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주의(pragmatism)란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시작된 철학사조로, ‘진리는 그것이 실제 생활에서 얼마나 유용하게 작용하는가로 판단된다’는 입장을 가진다. 사물이나 이론의 가치는 그것이 현실적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는 주장으로, 찰스 S. 퍼스, 윌리엄 제임스, 존 듀이 등이 대표적인 학자들이다.
실용주의는 철학과 교육, 정치·사회, 과학 ·기술 등 다방면에 영향을 미쳤다, 철학에는 진리에 대한 전통적·절대적 개념을 흔들고 ‘실천적 유용성’을 중심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고, 교육에는 존 듀이의 진보주의 교육론, ‘학교는 삶의 준비가 아니라 삶 그 자체’라는 교육철학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 정치·사회의 측면에는 민주주의 이론, 개혁주의 정책, 사회문제 해결 방식에 기초를 제공했다. 과학·기술 쪽으로는 과학을 ‘현실 문제 해결의 도구’로 이해하게 하여 응용과 혁신 중심의 사고를 촉진시켰다.
오늘날의 실용주의는 분석철학, 과학철학, 언어철학, 정치철학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리처드 로티 등 신실용주의자들은 20세기 후반 포스트모던 사상과 결합하여 진리의 상대성과 사회적 담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진리를 단순히 유용성으로 환원한다’는 점에서 상대주의나 즉흥적 편의주의라는 공격을 받기도 했지만, 그러나 21세기에도 여전히 여러 문제의 해결적·실천적 사고방식을 지탱하는 중요한 철학적 토대인 것은 분명하다.
이재명 정권은 대선 때부터 실용주의를 내세웠다. 좌와 우, 진보와 보수의 이분법을 넘어 좋은 정책이라면 누구의 것이라도 채택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막상 정권을 잡은 후의 행보는 그러한 공약이나 철학적 실용주의와는 정반대였다. 국회를 장악한 여당은 기업 활동을 제약하는 각종 규제 법안과 재정을 악화시키는 포퓰리즘적 복지지출을 강행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소위 노란봉투법 제정인데, 강성노조의 편을 들어 산업경쟁력을 위축시키는 악법인 것이다.
이재명 정권이 실용주의를 내세운 저의가 무엇인지는 짐작이 어렵지 않다. 그것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 실용주의가 아니라, 실용주의를 명분으로 내세우면서도 실제 정책은 자신의 정치기반 강화와 사법리스크 돌파에 맞춰져 있다는 걸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왜 모르겠는가. 기업 규제, 노조 지원, 재정지출 확대는 모두 조직화된 지지세력 결집을 위한 전략이며, ‘탈이념·실용주의’라는 구호는 중도층을 향한 외피적 장식에 불과하다는 것을.
실용주의의 본래 정신은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이익보다는 공공선을 실현하는데 있다. 그러나 이재명식 실용주의는 지지층의 결속과 이해 집단의 이익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작동한다. 그것은 결국 자기 생존의 방편으로 포장된 권모술수적 편의주의일 뿐이다. 그래서 실용주의의 탈을 쓴 권력 생존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위장된 실용주의는 결국 탄로가 나게 마련이고, 그 결과 나라와 국민들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물론 저들에게도 자승자박의 길이 될 것이다.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