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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그곳에 있다는 믿음으로

만화 ‘원피스’는 오다 에이치로가 1997년부터 연재 중인 만화다. 세계 제일의 보물이라고 일컬어지는 원피스를 찾아 떠나는 이야기로 주인공인 루피와 그가 이끄는 밀짚모자 해적단의 모험을 그린다. 작품의 제목이자 주인공을 추동하는 보물이 무엇인가에 관한 의견 또한 분분했는데, 혹자는 동료들과의 우정, 꿈과 열정같이 추상적인 개념으로 추측하기도 했다. 그러나 작가는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원피스는 실체가 있는 무언가’라고 일축하며 독자의 기대감을 고조시켰다. 해적왕 로저가 찾아낸 보물, 원피스의 정확한 형태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의 성격에 관해서는 이야기를 통해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데, 해적왕이 원피스의 정체를 알고 폭소하였다는 것과 보물을 남긴 자가 ‘Joy Boy’라고 불린다는 것, “이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사람이 해적왕이야!”라는 대사 등을 미루어 보아 생각보다 가볍고 단순한 것이지 않을까 하는 것이 개인적인 추측이다. 나아가 작가는 최근 만화가 최종장에 진입했다고 발표하였으니, 모험의 대장정이 곧 끝날 것이라는 아쉬움과 설렘으로 연재를 지켜보고 있는 독자들이 많을 것으로 안다. 거기에는 나도 포함이다. 어린 시절부터 집 앞의 만화방에 들락거리며 “아저씨, 원피스 최신 권 나왔어요?” 하고 묻던 발랄한 꼬마가 어느덧 삼십 대가 되었다. 당시 만화 한 권을 빌리는 값이 삼백 원쯤 되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일주일에 천 원씩의 용돈을 받던 나는 한 시간 분량의 유희에 내가 가진 모든 돈을 투자하는 것에 거침없었다. 만화를 읽고 있노라면 나의 마음 깊은 곳에서 무언가 타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아마 소년 만화가 건네는 특유의 힘이 아니었을까 싶다. 따지고 보면 ‘원피스’는 내 안의 의협심과 투지를 만들어 준 원료였던 셈이다. 처음 이 만화를 접했을 때 어떤 감정이었나 생각해 보면, 주인공인 루피가 해적왕이 되는 것에 성공하느냐 마느냐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가 바다로 나가 동료를 모으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과정을 들여다보는 것 자체에 흥미를 가졌으니. 여러 섬에 정박하며 많은 문제에 봉착하고 그것을 그만의 방식으로 해결해 나가는 것에 일종의 해방감을 느꼈다. 어느 순간 나는 이불 속에 누워 만화를 읽는 행위를 멈춰야만 했다. 더 중요한 일이 생긴 것이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관계를 맺어야 했고 대학에 가야 했으며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다. 그동안 루피는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고 새로운 동료를 찾았으며 많은 적을 물리쳤고 여러 존재에게 도움을 주었다. 단 하나의 꿈.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항해를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놀라워해서는 안 된다. 루피가 첫 출항을 했을 때의 나이가 열일곱이고 작중 나이가 열아홉이니 그는 그 안에서 여전한 청춘이다. 현실은 흘러가지만 이야기는 계속해서 같은 자리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밀짚모자 해적단을 보고 있노라면 언제든 만화방으로 향하는 꼬마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 사실을 실감한 순간 나는 꽤 대단한 세상의 진실을 손에 넣은 듯 우쭐해졌다. 그러니까 ‘원피스’가 어떠한 형태를 지녔든 그것은 결국 하나의 상징일 수밖에 없다. 젊음, 낭만이나 꿈, 열정과 같은 개념. 그저 아름답게만 들리는 이러한 상태는 영원히 지속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지난한 일상의 대척점에 놓여 있다. 열정은 사그라지고 모험은 끝을 맺어야 한다. 종결 또한 삶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우리는 알고 있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한 그 안에서 유지되고 있는 불씨는 꺼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삶의 내부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고 한 가지 인생밖에 경험할 수 없다. 언제나 가능성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런 면에서 보물을 찾는 자의 모험을 바라본다는 것은 또 다른 체험의 방식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보물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언제나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보물은 숨겨져 있을 때 진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보물의 또 다른 말은 희망이다. 그것은 우리를 끝내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그것을 찾는 여정이 쉽지 않다는 것을, 결국 막을 내릴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글을 쓰는 내내 당연한 사실을 떠올렸다. 우리는 아직 ‘원피스’가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한다는 것. 그러니 마음껏 추측하고 상상할 수 있다는 것. 이런 사실을 떠올리면 지루한 일상도 자못 유쾌해진다.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게 된다. 보물이 그곳에 있다는 믿음으로.

2024-11-11

13조 넘어선 경북도 예산… 국비확보 총력을

경북도가 13조2618억원으로 편성된 내년도 예산안을 그저께(10일) 경북도의회에 제출했다. 올해보다 5.2%(6540억원) 증액된 규모다. 경북도 예산규모가 13조원을 돌파한 것은 처음이다. 저출생 극복과 2025년 경주 APEC(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 성공개최, 민간투자 활성화, 미래성장동력 확충 등에 집중투자한다. 경북도는 예산편성 과정에서 성과가 미흡했던 분야의 사업비를 감액조치하는 등 재정건전성을 높이는데도 힘썼다. 지금 우리나라는 합계출산율이 가까스로 0.7명대를 유지할 정도로 인구위기를 겪고 있다. 경북도가 내년도 예산안에 산부인과·소아과 진료체계 구축, 공공형 어린이집지원, 통합돌봄클러스터 건립지원, 청년신혼부부 월세지원 등에 2000억원에 가까운 예산을 편성한 것은 국가현안인 저출산 극복에 총력을 쏟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저출산 문제는 어려운 과제인 만큼, 지방의회 차원에서도 집행부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내년 가을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해 다양한 인프라(컨벤션센터·숙박시설 리모델링, 숙식 지원) 예산을 마련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최근 “경주가 가진 천년의 역사가 APEC 개최지 선정의 원동력이 됐다”면서 “APEC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해서 경주를 세계 10대 관광지로 만들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이외에도 경북도는 내년 예산안에 신산업 육성을 통한 미래성장동력 확보, 지방시대 실현, SOC사업 확충, 복지사업 확충 등에도 수조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경북도가 도의회에 제출한 예산안 중 대부분은 국비다. 역대급 세수결손으로 정부가 초긴축재정 운용에 들어갔음에도, 경북도가 사상 최대의 내년 예산안을 편성할 수 있었던 것은 박수를 받을 만하다. 경북도 예산담당 직원들은 물론, 지역 정치권의 공헌이 컸다. 국비예산은 도의회 심사와 함께 국회 의결도 거쳐야 하는 만큼, 정치권은 예산안이 원안대로 통과될 수 있도록 각별히 신경을 써야겠다.

2024-11-11

TK통합 설명회, 반대 의견도 경청하며 가길

대구시와 경북도가 대구경북 행정통합에 대한 주민 설명회를 본격화하고 있다. 대구는 지난 1일부터 구군별 설명회를 가진 데 이어 민간단체 대상 설명회도 연다. 경북은 7일 포항을 시작으로 경산, 안동, 구미에서도 설명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대구시와 경북도는 기관단체, 일반시민 대상의 설명회를 통해 행정통합의 필요성과 기대효과, 특별법의 주요 내용 등을 소개하고 이를 통해 시도민의 공감대를 넓히는데 주력한다. 대구와 경북의 통합은 수도권의 비정상적인 일극체제에 대응해 지방도 골고루 잘사는 도시로 만들고, 나아가 국가 균형발전을 통해 지방소멸의 문제도 해결하자는 데 목적이 있다. 지금처럼 수도권에 경제와 행정, 정책이 집중되면 지방은 머지않은 장래에 공멸할 수 밖에 없다. 이미 국토면적의 12%에 불과한 수도권에 인구의 절반 이상이 모여 사는 양극화는 극에 달한 상황이다. 지방자치단체가 힘을 모아 대한민국 행정체제의 대개편을 시도하지 않으면 지방은 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와 관련, 이철우 도지사는 8일 시장군수 간담회에서 “통합은 더 큰 권한과 재정으로 어느 지역도 손해보지 않고 균형발전을 촉진할 것”이라며 시군지역의 협조를 당부했다. 그러나 지방소멸과 저출생 극복을 위해 통합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을 하면서 지역의 입장이 서로 달라 반대 목소리도 적지 않다. 안동시와 시의회는 통합 반대 성명을 냈다. 안동시는 시도민의 동의없는 행정통합에 반대한다는 시민궐기운동도 펼치기로 했다. 대구경북의 미래를 건 대역사를 시도하는데 반대 의견이 없을 리 없다. 반대 목소리를 경청하고 대의(大義)를 위한 지혜를 모아야 한다. 시도민이 공감하는 통합안을 만드는 데 심사숙고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부산·경남도 경제수도를 목표로 행정통합에 시동을 걸었다. 자치권과 재정권을 가진 강력한 지방정부를 선택하는 것이 지방생존 전략이라는 데 동의한 것이다. 통합의 장밋빛 전망만 설명할 게 아니라 지역의 미래를 위한 확실한 선택임을 믿게 해야 한다. 반대 목소리도 경청하며 침착하게 문제를 헤쳐가야 한다.

2024-11-11

트럼프의 ‘전화 정치’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미국은 군사 부문과 경제 분야에서 부정할 수 없는 지구 위 최강대국이다. 세계의 ‘경찰국가’를 자처하는 나라의 차기 대통령이 선출됐다. 도널드 트럼프. 그가 통치했던 몇 해 전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무엇보다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극단적 자국이기주의, 가난한 국가에서 미국으로 들어온 이민자에 대한 배척, 사업가 출신다운 발 빠른 물질적 계산을 통한 국가간 질서 개편 등이 트럼프가 지향해온 정치 스타일이다. 향후 4년도 이런 추세가 바뀔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앞서의 언급처럼 세계의 경찰국가라 불리는 미국의 권력자로 확정됐으니, 트럼프는 여러 나라의 국가원수들로부터 축하를 받고 있다. 미우나 고우나 지구 위 가장 힘센 통치권자를 백안시할 수는 없는 법이니 이미 70개 국 정상이 트럼프에게 전화를 했다. 대통령 선거운동 과정에서 트럼프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빠른 시일 안에 끝내겠다고 호언장담해 왔다. 그래서일 것이다. 선거 결과가 나온 직후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전화를 건 트럼프는 “더 이상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확산시키지 말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지난 주말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최대 규모의 드론 전투가 벌어졌다. 트럼프의 말이 아직은 약발을 받지 않고 있는 듯하다. 10일 독일 올라프 숄츠 총리와 통화한 트럼프는 “유럽의 평화 회복을 위해 함께 노력하자”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발표된 통화 내용은 두루뭉술하고 구체적이지 못하다. 아직은 당선자 신분이니 그럴 수 있다. 향후 정식 취임 이후엔 트럼프의 ‘전화 정치’가 얼마만한 힘으로 세계질서를 재편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11-11

