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우체국 앞에서 만나자”는 말이 익숙할 것이다.
한때 시민들의 약속 장소이자 도심의 중심이었던 중앙상가와 육거리 일대는 이제 사람의 발길이 드문 거리로 변해가고 있다.
낡은 간판과 ‘임대 문의’ 현수막이 늘어가며, 포항의 상징이었던 이곳은 세월의 흔적과 함께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하지만 도시의 빈집과 빈 건축물은 더 이상 버려진 공간이 아니다. 그곳은 도시가 스스로를 다시 설계할 수 있는 여백이며, 시민과 지역이 함께 미래를 실험할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이 될 수 있다.
최근 한동대학교가 주최한 ‘다시, 육거리(RE:CROSSING)’ 프로젝트는 그 가능성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중앙상가의 20여 개 빈 점포를 임대해 전시·공연·체험 공간으로 꾸민 이 프로젝트는 대학, 상인회, 예술가가 함께 만든 민간 주도형 도심 재생 모델이다. 학생들의 졸업 작품이 골목 전시로 이어지고, 청년 밴드의 공연이 상가의 불빛을 다시 켜는 장면은 빈집이 단순한 철거 대상이 아니라 도시를 재창조하는 무대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얼마 전 열린 ‘포항시 빈집 정비 및 관리방안 대토론회’에서는 이러한 논의가 더욱 구체화하였다. 포항은 2019년 기준 노후 공동주택 빈집 수 3,556호로 전국 3위 수준에 이른다. 토론회에서는 “도농 복합도시인 포항은 획일적인 정비보다 지역 맞춤형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는 의견과 충남대 건축학과에서 “멋진 건물보다 살기 좋은 동네가 중요하다”며 빈집을 공유와 휴식의 오픈 스페이스로 조성한 사례도 소개되었다.
이제 포항은 단순히 철거형 빈집 정비사업에서 벗어나 소유주·시민·공공이 함께 관리하는 거버넌스 형 모델로 나아가야 한다는 데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 국내외에서는 이미 빈집을 도시재생의 자산으로 삼은 성공 사례가 많다.
일본은 ‘아키야(빈집) 뱅크’를 통해 노후 주택을 청년 창업자나 예술가에게 연결했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폐공장을 리모델링해 문화와 기술이 공존하는 ‘이노베이션 허브’로 재탄생시켰다. 우리나라 전주의 팔복예술공장은 버려진 산업단지를 예술공간으로 바꾸어 시민의 발길을 되돌려놓았다.
이제 포항도 이러한 흐름 속에서 ‘포항형 빈집 실험 프로젝트’를 만들어야 할 시점이다. 이를 위해 몇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첫째, 지금의 빈집 정비사업은 공영주차장이나 임시 텃밭 조성에 머물러 있다. 이제는 상상력을 더해 시민들이 즐겨 찾는 문화·예술·공유공간으로 재탄생시킬 필요가 있다. 둘째, 민·관·학이 함께 참여하는 거버넌스 형 빈집 프로젝트를 구축해야 한다. 한동대에서 주최한 ‘다시 육거리’처럼 지역 대학과 청년, 기업이 협력해 쇠퇴한 원도심에 창의적 활력을 불어넣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 정부의 ‘뉴:빌리지 사업’이나 ‘범정부 빈집 관리계획’을 포항 실정에 맞게 접목해 철거보다 관리·활용 중심의 도시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빈집은 도시의 상처가 아니라, 새로운 실험의 무대다. 포항의 빈집이 다시 빛을 켜고, 사람의 온기가 돌아오는 그날까지 시민·대학·기업이 함께하는 ‘포항형 빈집 실험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추진되길 기대한다.
/김은주 포항시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