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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치인부터 법의 코뚜레를 꿰어야 한다

김진국 고문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에 대해 여론이 분분하다. 검찰이 2일 청탁금지법 위반이 아니라며 ‘무혐의’ 처분하기로 한 것을 두고도 말이 많다. 고위공직자 부인이 수백만 원짜리 선물을 받아도 죄가 되지 않는다니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법이 그렇다. 남편인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와 관련성은 부인하기 어렵다. 선물을 준 최재영 목사는 김창준 전 미국 연방하원의원의 국정자문위원 임명, 사후 국립묘지 안장, 통일TV 송출 재개 등을 청탁했다고 주장했다. 모두 윤 대통령의 직무에 속하는 문제들이다. 최 목사는 2022년 6∼9월 사이에 300만 원짜리 디올백, 179만 원어치 샤넬 화장품 세트, 40만 원 상당의 양주를 김 여사에게 줬다고 했다. ‘뇌물’이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 많은 돈을 쓴다는 게 말이 되나. 그렇지만 부인은 처벌할 수 없다고 한다.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없다는 게 검찰 결론이다. 그 직무를 하는 대통령은 남편이지, 김 여사가 아니다. 검찰은 “수사팀이 ‘법률가의 직업적 양심’에 따라 내린 결론”이라고 주장했다. 검사의 ‘양심’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이 난타했으니 차치하자. 법을 어떻게 만들어놨길래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나. 시장에게 인사 민원이 있으면 시장 부인에게 비싼 선물을 하면 된다는 말이 된다. 청탁할 일이 있는 사람이 국회의원 부인을 찾아가 ‘선의’이고, ‘친교’를 하기 위해서라며 뇌물을 먹이면 대가성이 없는 게 된다. 부패하고 망조가 든 나라가 떠오르지 않나. 사실 청탁금지법을 만들 때부터 국회의원에 대한 특혜 시비가 있었다. 가장 부패 위험이 큰 직군은 국회의원이다. 그런데 선출직 공직자가 공익 목적으로 제3자의 고충 민원을 들어주는 것은 예외로 했다. 국회의원이 민원은 들어야 한다. 하지만 ‘공익’이라는 규정은 모호한 고무줄이다. 엄격하게 선을 긋지 않았다. 가장 부패하고, 가장 불신받는 정치인은 제외됐다. 그 법을 만드는 사람이 국회의원들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공직자의 배우자에 대한 규제는 느슨하다. 배우자는 공직자의 ‘직무와 관련해’ 공직자에게 적용되는 것과 같은 액수의 금품을 수수·요구·약속하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이를 어겨도 처벌 조항이 없다. 김 여사도 처벌할 수 없다. 민주당은 김 여사 문제를 연일 공격한다. 국민의 눈으로 보면 윤 대통령 부부를 공격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그런 일을 반복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왜 법은 손 보지 않을까. 그래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똑같은 특혜를 누리려는 걸까. 의원 신분인 지금도 같은 처지여서인가. 민주당은 2일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박상용 수원지검 부부장검사 탄핵 청문회’를 열었다.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를 앉혀놓고, 해명을 들었다. 이재명 대표가 연루된 대북 송금 사건과 관련해 이 대표를 엄호하는 청문회다. 민주당은 이 밖에도 이 대표를 수사하는 검사들을 줄줄이 탄핵 소추했다.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결정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렇지만 그동안 이들의 직무가 정지된다. 수사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다음 대통령 선거까지 어떻게든 대법원판결을 늦추려는 지연전술에는 특효약이다. 이 대표 관련 사건을 변호해 온 사람들을 대거 공천해 의원으로 만들었다. 의원 신분으로 검사와 판사를 겁박한다. 국회 다수당의 지위를 이용해 이들을 국회로 소환해 압박한다. 국회의원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아니 국회의원이라도 재판을 두고 사법부를 좌지우지하려는 이런 일은 이전에는 보지 못했다. 얼마 전 운동권 대부라는 장기표 씨가 타계했다. 그는 지난해 한 언론 인터뷰에서 “정치를 난장판으로 만든 가장 큰 원인은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을 비롯해 국회의원들이 누리는 180여 개의 엄청난 특권”이라고 주장했다. 내각제 개헌론이 나올 때마다 걱정하는 게 국회의원들의 부패다. 부패한 정치인들이 국정을 자기 이익을 도모하는 방향으로만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헌정체제이건 정치 부패를 방지하려면 사법제도가 정치권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 대통령은 부인 문제로, 야당은 당대표 문제로 검찰과 법원을 마구 흔들어대니 걱정이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10-06

세상을 변화시키는 지혜 : 1대10대100의 법칙

신일철 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호미와 가래는 농기구의 일종이다. 호미는 잡초 뽑기나 씨앗심기 또는 흙을 파서 뒤집는 과정에 사용되며, 가래는 진흙 밭이나 물이 많은 논을 갈 때나또는 도량을 파거나 논둑을 쌓고 집터와 도로를 다질 때도 사용한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여기서 호미는 문제가 작을 때는 빠르고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는 수단을 의미한다. 이는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방치해서 후에 더 큰 노력과 비용을 들여야 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사소한 문제일지라도 무심결에 방치하거나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는 지혜를 전해주는 속담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는 회사나 조직 또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늘 문제에 직면하며 살고 있다. 고객이나 거래처가 우리의 제품 또는 서비스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는 일은 다반사이며, 또한 인간으로써 내적 갈등 속에서 스스로의 문제를 자각하고 있다. 1: 10:100 법칙이란 최초 문제발생 시 즉각적으로 이를 바로잡는데 드는 비용이 1이라면, 책임소재나 문책 등을 이유로 문제를 숨긴 체 계획이 진행되거나 제품이 시장에 출시된다면 문제 해결을 위해 10의 비용이 발생하고 이 문제를 무시하다가 고객의 클레임으로 발전되면 100의 비용이 소요된다는 원리이다. 건설업의 예를 보면 설계단계에서 설계 단계에서 구조적 결함을 발견하고 수정하는 데 비교적 적은 비용이 들지만, 건물이 완공된 후 결함이 발견되면 이를 수정하고 보상하는 데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다. 제조업에서도 고객 문의나 불만을 신속하게 처리하고 해결하는 데는 적은 비용으로 가능하지만 해결되지 않고 고객이 이탈하거나 부정적인 리뷰가 쌓이면 평판을 회복하는 것은 어려워 결국 비즈니스를 망치게 된다. 또한 정기적인 건강 검진을 통해 질병을 예방하는 데는 진단 비용만 들지만 질병이 초기 단계에서 발견되어 치료하는 데 10의 비용이, 질병이 악화되어 복잡한 치료와 장기적인 관리가 필요한 경우 100의 비용이 든다. 문제해결 방법에 있어서는 근본적인 해결보다는 미봉책에 그치는 임시방편식으로 처리하는 일이 다반사인 것이 현실이다. 개인적으로 자신에게 발생한 문제에 대해 남 탓만 하고 자신을 바꿀 생각은 없이 나이가 들면 들수록 점점 더 심해지는 경향이 있어 꼰대라는 소리까지 듣게 된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고 이를 오랫동안 방치한다면 이를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리는 데 100 아닌 1000의 비용이 들어가서 결국 조직은 망하고 개인은 뼈저린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 문제를 표면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원인을 탐색하여 해결책을 마련하고 실행에 옮긴다면 남들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일상에서 누군가는 매사에 문제의식을 갖고 개선점을 찾아가며 근본적인 해결책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직면’하는 반면 또 다른 누군가는 문제의식이 없거나 문제를 발견해도 현 상황의 모면에 급급하고 세상 탓으로 살아가는 ‘외면’의 모습을 보인다. 소를 잃고 난 후 외양간을 고치는 것보다 소를 잃기 전에 외양간을 미리 고치는 모습에서 보다 적극적이고 현명한 삶의 자세를 본다.

2024-10-06

해임할 결심 후

유영희 작가 이번 가을에는 뜻깊은 강의를 하고 있다. 사서삼경 중 가장 처음 공부하는 경서인 ‘대학’을 원문으로 읽는 수업인데, 20대부터 60대가 함께하고 있다. 한문 고전을 처음 접하는 수강생도 있고, 격몽요결을 읽고 온 수강생도 있지만, 문장 하나하나 뜯어보고 곱씹으며 의미를 발견하는 중이다. ‘대학’은 ‘예기’라는 중국 고대 문헌에 들어있는 짧은 정치 에세이이다. ‘예기’에는 ‘대학’과 ‘중용’을 포함하여 모두 49편의 글이 들어 있는데, 저자를 확실히 아는 작품은 별로 없다. 공자 제자인 증자가 ‘대학’을 썼다는 전통적인 주장도 확실한 근거가 없어서 지금은 작자 미상의 상태나 다름없다. 그러나 작자와 저술 연대가 불확실하다고 해도 고전으로서의 가치를 잃은 것은 아니다. 여전히 깊은 생각거리를 던져주기 때문이다. ‘대학’의 저자는 ‘시경’이나 ‘서경’ 등 고대 문헌의 구절을 인용하고 나서 부연 설명하는 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다. 예를 들어, 시경에 나오는 “아아, 돌아가신 왕을 잊을 수 없도다.”라는 구절을 인용하고는 왜 사람들이 돌아가신 왕을 잊지 못하는지 이유를 설명하는 식이다. 여기서 ‘돌아가신 왕’은 주나라 건국의 기틀을 마련한 문왕과 실제로 상나라를 정벌하고 주나라를 세운 무왕이다. 군자(통치 계층에 있는 사람들)는 돌아가신 왕이 등용한 사람이 모두 현명하고, 가족과도 화목했기 때문에 돌아가신 왕을 잊지 못하고, 소인(자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들)은 돌아가신 왕의 복지 정책과 경제 정책이 좋아서 돌아가신 왕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역사를 보면, 군자와 소인이 문왕과 무왕을 잊지 못하는 최종 이유는 상나라 주왕의 폭정에서 백성을 구했기 때문이다. 주왕의 이름은 제신인데, 폭군으로 악명이 높아 죽은 다음에 주(도리를 잃고 선을 해치는 사람)라는 시호를 받았다고 한다. 주왕의 폭정이라면, 간신만 옆에 두고 예쁜 여자 달기에 빠져 정치를 소홀히 했다거나, 주지육림을 즐겼다는 주왕 개인의 도덕적 타락이 주왕에 대한 전통적 평가였지만, 그보다는 상나라의 무리한 영토 확장 정책에 주변 제후들이 반기를 들었다는 견해도 많다. 개인의 도덕적 타락이든 상나라의 무리한 정책이든 무왕에게는 상나라 정벌의 좋은 명분이 되었고, 후대에 훌륭한 왕으로 칭송받은 것이다. 한편, 아무리 주왕이 타락했다고 해도 무왕의 상나라 정벌은 당시에도 백이숙제에게 비판받았고, 후대에도 두고두고 무왕의 정복 전쟁이 최선이었느냐는 논란이 이어졌는데, 이런 질문은 현재에도 유효하다. 3년 전 60평생 처음 장만한 낡디낡은 작은 집 한 채로 주택조합에 가입했는데, 최근 조합 운영에 명백한 문제를 발견했다. 그동안 여러 일이 있었던 터라 이번에는 해임을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가 보류하고 다른 방법을 찾는 중이다. 누구를 응징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내가 평생 살 수 있는 집을 잘 짓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탄핵 정국으로 우리나라 정치가 요동치고 있다. 여야 정치인 모두 국민을 위한 최선의 노력을 포기하지 않기 바란다.