나의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지난 주말 서울은 무척 시끄러웠다. 생각을 달리하는 두 ‘집단’이 각기 거의 같은 시간에 시내에 집결했다. 모인 사람들 수가 몇 만 단위를 넘었다고들 주장된다. 당분간 이런 시절이 계속될지도 모르겠다. 미리부터 나 자신에게 다짐을 해 둔다. 이번에는 어디에도 ‘나가지’않으련다. 고민이 없어서가 아니다. 지난 20년 전, 평론집 ‘행인의 독법’을 낼 때 심정으로 돌아가 보자는 것이다. ‘행인’의 심정으로 돌아가 차근차근, 냉연히, 생각해 보겠다는 것이다. 2014년 4월 16일, 모든 것이 기이하리만큼 이상했다. 정부는 단순히 무능력한 것만 아니고 무언가 모를 비밀을 감추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음모론’이라 매도되는 모든 가설과 추론이 얼마든지 제기될 수 있었다. 문제의 선박은 출항 일자부터 항로, 구조 과정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납득할 만한 것이 없었다. 이 전대미문의 참사는 2년 후 정부가 무너지는 것으로 이어졌다. 국정농단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근본적 원인은 다른 곳에 있었다. 나의 의문은 그 시점부터다. 정부가 바뀌었는데, 어째서 참사의 진실이 드러나지 않은 걸까. 선거 때 참사의 선박이 인양되기는 했다. 그뿐이었다. 진실 규명을 위한 노력은 없었다. 참사 때문에 들어선 정부, 진실을 요구하던 단체들, 모두들 딴전을 피웠다. 허무한 세월이 그렇게 흘렀다. 아무것도 한 일 없는 정부가 다시 한번 새로운 정부로 바뀌었다. 처음부터 ‘탄핵’을 하자는 말들이 쏟아졌다. 왜? 내게는 이유가 보이지 않았다. 몇 달이 흘렀다. ‘핼로윈 데이’. 이태원에서 대형 참사가 일어났다. 원인은 이번에도 드러나지 않는 가운데 정부로 책임을 돌리려고들 했다. 사고 당시의 동영상 기록 등 앞뒤 상황은 의문투성이였다. 걱정과 번민 속에서 사태의 진실에 다가가고 싶었지만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당시 이태원 인파들 가운데 특이한 움직임을 보이는 사람들을 추적하는 유튜브 채널들은 사람들이 어디서 희생되었는지, 원인은 무엇인지, 특정 세력의 개입은 없었는지를 따지고 있었다. 공개된 영상들이 조작된 것이라고 믿은 어떤 이는 장례식장, 분향소를 직접 찾아가 보기도 했는데, 이는 나중에 야당 대표가 테러를 당했다는 데 대해서도 진위 여부를 따지다 고발을 당하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내게 하나 깨닫기는 게 있었다. 신문·방송을, 유튜버들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만은 없다. 이들의 무성한 수풀을 찬찬히 헤쳐 누가 정말로 진실을 말하는지 헤아려야 한다. 선거도, 여론조사도, 그렇게 엉망진창이어서는, 베일에 가려 있어서는, 민심 그것과는 현격한 거리가 생기는 법이다. 원인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외치는 소리에 너무 쉽게 흔들려서는 안 된다.‘가상현실’이 진짜 현실은 아닐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바야흐로 시작된 11월의 사태,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는지 한 번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보겠다고 생각한다. 모든 ‘진실’에 의문을 품고 있는 나로서는 이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 그것은 같은 일이 두 번 똑같이 일어나가는 어려울 것 같다는 느낌, 바로 그것일 것이다.

2024-11-11

수능을 앞두고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언제부터인가 정신건강이 좋지 않은 학생이 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쩌다 있는 예외적인 경우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상당히 많은 학생이 아프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동료 교수들과 만나 이야기하며 우리 대학만이 아니라 전국 모든 대학의 학생이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자살률이 OECD 국가 1위라는 불명예를 극복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이 있지만, 이와 별개로 청년들의 정신건강은 계속 안 좋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번 학기에 만난 어떤 학생은 스물여덟 살이란 나이에 특별한 관심사가 없는 자신의 상황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제대 후 아버지 사업을 도우며 이 년을 일하고 졸업장을 받아 오라는 부모님 말씀에 따라 복학했지만, 학업에 특별한 관심이 있지는 않았다. 졸업이 늦어지는 것에 대한 조급함과 진로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하던 학생은 한참이 지나서야 대인기피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나는 현재 상황을 부모님과 공유하고 치료받기를 권했지만, 그 학생은 부모님께 자신의 병을 알리고 싶어 하지 않았다. 또 다른 학생은 어머니와의 갈등이 정신건강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 경우였다. 오빠와 자신을 차별하는 할머니와 이를 모른 척한 어머니의 태도가 누적되며 학생은 마음이 아프고 모든 일에 자신감을 잃었다. 어린 시절부터 누적된 이러한 경험이 만든 삶의 태도가 더 큰 도약을 해야 하는 학생의 마음을 끌어내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어머니에게 자신의 병을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첫 번째 학생과 비슷했다. 두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고 답답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두 학생은 자신의 아픔을 오롯이 혼자서 감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의 노력이 없는 것이 아니다. 우리 대학도 그렇지만 많은 대학이 정신건강 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검진을 진행하기도 한다. 분명 과거보다 대학은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학생들의 정신건강을 책임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렇지만 문제의 본질은 두 학생의 경우처럼 학생들의 정신건강은 미성년기부터 누적된 결과라는 점에 있다. 11월 14일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이다. 올해 수능을 친 학생들은 2025학번으로 대학에 입학한다. 수험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가기 위해 지난 1년 동안 열심히 노력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험을 마치면 누군가는 자신이 원하는 성과를 얻지 못해 좌절하고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다. 반대로 원하는 성과를 얻은 경우에도 대학 자퇴생의 증가라는 지표가 보여주듯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어느 쪽이든 중고등학교 시절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성공이 아니라 실패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그리고 실패한 아이들이 다시 일어날 수 있게 감싸주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경쟁이 아니라 협동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학교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되지 않으면 마음이 아픈 청년은 계속 증가할 것이고,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더욱 감소할 것이다. 이를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사소한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2024-11-11

디딜 곳 없는 길

강길수 수필가 10월 하순. 며칠 전부터 출, 퇴근길에 일부러 안 가는 코스가 생겼다. 디딜 곳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일요일에 오륙 년 만에 순례 갔던 베론 성지에는 똑같은 상황인데도 디딜 곳은 아무 문제도 없었다. 냄새는 베론이 훨씬 심했다. 그런데도 사람 걷는 곳엔 그 열매가 하나도 안 보였다. 누가 주워서 치운 누런 은행 열매가 개울가에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때문에, 근처에 가면 악취가 더 난 것이다. 성지 관리자들의 이웃에 대한 배려가 저절로 눈에 보여 참 고마웠었다. 한데, 반 시간 정도 걸어 출, 퇴근하는 이곳 보도에는 요즈음 떨어진 은행 열매로 발 디딜 곳이 마땅찮은 데가 여럿이다. J 초등 옆 교차로 보도 한 곳은 특히 심하다. 이곳은 금방 떨어진 은행 열매가 온 보도를 채워 밟지 않고는 갈 수 없을 지경이었다. 할 수 없이 디딜 곳이 생길 때까지 다른 길로 다니기로 한 것이다. 떨어진 누런 은행 열매를 요리조리 피해 걷노라면 이런저런 생각들이 뇌리에 오간다. 도로 관리 당국에서 가로수를 심을 때 아예 수은행나무만 골라 심으면 이런 불편이 없을 게 아닌가. 그 많은 공무원은 다 탁상공론만 하는가. 또, 아침마다 길거리 휴지 줍는 시니어 인력을 활용해 쓸어도 될 텐데, 관리자들은 현장에 한 번 나와 보기나 하는가. 나아가, 전에는 아줌마나 할머니들이 은행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주워 갔는데 모두 잘 살아선지, 혹, 그분들이 돌아가셨나 하는 생각들이다. 그러다가 고개를 젓는다. ‘그러면, 너는 무얼 했는데?’하는 마음의 소리가 머리에 알밤을 주었기 때문이다. 슬그머니 은행나무에 미안해진다. 만일 수나무만 있다면, 이 지구촌에 페름기에 나타나 2억7천만 년 동안 면면히 대를 이어 오기에 ‘살아있는 화석’이라 부르는 은행나무가 그만 손이 끊어지게 될 테니까. 중생대 쥐라기와 백악기에 수십 종이 살며 전성기를 이루었다는 은행나무. 당시는 공룡이 은행을 먹고 씨앗을 퍼뜨리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오늘날 은행나무가 한종만 남은 원인은 공룡의 멸종과 기후변화로 등으로 보고 있다. 은행나무가 살아있는 화석이 된 비결이 무얼까. 전문가들은 강인한 생명력을 들고 있다. 우선, 열매껍질에 악취와 독성이 있는 화학성분이 들어있어 곤충이나 동물들이 은행 열매를 피하도록 한다. 그 예로 1945년 일본 히로시마 원폭 투하 지점 2㎞ 반경 안에 있던 6그루의 은행나무가 지금까지도 살아 있단다. 어쩌면, 현생인류 우리 호모사피엔스도 은행을 닮아가는지도 모른다. 과학기술이란 이상한 껍질을 몸에 둘러싸고 살아가니 외부 생명들은 감히 접근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인간이 사는 영역에 다른 동물들은 발디딜 곳이 거의 없어졌다. 산을 접한 농지에는 철재나 전기울타리도 모자라 하늘에 조류 방지망까지 씌운다. 다른 생명들과 만남을 끊고, 과학기술만의 힘으로 인간이 지구촌과 다른 별에서 지속 가능할까. 이것이, 은행 열매 떨어져 디딜 곳 없는 길이 내게 주는 메시지이다.

2024-11-11

아, 종상 큰스님-금까마귀 하늘을 뚫고 비상하네(金烏徹天飛)

혐시탕척(嫌猜蕩滌) 훼예하류(毁譽何留) 초연탈생사(超然脫生死) 금오철천비(金烏徹天飛) 미움 싫어함 깨끗이 씻어 버리니 헐뜯고 칭찬함이 어디에 머물겠는가 초연히 삶과 죽음을 해탈하려니 금까마귀 하늘 뚫고 비상하네 이러한 열반송을 뭇사람들에게 남기시고 법랍 60년 세수 76세로 사바를 떠나신 종상 큰스님. 조계종 원로의원으로 비구승 최고 법계인 대종사(大宗師)에 오르신 우리시대의 진정한 어른이셨다. 해방 후 정부가 수립되던 1948년 전북 임실에서 출생하시어 더벅머리 총각은 열일곱 나던 해 속리산법주사(俗離山法住寺)에서 월산(月山) 스님을 은사(恩師)로 사미계(沙彌戒)를, 1973년 석암(錫岩) 스님을 계사(戒師)로 구족계(具足戒)를 수지하시고, “선시불심(禪是佛心)이요, 교시불어 (敎是佛語)라, 선은 곧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는 부처님의 말씀이니, 속세와 멀어진다는 속리산, 법이 상주한다는 법주사의 전통 강원에서 ‘부처님 일대시교(一代時敎)’를 마치시고 조계종 총무원의 조사국장(1980), 총무국장(1985)을 필두로 입법의결기구인 중앙종회의원(8,9,12,14,15대)을 장장 5선을 지내시고, 연주암 주지, 청계사 주지, 불국사 주지, 석굴암 주지, 불교방송과 동국대 이사를 역임하셨다.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금강산 신계사 복원에도 큰 역할을 하시었고 남북한 관계의 긴장완화와 화해무드 조성에도 그 공로가 매우 크신 분이다. 지은 책으로는 ‘기와를 갈아서 거울 만들기’(청계사, 2001)를 남기셨는데, 건물 짓고 탑 조성하는 일보다 사람 키우는 불사에 원력을 모아야 한다는 평소의 지론을 대화하시듯, 평이하게 그리고 진솔하게 설하신 것이다. 아마 선지식께서는 한국불교의 쇠퇴를 미리 점치셨는가보다. 탄탄 스님·전 불교중앙박물관장 사람 귀하게 여기지 않은 한국불교의 현실은 이제 그리 녹록하지가 않다. 이 또한 상응하는 과보가 맞다. 몇몇 지역 맹주들이 농단해온 우리 교계의 미래 또한 어둡고 불투명하기만 하다. 살아생전 베풀고 나눈 것만 고스란히 남고 탐착하여 빼앗은 허물은 영원할 뿐이다. 대궁당(大弓堂) 큰스님께서는 지나는 객승도 불러 세워 성큼 거액의 지전(紙錢) 한 묶음을 나눠주시고 늘 어렵고 힘든 불자에게는 한없는 은전(恩田)을 베푸셨다. 학인에게는 학비를, 세도가에게는 헌금을, 적재적소에 재물을 풀어 교계 안팎에서 그 칭송이 자자했다. 이만한 복인(福人)은 이 지상에 또 있을 것인가? 남 종상(南 宗常) 북 자승(北 慈乘) 시대가 이제는 저물었다. 때마침 계절이 완연히 바뀌는 겨울의 문턱에서 하필 조계종사에 큰 획을 그은 종문(宗門)의 대사판(大事判) 두 분의 기일(忌日)이다. 전생(前生)은 신라시대 김대성의 화신(化身)이신듯 대가람 불국사와 석굴암을 오늘 지금까지 가꾸고 지키셨으며 금생에 그토록 널리 베푸셨으니, 이제 속환사바(速還娑婆)를 하신다 하여도 원 없는 이고득락(離苦得樂)을 다시 누리실 우리시대 진정한 큰스님이셨다. 훤출한 대장부풍의 법당(인물)이며 통 크신 용력(用力)을 이제 그 어디에서 뵈올 것인가? 수년 전 불국사 전 주지이신 종우 큰스님과 대궁당 큰스님 모시고 떡국공양을 하던 정월 초하루가 벌써 그리워져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르는데, 금생에 큰어른과의 잠시 스쳐지나간 인연은 이 얼마나 소중하고 지중했더냐!

