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바꼭질’과 ‘줄넘기’, ‘달고나’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에 열광하는 전 세계인들의 모습이 언제까지 이어질까?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인기가 한창이다. 마지막 시즌이 공개된 지 단 3일 만에 글로벌 TOP10 시리즈 비영어 부문 1위는 물론, 공개 첫 주에 93개국 차트를 석권했다. 이는 넷플릭스 사상 최초의 TOP10을 집계하는 모든 국가에서의 ‘올킬’이라고 한다.
‘오징어게임’은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의 초상을 담았다는 평을 들어왔다. 코인 투자에 실패한 유튜버, 딸의 치료비를 구하는 화가, 성전환 수술 비용이 없는 트랜스젠더, 100억 빚의 기업가와 도박꾼 등은 각자가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것 같아도 이들 대다수는 주어진 현실에 목숨을 건 요행으로 맞서야 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즉 그들은 사회의 단순한 ‘루저’가 아니라 일한 만큼 벌어서는 현재의 고난을 극복할 수 없다는 ‘흔한’ 좌절을 안고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오징어게임’이 한국적인(?) 오락거리를 기묘하게 펼쳐놓았으면서도 전 세계의 공감과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요인도 여기 있어 보인다. 노동이 계층 상승에 대한 보편적 욕구를 충족할 수 없을 때, 혹은 복지라는 사회적 안전망이 제 기능을 할 수 없을 때, 개인이 기댈 곳이라고는 도박과도 같은 요행밖에 없는 것이다. 단지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를 굴복시켜야만 하는 피말리는 경쟁 속에서 살고 있다는 동질감이 ‘오징어게임’의 글로벌 흥행 이유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마지막 시즌에는 목숨을 건 생존 게임에 합리와 공정, 토의와 민주적 절차라는 외양을 갖춘 집단적 폭력을 다루고 있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생존자가 줄어들수록 탈락자를 고르는 기준을 둘러싼 협의가 시작된다. 그들 나름대로는 민주적인 절차에 입각하여 죽여도 되는 사람을 신중하게 선별해 가는 것이다. 이때 그 선별 기준은 복잡하지 않다. 그저 남들보다 나약해 보인다는 이유로 생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된다. ‘동정심’이나 ‘인간애’따위는 타인에게 만만해 보일 수 있어 저어될 뿐이다.
그야말로 ‘민주적 배제’와 ‘협력적 살해’라 할 수 있겠다. 이는 현실사회의 적확한 유비이다. 자기들의 안위를 위해 누군가를 사회적으로 배제하자는 천박한 구호에 별의별 구실이 동원된다. 사회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성적·사회적 소수자들의 권리는 희생되어도 무방하며, 출근길을 불편하게 한다는 이유만으로 장애인들의 이동권 투쟁이 부정되기도 한다. ‘갈라치기’ 정치가 혐오스러운 건, 인간의 나약한 이기주의에 편승하는 행위에 불과하면서도, 합리적이고 공정한 척하는 그 위선에서 비롯된다.
늙고 병들어서, 장애가 있어서, 국적과 민족이 달라서, 가난해서, ‘퀴어’라서 사회 제 영역에서의 경쟁에 조차 참여할 수 없는 소외된 자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이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일은 그저 남의 사정이 될 수 없다. 그 누구라도 특정한 국면에서는 언제든 사회에서 배제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생존 법칙을 합리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는 오산이 ‘오징어게임’의 비참을 추동한다. 이 시리즈의 성공에는 열패 의식의 심연이 가로놓여 있는 것이다.
/허민 문학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