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초등학교에선 소풍이나 운동회라는 행사가 없어진 것 같다. 학년별로 과학관이나 테마파크로 가는 체험활동이라는 프로그램이 대신하는가 보다. 손주들이 학교 가면 소풍도 따라가고 운동회도 꼭 가봐야지 기대했는데 많이 아쉬웠다.
체험활동 가는 손자에게 도시락이라도 싸주고 싶었다. 손사래를 치며 말리는 며느리를 설득했다.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 내가 바빠 손수 만든 김밥을 싸주지 못한 때가 있었다. 학교에서 밤늦게야 집에 오니 다음날이 소풍이라는 거였다. 미안한 마음에 미리 알려주지 않았냐며 오히려 역정을 냈다. 새벽에 문 여는 김밥집이 있다는 이웃의 정보를 얻어 김밥을 사 도시락으로 넣어준 적이 있다. 아직도 그날이 생각날 정도로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날의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손자에게라도 갚고 싶다.
SNS에서 예쁜 도시락을 폭풍 검색해서 하나 골랐다. 문어유부초밥 만들기. 유부초밥에 토핑으로 비엔나소시지를 문어 모양으로 만들어 얹는 거였다. 이거다. 김밥 만들기보다 오히려 간단하고 예쁘고 귀여워 손자가 좋아할 것 같았다. 필요한 재료를 메모해서 남편과 함께 마트에 장보러 갔다. 소시지, 유부초밥세트, 검은깨, 치즈 등과 작고 동그란 구멍을 낼만한 도구도 샀다.
소풍날 늦지 않게 가져다주려면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야겠다 싶어 장봐온 재료로 미리 연습을 했다. 동영상을 몇 번이나 돌려보았다. 어렵지 않을 것 같았는데 웬걸, 만만치 않았다. 소시지가 커서인지 문어 다리 모양은 너무 뭉툭해서 볼품없었다. 문어 눈이 될 검은깨 박기가 제일 어려웠다. 파스타면에 올리고당을 묻히면 쉽다는데, 면은 부러지고 깨는 튀어나온다. 입 모양으로는 치즈에 빨대로 도넛 모양 구멍을 내는데 자꾸 갈라진다. 아무리 연습해도 모양이 나질 않았다. 더 작은 소시지와 도구가 필요했다. 24시간 영업하는 식자재마트에 달려갔다. 다시 사온 소시지는 좀 나았다. 영상 속의 문어와 근사한 모양이 나온다. 소시지 두 봉지 중 연습용으로 한 봉지를 다 쓸 정도로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밥을 미리 안쳐두고 잠시 눈을 부쳤다.
서너 시간 잤나, 새벽 5시 알람에 눈을 떴다. 간밤의 연습대로 문어유부초밥 만들기에 돌입했다. 문어 다리 모양은 얼추 나왔는데, 눈이 될 검은 깨박기는 여전히 어려워 잘 박히지 않았다. 구멍이 작으면 들어가지 않고 더 크게 뚫으면 연방 튀어나오고야 만다. 이러다간 안되겠다 싶어 손톱으로 껍질을 뜯어 손가락으로 깨를 쑤셔박는다. 시간은 자꾸 흐르는데 영 진도가 나질 않는다. 초조한 맘에 손은 더 무디고 더뎌진다. 문어유부초밥만으로 도시락을 다 채우기엔 시간이 모자라겠다 싶었다. 집 부근 김밥집에 전화해 달걀꼬마김밥을 주문했다. 등교 시간 전에 맞춰 겨우 가져다줄 수 있었다. 며칠 후 만난 손자에게 도시락 맛있었냐고 물었다. 응 맛있었어. 그런데 도시락을 열었더니 문어 눈은 없어지고 입도 떨어지고 까만 김띠도 풀어졌어. 그래도 딱 한 개는 괜찮았어. 애들이 모두 보고 와~~ 했어. 헛수고는 아니었겠지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