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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마음이 튼튼한 아이 키우기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아이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서는 신체적 발달뿐만 아니라 정서적 안정과 심리적인 발달이 필수적이다. 부모가 아이의 감정을 공감하고 적절히 반응하는 것이 정서적 안정을 돕는 첫걸음이다. 부모와 안정적인 애착을 가진 아이가 더 건강한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 있기에 애착 형성은 아주 중요하다. 부모가 꾸준한 사랑과 관심을 보이며 감정 표현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면 아이는 심리적으로 안정된다. 따뜻한 스킨십과 눈맞춤 칭찬은 자존감 형성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감정 조절 능력은 아이가 좌절감을 줄이고 건강하게 성장하는 데 필수적이다. 부모는 아이의 감정을 읽고 이름 붙여 주며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예를 들어 ‘속상했구나’라고 말해 주면 아이가 감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림 그리기나 역할 놀이를 통해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도록 유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자기조절 능력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 이는 충동을 조절하고 목표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된다. 부모는 아이가 기다리는 연습을 하도록 유도하고 규칙을 정해 지키게 함으로써 자기조절력을 키울 수 있다. 또한 자기조절을 잘했을 때 칭찬하면 긍정적인 행동이 강화된다. 사회성 발달은 또래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협력과 배려 타협을 배우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 또래와의 놀이 기회를 제공하고, 친구와의 갈등 해결법을 알려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공감 능력을 키우기 위해 ‘친구가 속상했을 것 같은데 어떻게 도와줄까?’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자존감이 높은 아이는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부모는 결과보다는 노력과 과정을 칭찬하고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 형제나 친구와 비교하는 행동은 자존감을 떨어뜨릴 수 있으므로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아이도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으므로 적절한 해소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충분한 놀이 시간과 자연 속에서 뛰어노는 기회를 제공하면 아이는 정서적으로 더욱 안정될 수 있다. 육체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의 스트레스 지수도 감소시키니 시간이 나면 야외 활동을 같이 하는 것이 좋다. 부모의 양육 태도는 아이의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또 부모가 완벽하려고 하기보다는 실수를 인정하고 개선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부모가 실수 했을 때 잘못을 인정하는 것을 보면서 아이도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빨리 인정하고 사과를 하고 다시 나아갈 수 있다. 부모가 자신의 감정을 잘 관리하면 아이도 심리적으로 안정될 가능성이 높다. 아동심리를 이해하고 활용하면 아이의 정서적 안정과 건강한 성장을 도울 수 있다. 애착 관계 형성과 감정 조절, 스트레스 관리, 부모의 양육 태도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면 더욱 건강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태도다. 부모의 사랑과 관심 속에서 아이는 가장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

2025-02-12

꿈, 현실이 되다

정미영 수필가 헤밍웨이의 작품을 읽고 습작하던 시절이 있었다. 수식어를 쓰지 않고 건조하면서도 간결한 문체를 즐겨 썼던 그였다. 하드보일드 문체만큼이나 인상 깊었던 것은 헤밍웨이의 글쓰기에 대한 신념이었다. 소설가는 이야기에 살을 붙일 수 있지만, 알고 있는 범위 안에서 글을 써야 한다는 그의 가치관은 내게 신선했다. 그는 직접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소설을 썼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것은 ‘무기여 잘 있거라’, 아프리카의 사냥 경험은 ‘킬리만자로의 눈’으로 발간되었다. 경험으로 배우는 것이 많아질수록 진실에 가깝게 상상할 수 있다고 작가 지망생들에게 자주 언급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유달리 헤밍웨이의 작품을 읽을 때면 소설의 배경 장소와 집필 공간이 궁금했다. 언젠가는 문학 기행으로 꼭 가보고 싶었다. 내 꿈은 현실이 되었다.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에 영감을 주고, ‘오후의 죽음’을 집필했던 장소가 남아 있는 론다에 갔다. 해발 739미터에 위치한 론다는 강원도 평창과 비슷한 위치라고 한다. 주변의 낮은 평원 위에 우뚝 솟은 암석 고원이라는 설명이 막연했는데, 우리나라 지형과 비교를 하니 쉽게 이해가 되었다. 론다는 스페인 투우의 본고장으로 유명하다. 가장 오래된 투우장이 있고 현대 투우 방식도 이곳에서 탄생했다. 이 고장 출신의 전설적인 투우사 로메로가 경기 방식을 바꾼 덕분이었다. 로메로는 투우 관람을 즐겼던 헤밍웨이가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 소설에 그의 이름을 그대로 썼을 정도로 유명했다고 한다. 론다에는 ‘헤밍웨이 산책로’가 존재한다. 나는 헤밍웨이의 흉상 옆에서 사진을 찍고는 곧장 그 옛날 그의 발자국을 상상하며 내 흔적을 남겼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로맨틱한 시간을 보내기에 알맞은 마을”이라고 했다. 쪽빛 하늘을 배경으로 강렬한 절벽을 도화지 삼아 누군가 그림 한 폭을 그려놓은 듯한 풍경을 보고 있노라니 헤밍웨이의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누에보 다리로 갔다. 120미터 깊이의 엘 타호 협곡 위에 놓인 아치형의 다리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양쪽으로 절벽이 계속 이어지고 한가운데에는 과달레빈강이 흐르고 있었는데 아찔하면서도 황홀했다. 주변의 경치를 내 마음에 담으면서 한편으로는 다리를 만든 사람들이 떠올랐다. 절벽 위에 선 론다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보면서도, 닿을 수 없는 거리 앞에서 오랫동안 한숨을 삼켰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절망은 포기하지 않는 집념으로 변했고 꿈은 현실이 되었다. 변화를 위한 갈망과 화합을 위한 노력은 결실이 되었다. 절벽을 사이에 두고 나뉘었던 삶이 연결되었다. 42년간의 공사를 거쳐 1793년에 새로운 다리를 뜻하는 누에보 다리가 완공되면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가 원활하게 소통되었다. 다리를 건설했던 노동자에게는 고단하고 아슬아슬한 생의 단면이었고, 또 다른 이에게는 두 지역을 연결해야 한다는 간절한 소망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흘린 땀과 눈물은 협곡 아래로 스며들었지만, 꿈은 다리로 남아 지금도 수많은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내가 발을 딛고 있는 곳에서는 다리 전체를 온전히 바라볼 수가 없었다. 측면이 아닌 정면을 온전히 보기 위해서는 다리 아래 협곡으로 내려가는 입장권을 사야 했다. 표를 끊고 안전모를 쓴 채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걸었다. 누에보 다리 전체 모습이 내 두 눈에 담긴 그 순간이었다. ‘노인과 바다’ 책 속의 주인공인 산티아고의 독백이 떠올랐다.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는 않아.” 그는 84일 동안 고기를 잡지 못하고 바다를 헤맸다. 그러나 고기를 잡겠다는 꿈을 잃지 않았기에 마침내 커다란 청새치 한 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청새치는 상어 떼의 습격을 받아 뼈만 남았지만, 그는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바다로 나갈 용기와 희망을 다시 얻었다. 내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꿈은, 현실이 되리라.

2025-02-12

대한민국, 멈춰버린 나라

장규열 고문 대한민국이 멈췄다. 국가운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모든 분야가 동시에 얼어붙었다. 경제는 성장동력을 상실하고, 교육은 오래도록 서있으며, 사회는 극심한 갈등과 불신으로 병들었다. 외교는 수장없는 혼란으로 방향을 잃었고, 국방은 보란듯이 중구난방이다. 세계는 빛의 속도로 바뀌어가는데, 대한민국은 따라갈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우리는 이를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최근 대한민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성장이 멈추었다는 점이다. 주요 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반도체와 AI 등 핵심분야도 우리만 서있는 분위기다. 반도체는 대한민국 경제의 다음 먹거리역할을 해왔으나, 글로벌 경쟁이 심화되면서 전략적 대응이 부족해 시장점유율이 위협받고 있다. AI시대를 대비해야 하는데 준비가 미흡한 것도 현실이다.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청년실업률은 여전히 높으며,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은 생존의 벼랑 위에 섰다.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과 금리의 인상, 부동산시장의 불안정성은 국민의 삶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정부가 경제위기를 극복할 뚜렷한 비전과 로드맵을 제시하지 못하는데, 세계시장에서 한국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교육의 문제는 학제개편이나 입시제도를 바꿀 필요에 그치지 않는다. 학생들은 주입식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창의적 사고를 키울 기회가 제한적이다. 대학교육의 질이 하락하고 청년들은 졸업 후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다. 기술발전과 산업변화 속에서 교육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 미래 세대의 경쟁력은 약화일변도에 설 터이다. AI와 디지털혁신이 글로벌 경제와 세계문화에 충격을 주는 가운데 대한민국의 교육정책은 이를 좀처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라도 교육개혁에 대한 근본적인 각성과 고민이 필요하다. 미래산업을 이끌어갈 인재를 어떻게 양성할 것인지에 대한 긴 안목의 전략이 마련되어야 한다. 한국사회는 극심한 불신과 갈등 속에 병들어가고 있다. 정치적 양극화는 극단적인 대립을 낳으며, 세대 간 갈등, 계층 간 격차, 성별 간 반목이 점증한다. 공정성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법과 제도에 대한 신뢰도는 바닥에 닿았다. 사회안전망이 작동하지 않아 복지사각지대가 늘어나고, 출산율하락과 고령화 문제는 나라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정부가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사회는 더욱 취약한 구조로 떨어질 것이다. 국가의 외교가 혼란에 빠졌다. 국제 정세가 급변하는 가운데 외교전략이 불명료하다. 글로벌 강대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 중요함에도, 외교정책은 갈팡질팡하며 확고한 입장을 보이지 못한다. 경제와 안보를 고려한 외교적 판단과 전략이 절실한 시점이다. 국방이 가진 심각한 문제가 눈에 보인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은 계속되고 있는데 동북아정세는 끝없이 불안정하다. 군 내부의 문제와 병역제도의 지속적인 논란으로 인해 안보가 취약해지고 있다. 한반도의 평화와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강력하고 촘촘한 안보전략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이 멈춰 있을 겨를이 없다.

2025-02-12

저출생 해법찾는 경북…정부·국회는 뭘하나

지난 11일 경북도청에서 열린 ‘저출생 대책회의’에서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저출생은 국가적 중증이다. 경북도가 중증외상센터라는 각오로 혁신적인 정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저출생으로 인한 인구소멸 문제가 생사(生死)를 넘나드는 중증 단계까지 왔고, 경북도가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응급실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이 지사는 지난해부터 이 회의를 주재해 오고 있으며, 이번이 27번째다. 지난해 ‘저출생과의 전쟁’을 선포한 경북도는 9년만에 처음으로 출생아 수가 반등세를 보인 성과를 냈다. 지난해 말 경북도내 출생아 수는 모두 1만467명으로, 전년동기보다 35명이 늘어났다. 2015년 이후 계속 줄어들던 출생아 수가 지난해 증가세로 돌아선 것이다. 적은 숫자이긴 하지만, 의미있는 터닝포인트다. 그저께 열린 회의에서도 각 실·국별로 다양한 저출생 정책이 나왔다. 저출생과 전쟁본부에서는 음력 7월 7일인 ‘칠월칠석’을 ‘견우직녀 만남의 날’로 정해 도내 미혼 남녀끼리 이어주는 이벤트를 추진하기로 했다. 소방본부는 인사 관리 규정을 개정해, 결혼·출산을 앞둔 직원들이 가족과 함께 생활할 수 있도록 희망하는 소방관서에서 근무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공항투자본부는 산업단지 청년문화센터에 24시간 돌봄센터 운영하고, 돌봄 시설을 설치하는 기업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산림자원국은 임산부를 대상으로 ‘치유의 숲 태교’ 프로그램을 운영할 방침이다. 이날 각 실·국에서 나온 대책은 경북도뿐만 아니라 다른 지자체에서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저출생 문제가 특정 정책만으로 하루아침에 개선될 수는 없지만, 경북도가 중증외상센터를 자처하며 전국적인 저출생 극복 모델을 만들려는 노력은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저출생 문제는 경북도가 중증환자 치료하듯이 처방을 한다고 해서 획기적인 효과가 나올 사안이 아니다. 중앙정부와 국회가 앞장서서 아이낳기 좋은 사회 분위기를 만들고, 입법으로 이를 뒷받침하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다.