2024-10-06

젊은이를 사랑하고, 노인을 존중하라!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대만(臺灣) 출신 저자 당락(唐)의 ‘명예, 부, 권력에 관한 사색’을 읽다가 무릎을 친다. 젊은이는 비판해서도 안 되고, 비판의 대상도 아니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돈과 권력 그리고 명예에 관한 진지한 단상 88개를 포함하여 모두 1만4400자에 이르는 상당한 분량의 책에 느닷없이 등장하는 구절이 나의 폐부를 강렬하게 찔러왔기 때문이다. 나이 지긋한 대한민국의 기성세대는 시도 때도 없이 요즘 애들은, 하고 입에 게거품 물기 일쑤다. 패기가 없다, 예의범절을 모른다, 이기적이다, 인내심이 부족하다, 등등 하나같이 부정적인 평가 일변도로 젊은이들을 깎아내린다. 그러면서 ‘라떼는’ 하고 철 지나 녹슬고 고색이 창연하여 누구도 귀담아듣지 않는 낡아빠진 풍악을 두둥 울려댄다. 여기서 발생하는 것이 세대 갈등이다. 갈등의 골과 폭이 깊고 넓어서 쉽게 메워지지 않을 것 같다. 원인 제공자는 당연히 사회의 주도 세력인 나이 먹은 기성세대다. 오랜 세월 세파(世波)에 단련된 그들 눈에 비친 젊은이들은 미숙하고 한심하며 안타깝기 이를 데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 역시 요즘 젊은이들처럼 20대와 30대 시절을 지나오지 않았는가?! 그래선지 당락의 주장은 곧장 내 심장을 관통한다. 그렇구나, 나도 더러 깊은 생각하지 않고 청년들을 나무라고 몰아세웠는데, 이건 정말 잘못한 짓이구나, 하는 생각에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비난의 화살을 쏘고, 손가락질하는 것은, 그런 정황을 경험해야 하는 상대방의 관점에서 보면 참으로 어처구니없고 처참한 지경이 아닐 수 없을 터. 비난과 거부가 아니라, 동조와 이해의 시각으로 청춘을 바라보면 어떨까, 생각한다. 당락의 서책은 2016년에 대만에서 출간됐고, 2020년에 한국어로 번역됐으며, 나는 2024년에 읽기 시작했다. 나와 서책 사이에는 8년의 시차가 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50세가 넘으면 침묵해야 하고, 노인은 그림자처럼 조용히 죽음을 향해 홀로 가야 한다는 문장이 섬뜩하게 다가온다. 대만에서는 8년 전에 기성세대 전반에 대한 청년세대의 불신과 기성세대의 자조(自嘲)가 이미 시작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그보다 8년 전에 이런 풍조(風潮)가 번져나갔다. 그것을 입증하는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개봉된 해가 2008년이다. “요즘엔 노인이 개 목걸이를 하고 알몸으로 거리에 뛰어나가야 사람들이 겨우 쳐다보는 세상이야”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이와 같은 노인 경시 풍조는 2016년에 대만에서 일상화되고, 요즘 한국 사회에서 대단히 만연된 형국이다. 정확한 시점(時點)을 제시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지만, 현대 사회에서 노인 홀대나 노인 경시 풍조는 다반사(茶飯事)가 되고 말았다. 그림자나 허깨비처럼 대접받는 노인들이 차고 넘치는 게 우리 사회의 감출 수 없는 풍속도 아닌가?! 나는 노장과 청춘의 대결과 충돌이 아니라, 양자의 조화와 화합을 말하고 싶다. 청년세대를 따사롭게 감싸는 여유로운 노인이 늘어나고, 노인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젊은이가 한층 많아지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사랑과 존중이 넘쳐나는 그런 세상이 하루빨리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2024-10-06

국감스타 나올까?

우정구 논설위원 오늘부터 22대 국회 첫 국정감사가 시작된다. 국정감사는 국민을 대신해 정부의 국정운영 과정을 감독하고 감시하는 국회의 중요한 의정활동 중 하나다. 국회의원 개인으로서는 의정활동 역량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돼 국감을 ‘국회의 꽃’이라고도 부른다. 이번 국감은 정부 부처와 산하기관, 지방자치단체, 정부 투자기관 등 모두 800군데 가까운 기관을 대상으로 감사를 벌이게 한다. 광범위한 기관을 대상으로 벌이는 국감인 만큼 국민적 관심도 그만큼 높다. 국정감사나 청문회 등에는 가끔 스타 국회의원이 탄생한다. 1988년 5공 청문회 때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타 국회의원으로 부상했다. 무성의한 답변으로 일관하던 전두환 전 대통령을 향해 명패를 집어던져 화제가 되었다. 명패를 던진 것으로 유명해진 것은 물론 아니다. 증인신문을 통해 속 시원한 답변을 이끌어 내는 그의 열정적 의정활동 모습이 스타로 만든 것이다. 과거에 가끔 등장하던 스타 국회의원이 최근에는 뜸해졌다. 살벌한 여야 정쟁 분위기 탓에 개인의 의정활동이 빛을 보기 힘든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다. 22대 첫 국감은 윤석열 정부 3년차 중간평가를 두고 여야 간 격한 공방이 예상된다. 특히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 관련한 의혹과 특검법 등 여야 간 극한 대립이 예상되는 이슈들이 수두룩하다. 국감장이 정쟁으로 뒤범벅돼 민생이 뒤로 밀릴까 우려스럽다. 국감의 본질은 국민의 삶과 국가 발전을 살피는 일이다. 정쟁에 매몰된 국감은 국감으로서 의미가 훼손될 수밖에 없다. 민생에 집중하는 국감스타 탄생을 바라는 국민의 뜻이 반영되길 바란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10-06

여권, ‘김여사 리스크’로 결국 공멸의 길 가나

‘김건희 특검법’으로 인해 국민의힘 당론 균열이 가속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로 지난 4일 국회 본회의에 재상정된 이 특검법안은 총투표수 300표 가운데 찬성 194표, 반대 104표, 무효 1표, 기권 1표로 부결됐다. 단 ‘6표 차’로 법안이 최종 부결되면서 여권에 큰 파문을 던졌다. 국민의힘(108명)에서 최고 4명의 의원이 당론을 무시하고‘이탈표(찬성·기권·무효표)’를 던진 것이다. 지난해 12월 ‘김건희 특검법’ 재표결 당시(재석 의원 281명 중 찬성 171명, 반대 109명, 무효 1표)와 비교하면 찬성표는 23명 증가한 반면, 반대표는 오히려 5명 줄어들었다. 21대 국회에서 부결됐을 때보다 여당 이탈표가 증가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 특검법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현재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독소조항을 완화해 ‘김건희 특검법’을 재추진할 경우 여당 내에서 예상치 못한 표결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여당 내부에서는 애써 당혹감을 감추고 있지만, 특검법 저지 동력을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확산하고 있다. 국민의힘 김재섭 의원은 “특검법안 자체에 대한 위헌성 때문에 양심상 거부했지만 김 여사 문제는 심각하다”고 했고, 한동훈 대표 측근인 신지호 전략기획부총장은 “이 특검법을 언제까지 방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현재 김 여사 문제와 의료사태를 둘러싼 여권내 갈등은 심각한 상황이다. 드러내 놓고 한 대표를 패싱하는 대통령실과 친윤계는 ‘김대남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피해자인 한 대표를 오히려 비난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런 일이 지속되면 한 대표 지지 의원들이 김건희 특검법 재표결 과정에서 대거 찬성표를 던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여권 내분이 여기서 한 걸음만 더 진행되면 윤석열 정부는 ‘친한계가 합류한 국회 권력’과 충돌하면서 국정동력을 완전히 상실할 수 있다. 최악의 경우, 윤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도 있다.

2024-10-06

해파리 쏘임 사고 급증… 기후위기 경고다

기후변화로 해수면 온도가 올라가면서 올해 전국에서 해파리 쏘임 사고가 급증한 것으로 밝혀졌다. 더불어민주당 임호선 의원이 해양수산부로부터 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의하면 올 9월까지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해파리 쏘임 사고는 모두 4224건으로 집계됐다. 작년 전체 건수 753건의 5.6배 수준이다. 지역별로는 부산이 1316건으로 가장 많았고, 경북은 977건으로 두 번째로 많았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해역으로 해파리가 출몰한 것은 기후변화가 주범이라 설명한다. 해파리는 해수 온도가 높아지면서 번식지인 동중국 해역에서 해류를 타고 동해안으로 유입되고 있는데, 해파리 먹이인 플랑크톤 등이 증식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진 것이 원인이라 한다. 우리나라 연안에 출몰하는 해파리는 주로 노무라입깃해파리로 알려져 있다. 길이 1∼2m에 달하고 독성이 강해 쏘이면 발열과 근육마비 등의 증상을 유발한다. 여름철 해수욕객에게 피해를 줄 뿐만 아니라 어민들의 조업에도 심각한 영향을 준다. 초대형 해파리가 그물에 걸려 그물을 찢기도 하고 물고기를 훼손해 상품성을 떨어뜨리는 피해도 준다. 또 해파리가 출현하면 어민들이 조업에 나서지 않아 피해를 가늠하기조차 힘든 형편이다. 당국이 예산을 들여 방지막 설치 등 피해 예방에 나서나 근본적 해결책은 안 된다. 올들어 국내에서 해파리 쏘임 사고가 급증한 것은 해파리의 출몰이 역대급으로 발생한 탓이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해양생테계 변화에 즉각적이고 다각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국립수산과학원은 우리나라 바다가 과거 50년 대비 최근 50년간 해양온난화 현상이 더 심각해지고 있다고 연구결과를 밝힌 바 있다. 해파리의 출몰과 쏘임 사고를 지구촌 기후위기로 인식하고 대응책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 국가 차원의 대책도 필수겠지만 지방자치단체도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대책 마련에 지혜를 동원해야 한다. 올여름 우리가 겪은 무더위가 기후위기의 한 단면이었던 것처럼 해파리 쏘임 사고 폭증도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우리에게 경고한 것이다.

2024-10-06

포시랍다는 말, 내게 하지마

이희정시인 아버지의 나라에서 가장 빛나는 말 포시랍다는 말 포시랍다는 말 입안에서 이리저리 굴리다보면 포슬포슬 고운 먼지가 일어날 듯하고 보드라운 솜사탕 한입 먹은 듯 몽글몽글 뭉게구름 하얗게 피어나 머리끝이 거꾸로 선다 포시랍다는 말의 온기로 그 말의 사랑으로 그 말의 넉넉함으로 나는 여전히 철딱서니가 없고 어느 날 포시랍다는 말,에서 강제 추방당하고 나니 그 속에 든 사랑과 온기와 배려와 부드러움에게마저 추방당해 나는 세상 물정 모르는 가장 포시라운 사람이 되었다 ―배영옥,‘포시랍다는 말’전문(‘백날을 함께 살고 일생이 갔다’, 문학동네) 저녁이면 비스듬히 열어둔 창문 틈새로 스미는 바람이 차다. 어느새 극세사 보드라운 올들이 그리운 계절이 온 것이다. 형용사 ‘포시랍다’는 말을 손가락 끝에 올려두고 굴려본다. ‘곱게 자라 철딱서니가 없다’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라고 한다. 조심조심 만져야 하는 말이다. 왠지 함부로 해선 안 될 것 같은, 부서질 것만 같은, 어린 새의 깃털 같은 여린 것들이 떠오르니 말이다. 1999년 매일신문으로 등단해서 2018년 지병으로 소천한 배영옥 시인을 생각하면 포시랍다는 말이 생경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조용하고 수더분한 느낌에 더해 매사에 조심스러워 무슨 잔치나 행사 같은 데서 모두들 입장한 다음에 슬그머니 들어와 혼자 뒷전에 가만히 앉는 사람 같은, 아니 제일 먼저 들어왔는데도 큰 기척 없이 맨 나중에야 일어서는 사람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조용하지만 명랑하기도 해서 격정을 가졌으면서 누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고 이영광 시인은 그이의 유고 시집 ‘백날을 함께 살고 일생이 갔다’의 발문에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포시랍다’는 말은 어쩌면 시인을 닮았으리라. 시인은 ‘포시랍다’는 말이 “아버지의 나라에선 가장 빛나는 말”이라고 했다. 스무 살에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마음의 병으로 몸의 병을 불러내어 시를 쓰면서 자신과 조금씩 화해를 하기 시작했다는 시인의 시편을 조심조심 입술로 굴려본다. 조심조심(操心操心)이라는 한자어를 풀어보면 “실수가 없도록 마음을 쓰는 모양”이다. 더하여 잡을 조(操)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무목 글자 위에 입구가 셋이다. 이것은 나무 위에서 모이를 기다리는 아기 새의 입 모양을 닮았다. 그러니 어찌 조심스럽지 않겠는가. 아기새는 꽉 쥐면 다칠 것이고, 새의 알이라면 부서지거나 조심성 없이 헐겁게 쥐면 떨어뜨리게 되기 쉬우니 말이다. 아버지의 나라에선 누구든 그랬다. “포시랍다는 말의 온기로 / 그 말의 사랑으로 /그 말의 넉넉함으로” 철이 없어도 다치지 않았고 철딱서니 없다는 이유로 해치지 않았다. 하지만 포시랍다는 말에서 강제 추방되고 보면 시인의 말처럼 “그 속에 든 사랑과 온기와 배려와 / 부드러움에게마저 추방당해 / 세상 물정 모르는 / 가장 포시라운 사람이”된다. 둥지를 잃고 빠져나온 세상이라는 곳은 녹록지 않다. 철딱서니란 둥지를 떠나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포시라움인 것처럼. 그러나 생전의 시인은 혼자의 몸으로 쿠바라는 애인과 8개월 동안 열애를 한 일이 있다. 단 한 번도 한국을 떠나본 적이 없는 그녀를 세상물정을 모른다며 친구들은 걱정했지만 체 게바라와 생일이 같다는 억지 이유를 들어가며 기어이 쿠바와 조우했다. ‘포시랍다’는 말만으로도 포시라워지는 시다. 그러니까 이 시는 이른 나이에 찾아온 병마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끝내 황폐해지지 않은 시인에 대한 포시라움을 다루고 있다. 결국 사람은 그 자신의 운명이다. 어쩌면 ‘포시랍다’는 그렇게 말하는 시인지도 모른다. “내가 끝내 영원으로 돌아간다 한들 아무도 나를 탓하지 않으리라. 훗날 네게만 말해 줄게”(2018년 작가의 말)