2024-11-11

민심과 업고 가려는 노력이 없었다

김진국 고문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 기자회견후 여론이 더 안 좋아졌다. 지난주 한국갤럽 조사에서 국정 수행 긍정 평가는 17%로 한 주 사이에 2% 떨어졌다. 기자회견 전에 조사한 것인데도 그렇다. 실제로 듣는 여론은 더 나쁘다. 당장 보수 언론들조차 모두 윤 대통령의 인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기자회견 다음 날 중앙일보는 1면 머리기사에 “윤 대통령 ‘어찌 됐든’ 사과”라는 냉소적 제목을 달았다. 조선일보가 “저와 아내 처신 올바르지 못해 사과드린다”라고 가장 우호적으로 붙였다. 그런 조선일보의 양상훈 주필도 칼럼에서는 “‘기대에 못 미친다’는 반응이 좀 더 많은 듯하다”라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의 회견에는 ‘억울하다’는 감정이 가득하다. 그는 “침소봉대는 기본이고 없는 것까지 만들어 제 처를 많이 악마화” 한다며 “본인도 억울함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 휴대폰에 온 문자에 답하느라 밤을 새운 부인에게 “미쳤냐”라고 말했다는 대목이나 “순진한 면이 있다”는 답변에서는 애잔함이 배어있다. 이게 무슨 잘못이냐는 항변으로 들린다. 끝부분에서 “무엇을 사과한다는 말이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구체적으로 지적해 주면 답하겠다”라고 버럭 화를 냈다. 국민의 분노에 전혀 공감하지 못한다는 반응이다. 왜 이런 간극이 생기는 걸까. 윤 대통령은 김건희 여사가 육영수 여사처럼 대통령을 도운 것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국민은 다르다. 공동통치자, 심하게는 대통령보다 더 위에서 인사와 정책을 흔들었다고 의심한다. 김 여사는 전화 녹취에서 “멍청해도 말을 잘 들으니까 내가 데리고 살지”라며 국정을 자신이 주무르는 듯한 말을 쏟아냈다. ‘김건희 라인’ 행정관이 수석비서관의 말도 무시하고, 공적 위계질서를 파괴한다고 걱정한다. 최근 주요 공직에 대통령이 내정한 사람을 제치고 뒤늦게 김 여사가 추천한 인사가 차지했다는 소문까지 나온다. 한국일보 한희원 논설위원이 “우리는 김건희 여사를 뽑지 않았다”라며 날을 세운 이유다. 물론 대통령제 국가에서 영부인의 역할에 대해 논란이 많다. 존 로버츠 2세는 ‘위대한 퍼스트레이디 끔찍한 퍼스트레이디’라는 책에서 “백악관의 여성들은 국가의 대소사와 선거, 대통령의 인사정책에서 항상 분명한 힘을 가지고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라며 “거의 활동을 하지 않았던 퍼스트레이디들조차 어느 정도의 정치적 개입을 했다”라고 말했다. 내조형이었던 낸시 레이건의 부속실장 제임스 로즈부시는 “퍼스트레이디는 대통령의 정치적 파트너”라며 “대통령직 수행은 두 사람의 직무”라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는 김정숙 여사의 타지마할 방문을 “우리나라 영부인의 첫 단독 외교”라고 미화했다. 관광 논란도 있지만 어쨌든 영부인이 ‘단독 외교’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역할 범위가 넓다는 인식을 드러낸 셈이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장남 트럼프 주니어는 7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대통령보다 자신이 더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내각에) 기용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정권 인수 과정에 매우 깊게 관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시 부자처럼 정치적 역할을 이어받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1기 때는 딸 이방카와 사위가 공개적으로 활동했다. 그렇다고 “선출되지 않은 아들과 딸이 왜 설치느냐”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 윤 대통령이 억울해하는 것도 한편 이해가 된다. 그는 “대통령 부인이 대통령을 도와서 선거도 좀 잘 치르고 국정도 남들한테 욕 안 얻어먹고 원만하게 잘 하길 바라는 그런 일들을 국정농단이라고 한다면 그건 국어사전을 다시 정리해야 할 것 같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 여사는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한국 국민이 용납할 범위를 넘어섰다. 역할을 넓히려면 민심부터 얻어야 한다. 믿음이 있으면 일을 할수록 칭찬받는다. 미국에서도 영부인 역할 기준은 고무줄이다. 손바닥에 ‘왕(王)’자를 쓰고, ‘천공’이네 ‘미륵’이네…수준 미달인 사람을 가까이하고, 풍수를 따져 집무실을 옮기고…. 이런 소문부터 국민을 참담하게 만든다. 그런 의심을 풀어주지 못하면 영부인의 역할을 완전히 접어야 한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11-10

용산, 이번주가 국정 국면전환의 골든타임

윤석열 대통령의 ‘11·7 회견’ 이후, 여권이 쇄신 드라이브를 걸면서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8일 페이스북을 통해 회견 후속조치로 ‘속도감 있는 쇄신’을 주문하자, 대통령실은 “변화를 통해 치열하게 노력하겠다”고 화답했다. 변화된 당·정 모습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대통령실은 이달 중순 계획된 윤 대통령의 해외 순방 일정에 김건희 여사가 동행하지 않는다고 공식 발표했다. 김 여사의 개인 휴대전화도 없앤다고 한다. 정치권이 요구해온 김 여사 대외활동 중단을 수용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대통령실은 인사검증 등 개각 준비에도 속도를 내고 있고, 인사 쇄신 징후도 보인다. ‘김 여사 라인’으로 지목된 강훈 전 대통령실 정책홍보비서관이 한국관광공사 사장 지원을 철회한다는 입장문을 냈다. 국민의힘은 이번주내에 특별감찰관 추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의원총회를 열 예정이다. 의원총회에서는 특별감찰관 추천에 의견을 모을 가능성이 크다. 특별감찰관은 대통령의 배우자 및 4촌 이내 친족, 대통령실 수석비서관 등의 비위를 감찰한다. 국회가 후보 세 명을 추천하면, 대통령이 이 중 한 명을 지명한다. 윤 대통령 회견 후 야당 공세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야권은 지난 8일 대통령 임기 단축과 대통령 중임제를 핵심으로 하는 개헌 추진 연대를 출범시켰다. 국회 법사위에서는 김 여사 관련 특검법도 강행 처리했고, 그저께(9일)는 서울 도심에서 현 정권 규탄 장외 집회를 열었다. 여권이 국면전환과 함께 국정동력 에너지를 얻으려면 이제 민심에 기댈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반등하면 야권공세도 무력화시킬 수 있다. 그러려면 국민이 실감할 수 있는 후속조치를 빨리 취해야 한다. 인사에 속도를 내는 것은 물론, 오늘 가동하는 여의정(여당·의료계·정부) 협의체도 성과를 내야 한다. 전공의·의대생 대표가 협상테이블에 나오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용산은 이번주가 정국 위기국면을 바꿀 수 있는 골든타임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2024-11-10

일론 머스크가 그리는 세상

우정구 논설위원 전기차 테슬라의 최고 경영자이자 트럼프 대통령 후보의 적극 지지자인 일론 머스크가 새삼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세계 1위 부자인 그의 재산은 약 2500억 달러(한화 336조원)다. 재산의 상당 부분은 테슬라 주식이다.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이 알려지던 날 테슬라 주식이 폭등하면서 그의 재산은 하루 만에 55억 달러(7조6000억원)가 올랐다. 언론은 그를 트럼프 재집권의 최대 수혜자, 킹메이커, 미 대선 최종 승자라 표현했다. 트럼프 정부가 머스크를 채용하는 시나리오를 검토 중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하지만 그는 경영자로서 승부사라는 별명을 일찍부터 가지고 다녔다. 자신의 회사를 위해선 도박과도 같은 과감한 결단을 스스럼없이 내리는 그를 두고 몰빵 신이라고도 불렀다. 남아프리카에서 태어나 캐나다를 거쳐 미국에 정착한 그는 어릴적부터 컴퓨터 게임에 관심이 많아 12살 때는 자신이 만든 슈팅 게임기를 게임잡지에 실어 판매도 했다. 그가 최고의 혁신가로서 호평을 받는 이유는 뛰어난 기술력과 식견을 먼저 꼽는다. 또 디자인 감각이나 중독에 가까운 일에 대한 성실함, 현장 중심의 경영도 이유라 한다. 그리고 그의 미래지향적 비전과 도전정신은 기업을 세계 최고로 키운 비결이라 주변에선 평가한다. 경제성이 없다는 전기차를 상업화하는 데 성공했고, 지금은 우주탐사, 인공지능, 에너지산업에까지 새로운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특히 그가 도전하고 있는 우주탐사는 인류가 새로운 행성에 세상을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트럼프 당선과 함께 머스크가 그려갈 새로운 세상에 세계인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11-10

