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APEC 정상회의가 한국의 국익과 국격을 상승시키는데 기대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29일 경주에서 극적인 관세협상 타결에 성공함으로써 우리나라로선 수출 시장의 최대 악재가 해소됐다.
한미 양측은 그동안 핵심 쟁점인 3500억달러 규모 대미투자펀드의 현금 비율과 납부 방식을 두고 견해차를 좁히지 못해 신경전을 벌여왔다. 그러다가 트럼프 대통령이 경주에 도착한 29일 오후가 돼서야 가까스로 합의점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3500달러 중 현금성으로 투입되는 2000억달러를 매년 최대 200억달러 한도 내에서 분납하고, 나머지 1500달러는 ‘조선업 협력’으로 명시해 한국 조선기업이 투자를 주도하기로 했다. 합의에는 양국 대통령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한미 관세협상이 마침표를 찍음에 따라 우리 경제에 부담을 주던 최대 리스크가 없어졌다.
이번 관세협상에서 대구·경북이 가장 반기는 것은 주력 수출품인 자동차부품 관세(25%)가 15%로 인하됐다는 점이다. 자동차와 부품은 우리나라 대미 수출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경북도가 우려했던 쌀·쇠고기·사과 등 농산물의 추가 개방 요구를 막아낸 것도 큰 수확이다.
국방·안보 분야에서도 성과가 있었다. 해묵은 과제였던 핵추진잠수함 도입이 성사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 다음날인 30일 이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을 미국 필라델피아 조선소(필리조선소)에서 건조할 것을 승인했다. 곧 한미간 ‘원자력 협정’ 개정협상이 진행돼 우라늄 농축,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문제에 대한 해법도 나오길 기대한다.
경주에서의 한미 정상회담은 예상을 뒤엎은 반전드라마였다. 미국과의 합의문서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관세협상이 마무리되고 굳건한 안보 동맹까지 재확인한 것은 큰 성과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대통령에게 “어려운 일이 있으면 아무 때나 연락하라”고 했다. 이번 경주 정상회담이 한미 관계를 완전 복원하는 역사적인 계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