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영리하고 영악하기까지 한 베리는 절대권력 일인자였다. 밥이든 간식이든 산책이든 먼저였다. 그걸 잘 아는 아키는 항상 베리보다 한 발짝 뒤에 있었고, 베리가 먹고 난 후에야 먹는 게 당연한 듯 스스로 이인자를 자처했다. 아키는 그렇게 조용하고 조신하고 양순한 성품이었다. 2년 전 베리가 간 후 아키에게 눈에 띄는 몇 가지 변화가 있었다. 혼자 있기를 거부했다. 내가 집을 비운 새 아키가 심한 하울링을 한다는 이웃의 항의 전화에 깜짝 놀랐다. 분리불안 때문이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는 꽤 오랫동안 아키와 동행 외출해야 했다. 하울링은 몇 달 뒤 그쳤지만 분리불안은 여전해서 2년이 지난 지금도 껌딱지다. 어디 갔다 들어오면 반드시 안으라며 달려드니 한 손으로 안은 채, 짐을 풀고, 물을 마시고, 냉장고 문을 열어야 한다. 한참 후 내려주면 그제야 몸을 길게 뻗치며 하품하고, 제가 평소 좋아하던 의자 위에 동그랗게 몸을 말고 눕는다. 시선은 항시 내게 고정이고 눈은 나를 따라 움직인다. 거실에서 벗어나 제 시야에서 사라지면 벌떡 일어나 따라오니 내 그림자에 진배없다.
예전엔 제 매트에서 혼자서 잘도 자던 아키는 이젠 절대 혼잠하지 않는다. 침대 위 내 발치께에서 잔다. 아무리 밀쳐도 요지부동이다. 때로 몸이 괴로워 안방에서 내쫓으면 방문 앞에서 시위하듯 서성이다가 남편 발에 머리를 묻고 자기도 하지만 흔한 풍경은 아니다.
아키도 많이 늙었다. 13살이 훌쩍 넘었으니 사람으로 치면 80 노인이라 입 주위와 귀 끝은 흰색으로 바뀌었고 등덜미엔 빠진 털이 다시 나지 않아 옷 입혀 가려줘야 할 정도다. 작년 겨울 꼬리에 자그마한 혹이 생겨 수술도 했다. 치석 제거하면서, 이를 4개나 뺀 후부터는 딱딱한 음식을 잘 먹지 못한다. 열심히 이를 닦아 주는 데도 며칠 전 또 두 개의 이가 흔들려, 곧 빠질 것 같다. 초롱초롱하던 눈망울은 뿌옇다. 노화로 인한 핵경화증이라 시력엔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언젠간 앞을 못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걱정만 는다.
노인성 투정도 늘었다. 지난주 남편과 둘이 중국엘 갔다가 5일 만에 왔다. 평소 같으면 반가워 격렬하게 달려들었을 아키가 멀찌감치 앉아서 꼼짝하지 않는다. 쳐다보지도 않고 외면까지 한다. 단단히 삐친 듯, 또는 크게 시위하듯 단식투쟁까지 한다. 돌봐준 며느리에게 얘기했더니 밥도 잘 먹고 잘 놀았다며 전혀 그런 낌새를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며칠 지난 후에야 노여움이 가셨나 평소대로 돌아왔다. 대신 껌딱지 증세는 더 심해졌다. 내가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하면 확인 후 거실의 제 의자로 올라가곤 하는데, 중국행 이후부터는 내 발 아래 의자에 바싹 붙어 앉는다. 방바닥이 딱딱하고 차가워 노인에겐 버거울까 방석을 내줬더니 슬그머니 올라가 몸을 말고 눕는다. 지금도 내가 내려다보며 속삭이듯 이름을 부르니 천천히 고개 들어 동그랗고 뿌연 눈동자로 눈맞춤을 하곤 다시 머리를 가슴속에 말아 넣는다. 며칠 후 3일간 또 집을 비우고 아키는 며느리집으로 보내야 할텐데 어쩌나 심란하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