2024-10-06

봉화군 새 미래 청사진 그리다

박현국 봉화군수 미래 우리 사회는 AI 등 4차 산업 혁명과 전 지구적 기후변화, 저출생과 고령화 등 큰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특히 지방소멸이라는 심각한 위기 속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미래 계획을 착실히 준비해 나가야 한다. 봉화는 미래에 예측되는 새로운 변화를 지역 곳곳에 담아 지속 가능한 새로운 봉화시대를 열어가려고 한다. 최근 봉화군은 청소년센터 공연장에서 기관 단체장을 포함한 3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새로운 봉화시대 개막, ‘비전 2040’이 함께합니다.’라는 주제로 봉화 2040 미래 비전 선포식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봉화 2040 미래 비전으로 △미래담보 농업혁신 △오감충만 매력관광 △지속가능 성장도시 △미소가득 행복도시 △미래가치 산림경영 등 5가지를 선포했다. 특히 K-베트남 밸리사업, 스마트팜 조성사업, 양수발전 사업 등 봉화 핵심 3대 사업과 이와 연계한 봉화군 산업 혁신 2040 미래 비전도 제시했다. 우리 봉화군은 지역 농업의 생산부터 유통까지 전 분야에 스마트 기술을 확충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봉화농업의 지속가능한 미래 성장동력인 봉화형 스마트팜을 지속 육성하고, ICT 융복합 등 첨단기술을 농업 다방면에 접목해 미래형 영농 기반을 확대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또 기후변화에 대응한 고소득 대체 작물 개발에 적극 나서고 지역 식재료를 활용한 대표 먹거리 발굴로 봉화 농산물의 가치를 높여갈 예정이다. 외국인 근로자와 청년 농업인에 대한 과감한 지원으로 농업에 활력을 불어넣고 농업인구 증대를 위한 차별화된 귀농귀촌 정책을 추진하는 등 미래 농촌인력 구조 변화에도 선제 대응할 방침이다. 최근 베트남의 주요 인사들이 봉화를 방문하면서 봉화군에서 추진하고 있는 K-베트남밸리 조성사업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커지고 있다. 봉화군은 K-베트남밸리 조성사업을 통해 베트남 관광 활성화로 지역소멸 위기에 대응하고 향후 이주사회를 대비해 이주정책의 선도지역으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국내외적 큰 관심을 받고 있는 K-베트남 밸리를 성공적으로 추진해 지역특화발전 특구로 발전시키고, 이 일대에 골프장, 리조트 등 각종 문화관광 기반을 추가 구상해 베트남 관광객이 먼저 찾는 글로벌 K관광 밸리로 만들어갈 예정이다. 미래 에너지인 양수발전소 일대를 복합관광지화해 차세대 관광 에너지로 만들어가고, 지역산림을 활용한 매력있는 관광자원을 새롭게 발굴해 산림관광의 메카로 조성해 나갈 전망이다. 체류형 관광의 필수 조건인 대규모 숙박시설 건립을 위해서는 민자유치 활동에 더욱 노력하고, 분천 산타마을,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등 기존 자원과 연계한 관광사업 추진과 함께 오전, 다덕 2개소 지정 관광지의 옛 명성 회복을 위한 사업들도 발굴 추진도 계획하고 있다. 군민이 행복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100세 시대에 대응한 대규모 실버 웰니스 타운, 스마트 경로당 등 차세대 복지기반 시설을 확충하고 지역 공공의료 인프라 강화를 통한 꼼꼼한 건강관리와 함께 여가생활 증진을 위한 복합문화 시설도 확대해 나간다. 취약계층에 대한 다양한 정책 추진으로 복지 사각지대에 대한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1인 및 고령가구 등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한 정책도 발굴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경제생활의 한 축인 여성들의 사회활동 지원정책을 발굴 진행하고 사회적 약자로 대변되는 청년에 대한 따뜻한 관심을 통해 당당한 사회 일원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하며 다양한 계층이 혜택보는 맞춤형 일자리 정책 추진으로 지역에 활기를 불어 넣겠다. 아울러 가족친화도시 정착을 위한 실질적 지원을 강화하고 교육발전특구의 미래혁신형 인재양성을 위한 전폭적인 지원으로 봉화 미래의 씨앗을 확실히 키워갈 예정이다. 지역의 핵심 자원인 산림을 활용한 산림 바이오 혁신성장 거점단지 등 미래산림 인프라를 대폭 확충하고 미래 성장산업인 목재산업을 국가유산수리재료센터와 연계한 집적화를 통해 지역 주류산업으로 만들어 갈 예정이다. 산림관련 국책 연구 및 교육기관 유치에 적극 나서 산림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임업 소득 창출을 위한 차별화된 시책을 통해 농산촌업의 균형 발전을 도모하고 또 도시 숲, 정원 등 산림 생활공간과 산림문화 인프라 확대를 통한 일상 속 산림 복지 체계를 강화하고 지구온난화에 대응한 중장기적 산림 가꾸기 전략 수립으로 산림 생태계의 건강성을 지속 유지해 나갈 전망이다. 또 과학적 산불 예방 및 산림지역 특성을 고려한 산사태 재난 안전망 구축으로 산림 재난으로부터 군민 안전을 지켜나갈 계획이다.

2024-10-06

‘쉬운 모평’과 의대증원…뒤숭숭해진 대입시

6월과 9월 치러진 대학수학능력시험(11월 14일) 모의평가가 ‘극과 극’의 난이도를 보이면서 수험생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 어느 수준에 맞춰 입시준비를 해야 할지 막막하기 때문이다. ‘수능전초전’으로 불리는 9월 모의평가는 6월 모의평가와 달리 수능과 가장 유사하게 출제됐었다. 올해 대입시의 경우 9월 모의평가 점수로 상위권 대학 합격 가능성을 예측하는 것은 사실상 의미가 없어졌다는 말도 나온다. 교육부가 지난 1일 발표한 수능 9월 모의평가 채점 결과를 보면, 전 영역에서 만점을 받은 수험생이 63명(재학생 18명, 졸업생 등 45명)에 이른다. 만점자가 지난 6월 모의 평가(6명) 때보다 10배 이상 많았다. 국어는 최고점을 받은 수험생이 4478명(1.17%)으로, 올해 전국 의대 39곳 모집 인원(4485명)과 비슷했다. 수학은 최고점자가 135명이었지만 차점자가 4601명에 달했다. 영어는 1등급 비율이 6월 평가에선 1.47%에 불과해 ‘불영어’로 불렸지만, 이번 시험에선 무려 10.94%(4만2212명)에 달했다. 영어는 지난 2018년부터 ‘절대평가’로 치러져, 90점 이상이면 1등급을 받는다. 두 번의 모의평가 변별력이 오락가락하면서 수험생들의 고민이 깊어지게 생겼다. 올해 대입시 수시모집에서 ‘서울 쏠림’이 강화되고 있는 현상도 비수도권 수험생들을 뒤숭숭하게 만든다. 지난 9월 13일 마감된 수시모집 결과 서울권 대학의 경쟁률은 18.74대 1, 경인권 대학은 12.99대 1인 반면, 지방 소재 대학은 5.99대 1에 그쳤다. 의대 정원 확대로 상위권 학생들이 의대 지원으로 대거 빠져나가면서 서울권 대학의 합격선 하락에 대한 기대심리가 커져 서울 쏠림이 심화한 것이다. 수시 경쟁률이 6대 1 이하인 대학은 사실상 미달위기에 직면한 것으로 보면 된다. 수시에선 수험생 1인당 6장까지 원서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의대증원 첫해에 나타난 대입시 변화구도를 고려하면, 앞으로 지방대의 위기가 더욱 짙어질 것으로 보여 안타깝다.

2024-10-03

봉화 농약사건이 남긴 씁쓸함

우정구 논설위원 경북 봉화에서 발생한 농약음독사건은 숨진 80대 할머니를 피의자로 특정하고 경찰이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사건 발생 77일 만에 수사는 종결되었으나 커피에 농약을 타고 불특정 다수의 생명을 노린 범죄가 한 마을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에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았다. 특히 같은 동네 이웃으로 평소에 잘 아는 사이에서 벌어진 범죄란 점에서 지역사회에 던진 자성의 목소리도 컸다. 봉화 농약사건과 유사한 범죄는 과거에도 농촌지역 곳곳에서 간간이 발생했다. 2015년 경북 상주에서는 농약 넣은 사이다를 마신 할머니 2명이 숨진 일이 있었다. 함께 마신 4명은 겨우 목숨을 건졌지만 마을 전체가 이 사건으로 쑥대밭이 됐다. 범인으로 지목된 80대 할머니는 법정에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 다음해인 2016년에는 청송에서도 비슷한 사고가 발생했다. 주민 2명이 마을회관에서 농약이 든 소주를 나눠 마시다 1명이 숨지고 1명이 중태에 빠졌다. 경찰이 유력한 용의자로 쫓던 70대 노인이 스스로 농약을 마시고 목숨을 끊어 사건은 마무리 됐지만 마을은 불안감과 불신감으로 뒤숭숭해졌다. 봉화 농약사고도 종결은 됐지만 그 후유증이 만만찮을 것이다. 한 식구처럼 지내던 이웃에 대한 실망감과 불안감이 마을 주민에게 안겨줄 정신적 트라우마가 클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노령인구가 늘면서 발생하는 농촌에서의 노노(老老) 갈등 문제에 대해 우리 사회는 관심을 가졌는지 자성할 사건이다. 주민들이 받은 깊은 상처를 쓰다듬을 당국의 대책부터 먼저 나와야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10-03

경주 APEC 성공…경북관광 도약 발판으로

경북도가 내년 11월 경주에서 개최될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를 계기로 경북 관광의 세계화에 나서기로 했다. 우선 2025년을 경북 방문의 해로 정하고 관광객 1억명, 외국인 관광객 300만명 유치를 목표로 세웠다. 오는 11일 경주에서 2025년 경북 방문의 해 선포식도 가질 예정이다. APEC은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아시아 태평양 21개국 정상과 각료 등 6000여 명의 외국인이 방문하는 윤석열 정부 최대 규모 국제행사다. 경제효과만 1조4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앞으로 1년 1개월의 시간이 남았으나 대규모 행사를 준비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아니다. 정상회의가 개최될 보문관광단지의 리뉴얼과 경주화백컨벤션센터, 숙박시설, 도로 등 개보수해야 할 일들이 산적하다. 정부와 지자체가 손잡고 유기적으로 행사 준비에 나서야 하나 행사 준비에 가장 중요한 재정적 지원을 위한 특별법이 아직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서울에서 개최된 영호남시도지사-국회의원 간담회에 참석한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특별법 제정을 건의한 것도 행사 준비의 속도를 내기 위해서다. 법적 근거를 기반으로 충분한 재정이 지원될 때 행사 성공률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특히 경주 APEC 행사는 국가적으로 큰 행사인 동시에 경북과 경주로서는 지역이 도약하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 이만한 행사가 다시 오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경북도는 내년을 경북 방문의 해로 정하고 경북과 경주를 세계에 알리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 경주는 세계에서도 드문 천년역사 문화의 고장이다. 도시 자체가 박물관이라 할만하며 한국의 이미지를 강력하게 보여줄 수 있는 곳이다. 경북은 경주를 비롯 안동, 영주 등 역사와 문화가 함께 살아 숨쉬는 명소가 많은 곳이다. APEC 행사를 통해 경북의 관광을 세계에 알리고 경북 관광의 글로벌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경북도가 정한 ‘다시 찾고 싶은 글로벌 관광수도 경북’에 걸맞는 성과를 내고 경북이 관광명소로 새롭게 태어날 것을 고대한다.

2024-10-03

대구비행장 이전 부지에 아시아 최고 과학기술 혁신단지를

신광조 사실과 과학 시민네트워크 공동대표 프랑스 남부 니스와 칸 지중해변에 ‘유럽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소피아 앙티폴리스가 있다. 파리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의 벽촌에 뛰어난 자연환경을 갖춘 유럽 최고 산학 클러스터다. 소피아 앙티폴리스는 50여 년 전, 파리공과대학 피에르 라피테 교수가 르몽드지에 ‘과학과 문화, 지혜가 어우러진 문화미래도시를 만들자!’는 글을 기고하면서 시작됐다. 필자의 이 조그만 글도 대구와 경북이 심혈을 기울여 이전 비행장 부지에 조성하고 있는 ‘신성장 동력 미래복합도시 건설’ 나침반과 불꽃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지금 한국의 지방은 다 죽었다. 우리는 ‘지방으로부터의 반란’을 꿈꾸어야 한다. 수도권과 지방이 경쟁하면서 상생·협력·비상하여야 한다. 그 시금석적인 일이 미래 선진문명을 이끌어갈 ‘과학기술 혁신 테크노 폴’을 만드는 것이다. 소피아 앙티폴리스는 기업 유치를 위해선 인재확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대학을 유치했다. 2400만m²에 달하는 첨단산업지구에 정보기술, 생명공학, 에너지, 환경 등 첨단산업 관련기업 1500여 개가 입주했다. 근로자 3만명, 연구원 1만여 명이 종사하고 있다. 단지는 자연과 조화를 고려해 전체면적 대부분을 녹지공간으로 꾸몄다. 우리나라에서도 노무현 정권에서 혁신도시를 건설하면서 수십 개의 연구기획팀이 이곳을 방문하고 자료를 수집하였다. 지금도 지방의 수많은 자치단체가 소피아 앙티폴리스 ‘노래’를 부르고 있지만 절반의 성공도 없다. 문패만 첨단과학단지일 뿐 평범하기 그지없는 공장지대일 뿐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과학입국 꿈이 어린 대덕 과학기술단지를 제외하고는 제조 산업 공장지구에서 한발도 못 나가고 있다. 과학자들이 살고 싶은 세계 초일류의 도시환경을 갖춘 ‘사이언스 파크’는 어느 곳에도 없다. 왜 그럴까? 박정희 대통령만큼의 과학 진흥을 통한 나라 경제발전 비전과 용기, 그리고 열정과 배짱이 없어서다. 장기 투자 개념으로 여기고, 조금 손해 봐도 괜찮다는 자신감이 없어서다. 행정은 꿈이 가득하고 재주 많고 선량한 과학기술자들이 살고 싶고, 꿈과 끼와 혼을 발휘할 수 있는 멍석만 깔아주면 된다. 비단길을 깔아 선량한 과학자 곰들이 재주를 마음껏 부리도록 왕 서방 노릇만 하면 되는데도, 말로만 문서로만 하고 있다.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문명전환 콘텐츠가 트리거다. 인공지능(AI)으로 디지털 문명을 선도하고, 바이오와 청색기술로 생태적 전환에 기여하며, 문화기술에 의한 인본적 전환 3중주가 울려퍼지게 하여야 한다. 지혜의 ABC(Ai Bigdata Cloud) 문명도시를 건설하여, 22세기 선진문명을, 창조의 기념비적 과업을 대구 경북이 하는 것이다. 창조력과 상상력을 겸비한 다빈치 형 인재에 에너지와 용수가 중요하다. 금호강 물에, 에너지는 혁신형 중소형 스마트 원자로(i-SMR)로 질 좋고 값싼 전력을 공급하면 된다. 수소경제 시대를 열고 스마트 인공지능·바이오청색·문화기술ABC 신산업에서 많은 청년 일자리가 생길 것이다. 대구와 경북이 지방으로부터의 반란을 주도할 것이다. 국토를 옥죄고 있는 지방소멸 해결 선구자가 될 것이다.

