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복지센터에서의 일이다. 대기표를 뽑고 기다리는데 어디선가 고성이 들렸다. 사연인즉, 노인 한 분이 대중교통비 환급 문제로 직원과 대화를 나누다, 옆에서 기다리던 청년과 시비가 붙었나 보다. 어르신이 너무 큰 소리로 외쳐서 듣고 있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분은 자신의 귀가 잘 들리지 않아서 목소리가 커진 것일 뿐, 화를 낸 건 아니라고 외쳤지만, 좀처럼 먹히지 않았다. 오히려 청년 곁에 있던 주변 사람들도 눈살을 찌푸리며 조금씩 자리를 피하고 있었다.
다음 주 어느 날이었다. 운전면허 적성검사를 위해 면허시험장에 방문했는데, 맨 끝 창구에서 성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또 뭐지 싶어서 가봤더니 이번엔 노부부가 직원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알고 보니 어떤 어르신이 운전면허증 재발급에 필요한 사진을 너무 옛것으로 가져온 탓이었다. 규정상 6개월 이내의 사진이 필요했다. 담당 직원은 최근 사진으로 다시 가져오시라 안내했고, 어르신은 이것도 분명 내 사진이니 그냥 처리해달라는 실랑이가 오고 갔다.
사실 현장에서도 사진 촬영은 가능했다. 하지만 어르신은 자신과 같은 노인에게 신분증 사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냐면서, 이발도 못한 이런 행색으로는 사진을 찍을 수 없다고 단호히 맞섰다. 난감해하는 담당자의 표정을 보고 있으려니 나도 힘들었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직원 여럿이 노인 분을 안쪽 어딘가로 안내하는 모습을 뒤로 한 채 그곳을 서둘러 나왔다.
집으로 향하는 내내 항의하던 노인들의 얼굴이 눈에 밟혔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장면을 두 번이나 목격한 셈이었다. 한 분은 귀가 안 들렸을 뿐이고, 다른 한 분은 행정에 관한 시비였지만 대단히 잘못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규정과 방침을 지키지 않거나 못한 어르신의 항의를 묵살하기 어려운 ‘노인의 사정’이라는 게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저 어르신들은 마치 선량한 직원을 괴롭히고 시민들에 불편을 끼친 훼방꾼처럼 취급됐다. 문득 세월이 흐른다는 건, 나이를 먹는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보게 됐다.
늙는다는 건 우선 후천적 장애를 겪게 된다는 것 같다. 들리던 게 안 들리고, 보이던 게 안 보이거나 거동이 힘들어지는 것으로, 즉 몸의 불편으로 우선 감지되는 것 아니겠나. 또한 늙는다는 건 행정이나 키오스크와 같은 사회 시스템으로부터의 소외를 의미하는 것 같다. 아마 노인들을 위한 행정 서비스조차 어르신들은 절차를 따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노인은 누군가에게 자신의 일상 상당 부분을 의탁해야만 하는 의존적인 존재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 의존한다. 나만 해도 부모덕에 공부했고, 지금은 아내 덕에 직장을 다닌다. 인간이란 본래 취약한 존재이다. 그 취약함은 단순한 약점이 아니라 불가피한 상호 의존과 돌봄의 조건이 된다. 관계가 존재론의 최소 단위이다. 인간이란 나 홀로 살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그렇다. 그렇기에 살만큼 살았다고 오인되는, 마치 세상의 짐처럼 여겨지는 노인들의 앞날에도 사회의 많은 관심이 모아져야겠다. 노인의 모습이야말로 모두의 근미래일테니 말이다.
/허민 문학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