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시간에 이르게 도착한 김에 정말 오랜만에 PC방에 들어가 봤다. 족히 십 년은 아니, 이십 년은 넘었을 것 같은 세월 동안 너무도 많이 변해있었다. 백화점 식당 코너를 방불하는 메뉴 구성에 안마 의자인가 싶은 시트, 모니터도 40인치는 넘어 보였다. 그야말로 최첨단의 전자 놀이터구나 싶었다. 한때는 매일 살다시피 지내던 공간이었는데, PC방에서 ‘격세지감’을 느낄 줄이야. 문득 PC방의 추억(?)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알려진 대로 PC방이 한국사회에 안착한 것은 1997년을 전후한 시점이었다. 이때는 ‘IMF 사태’의 여파로 ‘명퇴’한 직장인들이 거리를 배회하던 때이며, 맞벌이 부부의 증가로 아이들이 집에 혼자 남겨진 시기이기도 했다. PC방은 퇴직자들에겐 소규모 투자로 창업이 가능한 아이템이었고, 아이들에겐 외로운 시간을 달랠 수 있는 위로의 공간이었다.
그러다 1998년에 이르면 PC방을 대중화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스타크래프트’가 발매된다. 미국 블리자드사에서 개발한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인 ‘스타’는 PC방을 새로운 시장의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게 만든다. ‘스타’ 이후, 점차 게임산업이 활성화되면서 그에 맞는 고사양의 컴퓨터가 필요해졌고, 온라인시장이 확장되면서 초고속 통신망이 설치되어야 했다. PC방은 저렴한 값으로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장소로 떠올랐다. 아이들은 끼리끼리 모여 오락실이나 당구장 대신 PC방을 찾았고, 전국의 PC방 관련 사업자 수는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PC방은 온/오프라인의 접경지역이자 ‘사이(間)’ 공간이다. 교실의 패거리들은 온라인 세계에 함께 접속하기 위해 물리적인 장소에 공존해야 한다는 역설적인 감각을 형성하고 있었다. 온라인게임에서 자신의 아바타가 위기에 처하면, 육성으로 “헬프(HELP)!”를 외치는 것에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이는 오프라인에서의 인적 관계망이 온라인상의 네트워크로 이행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준 것이자, 현실적인 정체성을 게임 아바타에 쉽게 이입해버리게 하는 결과를 야기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 속도와 드넓은 통신망을 갖추었으면서도 바로 그러한 온라인서비스를 소비하는 관행에는 현실 세계의 규칙이 별다른 고민 없이 개입 돼버리곤 했던 것이다.
물론 현실과는 너무 다른 온라인 인격이 따로 형성되는 일도 빈번했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이야말로 온/오프라인의 접경지대로서의 PC방이 지니는 한국적 특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즉 한편으로는 온라인서비스를 소비하는 집단적인 차원의 관행이 현실의 패거리 문화와 쉽게 접속되어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점차 개인화 성향이 만연해진 사회적 분위기로 말미암아 온라인 세계를 ‘현실로부터 유폐되어 있는 공간’으로 상상하게 되는 인식의 전도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PC방은 온/오프라인의 분할에 대한 감각을 매개하는 동시에, 그에 대한 한국적 맥락을 보관하고 있는 ‘반(半/反) 장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PC방에 대한 젠더화 된 경험에 천착해 보면 오늘날 남성 청년들의 보수화를 살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허민 문학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