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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살수

등록일 2025-11-03 17:34 게재일 2025-11-0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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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봉학 변호사

‘칼 끝에 피를 묻힌 자 장강의 하류를 건너지 마라’

한국 무협만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찬사를 받는 김성진 작가의 무협만화 ‘앵무살수’의 첫 문장이다. 만화에서 등장하는 젊은 주인공의 직업은 장강 하류의 뱃사공이다. 그런데 이 주인공에게는 평범한 노 젓기 일 이외에 다른 일이 하나 더 있다. 중원에서 온갖 패악질을 다 저지르고 어디론가 숨어드는 중범죄자를 단죄하는 일이다. 법망을 피해 살아가는 이들을 색출하여 직접 형을 집행하는 만화 속 이야기다.

도주하는 범죄자를 태운 나룻배가 포구를 출발하는 장면으로 만화는 시작된다. 나룻배가 장강의 중간에 도착할 때, 앵무새 한 마리가 날아든다. 사뿐히 주인공의 어깨 위에 앉는다. 쪽지를 입에 문 앵무의 깃털이 장강의 물결에 빛난다. 누군가 내린 명령과 금액이 적힌 쪽지를 주인공이 펼친다. 사형! 그리고 엽전 열 닷 냥. 배가 멈추고, 칼이 춤을 춘다. 칼끝에 묻은 피를 유유히 흐르는 장강의 물결에 씻고, 검의 고수는 뱃머리를 돌린다. 이날의 나룻배는 장강의 저편으로 갈 일이 없다.

작년 6월경 포항문화재단 초청으로 육거리 꿈틀로 청포도 다방에서 ‘앵무살수’를 패러디하여 ‘제2회 인문학 강좌’를 한 적이 있다. 10년 넘게 침촌인문학당 사띠스쿨 원장을 하면서 나름 터득한 사유 여행의 한 꼭지로 열어보았다. ‘낭만자객', ‘지성의 몰락’, ‘붓다의 칼, 예수의 창’, ‘생각 죽이기’, '저 세상에 관심을 두지 마라’ 순서로 다섯 강좌를 성황리에 마쳤다. 주제는 ‘관념 죽이기’였다. 제1회는 칼릴지브란 선생의 예언자를 중심으로 ‘사랑의 타작마당’이라는 주제로 하였었다. 사랑의 개념을 타작하여 껍질을 벗겨보자는 것도 결국은 관념(개념, 생각, 편견 등) 죽이기였다. 두 번에 걸친 강좌는 겉만 달랐지 속은 같았다.

만화 ‘앵무살수’ 속 장강 하류 나룻터 풍경을 관념 죽이기의 소재로 써보았다. 예언자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관념의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을 단죄의 칼부림에 비유하여 보았다. 주인공이 사는 조그만 집, 나루터, 나룻배, 악당, 칼, 앵무새, 주인공, 처형, 그리고 칼 씻음. 이 모두를 우리가 가지고 있는 관념, 개념, 생각들의 환·망·공·상을 제거하는 것과 연결하여 강의하였다. 우리가 극복하여야 할 관념이 만화 속 악당들과 같은 존재라면, 무엇으로 극복할 것인가.

키에르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관념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인간의 가장 큰 불행이다’라고 짚었다. 관념이란, 때론 삶의 에너지로, 때론 죽음의 에너지로 쓰이는 검의 양날이다. 우리는 생각 때문에 살고, 생각 때문에 죽는다. 악당이란 탈을 쓴 관념이 가끔 우리를 괴롭힐 때, 어떻게 처리하여야 하는가. 어떤 기술을 쓸 건지, 어떤 무기를 휘두를 쓸 건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취미활동, 운동, 예술 감상. 지인과 잡담 정도의 무기로 족할까. 만화 속 주인공은 검술의 최고수였다. 만화 속 주인공만큼 고수는 아니지만, 나에게는 ‘명상’이라는 무기가 있다. 나름 든든한···.

우리는 알고 있다. 삶 속에는 건강, 돈, 명예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그 무언가가 있음을.

/공봉학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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