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손, 혹은 흑수단의 비밀
 
   19세기 말, 세르비아의 왕 알렉산다르 오브레노비치는 콜걸 출신과 결혼하면서, 이제 왕비의 친인척까지 왕궁을 들쑤시고 다녔다. 이를 보고만 있을 세르비아인들이 아니었다. 1903년 청년 장교와 군인 120여 명이 왕궁으로 몰려가 왕비와 그 일족들은 물론 왕까지 잡아 죽이고 말았다. 왕 알렉산다르와 왕비 드라가를 5층 건물 창문 밖으로 던져 살해한 후, 오브레노비치 왕가 일가친척을 도륙했다. 이로서 오브레노비치 왕가는 종말을 고하게 된다.
 
   열세 살 철없던 시절에 왕위에 올랐던 알렉산다르는 어머니의 간섭과 늙은 아내의 철없는 행동으로 서둘러 지옥행 마차를 타고 만 것이다. 뜻밖에 세르비아 국민이 환호하면서 어떤 시각에서 보면 군부 쿠데타를 정당화시키는 상황이 벌어졌다.
밀로시 왕가 몰락은 블랙조지, 즉 카라조르지예 가문의 등장을 뜻했다. 이때 대안으로 떠오른 인물이 블랙조지의 손자이자, 카라조르지예 셋째 아들 페타르 카라조르지예(재임 1903~1918)다.
그는 프랑스에서 긴 세월 망명생활을 하였으며, 1870년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농민항쟁 때 참여해 산전수전을 겪기도 했다. 세르비아인 가슴에는 행동하는 양심으로 추앙받고 있던 그였지만, 60세 가까이 돼서야 세르비아 땅으로 돌아와 45년 만에 아버지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다.
그리고 1, 2차 발칸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자 영토 확장에 이어, 대세르비아주의가 기지개를 펼 수 있는 판을 깔았다. 20세기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일어났던 두 차례 발칸전쟁으로 세르비아 국토가 넓어지게 되면서 자신감이 붙는다.
급하게 삼킨 음식이 탈나는 법, 입헌국주국 민간정치기구가 급조되면서 급진당이 의회 다수 의석을 차지하게 된다. 그 중 지도자로 급부상한 인물이 니콜라스 파시치다. 훗날 세르비아 현대사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로, 대세르비아주의를 주입시키는 데 성공하면서 세르비아인 가슴을 요동치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는 블랙조지 가문을 중심으로 세르비아가 새롭게 일어서야 한다며, 당시 발칸반도에 대세로 급부상하던 유고슬라비즘에서 대세르비아주의로 시선을 돌리게 했다.
블랙조지가문이란 기실 오스만터키제국에 투쟁할 당시 농민군 지도자가 세르비아 왕족으로 순식간에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는 것은 오랜 세월 억압된 삶을 살았던 민족의 가문과 인력부재라는 슬픈 현실을 이해해야 한다.
 
   왕위에 오른 페타르는 이미 늙어버렸다. 페타르 1세와는 반대로 쿠데타의 주역 군인들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세력으로 거듭났다. 왕궁으로 난입한 군부 중 지도자격인 인물이 드라구틴 디미트리예비치 대령이었다. 그는 1901년 오스트리아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기습점령 한 것에 대해 불만이었다. 대세르비아주의 완성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빠트리고는 완성할 수 없었다. 따라서 닫힌 민족주의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차곡차곡 실행에 옮겼다. 민병대를 조직해 무기를 쥐어주며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 파견했다. 주요 목표는 오스트리아 고위관료 암살과 테러였다. 충성을 다하는 예하 장교들을 포섭해 정부 위에 군림하는 군부조직을 결성하기에 이른다. 군부에 의해 들어선 민간정부의 힘은 미미할 수밖에 없었고, 더구나 오스트리아에 굴욕적인 행태인 정부를 향한 세르비아인 불만이 증폭했다.
드디어 디미트리예비치 대령은 세르비아에 조직적 폭력군단 ‘블랙 핸드(Black Hand)’를 창시한다. 우리나라말로 직역하면 ‘검은손’이며, 한자로는 ‘흑수단(黑手團)’이다. 즉 대세르비아주의를 지상과제로 내건 군부 내 극우민족주의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세르비아인이 살아가는 모든 땅은 통일. 통일이 아니면 죽음을.”
 
   이 둘을 합치면 ‘세르비아인들이 살아가는 그 어떤 땅이라도 죽음을 불사하고 손아귀에 넣어라’란 뜻이다. 블랙핸드 ‘크루나 루카!(Crna Ruka)’의 살기 띤 구호가 세르비아인 가슴에 요동쳤다.
세르비아인 국가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내 땅에서 우리끼리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에 누가 반대를 할까만, 다른 나라 땅에서 소수민족으로 살아가고 있는 세르비아인들에게 무기를 쥐어주며 폭력을 부추기는 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혁명적 행동을 강행하되 자신들을 반대하는 자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적으로 간주하며 제거 대상이 되었다. ‘개인의 욕심은 버려라, 어긴 자는 죽음으로 대가를 치른다’ 등 행동강령도 만들었다.
군인뿐만이 아니라 정치인, 변호사, 외교관을 비롯해 민간인까지 가세해 조직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국민을 대상으로 대세르비아주의를 설파했고, 당위성에 거품을 물었다. 더구나 디미트리예비치가 군부 내 정보를 총괄하는 보안대장으로 영전하면서 날개를 단다.
밀수를 동원한 자금조달로 요인 암살이 본격화되고, 세르비아를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조직으로 거듭 태어났다. 신문까지 발간하면서 세르비아민족주의가 백주대낮에 공개된다. 무엇이든 처음은 미미한 법, 세계가 전운에 휩싸이게 되는 판이 깔리고 있었던 것이다. (계속)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