2024-10-03

국군의 날에 느낀 힘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올해는 건군 76주년이다. 국군의 날이 임시공휴일이 되고 무더위가 가시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날, 맑은 하늘에 태극기를 내걸었다. 국군의 날 행사가 TV에 중계되고 올해도 2년 연속으로 거리 행진까지 열렸다. 서울공항에서의 기념식을 보면서 육해공 그리고 해병대의 힘찬 열병식 모습이 ‘아! 우리도 드디어 군사력 강국이구나’하는 뿌듯한 마음이 들고 평화를 지키는 것이 바로 힘을 키우는 것이라는 말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됐다. 전투기들의 편대비행으로 시작한 기념식에서 병력 5000명과 83종 340여 대의 군사 장비들의 분열을 보노라면 우리 군의 의지와 K-방산의 힘을 느끼게 된다. 군악대와 군기단의 멋진 행진 중에 간호부대와 특수부대의 여군들이 보여준 절도 있는 자세도 군인으로서의 임무를 가슴 깊이 새기고 있는 것 같아서 자랑스럽고, 태권도 시범과 공중 고공낙하 기술은 강건한 국군의 힘을 보여주며 적의 도발 시 강력한 응징력을 보여줄 수 있는 것 같아 믿음직스럽다. 모두가 이번 전략사령부 창설을 축하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분열에는 유·무인 전투 체계도 참가했다. 개 모양으로 잘 걸어가는 다족 보행 로봇과 드론 등은 앞으로 전투의 양상이 바뀔 것 같은 예감이고, 해군 또한 무인잠수정도 보여주고 있다. 장비부대는 육중한 차량에 실려 오는 미사일 등의 위용이 대단한데 그중에 이날 처음 공개된 거대한 ‘괴물 미사일’ 현무-5는 지하 벙크도 파괴하는 능력의 탄두 8톤의 이동식 미사일로서 북한이 제일 두려워할 세계 최강이다. 이외에도 천호 등 다연장 로켓 등이 시민의 관심을 모았다. 국산 무기의 우수성을 보여준 K9 자주포와 K2 흑표 전차도 위용을 보이며 지나갔다. 이 모두가 K-방산에 활력을 불어넣고 세계적으로 알려서 자랑스러운 과학 기술 강군이 되려는 꿈이 아닐까. 공군력도 대단했다. 공중급유기, 대잠초계기, FA-50 경공격기 등이 편대를 지어 날았는데 작년에 음속을 돌파하여 우리나라를 세계 8번째 초음속 전투기를 개발한 국가의 반열에 들게 한 스텔스기 KF21 ‘보라매’도 첫선을 보였고 최근 외국의 많은 관심을 끌게 되어 더 넓은 세계의 하늘을 열어나가는 임무를 다할 것이다. 또 미국에서 날아온 전략 폭격기도 나타났다. ‘죽음의 백조’라는 폭격기 B-1B ‘랜서’도 북한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블랙이글스 8대가 오색 플레어를 뿌리며 공중곡예를 하며 우리 대한의 국력을 축하했다. 오후엔 서울 세종대로에서 시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한 차례 더 행진하고 커다란 태극기를 풍선에 매달아 하늘로 띄웠다. “강한 국군, 국민과 함께!”라고 외치듯…. 올해는 단기 4357년 개천절, 하늘이 열린 날이다. 천신 환인(天神 桓因)의 아들 환웅(桓雄)이 하늘에서 태백산 신단수(神壇樹) 아래로 내려와 웅녀를 만나서 낳은 단군왕검이 한반도 최초의 나라 고조선을 세운 날이다. 반만년 우리의 역사 속에 민족의 기원인 단결과 화합으로 더 힘찬 미래를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 지금 우리의 임무다. 우리 국민끼리 갈라져 싸우는 못됨을 벗고 홍익인간과 이화세계를 실현하여 세계에 우뚝 서기 위해서 우리는 다시 밝은 하늘을 열어야 한다.

2024-10-03

전향과 변절

김병 래수필가·시조시인 “젊어서 사회주의자가 아닌 사람은 심장이 없고, 늙어서도 여전히 사회주의자인 사람은 머리가 없다” 출처가 명확하진 않지만 프랑스와 영·미권에서 오랜 기간 다양한 형태로 유행한 말이다. 젊은 시절에는 이상과 정의에 대한 열정으로 사회주의와 같은 급진적이거나 진보적인 정치적 성향을 가지기 쉽지만, 나이가 들면서 경제적 안정, 현실적 제약, 사회적 경험 등을 통해 점점 더 현실적이고 보수적인 시각을 가지게 된다는 의미로 쓰인다.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사회주의적 신념을 고수하는 것은 현실인식이 떨어지는 사람이라는 풍자적 의미를 담고 있다. 물론 사회주의자들이 인정할 리는 없지만, 아직도 좌우의 대립이 극심한 우리나라의 경우 젊어서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가 전향한 사람들은 자신이 속해있던 진영으로부터 변절자, 배신자로 낙인이 찍히게 마련이다. 한때 운동권이었다가 전향을 한 사람들은 순수한 정의감과 사회개혁 의지로 치열하게 활동을 하다가 공산주의의 실상이나 좌익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행태에 실망해서 과감하게 행로를 바꾼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대로 전향을 하지 않은 사람들 중에는 운동권 활동 중에 방화, 살인, 강도 등 범죄행위를 했거나 북한에 약점이 잡혀 있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 같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거쳐 문재인 정권에 이르는 동안 소위 운동권 세력들이 기득권이 되어서 보이는 행태는 그들에게 민주화운동이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 그것이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민주화였는지 아니면 사회주의·공산화를 위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종북주사파들 중에는 북한으로부터 자금과 지령을 받은 상당수가 노동계, 교육계, 언론계, 법조계 등에 침투하여 사회를 혼란케 하고 국가 전복을 꾀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얼마 전에 타계한 장기표 선생을 비롯해서 김지하 시인, 김문수 장관, 강철서신의 김영환 같은 분들은 전향을 한 후 열성적으로 좌파들의 불의와 비리를 폭로·비판하는 운동을 해왔다. ‘타는 목마름으로’나 ‘오적’같은 시를 써서 유신정권과 군사독재에 저항을 했던 김지하 시인은 운동권의 학생들의 연쇄분신 파동을 보고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며 질타를 했고,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을 주도했던 김문수는 우파 정치인이 되어 좌파들과 싸우고 있다. ‘강철서신’이란 문건을 작성·배포해서 북한의 주체사상을 퍼뜨리고 ‘민족해방운동’에 앞장섰던 김영환은 북한에 가서 김일성을 만나보고 북한의 실상에 실망해서 전향을 했다. 지금은 오로지 북한 주민의 인권을 위해 투신하고 있다. 소위 민주화운동 세력들은 좌파정권의 요직을 차지하거나 국회의 다수의석을 차지했을 때 그들의 민낯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그들이 한 때 젊은 혈기로 저항하고 투쟁했던 것은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것도 아니었고 억압 받는 국민을 위해서도 아니었다. 오로지 진영논리와 정치적 야욕에 빠져 나라와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행태에서 그들의 정체가 드러난 것이다. 그들이야말로 국가와 국민을 배신한 자들이다.

2024-10-03

풍요로운 10월, 문화축제의 명암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선선한 바람 결에 산과 들의 푸른 기운이 결실과 단풍으로 이어지고 있다. 달갑지 않은 가을태풍의 북상 예보가 있긴 해도, 하늘은 점차 높푸르게 가을빛을 더해가고, 들판에서는 정갈한 햇살을 받아 오곡백과가 넘실넘실 익어가고 있다. 하늘 맑고 공기가 상쾌해(天朗氣淸) 덥지도 춥지도 않은 때라 실내외 활동하기에 편하고 좋은 계절, 사람사는 세상에는 요즘 온갖 축제나 체육대회·전시·공연·체험 등의 문화행사가 다채롭고 풍성하게 열리고 있다. 이른바 10월은 ‘문화의 달’ 답게 이런저런 문화축제가 즐비하다. 이미 9월 중·하순부터 크고 작은 행사가 시작돼 잔치 분위기가 나는가 싶더니, 10월 들어서는 본격적인 축제시즌이라 할 정도로 전국의 도처에 특색 있고 다양한 축제·문화제·대회 등의 행사가 동시다발로 열리고 있다. 유난히 무덥고 길게 이어진 여름날의 인내와 시달림을 축제로 풀기라고 하듯 축제 참가자들의 표정이 한결 밝고 즐거워 보인다. 축제는 이렇듯 격식을 차려 여러 사람이 함께 즐기는 큰 잔치이기에, 음악적 퍼포먼스나 상연, 음식, 의식, 테마, 전통, 자연 등과 결부되는 조직화된 일련의 사회적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축제나 대회 등의 행사는 모두 일정 부분 정부의 예산지원으로 이뤄지게 된다. 민간 주도의 예산 지원의 경우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나 각 지역별로 지역상권 활성화와 경기부양책을 내세워 행사를 급조한다거나 선심성(?) 예산지원으로 세금을 축내는 경우가 있어서 다소 문제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 보니 전국적으로 전시성 축제의 난립과 국비·지방비의 세금을 지원받는 일종의 ‘정책카드’로 변질돼 축제 자체의 전통성과 상징성이 퇴색되고 문화적 교류라는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허다하여 국민들의 빈축을 사는 사례도 있다. 또한 축제장의 장사꾼 난입과 바가지 요금, 무질서, 비위생적인 환경 등도 문제지만, 특히 축제운영 담당인력의 전문성과 경험 부족으로 옥의 티처럼 비춰지는 경우도 있다. 가령, 최근 포항지역에서 ‘제11회 대한민국 독서대전 포항’이 3일간 열리면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었었는데, ‘비블리오 배틀’이라는 독서 서평 대결이 당일 우천으로 인해 대회 시작 5분 전에 돌연 취소(연기)되는 해프닝이 벌어져 대회 출연진과 시민들의 볼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2~3개월 전부터 예선을 거쳐서 본선에 올라온 초등부·청소년·일반부의 각 팀에서는 의상과 소품, 장비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결선 시작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주최측에서 강우 대비를 사전에 했음에도 느닷없이 전국적인 대회를 시작 직전에 보류한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은 졸속으로 여겨져 고소(苦笑)를 금치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축제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이러한 몇가지 문제와 미비점을 보완·개선하고 면밀한 검토와 신중한 결정으로 한치의 허술함 없이 효과적이며 효율적인 운영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몇 개월 전부터 입안하고 기획·추진하는 축제가 준비와 운영의 부실이나 실책으로 파행된다면 사상누각에 불과할 것이다. 날씨 좋고 먹거리가 풍부해지는 10월의 문화축제가 성황리에 열리길 기대해 본다.