아침 안개를 보면서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아침마다 안개가 짙게 내리는 시절이 왔다. 해마다 11월이면 청도 화양에는 지척(咫尺)을 분간할 수 없는 안개가 내리곤 한다. 날이 많이 차거나, 바람이 몹시 불거나, 일교차가 아주 적거나 하는 일이 있다면 모를까, 안개는 예외 없이 날마다 두툼한 얼굴을 내민다. 안개 속에서 모든 것은 짙은 차폐(遮蔽)의 장막 속으로 숨거나 사라져버린다. 안개를 오래도록 묵상한 시기는 대구 금호강 안심 습지(濕地) 부근에 살았을 때였다. 겨울 아침마다 앞을 내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안개가 찾아왔다. 일출과 무관하게 이어지는, 안개가 지배하는 시공간에서 무기력하게 금호강을 내려다보며 깊은 상념에 잠기곤 했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 안개에 관한 짧은 명상’이라는 시를 써야만 했다. 2부로 나누어진 시의 끄트머리에서 나는 썼다. “모든 떠나간 것들은 언젠가 그 자리로 반드시 회귀할 것을 나는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날마다 찾아오던 안개가 사라져버린 황량한 금호강 풍경을 떠올리면서 나는 안개가 속히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이다. 안개가 사라진 금호강 습지의 철모르는 오리무리를 보면서 느꼈을 허허로움이 지금도 감촉되는 듯하다. 그저께 아침에도 화양(華陽)에는 짙은 안개가 찾아와 오전 10시 42분이 되어서야 천공의 태양이 빛나는 얼굴을 내밀었다. 붉은 해가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 모든 것은 어둠의 장막 아래 침전한다. 안개의 그늘, 어둠의 심연 속에서 혹자는 평안하고, 누군가는 당혹스러워한다. 사람은 혼란을 기꺼워하는 이와 혼란에서 고통을 느끼는 자로 나뉘기 때문이다. 안개의 본질 가운데 하나는 어둠과 혼돈이지만, 다른 본질은 안개는 언젠가 반드시 사라진다는 것이다. ‘금강경 사구게(四句偈)’에 나오는 ‘몽환포영(夢幻泡影)’ 같은 것이다. 그렇다, 안개는 꿈과 환상, 물거품과 그림자처럼 시나브로 사라져버린다. 안개를 데려가는 것은 태양과 바람이다. 그것들로 인해 안개는 스르륵, 소리 없이 불귀의 객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 영화감독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안개 속의 풍경’(1988)은 안개로 시작하여 안개로 끝나는 안개 영화의 전범이다. 12살 소녀 불라와 다섯 살짜리 남동생 알렉산더가 아버지가 있다는 ‘게르마니아’로 길을 떠나는 영화 ‘안개 속의 풍경’. 그들이 여로(旅路)에서 마주치는 세상의 인간들과 풍경과 내면세계를 느려터진 사진기로 잡아내는 앙겔로풀로스. 지독하게 막연한 행로 첫머리에서 아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태초에 어둠이 있었다.” 도대체 그들의 아버지는 실제로 있는 것일까, 있다면 도이칠란트 어디에 있단 말인가! 여리고 어린 남매는 어떻게 아버지를 찾아갈 수 있단 말인가! 남성 어른들이 뿜어내는 무한폭력과 그것에 무너져가는 남매의 모습이 안개 속에서 고요하게 숨 쉬고 있을 뿐이다. 영화 말미에서 남매는 속삭인다. “태초에 어둠이 있었 다. 그리고 빛이 있었다.” 앙겔로풀로스는 빛과 어둠으로 점철된 그리스 현대사를 이것으로 드러내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어둠(안개)을 거두는 빛을 찾아 떠나온 남매를 비추는 찬란한 빛! 어둠은 빛을 끝내 이기지 못한다!

2024-11-10

포항제철 내 잦은 화재, 시민은 불안하다

10일 새벽 4시 20분쯤 경북 포항시 포스코 포항제철단지 내에서 큰불이나 시민들의 새벽잠을 깨우는 등 포항 시민들을 크게 놀라게 했다. 이날 불은 제철소 내 3파이넥스 공장에서 폭발음과 함께 일어났는데, 소방당국이 나서 2시간 10분여만에 화재를 진화해 큰 피해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화재 발생 시 엄청난 굉음을 동반하면서 폭발이 일어나 공장 건너편 해도동과 동도동 일대의 건물이 흔들려 새벽잠을 깬 주민들을 불안하게 했다. 한 주민은 폭탄 터지는듯한 소리가 들리면서 집채 만한 불기둥이 치솟아 전쟁터를 방물케 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목격자는 지진이 난 것처럼 유리창이 흔들리고 엄청난 연기가 주택가로 몰려왔다고도 했다. 소방서에도 제철소 내 불기둥을 보았다는 신고가 잇따랐다고 한다. 포항제철소는 이번 화재 말고도 근년 들어 크고 작은 화재가 빈발해 주민들이 불안을 호소하는 신고가 자주 접수되고 있다. 올 들어서도 1월에는 제철소 내 선강지역 통신선에서 불이나 10여분만에 꺼지고, 2월에는 석탄운반 시설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또 지난해 12월에도 2고로 주변에서 불이나 정전으로 공장 가동이 중단되기도 했다. 2020년 이후 발생한 크고 작은 화재만 7건이나 된다. 화재는 아니지만 2022년 9월에는 태풍 힌남노로 하천이 범람하면서 49년만에 용광로 3기의 가동이 중단되는 큰 피해를 입기도 했다. 화재 발생 과정에서 검은 연기가 뒤덮이고 화염이 분출돼 인근 주민들이 불안을 호소하는 일이 잦았다. 포스코는 시설 내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일찍부터 안전을 최우선 경영으로 삼았다. 2018년에는 3년에 걸쳐 안전예산만 1조원 규모로 준비하고 안전전담 전문요원만 200명 가량을 뽑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포스코의 이러한 노력에도 안전사고는 끊이질 않고 일어나고 있다. 세계 최고의 철강회사 위상에 걸맞지 않아 비판의 소리도 자주 듣는다. 이번 사고의 원인은 소방당국의 조사에 따라 차츰 밝혀지겠지만 포철 내 안전의식에 대한 자성이 우선하지 않으면 안전사고는 또다시 발생할 수밖에 없다.

2024-11-10

영주 시민들이 진정한 리더!

박남서 영주시장 지방자치 시대가 개막한 후 각 지자체들은 잘사는 고장, 미래가 있는 고장을 만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국의 240여개 지자체들은 현재에 국한되지 않은 후손들에게 물려줄 미래세대에 대한 지향점을 두고 경쟁력 있는 도시 조성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성공한 지자체에는 특별한 리더가 있다는 말이 있다. 리더는 바로 지역의 주민들이다. 지역민들의 애향심, 미래를 위한 관심과 투자, 함께 나누는 사회 분위기 조성 등 다양한 부분에서의 노력이 미래 지역사회의 발전 방향을 이끌게 된다. 이런 부분에서 영주시민들은 진정한 리더라 할수 있다. 영주시가 미래 먹거리를 위해 시민들과 함께 염원하고 기대했던 첨단베어링 국가산업단지 승인과 영주댐 준공은 지역민들의 깊은 관심과 함께 노력한 결과물이다. 시민들의 자발적 관심과 참여, 지역에 대한 애정과 행정에 대한 믿음과 지원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결과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영주시민들은 진정한 리더이다. 도시 발전에는 경제 활성화가 중요한 부분이다. 과거에는 정부 중심의 경제구조였다면 현대에는 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다. 지자체의 발전은 기업의 유치가 관건이라 할 수 있다. 고품격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 많은 기업의 유치가 있어야만 지역 경제가 돌아간다. 이런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이 바로 국가첨단베어링산업단지다. 국가산업단지 조성사업은 계획에 따라 추진중이다. 산단 입주 기업유치를 위해 현지 방문 및 홍보물 배포, 다양한 행정지원 대책방안을 마련해 놓고 있다. 기업하기 좋은 도시, 기업이 선호하는 도시, 투자를 위해 찾아오는 도시, 지역사회가 함께하는 기업지원 도시로 거듭나기 위한 준비를 착실히 수행하고 있다. 영주댐 수변 지역에 대한 활용도를 높이고 특화된 관광산업화를 위해 영주호개발과를 신설해 새로운 트렌드의 관광수요 창출에도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역 산업화와 관광산업화 못지않게 중요한 부분들이 있다. 인구감소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중소도시의 현실은 미래 발전방향 지표를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영주시는 국토부가 추진한 공모사업에서 지역활력타운사업이 선정돼 지역 발전에 큰 힘을 보태고 있다. 국가산단과 영주댐 건설에 따른 인구 유입 가능성이 높아진 시점에서 이를 수용하고 MZ세대가 원하고 녹아들 수 있는 주거환경과 주변 시설의 확충에 방점을 두고 시는 지역활력타운사업에 전력하고 있다. 최근 영주역에서 남부육거리 구간에 공정률 80%를 보이며 공사가 한창인 도시재생 사업은 역세권의 상권 부양과 새로운 패러다임을 조성하고 있다. 또 중앙선철도 복선화사업의 일환으로 공사가 완료된 역세권 개발사업은 도시재생 사업과 맞물려 영주시의 대표적 관문인 영주역 인근 지역은 새로운 면모를 갖춰나가고 있다. 이같은 사업은 한데 맞물리며 영주시가 한층 더 발전하기 위한 새로운 변화의 시대를 예고하는 것이다. 우리 시는 유네스코문화유산에 등재된 부석사, 소수서원을 비롯해 천혜의 경관을 갖춘 소백산, 무섬마을 외나무다리 등 다양한 문화유산과 자연을 보유한 고장이다. 현대인들은 도심으로부터 벗어나 쾌적하고 디자인이 아름다운 녹색 도시로의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현대인들이 원하고 바라는 트랜드에 맞춰 영주시는 자연도시로서의 성장력을 함께 키워나갈 것이다. 우리 영주시는 사람이 살기 좋은 도시, 미래가 있는 도시, 생명력 있는 도시로서 누구나 오고 싶고 살고 싶은 도시를 목표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영주시는 미래가 있는 도시로의 성장을 위해 산업, 관광, 교육, 농업, 복지, 문화가 우리 생활속에 녹아들 수 있는 시민과 함께하는 행정을 펼쳐나갈 것이다. 영주시가 주민의 뜻을 살린 행정을 구현하는 것은 지방자치시대의 기본적인 이념을 따르고 이곳 영주에서 생활하고 삶을 이어가는 근본이 바로 시민들이기 때문이다. 영주시는 앞으로도 후세에게 물려 줄 미래가 있는 영주, 시민이 중심되는 영주, 누구나 오고 살고 싶은 영주 건설을 위해 진정한 지역의 리더인 시민의 뜻과 생각을 반영한 행정을 구현에 나갈 것이다.

