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 떠나고 싶고 누군가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비로소 가을이라 했던가. 풀벌레 소리 청아해지는 만큼 하늘은 더욱 높푸르러 가고 그야말로 덥지도 춥지도 않은 때, 서늘한 바람따라 자연을 벗삼거나 어디론가 훌쩍 길 떠나기 좋은 계절이다.
어쩌면 옛적 차마고도(茶馬古道)의 마방들에게도 가을이 시작되는 9월이 차(茶)를 팔기 위해 길 떠나기 최적의 시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말이나 노새를 이용해 중국 운남성의 차와 티베트의 말을 사고파는 상인을 가리키는 ‘마방(馬幇)‘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온갖 위험과 어려움을 무릅쓰고 기꺼이 고산준령으로 향하는 길을 떠났으리라. 짧게는 3개월, 길게는 수년 만에 되돌아오는 말몰이꾼들에게 있어서의 차마고도는 삶의 의지와 서민들의 애환이 서린 숙명적인 생계의 길이었을지도 모른다.
차마고도는 중국의 차와 티베트의 말을 교환하기 위해 개통된 동아시아와 남아시아의 주요 교역로로 중국과 티베트, 네팔, 인도를 잇는 육상 무역로이기도 하다. 즉 차와 말을 교역하던 길로써 설산과 아찔한 협곡을 연결하는 이 길을 통해 운남의 명물인 차 이외 비단의 수출로였으며 말ㆍ소금ㆍ약재ㆍ곡식 등의 다양한 물품의 교역이 이뤄져 실크로드의 전성기보다 200여 년이나 앞선 고대의 무역로였다.
그러나 생존과 생계를 위해 단순히 차와 말을 사고파는 물물교환의 거래나 교역의 길만이 아니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도시와 나라가 연결되며 문화의 교류와 상업활동의 교역을 이뤄주는 차마(車馬) 무역의 역사적인 길이 되어 여러 이민족의 문화와 종교와 지식이 전파, 교류되면서 나라의 운명까지 바꿔 놓은 질곡의 길이기도 했다. 천 길 낭떠러지의 협곡과 5000미터 이상의 험준한 산을 넘어야 했기에 새나 쥐가 다니는 조로서도(鳥路鼠道)라고도 하는 차마고도는 세상에서 가장 좁고 가파르며 힘든 길이지만, 주변 풍광이 예사롭지 않은 아름다운 길로 드러나면서 세계 3대 트레킹 코스로 불릴 정도로 세간에 회자되고 있다.
그러한 산길과 벼랑길로 이뤄진 차마고도를 직접 걸으며 주변 경치를 바라보는 느낌은 어떠할까? 코스모스와 산양이 반기는 해발 2500여 미터의 차마객잔~중도객잔~관음폭포까지의 차마고도 트레킹 내내 이어지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풍경은, 필설로 못다할 감흥으로 다가왔다. 병풍같이 둘러쳐진 옥룡설산 허리의 운무가 선계와 속세를 구분 짓는 듯 걷혔다 피어나기를 반복하고, 까마득한 발 아래의 산비탈에 다닥다닥 아찔하게 붙어 있는 집들과 구절양장으로 이어지는 비탈길 그 밑으로는, 깎아지른 호도협 협곡의 세찬 물굽이가 옥룡(玉龍)처럼 꿈틀대며 금사강의 유장함으로 흐르고 있었다.
(사)일월문화원에서 주관한 해외문화탐방으로 올해는 중국 서남쪽 변경지역에 26개 소수민족의 다채로운 문화와 풍부한 자연환경이 아름다운 색상으로 표현되는 칠채운남(七彩云南)의 길을 다녀온 것이다. 그 길 가운데 차마고도 행보는 그야말로 무한한 즐거움(樂無窮) 그 자체였다고나 할까? 차마고도낙무궁은 호도협 물굽이에 옥룡설산의 위용과 함께 오래도록 뇌리에 남을 것 같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