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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크시티와 로버트 레드포드

등록일 2025-09-24 19:01 게재일 2025-09-2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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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지연씨와 두현씨는 내가 미국 유타주 프로보에 있을 때 가장 친했던 부부였다. 자주 안부를 묻고, 여기저기 구경도 시켜 주는 다정하고 상냥한 부부였다. 어느날 지연씨가 한 시간만 가면 예쁜 도시가 있는데 놀러 가자고 했다. 무조건 좋다며 채비없이 나섰다. 프로보는 높은 워새치산맥이 도시의 북쪽에 버티는 도시였는데, 그 산맥을 가로질러 갔다. 가을날의 빛 좋은 산 풍경도 예뻤고, 가는 길 도로에서 마주치는 험한 산줄기, 깊은 계곡, 그 어디쯤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떨어지는 폭포가 있는 참 재미있는 드라이브 코스였다. 내내 감탄하면서 도착한 파크시티는 예상 밖의 별천지였다.

알록달록, 아기자기한 상점과 집들이 중심도로를 따라 즐비해 있었다. 집 모양은 거의 비슷한데 색깔만 달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형형색색의 집들은 모두 리조트였다. 곧 겨울이 닥치면 이 도시는 스키어들로 북적댈 거라고 했다. 아직 겨울이 아닌 평일 도시의 오후는 한산했다. 그다지 크지 않은 중심가를 천천히 오르내리면서 도시 구경을 했다. 대부분 기념품 상점이었고, 곳곳에 동상이 있었다. 벤치 옆에 곰이 있고, 조금 더 가면 기념품 가게 옆에 광부의 동상, 또 조금 더 오르면 인디언 추장의 동상이 무심하게 있었다. 박물관이라 적혀 있는 곳을 들어갔다. 원래 이곳이 원주민이 있던 곳이었고, 개척 시대에 은광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스키 경기가 여기에서 열렸다는 것도 알게 되었는데, 과연 가게에서 나와 눈을 위로 둘러보니 도시를 둘러싼 산에는 온통 스키슬로프가 마치 혈관 같이 드러나 있었고 도시 위로 스키리프트가 전선처럼 빼곡하였다.

지연씨가 더 예쁜 데가 있다며 안내한 곳은 한 리조트였다. 자연친화적인 외관은 전혀 리조트 같지 않았다. 실내를 구경하면서 복도에 걸린 사진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선댄스영화제의 역사를 소개하고 있었다. 선댄스 영화제라면 그 유명한 미국 배우 로버트 레드포드가 창립한 독립영화제인데? 그때부터 나는 지연씨에게 영화배우인 그에 대해 신나게 얘기하기 시작했다. 실로 지연씨 부부는 탈북해서 미국에 정착하게 된 케이스였기에 할리우드 영화에 대해선 잘 모를 것이었다. 내가 그 배우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그의 영화 중에서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몇 번이나 봤는지, ‘업 클로즈 앤 퍼스널’은 매년 학생들에게 영화감상을 시켰다는 둥, 그가 감독으로도 유명해서, ‘흐르는 강물처럼’은 아카데미상도 받았다는 얘기를 쉴 새없이 지껄였다. 그 로버트 레드포드의 유서 깊은 장소에 이렇게 와 있다는 나의 흥분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지연씨는 깔깔 웃으면서 나를 숲속의 한 바위 앞으로 안내했다. “그래서 여기 선댄스(SUNDANCE)라고 적혀있군요.” 나는 그 돌 옆에서 감개무량한 포즈를 취했다.

며칠 전 로버트 레드포드가 유타주 선댄스 그의 집에서 영면했다는 뉴스를 들으니 8년 전 그날이 문득 생각났다. 그를 추모하고 싶어 넷플릭스로 ‘흐르는 강물처럼’과 ‘밤에 우리 영혼은’을 다시 보았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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