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지역, 기업 등은 시작의 중요성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며 성장 과정에 자존감과 만족감을 느낀다.
1976년, 미국에 정착하게 된 흑인 노예가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찾아가는 영화 ‘Root’가 상영돼 전 세계의 심금을 울리며 뿌리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이처럼 자기 뿌리를 알고 보전하는 일이 현재에도 지속으로 진행되고 있다.
경북의 3대 도시로 성장한 경산(慶山)도 깊은 뿌리, 그것도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고대 국가인 ‘압독국(押督國)’과 역사를 같이한다.
지금의 임당동과 옥곡동, 압량읍 신대리 일대에 임당동을 거점으로 국가 형성 이전 단계의 정치·사회집단인 강력한 읍락국가인 압독국이 지배했다.
757년(경덕왕 16) 행정 체계가 대대적으로 개편되며 압독군이 장산군(獐山郡)으로, 고려 태조 때인 940년 장산군(章山郡)으로, 1308년 충선왕의 이름인 ‘장(璋)’을 피하고자 고을 이름을 경산으로 개칭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경산에는 압독국의 생활문화 공간을 보여주는 임당·조영동 고분군 등에 20기 봉분이 존재하며 15기의 봉분이 발굴되었다.
지금까지 1700여 기의 고분과 마을 유적, 토성, 소택지 등이 발굴돼 금동관과 금동 장식, 은제 허리띠, 고리자루칼(環頭大刀) 등 최고 지도자를 상징하는 유물들에 당시 사람을 복원할 수 있는 인골 자료와 동물과 생선의 뼈, 어패류 등 2만 8000여 점의 유물로 한국 고대사회의 모습을 복원할 수 있는 자료가 풍부하다.
경산시는 이렇게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고 우수한 유산을 정리해 시민과 국민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임당유적전시관을 임당 고분군 인근에 지난 5월 개관했다.
고분 토층의 단면을 형상화해 고분군과 주변 자연환경을 이어주는 조화로운 건축물인 임당유적전시관은 타 전시관 달리 고대 사람들의 삶의 모습(생활유적)과 죽음의 관념(무덤 유적)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국내 유일의 복합 유적전시관이다.
시는 임당유적전시관의 개관에 만족하지 않고 국가유산청이 주관하는 ‘상생 국가 유산 사업’ 선정으로 지역의 최대 역사 문화자산인 압독국 문화유산을 활용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민 누구나 참여하는 체험형 프로그램을 운영해 문화유산을 단순한 관람 대상으로 머무르게 하지 않고 체험할 수 있는 콘텐츠로 재구성해 지역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높였다.
임당유적전시관의 진정한 매력은 유물을 중심으로 연구·공개되고 이 유물을 사용한 옛사람의 연구(풍습, 생활)를 다른 유적과 유물의 사례를 통해 추론하던 것에서 국내 최대 인골 개체 수(359개체)와 가까운 시대가 아닌 1500여 전의 실제 무덤의 주인공과 순장자의 인골 분석과 연구에 여러 학문의 학자들이 참여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 결과가 지난 30일과 31일, 임당 유적전시관에서 ‘경산 임당 유적, 고고학에서 과학으로’를 주제로 개최된 국제 학술 세미나다.
임당 유적전시관 개관을 기념하기도 한 국제 학술 세미나에는 사람 뼈 연구와 전시에 있어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기관의 연구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미국 스미스소니언 국립자연사박물관의 폴 테일러 박사, DNA 분석과 고유전학의 선두 주자인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로드리고 바르케라 박사, 영국의 얼굴복원 대표 연구 기관인 리버풀 존무어스대 Face Lab의 제시카 리우 박사, 미국 UC데이비스대의 정현우 교수 등이 발표자로 참가해 압독국의 문화유산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증명했다.
폴 테일러 박사는 “임당유적에서 출토된 고인골은 전 세계적으로 드문 사례로 보존상태와 개체 수가 탁월하고 남녀노소, 계층이 다양하게 확인된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 가계의 뿌리를 잘 알고 그 후손들이 이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고장의 역사를 잘 알고 보존해 후손에게 넘기는 것은 더 중요하다.
경산시는 앞으로도 지역의 문화유산의 보존에 더 심혈을 기울이고 이를 시민과 국민에게 널리 알리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과거는 현재에 사는 우리에게 추억으로, 미래는 현재의 우리가 거는 기대라는 말처럼 경산 문화유산의 미래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조현일 경산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