2024-10-01

경영과 성장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경영자가 조직을 이끌어가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고유한 품위, 도덕적 기준, 깊이 있는 경영철학을 경영의 격이라 한다. 단순한 경영 기술을 넘어 지적 깊이와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조직을 운영하며, 추구하는 가치와 원칙, 인간 중심의 태도를 말한다. 경영자의 품성과 능력은 조직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중요한 요소이며, 훌륭한 경영자는 판단과 결정의 고수이다. 생각 수준이 다르고 결단의 순간 현실과 미래를 동시에 통찰하며 개인과 조직을 위한 결단을 내린다. 경영자는 손에 책을 놓지 않으며, 책 속에 얻는 지식과 경험에서 나오는 지혜로 미래를 예측하고 통찰하며 지속 가능한 기업으로 이끌어 간다. 훌륭한 경영자의 6가지 역량은 첫째, 조직을 책임진 리더로서 자신의 존재 의의와 정체성을 파악하고 결단하는 사람임을 인지한다. 최고의 결정과 최악의 결정의 경계선에 서 있음을 인식하고 올바른 결단력을 위해 애쓴다. 둘째, 현실을 분석하고 인지한다. 높은 곳에 눈을 두고 있더라도 현재의 자리에 발을 떼지 않는다.도전할 때인지, 안정을 유지할 때인지를 명확히 판단한다. 조직의 상태를 세밀히 분석하고 전략적으로 사고하고 나아갈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올바른 판단으로 조직을 이끌어 간다. 셋째, 창의적 발상을 꾀한다. 일반적인 생각과 다수의 판단에 휘둘리지 않고 상식을 넘어서는 발상도 한다. 경영자의 의사 결정은 다수결이 아닌 경우가 많고 드러나지 않은 가치의 원천을 발굴하여 변화를 시도한다. 넷째, 미래의 방점을 찍는다. 위대한 경영자의 시야는 좁은 울타리의 당면 과제에 머무르지 않고 시공간을 넘어 확정한다. 대내외 변화의 흐름을 인지하고 조직이 나아갈 비전을 제시한다. 다섯째, 사람을 최우선에 둔다. 조직의 핵심과 목적이 사람에 있음을 인지하고 사람을 수단이 아닌 목표로 지향한다. 인간적 가치와 도덕성을 지향하며 깊고 넓게 소통한다. 여섯째, 경영자로서 역량과 품격을 기른다. 내면의 역량을 강화하고 늘 성장하는 사람인 것이다. 필자는 동반성장이 사회 이슈가 될 때 경인지역 여러 중소기업의 혁신과 경영 지원을 한 적이 있다. 전문 경영인도 있지만 창업주, 2세 경영자인 경우도 많았다. 경영수업의 기회가 적은 경영자는 성품에 따라 기업 문화와 생산, 수익성에도 영향이 간다. 경영자의 선입견과 가치관, 인식변화에 따라 기업문화가 바뀌기도 하고 직원들이 회사를 대하는 생각도 변한다. 구성원의 마인드와 긍정적 움직임이 기업성장의 근간이 되기도 한다. 경영의 격은 단순한 능력이나 성과로 평가되지 않고 경영자가 어떤 철학과 태도를 가지고 조직을 이끌어 가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보이지 않은 상황과 들리지 않은 흐름을 읽어 낼 수 있어야 한다. 훌륭한 경영자는 조직과 구성원 마음까지 선한 영향력이 미치며, 지속 성장하는 기업으로 이끌어 간다. 기업이 처한 여건을 바르게 보고 변화의 물결을 놓치지 않고 빠르고 유연하게 판단하며 미래를 향한 길을 열어간다.

2024-10-01

자주국방

우정구 논설위원 우리 군이 개발한 현무-5 미사일의 별명은 괴물 미사일이다. 북한의 지하 벙커를 단숨에 파괴할 수 있는 엄청난 위력의 미사일로 알려지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2단 고체 추진 로켓에 탄두 중량이 세계 최대 규모인 8t이다. 폭발력은 11t에 이른다.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력의 위력이 15t인 것과 비교하면 현무-5의 위력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 군은 유사시 북한의 핵무기에 버금가는 전략 자산으로 삼고 있는 무기다. 지난달 27일 이스라엘이 레바논의 친이란 무장단체 헤즈볼라의 최고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를 암살한 것으로 알려진 벙커버스터와 현무-5는 동종의 무기이다. 하지만 이보다 위력이 훨씬 센 것으로 전해진다. 이스라엘 전투기에 탑재된 벙커버스터는 18m 지하에 있던 나스랄라를 피할 틈도 없이 암살했다. 현무-5는 지하 100m 이상도 파괴할 수 있는 위력이 있으며 전문가들은 북한의 핵무기에 견줄만 하다는 평가까지 한다. 작년 12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극초음속 미사일 ‘킨잘’을 발사한 바 있다. 핵탄두와 재래식 탄두를 모두 장착할 수 있으며 최대 비행속도는 마하10 이상이다. 기존 미사일 체계로는 요격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미·중·소 등 세계 각국은 자국의 안보 보전을 위해 신무기 개발에 여념이 없다. 이스라엘과 범 이란 세력간에 벌이는 전쟁은 5차 중동전쟁으로 비화할 우려도 높다. 국가 안위는 힘이 있을 때 지킬 수 있다는 말이 설득력 있게 들리는 시대다. 국군의 날을 맞아 우리 군이 선보이는 국방력에 국민의 눈이 쏠리는 것은 자주국방에 대한 믿음이 필요해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10-01

LA사무소 연 대구, 글로벌 도시 위상 높여라

지금 세계는 나라간 경쟁이 아닌 도시간 경쟁의 시대를 맞고 있다. 도시가 각자의 경쟁력을 키워 국가 발전을 이끄는 도시의 글로벌화가 대세이다. 대구시와 경북도의 행정통합 논의가 수도권에 대응하는 지방단위의 메가시티 조성을 목표로 한다지만 내용적으로 보면 글로벌화 되어가는 국제적 흐름에 따라가기 위한 몸부림이다. 특히 인구소멸의 위기에 처한 지방의 도시들은 국제통상의 확대와 해외 우량기업의 역내 유치, 글로벌 인력 확보 등 도시의 경쟁력 확장을 위해 해외 사무소는 필요불가결한 요소가 되고 있다. 대구시가 지난달 27일 LA 한인축제가 열리던 날, LA 코트라 무역관서 홍준표 대구시장, 박윤경 대구상의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대구시 LA 사무소 개소식을 가졌다. 대구시가 미국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서 마련한 LA사무소는 앞으로 지역기업의 미국 진출과 통상업무 등을 돕는 역할을 하게 된다. 대구시의 해외사무소는 중국 상하이와 베트남 호치민시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올 연말 중국 청두에도 대구사무소를 개소할 예정이어서 글로벌 시대에 대응하는 대구시의 바람직한 조치로 보여진다. 특히 미국은 매년 수출이 늘고 있는 데다 대구 전체 수출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곳이다. LA에는 경북, 경남, 전북, 전남 등 7개 시·도가 이미 해외사무소를 두고 있어 지방도시 간 경쟁이 치열하다. 늦었지만 대구시의 분발이 필요하다. 시는 사무소 개소의 첫 행사로 LA한인상공회의소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대구식품(D-푸드)의 미국시장 진출에 힘을 보태기로 했다. 특히 홍 시장은 “빅테크 기업과 대구 5대 신산업을 연결하는데 중점을 두겠다”고 밝혀 농산물 중심으로 활약하는 타 지자체와 차별성을 강조했다. 지방자치단체의 해외 사무소 개설은 글로벌 시대 도시 경쟁력 확대에 필수다. 지방정부의 외교력이 평가받는 시험대도 된다. 대구시의 해외사무소가 속속 개소되는 것을 시발점으로 대구시의 외교 및 교역 역량이 커져야 한다. 동시에 글로벌 시대에 걸맞는 대구의 국제적 위상도 정립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2024-10-01

윤 대통령과 그 측근부터 변해야 한다

심충택 논설위원 여권이 공멸 위기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간의 ‘독대신경전’이 진행 중인데다, 당내 친윤·친한계 내분은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이 상태로 가면 당장 10·16 보궐선거가 위험하다. 전남 영광·곡성군수 선거는 둘째 치고라도, 보수 강세지역인 강화군수와 부산 금정구청장 선거까지 위험한 모양이다. 보수세력이 여권에 등을 돌리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의료사태와 김건희 여사 문제 때문이다. 이는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두 사안은 마치 블랙홀처럼 정부의 국정동력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여권은 이에 대한 탈출구를 찾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는 모습이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 간의 시각차가 큰 게 주요 원인이다. 한 대표는 윤 대통령이 직접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지만, 윤 대통령은 물러설 수 없다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의대증원을 자신의 의료개혁 업적으로 여기고 있고, 김 여사 관련 문제에 대해서도 여당의 소극적 자세에 불만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 민주당과 좌파세력은 김 여사에 대해 총공세를 펴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주 ‘김건희 국정농단 TF’까지 꾸렸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김건희 특검법’ 재의를 요구할 경우, 토요일인 5일에라도 재표결을 위한 본회의를 연다는 방침이다. 민주당은 다음주부터 시작되는 국정감사에서도 김 여사 문제를 집중 파헤칠 움직임이다. 민주당이 다수인 상임위(법사위·교육위·국토교통위·외교통일위 등)에서는 김 여사 의혹 관련 인사들을 줄줄이 증인으로 채택했다. 특히 법사위는 김 여사와 김 여사 모친 최은순씨도 증인·참고인으로 신청했다. 민주당 강득구 의원 등 일부는 ‘탄핵준비의원’ 모임까지 결성한 상태다. 지난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국면을 주도했던 사회단체들과 민주노총도 지난 주말부터 김 여사 관련 이슈를 거론하며 윤 대통령 탄핵공세를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국가 미래를 어둡게 하는 김 여사 문제와 의료사태를 해결하려면 윤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 윤 대통령은 과거 대선후보 시절, 특유의 친화력으로 민심을 사로잡았다. 특히 대구·경북 시도민은 그의 대중성에 열광했다. 윤 대통령은 그 당시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 야당의 외면을 받더라도 끊임없이 설득하면서 꼬일 대로 꼬인 정국을 풀어나가야 한다. 싫든 좋든 야당은 대통령 국정운영의 중요한 파트너다. 한 대표와의 관계도 개선해야 한다. 대통령은 여당 위에서 군림하는 자리가 아니다. 당·정은 수평적 관계가 돼야 한다. 특히 한 대표는 윤 대통령 본인이 키운 사람 아닌가. 이른 시일 내에 윤 대통령은 한 대표를 만나 두 쟁점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면서 여론의 악순환을 끊을 해법을 찾아야 한다. 윤 대통령을 측근에서 보좌하며 권력을 누리는 대통령실과 친윤계 인사들도 바뀔 때가 됐다. 호가호위할 때가 아니다. 당·정이 더이상 내분에 빠지면 국정운영이 어렵다. 곧바로 레임덕이 온다. 국민은 지금 대통령 측근들이 한 대표 패싱 분위기를 유도하면서 대통령 ‘불통’을 강화한다고 의심한다.

2024-10-01

자영업자들 한계상황 내몰린다

고금리·고물가에 내수부진이 겹치면서 자영업자들이 너나없이 위기에 처했다. 경북 동해안 최대수산물 시장인 죽도시장은 최근 내수절벽으로 손님들의 발길이 끊겨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티고 있다. 죽도시장 상인들은 지난 추석에도 폭염때문에 대목경기를 누리지 못했다. 한 상인은 “하루 매출이 40만~70만원 정도인데 남는 건 10% 뿐”이라고 했다. 한 개 팔아야 1000원 남는다는 쥐포 판매상인은 “마진 10%로 임대료를 내면 남는 게 없다”고 했다. 포항 도심상권의 불황도 심각하다. 지난해까지 중앙상가 점포는 870여 곳이었지만 최근 360곳이 문을 닫았다. 포항지역 자영업자 폐업률은 지난해 20%를 넘어선 이후 올들어 급증하는 추세다. 전국적으로도 자영업 붕괴현상은 심각하다. 국세청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자영업자 4명 중 3명꼴로 한 달 소득(종합소득세 신고분)이 100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 개인사업자 종합소득세 신고분 1146만4368건 가운데 860만918건(75.1%)이 월소득 100만원 미만이었다. 소득이 전혀 없다는 ‘소득 0원’ 신고분도 100만건에 육박했다. 전국 570만 자영업자의 위기는 곧 서민경제의 위기로 인식해야 한다. 정부가 정책자금 상환을 연장해 주거나 임대료 지원 등의 대책을 내놓았지만, 현장반응은 냉담하다. 지원 자격과 조건이 까다로워 실제 도움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이다. 앞으로 2차 베이비부머(1965∼1974년생) 세대들의 은퇴가 본격화하면 자영업의 위기는 더 심해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통계를 보면, 자영업자 3명 중 2명은 50대 이상 장·노년층이다. 너도나도 직장에서 나온 후 생계형 창업에 뛰어들다 보니 출혈경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자영업 위기를 막으려면 우선 내수 부양책이 선행돼야 하지만, 한계상황에 내몰린 생계형 창업자를 위해서는 정부의 선제 지원이 필요하다. 벼랑 끝으로 내몰린 자영업자들을 외면하면, 국가경제 전체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2024-10-01

