

전후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평전 ‘미시마 유키오, 죽음의 충동과 허무의 미학’(교양인)이 출간됐다. 미시마 유키오는 단순한 작가를 넘어선 사상가로, 탐미적이고 외설적인 경지를 넘어선 인물이다. 그의 삶과 사상은 복잡한 다면체로 비유되며, 이를 입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적 인간 시리즈’의 제16권으로 출간된 이 평전은 근대적 주체성을 삶의 형식 안에서 극대치로 전개한 인물을 재발견하는 작업이다. 미시마 유키오는 1925년 도쿄에서 태어났으며, 병약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러한 배경은 그의 몽상과 상상력의 원천이 됐고, 12세부터 시 창작에 몰두하며 문학적 재능을 드러냈다. 1941년 단편소설 ‘꽃이 한창인 숲’으로 문단에 데뷔한 그는 전쟁과 패전의 시기에 활동하며 죽음, 몰락, 허무 등의 주제를 천착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자전적 고백을 담은 ‘가면의 고백’(1949), 교토 금각사 방화 사건을 소재로 한 ‘금각사’(1956) 등이 있다. 1950~60년대에는 소설, 희곡, 비평뿐만 아니라 영화, 연극, 사진 작업에도 참여하며 대중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보디빌딩과 검도를 통해 정신과 육체를 동시에 수련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 정치적 발언과 행동을 시작한 미시마는 자위대 체험 입대를 통해 민간 방위 조직을 구상하고, ‘방패회’를 결성해 헌법 개정과 천황제 수호를 주장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은 네 권으로 구성된 대작 ‘풍요의 바다’로, 시대의 허무를 주제로 삼았다. 1970년, 그는 작품을 출판사에 넘기고 자위대 총감부를 점거한 후 할복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죽음은 일본 사회에 큰 충격과 논쟁을 남겼다. 이 평전은 미시마 유키오 연구 1인자인 문학평론가 이노우에 다카시가 집필했으며, 방대한 1차 자료와 새로 발굴한 자료를 철저히 고증해 미시마의 생애를 객관적 사실과 심리적 분석 위에 재구성했다. 2021년 제72회 요미우리문학상 수상작으로 미시마의 복잡하고 다면적인 내면 세계와 시대적 맥락을 동시에 조망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12-25

“낮은 곳에 임하신 예수의 뜻 잇는다"··· 포항제일교회, 34년째 성탄 나눔 행사

“마구간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는 소외된 이들의 희망이었습니다. 그 뜻을 실천하듯 포항제일교회 청소년들은 성탄절마다 이웃 사랑으로 온기를 전해왔습니다.” 포항제일교회(담임목사 박영호)는 지난 24일 교회 내 만나홀에서 ‘2025 마구간 자선모금행사’를 열고 지역 내 소외된 이웃을 위한 나눔을 실천했다. 올해로 34회째를 맞은 이번 행사는 청소년들의 주도적 사회 참며 모델로 자리매김하며 의미를 더했다. 행사 수익금 전액은 장애인·저소득 가정 등에 전달될 예정이다. 1990년 첫 시작 당시 수능을 마친 고3 학생들의 자발적 참여로 시작된 이 행사는 현재까지 청소년들이 기획부터 실행까지 주도하는 사회적 실천의 장으로 발전했다. 올해도 교회학교 청소년2부(고1~3학년) 30여 명이 참여해 오후 5시부터 9시까지 김밥·어묵·떡볶이·붕어빵 등을 판매하며 이웃 사랑을 실천했다. 시태기 교회학교 교육부 청소년2부장은 “교역자나 어른들이 아닌 학생들이 직접 기획부터 실행까지 도맡았다는 점이 특별하다”며 “학업 틈틈이 준비하며 공동체 정신을 배우고 작은 실천이 큰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험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라 말했다. 하성준(고등학교 3학년) 군은 “선배들이 이어온 전통을 우리가 직접 계승한다는 것만으로도 뜻깊었다”며 “친구들과 함께 땀 흘린 시간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고 모은 수익금이 어려운 분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뿌듯함을 느꼈다”고 소감을 전했다. 행사장을 찾은 교인들은 다채로운 먹거리를 즐기며 성탄의 의미를 되새겼다. 박영호 담임목사는 “청소년들이 서로 협력하며 지역사회와 소통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며 “앞으로도 낮은 자리에서 이웃을 섬기는 포항제일교회가 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고 덧붙였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12-25

