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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내지 못한 말이 있지

등록일 2024-12-01 18:39 게재일 2024-12-02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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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정 시인
이희정 시인

인테리어 기본 요건은

자리를 바꾸고 요소를 덧대는 게 아니라

들어내는 것이라고,

더 좋은 관계를 바란다면 관계에서 나와야 할까

그렇다고 고라니처럼 고속도로로 뛰어들어선 안 된다

분갈이 하는 아저씨는 흙을 더 채우는 게 아니라

뿌리에 있던 흙을 털어내고 있었다 숨 쉬게 한다고 했다

언니가 없으면 독방을 차지할 거라 기대했지만

나 먼저 들어낼 줄은 나도 몰랐듯이

들어내도 나가지 않는 게 있고

다 알면서 들어낼 수 없는 것도 있다

고라니가 잘못 뛰어든 곳은 고라니가 들어낸 길이었을까

들어내지 못한 길이었을까

―이규리, ‘들어내다’전문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2014)

이 세상 모든 것에는 언어가 있다. 시간이 흐르면 어떤 언어는 나를 떠나가고, 어떤 언어는 내가 놓아버리고, 어떤 언어는 내 곁에 남는다. 그것이 누구로부터, 무엇으로부터, 그 누구로부터든 말이다. 여기 이규리 시인의 ‘들어내다’는 시의 언어를 담보로 고라니의 언어를 빌렸다. 다시 말해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는 것을 시(詩)라고 부를 때, 고라니가 증언해야 하는 길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이다.

이 시의 미덕은 별 어려운 말도 없이, 어려운 비유도 없이, 삶을 들여다보게 하는 것에 있다. 시가 진행되면서 ‘들어내는 것’과 ‘들어내어지는 것’의 인식의 도약이 이루어진다. “고라니가 잘 못 뛰어든 곳”이라는 다소 이질적인 사건이 외려 평범한 차원으로 치환되는 발견과 함께 이규리 시인의 삶의 태도 또한 최선의 언어가 된다.

때로 우리는 어떤 관계에서 나와야 할 때가 있지 않은가. “분갈이 하는 아저씨가 뿌리를 숨 쉬게 하기 위해 흙을 털어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때일지라도 “고라니처럼 고속도로를 뛰어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시인의 언어이다. 이를테면 “독방을 차지할 거란 기대와 달리 외려 자신이 들어내어 질”때 적절한 애도의 과정을 거치지 못한 채 ‘들어내어진’ 고라니의 언어들이 갈 수 있는 선택지가 고속도로가 될 수도 있다는 위험성에 있다.

가령 이규리 시인의 ‘시의 인기척(난다, 2019)’이란 산문에는 이런 정황을 예시하는 구절이 있다. “평소 순한 짐승이 난폭해지는 건 환경이 맞지 않다는 증거다. 그 난폭성을 내부로 돌리는 자학 또는 자해란 보통 선량한 사람이 선택하는 방법이다.” 또 이런 대목은 어떤가. “목줄을 놓친 개 주인과 목줄을 놓아버린 개 주인은 다르다. 진실 공방은 무의미하다. 자의와 타의, 거짓과 진실은 서로 바꿔치기기가 가능하다”

다시 최선을 다해 들어내 보기로 하자면 “어떤 회복은 원상복귀가 아니라 절단과 정리”가 맞을 것이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마음을 다치지 않으면서도 실은 냉철하고 매운 언어로 들어낼 수 있는 인테리어의 언어가 있을 법도 하다. 다독이면서 온화하고 속 깊은 성찰을 부드럽고 매운 화법 안에 담아내는 이규리 시인이라면 어떤가.

“들어내도 나가지 않는 게 있고, 다 알면서 들어낼 수 없는 것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언어는 몸을 갖고 있어서 말과 행동은 유리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이 당신과 나에 대해 최선을 다한 시인의 언어라면, 그것은 사람을 대하는 진정 어린 삶의 태도에 있지 않을까. 마치 시인의 언어는 도마뱀의 꼬리처럼 쉬이 잘려 나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고 몸인 것처럼 말이다.

“고라니가 잘못 뛰어든 곳은 고라니가 들어 낸 길이었을까 / 들어내지 못한 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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