‘짧지만 긴 여운 …’ 소설가 김강의 엽편소설 가로등이 깜빡거릴 때

빈소는 2층에 있었다. 민성이 계단과 승강기 사이에서 머뭇하는 사이 아버지는 계단을 올랐다. 아버지는 접객실을 힐끗 본 뒤 빈소로 들어갔다. 민성은 빈소 입구에 세워진 화환 두 개를 살피다 빠른 걸음으로 아버지를 쫓아갔다. 아버지와 민성은 욱이 삼촌의 영정과 마주했다. 웃고 있었다. 민성에게 코트를 사주던 시절 욱이 삼촌의 얼굴이었다. 욱이 삼촌, 저 왔습니다. 욱이 삼촌의 얼굴을 보던 민성이 혼잣말을 했다. 아버지가 민성의 소매 끝을 잡아당겼고 아버지와 민성은 엎드려 절을 했다. 아버지는 한동안 그대로 있었다. 언제 일어나시려나? 아버지를 살피다 정작 욱이 삼촌에게 한마디 말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후우, 숨을 내쉬는 소리와 함께 아버지가 일어났다. 민성과 민성의 아버지는 빈소에서 나와 접객실 한쪽 모서리 테이블에 앉았다. -아주버님, 멀리서 오시느라 고생하셨지예. 민성이 니도 오느라 수고 많았제? 니가 아버지 모시고 왔나? -네. 숙모님하고 동생이 힘든 일 감당하시는 것에 비하겠습니까? 아이고. 고개를 숙이며 혼잣말을 내뱉는 숙모의 손등을 사촌이 쓰다듬었다. -멀리서 이렇게 와 준 것만 해도 고맙다. 뭣 하나 제대로 준 것 없는 삼촌 아이가. 하긴, 그래도 조카 중에는 니하고 젤로 가깝지 않았나? 민성이 어릴 적 욱이 삼촌은 명절이나 제사, 때로는 특별한 일이 없을 때에도 간간이 민성의 집을 찾아와 한참을 앉아 있다 가고는 했다. 약간은 낯선 듯 혹은 약간은 겁먹은 듯 두리번거리다 아버지나 어머니, 형제 중 한 명이 요즘은 어찌 지내는지 물으면 그제야 반색을 하며 입을 열었지만 욱이 삼촌이 말을 잇는 사이 어머니는 주방으로 아버지는 화장실로 갔다. 그러면 욱이 삼촌은 민성을 앞에 두고 비밀인 듯 낮은 목소리로 말을 했다. 민성은 알아듣지 못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그런 밤들 끝에 욱이 삼촌은 항상 현관에 서 있었다. 민성의 아버지나 어머니가 내민 돈을 머뭇거리지 않고 받았다. 바지주머니에 넣고 고맙습니다, 큰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민성의 머리를 쓰다듬은 후 현관을 나서는 욱이 삼촌을 보며 민성은 아버지나, 어머니가 왜 욱이 삼촌에게 자고 가라는 말 한마디 하지 않는지 가끔 궁금했다. 어떤 날은 아버지나 어머니 누구도 욱이 삼촌에게 돈을 주지 않기도 했는데 그런 날 욱이 삼촌은 제사음식이 든 종이 가방을 든 채 말없이 현관을 나섰다. -제수씨가 고생이 많습니다. 오늘만이 아니고 시집와서 지금까지. -제가 뭘요. 한 게 뭐 있습니까. 하긴, 솔직히 말해서 아주버님 앞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속이 시원합니다, 아주. 이제야 끝났나 싶기도 하고요. 숙모는 쟁반에 있는 음식을 상 위로 옮기며 아주버니는 한잔 하셔도 되는 것 아니냐 물었고 민성의 아버지는 잔을 내밀었다. -술 때문이지예. 뭐, 다른 이유가 있겠습니꺼? 욱이 삼촌이 죽던 날 숙모는 다른 곳에 있었다. 벌여 놓은 일이 많아 일주일에 사오일은 다른 곳에서 지냈다고 했다. -일이 벌어지기 이틀 전 얼굴을 본 것이 마지막이 되었습니더. 그날 좀 심하게 다퉜어예. 술 때문이었다. 욱이 삼촌이 만성 췌장염과 알코올 중독으로 여러 번 입원과 퇴원을 반복한 뒤로 숙모는 집안에 술병이 보이면 개수대에 모두 비웠다. 그날도 그랬다. -처음에는 고마 술을 마시게 두는 게 제가 편하더라고요. 술버릇이 나쁜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마시고 마시고 또 마시고 그카다가 조용히 잠을 자니까. 근데 이게 병이 되고 병원을 왔다갔다해야 되고, 또 병원에 가만히 있으모 되는데 퇴원하겠다고 난리를 부리고, 그러니까. 온전히 제 몫이 된 거지예. 집안을 구석구석 뒤지는 것, 집을 비웠다 돌아온 숙모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이었다. 소주 병뚜껑이나 술이 포함된 마트 영수증을 찾아내는 날이면 삼촌과 심하게 다퉜다. -울고불고 그러지는 않았으예. 니 죽고 나도 죽자, 이렇게는 못 살겠다,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젤로 심한 말이었지예. 최근 한동안은 잠잠했다. 숙모가 동네 마트와 편의점을 찾아가 삼촌에게 술을 팔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가까이 있는 몇몇 삼촌의 친구들을 불러 부탁을 한 뒤였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거라예. 삼촌 밥을 챙겨주고 반찬이라도 몇 가지 만들어 두려고 집에 들른 숙모가 쓰레기봉투에서 찢어진 마트 영수증을 찾아냈다. 걸어서 한 시간은 떨어진 다른 동네의 마트였다. 숙모는 신발장 낡은 구두와 장화 안에서 소주를 찾아냈다. -다퉜다기보다는 제가 일방적으로 화를 낸 거지예. 대꾸를 하기도 했지만 아주버니도 알다시피 그 사람 성질은 순하다 아입니꺼. 그렇게 집을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숙모는 괜한 마음에 전화를 했지만 삼촌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또 어디선가 술을 사와서 마시나, 싶었지만 될 대로 되라 하는 마음에 몇 번 더 전화를 하다 말았다. 오륙 년 전 민성은 욱이 삼촌의 전화를 받았다. 소식을 듣지 못한 지 꽤 많은 해가 지난 뒤였다. 민성에게 뭔가를 기대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저 네. 네. 아, 네. 하다 통화가 끝났다. 이후 이삼 개월 간격으로 욱이 삼촌이 전화를 했다. 췌장이 안 좋아 입원을 했다는, 대상포진에 걸려 고생을 했다는, 술을 끊으려 입원을 했었는데 잘 안되었다는 전화가 이어졌다. 술에 취한 듯 어눌하고 정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아프고 외롭다는 전화가 왔을 때 민성의 머릿속 기억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돈을 달라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행패를 부리던 삼촌의 눈빛, 아버지께 듣기 싫은 말 한마디를 들은 날이면 민성을 매몰차게 내던졌던 레슬링, 할머니가 남긴 얼마 안 되는 유산을 누가 가져갔느냐며 어머니를 몰아세우던 저녁, 자기는 받은 것도 없고 배우지도 못했으니 형들이 누나들이 책임지라며 엎었던 제사상이 앞, 뒤 구별 없이 부딪히고 섞였다. 할부금을 내지 않고 사라져 아버지가 대금을 지불했던, 집 담벼락 아래 서 있기만 하다 어디론가 팔려간 검정 세단 자동차. 그 자동차를 두고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오갔던 고성이 귓가를 스쳤다. 민성은 아버지에게 욱이 삼촌의 전화 이야기를 했다. 네게도 전화를 했더냐? 아버지는 한숨을 쉬었다. 내가 네게는 전화하지 말라고 했는데. 다시 한 번 이야기해야겠다. 너한테는 전화하지 말라고 일러둘 테니 혹시 다음에 다시 전화가 오거든 받지 마라. 아버지는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후로도 몇 번 욱이 삼촌으로부터 전화가 왔었지만 민성은 아버지의 말을 잘 따랐다. -다음 날 저녁에 삼촌이 전화를 했더라. 숙모의 말을 듣던 아버지가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일어서자 숙모는 민성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날 내가 많이 바빴다. 삼촌이 벌이를 못하니 내가 해야 안 되겠나. 이곳저곳에 열어놓은 가게들도 챙겨봐야 하고. 가게라고 해봤자 내 가게도 아니지만. 숙모가 다른 사람한테 월급 받고 관리하는 가게가 몇 개 있거든. 근처 촌에. 뭐, 자세한 것은 민성이 니가 알 필요는 없고. 무슨 일 있으면 또 전화를 하겠지 싶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까지 전화가 없는 거라. 받지도 않고. 숙모는 타지에서 살고 있는 아들에게 연락을 하려다 말았다. -바쁜 아를 성가시게 하고 싶지 않았거든. 그런데 뒤에 들어보니까 자한테도 여러 번 전화가 왔었단다. 하필이면 자도 그날 회사 회식이 있어서 정신이 없었다네. 전화도 못 받았고. 그때 이 사단이 난 거라. 가로등이 휙휙 지나갔다. 다가오는 가로등 하나가 깜빡거렸다. 저렇게 깜빡거리다가 언젠가는 빛을 잃을 터였다. 지금 뭘 할 수 있겠어. 결국 누군가 알게 되겠지만 역시 뭘 하지는 않겠지. 세상도 그대로일 것이고. 민성은 네비게이션 화면의 도착 예정시간을 확인한 뒤 힐끗 옆자리의 아버지를 보았다. 아버지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벨트 위에 올려놓고 눈을 감고 있었다. 민성은 스피커의 볼륨을 낮췄다. -무슨 일이냐? 비스듬히 누워있던 아버지가 자리를 고쳐 앉았다. -주무시는 줄 알고. -잠이 오면 자려 했는데 잠이 안 오네. 민성은 아버지의 말에 대꾸를 하려다 말았다. 깜빡이를 켜지 않고 들어온 컨테이너 트럭 때문에 브레이크를 살짝 밟아야 했다. -그날 욱이가 전화를 했더라. 두 번. 벨이 울렸는데 안 받았다. 조금 피곤했거든. 그저 똑같은 전화거니 했다. 아무 생각 없이 말이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아침에 일어나보니 부재중 전화가 세 통 더 와 있더라. 눈을 감은 채 민성의 아버지가 말했다. -그게 마음에 걸린다. 전조등 불빛을 보고 달려드는 날벌레들이 앞 유리창에 부딪혔다. 툭툭 터지는 소리가 났고 앞 유리창이 흐려졌다. 민성은 와이퍼를 움직여 유리창을 닦아냈지만 닦이지 않았다. 눈을 한 번 세게 깜빡이고 나서야 시야가 맑아졌다. -전화를 받으셨어도 할 수 있으신 게 없었을 겁니다. 그 전화가 그게 아니었을 수도 있고. 그저 항상 그랬듯 한 잔 마시고 횡설수설 늘어놓으려 했을 겁니다. 너무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그래도, 후우. 너는? -예? -너한테는 전화 안 했더냐? 민성이 급하게 핸들을 꺾었다. 민성의 차가 흔들리며 2차선으로 들어섰다. -죄송합니다. 갑자기 앞이 안 보여서요. 방금 마주 오던 트럭이 상향등을 켰더라고요. 아버지,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제가 잘 못 들었습니다. 끝 김강 소설가·내과의 김강(52)은 소설가인 동시에 내과의사고, 포항에서 ‘도서출판 득수’를 운영하는 출판사 대표이기도 하다. 2017년 단편 ‘우리 아빠’로 심훈문학대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단편집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 ‘소비노동조합’을 썼다. 지난해엔 장편 ‘그래스프 리플렉스’를 펴내 문단과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2024-10-01

‘독도, 그리다’ (가제) ‘우리의 땅, 우리의 마음’

최홍배 국립한국해양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독도를 둘러싼 한일 간의 마찰은 오래된 현안이다. 한편에서는 “이 작은 섬의 지위를 지우려 한다”고 말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더욱 뚜렷하게 그리려 한다”고 반박한다. 이 소모적 논쟁을 어떻게 끝낼 것인가? 전 국민이 함께하는 ‘독도 그리기‘ 캠페인이다..  특히 1900년 대한제국의 칙령 제41호에 기반 한 ’독도 칙령의 날’ 지정은 이 캠페인의 핵심 요소이다. 역사적으로 1900년 칙령(勅令) 41호는 독도를 명확히 우리 영토로 선언했다. 일본이 1905년 시마네현에 독도를 불법적으로 영토 편입한 것에 대한 명확한 반박이다.  ‘독도 그리기’ 캠페인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독도가 한국의 고유영토임을 강조하며, 세계에 우리의 목소리를 전달한다. 고종황제가 1900년 10월 25일 칙령 41호를 재가한 이날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 민족의 역사를 기리고, 일본의 잘못된 주장에 단호히 맞서는 행동이다. 이는 단순히 한 시대의 기념을 넘어서 한국의 독립과 주권을 상징하는 날로, 국민에게 독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우고 국제적으로도 한국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넘어야 할 산이 있다. ‘독도 그리기와 기념일’로 이 문제가 종국적으로 해결되는가? 아니다. 그럼에도 “왜 쓸데없이 긁어 부스럼을 일으키는 일”을 자초하는가? 일본의 국제 분쟁 화 술책에 빌미를 주는 하책이다.  따라서 ‘조용하면서 강력한 외교가 최선’이다. 북한 러시아에 맞서 한일 간에 안보협력을 해야 한다. 거시적 차원에서 국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발상이라며 기념일 지정에 반대가 예상된다.  그렇다면 ‘독도 그리기’는 포기해야 하는가? 아니다. 독도가 한일 간의 정치 외교적 다툼을 넘어 자라나는 차세대들에 대한 교육 논쟁으로 비화한 지도 이미 오래되었다.  일본 문부성이 자국 청소년들에게 교과서를 통해 ‘독도는 일본 고유영토’라는 교육을 포기한다면 우리도 ‘독도 그리기’ 캠페인을 그만둘 수 있다. 이 캠페인을 통해 내부적으로 국민적 단합과 자긍심을 고취시킨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독도의 중요성을 교육함으로써 장기적인 인식 개선을 도모한다. 국제 사회에서 ‘독도 그리기’ 캠페인은 독도에 대한 일본의 역사적 왜곡과 영토 주장에 대한 명확한 반박으로 기능 하다.  그 이유는 첫째, 1900년 독도 칙령의 역사를 직접 거명함으로써, 2005년 일본 시마네현이 조례로 제정한 소위 ‘다케시마(독도)의 날’보다 100여 년 이상 훨씬 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음을 알리는 직접적인 효과가 있다.  둘째, 1904년 러일전쟁 승리를 위한 한반도 침탈의 첫 희생물인 독도를 새로운 국제해양질서에 따른 일본의 해양국익을 위해 국제 영토분쟁 화를 도모하는 부당성을 알리는 효과가 있다.  우리가 국제적 지지를 얻으려면 국제회의와 외교 무대에서 독도에 관한 한국의 입장을 지속적으로 밝히고, 역사적 근거와 국제법을 기반으로 한 주장을 펼쳐야 한다.  ‘독도그리기’ 캠페인과 기념일 지정은 한국의 역사적 정체성을 확립하고, 국내외적으로 독도에 대한 정당한 주장을 강화하는 전략적 도구로 작용할 것이다.  이를 통해 한국은 국제적인 무대에서 더욱 강력하고 설득력 있는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 진실에 중도는 없다. 일본의 신임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총리 체제에서 독도를 둘러싼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를 바란다.  /최홍배 국립한국해양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2024-10-01