포항시립미술관 제2관 착공식 29일 열려

포항시립미술관(관장 김갑수)은 오는 29일 오후 3시 포항시 북구 환호동 347에 위치한 환호공원 중앙광장에서 포항시립미술관 제2관 착공식을 개최한다. 총사업비 340억원을 투입해 연면적 5881.12㎡ , 지상 2층 규모로 건립되는 제2관은 현재 포항시립미술관이 위치한 환호공원 부지 내에 들어서며, 2027년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제2관은 전시실 2개와 수장고, 아카이브실을 비롯해 시민들의 참여형 체험·교육 프로그램 운영을 위한 교육공간과 세미나실 등이 마련된다. 또한 외부에는 자연 속 휴식을 위한 다양한 쉼터가 조성돼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 시민과 소통하는 복합 문화예술공간으로 탄생할 예정이다. 기존 제1관은 지역의 대표 자원인 철 기반 작품을 지속적으로 수집·연구하며 타 분야와의 융합을 시도하는 ‘볼거리’ 중심의 미술관으로 운영된다. 반면 제2관은 동시대 다양한 이슈를 다체학적으로 접근하는 ‘체험형’ 미술관을 지향하며, 관람객이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공간으로 설계됐다. 김갑수 포항시립미술관장은 “이번 사업을 통해 환호공원과 조화를 이루며, 시민이 일상 속에서 문화예술을 향유하고 디지털 기반 융·복합 콘텐츠를 체험할 수 있는 미래형 복합문화공간을 구축해 포항시의 문화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12-24

국내 최대 규모 음악제 서울 ‘2026 교향악축제’ 참가···포항시향 위상 높일 것"

포항시립교향악단(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 차웅)이 국내 최대 규모의 음악제로 불리는 서울 예술의전당 ‘2026 교향악축제’에 참가한다. 매년 전국 18~20개 유수의 교향악단을 초청해온 교향악축제는 내년 4월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38회째 행사로 열린다. 포항시립교향악단은 2006, 2011년, 2021년에 이어 네 번째 참가이자 5년 만의 무대에서 뛰어난 음악적 역량을 선보일 예정이다. 프로그램은 드보르작의 ‘교향곡 제8번 사장조’와 함께 막스 로스탈 국제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바이올리니스트 임동민이 협연하는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 라장조’로 구성된다. 드보르작 ‘교향곡 제8번’은 체코 국민주의 음악의 대표작으로, 낭만주의 시대 드보르작의 교향곡 중에서도 가장 널리 사랑받는 작품이다. 1889년 보헤미아 지방에서 작곡돼 이듬해 프라하에서 드보르작 자신의 지휘로 초연된 이 곡은 체코의 전원적 풍경과 민속적 선율을 명랑하고 따뜻한 분위기로 담아냈다. 특히 자유로운 형식미와 풍부한 감정 표현이 돋보이며, 프란츠 요제프 1세에게 헌정됐다. 영국에서 출판되며 “영국 교향곡”이라는 별칭이 붙었으나, 드보르작의 민족적 색채가 가장 강렬하게 드러나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총 4악장으로 구성된 이 곡은 활기찬 리듬과 보헤미안 민속음악의 조화, 1악장의 경쾌한 서주와 3악장의 우아한 왈츠가 특징이다. 차웅 지휘자의 역동적인 해석으로 관객에게 깊은 여운을 전할 예정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임동민은 파가니니의 ‘협주곡 1번’을 통해 기술적이면서도 열정적인 연주로 무대를 빛낼 계획이다. 차웅 예술감독은 “오랜만의 교향악축제 참가로 포항시립교향악단의 성장을 증명하고, 포항시의 문화적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앞으로도 관객과의 소통을 바탕으로 지역 문화예술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겠다”고 전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12-23

한국인 “민주주의 성숙을 경제성장보다 더 희망”