2024-11-10

어머니의 손. 어린 시절 엄마의 손에는 늘 상처가 있었다. 밴드도 붙이지 않은 손가락에는 곳곳이 칼에 베어 살들이 벌어져 있었다. 엄마는 피가 마르지 않은 손으로 빨래도 척척 해내고 설거지도 후다닥 해치웠다. 그 손이 아플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보지 못했다. 엄마는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인 나의 아버지가 아팠다. 어린 자녀들을 두고 아픈 남편을 대신해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엄마는 젊은 나이에 시장에서 회를 팔았다. 회를 뜨는 일은 경험이 없는 엄마에게는 생소한 일이었다. 회를 뜨는 칼에 생선살과 함께 자신의 살도 베는 일이 많았다. 그 상처는 보이지 않는 가슴의 상처와는 비할 수가 없었다. 살아 내어야 한다는 강한 의지는 아버지도 살려냈다. 아버지는 엄마의 억척스러운 손으로 인해 새로운 생명을 찾았다. 엄마 손에 가락지만 주렁주렁 달아 주겠다던 아버지의 약속은 금이 간 지 오래다.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겠다던 다짐은 온데간데없다. 엄마의 손은 눈물로 젖어 불어 있었다. 건강을 찾은 아버지는 엄마의 삶을 보상해 줄줄 알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겉돌았고 일하는 엄마를 대신해 우리를 돌보지도 않았다. 일에 지친 엄마는 가끔씩 악을 썼다. 엄마는 일생을 젖은 손으로 우리를 공부시켰고 결혼도 시켰다. 일흔이 넘어서야 물에서 손을 떠나보냈다. 우리들이 엄마가 되고 나니 이따금 마음의 말을 내어 놓는다. 손 한 번 잡고 살려줘서 고맙고, 고생 시켜 미안 하다는 말 한 마디만 해 주면 고생 한 거 다 잊을 것 같다며 야속한 아버지를 탓했다. 몇일 전 오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가 침대에서 떨어져 꼼짝을 못한다며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에 왔다고 했다. 누워 있던 엄마의 다리는 미이라 같았다. 왼쪽 발에서부터 골반까지 하얀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엄마는 일어나 앉지도, 옆으로 돌아눕지도 못했다. 자신의 다리를 혼자서 굽히지도, 들지도, 펴지도 못했다. 수술을 할 때까지 그저 천장만 바라보며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침대에서 떨어져 고관절이 산산 조각이 났다. 당장 수술을 해야 했지만 심장이 좋지 않은 엄마는 늘 아스피린을 복용했다. 일주일을 기다려야 했다. 누워서 죽만 받아먹고 물도 빨대에 꽂아 먹이고 양치도 누운 상태에서 했다. 소변 줄을 달고 큰 볼일도 기저귀를 통해서만 가능했다. 엄마는 볼일이 힘들어 거의 곡기를 끊었다, 김경아 작가 엄마의 손은 허물 벗은 뱀 껍질처럼 물기하나 없었다. 거죽만 남은 엄마의 손을 닦이고 로션을 발랐다. 엄마의 손은 이불에 닿을 때마다 까슬까슬 소리가 났다. 거칠었다. 가정을 위해, 어린 자식을 위해 ‘여자의 손’을 포기 하고 선택한 ‘엄마의 손’이었다. 수술 전 날 가족들이 다 모였다. 집에서 걱정만 하던 아버지도 오셨다. 청각 장애가 있는 아버지는 조용한 장소에서는 의사소통이 힘들다. 아버지는 그저 말없이 앉아만 있었다. 옛 세대들이 그렇듯 힘들어 하는 엄마 앞에서도 무덤덤해 보였다. 저녁이 되었지만 아버지는 집으로 가지 못하고 발지도만 그렸다. 겨우 일어나 나가던 아버지는 자꾸 엄마 쪽을 보았다. 문을 열고 나가려다 돌아서서 성큼성큼 엄마에게로 왔다. 갑자기 이불 속에 있는 엄마 손을 꺼내더니 덥석 잡았다. 그리고는 큰 소리로 말했다. “마이 무라. 손이 이게 뭐고. 다 말라 비틀어졌다. 마이무래이” 아버지 두 손 안에 엄마 손 하나를 감싸 잡았다. 앉아 있는 내내 하고 싶었던 마음의 말을 입으로 삼키다가 돌아서서 한 마디 하고는 다시 돌아섰다. 엄마 눈에는 왜 눈물이 고였을까. 엄마는 수술로 인해 아프고 불편한 다리를 가졌지만 평생을 삭혀둔 가슴의 상처가 치유 된 듯하다. 아버지의 말대로 엄마는 많이 드시고 손에 조금씩 살이 차올랐다. 수많은 손들이 있지만 자식을 향한 수만 가지의 사랑과 정성이 들어 있는 세상의 어머니들 손은 아름답다. 아팠던 손 안에서 상처가 꽃이 되어 삶의 꽃이 피어났다.

2024-11-10

속도 관리의 중요성

김종찬 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기업의 성과를 견인하는 것은 리더에게 부여된 매우 중요한 미션이다. 그래서인지 서점가에는 리더가 갖춰야 할 지침서 격인 서적들이 넘쳐나고 있다. 또한 콘퍼런스다 강연이다 하여 훌륭한 강사들이 연일 교훈적인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인덕을 갖춰라’ ‘MZ 세대는 이렇게 소통해라’ 같은 뻔하면서 현장성 떨어지는 소리는 책을 덮게 만들고 강의실을 나서는 순간 휘발되어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교훈이 감성은 두드려도 성과로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소통이나 공감 능력도 다양한 세대를 아우르는 지금의 시기에 매우 중요함에 틀림이 없으나, 성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존경받는 리더로 남을 가능성은 낮다. 성과가 곧 리더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기업이 고객에게 제공하는 가치가 제품의 가격보다 커야 하는 것이 전통적 생존 방법이라고 한다면, 이제는 기술력으로 세상에 가치를 더하고 인류에 효용을 제공하는 역할이 지속가능 기업의 생존 방정식이다. 서양에서 고래잡이 포경을 하던 주요 이유는 고래 고기가 아니라 양초를 얻기 위해 고래의 두터운 지방층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19세기 수십 년 동안 번성했던 포경의 황금시대를 종식시키고 고래를 살려 환경 파괴를 막은 것은 인간의 동물에 대한 인류애적 인식의 변화가 아니라, 인류가 사용하지 못하던 원유를 정제해서 연료로 바꾸어준 정유 기술 덕분이다. 존 록펠러가 세운 스탠더드 오일에서 생산된 석유가 값싸게 공급되면서 촛불은 가정에서 빠르게 사라졌으며, 그 자리를 호롱불이 대신하면서 기술로 세상에 가치를 더하는 기업의 역할이 새롭게 정의되기 시작한 것이다. 인류를 구원할 아무리 훌륭한 기술도 값싸게 공급할 수 없다면 지속가능성은 현저히 줄어든다. 상품의 시장 지속력을 결정하는 가격이나 기술력은 속도가 핵심 요소이다. 그래서 리더의 능력은 속도 관리에 있다. 상품 개발 단계부터 완성까지 소요되는 속도,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젝트를 리딩 하여 성과를 내기까지의 속도, 계획된 생산량을 불량 없이 완성하는 속도가 리더의 성과 지표이다. 방향성도 중요한 항목이긴 하나 속도가 결여된 방향성은 희망고문일 뿐이며, 속도는 신속한 방향 수정을 통해 만회할 수 있는 골든 타임을 제공한다. 속도는 성과를 시간으로 나눈 값으로 정의할 수 있다. 기업의 리더는 관리범위에 있는 일의 속도를 읽을 수 있어야 하고, 정지해 있거나 속도가 떨어지면 사람이나 설비 또는 표준화된 방법에 문제가 발생된 것임을 알고 대책을 신속히 입안해야 한다. 1시간에 10개를 생산하던 속도가 5개 생산으로 느려졌다면, 실제로는 30분 동안 설비가 정지했다는 인식을 하고 즉시 근원적 원인을 찾아야 한다. 생산 속도는 느려졌으나 전력 등 제반 비용은 그대로 공급되고 있을 테니 상품을 만드는 가격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높은 가격은 시장이 외면하여 이익은 소멸되고 기업은 경쟁에서 밀려나게 될 것이다. 우리가 프리미어 리그에 열광하는 것도 선수들이 보여주는 속도에 있고, 90분은 어느 리그에서나 똑같이 흘러가지만 속도는 다르다는 것을 직시해야 하는 이유이다.

2024-11-10

공자가 정명을 말한 뜻은

유영희 작가 우리 삶에 큰 영향을 주는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고 있다. 그 여러 사건의 한 축에 있는 인물이 명태균이다. 그는 자신이 여론을 조작하여 윤석열 대통령의 당선을 도왔다든지 김건희 여사의 공천 개입을 의심할 만한 내용들을 폭로하며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그는 부부와 대화한 내용을 폭로하며 이슈몰이를 하다가 지난 8일 8시간에 검찰 조사를 받고 나왔다. 검찰에서 나오면서 그는 기자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전제 군주 시대에는 권력이 군주에게서 나오고, 군주의 눈과 귀를 가리는 사람이 십상시였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국민에게서 권력이 나온다.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 거짓 뉴스, 허위 보도, 그리고 허위보도를 퍼나르는 패널들이 우리 사회의 십상시다. 언론은 국민에게 좋은 안경을 끼워줘야 한다. 뉴스토마토와 강혜경은 거짓의 산이다. 조사하면 그 거짓의 산은 무너질 것이다.’라는 취지의 말을 남겼다. 명태균이 기자들에게 한 말을 듣자니, 공자가 정명이 생각난다. ‘정명’은 ‘논어’ ‘안연’ 편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다. 공자의 제자 자로가 “만일 위나라의 왕이 선생님을 맞이하여 정치를 맡긴다면, 무엇부터 하시렵니까?”라는 물음에 공자는 바로 “반드시 먼저 이름을 실제와 맞게 하겠다.”고 하였다. 공자가 이름을 실제와 맞게 하겠다고 말한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말이 통하지 않아 백성이 어쩔 줄 모르는 상황이 오기 때문이다. “이름이 실제와 맞지 않으면 말이 통하지 않고, 말이 통하지 못하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고,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예악이 흥하지 못하고 예악이 흥하지 못하면 형벌이 적당하지 못하고 형벌이 적당하지 못하면 백성들이 손발을 둘 곳이 없다.” 여기서 예악은 기본 상식이다. 말이 통하지 않아 일이 진행이 안 되면 상식이 무너지고, 형벌이 공정하게 집행되지 않게 되며, 그러면 국민은 어떤 일로 벌을 받을지 전전긍긍하여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명태균의 말대로 우리 사회 체제는 민주주의이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그래서 국민이 대통령을 뽑은 것이고, 임기 동안 국민의 권력을 대통령에게 위임한 것이다. 그러니 현실에서 권력은 대통령에게서 나온다. 위임한 권력이 제기능을 못할 때 비판하는 것은 주권을 가진 국민의 권리다. 그것이 우리 사회의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이름에 걸맞는 실제이다. 명태균은 언론을 십상시라고 하지만, 언론과 국민의 관계가 권력자와 권력자 측근의 관계라고 할 수 있는지도 매우 의문이다. 십상시는 중국 후한 말 제12대 황제 영제 때 황제 가까이에서 국정을 농락한 10여 명의 환관들을 말한다. 영제는 십상시의 대장인 장양을 아버지라고 부를 정도여서, 그들은 황제의 후광을 업고 많은 땅을 차지하였으며 그들의 부모형제까지 권력이 대단했다. 이들은 주로 벼슬을 팔고 사는 매관매직으로 권력을 행사했다. 뉴스토마토의 영향력은 십상시가 누렸던 권세와는 전혀 다르다. 이름을 실제에 맞게 붙이는 것은 언어를 소통하게 하는 힘이니, 민주주의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2024-11-10

현안에 대한 대통령 회견, 잦을수록 좋다

윤석열 대통령이 어제(7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취임 2주년 기자회견을 했다. 윤 대통령이 진행한 공식기자회견은 2022년 8월 17일 취임 100일 회견 이후 1년 9개월 만이다. 회견은 15분간의 담화 발표 후 2시간 넘게 진행됐다. 윤 대통령은 회견에 앞선 담화에서 “주변의 일로 걱정을 끼쳐드려 죄송하다”며 국민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다. 그는 무엇에 대한 사과인지 구체적으로 특정해달라는 기자 질문에 “사과의 대상을 구체적으로 말하기에는 지금 너무 많은 이야기가 있다. 사실 잘못 알려진 것도 많은데 대통령이 맞다 아니다 다퉈야 하겠는가”라며, 사과의 대상을 특정하지 못하는 것을 양해해달라고 했다. 최대 현안인 ‘김건희 여사 특검법’에 대해서는 “사법 작용이 아닌 정치 선동”이라며 반대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대통령 부부가 김영선 전 의원의 공천에 개입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명태균씨와 부적절한 일을 한 것도 없고 감출 것도 없다”고 했다. 김 여사가 명씨와 지속적으로 연락했다는 의혹에 대해선 “취임하고 나선 몇 차례 연락했다고 하고, 일상적인 것들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대구경북 지역 지지율이 10%대로 추락한 것과 관련해서도 솔직한 심경을 밝혔다. 그는 “제가 대통령이 돼서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은 사실 대구경북 지역의 절대적인 지지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앞으로 “대구경북 지역과 전체 국민께서 속상해하지 않으시도록 잘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날 회견을 두고 여야는 예상한 대로 극과 극의 평가를 내놨다. 국민의힘은 “솔직하고 진솔한 회견”이라고 평가한 반면, 야권은 “의혹이 해소되지 않아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윤 대통령이 이날 김 여사 문제 등 껄끄럽고 예민한 질문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답변을 피했지만, 2시간이 넘는 회견시간임에도 최대한 성의있는 답변 태도를 유지한 것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앞으로 각종 현안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이런 기자회견이 자주 열리기를 기대한다.

