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윤 어게인’의 이유? - 추종의 원리

등록일 2025-08-21 18:25 게재일 2025-08-22 18면
스크랩버튼
Second alt text
허민 문학연구자

헌정사상 최초로 전직 대통령 부부가 구속됐다. 12·3 비상계엄 이래 한국 사회가 받아들여야 했던 거대한 손실을 생각하면 통쾌해야 마땅하겠으나 외려 수치심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윤 어게인’ 따위를 외치며 극우적인 행태를 보이는 자들이 제1야당을 점령하고 있는 꼴을 봐야 한다는 게 괴롭기도 하다. 한국 보수 정치의 수준이 이토록 처참했나 싶다. 대체 저이들은 어떤 이유로 구치소에 갇힌 대통령 내외를 여전히 지지하는 것일까? 무엇을 근거로 ‘윤건희’의 결백을 주장하고 있는 것일까?

물론 이런 광경이 처음은 아니다.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도 ‘박사모’나 ‘태극기 부대’, ‘어버이 연합’ 등을 보아오지 않았던가. 나라를 팔아먹어도 오직 한 정당만을 혹은 특정한 권력자만을 바라보겠다는 ‘어용 국민의 탄생’에 관해 진지하게 살펴볼 필요를 다시금 실감하고 있다. 거의 신앙에 가까운 반지성적 추종의 원리가 궁금하다는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 빌헬름 라이히는 “파시즘의 대중심리”에 관해 연구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지도자가 대중들의 민족 감정에 조응하여 실제로 민족의 화신이 될 때 대중들은 지도자와 개인적 유대를 생성한다고 한다. 그 지도자는 대중 개개인에게 정서적인 가족적 유대를 형성하면서 엄격하지만 보호를 제공하는 아버지상을 구현한다. 독재자에게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권력’을 부여하는 것은 보호를 받으려는 대중의 이러한 태도와 지도자에 대한 신뢰감이라는 것이다.

이때 문제는 대중들 개개인이 ‘지도자’와 자신을 동일시한다는 데 있다. 보호에 대한 아이와도 같은 욕구는 지도자와 하나가 된다는 감정의 형태로 더욱 위장된다. 이런 동일시 경향이 민족적 나르시시즘, 즉 개인들이 ‘민족의 위대함’에서 빌려온 자존심의 심리적 토대가 형성된다. 이제 대중은 지도자와 권위주의적 국가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이런 동일시에 기반하여 그는 자신이 ‘민족성’과 ‘민족’의 방어자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의 ‘어버이들’ 역시 대체로 산업화의 주역으로서 자기에 대한 자부심을 ‘제왕적 카리스마’를 내세운 통치권자에 대한 순종적 존경으로 이행시키곤 한다. 나아가 바로 그렇게 형성된 지지의 확장을 역으로 자신들의 권위로 인식하는 전도된 상상에 의존하며 남은 삶의 이유를 찾는 것이다. 그렇다면 ‘윤 어게인’을 외치는 오늘날의 (특히 남성) 청년들의 정신 구조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최근까지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공정 담론의 보수적 귀착이 문제일 수도 있겠다. 공정이란 경쟁을 사회 발전의 자명한 이치로 받아들여야만 작동하는 가치형태이다. 경쟁의 조건은 갈수록 열악해지는데, 다툼의 시장엔 상대가 너무 많다. 여성 혹은 이주노동자를 비롯한 소수자들의 사회적 지분이 과거에 비해 너무 커진 것 아니겠나. 진보 진영은 전통적으로 이런 현상을 부추길 뿐이니 가장 보수적인 세력에 대한 ‘쏠림’이 증가한다. 물론 그 보수화가 극우로 나아간다는 것은 다른 층위의 문제기도 하다. ‘윤 어게인’을 외치는 사람들의 정신구조는 학술적 의제로 다뤄져야 한다.

/허민 문학연구자

플랜B의 철학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