우리나라 국민은 ‘민주주의 성숙’을 경제 성장 보다 더 우선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3일 문화체육관광부가 공개한 ‘2025년 한국인의 의식·가치관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이 희망하는 대한민국의 미래상으로 ‘민주주의가 성숙한 나라(31.9%)’가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28.2%)’를 앞질렀다. 과거 조사에서는 ‘경제적 부유함’이 1위를 차지했었다. 현재 한국의 민주주의 수준을 ‘높다’고 평가한 국민은 46.9%로 ‘낮다(21.8%)’는 응답 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조사는 문체부가 ㈜케이스탯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월 15일부터 10월 2일까지 13∼79세 국민 6180명과 국내 거주 외국인 1020명을 대상으로 가구 방문 면접조사 방식으로 진행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국민의 43.7%는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응답했으며, ‘중산층 보다 높다’는 응답은 16.8%로 나타나 전체의 60.5%가 ‘중산층 이상’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2022년 대비 18.1%p 증가한 수치다. 반면 ‘행복도(65.0% → 51.9%)’와 ‘삶의 만족도(63.1% → 52.9%)’에 대한 인식은 모두 하락했다. 집단간 갈등 인식에서는 82.7%가 ‘진보와 보수’ 갈등을 가장 크게 인식했으며, 이어 ‘기업가와 근로자(76.3%)’, ‘부유층과 서민층(74%)’ 갈등이 크다고 답했다. 특히 수도권과 지방 간 갈등은 69%로 2022년(57.4%)대비 11.6%p 상승했으며, 남성과 여성 갈등도 61.1%로 10.7%p 증가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12-23

포항 문화예술창작지구 '꿈틀로작가연합회' 회장에 이진희 작가 연임

포항 지역의 문화예술 창작지구 ‘꿈틀로’를 이끄는 제7대 회장으로 이진희(49) 와이어공예작가가 선출됐다. 꿈틀로작가연합회는 최근 문화경작소 청포도다방에서 임시총회를 열고, 23명의 회원 투표를 통해 이진희 작가를 연임시켰다. 이로써 이 회장은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임기를 맞이하게 됐다. 이진희 회장은 “예술가와 지역민이 함께 호흡하는 꿈틀로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는 '꿈틀로 298 놀장 아트마켓' 을 일상화하기 위해 자체 운영 공방에서 상시로 진행되는 원데이 클래스 온라인 예약 시스템을 개설하고, 꿈틀로 작가들의 작품을 개별적으로 브랜딩화한 아트상품을 개발· 제작하며, 포항 철강산업관리공단 근로자를 대상으로 호동문화관에서 연간 실습형 예술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그는 “사업의 양적 확대보다 질적 성장을 우선시하겠다”며 회원들의 창작 열정과 지역사회의 협력을 결합해 지속 가능한 모델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 회장은 계명대 대학원 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2006년 한국와이어공예협회 공모전 최우수작품상, 2016년 제11회 포항·포스코 불빛미술대전 최우수상 등 다수의 수상 경력을 보유한 중견 예술인이다. 개인전 4회, 단체전 30회 개최 경험을 바탕으로 꿈틀로의 예술적 역량을 한층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회원 대부분이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창작 활동을 이어가는 현실을 고려해 “시와 시의회, 기업의 협력으로 문화예술창작지구의 자생력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꿈틀로는 2016년 포항시의 문화도시 조성사업 일환으로 북구 중앙로 298번길 일대에 조성된 공간이다. 회화·공예·음악·사진 등 다양한 분야의 지역 예술인 31명이 입주해 활동 중이며, 2021년에는 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해 체계적인 운영을 강화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12-23