2024-11-07

트럼프 리스크, 지역경제도 비상 대응 준비를

미국 47대 대통령에 트럼프 후보가 당선되면서 국내 경제·외교·안보 등에 큰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가장 강력하고 번영하는 미국을 만들겠다”고 공언한 그의 말대로 미국은 앞으로 더 강력한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펼칠 것이 예상된다. 이는 향후 국제 및 동북아 안보질서의 격변을 예고하는 것으로 바이든 미 정부와 굳건한 동맹관계를 맺어온 한국으로서는 트럼프 리스크가 예상보다 클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트럼프 리스크는 국방, 외교, 경제 등 전반에 걸쳐 일어날 수 있으나 방위비 분담, 수출 제약 등 경제적 측면에서 가장 큰 충격이 예상된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의 대표정책인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전기차 판매 의무를 없애겠다고 공언한 것은 국내 산업에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또 미국과 중국의 관세 갈등도 우리 경제를 불안케 하는 요인이다. 중국과 미국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경우 수출에 나쁜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트럼프 당선으로 우리 수출이 최대 448억 달러(62조원)가 줄어들 것을 예상했다. 국내 총수출의 7% 수준이다. 가뜩이나 내수경기가 부진한 우리나라는 트럼프 리스크로 국내 경제가 매우 어려워질 수도 있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전략적이고 정밀한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 지역경제 분야도 마찬가지다. 대구·경북의 수출을 주도해 온 2차전지와 반도체, 철강 등에도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2차전지는 지역수출의 30%까지 올라섰으나 트럼프 집권 후 IRA가 폐지되면 수출 경쟁력은 물론 수익성도 추락할 것이 예상된다. 경북 경제의 중심지인 포항과 구미 산업기지에 미칠 파장을 미리 검토하고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대구시와 경북도, 상공회의소 등 지역경제 관련단체들은 트럼프 리스크가 지역경제에 미칠 영향을 미리 파악하고 정부에 건의할 것은 건의하고 대비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지역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네트워킹을 구축해 정보를 공유하고 대응 방안도 제시해야 한다. 지역경제계의 노력에 따라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2024-11-07

드론 강국

우정구 논설위원 지난달 18일 우크라이나군 최고의 드론 조종사 빅토르 스텔마흐가 29세 나이로 사망했다는 현지 보도가 나오면서 드론이 전장에서 얼마나 중요한 무기가 되고 있는지를 다시한번 되새기는 계기가 됐다. 군사력이 약한 우크라이나가 세계 최강의 러시아와 대등하게 전쟁을 치를 수 있는 배경에는 단연 드론이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가 드론전에서는 사실상 최강자라는 평가도 내놓고 있다. 이날 사망한 빅토르는 최정예 드론 조종사다. 우크라이나 드론부대 창설멤버이며 드론 훈련을 주도한 인물이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전장에서 그는 러시아군 500명을 사살한 우크라이나 전쟁 영웅이다. 최근 우크라이나에서는 또 한명의 젊은이가 드론 영웅으로 화제를 모았다. 학창시절 공부는 안 하고 비디오 게임만 한다고 늘 핀잔받던 한 젊은이가 러시아군을 잡는 저격수로 등장했다는 뉴스가 소개됐다. 이처럼 우크라이나는 드론전에 익숙한 젊은세대가 많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 미래전쟁은 드론전으로 갈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단순히 무인항공기 정도로 알았던 드론이 최첨단 장비를 장착하면서 이제는 전쟁의 양상을 바꿔가고 있다. 드론은 전쟁에서 정찰, 감시, 타격 등의 다양한 임무 활동을 동시에 수행한다. 저비용으로 적의 방어를 무력화하는 최고의 전력 수단으로 등장한 것이다. 북한에서 보낸 드론이 서울 상공에 나타나면서 우리나라도 드론작전 사령부가 올해 창설됐다. 드론을 군사 전략화하는 신예부대다. 게임 등 디지털 문화가 세계에서 가장 능숙하다는 한국도 드론 강국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11-07

TK신공항, 제대로 가고 있는가?

박형수 국회의원(국민의힘 경북도당위원장/의성·청송·영덕·울진) TK신공항 건설 사업이 표류하고 있어 시·도민들의 우려와 걱정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구시가 지난 1년여 간 매달려온 SPC(민관공동개발 특수목적법인) 구성이 건설경기 침체 등으로 최종 무산됐다. 대구시는 이제와서 ‘기부대양여’라는 사업방식을 바꾸어 정부의 공적자금을 지원받아 사업을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여기에다가 신공항의 화물터미널 위치 문제도 타협점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화물터미널 위치에 대해 국토부, 국방부, 경북도, 의성군 간의 관계기관 실무협의체를 가동해 어렵게 실마리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홍준표 대구시장이 의성군민들의 서측안 주장을 ‘이익집단의 억지와 떼쓰기’로 매도하며, 이전 대상지를 옮기는 ‘플랜B’를 추진하겠다고 언급해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관련 법률과 주민투표에 따라 결정되어 법률에 명시된 이전대상지를 대구시 임의로 변경하는 ‘플랜B’는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점이다. 경북도와 의성군이 주장하는 화물터미널 서측안은 민간투자로 조성될 항공물류단지와 항공정비산업단지의 확장성·경제성·효율성을 고려한 것이다. 그럼에도 국토부는 당장의 비용과 군 작전성을 들어 동측안을 받아들일 것을 종용하고 있다. 동·서측안의 화물터미널 조성비용 문제에 대해서도 국토부와 경북도의 계산이 거의 2000억 가까이 차이가 나며, 양측은 서로 상대측이 제시한 위치가 경제성이 없다는 주장이어서 교차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리고 군작전성 문제는 국회와 국방부 간에 수차례 소통한 결과, 국방부(공군)는 ‘동측안이 작전여건상 유리하지만 서측안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혀 왔다. 이런 상황에서 느닷없는 대구시장의 ‘떼쓰기’, ‘플랜B’ 발언은 대구시의 SPC 미구성 책임을 희석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마저 들게 만든다. 여기서 우리는 사업표류의 책임 공방을 떠나 TK신공항 이전사업이 당초 왜 추진되었는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출발은 대구 시민들의 항공기 소음문제 해결과 후적지 개발을 통한 ‘대구 발전’을 위해 시작되었다. 경북도 역시 소음을 떠안고 군위군을 대구시에 떼주면서까지 공항유치에 나선 것은 ‘지역발전’을 위해서다. 그렇다면, 해결 방향은 자명하다. 신공항 건설은 대구와 경북 모두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대구시 분석에 따르면, 사업방식에 따른 금융비용만 14조8000억원에서 3조1000억원까지로 추산된다. 이러한 천문학적 금액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당장의 1000억~2000억원의 화물터미널 건설 비용의 과다를 따지면서 갑론을박할 때가 아니다. 지금이라도 대구시와 경북도는 공적자금을 지원받든, SPC 구성을 공동으로 추진하든 신공항 이전을 위한 최적의 방안을 속히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화물터미널은 장래 항공물류 허브 공항으로 도약할 수 있는 확장성과 발전성이 있는 입지를 선택하여 국토부와 국방부, 기재부 등 관계부처 설득에 함께 나서서 대구경북의 상생발전을 이끌어야 한다.

2024-11-07

대왕고래의 꿈, 산유국(産油國)

윤영대전 포항대 교수 지난 6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은 첫 국정 브리핑에서 “포항 앞바다에 막대한 석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깜짝 발표’를 했었다. 물리탐사 결과 동해안 영일만에 석유가스전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 아래, 세계적 기술팀에게 의뢰한 결과 매장량이 최고 140억 배럴에 달하는 석유와 천연가스가 있을 가능성을 보고받았다는 것이다. 매장량 1/4이 석유일 것이라는데 그 35억 배럴은 우리나라 연간 석유수입량이 약 10억 배럴이니 4년을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이에 한국석유공사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시추 승인을 받아 12월 중순부터 포항 동쪽 50㎞ 떨어진 8광구와 6-1광구에서 시추하는 ‘대왕고래 프로젝트’를 실시할 예정이다. 결과는 내년 상반기에 발표될 것이며 확률은 20%로 보고 있다. 매장이 확인되면 석유가스전을 개발하게 되는데 2028년까지 탐사 시추를 하고 2035년부터 상업 개발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석유 이야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76년 1월 박정희 대통령은 연두 기자회견에서 ‘포항에 석유가 난다’며 작은 병에 든 석유를 마셨고 TV를 시청하던 사람들은 일어나 만세를 불렀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석유가 아니고 정제된 경유로 밝혀지면서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나버렸다. 만약 그때 석유가 나왔다면 막 철강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던 포항제철은 어떻게 될까? 하고 염려도 했었다. 3년 후 한국석유공사가 설립되고 대륙붕 탐사를 계속한 결과 1987년 심해 가스층을 발견하며 1~8광구를 설정하였으며, 그중 8광구는 최대 매장량이 있을 것으로 보아 바다에서 제일 큰 동물인 ‘대왕고래’라 명명했다고 한다. 앞으로 국력을 기울여 대왕고래 작전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우리나라는 매장량 140억 배럴인 세계 15위권의 산유국이 되는 것이다. 사실 2002년 김대중 대통령 때 ‘동해-1’ 해양플랜트 기공식을 갖고 2년 후부터 천연가스를 생산하여 오다가 2021년에 중단하고 현재 시설을 철거 중이다. 포항의 옛 지명은 신라시대 때 퇴화현(退火縣)이라 했다. ‘불이 꺼졌다’는 뜻이니 아마 옛날부터 가스가 나와 불길이 치솟은 것은 아닌지? 포항 지역은 지하자원 매장 가능성이 높은 신생대 3기 지질이고 최근까지 철길공원의 ‘불의 정원’에는 가스가 타고 있었다. 작년 8월까지 15년간 탐사했던 호주의 석유개발 회사가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결론을 내렸다지만 더 발전된 방식으로 유전을 찾아내어 푸른 동해바다에 커다란 대왕고래가 헤엄치는 꿈을 이루듯 우리 기술로 거대한 해양플랜트를 세워서 지구 속 에너지를 퍼올렸으면 하는 마음이다. 일부 환경단체에서는 ‘탄소중립 계획에 반대되는 일’이라면서 메탄가스 배출량이 크고 시추와 개발에 10년 이상 소요된다고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천연가스와 석유를 생산하는 에너지 부국으로 장밋빛 경제 효과를 가져오게 되면 ‘바다가 흥한다’는 흥해(興海)의 예언도 이루어지지 않을까. 포항은 최근 2차 전지와 바이오 산업에 이어 수소연료 특화단지를 구축하여 3관왕을 이루었으니 해양 석유개발이 현실화 되면 금상첨화이리라.

