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경제에디터의 관점
경주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는 도시 인프라와 지역 경제에 일정한 긍정 효과를 남겼다. 정상급 외교 무대가 지역에서 열렸다는 상징성, 관광 수요 확대, 글로벌 인지도 제고 등은 분명 지역 경제와 지방 MICE 산업에 적지 않은 자극을 주었다. 이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이번 회의의 과정 전반을 돌아보면, 국제행사 운영 체계 전반에 관한 근본적 질문도 함께 남겼다. 이미 여러 외신은 행사 기간 중 교통·숙박·안내 체계, 의전 동선, 언론 대응 등 국제행사로서의 완결성이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이는 편향되거나 단편적인 평가가 아니라, 일부 외신 기사와 글로벌 기자단 커뮤니티에서 공통으로 제기된 사안이다.
즉, 행사 유치 자체는 성공했으나 운영의 디테일이 따라오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이는 엄밀하게 말하자면 특정 항목의 ‘실패’가 아닌 ‘체계적 점검 부재’에 대한 평가다.
여기에 더해, 국내에서는 행사 전후로 국정 기능이 흔들렸다는 논쟁도 있었다. 정치권에서는 탄핵 논의와 권력 공백 문제를 둘러싼 지적이 이어졌고, 이로 인해 중앙정부 차원의 전략적 메시지 조율과 사후 정책적 연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물론 정권 교체, 탄핵 논의, 정치적 대립은 민주주의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정치가 흔들린다고 해서 민간경제나 행정까지 흔들려서는 안 된다.
대규모 국제행사는 정권의 이벤트가 아니라 국가 전 부문별 시스템의 종합 성능 시험대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은 단순하다. “누가 집권하든, 어떤 상황이 오든, 행정·의전·안전·숙박·교통·언론 대응·민간 협력 등이 자동으로 작동할 수 있는가?” 만약 그 답이 “아직은 그렇지 않다”라면, 이번 경주 APEC이 남긴 가장 큰 성과는 ‘유치의 성공’이 아니라 ‘취약 지점이 드러났다는 사실 자체’일 것이다.
어떤 면에서 이번 APEC은 거울이었다. 외교 인프라, 지역 MICE 역량, 중앙-지방-민간 협력 체계, 행사 프로토콜, 취재·언론 지원 시스템, 위기 관리 매뉴얼 등 대형 국제행사를 치르는 국가의 기본 체계가 얼마나 견고한지를 여실히 보여준 계기였다.
앞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음 국제행사를 어디에 유치할 것인가”가 아니다.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국가 시스템은 언제든, 어떤 정치 상황에서도 제대로 작동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제 우리는 국제행사를 ‘유치 목표’ 중심에서 ‘운영역량 강화’ 중심으로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
정치가 일시적으로 멈추더라도, 행정·프로토콜·위기 대응·매뉴얼·민관 협력 체계는 흔들리지 않는 구조, 즉 국가 가버넌스의 내진 설계가 필요하다. 포항 등 국제컨벤션을 적극 추진하려는 지자체도 명심해야할 부분이다.
Post-APEC 시대의 우선 과제는 더 이상 유치 경쟁이 아니다. 정부·지자체·민간·지역사회가 함께 작동하는 ‘시스템 국력’을 세우는 일이다. 그것이야말로 이번 경주 APEC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크고 값진 메시지다.
/김진홍경제에디터 kjh25@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