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동안 이런저런 일로 글씨를 쓰지 못했다. 방학 동안 손주들 돌봄교사 노릇하느라, 한국어교사 자격증 막바지여서 과제 제출이며, 기말시험 등으로 밤샘, 문학공간 첫 책 출간으로 또 몇 날 며칠 애썼더니 덜컥 병이 생겼다. 글씨 수업을 빠지기엔 더할 나위 없는 핑곗거리들이었다.
비록 초보이지만 글씨를 쓴다는 건 대단한 집중을 요하는 거였다. 집에서도 한적한 방에 책상을 두고, 방해받지 않는 시간에 자리해야 했다. 그런 나의 얘기를 들으시더니 선생님은 “그러니 서도(書道)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아직 연습단계니 그럴 필요 없다. 밥솥에 밥 안쳐놓고 한 자 쓰고, 국 끓이며 두 자 쓰고, 빨래 돌리며 서너 자 쓰면 된다”고 하셨지만 그 역시 수련이 필요한지 잘 안된다. 그러니 집에서 글씨를 쓰려면 온전히 밤중을 기대야 하고, 그 시간에 다른 일 해야 하니 도통 종이 펼쳐 먹에 붓을 적셔 글씨 쓸 엄두도 짬이 나지 않는다. 이래저래 글씨를 못 쓰고, 아픈 핑계까지 덜컥 생기니 결석한 지 두어 달을 훌쩍 넘겼다.
9월 들자 심기일전, 다시 글씨 쓰자. 이전까진 채본을 써 주셨다. 때론 내가 쓰기 편한 시조를 선하시기도 하고, 또는 남편의 시 일부를 택해 써 주시기도 했다. 이번엔 직접 채본용 글을 골라보라 하셨다. 서실 서가에 가지런한 책들 위에 누워있는 내 수필집 ‘고비에 말을 걸다’가 눈에 띄었다. 내가 쓴 글에서 고르면 애착이 생겨 열심히 연습할까? 거의 10년 전에 낸 책이었고, 그보다 훨씬 전부터 쓴 글이 대부분이어서 읽으니 새삼스럽다. 그러면서 40자 내외의 채본용 글을 골라 표시했다. 책 한 권을 훑다시피 읽고 표시해 둔 곳을 선생님께 내밀었더니, “아이고 자기 글을 고르랬더니 고른 것은 거의 남의 글인데요···.”
빨갛게 표시된 글은 거의 인용한 남의 시구였다. 김춘수 선생님의 ‘수련별곡’, 혹은 황인숙의 ‘바람 부는 날이면’에 동그라미를 쳤다. 실은 나도 놀랐다. 내가 쓴 글에서는 고를 만한 게 없다는 것에.
그러고 보니 그랬다. 난 도통 내 글이 재미없었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 논문이 그랬다. 박사학위 논문도 부끄러워 최소한으로 출간, 몇 년을 창고에 넣어 묵혔다. 10여 년 지나 수치심이 가신 후에야 꺼내 읽고 수정해서 책으로 엮었다. 수필집도 그랬다. 매 주 써서 신문에 게재하고 그걸 모아 책으로 내도 주위에 돌리기엔 부끄러워 꺼렸다. 앞서의 수필집이 세종나눔도서에, 책도 우수학술도서에 선정되자 겨우 쭈뼛거리며 돌릴 정도였다. 결론적으로 나는 내 글과 논문에 흡족한 적이 없었고, 인정하지도 않았다. 내 글에서 좋은 글귀 하나 뽑지 못한 것이 증명한다.
득의작(得意作)이라는 말이 있다. 작가가 자신의 뜻이나 의도를 만족스럽게 표현한 작품으로 예술가 생애에서 가장 자신 있게 내놓는 대표작이나 역작을 가리킨다. 화가든 소설가든 자신이 뜻대로 이루어져 만족해하거나 뽐낼 정도로 스스로 만족하거나 자부심을 느끼는 작품이다. 득의작은 무슨, 자부심을 느끼지는 못할지라도 최소한 부끄럽지 않은 경지가 되어도 좋겠다 싶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