2024-11-07

들꽃 산책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들길은 꽃길이다. 철따라 온갖 풀꽃들이 피고 진다. 나는 날마다 그 꽃길을 걸어서 들을 한 바퀴 도는 산책을 한다. 들길 산책은 좋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 중에서도 풀꽃을 만나는 기쁨을 빼놓을 수 없다. 꽃들은 언제나 나를 반겨 활짝 웃는 모습이다. 몰려든 군중들의 환호를 받는 유명인사의 기분이 어떤지는 몰라도, 풀꽃들의 환대를 받으며 들길을 걷는 것보다 더 좋을 것 같지는 않다. 이 고장은 기온이 온화한 편이어서 겨울에도 피는 풀꽃이 더러 있다. 개쑥갓이나 봄까치꽃은 혹한이 닥치면 잠시 움츠렸다가 조금만 기온이 올라도 무작정 꽃을 피운다. 물론 양지바른 둑길 밑을 눈여겨봐야 겨우 보이는 작고 희미한 꽃이다, 제철에 무리지어 화사하게 필 때도 좋지만, 삭풍을 맞으며 명주실오리 같은 겨울햇살을 부여잡고 간신히 피어있는 풀꽃이 더 뭉클한 감회로 다가온다. 크고 화려한 꽃보다 초라하고 가냘픈 겨울 풀꽃이 더 감격적인 것은 나뿐일까. 봄날엔 민들레가 이 들녘의 주인공이고 여름에는 개망초꽃, 가을에는 코스모스와 미국쑥부쟁이가 주종을 이룬다. 가을이 깊어 추수가 끝나가는 들길에는 뚱딴지꽃과 왕고들빼기꽃이 눈길을 끈다. 돼지감자로도 불리는 뚱딴지는 해바라기과로 토양이 좋으면 3m까지도 자란다. 꽃은 작지만 해바라기를 닮았다. 이름이 뚱딴지인 것은 엉뚱하게도 땅속 덩이줄기가 감자를 닮아서 붙여진 거란다. 야생으로 많이 자라지만 당뇨 등에 약효가 있다고 재배를 하기도 한다. 푸른 가을하늘을 배경으로 높다랗게 피어 있는 샛노란 꽃은 가을의 정취를 자아낸다. 왕고들빼기 꽃이 지금 한창인 것은 여름 내 수시로 뜯어먹었기 때문이다. 왕고들빼기는 식용으로 용도가 다양하다. 봄에는 뿌리째 뽑아서 겉절이나 김치를 담기도 하고, 여름에는 순을 잘라서 생으로 쌈을 싸먹거나 데쳐서 무치거나 비빔밥에 넣으면 쌉싸름한 맛이 산나물 못지 않다. 잎이 자란 순을 자르면 얼마 안 가서 더 많은 순이 돋아나서 여름 내내 거듭해서 뜯어먹을 수가 있다. 연노랑 왕고들빼기꽃은 가을이 깊어갈수록 생기를 더해가는 쑥부쟁이에 비해 연약해 보이는데, 아기의 배냇저고리처럼 포근한 느낌을 준다. 물론 그밖에도 빼먹으면 섭섭해 할 들꽃이 많다. 그 중 하나가 여뀌꽃이다. 꽃이 붉고 잎이 매운 여뀌를 엮어서 문설주에 매달아 두면 역귀(疫鬼)를 물리친다고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여뀌는 종류가 많은데, 그 중에서 붉은털여뀌와 흰여뀌가 가장 꽃이 탐스럽고 곱다. 이른 봄의 한 때를 장식하는 광대나물꽃과 흐린 날과 밤에만 피는 달맞이꽃, 메꽃, 달개비꽃도 들길에서 반갑게 만나는 친구들이다. 가을이 깊었다. 또 한해가 기운다. 올해도 나는 꽃길을 걸어서 여기까지 왔다. 언제나 들꽃들이 반겨주어서 내 삶은 외롭거나 쓸쓸하지 않았다. 남은 가을은 쑥부쟁이가 동행을 할 것이고, 겨울이 오면 늦게 핀 개쑥갓의 배웅을 받으며 이 해를 넘어갈 것이다. 그러면 또 봄까치꽃이 또 마중을 나올 것이고. 내 생을 마치는 날, 나는 꽃길을 걸어서 한세상 지나왔노라고 말 하리라.

2024-11-07

트럼프 is back!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미국 47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박빙의 승부가 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개표 초반부터 경합 주에서 트럼프가 선전하며 일찌감치 당선을 확정지었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단순히 호기심 때문이 아니라, 그만큼 미국 대통령이 누구인가에 따라서 우리나라에 주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8년 전 트럼프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때와 비교해 보면, 당시에는 트럼프라는 정치 신인이 어떤 정책을 어떻게 결정할 것이며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 예측하기에 어려워 많은 이들을 혼란에 빠지게 하였지만, 이번에는 지난 2017~2021년 간의 임기를 통해 차기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예상해 볼 수 있다. 우리나라가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게 될 분야는 바로 국방 분야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기조가 미국우선주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리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번에도 주한미군 방위비 협상 등과 같은 부분에서 우리의 경제적, 군사적 부담이 훨씬 커질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에도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파행을 거듭하다가 결국 바이든 행정부에 이르러서야 타결되었던 경험이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10월 4일 제12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을 타결하여 2026년부터 2030년까지 분담금 규모를 확정하였으나, 이에 대해 트럼프 후보는 한미 방위비 분담금을 재협상할 수도 있다는 발언을 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이 개시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의 가장 가까운 우방국으로 반세기 이상 역할을 해 온 미국에서 대통령이 먼저 이러한 자세를 취하는 것은 우리로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서 일각에서는 독자 핵무기 개발 등 급진적인 주장을 하는 목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여전히 북한의 핵 위협이 존재하는 상황 가운데,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우리와 군사적으로 가장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미국이 우리나라 국방에 점차 발을 빼려는 모양새를 취하면, 우리나라도 그에 상응하는 행동을 취하거나 실제로 핵무기를 개발하지는 않더라도 스스로 방어할 수 있는 자세를 취해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핵무기가 국제사회에서 갖고 있는 상징성을 고려하지 않은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다. 핵무기는 그 자체로 살상력이나 파괴력으로 인류에게 큰 위협이 되기 때문에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더 이상 핵무기를 보유하거나 확대하지 말자는 핵확산금지조약에 가입하여 핵에너지의 평화로운 사용에 합의하고 이행 중이다. 핵무기 개발을 주장하는 것은 북한 등과 같이 국제적 왕따를 자처하는 것으로 국가 안보의 선택지에 넣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우리는 단순히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에 응하지 않으면 그만일까?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을 지속적으로 요구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이고, 만일 우리가 그에 응하지 않는다면 여러 가지 형태로 경제적 압박을 가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트럼프는 후보 시절 외국에 일괄적으로 관세 10~20%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반도체, 자동차 등에서 對美 무역흑자를 거두고 있는 입장에서는 미국의 이러한 조치가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예측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에서는 미국의 관세 정책을 실제로 실행할 경우 우리나라의 총수출액이 최대 448억 달러(약 61조 7000억 원)가 감소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에 대한 직접적 관세 부과에 따른 감소액이기도 하지만, 다른 국가로의 중간재 수출이 감소하는 효과도 고려한 데에 따른 예상이다. 김준협 RISTI 미래전략연구소 책임연구원 무역 분야뿐 아니라 트럼프 당선 이후 금리, 환율, 주가 등 금융 시장에 미칠 파급력에 대한 전망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관세를 인상함과 동시에 국내적으로는 감세 정책을 본격화하고 불법 이민자 추방 등을 실행하게 되면 임금 상승 및 물가 상승이 촉발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지난 9월 연방준비제도에서는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를 낮추는 ‘빅컷’을 단행하며 기준금리 인하 기조로 접어들고 있어, 물가 상승에 대한 우려가 더욱 커질 수도 있는 상황에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한미동맹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있어 미국 대선 결과가 더욱 크게 와닿을 수 있겠지만, 우리와는 멀리 떨어져 있는 유럽 국가들에게도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주는 의미가 크다. 트럼프 1기 시절 유럽에 방문하며 나토(NATO)에게 안보 무임승차에 대해 비난하며 나토 탈퇴까지 언급한 적이 있었다. 나토의 안보 우산 속에 있는 유럽 국가에게는 이러한 움직임에 큰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전 세계가 최소한 4년 동안은 각자도생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전 우리 부모님 세대가 겪었던 ‘보릿고개’가 국가 차원에서 안보·경제 등의 분야에 찾아온 것이라고도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부디 지혜롭게, 그리고 우리나라가 국가 차원에서 큰 손해를 입지 않는 앞으로의 4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2024-11-06

휴가만족도 1위 도시 경주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황금의 천년왕국’으로 불렸던 신라의 유적과 유물이 도처에 산재했고, 거대한 왕릉과 고분이 우뚝 솟아 여행자를 놀라게 하며, 황리단길 곳곳에 자리한 맛집이 사람들의 미각을 자극하는 도시가 바로 경주다. 내외국인을 불문하고 경주가 매력적인 관광지로 떠오른 것은 이미 오래 전이다. 휴가를 계획하는 이들 사이에선 제주도와 동해안의 인기를 넘어섰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려왔다. 최근 휴가지로서 경주가 지닌 위상을 확인해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지난 9월 여행리서치 전문기관 컨슈머인사이트는 국내로 여름휴가를 다녀온 1만7077명에게 여행지가 어디였는지, 그곳에 얼마나 만족했는지, 다른 사람에게 추천할 의향이 있는지를 물었다. 그 결과 경주가 전국 54개 지자체 중 휴가지 만족도 1위를 차지했다. 경남 산청, 강원 평창, 전남 순천, 강원 고성 등의 도시가 뒤를 이었다. “경주는 볼거리는 물론 실용적인 기념품 구입이 가능하다는 것 등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고, 안전과 치안, 청결과 위생 항목 평가에서도 점수가 높았다”는 게 조사기관의 부연. 세월의 흐름에 따라 사람들의 휴가 패턴이 바뀌고 있다. 아무리 경치가 좋고 이름난 곳이라 해도 숙박업소와 음식점의 터무니없는 바가지요금과 상인들의 불친절, 지저분한 환경을 웃으며 넘어갈 관광객은 이제 없다. 관광은 21세기 유망산업으로 주목되며, 한국 대부분의 지자체가 여행자 유치에 골몰하고 있는 상황이다. 시야를 조금 넓혀보면 이는 한 도시의 흥망과도 연결된 문제다. 무엇이, 어떤 노력이 사람들을 불러들일 수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현명한 관광정책을 세우는 지자체들이 늘어가길 기대한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11-06

