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은 객원기자의 클래식 노트
케이팝 아이돌의 팬덤은 대단하다. 사람들은 좋아하는 특정 그룹이나 가수의 콘서트를 보기 위해 전 세계를 따라다닌다. 팬클럽, 응원봉, 팬미팅 등 조직적이고 공식적인 팬 활동이 존재하며, SNS를 통한 다양한 소통 덕분에 팬덤의 규모와 영향력이 매우 크다. 이러한 현상을 우리는 케이팝 문화에서 자연스럽게 접하고 있지만,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슈퍼스타 아이돌과 팬덤 문화의 시초는 사실 19세기 클래식 음악계에서 시작되었다.
SNS도 없던 시절, 헝가리 출신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1811~1886)는 19세기 유럽에서 ‘원조 아이돌’이라고 할 수 있는 클래식계의 뜨거운 셀럽이었다. 그는 화려한 연주와 잘생긴 외모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리스트가 공연하면 팬들은 그의 장갑, 피우고 버린 담배꽁초, 끊어진 피아노 줄까지 가져가려 했으며, 심지어 그가 마시다 남긴 차를 향수병에 담아 가기 위해 줄을 서기도 했다. 오늘날의 ‘사생팬’ 문화에 비견될 정도이다. 당시 그의 광적인 팬들을 의미하는 ‘리스토마니아(Lisztomania)’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공연장에는 귀부인들이 몰려들어 언제나 만석이었고, 무대 위에서 연주를 시작하면 기절하는 팬들도 많았다. 연주가 끝난 뒤에는 무대 위로 보석 반지가 쏟아지곤 했다.
리스트의 팬덤 열기는 강렬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관객을 즐겁게 하는 다양한 연출을 선보였다. 손수건을 던져주는 팬서비스, 연주할 때 머리칼을 휘날리는 퍼포먼스 등은 관객의 환호를 끌어냈다. 리스트와 같이 생활했던 마리다구 백작부인의 기록 “하얗디 하얀 얼굴에 맵시 있는 큰 키, 그리고 마른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큰 눈은 바다 색깔이었고 머리카락은 햇살에 너울대는 물결같이 빛났다”처럼 그의 외모와 타고난 스타성이 큰 매력 포인트였다.
리스트가 팬들을 위해 무대에서 선보인 새로운 시도는 현대 공연 문화의 전형이 되었다. 첫째, 피아노 소리가 홀에 잘 퍼지도록 피아노 뚜껑을 열고 연주했다. 둘째, 관객이 화려한 손놀림과 자신의 잘생긴 얼굴이 보이도록 피아노를 측면으로 돌려 배치했다(원래는 연주자의 등이 보였음). 셋째, 피아노 의자를 등받이나 팔걸이가 없는 스툴형 의자로 바꾸었다. 넷째, 당시 필수는 아니었던 암보를 적극 활용해 다른 연주자들과 자신을 차별화했다. 다섯째, 월드 클래스 인기로 매니저를 고용했다. 여섯째, 피아노가 홀로 독주 악기로써 연주회 전체 프로그램을 구성하지 않았을 때 독주 리사이틀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정착시켰다. 이 관행들은 오늘날 클래식 연주 문화에 깊게 뿌리내렸다.
리스트는 단순한 연주자가 아니라 기획자이자 연출가였다. 리스트 이전과 이후의 피아노 공연계 문화는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인다. 물론 이런 관행 덕분에 후대 피아니스트들이 암보 부담 등 많은 어려움에 직면하기도 했지만, 피아노를 완전한 독주 악기로 격상시킨 공로 또한 분명하다. 당시 베토벤이 “외운답시고 엉망으로 치지 말고 악보를 보고 연주하라”고 말했듯, 암보가 필수라는 인식은 리스트 이후에 굳어진 것이다.
물론 리스트의 삶이 언제나 화려했던 것만은 아니다. 1827년 아버지 아담 리스트의 사망은 그에게 큰 충격이었다. 그는 생계를 위해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피아노와 작곡을 가르쳤고, 한동안 연주 여행을 중단해야 했다. 또, 프랑스 귀족 카롤랭 드 생크릭과의 사랑이 실패로 끝나며 건강이 악화되어 마비 증세까지 겪었다. 종교적 방황 속에서 성직자가 되기를 희망했던 시기도 있었다. 그럼에도 리스트는 낭만시대에서 손꼽히는 다작의 작곡가일 정도로 음악의 유산이 방대하고 영향력이 크다.
그의 작품에는 열정과 서정, 화려함과 깊이가 공존한다. 수많은 곡들이 있지만, 대표적으로 강렬한 피아노 기교와 민족적 색채가 돋보이는 ‘헝가리 광시곡 2번’, 부드럽고 서정적인 ‘사랑의 꿈 3번’을 들어보기를 추천한다. 서로 다른 매력을 지닌 이 두 작품을 통해, 청중을 열광시켰던 리스트의 다채로운 음악적 얼굴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리스트는 낭만주의 음악을 전 유럽으로 확산시켰고, 오늘날 한국 아이돌은 한류를 전 세계로 전파하고 있다. 시대와 장르는 다르지만, 두 문화는 모두 음악을 넘어 사회적 현상을 만든 스타성과 팬덤을 중심에 두고 있다. 케이팝의 글로벌 성공 뒤에는, 19세기 리스트가 개척했던 ‘대중과의 연결’이라는 예술가의 역할이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박정은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