2025-02-12

학생이 안전한 학교…교육 당국의 몫이다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서 일어난 40대 여교사가 1학년 학생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사고는 말하기 힘들만큼의 충격적인 사건이다. 신학기 개학을 앞두고 일어난 이 사건으로 새학기부터 학생들을 학교에 보내야 하는 많은 학부모들이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우리학교는 과연 안전한가”라는 의구심을 품고 있는 것이다. 교사가 학생을 살해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 사회의 기본이 무너졌다는 탄식도 나왔다. 가장 안전하다는 학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깨진데 대한 허탈감으로 풀이된다. 범행을 저지른 40대 여교사는 정신질환 경력자다. 정신질환을 이유로 휴직을 신청했지만 20일만에 복직했다. 교사들도 인간이기에 정신질환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어린학생을 상대해야 하는 교사라는 특수신분을 고려하면 정신질환 병력자에 대한 교육당국의 관리는 엄격해야 한다. 사고를 낸 교사는 복직후 동료교사의 팔을 꺾고 기물을 파손하는 폭력적 행동을 보였다는데도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는 것은 이 사건에 대한 교육당국의 책임이 없다고 말하기 어렵다. 같은 병력으로 휴직을 더 할 수 없다는 제도상 미흡으로 변명할 수도 없다. 지난해 한 조사에 의하면 교사의 정신질환 발생 위험도는 일반 공무원 두배 이상 높다는 보고가 있었다. 진선미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의하면 2023년 기준 우울증 진료를 받은 초등학교 종사자가 무려 9000여 명에 달한다. 매년 그 수가 늘고 있다고 하니 정신병력 교원에 대한 교육당국의 관리가 더 중요해졌다. 대전의 한 초교에서 발생했지만 이 사건이 놀랍고 충격적인 것은 우리사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구시와 대구시교육청이 학교 안전관리 전반에 대한 점검에 나서기로 했다고 한다. 특히 대구시 교육청은 정규수업 후 운영하는 늘봄 교실 등에 대한 학생관리에 중점을 두고 지원책 보완에 나선다고 한다. 학교는 우리의 아이들이 꿈을 키워가는 곳이다. 경찰의 수사로 이번 사건의 잘잘못이 규명되고 이를 계기로 학교가 가장 안전한 공간으로 재탄생되길 바란다.

2025-02-12

8세 아이의 안타까운 죽음과 우울증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자식을 가진 부모라면 누구나 슬퍼할 사건이 발생했다.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서 8세 여자아이가 흉기에 찔려 숨졌다. 세상 어느 곳보다 안전해야 할 학교에서, 그것도 환한 대낮에 학생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에 많은 이들이 놀라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교내 시청각실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된 여아는 구급대원의 심폐소생술에도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 채 피어나지 못한 꽃봉오리가 무참하게 꺾인 것이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그 학교 교사가 “내가 아이를 살해했다”고 자백하자 놀라움은 더 크게 증폭됐다. 범행 후 자해를 시도한 교사는 생명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문이 생기는 게 당연하다. “왜 선생님이 죄 없는 어린 학생을 죽이고자 했을까?” 범행을 자백한 교사는 우울증으로 인해 휴직했다가 얼마 전 복직했다고 한다. ‘우울증’은 인간의 의욕을 저하시키고 무기력하게 만드는 병이다. 인지 및 정신·신체적 증상으로 인해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가져오기도 한다. 의사들은 우울증을 “평생 유병율이 15%, 특히 여자에게서는 25% 정도에 이르며, 감정, 생각, 신체 상태, 그리고 행동 등에 변화를 일으키는 심각한 질환”이라 설명한다. 사고 소식을 접한 사람들 사이에선 미성년자를 일상적으로 대하는 초등학교 교사나, 다수의 안전을 책임지는 여객 운송수단 조종사 등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면 보다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관계 당국은 이런 의견에 귀 기울여 누구나 수긍할만한 합리적인 재발방지책을 내놓아야 함이 마땅하다. 짧은 시간 세상에 머물렀던 아이의 명복을 빈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2-12

정월대보름의 소묘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최근 들어 눈이 많이 내리고 있다. 설날을 전후해 눈이 살짝 내리는가 싶더니 입춘이 지나고 우수가 다가오는데도 눈 소식이 끊이질 않고 있다. 서해안을 비롯 전라·충청·강원권 등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눈은 수시로 내리면서 을씨년스러운 겨울의 풍경을 백설 가루로 덧칠하는 듯하다. 혼란스럽고 불안한 시국을 눈으로라도 덮어보려는 속내일까? 겨울의 끝자락에 혹한과 강설로 동장군의 기세가 살아나면서 그나마 체면치레(?)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입춘이 지나고 정월대보름이나 우수가 가까워지면 눈이나 비가 잦아들게 된다. 산간 내륙이나 도서지방 등에서는 기압골의 차이로 눈도 내리게 되는데, 농경사회에서는 한 해의 농사를 준비하는 시기라 무엇보다 날씨를 중요하게 여겼다. 특히 정월대보름은 유일하게 대(大)자를 붙여 ‘새해 첫 번째 뜨는 만월’이라 해서 한 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며 동제·풍어제를 지내거나 근신하면서 세시풍속을 즐기고 길흉화복을 예견하기도 했다. 즉 설날이 개인이나 가족 중심의 새해맞이 명절이라면, 정월대보름은 집단적이고 개방적인 마을공동체 명절이라 할 수 있다. 정월대보름에는 예로부터 새해의 풍요와 안녕을 바라며 함께 모여서 즐기고 어울리는 놀이문화가 있었다. 윷놀이나 쥐불놀이, 달집태우기, 줄다리기, 횃불싸움, 고싸움놀이, 놋다리밟기 등의 다양한 민속놀이를 즐기며 단순한 오락을 넘어 마을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역할과 결속을 다지기 위한 축제의 일부로 여겼다. 그러한 단체활동이나 힘겨루기 등으로 승패를 갈라 농사의 풍흉을 점치기도 하며, 액을 쫓고 복을 부르는(遠禍召福) 전통놀이를 통해 마을에 행복과 활력을 불어넣기도 했다. 또한 부럼 깨기와 오곡밥, 귀밝이술, 약밥, 진채(陳菜)를 먹으며 개인적인 건강과 농사의 풍년을 바라기도 했다. 정월대보름 이른 아침에 먹는 부럼 깨기는 한 해 동안의 각종 부스럼 예방과 건치의 염원을 담았고, 귀밝이술을 한잔하면서 남의 말과 어른 말씀을 잘 들으라는 교훈적인 의미를 일깨우기도 했다. 그리고 여러 곡식을 섞어 풍요를 기원하며 짓는 오곡밥과 아홉 가지 나물인 진채를 먹으며‘9’가 지닌 단수 최고, 충만의 의미와 풍족의 누림을 부여하기도 했었다. 빈 깡통에 못으로 구멍을 내서 관솔을 넣고 불을 붙여 철사로 연결된 끈을 돌리면서 주위를 밝히는 쥐불놀이는 정월대보름 밤의 진풍경이었다. 휘영청 달빛 아래 논밭에서 삼삼오오로 저마다 불이 붙은 깡통을 빙빙 돌리면서 그려지는 크고 작은 원형의 불빛은 그야말로 움직이는 불빛쇼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돌리다가 관솔이 거의 다 타게 되면 마지막으로 있는 힘을 다해 불이 붙은 깡통을 공중으로 일제히 던지게 되는데, 수직으로 솟구치는 불기둥에 불티가 눈처럼 날리면서 그려지는 불꽃 포물선은 쥐불놀이의 압권이었다. 어쩌다가 눈까지 내리는 달밤의 숨바꼭질이나 쥐불놀이가 끝나면 또래들과 큰 양푼을 들고 몇 집을 찾아가서 찰밥이나 식혜를 얻어와 살얼음이 뜬 동치미와 함께 먹으면, 그야말로 세상 부러울 게 없었던 꿈결 같은 정월대보름 밤이 켜켜이 동화처럼 각인되는 오늘이다.

2025-02-11

열린 조직문화와 혁신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경직된 조직문화에서 기업 혁신을 추진하는 것은 어렵다. 수직적이고 경직된 조직문화보다 수평적이고 유연한 조직문화에서 조직 간 협력과 창의적 아이디어, 시너지를 창출 할 수 있다. 조직문화는 혁신의 토양이다. 척박한 토양에 혁신의 씨를 뿌리면 새싹이 돋아나다 시들어 버리는 현상이 된다. 가치관, 행동 양식, 규범 등으로 구성되는 기업의 조직문화는 혁신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명령에 따르는 수직적 조직 문화는 혁신을 균형 있게 추진하기 어렵다. 가령, 경영자의 지침이 안전에만 내려진다면 한 가지에 집중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안전과 설비는 기차 레일처럼 균형 있게 관리하지 않으면 설비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제조기업의 혁신 대상은 설비부터 생산, 품질, 원가, 안전, 환경 등 다양한 문제들을 개선해서 생산 프로세스 수준을 높여 나가야 한다. 조직문화가 기업 혁신의 성공과 실패에 어떤 영향을 주는 것일까. 조직문화가 기업 혁신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 위해 첫째, 열린 조직과 혁신적인 사고 장려이다. 구성원의 생각이 기업 미래를 결정한다. 개방적인 조직문화는 직원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실행 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는 도전적인 시도를 장려하고 창의적인 해결책을 찾는 데 기여한다. 둘째, 협업과 지식공유 활성화이다. 팀워크를 강조하는 문화는 부서 간 협업을 촉진하고 혁신적인 아이디어 도출 분위기를 조성하여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지식 공유가 일상화 되는 조직은 새로운 기술과 노하우를 빠르게 확산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셋째, 다양성을 담아내는 의사결정 속도이다. 상명하달식 20세기 조직문화로는 다양성을 담아내지 못한다. MZ세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최근 현장은 그 특징에 맞게 열린 대화와 유연한 사고로 모두가 공감하는 혁신을 추구하고 실행력을 높여야 성공할 수 있다. 넷째, 대내외 변화 대응이다. 변화에 대한 열린 태도를 가진 조직문화는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서도 지속적인 혁신을 가능하게 한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은 조직문화는 신기술 도입과 시장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여 혁신적인 성과를 기대 할 수 있는 것이다. 기업 혁신에 좋은 영향을 주는 조직문화는 직원들의 사고와 생각을 자유롭게 말 할 수 있는 여건과 상하 관계보다 수평적인 구조를 통한 빠른 정보 공유와 의사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지속적인 학습과 성장을 장려하는 분위기와 새로운 기술과 트렌드를 빠르게 습득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유연성과 자율성을 보장하고 목적 중심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리더가 명확한 비전과 목표를 제시하고 구성원들은 한 방향을 보며 각기 위치에서 역할을 했을 때 원하는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다. 기업 혁신의 성공 조건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혁신의 토양인 조직 문화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토양을 잘 개간한 만큼 농사가 잘 되듯 조직의 수장은 조직 문화 체질개선에도 진력 할 필요가 있다. 조직문화가 바르게 정착될 때 지속적인 혁신을 이루며 미래가 있는 기업이 될 것이다.