왕과 대통령, 백성과 국민

장규열 고문 대통령이 국민 앞에 나서기로 하였다. 소란스러운 정국을 설명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나설 터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우방 미국은 대선을 치른다. 새 대통령이 선출되면 대한민국과 어떤 관계를 이어갈 것인지도 사뭇 관심을 끈다. 조선이 무너진 후 짧았던 대한제국을 거쳐 일제강점기를 지나 그리 심도깊은 훈련없이 우리는 민주정체를 국체로 삼았다. 그래서였을까, 산업화의 귀한 발자취를 남기면서도 우리는 본격적인 민주화에는 더디 다가섰다. 아직껏 무르익었다 말하기 힘든 민주주의의 토대는 언제 든든하고 편안하게 설 것인지, 국민은 늘 목이 마르다. 왕과 대통령은 무엇이 다른가. 그 옛적 백성과 오늘의 국민은 같은가 다른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국민의 기대와 권리가 이따금씩 외면당하고 배반당할 적에 우리는 당혹스럽다. 조선의 백성은 왕정체제의 피지배층으로 왕권에 속하는 존재였지만, 오늘날 국민은 민주체제에서 국가의 주권자로서 독립적 권리와 책임을 가진다. 백성이 피동적 종속자였다면 국민은 능동적 주체자이다. 백성은 왕의 통치 아래 보호받으면서 세금을 내고 의무를 지며 나라의 정책과 정치적 결정에 그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었다. 국민은 선거를 통해 정부를 구성하고 정책과 정치적 결정에 영향을 미칠 권리를 가진다. 법 앞에 평등하고 기본적 인권이 보장될 뿐 아니라 국가는 국민을 보호의 대상일 뿐 아니라 국가의 주체로 인식한다. 대통령은 왕이 아니다. 세습하여 권좌에 올랐던 옛적 왕의 권력은 유교이념과 천명사상으로 정당화되었다. 조정과 신하들의 자문과 조력을 받지만, 왕은 국가의 운영에 있어 무한한 최종결정권을 가졌다. 대통령은 국민이 선거를 통하여 선출하며, 권력은 국민의 선택과 민주주의 원칙에 기반한다. 대통령의 권력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제한되고 국민에 의해 위임된다. 행정부의 수반으로 정책을 결정하지만 입법부인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하고 사법부인 법원의 판결을 존중해야 한다. 왕의 임기는 종신제였지만 대통령은 법에 따라 정해진 임기 동안에만 임무를 수행한다. 왕은 하늘의 뜻을 받들어 다스리는 군주로 신성시되었지만, 대통령은 국민의 대리자로서 민주적인 권위를 가지지만 국민의 신뢰를 받아야 권위를 유지할 수 있다. 대통령의 권위는 헌법과 국민의 지지로부터 비롯한다. 국민을 향한 담화에 나서는 대통령은 국민 앞에 겸허해야 한다. 들려줄 메시지는 간결하고 분명해야 하며, 국민의 시선과 눈높이를 적절하게 헤아려 진솔하고 시의적절해야 한다. 정부에 실수나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행정부 최고위 책임자로서 분명하게 시인하고 타당하게 고쳐 갈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다양한 의견을 가진 모든 국민이 안심하고 일상에 임할 수 있도록 균형있고 사려깊은 주제 선정과 스토리텔링이 있어야 한다. 미국의 다음 대통령으로 누가 선출되더라도 담대하고 자신있게 대한민국의 국익을 지킬 대표성과 책임감이 우러나야 한다. 통치하는 왕이 아니라 대변하는 대통령으로 나서야 한다. 백성이 무서워하는 왕의 모습이 아니라, 국민을 두려워하는 대통령의 참모습을 기대한다.

2024-11-06

대구 분양시장 ‘될 곳은 된다’… 기지개 켜려나

오랜 침체에 빠진 대구지역 부동산 시장이 재건축과 후분양 단지를 중심으로 조금씩 기지개를 켜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관련업계는 1만세대 이상 남아 있던 대구지역 미분양 물량이 9월 기준 8000여 세대로 줄어들었고, 일부 단지의 분양률이 70%를 넘어서는 등 극심한 부동산 경기침체 속에서도 일부지역을 중심으로 분양률이 성공을 거두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대구에서는 모두 7개 단지 4033세대가 분양에 나섰다. 최악의 상황에서 예상을 깨고 e편한세상 명덕역 퍼스트 마크와 범어 아이파크 2개 단지가 조기 분양에 성공한 것. 관련업계는 “장기침체 속에 분양이 그나마 성공한 것은 도심 속의 입지가 좋은 단지는 수요가 있음을 반증한 것”이라며 분양물량이 전무했던 지난해 분양시장과 비교할 때 부동산 시장에 부는 훈풍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재건축과 후분양단지를 중심으로 내년도에는 시간이 걸리지만 서서히 경기가 나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대구는 주택건설 경기가 장기침체에 빠지면서 관련산업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있다. 실수요자들은 살던 집이 팔리지 않아 이사를 못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그나마 올 들어 부분적이나 부동산 경기가 기지개를 켠다고 하니 다행스런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대구는 전국 최다 미분양 물량 보유 등 부동산 경기가 깊은 수렁에 빠져 있는 곳이다. 정부의 특단 대책이 나오지 않고는 회복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란 비관적 관측도 많이 있다. 아파트 할인 분양과 입주자 간 갈등, 시공사 경영위기 등 부동산 침체로 인한 각종 문제가 불거지자 지난해 대구시는 주택건설사업 승인을 전면 보류하는 극단적 조치까지 내렸다. 또 지방의 미분양 주택 해소책으로 수도권과 지방의 이원화된 주택정책을 정부에 건의한 바 있다. 수도권과 지방의 주택관련 정책을 이원화하고 정책적 권한을 지방정부로 이양해 달라는 요구다. 일부단지를 중심으로 겨우 기지개를 켜는 듯한 대구 부동산 시장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무엇보다 지방시장에 대한 정부 관심과 정책적 고려가 뒤따라야 가능하다.

2024-11-06

尹대통령 오늘 회견, 기회로 만들 수 있다

오늘(7일) 오전 열리는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어떤 메시지를 낼 지 주목된다. 윤 대통령은 회견에서 부인 김건희 여사와 관련된 각종 의혹을 소상히 밝히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회견에서 윤 대통령이 각종 의혹과 국정 현안에 대해 어떤 인식과 해법을 내놓느냐에 따라 임기후반부 국정운영의 성패가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염려되는 것은, 윤 대통령이 과거 기자회견 때처럼 자화자찬이나 변명으로 일관해 오히려 논란을 더 키울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올들어 5월(취임 2주년), 8월(국정브리핑) 열린 기자회견은 윤 대통령이 집무실에서 국정 성과 위주의 담화를 발표한 뒤, 브리핑룸으로 이동해 주제별로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는 방식이었다. 당시에는 특정질문에 대한 대통령 답변이 해명에 치우쳐도, 기자들이 거듭 질문할 기회가 없었다. 이번 회견은 기자들이 특정주제에 대해 시간제한 없이 질의할 기회가 주어져 과거의 ‘맹탕회견’이라는 소리는 듣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야당에서는 윤 대통령이 지난 5일 열린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 축사에서 “개혁에는 반드시 저항이 따르게 돼 있다. 저와 정부는 저항에 맞서며 절대 포기하지 않고 국가의 미래를 위해, 우리의 미래 세대를 위해 반드시 완수해 내겠다”고 언급한 점을 예로 들며, 이번 회견에서도 윤 대통령의 독단적인 스타일은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도 언급했듯이, 윤 대통령은 이번 회견에서 국민눈높이에 맞는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 만약 김 여사 문제든, 국정현안이든, 의혹과 논란에 대한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않은 채 구구절절 해명만 하게 되면 민심악화를 피할 수 없다. 이제 윤 대통령이 기댈 곳은 국민뿐이다. 회견 후에도 10%대 지지율이 이어지게 되면, 야당의 탄핵국면 속에서 대통령이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이번 회견은 윤 대통령에겐 기회가 될 수 있다. 국민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해소해 주면서 국정운영의 불씨를 살려나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2024-11-06

찹쌀새알미역국

정미영 수필가 어제부터 세찬 바람을 동반한 가을비가 내린다. 나무가 휘청거릴 정도로 바람이 불자, 그 결에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진다. 낙엽 때문인지 거리가 온통 가을로 꽉 찬 느낌이다.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오니 몸이 으슬으슬 춥고 떨린다. 갑자기 뜨거운 국물이 먹고 싶어 냉장고 속 음식 재료를 살펴본다. 냉동실에 얼려 둔 새알이 눈에 띄어 미역국을 끓이기로 마음을 정한다. 황태채와 불린 미역을 참기름에 볶는다. 물을 부어 한참을 뭉근하게 끓이면서 찹쌀로 빚은 새알과 들깨가루를 넉넉하게 넣는다. 나는 새알이 퍼지는 것을 선호하지 않기에 쫀득해졌다 싶을 때를 기다렸다가 가스레인지 불을 끈다. 알맞게 끓여진 국을 대접 한가득 담아낸다. 그런 뒤에 한 숟가락 떠서 입안에 넣는다. 맛을 음미하다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친정어머니가 알려주신 대로 끓여보아도 매번 친정에서 먹던 그 진한 국물 맛은 아닌 것 같아, 왠지 야속하다. 친정어머니는 내가 감기에 걸리면 ‘찹쌀새알미역국’을 끓여주셨다. 국에 밥을 말아 한 그릇 먹고 나면 온몸이 땀에 젖었다. 그러면 감기약을 먹지 않아도 몸이 낫는 것 같았다. 자식에 대한 사랑과 근심이 버무려져 음식에 담겼기 때문이리라. 나는 아직도 몸이 아프거나 입맛이 없을 때면 ‘엄마표’ 음식이 생각난다. 대학을 졸업한 큰아들이 있는 데도, 내 나이에 상관없이 친정어머니가 그리워진다. 엄마, 하고 나지막하게 불러보면 결혼 전의 내가 떠오르고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러면서 위로가 된다. 지난여름,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서문시장에 갔다. 나는 요즘 대형마트에 가면 온갖 생필품과 음식 재료가 많아 재래시장을 찾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래서인지 모처럼 어릴 적 추억이 떠오르면서 장터를 구경하는 재미가 솔솔 했다. 내 학창 시절까지만 해도 동네 골목시장이 아닌 서문시장 정도의 큰 시장에 가야, 시간가는 줄 모르고 구경할 수 있었다.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세월이 이렇게나 빨리 흘렀다니, 새삼스러웠다. 볼일을 마치고 나니, 점심시간이었다. 보리밥집으로 가서 등받이 없는 긴 벤치 모양의 의자에 앉았다. 자리가 나면 순서대로 앉아야 할 만큼 인기가 많은 곳이었다. 메뉴를 보던 친정어머니께서 새알미역국을 주문하셨다.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면서 친정어머니는 “너희 외할머니는 내가 기운이 없으면 찹쌀새알미역국을 끓여주셨는데.”라고 말씀 끝을 흐리셨다. 그 순간 내 가슴에 찌르르 전율이 흐르며 아렸다. 살면서 생활에 지치거나 힘이 드는 순간이면 나만 엄마가 필요한 줄 알았다. 그런데 팔순을 앞두고 있는 친정어머니께도 돌아가신 ‘엄마’가 필요한 모양이다. 엄마라는 낱말이 갖고 있는 대단한 힘인 것 같다. 실존하지 않는 분이라도 호명하자마자 당신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온몸의 감각 세포를 일깨우는 것임에랴. 예전에 친정어머니가 내 외할머니를 찾아뵈러 갈 때면 손수 미역국을 끓여주셨다고 했다. 국물에 들깨가루를 듬뿍 넣어 주셨다던 외할머니 손맛의 미역국! 첫아이를 유산하고 몸조리를 제대로 못한 채 일상 생활해야 했던 나의 어머니를 한평생 가엽게 여기셨던 외할머니셨다. 친정어머니가 몸져누울 때마다 “그때 미역국 한 그릇 제대로 못 먹어서 그렇제.”라고 안타까워하셨다. 그러면서 찹쌀이 들어간 음식을 먹고 나면 근기가 있어 속이 든든하다고, 일부러 찹쌀로 새알을 빚어 미역국을 끓여주셨단다. 그래서인가. 친정어머니는 내가 삼 남매를 출산할 때마다 미역국은 잘 챙겨 먹었는지부터 물어보셨다. 외할머니와 친정어머니 그리고 나에게로 이어지는, 건강을 챙기라는 당부의 말씀이었다. 아프고 기운이 없을수록 끼니를 든든하게 챙겨먹어야 한다는, 당신들이 체득한 금언 속에는 찹쌀새알미역국이 포함된다. 그것은 우리 집에서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세대 간의 사랑을 표현하는 매개체다. 나는 찹쌀새알미역국을 먹을 때면 그분들의 사랑을 느낀다.

2024-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