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이 진실을 압도하는 세상이다. 인터넷 모바일이 일상화된 우리나라 대다수 국민들은 범람하는 정보의 홍수에 휩쓸리고 있다. 온갖 잡동사니가 뒤섞여 있는 정보의 홍수에는 진짜보다 가짜가 더 많다. 진짜는 그저 사실일 뿐이지만, 가짜는 사람들을 현혹하기 위해 가급적 선정적이고 자극적으로 만들어진다. 가짜가 진짜보다 더 진짜 같고 더 좋아 보이는 까닭이다.
문제는 그렇게 생산·유포된 거짓 정보가 단순한 오해나 해프닝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넘쳐나는 각종 정보들의 진위를 검증할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터넷상에 떠도는 거짓 정보는 허위로 판명된 뒤에도 그것을 믿거나 반신반의하는 사람들이 과반수라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한 번 믿은 정보는 잘 바꾸려 하지 않고, 오히려 믿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여 확증편향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이런 심리적 메커니즘이야말로 가짜뉴스가 작동·확산하는 근본적인 힘이다.
더 큰 문제는 다량의 거짓 정보가 상업적·정치적 목적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정 개인이나 기업은 소비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정치 세력은 여론을 왜곡해 자신들의 이익을 얻기 위해 가짜뉴스를 조직적으로 생산한다. 이렇게 조작된 정보는 사회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국민들 편을 갈라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든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핵심은 ‘진실에 대한 자유로운 판단’일진대, 그 판단의 기반이 오염된다면 체제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나라에서 선거나 정치적 의사결정이 ‘가짜뉴스’에 좌우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SNS를 통한 여론조작, 인공지능을 이용한 딥페이크 영상 등은 이미 심각한 현실이 되었다. 갈수록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그럴수록 진실과 거짓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 즉 정보판별력과 비판적 사고력이 무엇보다 중요해진다. 진실과 거짓을 스스로 가려내지 못하는 사회는 언제든 불의한 세력에 의해 조종당하고, 결국 파탄을 자초하게 된다.
정치권의 가짜뉴스는 단순한 거짓말이 아니다. 그것은 국민 상호 간의 신뢰를 파괴하고, 공동체의 도덕적 기반을 흔들며, 사회를 불안과 혐오로 몰아넣는 독소다. 진실이 설 자리를 잃으면, 공동체의 대화와 토론은 불가능해지고, 결국 극단과 분열만 남게 된다. 그러므로 현대 민주사회에서 언론과 교육의 역할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언론은 단순한 정보의 전달자가 아니라, 진실을 밝히고 거짓을 걸러내는 공적 필터의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 교육도 단순한 지식전달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힘을 길러주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거짓에 현혹되지 않는 분별력을 갖출 때, 비로소 민주주의는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가짜’와의 싸움을 단순히 윤리적 차원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진실이 무너진 사회에서 밝은 미래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능력, 그것이 바로 민주시민의 기본 자질이고 건강한 사회를 유지하는 동력이다.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