2025-02-11

외신이 본 부산

우정구 논설위원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가 최근 우리나라 제2 도시 부산의 몰락을 경고한 뉴스는 매우 충격적이다. 이는 부산만의 문제가 아니고 전국 지방의 대도시가 공통으로 안은 문제란 점에서 동병상련의 감을 느끼게 한 대목이다. 파이낸셜타임스의 평가는 이렇다. 20세기 대부분 기간 부산은 한국의 무역과 산업의 중심지였지만 지금은 젊은이가 대폭 감소해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은 한국의 다른 대도시보다 더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다. 현재 330만 인구의 부산은 1995년부터 2023년까지 60만명이 넘는 인구가 빠져나가면서 쇠퇴의 길을 걸었다. 한국의 대표적인 대기업인 삼성과 LG의 탄생지지만 한국 100대 기업 중 어느 곳도 이 도시에 본사를 두지 않고 있다고 했다. 부산이 다른 대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빨리 쇠퇴한 것은 수도인 서울이 국가 경제를 중앙집권하면서 가속화됐다고 이 신문은 분석했다. 한국고용정보원은 작년 6월 ‘광역 대도시로 확산하는 소멸위험’이란 보고서에서 부산의 소멸위험지수가 0.490으로 광역시 중 처음 소멸위험 단계에 진입했다고 발표했다. 소멸위험이 농촌지역에 국한한 문제가 아니란 사실이 더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이다. 2012년 파이낸셜타임스는 부산을 아시아태평양지역 133개 도시 가운데 외국인 투자유치를 가장 잘한 도시 6위로 선정한 바 있다. 불과 13년만에 같은 신문이 소멸위험 도시로 부산을 꼽은 것은 아이러니하다. 지난해 대구는 소멸위험지수 0.553으로 부산에 이어 소멸위험 단계 진입 직전에 놓인 도시로 평가됐다. 부산의 위기가 곧 대구의 위기로 보아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2-11

‘신입생 0명’ 학교 증가…교육 양극화의 그늘

신학기 개학 때마다 들리는 우울한 뉴스지만, 올해도 전국에서 신입생이 없어 입학식을 치르지 못하는 초등학교가 185곳인데 이 중 42개교가 경북에 있다고 한다. 대도시인 대구에서도 신입생이 없는 초등학교가 있다. 대구·경북 지역의 인구감소 수준이 위기상황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다. 경북교육청 집계에 따르면, 올해는 도내 초등학교 42개교, 중학교 3개교 등 모두 45개 학교가 신입생이 없다. 지난해에는 30곳이었지만, 올해 15곳이나 늘었다. 안동과 영천, 의성에 각 5곳, 포항·상주·성주에 각 4곳, 김천·문경 각 3곳, 청도·고령· 울진 각 2곳, 예천·봉화 각 1곳이다. 중학교는 포항·영천·청송 각 1곳이다. 그나마 군 단위에선 면마다 1곳씩 남아있던 초등학교도 점차 없어져 가는 추세라서 충격적이다. 학생이 없어 문을 닫는 학교가 늘어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속수무책이란 것이 안타깝다. 경북도내에서 신입생을 받지 못해 폐교한 학교는 2021년부터 2023년까지는 2~3곳이었다가, 지난해는 6개교로 대폭 늘어났다. 전국적인 출생아 수를 고려하면 앞으로의 상황은 더 비관적이다.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할 출생아 수는 2019년 30만3000명이지만, 2020년에는 27만2000명, 2021년에는 26만1000명, 2022년에는 24만9000명으로 해마다 1~2만명씩 줄어들고 있다. 앞으로 이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갈 나이가 되면, 전국 초등학교의 절반이 신입생 10명 미만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비수도권 농어촌 지역에서 아이들이 사라지는 문제는 지방정부나 교육당국 차원에서 손을 쓸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섰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교육격차 해소와 저출생 문제 해법 없이는 모든 대책이 임시처방에 불과하다. 가장 효과적이 대책은 청년들이 농어촌에 살면서 아이를 낳아 키우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황당한 소리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농어촌 공교육을 대도시 사교육시장 못지않게 수준을 높이면 가능할 수 있다.

2025-02-11

포항경제에 직격탄 날린 美 철강 관세 폭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미 선언한 대로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25% 관세가 10일 부과됐다. 앞으로 철강에 이어 우리나라 주요 수출품목인 자동차와 반도체 등도 미국의 관세 부과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여 한국의 수출전선에 초비상이 걸린 상태다. 특히 포스코와 현대제철의 생산공장이 있는 포항은 수많은 연관업체들이 미국의 철강 관세정책에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향후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대미 철강수출에서 263만t을 무관세 적용을 받고 있다. 하지만 관세가 부과될 경우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수출에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포스코는 포항과 광양에서 2024년 기준 162억 달러의 철강제품을 해외에 수출하고 있다. 미국의 의존도가 11% 정도다. 미국의 관세정첵이 구체화될 때까지 지켜봐야 하겠으나 현재로선 특별한 대응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알다시피 철강산업은 2023년부터 수요부진으로 관련업계가 애를 먹고 있다. 게다가 저가의 중국산 제품이 시장에 파고들어 어려움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미·중의 관세전쟁이 심화되면 중국산 철강제품의 국내 수입이 더 확대될 가능성도 점쳐져 국내 철강산업은 이래저래 사면초과 국면이다. 철강제품은 트럼프 1기 행정부 때도 25% 관세가 부과됐으나 한국정부가 나서 물량을 제한하는 쿼터제를 수용함으로써 관세대상에서 제외되는 성과를 냈다. 아직은 정부의 대응책이 나오지 않고 있으나 관세를 면하기가 쉽지 않고 대체시장 확보도 만만치 않아 걱정이다. 혼란이 극에 달한 우리 정치상황을 생각하면 경제가 무너질까 우려도 된다. 포스코 등 관련업계가 신제품 개발 등 위기를 넘어설 수 있는 대안 모색에 나서야겠지만 지방정부도 함께 고민하고 대응책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 포스코는 우리지역의 대표기업으로서 지역 경제와 시민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정부의 대미 협상력에 기대를 걸어야 할 시점이지만 트럼프발 관세폭탄에 대응하는 지역 경제주체들의 각오도 새로워져야 한다.

2025-02-11

탄핵선고 서두르는 헌재…여야 大選 모드

심충택 논설위원 2030세대가 합류한 대규모 탄핵반대집회가 대구를 비롯해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지만, 헌법재판소(헌재)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에 속도를 내고 있다. 헌재는 “재판일정과 진행방법은 재판관 모두가 참여하는 평의를 통해 결정한다”고 하지만, 법조계 일각에선 헌재가 3월 선고를 미리 정해놓고 서두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헌재 재판은 이제 막바지 국면에 접어들었다. 예정돼 있는 마지막 변론 기일은 13일(8차)이다. 재판부가 추가 기일을 잡더라도 이르면 이달 말 변론이 종결될 가능성이 크다.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때 변론 종결부터 선고까지 2주 정도 걸린 것을 고려하면, 윤 대통령에 대한 선고기일은 3월 중에 잡힐 가능성이 크다. 만약 헌재가 윤 대통령 탄핵을 인용하면, 선고 후 60일내에 조기대선이 치러진다. 빠르면 4월, 늦어도 5월중에 조기대선이 치러질 수 있는 상황이다. 정치권은 이미 조기대선 모드에 들어갔다. 여권은 “조기 대선은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지만, 예비 대선주자들의 움직임은 분주하다. 탄핵이 인용될 경우 바로 후보경선을 치러야 하기 때문에 선거를 준비할 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현재 여권에선 오세훈 서울시장과 홍준표 대구시장, 한동훈 전 대표, 유승민 전 의원 등이 예비주자로 거론된다. 오 시장과 홍 시장은 일찌감치 언론인터뷰나 SNS를 통해 지지층 세력화에 나섰고, 한 전 대표는 곧 정치 활동을 재개할 움직임이다. 그의 측근 인사들은 최근 ‘언더73’(1973년생 이하 정치인) 모임을 결성해 한 전 대표 지원에 나섰다. 이 모임에는 국민의힘 김예지·김상욱·김소희·진종오 의원 등이 참여하고 있다. 야권은 본격적인 조기 대선 준비에 들어간 모양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지난 10일 국회에서 열린 교섭단체대표 연설에서 민생회복과 경제성장을 강조하면서 사실상의 집권 청사진을 내놓았다. 최근 중도층 확장을 위해 성장담론을 피력하고 있는 이 대표는 야권에서 사실상의 일극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 대표의 유력한 대항마로는 친문계 인사인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가 꼽히는 정도다. 김 전 지사는 최근 복당하면서 “대선승리를 통한 정권교체를 위해 헌신하겠다”며 대선주자 대열에 합류했다. 이외에 김동연 경기도지사와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이 대표를 겨냥한 견제구를 날리면서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최근 각 언론사의 여론조사에서 보수·진보 강성지지층을 제외한 중도층만 추려내 분석해보면, ‘정권 연장’보다 ‘정권 교체’ 여론이 높게 나온다. 정당 지지도에선 국민의힘이 상승추세에 있는 것은 맞지만, 이를 보편적 민심으로 보긴 어렵다. 만약 국민의힘이 탄핵 반대집회 군중들과 정당 지지도 상승에 들떠 우경화하는 모습을 보이다간 금세 역풍을 맞게 된다. 특히 여권의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 ‘비상계엄 찬반’ 여부가 주요변수가 될 경우, 후보가 누가 되든 승산이 낮다. 국민의힘 예비 대선주자들이 강성지지층 결집보다 중도층 외연 확장에 총력을 쏟아야 하는 이유다.

