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즐겨보는 일본 영화는 내용이 잔잔하고 가족 간의 소소한 일상을 다룬 것들이었다. 폭력적이고 잔혹한 범죄나 현대사의 어두운 비극이 주된 소재인 우리 영화보다 더 좋아하는 나만의 취향에 맞는 일본 영화는 주로 집에서 TV로 찾아본다. 그런데 최근 개봉되어 조용히 관객을 모으고 있다는 일본 영화가 있다길래 보러 갔다. 남편에게 동행을 요청했으나 거절 당했다. 몇 달 전 ‘미션임파서블’을 같이 보러 갔다가 내내 졸았던 남편이었다. 아무리 큰 액션 영화도 우린 졸 수 있는 나이대였다.
야쿠자의 아들인 주인공이 명문 가부키 가문에 들어가 가부키 배우가 되는 이야기를 마치 역사 다큐멘터리처럼 그린 영화였다. 세습되는 가부키 가문의 정통 후계자인 아들과 라이벌처럼 경쟁하고 동반자처럼 격려하면서 성장하나 재능과 피의 대결에서 재능이 선택받으면서 파국으로 치닫는 역사물이었다. 러닝타임이 3시간이나 되는 장편영화였음에도 단 한 번도 졸지 않을 정도로 몰입감이 있었다. 크레딧 영상이 다 끝날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음으로 영화에 대한 경의를 표할 정도로 좋은 영화였다. 감독이 재일동포 3세인데 일본에서도 1200만 관객을 모을 정도로 대히트를 쳤고, 부산국제영화제에도 초청된 바 있었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나는 이 영화를 통해서 가부키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되었다.
수십 년 전 일본에서 아주 잠깐 가부키 공연을 본 적이 있었다. 정식 가부키 공연장이 아니었기에 서사도 없었던 맛보기 공연이었던가 보다. 그러기에 가부키는 내게 우리나라 부채춤과 같은 일본의 전통춤이었다. 얼굴에 흰 분칠과 과장적 분장을 하고 전통 옷을 입은 일본 여성의 부자연스러운 춤으로만 기억된다. 춤 선이 아름다운 우리 춤과 대조되었다.
가장 먼저 놀란 것은 가부키 배우는 남자만이라는 것이었다. 마치 중국의 경극, 우리나라의 남사당패와 같았다. 예전 그 무대의 가부키를 춘 배우는 분명 여성이었던 것 같았는데, 아마도 작은 연회에서는 여성도 가부키 공연을 하긴 하는 건가, 아니면 남자였나 지금 생각하니 알쏭달쏭하다. 또 하나는 가부키가 가문으로 전승되어 세습되는 예술이라는 것이었다. 가부키 가문은 400년 가까이 일본에서 예술 명문가로 추앙받으며 지금도 거의 귀족 같은 대접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영화 보는 내내 중국 경극 영화인 ‘패왕별희’를 떠올렸다. 실제로 감독이 ‘패왕별희’를 보면서 가부키 영화를 만들어 볼 결심을 하였다는 인터뷰를 봤다. 특히 아름다운 남자가 여장을 하고 여성 배역인 온나가타를 연기하는 장면에서는 ‘패왕별희’의 장국영과 ‘왕의 남자’의 공길과 자꾸 겹쳐졌다. 집에 와서는 ‘패왕별희’와 ‘왕의 남자’를 다운받아 다시 봤다. 한국과 중국과 일본에 같은 듯 다른 전통 무대예술이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된 영화였다. 영화 제목인 국보도 처음엔 의아스러웠으나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알게 되었다. 인간 국보라는 의미였다. 우리나라로 치면 인간문화재,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인 셈이다. 가능하다면 한 번 더 보고 싶은 영화다. 알고 보면 더 재미있을 것 같아서이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