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한일 정상회담 만찬···고조리서 ‘수운잡방’ 속 영계요리 선보여
달궈진 기름에 어린 닭고기가 노릇하게 익어간다. 고추가 한반도에 전래되기 전 간장과 참기름의 고소함에 식초와 초피가루의 찌릿한 향이 덧입혀진다. 이 정갈하고 담백한 ‘500년 전의 맛’이 한일 외교 테이블을 장식한다.
19일 안동에서 개최되는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 만찬을 빛낼 주메뉴로 조선시대 전통 영계 조림인 ‘전계아(煎鷄兒)’가 낙점됐다. 외국 정상과의 공식 만찬에서 조선시대 고조리서인 ‘수운잡방(需雲雜方)’에 등장하는 요리를 대표 주메뉴로 전면에 내세운 것은 역대 정부 통틀어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만찬의 주인공인 전계아는 보물 제2134호로 지정된 안동 종가의 이 고조리서에 기록된 닭 조림 요리다. 조선 전기인 1500년대 초반에 집대성된 이 책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조선시대 한문 조리서다. 여기에는 ‘손님을 정성껏 대접한다’는 안동 명문가의 ‘접빈객(接賓客)’ 정신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특히 이 요리는 고추가 한국에 들어오기 전의 전통 조리법을 그대로 따르기 때문에 자극적인 매운맛이 전혀 없다. 매운 음식에 서툰 일본 총리의 입맛을 세심하게 배려하면서도, 담백하고 정갈한 ‘한식의 원형’을 보여주겠다는 대통령실과 안동시의 외교적 연출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이번 만찬은 락고재 ‘수운잡방 헤리티지 다이닝’의 김도은 종부(광산 김씨 설월당 15대 종부)와 국빈 행사 경험이 풍부한 웨스틴 조선호텔의 협업으로 진행된다. 전통의 깊은 맛에 현대적인 최고급 조리 기술을 접목해 격조 높은 퓨전 한식 코스 요리를 선보일 예정이다.
만찬의 포문을 열 전계아는 기름을 달궈 어린 닭고기를 익힌 뒤 간장과 참기름을 넣고 볶다가 식초와 초피가루로 바짝 졸여내는 요리다. 튀김옷 없이 기름에 지지듯 볶아내어 정갈한 맛이 일품이다.
이어지는 메인 요리로는 육질이 부드러운 최고급 ‘안동한우 갈비구이’와 함께 화합과 소통을 상징하는 따뜻한 ‘해물 신선로’가 상에 올라 만찬의 정점을 찍는다.
디저트로는 한국 전통 디저트인 전약과 일본 전통 디저트인 모찌를 한 접시에 함께 담아낸다. 달콤한 마무리를 선사하는 디저트 한 접시에도 양국이 미래지향적인 관계로 나아가길 바라는 연대의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박정남 안동종가음식연구소 원장은 “‘수운잡방’ 외교가 한일 관계 개선의 신호탄이 됨과 동시에 안동이 가진 독보적인 문화적 자산과 브랜드 가치를 세계에 알리는 최고의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