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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박물관의 글로벌화

우정구 기자
등록일 2025-11-02 12:42 게재일 2025-10-3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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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경주박물관이 개관한 것은 해방직후인 1945년 10월 7일이다. 광복과 함께 국립박물관이 결성되자 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을 접수해 국립박물관 경주분관으로 출발한 것이다. 당시 최순봉 관장과 직원들은 일본인 직원으로부터 소장품과 시설 일체를 인수하게 된다.

이후 미군정의 협조를 얻어 부산과 대구에 살던 일본인 사업가가 소장하고 있던 문화재도 회수하게 된다.

경주분관은 1946년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고고학적 방법을 통한 고분 발굴에 나서게 되는데 그곳이 경주시 노서동에 있는 신라시대 돌무지덧널무덤인 호우총과 은령총이다. 호우총서는 광개토대왕명 호우 이른바 청동그릇(보물 1878)이 발견됐고, 은령총에서는 금귀걸이 한 쌍과 귀금속 제품 등이 발굴됐다.

이후 박물관은 6·25 전쟁으로 부산으로 임시 이전하는 시련도 겪었지만 1975년 7월 지금의 자리에 건물을 새로 짓고 새역사를 시작했다. 국립중앙박물관 분관을 중앙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이름도 바꾸었다.

경주박물관은 오랫동안 신라 문화유산에 대한 자부심으로 박물관을 운영해 왔다. 일찍 어린이 교육과정도 두었다. 그래서 신라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한국을 대표하는 박물관으로 소문났다.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두 번째 한미 정상회담이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열렸다. 경주박물관이 가진 신라 천년 고도의 역사적 상징성에 더해 APEC 외교 무대가 된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고대 역사를 품어왔던 박물관에서 현대사의 의미가 가미된 이벤트가 일어난 것만으로 역사적 기록이다. 경주박물관에 대한 세계인의 이목이 모이면서 경주박물관은 이미 세계인의 박물관으로 격상됐다. /우정구(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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