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해서도 여기저기서 강의 의뢰를 받는다. 학교에 있을 때도 종종 강연이나 특강도 한 터라 사회 강의가 낯설지 않다. 당시에는 주로 특정한 주제를 의뢰받고 많은 청중들이 모여 있는 자리였다면 지금은 달라졌다. 어떤 기관이나 지자체의 의뢰나 지원을 받아 아카데미나 공부방을 개설해 두고 회원을 모집하는 강의가 대부분이다. 불러 주는 것이 고마워 어디든, 강의료가 얼마든 상관하지 않고 수락하여 가는 편이다.
며칠 전, 달성군 하빈면 육신사 수당정에서 낙빈서원 유교아카데미 강의를 했다. 성균관 주관 유교문화활성화사업으로 공모해 선정된 교육이었다. 매주 1회 4시간씩, 총 10주간의 교육 일정이었다. 나야 2회 총 4시간 정도의 강의만 하면 되지만 수강생들에겐 공부에 대한 보통 열의가 아니면 만만찮을 것 같은 일정과 주제였다.
강의실에 들어가 깜짝 놀랐다. 대부분의 수강생들이 여성들이었기 때문이다. 작년에도 서원 강의를 두어 번 한 적 있는데, 기억엔 거의 모든 수강생들이 남성들이었기에 여기도 당연히 그러리라 지레짐작한 거였다. 두 시간 강의가 지루하다 여길 겨를이 없을 정도로 수업에 열정적이었다. 여성 수강생의 질문 덕에 모처럼 재미있는 강의를 했다.
그러고 보니 최근 내가 다닌 강의에는 여성 수강생들이 많았다는 생각이 났다. 은퇴 후부터 올해까지 5년째 강의하는 경북도민행복대학이 있다. 김천의 경북보건대에서 운영하는 경상북도 지원 사업의 강좌였는데, 매년 1회씩 강의했다. 약 60명의 학습자 중 절반 이상이 여성들이었다. 바쁜 농번기임에도 결석이 많지 않을 정도로 수업에 열성이라는 얘기를 듣고 감동한 적이 있다.
안동의 내방가사전승보존회가 운영하는 안동시 지원사업인 내방가사공부방에도 매 해 몇 차례 특강을 간다. 연령대가 다양한 여성들 20여 명이 넓지 않은 교실에 빼곡하게 앉아계시다가 내가 들어가면 그리도 반기실 수 없다. 90대 어르신부터 50대 비교적 젊은 여성들까지, 안동뿐만 아니라 예천, 청송, 영천, 영주 등 인근 도시에서 원거리 마다하지 않고 참석하는 수강생들이다. 얼마나 열심히 공부에 집중하시는지 잠시도 쉬지 않고 한 시간 강의하고 나면 진이 빠질 정도지만 손뼉 치며 호응을 잘해 주셔서 매번 보람을 느끼게 된다.
내가 안동의 공부방에 강의하러 갈 때 함께 가는, 대구의 열혈수강생들이 몇 있었다. 그야말로 내방가사 찐팬들이었다. 이따금 참석하게 되다 보니 내방가사 강의에 늘 목말라하는 분들이었다. 한 달에 한두 번이라도 대구에서 공부하는 방법을 찾자고 상의했다. 6월 안동을 다녀온 다음 주 바로 실행에 옮겼다. 수업 장소를 카페로 정했다. 그 후 이 카페 저 카페 전전하면서 여러 차례 수업했다. 강의 자료 등 수업 준비를 철저히 하여 마치 특별반 학생을 가르치는 것 같은 마음 자세로 강의했다. 수업 전후 식사를 같이하면서 나눈 담소도 내방가사가 주제였다.
이 시대 여성들의 지적 호기심과 탐구가 만만찮으니 더없이 고맙고 반갑다. 노소 구별 없이 수업 내용의 수준에 상관없이 공부하는 이 시대 여성들을 지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