2025-02-11

겨울 바다의 진미, 포항의 특산물 과메기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면 포항의 바닷가에는 특별한 겨울 별미가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과메기’다. 예로부터 이 지역에서는 긴 겨울을 준비하며 신선한 생선을 보관할 방법으로 자연건조 방식이 발달하였고, 그 결과 지금의 과메기가 탄생하게 되었다. 과메기는 이제 단순히 포항 지역의 특산물을 넘어, 전국적으로 사랑받는 겨울철 별미로 자리 잡았다. 과거에는 주로 포항이나 경상북도 동해안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었지만, 요즘은 전국의 마트나 백화점에서도 쉽게 구입할 수 있어 겨울철이면 어디서든 과메기의 쫄깃하고 깊은 맛을 즐길 수가 있다. 특히 현대적인 포장 기술과 유통망의 발달 덕분에 신선한 상태로 과메기를 전국 각지로 배송할 수 있게 되어, 집에서도 손쉽게 포항의 겨울 맛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과메기 라이스페이퍼 롤 △제조 방식에 따른 과메기 종류 과메기는 만드는 방식에 따라 크게 ‘통 과메기’와 ‘배지기 과메기’ 두 가지로 나뉜다. 각각의 제조 방식과 맛에는 고유한 차이가 있어, 입맛에 따라 다양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전통 방식의 통 과메기는 생선의 내장만 제거한 후 통째로 말려 만드는 방식으로, 전통적인 과메기의 형태를 유지한다. 이 과정에서 생선이 숙성되면서 과메기 본연의 깊고 진한 풍미가 특징이다. 더욱 부드럽고 묵직한 식감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인기가 있다. 반면, 베지기 과메기는 생선을 반으로 갈라 포를 떠서 말리는 방식으로, 바닷물과 일반 민물을 섞어 세척 한 후 짧은 기간에 균일하게 건조한다. 겨울철 바닷가 바람과 일교차에 의해 생선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점점 쫀득한 식감과 깔끔한 풍미가 강해져, 과메기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통 과메기에 비해 베지기 과메기는 수분이 더 빠르게 제거되어 쫀득한 식감이 강조된 과메기다. 또한 크기가 작고 손질이 쉬워 다양한 요리에 손쉽게 활용하기에도 적합하다. △과메기의 손질 해풍에 잘 말려진 과메기를 맛있게 즐기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얇은 껍질을 벗기는 과정이다. 얇은 막처럼 된 껍질을 벗기면 속살이 드러나고, 마치 기름이 발라진 듯 윤기가 흐르며 더욱 먹음직스러워진다. 과메기는 11월에서 2월까지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기간에만 즐길 수 있는 특별한 제철 음식이다. △과메기의 건강한 효능 과메기는 고소하고 쫄깃한 맛뿐만 아니라, 풍부한 영양성분 덕분에 겨울철 건강식으로도 주목 받는 음식이다. 과메기에는 음식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불포화지방산 중 뇌 기능 활성 물질인 EPA와 DHA 함량이 높으며,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해 혈액 순환과 콜레스테롤 관리에 도움을 준다. 또한, 단백질과 비타민이 풍부하여 겨울철 면역력 증진에도 좋다. 겨울철 건강을 지키고 포항의 바다를 느끼고 싶다면, 제철 과메기로 따뜻한 밥상을 차려 보는건 어떨까? △과메기를 활용한 다양한 요리 제안 과메기의 매력은 그 자체로 즐기는 풍미도 좋지만, 다양한 조리법으로 응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김과 노란 속배추, 쪽파, 마늘, 고추, 생미역과 꼬시랭이를 곁들여 먹는 방식이 잘 알려져 있지만,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다양한 요리로도 응용되고 있다. 1. 과메기 무침 과메기를 채 썰어 새콤달콤한 초고추장 소스에 버무려 만든 무침은 식욕을 돋우기에 충분하다. 미나리와 무, 배를 채 썰어 넣으면 과메기의 고소한 맛과 무의 아삭함, 배의 달콤함이 어우러져 독특한 매력을 선사한다. 2. 과메기 라이스페이퍼 롤 영양이 풍부한 과메기에 노란 알배추, 해초, 적채를 더해 라이스페이퍼로 감싸 한입에 즐길 수 있게 만든 핑거푸드로 과메기의 고소함과 신선한 채소의 조화가 부담 없이 맛 볼 수 있는 요리로 각종 행사나 시식회에서도 손쉽게 즐길 수 있다. 3. 과메기 전 과메기를 먹기 좋게 잘라준 후 밀가루를 가볍게 묻혀주고 청양고추와 홍고추 다진파, 소금으로 간을 맞춘 계란물에 적신 후 팬에 노릇하게 부쳐준다. 고소하면서도 살짝 매콤한 맛이 과메기의 조화를 이룬다. 반찬이나 술안주로도 손색없는, 누구나 즐기기 좋은 요리이다. 4. 겨자소스를 곁들인 과메기 미니김밥 김을 네 등분한 다음 소금과 참기름으로 비빈 밥을 한 스푼 정도 펴주고, 과메기와 단무지, 당근, 등의 야채를 올려서 작게 말아 준다. 겨자소스를 찍어 먹으면 과메기의 풍미와 겨자의 알싸한 맛이 잘 어우러진다. ※겨자소스 만들기: 식초 2큰술, 설탕 2큰술, 물 1큰술, 참기름 1작은술, 발효 겨자 적당량 5. 과메기 강정 과메기를 한입 크기로 밀가루를 가볍게 묻힌 후 튀김옷을 입혀 바삭하게 튀겨낸다. 마늘 1큰술, 고춧가루 1큰술, 강정소스 5큰술 정도 넣어 소스가 바글바글 끓으면 튀긴 과메기를 넣어 재빨리 가볍게 버무려 준다. 땅콩 분태와 검은깨를 뿌려 마무리 한다. 박정남 전통음식칼럼니스트 ※강정소스 만들기 : 간장 150g, 고운 소금 25g, 물엿 300g, 설탕 150g 모든 재료를 섞어 약한 불에서 설탕이 녹을 정도로만 저어 가며 약하게 끓여 강정소스를 완성한다. (센 불에서 끓이게 되면 넘칠 수 있으니 주의한다.) ※TIP : 강정소스는 가볍게 묻히는 정도로 버무려 주어야 바삭한 식감을 유지할 수 있다. 완성된 강정이 굳기 전에 한번 더 버무리듯 서로 떨어트려주면 더 이상 달라 붙지 않아 완성도가 높아진다. 박정남 전통음식칼럼니스트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외식산업학 박사 △안동 1호 조리기능장 △안동종가음식체험관 연구원장 △대구가톨릭대학교 산학겸임 교수 △(주)예미정별채 수석셰프 겸 대표

2025-02-11

안전한 봄을 위한 해빙기 준비

최원익 칠곡소방서장. 입춘(立春)은 겨울의 끝자락에서 봄을 맞이하는 시기로 기온은 여전히 낮고 차가운 바람이 불고 있지만, 봄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다.  유난히도 추워 끝날 것 같지 않던 이번 겨울, 어느덧 입춘이 지나고 서서히 봄이 찾아오고 있다. 해빙기는 겨울과 봄의 중간 시기로, 겨우내 한파로 인한 동결과 융해 현상이 반복되면서 지반이 약해져 건축물 등이 붕괴를 일으키고 얼었던 물이 녹으면서 각종 안전사고의 위험이 높아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즉, 새로운 생명이 싹트는 시기임과 동시에 각종 재난에 대비해야 하는 분주한 시기로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미리 점검하고 준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선 땅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기 때문에 지반이 약해지므로 건축물이나 옹벽 등이 균열이나 지반침하로 기울어져 있는지 꼼꼼히 살펴보아야 한다. 또 해빙기에는 빙판이 얼어 있는 곳과 녹은 곳이 혼재해 있어, 사람들이 미끄러져 넘어지는 사고가 자주 발생하기 때문에 미끄럼 방지 기능이 있는 신발을 착용하고, 눈이나 얼음이 녹은 길에서는 주의 깊게 걷는 것이 중요하다. 등산을 계획 할 때도 바위 능선이나 계곡 등은 피하고, 평소보다 등산 코스를 짧게 하는 것이 좋으며 보온성이 좋은 옷을 입고 등산해야 안전한 산행이 될 수 있다. 해빙기 얼음은 강이나 호수의 가운데로 갈수록 얇아지고, 아래쪽에서부터 녹기 때문에 겉으로 보아서는 두께를 가늠하기 어렵다. 강이나 하천의 얼음 위로 걷다가 갑자기 얼음이 깨져 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얼음 위에서 놀거나 다가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도처춘풍(到處春風), 이르는 곳마다 봄바람이라는 뜻으로 가는 곳마다 기쁜 일이 있다는 고사성어다. 봄철 해빙기 주변을 다시 한번 더 꼼꼼히 둘러보고 각종 안전저해요소를 사전에 제거하여 위험이 도사리는 해빙기가 아닌 모두가 따뜻하고 행복한 ‘도처춘풍의 봄’을 맞이하였으면 한다.

2025-02-11

대구경북형 재선충 대응 모델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기후변화로 인해 산불 발생 위험이 증가하는 가운데, 또 다른 산림 재난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바로 ‘소나무 재선충병’이다. 감염된 소나무는 탄소 흡수 능력을 상실하고 고사하며, 이는 산불 확산 위험을 더욱 높인다. 한국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2018년 대비 40% 감축하는 목표를 설정했으며, 이 중 산림 부문이 3,200만t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전체 감축 목표의 11%를 담당할 예정이다. 이는 국내 등록 자동차 2,550만대의 연간 배출량(3,060만t)을 초과하는 수준이며, 2024년 탄소배출권 가격 기준으로 약 3,850억원의 경제적 가치를 갖는다. 그러나 재선충 확산으로 인해 이 같은 탄소흡수 효과가 저하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대구와 경북은 탄소 흡수량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므로, 재선충 대응의 중요성이 더욱 크다. 2020년 기준, 대구의 연간 탄소 순흡수량은 44만9,000t으로, 서울(8만9,000t), 부산(27만7,000 t)보다 월등히 높다. 경상북도는 전국 산림의 21.2%를 차지하며, 연간 1,028만7,000t의 탄소를 흡수하는 대한민국 대표 탄소흡수원이다. 그러나 2023년 기준, 경북에서는 전국 피해량의 40%에 해당하는 123만7,000 그루의 소나무가 재선충으로 고사했다. 연구에 따르면 재선충으로 죽은 소나무 1그루당 연간 약 20kg의 탄소흡수 기능이 상실된다. 이 같은 피해가 지속될 경우 경북 지역의 연간 탄소흡수량은 최대 100만t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해외에서는 산림병해충 대응을 위해 국가적·광역적 협력 모델을 도입한 사례가 많다. 일본은 ‘긴급 방제 지역’을 설정하고 감염목 이동을 엄격히 통제하는 법률을 시행하고 있으며, 드론과 AI를 활용한 조기 탐지 시스템을 도입했다. 미국에서도 미시간, 오하이오, 인디애나 등의 주(State) 간 협력을 통해 감염목 이동을 제한하고 피해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있다. 대구·경북도 이러한 사례를 참고해 ‘대구경북형 재선충 대응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먼저, ‘대구경북 재선충 방제 협의체’를 구성하여 감염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공동 방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또한, 드론과 AI를 활용한 조기 탐지 시스템을 도입해 감염목을 신속하게 제거하고 확산을 차단해야 한다. 특히, 감염 지역을 공동 관리하는 ‘광역 방제 구역’을 설정하여 동일한 방식으로 감염목을 제거하고 예방 작업을 실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피해 지역의 산림 회복을 위한 대규모 조림 사업을 추진하여 탄소흡수 기능을 회복하는 장기 전략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탄소흡수원이 무너지는 것을 방치한다면, 탄소중립 실현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대구·경북이 선제적으로 재선충 대응 모델을 마련한다면, 국가의 탄소중립 목표 달성뿐만 아니라 지속가능한 산림 관리를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이제는 산불과 재선충 피해를 동시에 막기 위해 대구와 경북이 협력하여 적극적인 대응을 펼쳐야 할 때다.

