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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과 검색

등록일 2025-09-30 08:02 게재일 2025-09-3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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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뜨겁고 왕성하던 계절은 물러가고 가을이 성큼 다가서고 있다. 높푸른 하늘 아래 산과 들은 차츰 가을빛이 짙어지고 몸에 와 닿는 기온도 한결 삽상해졌다. 폭염의 기세가 잦아들고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해진 바람이 불어 초목들은 저마다 생각에 잠긴 듯 차분하고 내밀해진 모습이다.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란 말을 떠올리게 한다. 사색하기에 좋은 계절이란 말이기도 하고, 뭔가 깊은 생각에 젖게 하는 계절이라는 뜻이기도 할 터이다.

요즘 같은 정보화시대가 되기 전에는 사색(思索)이란 말에 상당한 깊이와 울림이 있었다. 대부분의 지식을 독서를 통해 습득하던 시절에는 그 과정에 사색 또한 필수였다. 좋은 책들은 단순히 지식만 전달하는 게 아니라 사색의 길을 열어주고 생각하는 힘을 길러 주었다. 읽어야 할 책, 읽고 싶은 책을 선택하고 밤새워 독서를 하면서 사유와 정신의 골격과 근육을 키워간 거였다.

일찍이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숙고(熟考)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 고 했다. 자신의 삶을 깊이 성찰하지 않고 그저 살아가는 것은 진정한 삶이라고 할 수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물론 삶에 엄격한 철학자의 기준을 따르지는 못할지라도 흘려들을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프랑스 작가 폴 부르제의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도 궤를 같이 한다. 삶의 방향과 목표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고, 그저 하루하루 닥치는 대로 살아가다보면 현재의 환경이나 습관, 상황에 사고가 지배당하게 된다는 것. 즉, 삶이 이끄는 대로 끌려가게 되어 자신이 가진 생각과 신념이 무엇인지 정체성을 잃게 된다는 말이다.

사색보다는 검색이 우선인 시대가 되었다. 지금은 독서와 사색을 통해 삶에 대한 의문이나 문제의 답을 구하는 대신 간편하고 신속하게 인터넷 검색이나 챗GPT 같은 인공지능에 물어서 해결을 한다. 사색은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한 만큼 문제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고력, 집중력, 창의력, 인내력의 증진 같은 이점이 있다. 이에 비해 인터넷 검색은 신속하고 효율적이며 방대한 최신 정보에 접속할 수 있고 다양한 공감의 비교도 용이하다. 그러나 피상적인 이해에 그치기 쉽고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대로 편향되거나 저질·가짜 정보에 빠지기 쉽고, 사고력 약화라든가 자기성찰의 기회가 감소한다는 단점이 있다.

 인터넷 검색이라는 손쉽고 즉각적인 해답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깊이 있고 비판적인 사고력의 저하로 스스로 판단하기보다 알고리즘의 추천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게 되어 여론조작에 휩쓸리기 쉬운 취약성을 가진다. 넘쳐나는 각종 정보를 소비만 하고 창조적인 재구성의 능력을 기르지 못해 지적 체력의 약화와 정신적 성장의 지체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이미 상용화된 검색의 기능을 일부러 외면할 필요는 없지만, 아날로그적 기능이라 할 수 있는 사색을 겸비해야 보다 균형 잡힌 지식과 인격,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된다.

좌파와 우파로 갈려 내전이라 할 만큼 극단적인 대결상태에 있는 우리나라는, 역사와 시대를 통찰할 사색의 필요성이 절실하다.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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