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대에나 세대론은 제출된다. 특정 연령대를 단일 집단으로 묶어 사고할 필요도 있기 때문이다. 각 세대의 사회적 성격의 차이를 특정하는 명명이 요청될 때가 주로 그렇다. 대개의 세대론은 해당 시대의 청년 계층을 지시하기 위해 마련되곤 한다. 물론 세대론이 형성되는 맥락과 양상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다.
가령 1990년대의 ‘신세대’나 ‘X세대’는 해당 세대에 속한 청년 자신들이 이전 세대와의 차이를 부각하기 위해 스스로가 자임한 개념이었다. 반면 2000년대에 주로 호명된 ‘88만원 세대’는 세대 바깥에서 어른들에 의해 규정적으로 공표된 것이었다. 세대 명칭이 사회변화나 역사 발전의 반영이 아니라 무력(無力)의 실태나 조건을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2010년대에 유행한 ‘삼포세대’나 ‘N포 세대’는 또 달라서, 이들은 ‘연애’와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인간관계’는 물론 ‘꿈’과 ‘희망’까지 포기하겠다는 자조적 선언에 가까웠다. ‘3포’에서 ‘5포’로, ‘7포’에서 ‘N포’에 이르는 과정 모두는 사회가 특정 세대의 현실을 재단하기 위해 그렇게 표현한 게 아니라, 청년들 스스로가 자신의 비참을 전시하기 위해 동원한 유희적 언어 표출에 가까웠다. ‘헬조선’과 ‘수저론’이란 말이 함께 운위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알려준다.
그렇다면 ‘영포티’는 어떠한가? ‘영포티’ 역시 세대론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영포티’는 그 자신들에 의해 자임된 개념도 아니며 어른들에 의해 규정된 관념도 아니다. 아랫세대가 자기 윗세대를 멸시하기 위해 사용하지만, ‘꼰대’로 대표되는 (추상화된) 부모 세대 일반을 지칭하고 있지도 않다. 즉 시공간의 분리가 전제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고, 오히려 사회의 지근거리에서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는 ‘선배’ 정도 되는 이들에 대한 원망에 기초해 있는 세대 개념인 것이다.
‘젠지’에게 ‘영포티’는 학교(대학)에선 비교적 젊은 선생(교수)에 속하며 직장에선 ‘상사’이기도 하다. 이들 간에는 지식이나 교양 수준, 가치관, 역사의식, 문화적 취향과 기술 향유의 정도에서 대단한 차이가 있다고 하기 어렵다. 이 작은 격차에 입각하여 ‘영포티’는 바로 아랫세대가 보기에는 사회적 기득권으로 군림하고 있기도 하다. 실력에 비해 소득·수입의 갭은 너무 크고, 상대적으로 그러한 지위에 오르는 과정이 순탄했다고 의식되기도 하는 것 같다. ‘영포티’에 대한 경멸에는 어른 같지도 않은 이들의 어른 행세라는 인식이 선재해 있다.
‘영포티’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영포티’는 ‘N포’를 자임했던 세대였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자신들을 억압하고 있던 사회의 모순과 적극 대결하기보다는 ‘각자도생’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며 변화에 대한 모색을 ‘포기’해버리고 말았던 그 과거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N포’에서 ‘영끌’로의 이행으로부터 젠지 세대의 원망이 비롯된 것이기에 그렇다. ‘영포티’는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남겼나? 집단적 저항이 아니라 개별적 체념에 몰두했던 우리가 누굴 탓하겠나? ‘영포티’라면 우선 이 점에 천착해야 한다.
/허민 문학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