윤석열과 이재명의 적대적 공생

김진국 고문 김건희 여사는 민주당 최고위원 회의 단골메뉴다. 27일 전현희 최고위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손바닥에 ‘왕(王)’자를 써 무속 논란에 휩싸이자, 배우자가 구약성경을 다 외운다고 거짓말했다”라는 말을 꺼냈다. 이어서 그는 “당선 목적의 허위 사실 유포가 아니라고 주장하려면, 김 여사가 39권 929장, 2만3천145절 방대한 양의 구약성경을 외우는지 수사하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이재명 대표는 “이런 거짓말은 죄가 안 되는 것”이라며 “제가 이런 얘기를 했다면 징역 5년쯤 구형받았을 것”이라고 빈정댔다. 이 대표는 지난 20일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1심 공판에서 검찰로부터 징역 2년을 구형받았다. 11월 15일 선고 예정이다. 이 대표가 재판받고 있는 7개 사건 4개 재판 가운데 가장 먼저 선고가 나온다. 이 대표뿐 아니라 민주당이 전전긍긍이다. 대법원에서 벌금 100만 원 이상형이 확정되면 이 대표는 의원직을 잃고, 피선거권이 박탈된다. 민주당은 지난 대선에서 보전받은 선거비용 434억 원을 토해내야 한다. 민주당은 사생결단이다. 이 대표 관련 사건을 수사한 검사들의 탄핵을 추진했다. 헌법재판소가 기각할 거라는 걸 민주당도 잘 안다. 그렇지만 그동안 검사는 직무가 정지되고, 수사도, 재판도 지연된다. 국회에 검사들을 불러 호통치고, 모욕한다. 검사도 사람이다. 흔들리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했다. 그것도 모자라 ‘법 왜곡죄’ 입법을 추진한다. “검사 등이 피의자·피고인을 처벌하거나, 처벌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증거 해석·법률 적용 등을 왜곡할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라는 내용이다. 이 대표를 수사한 검사를 법 왜곡 혐의로 쫓아내고, 처벌하겠다는 위협이다. 법사위에 관련 증인들을 불러 추궁한다. 법원 역할까지 하겠다는 발상이다. 이 대표를 방탄하는 이런 피나는 노력에서 빠지지 않는 게 ‘김건희 여사’다. 27일 최고위원회의도 그 중 하나다. 여론에 잘 먹히기 때문이다. 김 여사 관련 의혹은 끝도 없다. 명품백 사건은 가장 비난받는다. 고위공직자가 부인을 통해 뇌물을 받으면 문제가 없느냐는 비아냥이 나온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도 있다. 2020년 수사가 시작될 때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먼트 대표와 40여 차례 전화와 문자를 주고받은 기록이 나왔다. ‘선수’였던 김 모씨가 쓴 편지에 “김건희만 빠지고 우리만 달리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내용이 나왔다. 이종호 전 대표는 해병대 채 상병 사건에서 임성근 전 사단장 구명 로비를 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김 여사가 개입해 사건이 꼬였다는 주장이다. 공천 개입 의혹도 있다. 김영선 전 의원과 브로커 역할을 한 명태균 씨의 통화에 김 여사가 나온다. 2022년 경남 창원 의창 보궐선거에 김 전 의원을 공천한 것도 김 여사라고 주장한다. 한동훈 대표와의 문자, 서울의 소리 기자와의 장시간 통화, 최재영 목사와의 문자 등을 생각하면 이런 문자나 통화가 언제 어디서 얼마나 터져 나올지 위태위태하다. 명품백처럼 명백히 드러난 사건에도 김 여사는 사과를 거부한다. 공개 활동을 재개했다. 괘씸죄까지 얹혔다. 민주당은 김 여사 관련 8가지 의혹을 특검 수사 대상에 올렸다. 당내에 TF·조사단을 꾸린다. 민주노총 등은 28일 전국 주요도시에서 ‘윤석열 정권 퇴진 시국대회’를 열었다. 이 대표에게 피선거권 박탈은 사형과도 같다. 최고의 방어막은 김 여사다. 마지막 카드는 ‘탄핵’이다. 어이없는 ‘계엄설’을 계속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대표가 윤 대통령 덕에 연명하듯, 윤 대통령도 이 대표 덕에 버틴다. 지난 주말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이 직무수행을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23%에 불과하다.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68%다. 보름 전 20%를 찍은 뒤 10%대로 떨어질 것을 우려했다. 그런데도 버틴다. 이 대표 덕이다. 적대적 공생이다. 발 벗고 뛰어도 모자랄 판에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범죄 혐의로 적대적 공생이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9-29

세계적인 관광섬으로 도약하는 울릉군

남한권 울릉군수 ‘신비하다’라는 말이 있다. 일이나 현상 따위가 사람의 힘이나 지혜로는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신기하고 묘하다는 뜻이다. 길이 2.6km의 행남해안산책로를 1시간 정도를 걸으면 ‘신비’라는 말이 저절로 떠오른다. 약 250만년 전 화산 폭발로 형성, 시간과 자연이 빚어낸 역작을 만끽할 울릉도 여행의 백미로 꼽힐만한 행남 해안산책로가 재개통 됐다. 행남 해안산책로는 독특한 지형과 아름다운 해안선, 그리고 청정 바다를 배경으로 환상적인 경관을 제공하는 울릉도의 대표적인 트레일 코스로 방문객에게 다채로운 볼거리를 선사해왔다. 방문객들에게 더욱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낙석으로 인한 보수공사 및 안전점검 등 개선작업을 진행했다. 이번 재개통으로 울릉도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행남 산책로의 아름다운 비경을 제공하고 특히 가을을 맞아 트레킹을 목적으로 울릉도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걸으면 걸을수록 감탄사가 저절로 나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 울릉도는 지난 7월 27일부터 8월 25일까지 울릉도의 여름 해양 레저 체험을 활성화하고 울릉도의 특산물을 활용한 음식을 즐길 수 있는‘한여름날의 울캉스’행사를 개최했다. ‘한여름날의 울캉스’는 해양 레저 프로그램을 50% 할인된 금액으로 체험할 ‘울루랄라 해양레저 페스타’와 울릉도에서 자생하는 해산물을 음악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울루랄라 바다포차’ 프로그램이다. ‘한여름날의 울캉스’는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K-관광섬 육성사업의 일환으로 공모를 통해 5개 섬을 선정, 4년동안 섬별로 100억원 상당을 투입했다. 세계인이 가고 싶은 관광명소, ‘K-관광섬’으로 육성, 휴양과 체험을 중시하는 여행추세에 맞춰 저밀도·청정 관광지인 섬에 관광과 K-컬쳐를 융합하고 지역 주민이 함께하여 매력적인 섬으로 특화하는 사업이다. 울릉도·흑산도 등 국토 외곽 먼섬 지원 특별법 제정에 따른 종합발전계획 수립 연구용역을 위한 업무협의를 했다. 특별법 제정에 따라 행정안전부에서 추진하는 이 용역은 2024년 5월부터 2025년 1월까지 진행되며 계획 수립을 위한 사업안 발굴과 재원조달 방안 등의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용역 수행기관인 국토연구원과 한국 섬 진흥원은 울릉군을 방문해 울릉군 종합발전계획수립 TF팀을 만나 울릉군의 실정과 교통, 안전, 환경, 의료, 교육 등 다양한 분야의 주요 현안사항에 대해 청취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역 해상여객운송사와의 간담회를 갖고 동절기 운행에 대한 애로사항과 여객선 입출항 항만 시설의 미비 등 고충사항을 들으며 먼섬 도서 지역에서 운항 중인 선사의 고질적인 문제에 대해 공감했다. 이에 울릉군은 실정에 맞는 분야별 사업 발굴을 위해 TF팀을 구성했다. 이를 통해 도출된 사업은 종합발전계획 안에 포함하고 예산 반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입장이다. 제55회 울릉군민체육대회가 지난 5일 울릉공설운동장에서 개최됐다. 특히 이번 대회에서는 특별히 관외에 거주하는 5개 지역(서울, 대구, 포항, 울산, 구미) 향우회에서 연합팀을 구성하고 참가해 지역민들과 같이 교류하며 고향에 대한 애정을 보여줬다. 지난 9월 11일부터 이틀간 약 309㎜의 물폭탄이 쏟아졌지만, 민·관·군이 합심해 응급복구에 최선을 다했다. 이번 폭우는 시간당 최대 강수량 70mm가 넘는 폭우로써 46년 만에 처음으로 겪는 상황으로 산사태 및 사면 붕괴, 일주도로 토사유출, 도동시가지 구간 토사유출 등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또한 울릉군은 추석을 앞두고 고향을 찾는 귀성객 및 황금연휴 울릉군을 찾는 관광객의 안전과 불편함을 최소화하기 위해 관내 가용한 장비를 최대한 투입 하고 12일부터 13일까지 각종단체 400여명을 투입하여 빠른 복구에 총력을 기울였다. 공직자 250여명은 휴일을 반납한 채 침수피해를 입은 숙박업소 및 상가복구에 구슬땀을 흘렸다. 특히 울릉군의 요청으로 경북 안전기동대가 1차 2차에 걸쳐 대원들을 급파하여 피해복구 지원에 힘을 보탰다. 추석연휴마저 반납하고 울릉군의 폭우 피해 복구를 지원하기 위해 구슬땀을 쏟았다. 민족의 섬 울릉도와 독도를 지키고자 하는 국민들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울릉도는 지금 천혜의 자연 관광자원을 보유한 해양관광지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정부와 각급 기관들도 울릉도 발전에 적극 나서주고 있다. 울릉도는 지금 울릉군민과 출향인들의 단합된 모습과 정부와 국민들의 사랑과 관심이 모아져 울릉도는 세계적인 관광섬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2024-09-29