2025-02-10

고통의 신비

강길수 수필가 장미 밑둥치들을 살펴본다. 한 주에 두 번은 걸어서 지나는 화단이다. 이곳 장미들은 봄부터 늦가을까지 아름다운 꽃을 피워 오가는 길손들을 즐겁게 한다. 처음에는 관심 없이 지나다녔지만, 시간이 가며 이 화단 장미들이 유별나게 곱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 지날 때마다 장미들을 살펴보는 습관이 생겼다. 이곳 장미는 왜 다른 것들보다 더 곱고 크며, 아름다운 꽃들을 피워낼까. 내가 알아낸 것은, 정원사가 가지들을 자주 잘라낸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장미는 매번 가지가 잘리는 고통을 이겨내고 새 가지가 나서 꽃을 피우는 것이다. 젊은이가 더 아름답듯, 새 가지에 피어난 장미꽃이니 더 크고 고왔던 것일까. 문득, ‘고통의 신비’가 떠올랐다. 성당 신자들이 묵주기도를 바칠 때 드리는 네 가지 신비 중의 두 번째다. 네 신비는 ‘환희, 고통, 영광, 빛’이다. 2월 초순, 가지가 모두 잘려나간 장미 밑동은 추운 막바지 겨울을 온몸으로 맞서고 있다. 하지만, 밑동 속에서는 머지않아 다가올 봄에 활짝 꽃피울 새순을 내보낼 준비에 여념이 없으리라. 순과 잎, 꽃의 모양과 색깔을 디자인하고 실행계획도 세울 거다. 묵주기도는 예수그리스도의 일생을 묵상하며 바치는 기도다. 그중 고통의 신비는 사람의 삶과 가장 가까운 주제이다. 불교에서도 인간의 삶을 고해라 하듯이, 고통은 우리 삶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묵주기도의 고통은 죄 없는 그리스도가 온갖 모함으로 받는 육체적, 정신적, 영적 고통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고통의 정점은 죽음이다. 고통을 감내하고 죽음으로써 부활하는 신비로 묵주기도는 이루어졌다. 한겨울을 능가하는 입춘 꽃샘 한파가 물러나면, 겨우내 준비했던 새순은 눈을 틔우고 자라나 꽃봉오리를 맺을 터. 무르익은 봄날 마침내 꽃봉오리는 화려한 꽃잎을 열어 아름다운 자태를 온 세상에 드러낼 것이다. 흰장미, 분홍장미, 노랑장미, 붉은장미, 흑장미 모두 피어나 생명의 거리를 밝히리라. 지금 우리 사회도 고통의 신비를 겪고 있다 싶다. 무너져 가는 자유민주국가 질서를 간파한 대통령이 홀로 십자가를 지고 고통의 강을 건너고 있다. 이에 감동한 많은 국민이 거리로, 광장으로, 대통령관저 앞으로, 법원 앞으로, 구치소 앞으로 모여들어 대통령의 고통을 함께 나누어 짊어지고 있다. 그 결과, ‘비상계엄’이 ‘비상계몽’으로 승화하며 많은 20~30 젊은이들을 일깨워 함께 걷게 한다. 구치소에 갇힌 대통령의 지지율이 51%란 여론조사 보도를 몇일 전 보았다. ‘민심이 천심’이란 말이 실감 난다. ‘사필귀정’이란 마음도 든다. 내란의 주체가 될 수 없는, 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을 내란 주범으로 몰아 탄핵한 아이러니의 진실이 하늘에 닿은 게 아닐까.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을 무너트리는 부정선거 발본색원이 12·3 계엄의 주목적임을 민심이 알아챈 것이다. 꽃샘추위가 가고 봄이 오면, 사람들이 오가는 작은 화단에 올해도 고통을 이겨낸 고운 장미가 활짝 필 것이다. 그때쯤, 우리나라도 탄핵이란 고통이 자유민주주의란 더 아름다운 꽃으로 다시 함빡 피어나고 말리라.

2025-02-10

비효율의 아름다움

글을 쓸 때 유튜브 플레이리스트 음악을 틀어놓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 날도 적당히 차분하면서도 감각적으로 보이는 제목을 플레이리스트를 하나 골랐다. 글이 잘 나오는 날이어서 집중을 하고 써내려가고 있는데, 뭔가 서늘한 감각이 들었다. 들리는 음악들이 형편없는 건 아닌데 뭔가 무미건조한 느낌. 굳이 비유를 하자면 맛이 나쁘지 않은 음식을 먹고 있는데 공기를 삼키는 듯 전혀 배가 부르지 않은 느낌. 누구의 음악들인지 확인을 하려고 플레이리스트 하단의 글을 봤더니 아뿔싸, ‘이 플레이리스트는 AI로 자동 생성된 음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라고 적혀있는 것이었다. 나는 한 사람의 음악 애호가로서 위기감을 느꼈다. 과거의 나는 어땠는가. 갖고 싶은 음반의 발매 날짜를 손꼽아 기다려 레코드 가게에 간다. 음반 한 장을 들고 집에 달려온다. 조그만한 라디오 데크에 CD나 테이프를 넣고 노래가 재생되길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침대에 누워 앨범 속지를 꼼꼼히 살피며 정성스레 음악을 들었다. 노래를 거의 다 외울 때까지 그것을 반복하곤 했던 시절이 생각났다. 그다음은 디지털 음원의 시대. 음반을 사서 뛰어오는 설렘과 속지를 읽는 재미는 없어졌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신중한 선곡을 통해 음악을 듣곤 했다. 그러다 그 선곡하는 행위마저 사라지고 만 것은 최근의 일이다. 타인들이 선곡해 놓은 플레이리스트들을 재생하곤 하다가 이제 그 시기마저 넘어 사람이 만들지도 않은 음악을 듣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인가. 나의 음악 듣는 방식은 비효율에서 효율로 나아가는 방향으로 변모해왔다. 음반을 사러 가는 물리적 번거로움을 제거하고, 노래를 고르는 생각의 번거로움을 제거하고, 급기야는 생산자들의 번거로움 마저 제거하는 방식으로 나아갔다. 내게 음악을 듣는 행위는 정신에 영양을 공급하는 행위. 그런데 오늘 나는 문득 이 행위가 더 이상 나의 정신에 그 어떤 영양도 제대로 공급해주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휴대폰으로 찍고 있는 사진들도 그렇다. 어릴 적 필름카메라로 찍었던 사진은 아직도 한 장 한 장 소중하게 보관되어 언젠가가 그리울 때면 언제든 그 시절의 냄새를 맡을 수 있도록 해 준다. 2000년대, 디지털 카메라 시절에 찍었던 사진들은 이리저리 뒤섞여 외장하드 한구석에 방치되어 있지만 어쨌거나 보존은 되어 있다. 그런데 그마저 골동품이 되고 휴대폰만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내게는 이제 어떤 사진이 남아 있는지, 어디에 어떤 시절들이 저장되어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교수님께서 수업시간에 해 주신 말씀이 있다. 홍수가 나면 마실 물이 없다고. 디지털의 홍수가 내게 준 것은 그야말로 정서적 갈증이었다. 나는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일단 물건을 샀다. 집에 물건을 늘리는 것 자체가 비효율적인 일이지만 그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을 듣기 위해 카세트테이프와 CD가 들어가는 중고 오디오 데크를 하나 장만했다. 그리고 카세트테이프 몇 개를 사서 듣기 시작했다. 그 옛날 음반을 사서 들을 때의 감각이 조금이나마 살아나는 것 같았다. 이후로는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 달라진 것 같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불편한 방식으로 음악을 다시 듣다보니 설령 스트리밍을 통해 디지털 음원을 듣는 때가 있더라도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질문하며 리스트를 고민하게 되곤 한다. 그렇게 그동안 휘발되기만 했던 음악들이 이제는 내게 조금씩 남아 머물게 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김오키, 모허, Neil Young, Michael Kiwanuka 등의 앨범이 최근에 그랬다. 내친 김에 필름카메라도 하나 장만했다. 1996년에 생산된 자동필름카메라.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것은 꽤 돈이 드는 일이다. 필름 값과 현상하고 스캔을 하는 값까지 생각해보면 셔터 한 번 누르는 데 몇 백 원이 드는 셈이다. 그러니 매순간 신중해지곤 하는 것이다. 숨을 참고 신중하게 셔터를 누르던 그 순간들이 한 장 한 장의 사진들 안에 고스란히 녹아있게 된다. 비싸고 불편하지만 이 역시 무언가를 남기기 위한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점점 촘촘해지고 시간은 점점 없어진다. 그래서 빠르고 효율적인 것을 선택하는 것이 보통은 유리한 선택이 되곤 하지만, 우리의 정신은 가끔 불편함을 요할 때가 있다. 편의점 도시락과 레토르트식품만으로 끼니를 때우는 것이 서글프듯이, 손수 지은 밥처럼 불편한 음악과 사진 같은 것들만이 채울 수 있는 부분들도 있는 것이다. 빠르고 효율적인 삶 속에 가끔 이러한 불편함을 추가해 보면 어떨까 주변에 추전하고 싶은 요즘이다.

2025-02-10

질문의 이유

상대를 알아가는 일은 마치 한 권의 책을 읽는 것과 같다. /언스플래쉬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무엇이든 묻게 된다. 어색한 침묵을 깨뜨리기 위함이거나 사회적 처세술로 비롯된 관성적인 행동일 수도 있다. 질문은 언제나 상대에 관해 더 알아가고 싶은 마음에서 기인한다. 상대와 시선을 맞춘다. 가깝지도, 그렇다고 아주 멀지도 않은 태도로 물음표를 건넨다. 그러니까… 당신은 무엇을 좋아하시나요? 여기서 ‘무엇’이라는 범주는 너무나도 방대해서 선뜻 대답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물론 취향이 확고한 사람은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이야기를 술술 풀어 놓을 수 있다. 대답 앞에서 조금 머뭇거리는 사람도 있겠다. 상대가 내어놓은 답은 놀라울 것이다. 타인의 발자국은 항상 예상치를 벗어나게 되어 있으니. 그의 시선이 닿은 세계가 모여 한 사람을 그리는 무늬가 된다. 낯선 상대는 어느 순간 형태를 갖추고 내 안에 안착하게 된다. 나 역시 그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고고한 감식안을 뽐내며 근사한 이야기를 내어주고 싶지만, 내 삶을 구성하는 것은 하나같이 진부하고 소소한 것뿐이다. 세련된 물건으로 가득 찬 가게보단 아무렇게나 방치된 숲이 좋고 떠들썩한 자리보단 홀로 보내는 쓸쓸한 새벽이 편안하다. 힘차게 발을 구르는 날보다 빈둥거리는 시간을 더 사랑하며 재미없고 촌스러운 것에 쉽게 매료된다.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있기에 작가나 책에 관한 질문을 받기도 한다. 아직 읽지 않은 책에 관해 답하는 것은 간단하지만, 이미 알고 있는 작품에 관한 이야기는 어쩐지 망설이게 된다. 잠시 뒤로 물러나 한 번 더 생각할 때도 있다. “그 작가를 좋아하세요?” 그와 같은 질문은 평단의 평가나 대중의 시선 따위를 묻는 것이 아니다. 호오는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이기에 명확한 답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주인공 폴은 그녀를 열렬히 사모하는 시몽에게서 편지를 받는다. “오늘 6시에 플레옐 홀에서 아주 좋은 연주회가 있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녀가 미소 짓게 되는 것은 그의 뜻밖의 질문 때문이다. “브람스를 좋아세요?” 이토록 간단한 질문은 그녀를 치열한 고민 속으로 데려다 놓는다. 자신이 좋아하는 영역이 무엇인지, 좋아하는 것애 관해 생각하는 일을 언제부터 멈추게 되었는지. 폴은 의문한다. “그런데 그녀는 과연 브람스를 좋아하던가?” 폴은 스스로를 이미 너무 많이 늙어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녀에게 열정이란 이미 사라진지 오래고 애인은 그녀를 방치하다시피 하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하는 청년, 시몽의 등장과 함께 그녀는 완전히 다른 세계로 나아간다. 그의 과감함,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는 폭발적인 에너지를 경험한다. 폴은 시몽의 편지를 받고 생각한다. “그 짧은 질문이 그녀에게는 갑자기 거대한 망각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겨졌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답을 내어놓는다. “내가 브람스를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생각의 분투 끝에 다다른 ‘모르겠다’는 결론은 절대 가볍지만은 않다. 그리고 그에게서 돌아오는 말은 매우 심플하다. “저는 당신이 오실지 안 오실지 확신할 수 없었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당신이 브람스를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제겐 큰 상관이 없어요.”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그는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기 위해 질문을 던진 것이다. 하지만 그 질문은 그녀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스스로에 관해 생각하게 했기 때문이다. 당연한 일이다. 언제나 그렇다. 자기 자신을 아는 일이 가장 어렵다. 시몽의 마음을 확인한 폴은 자신의 애인에게 이런 말을 꺼낸다. “내가 브람스를 좋아하는지 어떤지 더 이상 알 수가 없더라고. 믿어져? 내가 브람스를 좋아하는지 어떤지 더 이상 알 수도 없다는 게.” 그는 브람스 얘기는 집어치우라고 말하지만, 폴은 고개를 젓는다. “하지만 이건 브람스에 관한 얘긴걸.” 중요한 것은 브람스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브람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상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에 괴로움을 느끼는지. 그러한 질문에서부터 많은 것이 시작된다. 애정과 연민, 사랑과 이별까지도. 상대를 알아가는 일은 마치 한 권의 책을 읽는 것과 같다. 마지막 장을 덮어도 마침표보단 물음표가 남는다. 그 어려운 영역을 끝끝내 더듬겠다는 의지, 희미하게 보이는 윤곽을 붙잡는 노력이 우리를 가깝게 만든다. 질문의 이유는 그런 것이다. 새로운 관계의 시작이 될 수 있다.

