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늦여름의 매미가 요란스럽게 우는 줄 알았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울길래 밤중에 베란다로 나가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귀 기울여 보았다. 우리 집 가까이에는 매미가 앉아 울 만한 큰 나무가 없으니 저 건넛산에서 우는 건가? 한밤중에 느닷없이 이상한 짓을 하는 날 보고 남편이 왜 그러냐고 묻는다. 매미소리가 크지 않냐고 되물으니 자기에겐 안 들린다고 했다. 자기에겐 당연히 안 들리겠지라며 웃었다. 귀가 어두운 남편이다. 그런데 그 소리가 언제 어디서나 들리는 걸 알아차리고, 아 이것이 이명이라는 거구나 생각해 낸 건, 그러고도 한참 후였다.
참으로 기이하다. 바깥 어디에서도 나지 않는 소리를, 그래서 남들은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나 혼자만 듣는다고? 이명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외부로부터의 청각적인 자극이 없는 상황에서 귀에서 들리는 소음에 대한 ‘주관적 느낌’이란다. 느낌이 아니고 진짜로 들리는데?
조용히 나 혼자 있으면 더 크게 들린다. 치르르르 수백 마리 매미떼가 한꺼번에 우는 소리 같기도 하고, 솨아아아 키 높은 대나무들이 꽉 차 있는 대숲에 큰바람이 지나면서 내는 댓잎소리 같기도 하다. 우렁우렁우렁 깊은 골짜기 좁고 높은 계곡에서 떨어지는 폭포소리 같기도 하고, 촤르르르 고운 모래 아닌, 오랜 파도에 풍화된 작고 동글돌글한 몽돌이 깔린 바닷가에 파도가 밀려들어왔다 빠지며 나는 파도소리로도 들린다. 처럭처럭 고요한 밤 창밖에서 들리는 제법 굵고 먼 빗줄기 소리 같기도 하다. 이 모두 자연에서 나는 소리로 들리니 어쩌면 집중력에도 좋고 숙면에도 좋다는 백색소음일 수도 있나 생각해 봤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바다나 산이나 시골에 가서 찾아 듣는 자연의 소리가 아니라, 깨어있는 동안엔 항상 귓속에 쟁쟁하니 소음도 이런 소음이 없다. 시끄러워 괴롭긴 해도 머리가 아프거나 하진 않아 그나마 다행이다. 바깥에 나가 누구랑 만나 얘기하고 있거나, 운전 중 라디오 소리에 귀 기울이면 이명을 잊기도 한다. 집에선 최근 잘 켜지도 않았던 TV를 크게 틀어 놓게 된다.
올여름, 손주 둘 돌보며 마음은 즐거웠으되 몸은 지쳤던지 어지럼증이 도져서 병원을 찾았다. 누웠다 일어나면 눈앞이 팽하고 돌고 천장이 춤을 췄다. 20여 년 전 급성 이석증으로 큰 고생을 한 적이 있어, 당연히 그 때문인 줄 알았다. 평형검사, 뇌파검사 결과, 전정기관의 이상이 아니었다. 극도의 피로와 신체적 스트레스 때문에도 어지럼증이 생긴다니 약 먹고 좀 쉬면 나을 줄 알았는데 이명이 덮쳐올 줄이야···.
인터넷을 뒤져 얻은 정보들은 비관적이라 더 걱정스럽다. 이명은 치료한다는 개념보다는 관리한다는 개념이 더 맞는 질병이란다. 이겨내고 극복하려고 하기보다는 이명으로 인한 생활의 불편과 지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명에 덜 집중하고 이명을 무시하는 것이 궁극의 관리란다. 믿기지 않지만 나을 수 없다는 얘기 아닌가? 평생 껴안고 가야 한다면 백색소음이라며 달래며 익숙해지는 방법을 찾아야 하나. 그러나 현재는 괴롭고도 괴로운 소음이다. 참 기이한 병도 다 있다 싶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