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이어 올해도 손주들과 고택프로그램에 참가했다. 한국인성예절교육원에서 해마다 여름방학이 되면, 초중등학생을 포함한 가족들을 대상으로 모집하는 체험프로그램이었다. 작년에 서울의 사촌들과 함께 했던 기억이 떠올랐던지 올해도 참가하고 싶어했다. 한 달여 전쯤 낸 공고를 보고 미리 신청했다. 작년에는 하빈의 육신사 수당정에서, 올해는 달서구의 병암서원에서 이루어졌다.
프로그램명은 ‘선비의 하루’, 약 4시간 정도 소요된다. 첫 시간은 서원의 역사와 서원의 가능에 대한 설명과 함께 서원 탐방을 한다. 자유 복장에 자유로운 수업 분위기가 이후의 수업을 들을 때와는 사뭇 다르다.
두 번 째 시간은 선비복 체험. 선비의 옷인 유복을 입고 선비의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배운다. 어린 남자아이는 한복에 쾌자를 입고 복건을 쓰고, 여자아이는 치마저고리에 배씨댕기를 머리에 얹거나 족두리를 쓴다. 어른들은 남녀없이 유복을 입고 유관을 쓴다. 입고 벗기가 쉽지 않지만 한복을 입히면 일단 아이들의 처신이 달라짐을 단번에 알게 된다. 옷을 갖춰 입힌 후 공수를 가르치고 나면 앞선 시간에서와 달리 어느새 남자아이는 의젓하고 여자아이는 조신해진다. 절하는 법도 남녀가 다르다는 설명을 들으며 열심히 배우고 익힌다. 한 아이를 앞자리에 불러서 시범적으로 선비의 일생을 가르친다. 붓, 벼루, 먹, 종이, 문방사우를 곁에 두고, 책가도 병풍을 두른 방에서 열심히 공부한 선비가 과거시험을 보러 가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하고, 과거에 급제하여 금의환향할 때 입는 앵삼을 입혀 주기도 한다.
세 번째 시간에는 민화문자도 그리기를 한다. 충효의 의미에 대한 강의를 들은 후, 목판에 한자 ‘충(忠)’과 ‘효(孝)’자가 그려진 문자 그림에 색칠하는 시간이다. 같은 그림판이지만 색칠은 한 것은 제각각인 게 재밌다. 마지막 차 명상 시간에는 차를 마시며 심신을 정화하기도 한다. 네 시간이 순식간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참여자들이 모두 흥미로워한다. 수업 후 나올 때면 아이들은 하나같이 조용하고 음전해졌다. 손을 배 위에 가지런히 모은 자세로 경내를 둘러보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어른의 웃는 얼굴을 보게 된다.
며칠 전 중국 복건성의 남평시에 가서 이와 대단히 유사한 광경을 봤다. 남평시는 주자학의 창시자인 주자가 나고 자라, 공부하며 거의 일생을 보낸 곳이다. 현재 그를 배향하는 서원들이 곳곳에 복원돼 있고, 그를 기리는 크고 작은 행사들이 이뤄지는 도시다. 주자의 사상을 어릴 때부터 가르쳐야 한다는 의미로 정한 시범유치원 행사에 초대받았다. 유치원 곳곳에 배치된 어린 유치원생들이 저마다의 몫을 앙증스러운 모습으로 소화해 내고 있었다. 뜰에서는 차를 재배하여 말리고 덖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무대에서는 각종 기예를 선보이기도 했으며, 마지막에는 차 마시는 모습을 연극처럼 보여주었고, 가장 마지막엔 주자가훈을 외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행사였다. 과장적 분장에 일사분란하게 잘 훈련되어 정돈된 프로그램을 소화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우리와는 좀 다른 체제와 문화의 향기를 느꼈다. 그러나 전통을 익혀 전승하려는 노력은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