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좋은 글 퍼 나르기는 이제 그만

등록일 2025-11-10 16:37 게재일 2025-11-11 18면
스크랩버튼
Second alt text
공봉학 변호사

책이나 유튜브에서 등장하는 여러 가지 말들이 있다. 예를 들면, ‘나이가 들어서 지켜야 할 3가지’. ‘만나면 안되는 유형의 사람들’, ‘부자들의 습관’, ‘고귀하게 보이는 사람들의 특징’. 등등. 대부분 그럴듯하다. 이런 글을 읽을 때마다, 비슷하면, ‘그래 맞아’ 하지만, 다르면, ‘뭐 꼭 그래야 하나’라고 슬쩍 기분이 나빠진다. 하지만, 나는 이런 말들을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 그냥 소음 정도로 생각한다. 삶이 한마디로 정의될 수도 없거니와, 생각 아닌 감정으로 그 글을 대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음 중, 나이 든 사람에 대한 대표적인 경구로,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라’를 한번 생각해 보자. 일단, ‘입을 닫아라’는 말의 뜻은, ‘나이 들어 말이 많으면 안 된다’라는 것일 테고, ‘말이 많으면 쓸데가 없다’는 속뜻이 있다. 게다가 나이 든 사람은, ‘나이를 권위로 내세우는 경향’까지 있다는 것까지 슬쩍 올려 두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말 많은 것 자체가 ‘그냥 꼰대 짓’이라는 게다. 그러면 반대로, 젊은 사람은 시종일관 떠들어도 되고, 쓸데없는 말을 해도 되고, 권위를 내세워도 된다는 것인가.

‘입 닫아라’라는 말은 철학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존재 가치를 나이라는 단순한 숫자적 가치로 환원한 위험한 통념이다. 언어는 단순한 말이 아니라, 한 인간이 세상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며, 자신을 세계 속에 드러내는 형식이다. ‘인간은 언어 속에 존재한다’라는 하이데거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언어가 ‘존재의 집’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강요된 침묵은, 존재의 집에서의 추방이자, 인간 실격 선언이다. 여기에 대하여,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라는 뜻이겠지’라고 반박할지 모르겠지만, 쓸데없는 말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자제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지갑을 열어라’라는 말은 철학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존재 가치를 돈이라는 단순한 경제적 가치로 환원한 위험한 통념이다. 이 말속에는, ‘노인이 존중을 받으려면 돈을 써야 한다’는 경직된 사고가 바탕에 깔려있다. 열 지갑이 없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막상 지갑이 있다고 치자. 무턱대고 지갑을 열어야만 하는 당위성은 누가 결정한 기준인가. 노인이 존중받으려면 돈을 써야 한다는 사고는, 세대 간의 관계를 ‘결제 거래’로 축소하고, 사랑, 경험, 지혜 같은 비가시적 가치를 제거한 위험한 사회적 언어이다.

하찮은 경구 하나 때문에 자신의 말이 무가치하게 여겨지는 사회에서 자발적 침묵을 학습하게 되어서는 안 된다. ‘모든 이에게 맞는 옷은 결국 누구에게도 맞지 않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단순한 라이프스타일에 관련된 조언들은 맥락 없이 윤리적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다. 좋은 글의 유통은, 사유의 과정은 생략되고 감정적 동조만 남는 소위 ‘생각 없는 공감’의 현장이다. 타인의 말은, 나의 말을 설명하는 수단 정도로 사용되어야 한다. 인용은 사유의 시작이 되어야지, 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카톡에서 좋은 글을 퍼 나르는 사람은, 펌글을 통해 은근히 자신은 좋은 사람이라 과시하는 속내가 있다. 내가 감동 받았다고 상대가 감동 받을 거란 착각은 금물. 예의에도 어긋날 수 있으니 퍼 나르기는 이제 그만.

/공봉학 변호사

공봉학의 인문학 이야기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