2025-02-10

서울구치소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지금 서울구치소는 서울에 있지 않다. 의왕에서 성남 가는 방향에 있다. 옛날에는 경성감옥이라 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서대문형무소라 했다. 8·15 해방 후에 서울형무소라 했다. 1967년에 서울구치소로 바뀌었어도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에 계속 있었다. 1987년 11월 15일에 지금의 의왕시 포일동으로 이전했다. 나는 1984년에 대학에 입학했다. 그때는 제5공화국 시절이다. 2학년이던 1985년 11월 18일 아침 8시, 서울 시내 14개 대학 학생 191명의 한 사람으로 민정당 정치 연수원 3층 건물에 들어갔다. 점거농성이었다. 학생들은 건물 안의 책상 등 집기들을 가져다 옥상으로 통하는 철문에 바리케이트를 쳤다. 경찰 진입에 대비한 것이었다. 불이 잠깐 났던 것도 같은데, 위험하다고들 하며 금방 꺼버렸다. 관련 기사는, 소방차 여덟 대가 출동해 옥상의 학생들에게 물을 뿌렸고, 2,100여 명의 정사복 경찰들이 투입되었다고 했다. 옥상 철문을 사이에 두고 대치했던 여섯 시간 반의 농성은 경찰 ‘백골단’이 옥상 철문을 절단하고, 학생들을 한쪽으로 내몰아 몽둥이로 두드리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그날 하늘에 헬리콥터가 떠 있었다. 부모님들이 걱정한다고, 농성을 풀라고, 선무방송을 했다. 그때 학생들은 ‘점거 농성’을 ‘자살택’이라고 불렀다.‘자살’이란 체포를 면할 길 없음을 의미했다. ‘택’이란 ‘전술’을 뜻하는 ‘tactic’의 앞글자에서 따온 것이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체포, 연행된 학생들은 각기 소속된 대학 근처의 경찰서로 옮겨졌다. 나는 관악경찰서로 옮겨져 조사를 받았다. 저녁 여섯 시가 조금 지났을까, 담당 형사가 “전원 구속”이라며, 손에 수갑을 채웠다. 그 ‘전원 구속’이라는 말이 머릿속에 선명히 각인되었다. 지난번 서부지법 사태가 날 때까지 꼭 그런 줄만 알았다. 서부지법에 진입한 청년들을 “전원 구속”한다는 말을 듣고서야, 인터넷을 뒤졌다. 실제 구속자는 82명에 ‘불과’했다. 나는 ‘선별’된 82명 중의 한 사람이었고, 그나마 기소유예로 풀려날 수 있었다. 그때 3년형인가를 받은, 같은 과 선배의 모습을 지금 가슴 아프게 기억한다. 대학 2학년생, 서울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던 때였다. 열흘을 관악경찰서 유치장에서 보내고, 서울구치소라는 곳으로 옮겨졌다. 그곳이 어디에 어떻게 붙어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현저동에 있던, 지금의 의왕으로 옮겨지기 직전의 서울구치소에서 열흘을 보냈다. 나머지 열흘은 의정부교도소로 보내졌다. 이렇게 열흘씩을 법무부 교도 행정을 ‘속성 이수’한 끝에 다시 사회로 내보내졌다. 사십 년이 흐른 지금, 불법체포, 불법구속에 항거한 청년들이 ‘폭력시위’ 죄목으로 ‘전원 구속’이라 한다. 부정선거를 밝히려고 계엄령을 선포한 대통령은 누명을 쓰고 서울구치소에 갇혀 있다. 그 청년들의 미래를, 나라의 안위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힘겹게 독재와 싸워 얻은 ‘87년 체제’가 위기에 처한 것이다. ‘부정선거’가 ‘87년 체제’의 국민주권 원리를 질식시키고 있는 것이다.

2025-02-10

밥 짓는 연기 사라진 한국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귀한 손님이 오면 커다란 밥그릇 가득 고봉밥을 담아 고깃국과 함께 내어주는 게 가장 융숭한 대접이던 시절이 있었다. 불과 30~40년 전 이야기다. 20세기 한국인의 주식은 누가 뭐라 해도 ‘쌀’이고, 쌀로 만든 ‘밥’이었다. 하지만, 세상이 변했다. 그에 따라 식습관과 선호하는 먹을거리 역시 달라졌다. MZ세대는 아침밥을 포기하고, 간단한 시리얼이나 과일을 먹으며 등교나 출근을 준비한다. 독거세대가 늘어나며 아예 아침을 거르는 이들도 부지기수. 당연지사 쌀의 소비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를 보여주는 통계가 최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나왔다. 이 연구원의 조사에 의하면 올해 식량용 쌀 소비량은 273만t으로 예측된다. 쌀 소비는 갈수록 줄어들 게 명약관화해 보인다. 내년에는 269만t으로 떨어지고, 2030년엔 253만t, 2035년이 되면 233만t으로 감소될 것이라는 게 연구원의 전망. 해마다 큰 낙폭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1인 가구의 증가는 밥 짓고, 먹는 풍경도 바뀌게 만들었다. ‘20세기 고향 풍경’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 있었다. 집집마다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철수야, 그만 놀고 들어와 밥 먹어”라고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는 이미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어머니의 가마솥밥을 대신하는 건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는 ‘즉석밥’이다. 즉석밥의 시장 규모는 해마다 커지고 있다. 국민 1인당 평균 식량용 쌀 소비량은 현재 55.8㎏. 30년 전인 1994년 소비량 120.5㎏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못 미친다. 상황이 이러하니 중년 이상 세대들에겐 밥 짓는 연기조차 아련한 그리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2-10

경북도민 역외 진료비 전국 최고, 대책은 없나

정부의 지방의료 육성 정책에도 지방환자의 수도권 쏠림 현상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의하면 지난해 기준으로 지방에 거주하는 중증·암환자들의 서울 소재 의료기관 이용이 연간 11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폐암, 간암, 위암 등 주요 암의 경우 지방거주 환자의 40% 이상이 서울 소재 상급종합병원에서 치료받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한다. 이는 5년 전보다 15%가 늘어난 수치라고 하니 정부의 지방의료기관 육성책 발표와 별개로 지방의 환자들은 여전히 수도권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도 지역 의료체계의 완결성을 높이기 위해 지역거점병원과 국립대병원을 서울의 빅5 수준으로 육성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권역별로 3년간 최대 500억원 지원하고 지역인재 의대 전형비율을 현재 40%에서 대폭 확대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의정갈등이 1년 이상 끌고 있는 탓도 있으나 지방의 환자들은 피부로 느낄만큼 지방의 의료수준이 달라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중소도시와 농촌지역이 많은 경북은 외지 진료 비중이 더 심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경북지역 주민이 치료를 위해 1년간(2023년) 타지에서 지출한 의료비가 무려 2조4380억원이다. 경북은 대구, 부산, 경남, 울산 등 경상권 권역에서 타지 의료기관 지급 진료비 비중이 36.5%로 가장 높다. 시군별로 보면 도서 지역인 울릉군이 86.6%로 가장 높았고, 영양군과 청송군이 80%를 상회했다. 정부가 밝힌 지역거점병원 육성이 시급히 이뤄지지 않는 한 환자의 수도권 쏠림은 당분간 해소되기 어렵다. 문제는 환자의 수도권 쏠림과 동시에 지역자본의 역외유출도 심화된다는 사실이다. 환자의 역외 쏠림이 지역경제 활성화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노령화가 되는 미래에는 더 심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역소재 의료기관의 경쟁력 강화와 지역거점병원 육성 정책이 서둘러 마련돼야 하는 이유다. 경북의 경우 포스텍의 연구중심 의대 설립과 국립안동대 의과대 신설 등이 이런 문제를 해소하는 한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2025-02-10

TK에서는 왜 ‘지방의원 후원회’ 저조할까

지난해부터 지방의원도 국회의원처럼 후원회 개설이 가능해졌지만, 대구·경북지역 지방의회에서는 실적이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의원 정치후원금 제도는 지난해 7월 1일부터 도입됐다. 지방의원들이 합법적으로 정치자금을 확보하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연간 모금 한도는 광역의원 5000만원, 기초의원 3000만원이며 선거가 있는 해는 두 배까지 가능하다. 나라살림연구소가 지난 9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광역·기초의회를 통틀어 대구지역(161명)은 후원회를 개설한 의원이 전혀 없었고, 경북은 341명 중 3명(경북도의원 2명, 구미시의원 1명)만 후원회를 개설했다. 전국적으로는 지방의원 3865명 중 354명(9.2%)이 후원회를 두고 있다. 광역의회는 전북도의회가 개설률 37.5%로 1위를 기록했고, 서울시의회 30.4%, 경기도의회 28.8%, 전남도의회 26.2%, 인천시의회 25% 순이었다. 기초의회는 2988명의 의원 중 180명(6%)이 후원회를 개설했다. 수도권과 호남지역을 제외하고 지방의원들이 후원회제도를 외면하는 이유는 ‘비용부담’ 탓이 크다. 후원금을 받더라도 사무실 유지비용과 직원 인건비를 충당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장기화된 경기 침체로 주민들에게 손을 벌리는 것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후원회 설립절차가 복잡한 것도 문제다. 후원회 등록신청, 회계책임자 신고 등이 까다롭고 후원회를 설립한다 해도 정치자금 수입·지출 절차, 회계보고서 작성과 제출 방법 등이 어려워 지레 포기를 한다는 것이다. 지방시대의 중심에는 지방의원들이 있다. 지방의원들의 입법 활동과 예산 심의, 집행부 감사 등은 생활정치를 정착시키는데 핵심적 역할을 한다. 후원회 제도는 재력은 없지만 역량 있는 청년들이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순기능도 있다. 나라살림연구소가 지적했듯이, 선관위를 중심으로 후원금 회계프로그램 사용법과 기부금 사용방법, 사례 교육 등을 통해 지방의원들이 후원회제도를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025-02-10

