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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문체(文體)

등록일 2026-02-19 17:06 게재일 2026-02-2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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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민 문학연구자

AI가 대학 교육 현장에 미친 효과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논의들이 제출되고 있다. 이제는 모두가 안다. AI의 활용이 단순히 과제 수행 방식의 변화를 넘어, 지식의 생산과 학습의 의미 자체를 변혁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물론 긍정의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리뷰나 서평, 에세이처럼 ‘사유의 훈련’으로 간주되던 전통적인 과제들마저 생성형 AI에 의해 손쉽게 대체 가능해지면서 인문학과 AI의 관계에 대한 보다 심화된 이해를 요구하고 있다.

AI는 이미 학생들을 둘러싼 학습 환경의 일부가 되었다. 검색 엔진이 등장했을 때 도서관 이용 방식이 변했듯, 이제 학생들은 검색창이 아니라 대화형 AI에 온갖 질문을 던진다. AI는 단순한 정보 검색을 넘어, 논지 구성과 문장 생산까지 대신하고 있다. 물론 인문학 교육의 과제는 ‘결과물’만이 아니라 ‘사유의 과정’ 전반을 문제 삼는다. 인문학적 사유의 함양은 텍스트의 형태와 논리적 정합성의 문제로 제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평가의 초점은 완성도 높은 문장만이 아니라 그 문장이 생성되기까지의 사유의 궤적, 텍스트와 맺는 관계의 밀도, 그리고 학생 고유의 정치적 주체성 확보에 있어야 한다.

일본의 비평가 에토 준은 문체(文體)란 “작가의 행동과 작가가 놓인 사회가 빚은 알력이 남긴 자취”라 정의한 바 있다. “작가들은 확실히 언어의 앞으로 뛰쳐나가 직접 현실과 접촉”해야 하며, 이는 “수영 선수들이 행동 뒤로 물보라와 물결을 남기는 것처럼 작가들은 행동 뒤에 문체를 남긴다”는 의미이다. 진정한 문체란 글 쓰는 자가 주위의 현실과 격돌하면서 일으키는 방전 현상의 불꽃과도 같다. 글을 쓰는 행위란 행동한다는 것이고 그 결과 글쓰기의 주체는 자기가 속한 사회와의 긴장과 알력 속에서 세계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 알력이 남긴 흔적이 바로 문체라는 것이다.

AI가 보급되고 대학에서 가장 먼저 마주한 문제는 바로 이 문체의 소멸 아니었을까? 반복컨대 문체란 저마다의 개성이 아니라, 현실과 싸운 자기만의 종적을 의미한다. 간단한 질문과 의제에 대한 답조차도 AI에 의탁하여 손쉽게 사고해버리고 마는 행태의 사회적 확산 속에서 학생들은 자기 고유의 문체를 상실하고 있다. 어떠한 주제든 대체로 비슷한 입장에서 비슷한 어투로 비슷한 평가를 하고 마는 자기의 현재를 기술 환경의 변화라는 구실로 그냥 넘어가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인문학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자기 언어의 생성’이다. 이는 단지 문장과 사유의 독창성 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보단 텍스트를 읽고, 텍스트와 충돌하며, 그 과정에서 자신의 위치를 발견하는 경험을 의미한다. AI는 정보를 요약하고 논지를 정리해 줄 수는 있지만, 그 판단의 책임을 져주지는 않는다. 인문학 교육의 지향이란 바로 이 ‘판단의 책임’을 감당하는 주체를 길러내는 일에 있지 않을까.

AI 시대에서 인문학의 가치는 기술을 통제하는 법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기술과 함께 살아가면서도 인간의 판단과 책임을 포기하지 않는 용기를 샘솟게 하는 데 있다. 오늘날의 인문학자는 우선 이 점에 천착해야 한다.

/허민 문학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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