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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감 철

등록일 2025-08-25 18:10 게재일 2025-08-2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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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길수 수필가

어릴 때, 고향의 여름은 ‘땡감 철’이었다.

익어도 떫은 감을 땡감이라고도 하지만, 그 무렵 고향에서는 여름 감나무에서 덜 자란 채 떨어진 초록 감을 땡감이라고 불렀다. 산골 마을이어선지 사과, 복숭아, 배 같은 과수원은 없었다. 가까운 윗마을에 감나무과수원 하나가 유일했다. 품종도 여느 집들의 감나무와 달리, 납작한 똬리 감이 열리는 나무였다.

6‧25 전쟁 직후, 1953년 한국 국민소득은 67달러였다. 세계 최빈국이던 보릿고개 시절, 산골 고향엔 배고픈 아이들의 간식거리라곤 없었다. 여름날, 우리 동네 아이들은 며칠에 한 번씩 땡감 줍기가 즐거운 놀이였다. 감나무 풀숲을 뒤지는 땡감 보물찾기는 허기를 느낄 겨를도 없는 놀이가 되었다. 땡감은 아이 주먹만 한 것들이었다.

집에 오면 땡감을 씻어 단지에 넣고, 다 잠길 정도의 물을 붓는다. 그 위에 소금을 조금 뿌려 둔다. 며칠 지나, 소금물에 삭아서 달고 아삭한 맛으로 변한 땡감은 우리 동기(同氣)들의 배고픔도 달래주는 즐거운 군것질거리였다. 떫은 땡감과 소금물의 조화가 신기했지만, 어른들이 도제(徒弟)처럼 가르쳐준 방법이기에 묻지 않았다.

처음 땡감을 주웠을 때, 그 맛을 보고 싶었다. 떫으니 그냥 먹지 말라던 엄마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호기심이 앞서 땡감 하나를 잡아 옷에 슥슥 닦은 다음, 한 입 베어 물었다. 땡감 물이 혀에 닫는 순간, 저절로 ‘액’하고 내뱉고 말았다. 떫은맛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그 첫 느낌은 수십 년이 지난 아직도 그대로 남았다. 지금, 그 보릿고개 시절을 되돌아보면 ‘땡감 삭혀 먹기는 가난과 배고픔 달래기’였다.

몇 해 전부터 여름이면, 성당 가는 보도에 똬리 땡감이 한두 개씩 보였다. 높다란 담장 위로 뻗은 감나무에서 떨어진 것이다. 작년까지는 어린 날 추억을 되살리는 땡감이 그저 반가웠다. 한데, 올여름 보도의 땡감을 처음 만났을 때, 혓바닥에 남았던 옛 떫은맛 기억이 와락 되살아나며 새 ‘땡감 철’을 마주했다. 웬일일까.

이어, 현 우리나라 상황이 꼭 땡감 한 입 베문 것처럼 떫다는 마음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이번 6‧3대선의 상식이나 통계 법칙상 출현 불가한 1, 2번 후보 당일 및 사전투표 득표율 숫자들(1번 이재명; 당일 37.96%, 사전 63.72%, 2번 김문수; 당일 53.00%, 사전 26.44%)···. 지난 4‧15총선 때, 선관위가 ‘시스템 장비 요구사항의 주전산기 성능보강’에서 ‘컴파일러(C/C++)제공’을 명기했다는 보도 같은 사실들이 땡감처럼 떫은 것이다.

어릴 땐 떫은 땡감을 바로 내뱉었지만, 떫은 나라는 어찌해야만 할까. 행여, 배고파 여름 땡감을 삭혀 먹던 때로 돌아갈까 불안하다. 뾰족한 수도 안 보인다. 옛사람들은, ‘나물 먹고/물 마시고/팔베개 베고 누웠으니/대장부 살림살이/이만하면 족하다.’고 하며 공자의 안빈낙도를 즐겼다지만, 지금 한국인인 내겐 그런 마음 여유조차 없다.

진초록 떫은 땡감도, 가을이 깊으면 발갛게 익어 다디단 홍시가 된다. 그렇듯, 우리나라와 국민도 홍시처럼 가을까지 참고, 배우며, 바꿔나가서 모두가 자유롭고, 즐겁고, 행복한 국가사회를 제대로 이루어내기를 바라는 마음 깊다.

/강길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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