박수철 화가 첫 산문집 ‘오늘도 나는 이젤 앞에서 서성입니다’ 출간

포항 출신의 독학 화가 박수철(75)의 첫 산문집 ‘오늘도 나는 이젤 앞에서 서성입니다’가 출간됐다. 포항지역 출판사인 도서출판 득수가 펴낸 이 책은 박 작가가 1969년부터 2022년까지 55년간 써 내려간 일기와 편지를 엮은 기록으로, 평생 붓을 놓지 못한 채 작업실에 머물렀던 한 예술가의 내밀한 삶의 여정을 담았다. 1950년 포항에서 태어난 박수철은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고 독학으로 그림을 시작했다. 생계를 위해 낮에는 직장에 다녔고, 밤에는 캔버스를 마주했던 그는 “작업실은 나의 유일한 안식처였지만, 스스로를 예술가라 칭하기엔 늘 부족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번 산문집은 성공담이 아닌 실패와 회의 속에서도 붓을 놓지 않은 ‘투쟁적 창작기’다. “그림은 내게 구원도, 영광도 아니었다. 다만 숨 쉬듯 멈출 수 없는 것이었다”는 그의 문장은 예술가의 숙명을 넘어 인간적 고뇌를 드러낸다. 책은 총 4부로 구성되며, 각 부마다 상징적인 색상을 배치해 작가의 내면을 시각화했다. 1부 ‘엘로우 오커(Yellow Ochre)’는 1969년부터 1995년까지의 청년기 가난과 무명의 시절을 기록한 초창기의 모습이다. 2부 ‘프러시안 블루(Prussian Blue)’는 1996년부터 2012년까지 지역 예술계와의 교류 속에서 모색한 정체성을 담았다. 3부 ‘크림슨 레이크(Crimson Lake)’는2013년부터 2022년까지 노년의 열정과 회한이 교차하는 시기를 표현했다. 4부 ‘에메랄드 그린(Emerald Green)’은 1977년부터 2018년까지 40년간의 스케치 원본을 수록해 미완의 순간들까지 포착했다. 특히 4부의 스케치는 완성작 이전에 드러나는 흔들림과 망설임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출판사는 책 말미에 삽입된 QR코드를 통해 독자가 박수철의 주요 작품을 온라인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박수철은 “이 작업실에서 나는 또 하나의 정물”이라고 자신을 표현했다. 그림 그리는 주체이면서 동시에 세월 앞에 놓인 객체로서의 고백은 예술가의 신비화를 거부한다. ‘캔버스 앞의 나는 고독했지만, 그 고독이 나를 살렸다’는 문장처럼, 책은 예술적 성취보다 삶을 버텨내는 모든 이들에게 공감을 전한다. 박수철은 2005년 포항문화예술회관 기획 초대전을 시작으로 2025년 포항시립미술관의 원로작가전 ‘박수철, 오래된 꿈’까지 10여 회의 개인·단체전에 참여했다. 특히 2024년 ‘정물 풍경’ 전과 2023년 ‘The cross 40전’은 그의 독특한 ‘정물적 풍경’ 미학을 집약한 작품들로 주목받았다. 김강 도서출판 득수 대표는 “박수철 화백의 작품과 기록에는 붓을 놓지 않으려는 집념, 삶의 고뇌를 예술로 승화시키기 위한 끊임없는 몸부림이 고스란히 담겨있다”며 “이 책이 ‘예술가의 신앙’이 아닌, 끊임없이 고민했던 ‘예술가의 흔적’으로 닿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12-22