퍼즐

우리는 저마다의 조각을 손에 쥐고 살아간다. 어떤 조각은 금세 자리를 찾아가지만 어떤 조각은 어디에 끼워야 할지 몰라 한참을 헤매기도 한다. 때때로 맞지 않는 조각을 억지로 끼워 넣으려 하다가 뒤엉켜 버리는 순간도 있다. 결국 모든 조각은 저마다의 자리가 있음을 자각한다. 어린 시절 색색의 조각들이 흩어져 있다가 하나둘 맞춰지며 선명한 그림이 되어가는 퍼즐 맞추기를 좋아했다. 어른이 된 지금도 퍼즐 한 조각을 들고 침침해져 가는 눈으로 끼워넣고 있을 때가 많다. 어린 시절 단순한 놀이처럼 여겼던 퍼즐이 이제는 삶의 은유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수많은 조각이 흩어진 채 시작되지만 차근차근 맞춰 가다 보면 선명한 그림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이 우리의 인생과 닮아있다. 삶의 조각들은 내가 원하는 순서대로 주어지지 않았다. 어떤 날은 순조로웠고 계획했던 일들이 잘 진행되어 조각이 맞아떨어지는 쾌감을 느낀 순간들도 있었지만 애써 끼워 넣은 조각이 어긋나고 방향을 잘못 잡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때도 있었다. 내 삶의 조각은 언제나 하나가 빠져 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맡아야 할 가장의 자리에 엄마가 있었고 집 안의 엄마 자리는 늘 부재중이었다. 기형도 시인의 ‘엄마 생각’이라는 시에 나오는 시구처럼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난 늘 엄마를 기다리는 자리에서 하루를 보냈다. 하교하는 길에 소낙비가 내려도 내게 우산을 가져다주는 보호자는 없었다. 내 삶의 퍼즐은 완성되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그 빈 공간이 못 견디게 신경 쓰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그 조각 하나가 없는 모습 그대로가 나름의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완벽할 필요는 없었고, 때로는 빠진 조각 하나의 이야기로 의미가 짙어지기도 했다. 빠진 조각을 찾기 위해 나의 여정은 더 단단해졌다. 처음에는 그것이 사라진 채로 남겨지는 것이 두려웠다. 하지만 조각을 찾으려는 과정에서 나는 인내하는 법을 배웠고, 쉽게 포기하지 않는 법을 익혔다. 때로는 엉뚱한 곳에서 실마리를 찾기도 했고 예상치 못한 장애물 앞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단순히 조각 하나를 찾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더 깊이 이해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을 찾기 위해 걸어온 모든 과정 속에서 자신이 성장해 갔던 것은 아닐까. 김경아 작가 누군가에 기대어 해결책을 찾기보다는 스스로 답을 찾아내고 책임지는 사람이 되어갔다. 미완의 조각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스스로가 그 퍼즐의 마지막 한 조각이 되어 가기 위해 뾰족한 부분은 깎아내고, 네모진 부분은 둥글게 다듬으며 점점 독립적인 자아로 성장했다. 어쩌면 퍼즐은 처음부터 미완성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모든 조각이 완벽하게 맞춰져야만 그림이 완성된다고 믿지만 사실 인생이라는 퍼즐에는 처음부터 빈 공간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면 깨닫게 된다. 빈틈이 있다고 해서 그 그림이 불완전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오히려 그 여백이 우리를 더 성장하게 만들고 새로운 조각을 채울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준다는 것을. 결국 중요한 것은 모든 조각이 다 맞춰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과정 속에서 무엇을 배우고 의미 있는 한 조각을 발견하는가일지도 모른다. 비어 있는 퍼즐판을 바라본다. 몇몇 조각은 이미 제자리를 찾아가 또렷한 그림을 이루었지만 아직 맞춰지지 않은 빈 공간들을 끝까지 다 맞출 수 있을까 불안해지기도 하지만 이제는 그 빈자리조차 하나의 계단임을 안다. 언젠가 알맞은 조각들이 자연스럽게 제자리를 찾을 것이고 설령 몇 개의 조각이 끝내 남더라도 그것이 곧 나만의 그림으로 남을 것이다. 조급해하지 않고 조용히 다음 조각을 맞출 순간을 기다린다. /김경아 작가

2025-02-10

발칸반도 민족주의 ③민족주의 파괴력

연이어 터진 제2차 세계대전은 또 한 번 발칸반도를 아귀지옥으로 변하게 했다. 인류전쟁사에 정점(?)을 찍는 폭력이 일어나면서 발칸은 또 피투성이가 되어야 했다. 히틀러는 민족주의는 필연적으로 폭력을 부른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이어서 살육의 역사는 여전히 진행형이라며 ‘지구 화약고’란 불명예스러운 수식어가 따른다. “보스니아 분쟁은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조직적이자, 힘과 힘이 충돌한 필연적 사건이었다.” 1993년 영국 수상 존 메이저가 한 말이다. 하긴 발칸반도와 인류전체 폭력으로 점철된 역사를 두고 비교해보았을 때 발칸반도 학살은 그다지 특별하지도, 별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벌어진 타인종, 타민족에 대한 적개심과 우리민족이라는 우월성이 빚어낸 학살, 무고한 사람을 대상으로 자행한 고도화된 폭력이었다. 한 나라에 다양한 민족이 뒤섞여 살아가는 곳에서는 내 뜻에 반하는 세력이 있는 이상 필연적으로 폭력이 동반된다. 국제질서는 말보다 주먹이 앞선다는 말이 어쩌면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일단은 두들겨 패고 시작하기 때문이다. 발칸반도에서 상대적으로 인구 비율이 높은 민족은 전 지역에 걸쳐 살아가고 있다. 그곳에서 자신의 뿌리인 본국(예를 들어 세르비아 같은)의 지원을 얻어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예를 들어 보스니아)에서 독립을 외치며 분쟁을 일삼는다면 이를 어찌해야 하는가. 한 민족이 각기 다른 나라에 갈려 살면서 그곳에서 독립을 요구해보라. 기막힌 노릇이 아닐까. 우리나라 인천, 혹은 제주도에 일본인들, 혹은 중국인들이 떼로 몰려 살면서 스스로 독립국가를 만든다고 생각해보면 금방 이해가 될 것이다.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것도 본국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말이다. 발칸반도에는 가능하다고 믿은 사람들이 존재했다. 그러자 그들 스스로 발칸반도 맹주를 자처하면서 타 인종에 대한 살육과 폭력이 정의로 포장되는 악의 고리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그들만의 민족은 광기에 휩싸인 지도자를 중심으로 자가발전해 자긍심을 불어넣기에 여념이 없었다. 타 민족보다 우월하다는 상승기류에 대항하는 자는 민족의 반역자로 일순간에 내몰리고 자연적으로 배타적, 적대적일 수밖에 없는 판이 짜인다. 더구나 같은 민족이면서 본적도 만져본 일도 없는, 과학적으로 증명할 방법도 없는 종교가 다른 경우에는 할 말을 잊게 한다. 21세기에도 다르지 않다. 로마인의 후손이라는 대루마니아주의와 슬라브족 첫 제국을 건설했다는 대불가리아주의는 오랜 갈등으로 늘 반대편에서 총칼을 들이댄 맞수이자 관객의 입장에선 폭력의 세트다. 발칸반도 동남부를 대표하는 대세르비아주의야 말할 것도 없다. 코소보 인종청소 주역들이니 말이다. 나토의 코소보 공습으로 해결된 듯하지만, 세르비아에 의해 저질러진 코소보 내 알바니아인들에 대한 학살은 여전히 살얼음판이다. 그리고 또 하나 불안한 산맥 크로아티아 민족주의는 스스로 발칸반도에서 가장 위대하고도 부유한 나라이자, 그만큼 뛰어난 민족이라는 자긍심으로 가득 차 있다. 나라 이름에서 보듯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말이 한 국가이지 한 지붕 세 가족이 험악한 인상으로 으르렁거리는 형국이다. 이 외에도 동방정교와 로마가톨릭, 이슬람 등의 종교 갈등은 또 어떻게 봉합할 것인지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글쎄…. 민족과 종교와 영토분쟁에 문화적 자존심이 걸린 이들의 조각보 같은 반도의 미래를 신인들 알까? 안다면 1천 년 전에 해결했겠지만 말이다. 민족이란 유기체는 어떤 사건과 역사를 체험하고 공유하느냐에 따라 개념이 포괄적으로 변할 수 있다. 사상은 물론 생각의 공유에 따라 민족을 구분할 수도 있다. 한반도 한민족이라는 우리가 느끼는 자부심처럼 민족주의가 마치 고대국가 혹은 중세 때부터 시작되어 우리의 정신세계를 지배했을 것이라는 무지막지한 착각은 배타적 민족주의의 시발점이다. 울릉도에서 태어나 한 번도 섬을 벗어난 적 없는 할아버지와 흑산도 할머니 대화가 원활하게 이루어질 것 같지만, 사투리로 무장되었다면 소통에 애를 먹을 것이 자명한 일이다. 박필우 작가 하긴 북한과 일본이 전쟁이 나면 어딜 도울 것이냐의 물음에 일본이라고 답하는 이들이 필자의 주위에 태반이 넘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민족이 빨갱이보다 하수가 분명하다. 비약하면 아래로부터 단 한 번도 민중항쟁이 일어나지 않은, 말 잘 듣는 착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민족 일본이란 나라도 있다. 단언컨대 착한 백성, 그것이 바로 사무라이 정신이다. 죽음에 떠밀려도 감동의 눈물로 기꺼이 죽음을 택하는 순종의 미학 말이다. 나는 정치에 관심도 없지만, 작금의 대한민국 상황을 보며 떠오르는 말이 있어 끝으로 맺는다. “어떤 이는 가는 곳마다 행복을 만들지만, 어떤 이들은 떠날 때마다 행복을 만들어낸다” - 오스카 와일드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5-02-10

이재명 대표의 적은 이재명이다

김진국 고문 국민의힘이 기세다. 6일 발표한 전국지표조사(NBS)에서 국민의힘 지지도가 39%, 더불어민주당이 37%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내란 혐의로 탄핵 소추당한 대통령이 소속된 정당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는 대통령은 물론 새누리당 지지율도 한 자릿수로 추락했다. 이어진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 국회의원 선거까지 내리 참패했다. 그런데 ‘친윤’(친 윤석열)은 기세다. 심지어 이달 초 윤 대통령 지지율이 51%인 여론조사까지 나와 논란이 됐다. 윤 대통령 지지율은 대개 20%대를 저공비행하다 비상계엄 직후 10%대까지 떨어졌다. 그런데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상승하는 이상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의원들이 면회하려고 줄을 서 있다. 지난 3일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 나경원 의원에 이어 7일 윤상현·김민전 의원이 면회했다. 10일에는 김기현 전 대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이철규 의원 등 국민의힘 의원 5명이 찾아간다. 같은 NBS 조사에서 탄핵을 인용해야 한다는 의견(55%)이 기각해야 한다는 의견(40%)보다 많다.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는 의견(50%)도 재창출해야 한다는 의견(41%)보다 많다. 비상계엄에 대해 여전히 비판 여론이 더 높다. 비상계엄을 지지하는 여론으로 뒤집어진 건 아니다. 비상계엄은 온 국민이 눈으로 지켜봤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친위쿠데타’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비상계엄이 실패로 끝난 뒤 ‘차기 정권은 민주당 것’이라고 당연시했다. 그런데 지난달부터 여론이 묘하다. 이재명 대표 지지율이 뜨지 않는다. 대체로 ‘정권교체’ 의견이 50% 근처라면, 민주당 지지율은 40% 정도, 이 대표 지지율은 30% 근처다. 정권이 바뀌긴 해야 하는데, 민주당이 마음에 들지 않고, 이 대표는 더 싫다는 뜻이다. 지난 대선은 비호감 경쟁이었다. 윤석열 후보 지지가 많은 게 아니라, 이 후보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 이제 윤 대통령은 물러날 사람이다. 중요한 것은 차기 대통령 후보다. 여론조사에 이상 조짐이 보이는 건 이 대표 책임이다. ‘이재명 포비아(공포)’라고 한다. 보수세력에 이 대표 집권은 공포다. 지난 총선 공천 때 적대 세력을 얼마나 무식하고 잔인하게 짓밟을 수 있는지 보여줬다. 비상계엄은 해제됐다. ‘이재명 포비아’는 다가오는 두려움이다. 사법 리스크를 모면하려는 이 대표의 꼼수도 ‘신 스틸러’다. 이 대표 재판과 윤 대통령 탄핵이 시간 경쟁을 벌인다. 이 대표는 확정판결로 피선거권을 잃기 전에 탄핵하고, 대통령 선거에 들어가야 한다. 일단 선거가 시작되면 처벌이 어려울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도 당선되자 검찰이 기소를 철회했다. 그러니 보수층 유권자는 탄핵보다 이 대표 재판을 먼저 끝나야 한다고 매달린다. 탄핵하더라도 당장은 지연시켜야 이 대표 출마를 막을 수 있다고 믿는다. 결국 탄핵 반대 여론을 자극하는 게 이 대표다. 이 대표는 선거법 1심 재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선거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받으면 10년간 공직을 맡을 수 없다. 당연히 대통령선거에도 출마하지 못한다. 6-3-3원칙(1심 6개월, 2심 3개월, 3심 3개월)에 따라 2023년 9월 끝났을 재판이다. 이 대표의 지연 전략 탓에 아직도 2심이다. 그런데 이 대표는 4일 선거법의 허위사실공표죄를 위헌이라고 제소했다. 2021년 헌재가 재판관 전원 일치로 합헌 결정한 조항이다. 누가 봐도 지연 꼼수다. 그는 항소심 통지서 수령도 계속 회피했다. 변호인 선임을 두 달 이상 끌었다. 추가 증인도 13명이나 신청했다. 일부 민주당 의원은 아예 이 법률 조항을 없애는 개정을 추진한다. 이 재판만이 아니다. 대장동 재판에서도 대부분의 증거에 부동의하고, 증인 148명을 법정에서 모두 다시 심문하도록 했다. 재판이 빨리 진행되면 이 대표가 유죄 판결을 피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는 방증이다. 윤 대통령의 관저 칩거와 어쩌면 그렇게 닮았나. 정치인이 민심을 얻지 못하면 모두 잃는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2-09

