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이래, 한국의 경제 상황을 ‘제2의 IMF’로 수식하는 일이 빈번해진 것 같다. 국정기획위 경제1분과 첫 업무보고에서도 현재의 심각성을 ‘제2의 IMF’로 여겨달라는 주문이 있었다고 한다. 알려진 대로 IMF외환위기(1997~2001)는 국가 부도에 처한 한국이 IMF로부터 자금을 지원받는 양해각서를 체결한 외환유동성 위기를 뜻한다. 당시에는 ‘IMF사태’나, ‘IMF구제금융요청’ 등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세계적으로는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로 지칭되기도 했다.
IMF외환위기는 체제 논쟁을 야기할 정도로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제 전반의 전환을 추동한 한국현대사의 거대한 사건이었다. IMF외환위기는 이른바 ‘97년 체제’를 논의케 한 기점이 된 것이다. ‘87년 체제’가 직선제로 대표되는 형식적 민주주의의 제도적 정착이라는 정치체제의 전환을 의미한다면 ‘97년 체제’는 그동안 한국사회를 지배해온 발전국가를 완전히 해체하고 영미식 신자유주의를 전면화한, 전혀 새로운 경제체제라는 것이다. ‘97년 체제’는 정치학과 경제학, 사회학 등에 두루 걸친 학자들에 의해 한때 열띤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반면 IMF외환위기에 대한 문화론적 접근은 물론, 한국문학과 예술 전반이나 개인의 구체적 삶의 양태에 끼친 효과에 대해서는 잘 논해지지 않은 것 같다. 이는 IMF외환위기를 전후하여 변화한 대중의 감정·감성 구조와 일상성, 정치적 주체성과 그 양식, 윤리와 미학에 관해서 학술적으로 전혀 다루어지지 못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하지만 IMF외환위기는 한국사회의 ‘상식’과 ‘정서’를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았다. 시민들은 자신을 국가와 동일시하며 금모으기 운동에 참여했고, ‘절약’과 ‘근면’이라는 덕목을 재소환하면서 위기를 ‘극복’하는 데 동참하도록 요청받았다. 이 내면화된 윤리는 곧 신자유주의적 자기계발 담론과 접속하며, 개개인의 실패를 ‘노력 부족’으로 환원시키는 새로운 규율 체계로 기능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실업, 빈곤, 사회적 배제와 같은 구조적 위기는 개인의 무능과 열등감으로 전유되었고, 좌절과 자책은 점차 정신질환이라는 형태로 표출되기 시작하기도 한다.
이러한 변화를 전면적으로 서사화한 장르는 단연 문학이었다.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중반에 이르기까지 발표된 다수의 한국소설들은 IMF 위기 이후 등장한 새로운 주체 형상의 변화를 민감하게 감지하고 그것을 다양한 서사 형식으로 재현해왔다. 이 시기 문학은 리얼리즘이나 노동자-민중 서사에서 벗어나, 개개인의 고립과 분열, 우울과 강박, 자폐적 존재감각을 중심으로 한 내면에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때의 내면이란 단순히 문학의 관심이 민족이나 민중에서 개인의 문제로 이행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주체의 일상과 마음 그 자체가 정치의 장소가 되고 있는 시대 전환의 감각이 소설적으로 포착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IMF 외환위기는 정치경제적 함의만이 아니라, 문화와 예술, 개인의 일상과 감정·감각 등의 전환을 야기한 사건이었다. IMF 외환위기의 문화사는 더 고찰될 필요가 있다.
/허민 문학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