‘권리’ 너머의 인권, 성리학에서 길을 찾다

동양사상의 핵심인 성리학을 현대 인권 담론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문제작이 출간됐다. 채형복(현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신간 ‘금동이의 술은 백성의 피―성리학과 인권’(학이사)은 유학을 과거의 도덕 교본이 아닌, 오늘날 인권의 철학적 토대로 다시 불러내는 학문적 시도로 평가 된다. 저자는 근대 이후 인권이 서양 정치철학을 기반으로 제도화되는 과정에서 인간의 내면적 존엄과 윤리적 성찰이 소홀해졌다고 진단한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성리학이 강조해 온 인(仁)·의(義)·성(性)·리(理)의 개념을 통해 ‘권리 중심 인권론’을 넘어선 ‘도덕적 인권론’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성리학이 말하는 인간은 외부 제도에 의해 존엄해지는 존재가 아니라, 본성 안에 이미 선(善)을 지향하는 도덕적 주체라는 점에서 근대 인권사상의 선언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특히 주희의 ‘성은 곧 리’라는 명제는 인간의 존엄을 제도 이전의 철학적 토대 위에 놓는다. 성리학적 자율은 개인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서구적 개인주의와 달리, 타자(他者)와의 조화 속에서 자신을 완성하는 관계적 자율이다. 저자는 이를 ‘공동체적 인간주의’로 규정하며, 인권을 타인의 권리를 인정하고 배려할 수 있는 윤리적 능력으로 확장한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조선후기 고전소설을 분석 텍스트로 적극 활용한 점이다. ‘홍길동전’, ‘흥부전’, ‘춘향전’ 등 대중에게 익숙한 작품을 통해 성리학이 지배하던 사회의 모순과 인간 군상(群像)을 읽어내고, 이를 현대 인권의 문제의식과 연결한다. 이는 성리학을 추상적 이념이 아닌 살아 있는 삶의 철학으로 되살리는 방법론적 성과로 평가된다. 저자는 본문에서 “위계 질서와 남성 중심성 등 성리학의 한계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도, 그 내부에서 인간의 도덕적 자율과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하는데 중점을 두었다”고 강조했다. 인권의 위기가 제도의 부족이 아니라 공감과 연민의 결핍에서 비롯된다는 저자의 문제 제기는 오늘의 현실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전통의 언어로 인권의 미래를 다시 묻는 이 책은 동양 인문정신의 현대적 의미를 새롭게 환기(換氣)시키는 문화적 성과로 읽힌다.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2025-12-22

포항 원로 문인화가 이형수, 문자· 까치 호랑이 그림전

포항의 원로 문인화가 이형수 화백의 초대전 ‘세화(歲畫)·문자(文字) 까치호랑이 그림전’이 오는 2026년 1월 31일까지 포항 갤러리 상생(포항시 남구 송도로 71)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전통 민화의 상징인 까치와 호랑이를 소재로 새해 길상의 기운과 함께 액막이의 세화적 기운도 함께 느껴지게 하는 작품 30여 점을 선보이며, 내면의 성찰을 선사할 예정이다. 호랑이의 용맹함과 까치의 친근함이 조화를 이루며 느림과 순수함의 가치를 역설하는 그의 작품은 기술과 인간성의 경계를 되돌아보게 한다. 이형수 화백은 2010년 독일 베를린 스판다우 문화의 집에서 ‘까치는 호랑이의 외로움을 안다’라는 주제로 개인전을 개최한 바 있다. 그는 “까치는 기쁜 소식을 전하고, 호랑이는 액운을 막는 존재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둘 다 고독한 존재”라며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는 친구 관계로 재해석했다”고 설명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여기에 문자를 결합한 ‘문자 호작도’를 새롭게 선보인다. 작품 속 까치와 호랑이는 위압적이기보다 천진난만하게 어우러지며, 화면에는 ‘도·선·공·허·죄·좌망·여명’과 같은 철학적 단어들이 더해져 인공지능(AI) 시대의 성찰을 담았다. 이 화백은 “AI가 인간의 마음을 모방해도 진정한 감성은 흉내 낼 수 없다”며 “먹빛의 깊이와 순수한 감성이 더욱 소중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1952년 경북 영덕군 영덕읍에서 태어난 이형수 화백은 어린 시절 사라호 태풍으로 범람하는 강물을 목격하며 자연의 위력을 체감했다. 16세에 매화 그림을 계기로 북종화 대가 김은호 화백(1892~1979)과 인연을 맺었고, 뒤늦게 동국대를 졸업하며 본격적인 화업의 길을 걸었다. 그는 ‘필묵의 즐거움’(2007)부터 ‘죽도시장, 여명의 사람들’(2021)까지 총 6회의 개인전과 5회의 초대전을 통해 서정적인 수묵화와 일상의 풍경을 담아왔다. 정신과 의사 사공정규, 불국사 주지 성타 스님, 아동문학가 김종완의 글에 그림을 협업하기도 했다. (사)한국서가협회 본회 수석 부이사장과 초대 경북지회장을 지냈다. 최근에는 ‘지관(止觀)’이라는 호를 사용하며, 포항 지역 소재와 문자를 결합한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 중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