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에 묻은 액체의 산도(酸度)를 측정지로 쟀다. 중성이다. 한데, 왜 조금 끈끈할까. 아무리 머리 굴리고, 기억창고를 뒤져도 액체가 생긴 연유를 알 수 없다. 귀신 곡할 노릇이다. 무색무취인 걸 보면 기묘하기까지 하다.
방바닥의 보일러 배관은 탈이 없고, 천장이나 벽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또 4반세기나 사용한 전기 매트에서 액체가 나올 리 없고, 누가 쉬를 하지도 않았다. 끈적하니까 습한 날씨로 찬 방바닥에 응축된 물도 아니다. 가슴 답답하다. 마침 손자를 데리고 집에 온 둘째 아들은, 매트 코팅 성분이 오래되어 변질이나 화학 반응한 게 아닐까 하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암튼, 이해 불가다. 냉가슴 앓으며 일단 오염된 매트를 들어내 뒤집어 깔았다. 바닥에 닿았던 면(面)을 대여섯 번도 더 물걸레로 훔치고 닦아냈다. 질긴 섬유 원단에 은(銀) 코팅한 면이어서, 아무리 꼼꼼히 닦아내도 안에 스며든 액체는 다 제거되지 않았다. 조심스레 매트 전원을 켜고 저온으로 수 시간을 두어도 마르지 않았다. 젖은 방바닥은 같은 방법으로 다 닦아냈다.
“어!”하는 한탄이 났다. 이불장 문을 연 순간 터진 시각 무조건 반응이다. “이럴 수가?”, “맞아! 바로 그거였어.” 하는 속말도 이어졌다. 이불 갈피에 ‘물먹는 하마’가 흰 종이 입을 벌리고 수직으로 서서 노려보는 게 아닌가. 들킨 ‘하마의 난리 현장’이다. 매트에 깔아 눅눅해진 보(褓)를 바꾸려고 이불장을 연 참이었다. 하마 입이 이불장 문 안쪽 면과 맞붙어 있다. 두 주 전쯤, 가을 날씨에 쓸 이불을 보겠다고 아내가 문을 열었던 기억도 났다. 그새 하마 배는 텅 비었다.
지난봄, 작은 방 이불장의 이불 갈피에 ‘물먹는 하마’ 두 개를 습기 보호막을 뗀 뒤 왼쪽과 오른쪽에 하나씩 수평으로 넣어 두었었다. 그러고는 까마득하게 잊었다. 이불장 열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많이 닦았는데도 방바닥은 마르면 매트 원단 결 흔적이 남았다. 할 수 없이, 바닥에 헌 신문지를 두세 겹 깔아 그 위에 매트를 놓고 우선 지내보기로 했다. 사태의 원인은 차차 찾기로 마음먹었었다.
기묘하다. 물먹은 하마에서 샌 200cc가 넘을 염화칼슘액이 이불을 하나도 오염시키지 않고, 문 안쪽 면만을 타고 내려와 방바닥과 매트 사이에만 스며들게 한 누출 경로와 각도, 작용 된 물리적 힘 같은 사실들이···. 화학분석실험도 오래 했던 내가 이 이해 불가 사태 앞에서, 결정적 단서 물먹는 하마를 기억해내지 못한 무심함도.
이불장 안의 이불들과 아래 서랍장의 옷들이 죄다 오염되었더라면, 사태는 감당이 불감당이었을 터다. 십 여일 후, 매트를 들어내 욕실에 수직으로 세워 오염된 면을 수돗물로 충분히 씻었다. 하루를 말린 후 다시 깔았다. 사태 수습에 땀을 뻘뻘 흘리며 아까운 시간 이틀을 들였지만, 원인을 찾아 기쁘고, 매트를 계속 쓰니 다행이다.
우리 사회도 6년째 계속되는 부정선거 주장이 말하듯, 국가기관들이 ‘기묘한 하마 사태’처럼 국민을 기만하는 비민주적 일들을 벌인 의혹들이 여전하다. 그러니 온 국민이 늘 깨어 곳곳을 살펴서 정치권과 지도층, 언론들을 향해 바른 목소리를 내고 국민주권 행동에도 나서야 마땅하다.
/강길수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