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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 않는 불

등록일 2025-11-03 17:33 게재일 2025-11-0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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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길수 수필가

온 산에 타지 않는 불이 타고 있다.

고향 가는 길, 포항-대구 고속도로 기계면 지역을 지날 때 만난 산의 모습이다. 남쪽으로 병풍처럼 둘러선 산이 온통 안 타는 불길로 검붉다. 타지 않는 불이라면 주위에 옮겨붙지나 말아야지, 날이 갈수록 소리소문없이 더 빠르게 온 산으로 번져 간다.

삶에 어이없는 일이 많지만, 조상 대대로 귀히 여기던 소나무들이 속절없이 당하고 있으니 대체 무슨 까닭일까. 수십 년은 자랐을 저 커다란 낙락장송들이 아주 작은 미생물의 감염에 맥도 못 추고, 저렇게 많이 타지 않고도 말라 죽어간다. 바로 소나무 재선충(材線蟲· Bursaphelenchus xylophilus)이 벌인 검붉은 날벼락이다. 날벼락 현장을 억지로 보는 내 가슴이 찌릿찌릿 저리다.

관련 자료에 따르면, 재선충은 크기 1mm 내외의 실 같은 선충으로서 솔수염하늘소나 북방수염하늘소 같은 매개충의 몸 안에 산다. 매개충이 소나무 새순을 갉아 먹을 때 충의 상처를 통하여 나무에 침입한다. 무단 침입한 재선충은 빠르게 증식하며 수분과 영양분의 통로를 막아 소나무를 죽인다. 온전한 치료 약이 없어 감염되면 소나무는 100% 고사(枯死)하고 만다. 지독한 소나무 에이즈다.

소나무 재선충에 감염되는 소나무류는 소나무, 해송, 잣나무, 섬잣나무다. 최근의 산림청 자료에 따르면, 1988년 부산광역시 동래구 금정산에서 소나무재선충병이 최초 발생했다. 아마 수입 목재에 숙주나 충이 붙어 들어 왔으리라. 2025년 5월 기준, 우리나라 소나무 재선충병 피해 현황은 전국 154개 시·군·구에서 149만 그루가 감염되었다. 전국적인 엄청난 피해다.

출퇴근 때 지나다니는 S 초등학교 후문 쪽 녹지에는 25그루의 소나무가 있다. 그중 올 10월 28일 현재 소나무 에이즈로 말라죽은 것은 7그루, 28%다. 인터넷 지도 로드뷰로 이 녹지를 보면, 24년 11월에는 단 1그루(4%)만 재선충에 감염되었었다. 1년 만에 6그루, 24%가 더 감염된 것이다. 이곳의 소나무 재선충감염변화를 피해 통계 자료로 쓰기는 어려워도, 감염속도의 심각성에 경종을 울리는 한 사례가 분명하다.

이 시점에서 가장 먼저 대처해야 할 문제는 ‘고사목의 처리’라고 생각한다. 기후변화로 ‘방제’는 너무 어렵게 보이기 때문이다. 고사목처리의 가장 좋은 방법은 목재, 에너지원 등 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온실가스 측면에서도 소나무가 살아있을 때는 대기 중의 탄산가스를 흡수하지만, 고사하여 썩어가면서 흡수했던 가스를 내놓을 테니까 그렇다.

해마다 극심해지는 산불의 확산에 기폭제 역할을 하는 게 소나무 송진이라는 주장이 많다. 우리도 이젠, 일본처럼 재선충의 전면적 방제보다 꼭 보존해야 할 소나무와 숲을 선별하여 관리하는 선택과 집중 정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나아가 재선충 방제와 오염 소나무의 반출금지에 초점이 맞추어진 ‘소나무재선충병 방제특별법’도, 불가피한 ‘기후변화 현실과 미래를 아우르는 법’으로 바꾸는 지혜를 발휘할 때다. 온 산에 번지는 타지 않는 불을 없애기 위하여···.

/강길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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