대구시 공공공사 발주, 경기부양 효과 나오길

지난 3일 동북지방통계청이 발표한 12월 대구경북산업활동 동향에 따르면 대구지역 건설 수주액은 2408억원으로 집계됐다. 국내 건설공사 총 수주액의 겨우 1.0%다. 대구지역 건설업계의 건설공사 수주 규모가 전국 1% 수준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물론 12월 실적만으로 전체를 평가할 수 없지만 대구 경제의 전국 비중에 비해서도 턱없이 못 미치는 결과다. 전년동기 수주액(8808억원)과 비교해도 72%가 급감한 수치다. 통계청은 재건축 주택, 신규주택, 학교, 병원 등 민간부문 공사가 저조했던 것이 원인으로 분석했다. 대구 지역 부동산 경기는 수년째 동면 상태다. 건설경기를 뒷받침하는 부동산 시장이 침체에 빠져 있으니 건설경기가 좋을 리 없다. 게다가 고물가, 고금리, 원자재 및 인건비 상승 등으로 건설업계의 유동성이 압박을 받고 있다. 국토교통부와 한국부동산원 자료에 따르면 대구지역 미분양 주택은 8000가구가 넘으며 집값은 전국에서 가장 많이 떨어졌다. 지금 상태가 지속된다면 건설 관련 산업 전반이 무너질지 모른다. 대구시가 연초부터 대형 공공건설공사 조기 발주를 서두르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대구시는 지난주 대형 공공공사 발주 계획 설명회를 열었다. 100억원 이상의 대규모 공사에 대해서는 계획단계에서부터 지역건설업계에게 추진계획, 발주시기 등의 정보를 알려주고 그들이 공사를 수주하는데 도움을 주기로 했다. 특히 공공건설공사에서 지역제한 입찰이나 지역의무 공동도급 우선시행 등 지역업체 보호방안을 이행하도록 발주처를 독려했다. 이 조치와 관련 홍준표 대구시장은 “수주 가뭄을 겪는 건설업계의 시름이 조금이나마 해소됐으면 한다”며 대구시 공사 발주가 건설경기 회복의 마중물이 되길 희망했다. 어려움을 겪던 건설업계에게는 단비같은 소식이다. 특히 건설업계의 의견을 청취해 지역 업체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도록 행정이 앞장서겠다고 하니 기대감도 크다. 지금은 국가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다. 지방정부와 지역경제가 힘을 모아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나가야 한다.

2025-02-09

시추 한번으로 “석유없다”… 성급하지 않나

포항 영일만 앞바다 가스전 개발사업(대왕고래 프로젝트)의 첫 탐사시추에서 기대했던 수준의 석유·가스가 확인되지 않으면서 후폭풍이 거세다. 정부는 첫 시추공 주변의 다른 6개 유망구조에 석유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며 추가 시추를 이어나가겠다는 방침이지만, 민주당은 프로젝트 자체가 사기극이라며 책임을 묻겠다는 태세다. 정부는 지난 6일 “시추결과 가스의 징후는 발견했으나 경제성을 확보할 수준은 아니었다”며 사실상 대왕고래 프로젝트가 물거품이 된 것처럼 발표했다가, 하루 뒤인 7일에는 “가스의 징후가 좀 있다. 후속 탐사를 충분히 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본다”며 말을 바꿨다. 정부의 이런 갈팡질팡하는 태도를 두고, 국민의힘에선 관련 공무원들이 야당 눈치를 보면서 성급하게 프로젝트 무산 발표를 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전문가 의견을 종합해보면, 세계 어느 나라든 첫 시추에서 유전이 발견되는 케이스는 없다는 게 중론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선 세계 최대 규모인 남미 가이아나 유전은 14번째, 노르웨이의 에코피스크 유전은 33번 만에 시추에 성공했다는 자료를 내놨다. 대부분 해외 유전 개발 사업들은 시추를 거듭하면서 확보한 시료를 분석해 성공률을 계속 높여간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권영세 비대위원장이 “한 번 시추해 봤는데 바로 석유가 나오면 산유국이 안 되는 나라가 어디 있겠나”라고 한 말에 공감이 간다. 첫 시추공에서 석유가 나오지 않아 아쉽긴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 성공률이 20%에 달한다는 것은 탐사 시추를 포기할 수 없는 확률이다. 정부와 석유공사가 지난해 6월 첫 시추를 시작할 때도 최소 5번의 시추공을 뚫겠다는 전제가 있었다. 대왕고래 프로젝트는 변변한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의 에너지 자립을 위해 손바닥 뒤집듯 쉽게 접을 수 있는 사업이 아니다. 국운이 걸린 자원개발이 정쟁에 발목이 잡혀 무산되는 것은 후손에게 죄를 짓는 행위다. 정부와 석유공사는 긴 안목으로 시추작업을 진행해야 하고, 정치권은 추경예산 편성을 통해 이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

2025-02-09

그래도 봄은 오리라!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며칠째 입춘 한파가 사납게 몰아치고 있다. 마당에서 장작을 패다가 세차게 몰아닥치는 바람 등쌀에 몸을 움츠리게 된다. 이 많은 바람은 어디서 불어오는 것일까, 생각한다. 크고 작은 낙엽과 비닐 쪼가리, 몸통 잃은 감꼭지까지 하늘을 향해 날아오른다. 동쪽과 서쪽으로 날아가는 기러기 무리가 힘에 겨운 듯 구슬픈 울음소리를 터트리곤 한다.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는 가장 추운 시기를 설 이후라 여겼다. ‘논어’에서는 이것을 ‘세한(歲寒)’이라 기록한다. “한겨울이 되어서야 비로소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알겠노라. (歲寒然後知松栢之後凋)” 1840년 안동 김씨의 득세로 졸지에 제주 대정으로 유배 가야 했던 추사 김정희는 이 구절에 착안하여 1844년 ‘세한도’를 그려 이상적(李尙迪)에게 선물한다. 풍양조씨가 조정을 주물렀을 때 추사는 이조판서로 재직하여 문전성시를 경험한다. 하되 세상인심은 아침저녁으로 달라지는 법. 대정에서 위리안치(圍籬安置) 귀양살이로 고초를 겪자 그를 찾아오는 개미 한 마리 없었다. 그러던 차 중인(中人) 출신 역관이자 제자 우선(藕船) 이상적이 책을 바리바리 챙겨 천릿길을 달려오자 그에 감읍한 추사가 완성한 명화가 ‘세한도’다. 입춘 한파를 겪으면서 날짜를 헤아리니 1월 29일 설 지난 지 어언 열이틀 지났다. 그래서 세한 추위라 말한다 해도 그다지 그르지 않을 성싶다. 이번 추위가 닥치기 전에 썩어 내려앉은 마루를 수리하고, 너덜너덜해진 담장을 고치고, 지저분한 뒷마당을 산뜻하게 단장했다. 설맞이 행사로 생각하여 지출과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하여 말끔한 2월과 만난 것이다. 어느 틈엔가 히아신스 초록초록한 새싹이 고개 내밀고 있기로 적잖게 놀랐다. 아니, 이런 무지막지한 날씨에 봄맞이를 이렇게 서두르다니, 한탄이 절로 나온다. 히아신스를 사진에 담고, 작년에 잘라낸 잔디로 녀석을 덮어주었다. 그런 와중에도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앞에 자리한 홍매(紅梅)에는 어느새 몇몇 꽃망울이 하늘을 향해 몸을 열었다고 한다. 지난 12월 3일 이후 지금까지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다. 청통 와촌에 사는 선배 교수가 집안일을 도와달라 청했기로 유쾌한 노동과 흐뭇한 점심 밥상 앞에서도 그리 유쾌하지 않다. 가슴 깊은 곳에 무엇인가 묵직하고 답답하게 터를 잡고 앉아서 24시간 내내 찍어 누르는 기분이다. 그런 연유로 누구와 만나더라도 흔쾌하거나 상큼하지 않고 뭔가 엉키는 것이다. 인간 내면에 견고하게 똬리를 틀고 있는 탐욕과 어리석음, 비루함과 난잡함, 끈적거림과 추잡함 같은 것이 우리 국민을 공격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무엇이 저 인간을 저토록 추악한 타락과 방종의 나락으로 인도하고 있을까, 생각한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보고 들은 그 날밤의 날벼락 같은 ‘비상계엄’과 ‘포고령’을 낱낱이 기억한다. 얼마나 많은 시민이 거리에서 광장에서 지하철에서 매서운 추위와 칼바람과 눈더미를 견디며 탄핵과 구속을 외쳤는가?! 그자는 재판정에서 치사하고 비루한 변명으로 일관하면서 구명도생을 꿈꾸지만, 우리는 화사하고 아름다운 봄을 기다리고 있다. 봄은 끝내 오고야 말리라!

2025-02-09

짠테크 시대

우정구 논설위원 ‘짜다’와 ‘재테크’가 합쳐진 ‘짠테크’ 바람이 분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불경기가 장기화되고 MZ세대와 직장인의 지출이 줄면서 소비 패턴에도 변화가 일고 있는 것이다. 과거 기성세대가 무조건 안 쓰고 안 먹던 방법으로 절약했던 것과는 다르다. 요즘 신세대는 쓸 것은 쓰되 알뜰하게 쓰는 방법을 선택하는데, 그것이 짠테크다. 이 흐름이 새로운 소비패턴으로 자리를 잡을 지 아니면 일시적 흐름에 그칠 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불황으로 소비패턴에 변화가 온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요즘 젊은이가 많이 찾는 온라인의 짠카페 방에는 자신만의 절약 필살기가 자주 등장한다. 금리가 좋은 짠테크 통장을 소개하기도 하고 자동차 기름 절약하는 방법, 싼 제품 제대로 구입하기 등 자신이 경험한 짠테크 방법을 공유하는 글들이 많이 올라 온다. 또 요즘 젊은이들은 10여 년 전부터 유행했던 가성비(價性比)를 소비선택의 주요 포인트로 삼는다. 호주머니 사정이 악화되면서 가격 대비 성능 좋은 상품을 골라 찾는 알뜰소비로 바뀌는 것이다. 전 제품 5000원 이하의 가격을 고수하는 다이소 매장을 찾는 이가 늘어난 것은 이런 변화의 반증이다. 특히 다이소 매장에 등장한 저가 화장품이 소비비자의 인기를 모으면서 편의점에서도 3000원짜리 저가 화장품이 등장하는 이색적 현상도 빚어졌다. 짠테크의 본뜻은 안 쓰겠다는 것보다 불필요한 낭비를 최소화해 재화를 모으는 것이다. 명품 매장에 줄서지 않고 경기변화에 잘 적응하는 신세대의 새로운 소비 패턴이 바로 짠테크다. 불황이 낳은 바람직한 소비문화 아닐까. /우정구(논설위원)

2025-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