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은 객원기자의 ‘클래식 노트’
무대에 서는 두려움은 세계적인 대가라 해도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그러나 그 두려움이야말로 진정 무대를 빛나게 하는 인간의 에너지이기도 하다. 피아니스트 거장 알프레드 브렌델은 “예상치 못한 순간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순간”이라 말하며, 음악은 완벽함이 아닌 ‘자기 표현’의 과정임을 강조한다.
AI가 많은 영역에서 인간을 대체하고 있지만, 음악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능력만큼은 인간의 고유한 힘이다. 이번 글에서는 그 소중한 떨림을 동력으로 바꾸는 몇 가지 실질적인 방법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마인드 컨트롤 : 완벽주의 내려놓기
무대에서 완벽한 연주를 꿈꾸지만, 예상치 못한 실수는 피할 수 없다. 악보가 갑자기 떠오르지 않거나 익숙한 부분에서 실수해도 이는 인간의 한계이므로, “최선을 다하되 완벽함을 포기하라”. 호로비츠는 “실수는 불가피하나, 그 뒤의 음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실수가 발생하면 집착을 버리고 이어질 음악에 집중하라. 완벽 대신 유연함으로 무대를 채워라.
실수를 자연스럽게 넘기는 연습법은 이렇다. 먼저 악보를 완전히 외우지 않은 채로 계속 연주하며, 왼손을 잊으면 오른손으로 이어가고 다음 마디로 넘어가는 훈련을 반복한다. 기억나지 않는 부분은 가장 가까운 마디로 이동해 흐름을 유지한다. 이때 임의의 마디에서 시작해 연습하는 것이 핵심이다. 평소부터 생소한 구간에서도 유연하게 대응하도록 훈련하면, 무대에서 실수해도 다음 표현에 집중해 연주를 완성할 수 있다.
연주 중 집중 포인트를 만드는 것도 좋다. “이 부분에서 음악을 꼭 살리자” 와 같은 목표가 있으면 불안 대신에 음악에 몰입할 수 있다. 게다가 관객들은 대부분 작은 실수를 눈치채지 못한다.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흐름을 이어가면 된다.
△몸과 호흡 관리
무대 직전 피아니스트들은 보통 심장이 빨리 뛰거나 손발이 떨린다. 심장이 빨리 뛰는 건 몸이 “집중할 준비”를 하는 신호이다. 공포가 아니라 ‘각성 상태’라고 생각해보면 좋을 듯하다. 무대 두려움은 적이 아니라 나를 보호하려는 몸의 반응이며, 그 덕분에 더 집중해서 연주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바라보자.
몸을 풀면 긴장이 풀리기도 한다. 그중 한 방법은 호흡훈련이다. 몇 초간 깊이 들어마시고 천천히 내쉬는 복식호흡을 추천한다. 손, 어깨, 목을 가볍게 풀어주는 스트레칭도 좋은 방법이며, 성악가들이 쓰는 방법인 lip trill(입술 떨기)도 긴장 해소에 도움이 된다.
△다양한 연습 방법 : 무대 전 준비
집에서 실제 공연처럼 곡 전체를 끊지 않고 연주해본다. 이때 폰으로 녹화를 하면 관객이 지켜보는 듯한 긴장감을 줄 수 있다. 이는 무대에서 멈추지 않고 완주할 수 있도록 하는 무대 시뮬레이션 훈련이 된다.
또한 작은 무대부터 준비를 하는게 좋다. 친구, 가족 앞에서 먼저 연주해보며 청중의 범위를 다양하게 넓혀본다. 같은 곡이 아니더라도 연주 공백기를 오래 두지 않고 정기적인 공연 경험을 가지면 무대 긴장이 덜하다. 언제나 ’과잉 준비‘를 한다는 마음으로 연습하면 긴장이 줄고 자신감이 커질 것이다.
△실전에서의 태도
무대를 평가의 장이 아니라 “관객에게 선물한다”는 사고방식을 가지면 좋다. 사실 관객은 라이브로 클래식 음악을 들을 기회가 많지 않다. 피아니스트 루빈스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자주 실수한다. 그러나 나는 그 순간도 즐기기 때문에 관객도 나와 함께 즐긴다.“
국내 피아니스트들의 어록도 읽어보자.
손열음: “무대에서의 긴장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대신 그 에너지를 어떻게 다루느냐가 연주의 품질을 좌우한다.”
선우예권: “완벽하게 치려고 하면 오히려 불안해진다. 음악을 믿고 흐름을 따라가면 좋은 연주로 이어진다.”
백건우: “피아노는 나에게 기도와 같다. 때로는 기도가 흔들리듯 연주도 흔들릴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적이며 자연스러운 것이다.”
무대 불안은 피아니스트만의 과제가 아니다. 다양한 전공의 음악가, 강연자 등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주제이다. 무대를 두려움의 장소가 아닌 ’나‘를 드러내는 인간적인 공간으로 만들면 좋겠다.
/박정은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