노잣돈, 이만 원

이렇게 쓸쓸한 장례식은 처음이다. 그녀의 마지막 가는 길은 뼈만 남은 앙상한 몸만큼이나 초라했다. 구순의 친정아버지와 고등학생 아들, 그리고 우리 부부가 그녀를 배웅했다. 나는 그녀를 학부모로 만났다. 처음 아이를 학원에 데리고 오는 날, 그녀는 자신의 가정사를 이야기했다. 아이의 아버지가 다른 여인을 품으면서 그녀는 아이를 임신한 상태로 시댁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가난한 친정으로 들어와서 팔삭둥이로 아이를 낳았다는 이야기를 깔깔대며 했다. 끄떡없이 잘 살 수 있다는 표현을 하는 것으로 나는 느꼈다. 한 달마다 닥쳐오는 아이의 학원비는 그녀에게 부담이었다. 그녀의 사정을 알았던 나는 반값으로 내려주었다. 그녀는 아이에 대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거나 학교 선생님들에 대한 섭섭함이나 힘든 일이 있을 땐 늘 학원으로 찾아왔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녀를 언니라고 부르며 많이 들어주려고 애를 썼다. 그런 그녀가 가슴에 멍울이 잡힌다고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그녀는 자신보다 아이와 연로한 부모님을 걱정했다. 힘겨운 치료 과정에서도 그녀는 스스로의 삶을 늘 응원했다. 그것도 잠시였다. 다시 찾은 병원에서 그녀는 재발이 되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뼈와 간, 폐까지 전이가 되었다고 했다. 손을 쓸 틈도 없이 그녀는 1년이라는 유효기간을 받아 들었다. 머릿속에 아는 단어가 모두 지워진 듯 아무런 말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녀의 암덩어리는 피할 수 없는 연기처럼 순식간에 온 몸으로 퍼져갔다. 열이 나서 춥고 균형을 잡지 못해 넘어지면서 온 몸은 멍투성이가 되어 갔다. 그 시기에 나는 자궁 수술을 받다가 의료 사고로 대학 병원에 이송되었다. 30분의 골든타임을 살려 나는 위험에서 벗어났다. 못 볼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많은 사람들이 병원을 다녀갔다. 하지만 그녀의 방문은 의외였다. 나를 보며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더 크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꽃샘추위로 바깥 날씨가 예사롭지 않았을 텐데 그녀는 자신의 몸도 제대로 못 가누면서 버스로 한 시간이나 걸리는 이 곳을 찾아왔다. 살이라고는 없는 앙상한 그녀는 은사시 떨듯 하염없이 떨었다.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온 그녀를 보고 나도 울었다. 10분 후 그녀는 일어섰다. 태워 주겠다는 남편의 제의를 마다했다. 택시라도 태워 주겠다는 말에도 화를 냈다. 혼자서 갈 수 있다며 돌아서면서 무조건 받으라며 봉투를 하나 내밀었다. 손사래를 치는 우리에게 ‘내 마음이니 받아 주세요’ 하며 돌아섰다. 봉투를 열었다. 속에는 그녀의 지갑 속에서 얼마나 오랜 시간 접혀 있었던지 칼처럼 날카롭고 공기라곤 느낄 수 없이 납작하고 빳빳한 만 원짜리 두 개가 2번 접혀 있었다. 형편이 어려웠던 그녀가 아끼고 아끼며 차마 쓰지 못했던 돈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니 기꺼이 내어준 그녀의 마음이 뜨겁게 다가와 견딜 수가 없었다. 누구에게는 커피 두 잔으로 써 버릴 작은 금액일 수 있겠으나 그녀에게는 너무나 큰 금액이었다. 한 달 만에 나는 퇴원을 했고 조금씩 회복이 되었다. 하지만 그녀의 건강은 날로 악화되었다. 걱정이 되어 그녀의 현관문을 두드리려 하면 두려움이 먼저 다가왔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내 발걸음을 자꾸 밀어냈다. 그녀는 점점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전화가 왔다. 그녀의 아버지였다. 떨리지도 않는 담담한 목소리였다. “가뿟심더” 김경아 작가 병원에는 아무도 없었다. 빈소도 없었다. 올 사람도 없다며 할아버지는 입관 후 다음 날 바로 발인을 했다. 절차와 행정적인 부분을 할 수 없었던 할아버지를 대신해 나는 분주했다. 입관에는 할아버지와 아들, 교회 목사님과 내가 함께 했다. 가족이라고는 한 명도 오지 않았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 깊이 알 수는 없었지만 그녀의 마지막 길은 외로웠다. 수의를 입고 있는 그녀는 편안한 표정이었다. 말이 없던 아들은 어깨만 들썩일 뿐 제 엄마의 주검 앞에서 목 내어 울지도 못했다. 나는 그녀가 가는 길에 노잣돈으로 차마 쓸 수 없었던 이만 원을 함께 보냈다. 저 세상에서 그녀는 또 누군가에게 자신의 따뜻한 마음을 나눠주며 살 것이라 믿었다. 납골당에 그녀를 두고 돌아서는데 할아버지가 내 손을 잡았다. “선생님 덕분에 우리 애미가 행복했다 카대요. 유일하게 인간 대접 해 준 사람이라 카면서 고맙다고 꼭 전해주라 하대요. 고맙심더” 그녀의 환한 웃음이 떠올라 자꾸만 눈이 시려왔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넓고 넓은 이만 원의 크기만큼 그녀의 가족들을 돌보겠노라 약속을 했다.

2024-09-29

마약범죄 급증… 사회전체가 감시자 돼야

지난해 대구경북(TK)에서 검거된 마약사범이 1467명으로 10년 전과 비교해 3배나 증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청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대구는 2013년 246명에서 2023년 743명으로, 경북은 2013년 249명에서 2023년 723명으로 늘었다. 10년 동안 TK지역에서 검거된 마약사범은 대구 4364명, 경북 4478명으로 총 8842명이다. 전국적으로도 같은 기간 검거된 마약사범 수가 2013년 5459명에서 2023년 1만7817명으로 3.3배나 증가했다. 문제는 10대 마약사범 증가속도가 심상치 않다는 점이다. 지난해 전국에서 검거된 마약사범 중 10대는 1066명으로 2022년 294명보다 3.6배 많았다. 마약 재범률이 40%가 넘는 점을 감안하면 10대 마약범죄가 시간이 지나면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다. 10대 마약사범이 급증하는 이유는 가벼운 처벌 탓이 크다. 국민의힘 김승수 의원(대구 북구을)은 “2023년 마약류 범죄를 분석했더니 미미한 처벌 수위와 수사 인력 부족이 10대 마약사범 증가의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고 했다. 최근 3년간 마약류 사범 1심 판결 현황을 보면 벌금·집행유예·1년 미만 등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 사례가 60%에 육박한다는 것이다. 마약유통망을 끊어내려면 공급책을 적발해 엄중 처벌하는 것이 우선돼야 하는데, 전국 경찰서 중 마약 대응 전담팀을 갖춘 곳이 23곳에 불과한 것도 큰 문제다. 검찰이 최근 청소년에게 마약을 공급하는 범죄자에 대해 최고 사형까지 구형하겠다고 했지만, 온라인을 통한 마약거래는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다. SNS에 익숙한 청소년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쉽게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크웹이나 텔레그램 대화방을 통해 가상화폐로 구입한 뒤, 국제택배로 전달받으면 추적이 안된다. 마약은 중독성이 높아 한 번 접하면 끊기 어렵다. 전 연령층으로 급속하게 번져가는 마약범죄를 근절하려면 사회 구성원 모두가 내 가족을 보호한다는 마음으로 퇴치운동에 나서야 한다.

2024-09-29

대구경북 철도 르네상스, 상생 발전 돌파구로

올 연말까지 대구경북지역에는 동해중부선 등 5개 철도노선이 새롭게 개통되면서 철도 교통망의 지각 대변동이 시작된다고 한다. 대구와 경북을 통과하는 5개의 신설 철도노선은 중부내륙선(문경-경기 이천), 중앙선(충북 단양 도담-영천), 동해중부선(포항-강원 삼척) 등 일반철도 3개 노선과 대구권광역철도(구미-대구-경산), 대구도시철도 1호선 연장(안심-하양) 등 광역철도 2개 노선이다. 이번 철도가 개통되면 오지지역으로 여겨졌던 경북 내륙지역의 교통에 혁명이 일어나게 되고 대구와 인접한 구미 등 8개 지역이 1시간대 생활권에 놓이게 된다. 특히 대구권은 출퇴근 인구의 증가와 경제적 교류 활성화 등으로 대구와 경북은 실질적인 하나의 생활권을 형성하고, 그에 따른 시도민의 생활에도 큰 변화가 일 것으로 예상이 된다. KTX 소외지역이었던 의성, 군위 등 경북 내륙지역은 KTX 수혜지역으로 바뀌게 되고 문경에서 1시간 30분이면 수도권 진입도 가능하게 된다. 또 철도망 연계를 통해 안동에서 울산. 부산 등 동남권으로 접근성도 크게 개선된다. 철도는 경제성장을 이끄는 산업화의 역군이자 국토균형발전을 이루는 대동맥 역할을 한다. 경제, 사회, 문화 등 생활 전반에 영향을 끼쳐 인구유입과 관광 활성화, 산업경쟁력 제고, 일자리 창출 등의 효과를 생산하게 된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이번에 개통되는 대구경북 철도망도 상당한 사회경제적 효과를 안겨줄 것으로 짐작이 된다. 이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수용하느냐 하는 것은 대구경북의 몫이다. 시도는 광역철도의 효율적 운영을 위한 정책개발에 나서야 한다. 철도망의 개통이 지역경제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선별이나 차별화된 역세권 개발 계획도 미리 준비해야 한다. 대구시와 경북도의 행정통합 논의가 아직 진척을 보지못했으나 대구와 경북을 잇는 교통망이 지금보다 더 발전한다면 행정통합의 필요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철도노선의 지각변동을 계기로 행정통합을 포함해 대구와 경북이 상생 발전하는 논의에 더 집중해야 한다.

2024-09-29

포퓰리즘에 갇힌 군수 선거

우정구 논설위원 정치가 경제를 망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특히 선거를 통해 공약한 선심성 정책이 경제의 발목을 잡는 경우는 허다하다. 유권자의 선택에 국가의 흥망이 갈릴 수 있다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우리가 유능한 정치인을 뽑아야 할 이유도 이런 데 있다. “바보야 경제가 문제야”라고 말한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이 구호 덕분에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얘기가 있다. 공교롭게도 미국 현대사에 등장한 대통령 가운데 재선에 성공하지 못한 대통령의 공통점이 경제 침체기와 재임 기간이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세상은 경제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경제가 잘 돌아가면 정치도 문제가 될게 별로 없다. 대중영합주의로 통하는 포퓰리즘도 따져보면 유권자를 경제적으로 윤택하게 하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정치다. 그것이 경제적 순리에 부응하지 않고 빚을 내거나 무리한 재정을 동원함으로써 경제를 파탄에 이르게 한 것이 문제다. 다음 달 실시될 전남 영광군과 곡성군의 기초단체장 재선거를 앞두고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후보간 경쟁을 벌이면서 현금성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 두 당은 자당 후보가 군수로 당선되면 군민 모두에게 100만원이 넘는 기본소득 지급을 약속했다. 두 지역은 알다시피 전국 229개 기초자치단체 중 재정자립도가 하위권에 속하는 곳이다. 중앙정부의 지원 없이는 자체 공무원 월급도 제대로 못줄 형편이다. 19세기 초 태동한 포퓰리즘으로 남미와 남유럽 국가들이 경제적으로 몰락하는 과정을 역사가 입증한다. 포퓰리즘 경쟁의 끝은 국가경제 몰락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정치는 반면교사할 필요가 있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09-29

노인과 인문학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지난주 화요일 오전에 대구 수성구에 있는 ‘대한 노인회’에서 ‘노자의 도덕경에서 배우는 인생의 지혜’를 주제로 강연했다. 대략 70명 정도의 노인들이 강의실에 모여서 선행 프로그램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추석이 지났건만 아침 햇살은 매우 강렬하여 에어컨이 쌩쌩 돌아가고 있었고, 들고나는 노인들 때문에 분위기는 적잖게 산만했다. 강사 소개가 끝나고 그들과 정면으로 대면하면서 준비해간 강연 자료가 유용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잠긴다. ‘가능하면 최대한 쉽고 재미있게’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갔지만, 실제로 면대면을 해보니 훨씬 실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16년 이상의 대중강연 경력 덕분에 예정된 강연 자료를 즉각 폐기하고 현장 분위기에 적절한 강연을 하는 것은 내겐 문제가 아니다. 가능하면 그들 하나하나 들여다보면서 강연에 대한 교감을 확인하면서 천천히 열기를 끌어올리기로 한다. 그런데 어디서든 예기치 않은 사건은 일어나기 마련. 맨 뒷자리에 앉은 할머니 두 분이 끝없이 떠드는 바람에 집중력이 자꾸 떨어지고, 인내력은 바닥으로 내려간다. 청중 몇 분이 그들에게 대놓고 눈치를 해도 그들은 오불관언(吾不關焉)이다. 나는 최대한 참기로 하고 한 가지 질문을 한다. “여러분 가운데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분은 손을 드세요.” 강연 중간에 예닐곱 사람이 나갔기 때문에 60여 청중이 자리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내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일이 벌어진다. 딱 한 사람만 손을 들었기 때문이다. 아니,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잘산다는 사람들이 많이 산다는 대구의 강남(江南)인데?…. 그래서 행복하지 않은 까닭을 묻는다. 그랬더니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는 분도 있고, 산다는 것이 고통으로만 생각된다는 사람도 있다. 대한민국 노인들의 행복 지수가 세계 최저 수준이란 통계는 있지만, 이토록 처절할 줄은 정말 몰랐다. 더욱이 다른 지역에서 무척이나 부러워하는 동네에 사는 노인들의 분노와 슬픔과 절망이 이렇게 깊을 줄이야!….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없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아서 오래갈 수 있다고 노자는 갈파했다. 도덕경 44장에 나오는 “지족불욕(知足不辱) 지지불태(知止不殆) 가이장구(可以長久)”라는 구절이 위 문장의 출처(出處)다. 만족할 줄 안다는 것은 성숙한 인간의 기본적인 표지(標識)다. 적정 수준에서 자신의 욕망을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은 어른의 징표이기 때문이다. 나이 오십이 넘어지면, 인간은 과거의 어두운 기억과 부모의 억압 기제에서 자신을 해방해야 할 의무가 있다. 부모가 강제하고 요구한 덕목과 인생 목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상당수 중장년은 물론 노인들마저 여전히 그들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다. 그것이 그들 자신에 관한 부정적인 평가와 모멸감의 첫 번째 원인으로 작용한다. 나는 노인들을 위로하고, 가능성을 설명하고, 최대한의 긍정과 자기 확신을 설득한다. 하지만 두 노파는 여전히 웃고 떠들고 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은 명언이다. 나이만 많은 부끄러운 노인들이다. 하되 인문학과 담을 쌓고 살아가는 그들에게도 축복이 있기를!….

2024-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