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3%에 의존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인문사회 분야 연구자들 말이다. 0.93이라는 숫자는 한국의 연구개발(R&D) 예산에서 인문사회 분야에 할당된 비율을 의미한다. 현 정부는 윤석열 정부의 R&D 삭감을 만회하기 위해 2026년 35조3000억이라는 예산을 편성했고, 이는 전년 대비 19.9% 증가한 규모라 한다. 하지만 예산 상승의 대부분이 이공 분야를 중심으로 집중되다 보니, 인문사회의 비중은 오히려 1.2%에서 0.93%로 하락했다.
인문사회연구의 지원 방안과 필요에 대한 대학과 연구소, 교수와 연구자, 대학원생 등의 다각적인 검토와 토의, 문제 제기가 있었음에도, 이들 논의는 결국 전체 R&D 예산의 1% 내외 수준에서 이루어진 고민에 불과했던 것이다. 허탈하지 않을 수 없다.
나만 해도 그저 문학을 공부하고 싶어 석박사 과정을 거쳤을 뿐, 이 분야 연구를 통해 큰돈을 벌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생각해 보면 애초 돈을 목적으로 무언가를 모색했다면 인문계열 대학원에 진학할 리 있겠는가. 아마 대다수가 그럴 텐데, 문제는 공부와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최소한 여건조차 마련하기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대학원 시절을 돌아보면 공부보단 등록금 마련을 위해 3~4개 알바를 전전했단 기억이 더 선명하다. 또한 인문사회 분야의 연구자들은 박사과정을 수료해도 학위논문을 쓰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용되는데, 그동안의 생계와 공부를 유지하기 위해 분투했던 경험을 모두가 가지고 있을 것이다. 박사학위를 취득하면 어떤가. 졸업한 거의 모든 박사들은 R&D 예산의 1%도 안되는 지원을 받기 위해 매달리지만 대체로 ‘각자도생’의 길로 들어설 뿐이다.
사실 이런 경험 자체는 또래의 다른 분야나 직종의 사람들과 별다를 게 없을 것이다. 각박한 게 인문사회 연구자만 그러하겠나. 하지만 연구자로 살아남기 위해 연구는 연구대로 지속하면서도 생계는 생계대로 따로 챙겨야 하는 이 외줄타기의 삶에 대해 정부에 호소할 권리는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개(?)의 사회인은 자기의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한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자기의 일(=연구)로만은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다. 반대로 연구자들은 자기의 일(=연구)에 열심히 매진하면 할수록 생계가 위태로워지기도 한다. ‘일=연구=노동’과 ‘생계=생활’의 철저한 분리가 연구자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 물론 노동과 생활의 이러한 분리가 문제인 이유 역시 자기의 연구를 지속할 수 없다는 위기에서만 비롯된다. 연구자의 생계를 책임져 달라는 게 아니라 공부를 계속하고 싶을 뿐이라는 것이다.
연구자가 연구에 매진케 할 수 있는 제도적 방책으로써 R&D 예산의 확보는 그래서 중요하다. 과연 인문사회 연구의 중요성이 한국 연구개발 분야의 1%도 되지 않을까? K-컬처 신드롬과 한강의 노벨문학상, AI리터러시와 기술윤리, 알고리즘 해석과 현대문명 비판 등이 어떠한 지적 배경 위에서 성립될 수 있었겠나? 대체 왜 우리가 여전히 인문사회 분야 지식의 가치가 0.93%보단 높지 않겠냐고 사정해야 하나? 이 문제는 국가적 의제로 다시 살펴져야 한다.
/허민 문학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