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의 가장 감동적인 이야기는 화려한 도심이 아닌, 도시 외곽의 황량한 사막 언덕에서 시작된다. 그곳은 ‘푸에블로스 호베네스(Pueblos Jóvenes, 젊은 도시)’라 불리는 빈민 정착촌이다.
1940년대 이후 안데스 산맥에서 내려온 이주민들은 물 한 방울, 전기 한 줄 없는 모래바람 속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었다. 정부의 도움은 없었다. 그들은 스스로 길을 닦고 공동체를 세웠다. 돌멩이 행진이라 불리는 집단 행동으로 정부에 정착권을 요구하고, 서로 협력하여 물과 전기를 끌어오고 학교를 세웠다. 판잣집은 벽돌집으로 변했고, 황무지는 마침내 사람 냄새 나는 마을이 되었다. 인간의 의지와 연대가 만든 ‘페루의 기적’이 지금도 그곳에 숨 쉬고 있다.
리마는 인구 천만의 거대한 도시다. 경제 회복과 미식의 수도라는 빛이 있지만, 정치적 불안과 심각한 빈부 격차라는 그림자도 길게 드리워져 있다.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도시에서 ‘21세기 광장’의 의미를 되새기게 되었다.
도착 이틀째, 나는 리마의 심장부 산 마르틴 광장을 찾았다. 택시가 멈추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구두닦이들의 풍경이었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사라진 장면이지만, 이곳에서는 여전히 삶을 지탱하는 일상이었다. 순간 1970년대에서 1980년 초까지, 서울역 앞에서 구두를 닦던 청년의 모습이 떠올랐다. 세상은 결코 같은 속도로 달리지 않는다. 누군가에겐 과거가 오늘이고, 누군가에겐 미래가 이미 지나간 어제다. 광장은 그렇게 시간이 교차하는 현장이었다.
나는 광장 한쪽 벤치에 앉아 사람들의 발걸음을 바라보았다.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청년, 아이스크림을 나누는 가족, 연금 개혁을 외치는 시위대. 웃음과 분노, 일상의 소소함과 거대한 외침이 한 화면에 공존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알았다. 광장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따뜻한 숨결이라는 것을.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느껴진 묘한 고독은 관계가 끊긴 현대인의 초상 같았다.
하지만 광장은 원래 고립의 공간이 아니다. 인류의 문명은 광장에서 시작되었다.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와 로마의 포럼은 시민이 모여 토론하며 민주주의를 싹틔운 자리였다.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는 말했다. “광장은 공동의 기억과 책임을 나누는 곳이다.” 그 말처럼, 광장은 단순한 만남의 장소가 아니라 사회적 상상력과 윤리가 자라나는 토양이다. 나만의 이기적인 자유(liberty)가 아니라, 공동체의 규범과 책임 속에서 피어나는 자유(freedom)가 살아있어야 건강한 광장이다.
잠시 후, 나는 또 다른 중심지 아르마스 광장에 도착했다. 웅장한 대성당과 대통령궁이 마주 선 그곳은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흔적을 그대로 품고 있었다. 잉카의 돌들은 정복자의 건축 아래 묻혔지만, 그 위에 오늘의 페루가 숨 쉬고 있었다. 광장은 역사의 무대였다. 투쟁과 화해, 외침과 침묵이 얽혀 있는 시간의 무대였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광장은 외침의 공간이기보다, 경청의 공간이어야 한다.”
지금까지 광장은 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의 자리였다. 그러나 21세기의 광장은 달라야 한다. 말 잘하는 소수보다, 서로의 목소리를 존중하며 귀 기울이는 다수의 ‘귀’가 더 필요하다. 경청은 존중이고, 존중은 화해의 시작이다. 진정한 공동체는 바로 그 경청의 순간에서 태어난다.
리마의 석양은 붉은 먼지 속에서 천천히 내려앉고 있었다. 그 빛이 사막 언덕의 집들을 스치자, 벽돌 사이로 흙냄새와 사람 냄새가 섞여 피어올랐다. 나는 그 빛 속에서 ‘경청의 꽃’ 한 송이를 보았다.
오늘날의 광장은 더 이상 돌바닥 위에만 있지 않다. SNS, 유튜브, 메타버스 등 디지털 세계 또한 새로운 광장이 되었다. 그러나 그 가상의 광장은 너무 자주 분열과 혐오의 소용돌이로 변한다. 그러기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소통의 성숙, 공감의 지혜다. 21세기의 광장은 정치적 구호뿐 아니라, 환경 위기, 정신 건강, 세대 갈등, 그리고 웰빙과 같은 삶의 주제가 함께 오가는 열린 공간이어야 한다. 투쟁의 광장에서, 치유의 광장으로. 이것이 인류가 향해야 할 새로운 문명의 방향이다.
한국에도 광장이 있다. 때로는 도로 위에서, 때로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우리는 광장에서 역사를 만들어왔다. 하지만 외침만 있고 경청이 없다면, 광장은 자기 확신만 되풀이하는 공간이 될 뿐이다. 산 마르틴에서 아르마스 광장까지 걸으며 나는 바랐다. 우리의 광장에도 ‘경청의 꽃’이 피어나기를. 침묵을 밭으로 삼고, 존중의 햇살 아래 피어나는 꽃을 의미한다.
리마의 광장에서 나는 그 꽃 한 송이를 보았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소망했다. 언젠가 우리의 광장에서도 분열의 소음이 공존의 합창으로 바뀌고, 차이를 품은 향기가 공동체를 치유하는 날이 오기를. 그것이 바로 21세기 광장이 담당해야 할 진정한 역할이며, 인간이 ‘나’에서 ‘우리’로 나아가는 길이 아닐까.
/김상국(세종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