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의 총성으로 시작된 1차 세계대전은 세르비아는 사면초가에 몰렸고, 국왕 알렉산다르는 외국에 망명정부를 세워야 했다. 오스트리아 지배에 들어 있던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와 세르비아 간, 본격적인 대결구도가 형성된 것도 1차 세계대전부터다.
한편 대세르비아주의가 한창 열 올리고 있을 때 발칸반도 북부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에서 남슬라브, 즉 유고슬라비즘이 대세였다. 이 두 지지세력 간에 결정적인 차이가 종교다. 발칸 북부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의 로마 가톨릭과 세르비아 동방정교 차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었고, 더구나 보스니아에는 이슬람으로 개종이 늘어 어떻게 봉합해야 할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했다.
한편 오스트리아로부터 독립이 우선인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인들은 세르비아가 제1차 발칸전쟁에서 터키제국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자, 슬라브민족의 대통합 기운이 절정에 달했다. 반대로 세르비아 젊은이들은 세르비아만이 유고슬라비즘 통일국가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을 굳힌다.
1913년, 1차 발칸전쟁에서 승리한 세르비아는 터키 손아귀에서 완전하게 벗어남을 뜻했지만,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로선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왕가로부터 해방이 지상 과제였다.
오스트리아 황태자 저격 후 1차 세계대전의 서막이 열렸다. 발칸반도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독일로서도 결코 수수방관만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후발주자였던 도이칠란트로서는 발칸에 깃발을 꽂아야 제국이 완성된다는 생각이었다.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를 침략하면 러시아가 그냥 있지 않을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이때 오스트리아는 독일의 의중을 물었고, 독일은 흔쾌히 오스트리아 편을 들어주겠다고 약속하면서,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한다.
이에 대항해 가장 먼저 러시아가 움직였다. 슬라브민족주의를 내세우며 발칸을 노리던 러시아는 세르비아를 도와 맞섰다. 오스트리아는 물론 독일의 발칸 지배는 영국과 프랑스로서도 묵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세계 대전으로 확전된 것이다.
오스트리아 식민지였던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는 자의든 타의든 러시아의 적이 되어 싸워야 했다. 러시아 역시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독립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세계 대전이 끝나갈 무렵이 되자, 오스트리아는 패전국의 멍에를 뒤집어썼다. 어차피 패전의 멍에를 뒤집어쓸 거라면 크로아티아에게 아드리아 함대를 통째로 주며 자치권을 넘긴다. 권력의 맛에 길들어진 크로아티아 민족정치인들은 “황송하옵니다!” 하며 자치권에 만족하면서 감복한다. 거시적 안목보다 권력과 대를 이은 부를 위해 미시적 선택을 한 사람들은 서로가 결속해야 한다는 진리를 잊지 않았다. 이들은 결속을 과시했다. 1917년 5월 말, 유고슬라비아 대표 33인(우연히도 우리나라 3‧1독립운동 대표 33인과 같은 수이다)이 모여 신속하고도 거창하게 변죽까지 울려가면서 ‘유고슬라브 코커스’라는 정치단체를 결성한다. 오스트리아제국에 충성하는 인간들이 모여 충성맹세 식을 시끌벅적하게 벌였다. 가장 이완용다운 인물을 앞세워 선언문을 낭독했다.
“합스부르크 왕가 지도하에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그리고 세르비아인이 살아가는 터전에 자치적인 체제가 이루어질 때까지 노력한다.”
그러자 유고위원회는 물론 세르비아 정부조차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둘은 유고슬라브 코커스에게 대항하기 만나 ‘코르푸선언’에 합의했다. 핵심 내용인 즉, “유고슬라비아인의 왕국은 하나의 영토와 하나의 시민권만이 인정되며, 자유롭고도 이상이 넘치는 왕국이 될 것이로다.”
비장미 넘치는 선언이었지만, 언감생심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내용이란 사실은 누구나 알았다. 더 나아가 이들 세 단체가 모여 구체적인 합의를 도출했다.
“세르비아 카라조르지예 왕조를 정점으로 뭉치고, 모든 민족이 동등하게 취급당하며, 종교 역시 이슬람 포함 자유롭게 믿어도 된다. 국경은 북으로는 슬로베니아로부터 남쪽과 서쪽으로는 몬테네그로와 아드리아해를 포함한다.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인의 합법적인 정부로 인정한다. (중략) 몬테네그로는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일부로 간주된다.”
가만있던 몬테네그로만 얻어터지고 만다. 그런데도 세르비아 국민은 만족하지 못했다.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에 합법적 정부가 들어서면 대세르비아주는 물 건너 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일로 파시치 총리가 일선에서 물러난다. 사실 국민 뒤에는 그를 견제하려는 왕 알렉산다르가 있었다.
알렉산다르는 막강 블랙핸드를 자신의 손으로 숙청했던 주도면밀한 성격의 소유자다. 그리고 1차 세계대전에서 군총사령관을 맡아 전쟁을 진두지휘한 인물이다. 그런 만큼 군부 역시 그의 손아귀에 있었다. 대세르비아주의가 본격적인 폭력성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절대군주의 야심이 발톱을 드러내고 있었다.
발칸반도에 본격적인 폭력의 서막이 열리고 있었다. (세르비아편 끝)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