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면서 제 자리에 들어설 어휘가 생각나지 않을 때가 많다. 쓴 글을 읽고 나면 그때야 적절한 단어가 생각나기도 하고, 왜 이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을까, 이땐 이런 단어를 썼어야지 자책하게 된다. 그러면서 심히 부족한 나의 어휘력을 깨닫는다. 남의 좋은 글을 읽을 때면 그런 생각이 더욱 절실히 든다.
며칠 전 이문열의 소설을 읽으면서도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풍부한 어휘들이 적재적소에 놓여 만들어진 문장을 줄 쳐가면서 읽었다. 그래 이럴 때 이런 단어를 쓰니 참 맞침 맞은 표현이 되네. 읽은 문장을 다시 또 읽은 적이 수십 번은 되었다. 요즘은 필요한 단어나 표현을 쉽게 찾는 휴대폰이 있어 단어의 소중함을 잊고 살고 있었다. 더구나 공부를 더 이상 안하게 되면서부터는 사용가능한 어휘가 눈에 띄게 줄었다는 생각도 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궁리해낸 것이 큰사전을 꺼내 읽는 도전을 해볼까였다. 어디 있나 둘러보니 책장 꼭대기에 새우리말큰사전이 눈에 띄었다. 꺼내서 펼쳐보니 깨알 글씨에 상하 두 권 합해서 3856페이지다. 일단 먼지를 닦고 책상 위에 두었다.
예전엔 국어사전이 참 가까이 있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졸업할 때 부상으로 받은 사전은 항상 책상 위에 있었고 필요할 때 펼쳤던 기억이 있다. 숙제를 할 때도 사전을 펼쳤고, 심심할 때도 아무 페이지나 펼쳐 무심히 읽었다. 대학 때까지도 국어사전은 영어사전과 같이 늘 나의 책상 위에 있었다. 한참 지나서는 백과사전까지도 소장하자 큰 부자가 된 듯한 기분을 느꼈던 기억이 새롭다.
우리말 사전은 1911년 말모이원고에서 시작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사전 원고였으나 240자 원고지에 붓글씨로 쓰인 부분적인 원고만 전해진다. 1914년 주시경 사망 후 출간되지 못했으나, 현존 최종 원고는 2012년 국가등록문화재 제523호, 2020년 보물 제2085호로 지정되었다. 조선말 큰사전은 1929년 편찬을 시작했으나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중단됐고 원고마저 없어졌다. 해방 후 1945년 서울역 창고에서 일제에 압수되었던 사전 원고를 되찾으며 다시 추진되었다. 1947년 한글날 조선말 큰사전 1권을 간행하였으며, 이후 1957년까지 10년에 걸친 한글 사전 편찬이 마무리되었다. 이 사전의 원고는 2020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된 기록유산이다.
이 파란만장 갖은 신고(辛苦)를 겪었던 조선어사전 원고와 말모이 원고를 합해 ‘근대한국어사전 원고’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목록 등재신청 대상으로 선정되어, ‘내방가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사무국에 제출했다. 이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IAC)의 심사 등을 거쳐, 2027년 상반기 프랑스에서 개최되는 유네스코 집행이사회(UNESCO Executive Board)에서 최종 등재 여부가 결정될 예정으로 알고 있다.
올해는 우리말 사전의 역사에 의미 있는 방점을 찍는 해이기도 하니, 커다란 사전의 첫 페이지를 펼쳐볼 만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부족한 어휘력을 채울 공부가 첫 번째 목적인데 나의 성실성을 시험해 볼 기회이기도 하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